나는 공부하러 박물관 간다
이원복 지음 / 효형출판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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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박물관에 가고 싶다. 사진으로는 아무리 봐야 진품에 대한 미감이 길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멋과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실제로 진품을 많이 경험하며 그 색감과 조형미에 대해 이해가 필요하다. 그렇게 자신의 감각으로 파악된 것은 다시는 실수하지 않게 되며 가품으로는 절대로 만족하지 못하는 심미안이 생기게 된다. 아름다움과의 만남은 공예품을 주로 다루고 있고 옛 사람의 멋과 향기에서는 주로 회화부분을 다루고 있다. 특히 회화부분에서는 내가 만나지 못한 작품들을 몇 점 만나게 된 데 그 의미가 크다.

 

  미술품에 대한 해설은 고유섭 선생님이나 간송 선생님 그리고 혜곡 선생님의 책을 몇 권 접해서인지 말머리와 본론으로 들어가는 이선생님의 설명이 그리 깊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아직은 이선생님의 깊이가 앞으로 더 깊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미술품에 대한 정보와 지식은 내가 받아들여야 할 부분들이 많았음을 말할 수 밖에 없다. 청자원숭이모자연적은 조형미가 그렇게 뛰어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에 서식하지 않는 원숭이라는 동물을 연적으로 만들어 사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기린모양의 미술품도 그런 면에서 소개되면 좋겠다 싶었다. 국보 74호인 청자압형연적은 유심히 보았다. 압형연적 중 크기도 큰 편이고 조형감과 세밀한 묘사 등 전체적으로 수작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청자의 비색도 원래의 청록색의 깊은 색감을 유지하고 있다. 비록 흑백으로 찍은 사진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색감이 입혀져서 내겐 비색으로 들어왔다.

 

  물론 아름다움과의 만남이라 해서 회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채의 초상화라든지 이암의 모견도를 보면 조선 회화의 독창성을 잘 느낄 수 있다. 선비의 기상까지 그림으로 담아내는 것이라든지 비록 축물이라도 모자 간의 오가는 따뜻한 정을 그림 속에 담아낸 점은 뛰어나다. 분청사기조화선조문편병은 그 선의 가는 미감을 아직 잘 모르겠다. 자유분방한 어린이가 아무렇게나 그려놓은 듯 하다. 그런데 그 예술성이 뛰어나다 하니....참....아무런 기교와 의도없이 자연스러운 터치로 아무렇게나 그려놓은 것이 그 자유분방함이라 하지만....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고려의 수월관음도도 다른 책에서 본 내용이지만 여기서 한 번 더 보게 되어 기쁘다. 물론 수월관음도는 전체를 보여주지 못한 면이 아쉽다.

 

  회화에서는 유숙, 윤인걸, 정세광, 전기, 이유신, 이정근 등의 사람들은 오랫동안 접하지 못해 머릿속에서 지워질만 하니 다시 보게 되어 좋았다. 나아가 그들의 자연을 대하는 마음과 마음 수양과 벗들을 사귀는 깊은 정들은 부러웠다. 아직은 우리나라 미술품에 대한 세부화된 정리작업이 제대로 책으로 나오지 않아 아쉽고 또 다른 책으로 이어지는 디딤돌 역할을 이 책이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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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
윤용이 지음 / 돌베개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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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도자기를 만약 장터에서 그냥 지나치면서 보게 된다면 나는 과연 그 진위를 알 수 있을까? 한국의 내면적인 아름다움과 멋을 나는 지나치지 않고 알아볼 수 있을까? 우연히 많은 골동품들을 대하게 되면서 나는 어떤 것이 진품이고 어떤 것이 가품 또는 모조품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강하게 일었다. 우연히 접하게 된 조선시대 왕실용으로 보이는 용문투각필통과 육각문필통이 왜 청자빛을 띠는 지에 대해 궁금했고 어느 시대의 것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 궁금증을 풀었다.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은 여러 예술품에서 볼 수 있다. 벽화에서도 그림에서도 다뉴세문경에서도 건축물에서도 성덕대왕신종이나 석굴암과 불국사 등 ..... 많은 미술품들이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 가장 가까이 존재했었고 또 삶의 가장 밑바닥을 함께 했던 도자기는 지금 가장 많은 유물들이 남아 있고 그 종류와 수도 많아서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도자기를 눈 앞에 두고서 천천히 완상하고 음미하여 그 색과 조형감에서 스스로의 안목을 갖지 못한다면 우리는 시골 장터에 그냥 아무렇게나 있는 보물들도 그냥 지나쳐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도자기를 안다는 것은 한국을 중심으로 한 중국과 일본 나아가 세계의 도자기 문화의 흐름을 파악하는 일이 되며 또 한편으로는 한국적인 역사적 상황과 도자기의 재료를 구할 수 있는 조건 등을 살펴보아야 더욱 이해가 깊어진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청화안료의 유행과 그것을 구하기 힘들었던 조선의 철화나 진사를 재료로 한 도자기의 이해도 필요하고 고려 불교의 전성기를 거친 다음에서야 비로소 무늬나 색깔없는 흰 항아리의 선적 요소나 분청사기의 우연적 순간적 자연적 터치가 빚어낸 미학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런 면에서 도자기는 그 도자기에 체현된 시대적 사상의 총체가 되며 시대적 인간 삶의 총화가 되는 것이다.

