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일기 - 잠든 나를 깨우는 100일간의 마음 공부
김홍근 지음 / 교양인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협심증에 당뇨가 있는 아버지가 감기를 앓은 것은 2주일 전의 일이었다. 그냥 감기려니 생각하고 집안 식구들도 별로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급기야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계시게 되었고, 식구들은 병원에 모시고 가려 하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말을 듣지 않았다. 이러다 낫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고 도무지 나아질 기세가 보이지 않자 다시 종용했으나, 고집은 그대로였다. 급기야 사흘째가 되어 자신도 이것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지 대학병원으로 바로 가셨다.

  조금만 늦었어도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었다. 폐의 한 쪽은 완전히 하얗게 찍혔고, 다른 한 쪽도 드문 드문 보이는 흰 점들이 상태가 심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거기에다가 협심증에 당뇨수치도 높아서 의사의 말로는 당분간이 위독한 상황이라고 하였다. 온몸이 흔들릴 정도의 기침에다가 손과 얼굴을 비롯한 온몸 근육이 심하게 떨리고 첫날을 옆에서 지켜보던 어머니의 마음까지 공포 속에 갇히게 만들었던 합병증은 그렇게 우리 가족에게 '죽음'이라는 말을 가까이 던져 놓았다.

  우선 우리 부부에게는 아이가 큰 문제였다. 어머니가 봐주시던 아이를 이리 저리 맡길 곳을 찾아 헤매이어야 했다. 그래도 장인 장모님이 가까운 곳에 있어 다행히 아이들 문제도 당분간 쉽게 해결이 되었다. 아이들이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녀석들까지 신경쓸 겨를이 우리에게 없었다. 우선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문제가 가장 앞에서 우리들의 벽이 되어 나타났던 것이다. 그간에 공부게을리했던 것이 많은 후회가 되었다. 정작 가까운 이의 죽음이 와서야 정신이 든다면 늦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죽음이 오기까지는 열심히 닦을 일이다.

  그런 중에 이 책이 잡혀졌다. 당장 사람이 위태로운데 무슨 책인가 하겠지만 그럴수록 내면의 의지처를 찾는데에는 마음을 잡아주는 책이 필요하다. 나보다 나이가 열네 살이나 많은 저자도 이렇듯 열심히 공부하며 사는데 젊은 나는 게으름을 있는 대로 피우며 사는 생활이 반성되었다. 좋은 스승의 지도를 통해 하루 하루 수행하며 적은 100일의 참선일기는 때로는 밝아지는 마음의 눈을 떠가는 즐거움과 보람을 알게 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짧은 깨우침의 순간을 버리지 못하여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경험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부처님의 자비는 언제나 온누리에 가득한데 '자아'라고 하는 것이 그 앞을 막고서서 우리들의 참된 진리의 인식을 방해한다. '배고플 때 배고픈 것을 아는 자'라는 현웅 스님의 말씀도 우리가 에고의 작용을 하기 전에 배고픈 줄 알고 숨쉬는 줄 알고 보고 느끼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생각하는 그 자체에 녹아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시선을 돌리면서도 어떤 생각을 하면서도 이 생각과 시선과 읽는 행위가 인지되는 그 무엇에 마음을 맞추려고 노력하였다. 아직은 자아라는 너무나도 큰 벽이 나의 앞에 드리워져 있음을 알기 때문에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겠다.

  글을 이해하려고만 하면 책장은 잘 넘어간다. 하지만 한 단어 한 단어 그 말의 뜻이 떨어지는 곳을 마음으로 짚어가다보면 막히는 곳 투성이다. 한 장도 그냥 넘기지 못한다. 하지만 그 의문을 들고 또 다음 장으로 넘어가서 또 의문을 보태고 이런 식으로 책을 넘기다 보니 의문에 의문을 보태어져서 또 한편으로는 희석화되어 버린 의문의 찌꺼기들만이 남아 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위험한 고비를 넘긴 아버지는 조금씩 회복되어 간다. 하지만 아버지의 삶과 생활과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남은 생은 이전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이번 계기를 통해 아버지와 마음이 맞지 않았던 내가 아버지를 연민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한번도 자신의 진정한 모습에 관심이 없었던 아버지가 인생의 끝에 서서 삶의 진실을 끝내 마주하지 못하고서 삶을 마감한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더욱 많이 공부하고 기도해야겠다는 다짐을 새로이 하게 되었다.

  우리가 움켜쥐려고 하는 삶이란 사실 너무 연약한 기반 위에 서 있음을 알게 되었다. 조그만 조건만 변해도 우리들의 삶은 와르르 무너져내린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이 영원한 것인양 잡고 움켜쥐고 욕심을 부린다. 밖으로 주어진 억만금의 보물이 아무리 많다하더라도 마음 속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는 보물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진정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 이번 기회가 다시 나에게 새로운 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발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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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6-10-02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님의 죽음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립니다. 부모님도 시부모님도 건강하게 사시다가 고요하고 편안하게 가셨으면 하는 것이 매일 아침 108배에서 빠뜨리지 않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아버님께서 이번 일을 계기로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삶의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추석 잘 보내세요._()_

달팽이 2006-10-02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혜덕화님..
둥글고 둥근 마음 나누는 한가위 되길 바랍니다.

비자림 2006-10-02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좋은 일이 있으셨군요. 고비는 넘기셨다고 하셨지만 많이 걱정되네요.
님, 힘 내시길! 아버님 손 많이 잡아 드리시길!

이누아 2006-10-02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 관세음보살 _()_

파란여우 2006-10-03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란게 내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지요.
그럼에도 결국엔 마음을 다잡아 먹는 일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잖아요.
고통이 중심을 잃지 않는 나침반이 될 수 있기를 멀리서 철없는 누나 기원합니다.

달팽이 2006-10-03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림님, 그렇게 하지요..고맙습니다.
이누아님, _()_
여우님, 마음만 다 잡아 먹으면 달리 할 일이 없겠지요..
공부해야겠습니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