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대니얼 길버트 지음, 서은국 외 옮김 / 김영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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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래밭에서 보석을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더 어려운 것은 모래밭 속에서 특별한 모래 하나를 찾아내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바로 이해하는 것일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꿈꾼다. 미래의 어느 시점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행복하기를 꿈꾼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의 많은 부분을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투자한다. 그리고 마음쓴다. 하지만 부모의 속을 가장 썩이는 것은 바로 그 자식이듯이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를 가차없이 배신해버린다. 우리의 자아는 분열한다. 왜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와 다른 삶의 기준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세상엔 신기한 일이 참 많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태국의 앙코르와트, 만리장성, 우리 나라의 석굴암 등 과학기술수준이 그 정점에 와 있는 지금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 제작기술이 이해되지 않는 여러 가지 일들...하지만 더욱 신비로운 것이 있다면 바로 우리 두 귀 사이에 놓인 3.5파운드 나가는 작은 물건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세상을 인식하고 감각을 느끼고 배고픔을 느끼는 것을 알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경이로워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고 먼 미래를 상상하고 행복을 꿈꾸고 온갖 세상의 변화를 수용하고 또 거기에 몸이 적응하기 전에 우선 마음을 맞추어가는 미해명신비상자를 누구나가 가지고 있고 그것도 자신의 일부로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4년 7월, 이탈리아 몬자 시의회에서는 '둥그런' 금붕어 어항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이례적인 조항을 발표하였다. 금붕어는 직사각형 모양의 어항에서 길러야지 둥근 어항에서 기르면 안 된다는 것이 의원들의 논리였다. 그 이유는 "둥근 어항에서는 시야가 왜곡되기 때문에 물고기들이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은 금붕어에게 맛없는 먹이를 준다거나 시끄러운 펌프 소리를 듣게 한다거나 시시한 플라스틱 성을 어항에 장식으로 넣어주는 것 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그들의 핵심은 둥근 어항은 그 속에 사는 금붕어들의 시각 경험을 변형시켜 금붕어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권리를 빼앗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인간의 처지도 다를 바 없다. 인간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기억에 자신의 처지에 자신의 왜곡된 생각에 의해 세상을 받아들이지 않던가? 그 모든 것을 물질적으로 과학적으로 해명해주는 공간이 앞서 얘기한 두 귀 사이의 조그만 뭉텅이인 것이다. 그러면 왜 이 녀석이 만물의 영장류인 인간을 한낱 금붕어의 위치로 전락시키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두 이마가 붙어서 난 로리 셰플과 레바 셰플은 태어날 때부터 매순간을 서로 붙은 채로 마주보며 살아왔다. 그들은 혈액과 두개골과 뇌의 일부조직을 나누고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이 느끼는 어떤 감정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아채며 한 사람의 몸의 이상기운을 서로가 공유한다. 이 두 사람을 두고 세상 사람들은 빨리 분리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분리되지 않고서는 평범한 가정의 아내로서 아이를 낳고 싶다는 로리 셰플의 꿈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한다. 나아가 이 둘은 각자의 삶을 누려보지 못했기 때문에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 둘은 둘을 분리시키는 수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요. 온 세상의 돈을 다 준다고 해도 싫어요! 그런 수술을 우리 모두의 인생을 망쳐 놓을 거예요."

  아마 우리들의 상당수는 그들이 분리수술을 해야 진정한 개체로서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할런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는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오류를 갖고 있다. 우선 행복은 서로 비교 가능하다고 하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고. 그들의 행복수준은 우리들의 행복 수준보다 낮다고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행복은 주관적인 것이고 행복을 느끼게 하는 그 사람만의 독특한 경험과 마음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마치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말미잘의 행복과 느티나무의 행복을 서로 단순비교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는 사실이다.

  나아가 우리의 기억행위는  두가지의 오류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실제로 저장되지 않았던 부분을 스스로 채워넣거나 빠뜨리고 있다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이렇게 채우고 빠뜨리는 과정을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과거 기억은 항상 완전하지 못하고 왜곡되게 되는데 이것은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나가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뇌는 한번도 과거에 있었던 그 사건을 있는 그대로 저장하지 못하고 그 사건을 바라보는 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갈무리해내고 다음 시점에 그것을 기억할 때에는 당시의 감정과 지식과 환경을 다시 재조합해서 새로운 기억을 창조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뇌를 사기꾼 마법사라고 부른다.

  이러한 '현재주의'(과거를 기억할 때 그것은 현재적 요소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것)는 미래를 상상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작용하는데 우리는 배부를 때와 배고플 때의 마트 쇼핑을 생각해볼 수 있다. 배부를 때에는 쇼핑카트에 꼭 필요한 것 몇가지만 담아서 오게 되는 데 반해 배고플 때의 쇼핑은 의도하지 않았던 많은 음식들을 사게 되어서 냉장고 구석에 쳐박혀 썩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내가 왜 그랬을까'하고 생각하며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을 때가 있다.