 

  몇 권의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한국 도자사의 간략한 구조를 알게 되었고 또 도자기를 눈 앞에 두고 이것은 초기의 청자인지 중기인지 후기의 상감기법이 들어간 청자인지 알게 되었고 또 분청사기인지 백자인지 초기 백자인지 철채안료인지 진사안료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굽의 형태에 따라서도 대체적인 시기 파악이 가능하게 되었고 기형의 시대적 배경과 시기적 구분도 대략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이 책이 그만큼 한국 도자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내겐 유용했다는 점이다. 아직 청자에 대해서는 실제적인 경험이 없이 사진자료만으로 대해서 비색에 대한 경험이 없는 편이다. 빛을 튕기지 않고 은은히 흡수하는 오래된 세월의 빛깔 또한 많이 눈으로 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백자는 사진자료 검색이나 국립중앙박물관 자료를 통해 어느 정도 감각을 갖게 되었다. 물론 그래봐야 일천할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러고나서 보니 도자기를 감상하는 맛이 달라졌다. 어떤 기형 형태에서는 희소성이 있고 이정도 크기에 무늬와 조형감이면 보물급인지 국보급인지에 대한 생각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도자기를 보면 색감과 조형 무늬 등을 천천히 관찰한 뒤 뒤집에 밑굽의 모양과 태도를 받친 자국이나 모래 자국 등을 유심히 보게 되었고 도자기의 손에 잡히는 느낌이나 질감도 느끼게 되었다. 그러니 사람 사귀는 것 만큼의 재미가 있은 듯 하다. 특히 이 책을 통해 조선시대 백자에도 청자 형태의 유약을 써서 구워낸 백자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나의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앞으로 조선 도자기에 대해 더욱 많이 공부하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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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 - 회화 공예 편
안휘준.정양모 외 16인 지음 / 돌베개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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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화와 공예부분의 최고의 미술품은 무엇일까? 각계 미술품 전문가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한국 최고의 미를 가려내었다. 회화 10점과 공예품 10점에는 한국미술의 우수성과 멋이 담겨 있다. 또한 동시대의 중국과 일본의 미술품과 비교한 설명으로 한국의 미술품이 가진 독창성과 우수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설명으로 우리들의 자긍심을 마음에서 우러나게 하고 또 나아가 세계 최고의 한국 문화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욕망을 가지게 한다.

 

  최고를 경험한다는 것은 아름다움과 멋의 안목을 높이는 것을 말한다. 실력이 얕으면 높은 자의 안목을 읽어낼 수 없다. 하지만 깊은 안목은 모든 층자의 예술품을 바라보는 안목을 생기게 한다. 그것이 최고를 감상하는 첫번째 의미일 것이다. 우리 시대 최고의 미술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다른 미술품이나 골동품을 바라보는 안목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미술품에 대한 상, 중, 하 등을 구별해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다.

