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답게 산다는 것
안대회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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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四戒. 소동파


수레나 가마를 타는 것은 다리가 약해질 조짐이고

골방이나 다락방은 감기 걸리기 십상이다

어여쁜 여인은 건강을 해치는 도끼이고

맛난 음식은 창자를 썩게 하는 독약이다       p 52


선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나는 그 화두를 소동파의 절식에서부터 찾는다. 먹는 것과 예쁜 여자, 몸의 안락과 폐쇄적인 것을 경계하라는 4계는 늘 오늘날 우리들의 생활을 쫓아다니며 유혹하는 것들이다. 먹는 것으로부터 탐하는 마음이 생기고 여자로부터 진심이 생긴다. 몸의 안락과 폐쇄적인 생활에서 치심이 생기니 이것은 삶의 진정성으로 들어가는 입문의 과정이기도 했을 것이다. 다음으로 건너가 보자.


과부의 노래. 유몽인


칠십 먹은 늙은 과부

규방을 지키며 단아하게 사는데

사람들이 개가를 권하며

무궁화처럼 멋진 남자를 소개했네

여사(女史)의 시를 제법 외웠고

어진 여인들의 가르침을 배운 몸이

백발에 젊은 티를 낸다면

분가루가 부끄럽지 않겠소           p62-3


오랜 시절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수절하며 스스로의 공부를 세워가는 때에 자신의 재주 있음을 세상에 드러내라는 사람들의 권유에 빠지지 않고 나이가 늙도록 평생 가꾸어 온 자신의 청정함을 지키느니만 못하다는 말씀이라. (인조반정을 맞아 광해군에 대한 충심을 바꾸지 않았던 그의 세간의 이야기와는 별도로..) 물론 나야 세상에 나아가 이름을 떨칠 만한 그릇도 못되거니와 세상의 변방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책이나 읽으며 사는 일에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또한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내 주변의 작은 일들에도 나를 세우지 않고 그저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해가면서 일에 대상에 들러붙는 마음이 있다면 빨리 거두어서 나 스스로 떳떳해지고 세간의 욕을 먹는 일이 없다면 그것이 세상의 주인된 삶이 아닐까? ‘젊은 티’를 낼 필요가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삶에 만족할 때을 ‘분가루’가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세상의 욕심으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은 일종의 바보들이었는데 그런 그들도 삶의 진정성에 대한 욕심만큼은 누구 못지 않았다.


讀書有感. 이하곤(1677-1724) 호는 澹軒


가난한 집에 가진 거라곤 책 다섯 수레뿐

그것을 제외하면 남길 물건이 전혀 없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서책을 못 떠나니

전생에는 틀림없이 좀벌레였나 보다


서치였던 그가 모은 만권의 장서는 모두 양질의 책으로 유명했다. “눈썹 하나 머리털 하나까지 닮지 않은 것이 없어야 인물을 제대로 그렸다고 할 수 있다.”는 사실적 화론을 펼친 회화이론가이기도 했던 그는 책 거간꾼만 보면 옷을 벗어서라도 책을 구입할 정도로 애서가였다. 그렇게 모은 책이 만 권을 넘어 만권루라고 불리웠다. 그는 부친이 좌의정과 이조판서를 지내 벼슬길이 보장되었지만 충북 진천의 초평에 있는 별서에 완위각이란 서재를 짓고 평생을 책을 읽었다. 이곳에 윤유, 윤순, 최창대, 심육, 김창흡 등의 학자와 예술가가 방문하여 책을 읽고 시문을 나누었다. 특히 이곳에는 중국책이 많아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교류하는 정보의 장이었다.


책을 뒤적이다. 이하곤


우리 집에는 무엇이 있나

서가에는 만 권 서책이 있네

맹물마시며 경서를 읊조리노니

이 맛을 정말 어디에 견줄까


맹물로 밥때를 넘겨야 했던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경서를 읊조리고 있는 마음의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이 글을 보며 때로는 서글픈 생각이 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정보와 가객 계섬과의 인연 또한 눈 앞을 떠나지 않는다.


