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 들면 운동 열심히 해도 살 안빠진단 말을 절감하면서 운동하는 요즘이다. 살 빼는 건 그냥 포기 했고. 술담배커피로 망가지는 건강을 조금이라도 챙기자는 의미에서 운동하는데, 살도 안빠지는데 운동하는 낙은 TV를 보는 것이다. 스펀지밥도 보고, 발리우드의 유치뽕짝 영화도 보고, 하지만 대부분은 BBC 뉴스를 본다. BBC 월드 뉴스를 보면서 가장 절감하는 것은 세계의 이슈가 되는 뉴스들을 우리 나라에선 크게 보도가 되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한국 뉴스를 보지도 않고, 관심도 없으니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포털 사이트의 화두가 되는 소식들은 별 쓸데없는 것들이라는 거.  

아마 월드 뉴스의 성격상 또 특별한 것이긴 하겠지만, 이걸 하루에 30분씩 보다 보면 참 내가 작은 나라에서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세계에는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데, 한국에 돌아가면 눈 감고 귀 닫고 또 아등바등 거리면서 먹고 살 일에만 전념하겠지. 생각하니까 참 답답해지는거다. 호주 홍수난 거랑 스리랑카 홍수난 거 비교도 못해볼 테고, "I am so proud of being Egyption guy now." 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시위대의 인터뷰도 못볼테고, 아마존이 얼마나 망가져가고 있는지도 상상도 못해볼 것이다. 뉴스를 보면 볼 수록,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아지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아지는데 나의 미래는 결국 '그보다 더 미래'를 위해 한정되겠지 생각하면 참 무섭다. 난 이제 그런 나이인가 싶고.  

** 

 

 

 

 

 

[블랙 스완]을 봤다. 이 곳에서 영화관 몇 번 가보진 않았지만, 평일에 줄 서서 표 사 본적은 처음이었다. 감독의 전작인 [레퀴엠]을 본 적이 있었는데 [레퀴엠]은 뭐랄까 외향적인 영화였다고 해야 하나. 영화의 주인공들이 얼마나 힘들고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지 보여주기 위하여 영화를 찍은게 보였다. 관객을 위한 영화. 레퀴엠이 죽은 당사자를 위한 음악이 아니라 장례식에 모인 사람을 위한 음악인 것처럼 철저하게 영화 밖의 관객들을 위한 영화였다. 

그에 비해 [블랙 스완]은 관객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 철저하게 니나(나탈리 포트만)를 위한 영화였고,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자신을 잊고 그녀의 인생에 몰입하게 되어 버린다. [레퀴엠]과는 그런 점에서 반대지점에 있다. 관객은 니나를 동정조차 할 수 없다. 그녀는 그녀 자체일 뿐. 우리가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수 없다. 하찮은 관객일 뿐이니까. 영화를 본 지 꽤 됐고, 영화가 너무 좋아서 다시 봤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대해 아무 것도 말 할 수가 없다.  

그나저나 난 아무 정보도 없이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내가 영화를 보다가 가장 충격 받았던 부분을 네이버 영화 정보에 버젓이 첫줄로 써둔 것을 보고 정말 더 놀랐다. 정보의 폭력성을 절감. 이 영화 보려면 줄거리 아주 조금이라도 안 읽고 가는 걸 추천함.

***
운동 열심히 하고 마칠 때 쯤에 엔딩 무렵의 나탈리 포트만처럼 신음소리를 낼 때가 있는데, 몸과 마음의 긴장감이 모두 풀어지는 기분을 새삼 공감하며 느끼는 중. 

****
한량처럼 매일 같이 술먹고 노는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원서를 다시 좀 읽어 보려고 여러가지 E북이 들어있는 앱을 다운받았다. 그런데 조그만 걸로 보려니 읽히지도 않고 문장에 대한 감도 안와서, 공부할 겸 죽죽 쓰고 있다. 회사 후배가 보내준 나무연필을 깎아서 휘모리님이 주신 노트에 열심히 쓰며 읽고 있는 책은 쥘 베른의 [The mysterious Island]. 이왕이면 영미권 작가의 작품을 읽고 싶었는데, 고르다 보니 또 프랑스 작가다. 마르케스 외에 완독한 영어책은 쥐스킨트의 [향수]였었는데. 영미권 작가랑은 어째 인연이 안닿는 것인지.

노트북 붙잡고 있으면 한시간이고 열시간이고 시간이 잘도 가는데, 펜 잡으면 잠이 솔솔 와서 요즘 참 일찍 잔다. 