 

  또 최고를 경험한다는 것은 삶에 있어서의 깨인 순간을 맞는다는 의미이다. 최고를 경험할 때의 그 황홀감과 감동 그리고 그 순간의 자신의 의식을 열어젖히는 느낌은 우리들의 인생을 의미있게 하고 깊게 한다. 최고의 예술품을 완상하면서 스스로가 가지는 그러한 감동이야말로 자신의 인생의 경험을 깊게 하고 의미있게 한다. 나아가 내가 우리 민족의 구성원으로 태어나 이 역사 속에서 성장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백제금동대향로, 석굴암과 불국사, 성덕대왕신종, 고려청자, 조선백자 달항아리 등의 공예품과 수월관음도, 몽유도원도, 인왕제색도, 단원풍속도첩, 불이선란도와 민화를 보면 우리 조상들의 멋과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예술혼이 담긴 문화에 대해 알 수 없는 외경심과 관심 동경과 멋스러움으로 충만하게 된다.

 

  삶에 이러한 멋스러움이 없다면 사는 것이 얼마나 밋밋할까? 나아가 이러한 예술품을 보는 안목으로 세계의 모든 문화와 예술품을 보는 안목을 키워나간다면 세상의 미감을 스스로의 것으로 만들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가 다양한 형태로 갖게 되는 삶의 최고의 경험을 우리는 미술품에게서 배운다. 나아가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 미술품의 멋과 안목을 되살려 세계에 흩어져 있는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관리도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우리들의 미술품 시장의 규모와 정책적 지원 그리고 국민적 관심은 문화대국에 비해 너무 초라한 실정이다. 중국과 일본만 비교해도 우리들의 시장규모는 5분의 1이나 10분의 1조차도 되지 않는다. 우리들이 우리들의 문화와 미술품에 대해 깊은 인식과 자긍심을 가질 때에만 비로소 세상 사람들도 그 우수함을 알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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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흙 도자기로 태어나다 한국문화사 시리즈 32
국사편찬위원회 지음 / 국사편찬위원회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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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땅에 대한 관심과 우리 흙에 대한 관심은 그 땅 위에 발 딛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에 다름아니다. 한국 미술과 미술품에 관심을 갖고 대하길 몇 년 만에 이 책을 귀하게 만났다. 적어도 토기와 도기 자기에 대한 안목은 바르게 세워주기 때문이다. 우연찮게 지인의 소개를 통해 일본 경매 사이트를 알게 되었고 그림의 끝에서 자기 몇 편을 구입하게 되었다. 그 때에는 그 자기가 어떤 시대의 어떤 의미를 담고 만들어졌는지 잘 몰랐다. 그러나 차츰 이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나는 그게 어느 시대의 어느 문화적 풍토에서 나온 것인지를 알게 되었고 또 조잡한 것인지 관요에서 만들어낸 것인지 아니면 왕실에서만 쓰던 최고의 물품인지를 조금은 구별할 줄 알게 되었다.

 