한섬은 전주의 기생인데 황교 이판서가 그를 집으로 데려다가 가무를 가르쳐 온 나라에 명성이 자자했다. 한섬이 나이가 들어 제집으로 돌아간 지 한 해 남짓 지나 판서가 세상을 떴다. 한섬이 즉시 말을 달려 판서의 묘에 이르러 한 번 곡을 하고 술 한 잔을 따르고 술 한 잔 마시고 노래 한 곡을 불렀다. 다시 두 번째 곡을 하고 두 번째 잔을 따르고 두 번째 잔을 마시고 두 번째 노래를 불렀다. 이렇듯이 돌려서 하기를 하루 온종일 한 뒤 자리를 떴다.              (추채기이)


윗글에서 한섬이란 이름으로 나온 기생이 계섬이며 이판서는 이정보다. 이정보는 계섬을 직접 지도하며 유달리 사랑했다. 그러나 오로지 그 음악만을 사랑했을 뿐 사사로운 감정을 섞지 않았다고 하니 인품도 훌륭했다. 그만의 방식으로 절절하고 깊은 마음을 담아 스승을 보내는 계섬의 추모방식이 눈에 띈다. 이처럼 스승과 제자 사이의 깊은 인간적인 유대감은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저자는 선비다운 삶의 외연을 넓혔다. 기생의 삶에서 이젠 천민으로 달려가 보자.


누운 채 청산을 사랑하느라

날마다 늦어서야 일어나노니

뜬구름도 흐르는 물도

시 안으로 다 들어오네

우스워라!

이 내 몸은 선골(仙骨)이 아니런가

뱃속 가득한 연하(煙霞)로는

배고픔을 못 고치네       홍세태(1653-1725)


조선 숙종 때의 천민 출신의 여항시인이다. 조선 후기에는 중인 이하의 평민과 천민들이 모여 시회를 여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이러한 부류의 문인을 여항문인이라 했다. 이 때부터 비로소 조선의 문학이 다양한 계층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벼슬로 나아갈 길이 애초에 막혔기 때문에 오로지 진실한 마음과 작품으로 자족하는 삶을 누리는 것만이 앞에 놓여진 길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는 여한이 남아 시 안으로 스며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던가 보다. “배고픔을 못 고치네” 마음이 아프다.


한바탕 풍류는 해외까지 퍼졌지만

십년토록 이덕무와 대문을 마주했네

강산이 냉정하다 다들 말하는 것은

밤새 나눈 정담 장면 보지 못한 탓이지      -박제가-


역시 조선 후기의 벗들의 부러운 만남인 그들을 잊을 수 없다.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강세황, 홍대용, 황윤석 등의 만남. 비록 서얼 출신으로 자신의 재능을 나라에서 쓰지는 못하였지만 그들 간의 만남만으로도 조선시대의 밤하늘을 아름답고 그 무엇보다 빛나게 수놓았던 별들의 만남이었을 것이다. 박제가가 이서구에게 보내는 회인시는 중국에까지 이름을 떨친 강산 이서구가 냉정한 사람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들의 빛나는 우정을 생각건대 정말 “그대와 하룻밤 만나 나눈 이야기가 십년 동안 읽었던 책보다 낫네”하는 말을 생각게 한다.


우정이 나왔으니 우정에 관한 연암 선생의 글을 하나 더 보자.


공교롭고도 오묘하지요. 이다지도 인연이 딱 들어맞다니! 누가 그런 기회를 만들었을까요? 그대가 나보다 먼저 태어나지 않고, 내가 그대보다 늦게 태어나지 않아 한 세상을 살게 되었지요. 또 그대가 얼굴에 칼자국 내는 흉노족이 아니요, 내가 이마에 문신하는 남만 사람이 아니라 한나라에 같이 태어났지요. 그대가 남쪽에 살지 않고 내가 북쪽에 살지 않아 한마을에 같이 살고, 그대가 무인이 아니고 내가 농사꾼이 아니라 함께 선비가 되었지요. 이야말로 크나큰 인연이요 크나큰 만남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상대의 비위를 맞추는 말을 구차하게 해야 하거나, 억지로 상대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해야 한다면, 차라리 천 년 전 옛사람을 친구로 삼든가 일백 세대 뒤에 태어날 사람과 마음이 통하기를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벗과의 우연적인 만남을 이야기한다. 참다운 벗은 무엇인지 나에게 생각하게 한다. 상대의 비위를 맞추는 말이 아니요, 억지로 행동을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읽은 책을 나누고 지식을 나누고 취미를 나누는 친구들은 평범한 친구들이다. 같이 테니스를 치고 같이 축구를 하고 같이 등산을 하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아가 그 행위 속에 삶의 중요한 가치를 나누고 진리를 구하는 마음을 나누어야 비로소 벗인 것이다. 그것이 빠진 바에야 차라리 천 년 전의 성인의 말씀을 읽는 것만 못하고 일백 세대 뒤의 성인의 마음과 교우하는 것만 못하다는 말씀으로 들린다. 천 년의 시간을 넘는 지혜의 말씀, 아니 억천만년의 시공간을 넘은 영원한 진리로 이끄는 만남과 정신의 교우가 없다면 그것은 칼자국과 문신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책읽는 자세에 대한 퇴계 선생의 교훈으로 넘어가보자.