*****
이미지 관리 하는건지 평소 생활이랑은 확연히 다른 건전해 보이는 근황 페이퍼 탄생. 실제로는 좀 미쳤고, 타락했고, 나태하며, 정신줄 놓은, 그렇지만 음란하지는 못해서 좀 그랬으면... 하는 삶을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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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1-02-09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만년만에 보그를 봤는데, 나탈리 포트만 인터뷰. 나 요즘 나탈리 포트만 좀 많이 애정하고 있음.
간만에 영화관 나들이나 해봐야겠다. ^^ 몰랐는데, 나탈리 포트만이 어릴적부터 발레를 무지 열심히 하고, 이 영화 찍을 즈음에는 하루에 여덟시간씩 했다고 하는데? ㅎㄷㄷ

근데, 난 '블랙스완'이라고 하니, 나심 탈레브밖에 생각 안나서 ㅡㅜ 한 때는 국내 발레공연 다 쫓아다니는 발레매니아였는데 우찌

Forgettable. 2011-02-09 17:12   좋아요 0 | URL
아우 정말 짱이에요. 나탈리 포트만 정말 최고.. 이 영화에서 막 토하고 그러는 장면 나오거든요. 친구가 그러는데 어떤 네티즌들은 발레리나에 대한 편견 생기게 한다고 욕했다던데, 전 정말 그랬을 것 같아요. 발레리나 전체가 다 그러진 않겠지만 나탈리 포트만은 정말 영화 찍을 때 거식증 걸렸을 것 같다능.. 그만큼 혼연일체. 오죽하면 발레선생이랑 연애하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발레매니아셨다면 정말 이 영화 반하지 않을까 싶네요. 아 진짜 최고 ㅠㅠ 소름 좍좍 돋아요.

나탈리 포트만 애정하신다니.. 이 동영상 소개를 해드려야겠군요.
아우 난 이거 볼 때마다 넘 웃겨서 ㅋㅋㅋㅋ
http://www.youtube.com/watch?v=9eX45Ce_MW8

여기서 브랜든 프레이저도 넘 웃기고ㅋㅋㅋㅋ

하이드 2011-02-09 17:16   좋아요 0 | URL
동영상 안 봐도 뭔지 알 것 같애. SNL에 나온거 아님? 방송본이랑 uncensored랑 다 있는데, 후자일껄로 짐작 ㅋㅋ

Forgettable. 2011-02-09 17:20   좋아요 0 | URL
아 이미 아시는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건 잘 모르겠고 전 친구가 보여줘서 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린 college humor 라는 싸이트 애용하거든요. ㅋㅋㅋㅋㅋ 골든 글로브 상 받을 때 웃는거 편집한거 ㅋㅋㅋ

또 보면서 웃고 있다능 ㅋㅋㅋㅋㅋ

하이드 2011-02-09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사실 내가 얘기한건 이거였지 http://www.youtube.com/watch?v=KpMPFGBtE7Q ^^;
골든 글로브 상 받는것 웃기네 ㅎㅎ

Forgettable. 2011-02-11 10:3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놔 ㅋㅋ 짱이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완소완소 ㅋㅋㅋ

순오기 2011-02-09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님, 소식 반가워요~~~~ 음란하지는 않지만 잘 살고 있군요.^^
블랙 스완 보고 싶네요~

Forgettable. 2011-02-11 10:33   좋아요 0 | URL
아 정말 괜찮아요. 짱이에요. 소름 좍좍 돋았어요 진짜 ㅠㅠㅠㅠ
우울한 날들도 있지만 나름 잘 날려버리고 잘 지내고 있어요. 오죽하면 한국 가기 싫을 정도? ㅋㅋ

Mephistopheles 2011-02-10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탈리 포트만...전 자꾸 학벌 좋은데 아주아주 발연기로 영화나 드라마를 제대로 말아드시는 국내 모 배우와 자꾸 비교되버린다죠.(H대와 S대 비교하는 것도 사실 우습긴 하지만서도)

Forgettable. 2011-02-11 10:36   좋아요 0 | URL
아하......... 그러게요. 그녀가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는 거의 안봐서 잘 모르지만 그래도 요즘은 연기 좀 늘었다는 소문도? 하하하 나탈리 포트만이랑 비교될 순 없겠지만요. 암튼 메피님도 블랙스완 꼭 보세요!

Kitty 2011-02-10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랙스완 아직 한국에서 개봉 안했죠? 저도 나탈리 포트만 늠 좋아요 ㅋㅋ
애쉬튼 커처랑 찍은 로코도 개봉하던데 것도 봐야겠다능!

Forgettable. 2011-02-11 10:39   좋아요 0 | URL
왜케 한국은 개봉 늦게 하는지. 여긴 진작에 개봉하고 이제 다 내린 것 같은데요.
근데 사람들이 줄서서 볼 정도인데 큰 영화관에는 거의 개봉 안하고 작은 영화관에서만 했어요. 이상하더라고요. 애쉬튼 커처와 찍은 로코라니! 아 찾아봐야겠어요 ㅋㅋㅋ

Mephistopheles 2011-02-11 22:47   좋아요 0 | URL
그게...흔히 장사가 되는 영화들만 개봉관들을 독점하기 때문에 그런거라지요.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대중적이지 않다면....국내 거대 멀티 플렉스에 걸릴 일은 아마 없을 꺼에요.