  한국은 아직은 미술품 시장이 크지 않다. 중국이나 일본 심지어 미국에서 경매되는 물건 중에는 우리나라 국보들이 피카소의 그림 한 점 보다 적게 나가는 것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국보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미국에 전시하기 위해 드는 보험도 300억인가 500억인가 정도로 피카소의 그림 한 점 보험가격에도 못미치는 현실이라고 한다. 그러나 안목을 갖고 보면 우리 미술품이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일등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화려하지 않아도 장식적 요소가 적어도 그 담박하고 순수한 멋이 풍겨내는 깊은 완상의 재미를 한국의 도자기들은 갖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토기와 도자기의 역사를 시대별로 개관한다. 도자기 발전의 역사를 시대적 수요와 요구에 맞게 재구성해서 가마터의 물색과 지리적인 요인들을 설명함에서부터 도자기를 구워내는 가마의 불의 조건과 흙과 안료 재료 유약에 이르기까지 일반인이 읽더라도 부담없이 쉽게 설명해내는 한편 책 속에 사용된 사진자료의 선명함과 우수함에 보는 사람들의 안목을 키워준다. 또한 도자기의 밑굽과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설명까지 덧붙여서 도자기를 바라보는 일반인의 안목을 넓게 한다. 청자를 보는 맛이 색에 있다면 백자를 보는 맛은 모양에 있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다. 청자는 그 비색의 깊은 색감을 완상하는 데 즐거움이 있다면 조선 달항아리의 맛은 순박하고도 단순한 조형미에 그 맛이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한국사람으로서 한국의 미를 사랑하는 한 국민으로서 이 책을 읽고 나면 한국미술을 중국이나 일본미술품과 구별하는 안목을 갖게 되고 나아가서 한국미술품을 대할 때 이것이 어느 시대 어느 종류의 도자에 해당하는 지와 그것이 상품인지 중품인지 하품인지 정도를 구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진위를 파악하기에는 나의 눈으로는 안목이 부족하다.

 

  개인적으로는 청자 연적 하나와 조선 후기 19세기쯤으로 보이는 투각필통과 주병 주전자 화병을 소장하고 있다. 하지만 진위여부를 알 수 없다. 대체로 가짜라고 보인다. 하지만 골동품은 사서 쳐박아두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꺼내어 완상해보는 즐거움을 준다. 혹시라도 그 조형이나 감각에 대한 눈이 떠져서 진위여부를 느낄 수 있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기회될 때마다 박물관에 가서 완상하고 아는 지인의 집에서 완상하고 또 몇 점 안되지만 집에서도 완상하다보면 이것은 모조품이다. 이것은 진품이다 라고 하는 안목이 스스로에게도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를 구워내던 도공의 마음과 예술혼 그리고 자기에 그림을 그리던 화원의 붓길을 마음 속으로 따라가면서 자기를 쳐다보면 그가 가진 멋과 맛이 내 눈을 뜨게 한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스스로 우리 민족에 자부심을 가져도 될 정도로 우리의 문화유산이 뛰어나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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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 대기근 - 삼백만 명이 굶어죽은 허난 대기근을 추적하다 걸작 논픽션 5
멍레이 외 엮음, 고상희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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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년이 넘은 오늘날 우리는 중국의 허난성에서 있었던 일들을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중국조차도 마찬가지다. 역사의 블랙박스 속에 집어넣어진 채 1942년의 아픈 상처와 비극은 그 생존자들의 가슴 속에서만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다.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가뭄으로 생긴 자연적 재해가 사회적 인재와 겹쳐져 부산 인구가 아무런 시선도 구제도 받지 못하고 1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모두 사라져버린다면.... 그들 모두가 굶어서 죽게 된다면....

  때는 1938년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때 국민당 정부는 하나의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황하의 물을 담고 있는 화이안커우 제방을 폭파하기로 한 결정이 바로 그것이다. 이 제방의 폭파가 바로 1942년의 대기근을 낳게 한 원인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제방 폭파가 일본군의 저지와 그 피해를 주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위정자라면 이러한 결정은 도저히 내릴 수 없는 것이었다. 폭파로 인해 황하물이 범람하면서 수많은 시민들은 자다가 지붕 위로 들어찬 물에 수장당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폭파로 인한 직접적인 사망자수는 89만명이고 그로 인한 피해민은 1250만명으로 추산되었다.

  북극에 있는 빙하의 사진을 보면 그것이 이 사건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면 위로 드러난 부분은 자연적 재해라고 한다면 그 물 아래의 대부분의 덩어리들은 1942년의 대기근이 갖고 있는 사회적 재해 부분이다. 전쟁이라는 미명 하에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해버린 국민당 정부와 장제스 그리고 부패한 관리들,  막힌 언론과 부실한 피해구제책이 이토록 절묘하게 어우러져 허난성 주민들을 굶주림 속으로 내몰았고 최소 300만에서 최대 500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기까지 수많은,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이 지상의 지옥을 경험했던 것이다.