제가 쓴 <도산기>와 <도산잡영>이 그대의 책상 위에까지 올라갔다고 하니 너무도 땀이 나고 송구스럽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본래 지어서는 안 되지요. 산에 사는 사람에게 아무 일이 없다 보니 그저 필묵으로 장난을 치며 즐긴 것뿐입니다. 글상자에 감춰두고 아이들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뜻을 같이 하는 벗 여럿이 멀리서 나를 찾아와 사흘 밤을 자고 갈 때 선물할 것이 없어 경계를 깨뜨리고 꺼내 보여주었습니다. 벗들이 가져가겠다고 조르기에 막지 못하고 퍼뜨리지나 말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지요. 그런데 벗들이 내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남에게 보여주었나 봅니다. 아니면 그 글을 베낄 때 아이들이 베껴서 내보냈는지도 모릅니다. 남이 모르게 하려면 차라리 짓지 않는 게 낫다고 합니다. 이미 짓고서 다시 비밀에 부치는 짓은 옛사람이 비웃은 바인데 제가 이러한 경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퇴계 선생이 1563년 이중구에게 답한 편지 중에 있는 글을 200년 뒤 다산 선생이 충청도 청양의 금정찰방으로 좌천된 후 날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퇴계의 편지를 읽고 독후감을 쓸 때 모아둔 것이다. 이 글에 대한 독후감도 읽어보자.


나는 평소에 큰 병통이 있다. 무릇 생각한 것이 있으면 바로 글로 지어내고, 지은 것이 있으면 남에게 보이지 않고는 못 배기는 버릇이다. 생각이 떠오르는 즉시 붓을 잡고 종이를 펴서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써내려가고, 글을 짓고 나서는 스스로 사랑하고 스스로 좋아한다. 문자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을 만나면 내 주장이 흠이 없는지 편벽된지 아니면 만난 사람이 가까운지 먼지를 미처 헤아리지 않고 급히 보여주려고 건넨다. 그러므로 남에게 한바탕 말하고 나면 뱃가죽 안과 상자 속에는 한 가지 물건도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그로 인하여 정신과 기혈이 흩어지고 새어나가서 쌓이고 익어가는 맛이 전혀 없는 듯하다. 그리하고서야 어찌 성령을 함양하고 몸과 명예를 보전할 수 있겠는가.

요즈음 와서 점검해 보니, 모두가 경천(經淺) 두 글자가 빌미가 된 결과다. 이것은 덕을 숨기고 수양하는 공부에 크게 해로운 데 그치지 않는다. 비록 주장이 현란하고 글솜씨가 화려하다고 해도 차차로 천박하고 값싸져서 남에게 존중을 받지 못하게 된다. 지금 선생의 말씀을 읽고 보니 느끼는 바가 크다. 


다시 200여년이 넘은 오늘날 이 글을 읽는 내게도 깊은 감동을 주는 글이다. 200년의 세월을 넘은 그들의 교우가 지금의 나의 마음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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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02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추려 소개하신 옛 선비들의 글이 향기롭습니다.

달팽이 2007-03-02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의 댓글에 마음이 향기로워지는군요.

짱꿀라 2007-03-02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책 저도 지금 갈등을 하고 있는 책인데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달팽이님의 서평을 읽어보면 괜찮은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도 판단이 안서네요.

달팽이 2007-03-02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덤으로 한 권 더 주잖아요. 그 책도 괜찮고요.
하긴 역사에 대해서는 폭넓고 깊이 아시는지라...
제가 뭐라고 말씀드리긴...

파란여우 2007-03-02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이러는 게 아닙니다. 마음잡고 환경공부좀 해볼려고 벼르는 사람에게
자꾸 이런 식으로 고전의 향기를 들이대면!
들이대면....아이, 고전은 내년에 계획하고 있단 말에요.
소동파의 아내 사랑을 기억하고 있기에 또 보관함으로
그러니까 순전히 동파 할배랑 달팽이님때문이얌...
추천은 안했어요. 살 때 땡스투 하려고(착한 파란여우^^)

달팽이 2007-03-02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비내릴 것 같은 늦은 밤에 모두가 잠들어 고요한데
잠은 오지않고 펼쳐든 책에 마음을 빼앗겼어요.
그 흥을 시간이 늦어 다 옮기지 못했으나
행간의 의미 너머를 읽어내어 그 흥을 살려내시는
여우님 때문에 은근히 그대의 댓글이 기다려지기도 한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