  이렇게 우리의 기억과 상상이 불완전한 것은 경험 그 자체가 가지는 모호함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공백을 무의식 중에 뇌의 활동이 채우기도 하고 우리의 미세한 마음이 채우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호함은 우리가 이름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우리가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의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 달라지는 마음의 상이요 이미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똑같은 사건을 대하고 그 사건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것이 마치 모든 사람들에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인양 받아들이게 된다. "너 오늘 그 여자 이유도 없이 화를 많이 내는 것 봤지, 아마 오늘이 그 날인 모양이야!"라고 이야기하는 두 당사자에게는 그녀의 이유없는 투정이 주어진 사실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그들의 마음 속에 투영된 상일 뿐이고 그 사실 여부는 물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실 그녀는 몇일째 자신을 괴롭히는 변비때문에 고통스러울런지도 모른다.)그러니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하는 것이 때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한 사건을 놓고 백이면 백, 천이면 천의 사람들이 모두 달리 해석하고 그래서 백의 천의 사실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친철하게도 이러한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나와의 불일치를 해결하고 우리가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을 마지막장에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현재 내가 미래의 나의 삶을 살고 있는 다른 사람의 경험을 받아들이면 된다는 아주 간단한 답에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간단하고도 손쉬운 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그것은 다음의 세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첫째는 우리가 스스로를 아는 방법이 특별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매순간 우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내적인 생각과 감정을 직접 보지만 타인에게서는 오직 그들이 겉으로 하는 말과 행동만 볼 뿐이며, 이것도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을 때만 관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 자신을 아는 방식이 타인을 아는 방식과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을 타인과 다르다고 판단한다. 둘째는 우리는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보려는 동기를 지닌다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과 같은 존재이고 싶어하지 않고 독특한 개성을 지닌 고유한 존재로 느끼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우리는 꼭 우리 자신이 아니더라도 사람들 개개인의 독특성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개인이 지니는 다양성과 독특성에 대한 강한 믿음이 우리가 타인을 우리 경험의 대리인으로 사용하기를 거부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눈과 뇌는 서로 합작하여 우리들의 인식을 방해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있는 그대로의 가슴의 느낌으로 우리들이 가진 생각과 자아를 털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이러한 불일치를 극복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행복은 상대적으로 불행을 만들어낸다. 사람의 몸을 가지고 살면서 행,불행을 겪지 않을 수 없지만 인류의 스승들은 그런 행, 불행을 만들지 말라고 하나같이 충고했다. 세상은 선, 악도 없고 시비도 없다고 했다. 그저 하루 하루 지금 이 순간은 최고의 시간이요 모두 행복이라는 사실을 알기 까지는 우리 두 귀 사이에 놓인 신비상자와 그것을 푸는 마음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 마음의 공간을 탐험하고서야 우리는 우리를 속이는 눈과 뇌의 음모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그제서야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의 한 걸음을 내딛게 된다.

 

P.S : 대니얼 길버트의 글쓰기가 부럽다. 어찌 이렇게 재미있게 그리고 적절한 사례와 이야기 구성을 전개할 수 있을까?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수작을 놓치지 않고 한번 읽어보았으면 한다. 비록 내 능력으로 따라가지 못해도 읽는 것으로도 충분히 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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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1-17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의 글을 읽고 나니 이 책을 꼭 읽고 싶네요.

비로그인 2007-01-17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뇌의 직관적 통찰력과 논리적 분석능력은 서로 상보적입니다.
정확한 기억과 합리적 사고를 제약하는 본능적 차원의 심리적 장애물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지요.
과학을 공부하다보면 그런 심리적 장애물의 속성을 이해하게 되고
체득화된 과학적이며 합리적 사고의 습관이 실제와 인식의 불일치를
어느 한도까지는 보정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파란여우 2007-01-17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의 '마음탐험'은 도저히 쫓아갈 수 없어요.
근데 어항 속에서 달팽이가 살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여우는 밤이 좋을까요? 낮이 좋을까요?
한가한 선비님은 왜 글을 더 많이 쓰지 않으시는 걸까요?
-가끔은 씰데없는 궁금증때문에 털이 가려운 파란여우-

쳇, 리뷰 너무 잘 썼잖아요

달팽이 2007-01-17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부산모임으로 수고가 많으십니다.
제가 형님 대접을 잘 못하고 있는 것 같군요..ㅎㅎ
한사님,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과학과 합리적 사고가 해야 할 몫이 존재한다는 말씀...
여우님, 요즘 한 편씩 읽는 도덕경 맛을 음미하는 중이에요...
물론 잘 하진 못하지만,,,
그러는 여우님이야말로 리뷰를 많이 쓰시지는 않잖아요..
한가함이라고 하면 한 한가 하시는 여우님이...ㅎㅎ

2007-01-18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7-01-18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아쉽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님과 이누아님의 리뷰를 보고 어렵게 구한 책입니다.
서암스님과 같이 이 땅에 살다간 많은 그리고 겸손하기가 부처님과 다를 바 없는 선지식들이 있어 우리 어둔이의 밤길에 등불이 되어주어서...
너무 고맙습니다.
더불어 님께도...
늘 고맙습니다. _()_

yeshot21 2009-09-14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러 번 이 책을 읽었지만 서평을 참 잘 쓰셨네요. 내가 읽은 책이 그렇게 좋은 책이었던가, 천리마를 알아보는 백락이라는 사람이 생각나는군요. 님의 서평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읽히고 싶네요.

달팽이 2009-09-14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여러번 읽으셨군요. 할 말이 많을 터인데 짧은 글 속에 마음을 담아내었군요. 좋게 보아주어서 고맙습니다. 그저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옮겨놓은 것입니다. 부끄러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