Forgettable. 2011-02-13 10:34   좋아요 0 | URL
외국에서 보는 한국은 너무 과열되어 있고 이 과열되어 보이는 것도 자본에 놀아나고 있는 것 처럼 보여서 씁쓸해요. 영화도 그렇지만 발렌타인 데이 같은 것도 ㅎㅎㅎ 전 발렌타인데이인줄도 모르고 있었네요. 한국이었다면 벌써부터 상점에서 마구 팔아대서 진작에 알았을텐데.

블랙스완은 나름 화제가 된 영화니 많은 곳에서 상영하지 않을까 싶어요.

라로 2011-02-10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시는 군요!!
블랙 스완은 저도 기필코 보려고 기대하고 있어요~~~.
그러고보면 고민만 할게 아니라 행봉으로 옮겨야 하는데 왜 그게 안되는지,,,그저 좌절스러운 나날들이에요, 전.^^;;

Forgettable. 2011-02-11 10:42   좋아요 0 | URL
아 미래에 대한 고민이요?? 하긴 나비님 나이가 되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 같긴 해요.
그렇다면 지금은 그냥 좀 하고 싶은거 하면서 미래 걱정은 나중으로 미뤄도 될까요?? ㅋㅋㅋ
좋은 직장도 갖고 계시고 남편분도 사랑스럽고 믿음직스럽고, 아이들도 예쁜데 좌절스러운 나날들이라니. 흑 ㅠ
전 그나마 요즘 공부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있어요. 역시 고민보단 작은거부터라도 실천을!!! (이래놓고 손 놓은지 또 며칠 됐다죠. 오늘 운동도 째고 ㅋㅋ)

2011-02-10 1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1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1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1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1 1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3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따뜻한 사랑 이야기가 넘치는 어느 분의 서재에 비해서, 나의 서재는 무미건조하기 이를 데 없다. 사랑이야기를 보는 것이나 쓰는 것이나 기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로맨틱한 영화를 왜 보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부분은 '애초에 사랑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지만, 기분이 좋아서 비난도 감수할 수 있겠다며 솔직해지는 날은 '내 인생의 로맨스만으로도 벅찬데 굳이 남의 연애 이야기를 볼 이유....'까지만 해도 이미 야유로 말을 끝낼 수가 없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솔로가 되면 외국에 나가게 되고, 외국에 나가면 매번 바로 또 연애를 시작하게 되어서 친구들에게 외국에 연애하러 나가냐는 빈정거림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이번만큼은 다르다. 소소한 연애사건들이야 몇 가지 있었지만 불발에 그치고 말았고, 그래서 생애 최장의 솔로 기간들을 보내고 있다. 참..... 심심하다. 

   
 

 따뜻한 물결이 그녀에게 밀려들었다. 그녀는 그의 양쪽 어깨에 손을 얹고, 검고 빛나는 두 눈을 깊이 들여다 보았다. 자신만만한 그 눈 속에 무엇이 있는지, 그녀는 알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하워즈 엔드] p.251

오랜만에 [하워즈엔드]를 다시 펴들었다. 책을 차마 쫙 펴고 보지도 못할 만큼 아껴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만큼은 책 귀퉁이 이곳저곳을 접어두었다. 나의 무의식을 마술처럼 언어로 풀어놓는 포스터의 능력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는 것은 하루이틀이 아니건만 영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그 무엇보다도 헨리에 대한 마거릿의 사랑이 눈에 들어온다. 마거릿 또래의 자녀들이 있는 헨리, 짧지만 강렬하고 다정한 우정을 나누었던 윌콕스 부인의 남편, 세번째의 만남 후에 바로 청혼을 해버리는 남자.(그 당시의 관행으로 볼 때 이는 별로 놀랄 만한 일은 아닌듯 싶지만) 무엇보다도 마거릿이 평생을 걸쳐 쌓아온 교양과 신념의 반대지점의 선두주자인 사람. 하지만 그마저도, 오히려 그 때문에 더욱 더 사랑스럽게 보이는 남자.  