  당시 허난성은 일본군과 중국군의 전쟁 속이었고 국민당은 주민들의 생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로지 주민들의 구제책이 일본군에게 식량을 제공해주거나 중국군의 사기저하로 이어질까 걱정하였던 것이다. 허난성은 인류최대의 기근을 겪으면서도 중국에서 세금이 가장 많이 거두어진 지역이 되었고 부패한 관료들은 일신의 부귀를 위해 주민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재난을 기회삼아 부를 축적했고 욕망을 충족했으며 지위를 추구했다.

  지옥이 있다면 우리들의 사악한 마음에서 드러나서 펼쳐진 세상이며 그 지옥에서 핀 선의 꽃 또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일본군의 폭격으로 수많은 사상자들이 생겨나고 나무껍질과 갈매기 똥과 흙으로 연명하던 주민들이 결국은 굶어서 죽고 아버지가 아들을 팔고 아내를 팔아넘기고 자식의 인육을 먹는 반인륜적인 일들이 자행되고 있을 때에도 그 지옥에 내린 구원의 손길을 정부와 국가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가혹한 정치는 전쟁보다 더 무섭다고 했던가?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오는 반인륜적이고 식인적인 행위 또한 마음에서 장벽을 쳐서 닫아버렸다. 기차에 걸린 시체를 밟고 기차에 오르고 길거리에 밟히는 신체 일부가 없어진 시신을 밟고 지나가면서도 먹을 것을 찾아서 살기 위한 몸부림을 쳐야 했던 지구의 역사 한 켠에서 그들은 그 누구의 희망의 손길도 받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자식의 인육을 먹던 사람도 다른 사람의 음식을 훔쳐먹으며 생을 이어갔던 사람도 갈매기의 똥을 먹고 나무껍질을 벗겨 먹으며 살려고 몸부림쳤던 사람들 모두가 굶어죽었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삶의 성숙함과 고결함과 아름다움은 있었다. 자신을 팔아버린 남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대하면서도 자신이 입은 바지가 더 깨끗해서 바꿔입자고 하는 아내의 모습에서...추운 겨울 거리에서 먹을 것이 없이 차가운 땅에 누워서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이의 육체를 껴안고 죽음을 맞이하는 부부들과 비록 자신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같은 이재민을 챙겼던 이름없는 수많은 사람들...

  이주일동안 이재민과 함께하며 취재하여 타임지에 실어서 미국민들의 구제여론을 이끌었던 화이트 기자와 대공보를 통해 허난성의 재난을 바로 알리려고 노력했던 장가오펑 그리고 많은 이재민을 살린 예극의 여왕 창샹핀 등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재를 기꺼이 털어서 먹을 것을 제공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지옥 속에서도 피는 꽃이었다. 비록 자신의 이해관계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어도 기꺼이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려고 했던 보살들이었던 것이다.

  뒤늦은 국민당의 구호정책과 그 속에서도 구호물품을 빼돌렸던 탐관오리들과 탕언보의 사악함으로 이재민 구호정책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렇게 1942년의 대재앙은 중국역사에서 잊혀져서는 안되는 꼭 기억해야만 하는 시대의 비극으로 남았다. 이제 그 생존자들도 소수만 생존해있다. 1942년이 단순히 중국만의 비극과 상상할 수 없는 재난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사람들 마음의 보편적인 악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인류의 교훈이 된다.

  그것은 바로 내 마음 속의 악을 치유해야만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된다. 어찌 지금 우리라고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보장할 수 있겠는가? 부패한 정치인과 자신의 이익에만 골몰하는 인간의 이기심이 어떤 인연과 상황을 만나면 1942년은 지금 이 곳에서도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그것이 바로 남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고 1942년에 어떤 잘못도 없이 선량하게 살다가 전쟁과 국가의 무능과 부패한 관료와 허술한 사회시스템으로 지옥 속에서 고통받았던 그 영혼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을 동안이라도 금강경 독송하며 이 경을 읽는 공덕을 1942년 허난성 이재민의 영령 앞에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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