헨리를 보는 마거릿의 시선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한 사람을 생각나게 한다. 그 사람과 함께 걷는 낯선 거리는 두렵지 않았고, 사람을 죽일 듯한 강렬한 햇살 아래서도 설레기만 했었고, 캠핑장에서 옆에서 자던 친구 몰래 하던 키스, 손바닥만한 애벌레를 밟았을 때 경악하며 가까이 가려고조차 하지 않았을 때 서운해하던 모습, 나의 시도 때도 없던 우울함을 무심함으로 받아주던 사람, 길바닥에 함께 누워 바라보던 수많은 별들, 페리를 타고 가서 배보다도 큰 고래를 함께 보며 함께 환호했던 기억, 머리를 잘라주었었고, 입술을 왜 자꾸 쉬지 않고 움직이냐며 놀리곤 했었고, 내게 별명을 10개도 넘게 지어주었었고, 화를 낼 땐 웃는 모습이 제일 예쁘니까 웃어달라고 했었다. 그 사람이 없었어도 그럭저럭 괜찮았을 추억은 그 사람 덕분에 반짝반짝 빛이 난다.

1개월, 1년,, 시간이 지날 수록 좋은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어지고, 관계를 지속하기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과거는 자꾸만 미화되고 미래는 자꾸만 불투명해진다. 그 사람은 결혼을 했고, 내게 하던 다정한 말들을 똑같이 그의 아내에게 한다. 나와 함께 했던 추억들은 그렇게 흘려보내고 새로운 사람과 더 예쁜 추억을 만들겠지. 헨리가 윌콕스 부인을 과거에 묻어두고 마거릿과 새로운 사랑에 빠진 것처럼. 나도 앞으로 그럴테고. 또 그래 왔고. 그렇지만 이젠 새로운 거 하기 싫다. 설레거나 두근거리고, 아프고, 잠설치고, 이런거 말고 그냥 눈만 바라봐도 알 수 있는 오래되고 낙낙한 사랑이 그립다. 똑같은 일상에서도 이번엔 또 어떤 새로운 일주일에 펼쳐질까 매번 기대에 부풀어 있던 날들이 얼마 전인데, 오늘 밤만큼은 나 혼자 과거에 파묻혀 뒤쳐져 갈 길을 잃고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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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left 2011-02-03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가까이만 있었어도 내가 소개팅 시켜줬을텐데!!
심심하면 시애틀 놀러와요~

Forgettable. 2011-02-03 13:57   좋아요 0 | URL
아.. 그냥 밴쿠버에 있을걸 하고 이만큼 후회됐던 적이 없네요. ㅋㅋㅋㅋ
밴쿠버랑 시애틀은 진짜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깝다던데요........

다들 명절 보내느라 바빠서 타지생활하는 우리만 있군요. ㅎㅎ

pb 2011-02-06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의 시도 때도 없던 우울함을 무심함으로 받아주던 사람←아...이거 정말.
그나저나 외국에 연애하러 갈 정도냐는 비아냥을 받을 정도로
능력자이셨군요!!! 대박임

Forgettable. 2011-02-08 14:50   좋아요 0 | URL
피비님도 공감????? 아우 전 이제 누가 나랑 연애해주나 싶네요. ㅋㅋㅋ
외국 나와도 소득이 없어서 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웃는게 웃는게 아님 ㅠㅠㅠㅠㅠㅠ)

능력자고 뭐고 다 옛날 일이지요..(먼산)
 

 

영하 27도에 눈이 내리고 있다. 아직 최저 기온이라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가진 않았지만, 체감 온도는 영하 36도라니 그거나 그거나 뭐 다르겠나 싶다. 아침에 담배를 피우는데 숨이 탁 막혔다. 공기가 얼어 붙어서 공기 중에 공기가 반은 사라진 것만 같았다. 운동을 하고 나서 점심을 먹으러 걸어서 15분 거리의 차이나타운으로 향했다. 바지도 두겹이나 입고 모자도 두개나 쓰고 목도리까지 칭칭 감고 무장을 하고 나섰다. 맨날 가는 길인데도 눈 때문에 길을 잃어 40분이 걸렸다. 다리가 찢어질 것만 같았다. 친구와 도대체 왜 우린 이런 날 나왔을까, 왜 진작 택시를 타지 않았을까, 후회하며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혈관에 살얼음이라도 언 것처럼 다리는 녹지 않았다. 울고 싶었다. 

친구와 나는 집에서 고기를 거의 먹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추위에 떨고 나선 프로틴이 필요하다며 마구 고기요리를 시켰다. 따뜻하게 먹고는 근처의 중국인 마트를 들러서 장을 봤다. 난 배낭을 멨다고 자만하며 감자와 토마토와 오렌지와 올리브오일과 허니갈릭 소스와 보리쌀을 양껏 샀다. 그 결과 배낭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거웠다. 나는 영상 30도에서 이런 배낭을 메고 돌아다니는 것보단 영하 30도가 낫다며 합리화했다. 그리곤 그 일화를 떠올렸다. 어느 추운 겨울 날 두 남자가 길을 걷다가 길에 쓰러진 남자를 보았다. 한 남자는 춥다며 그 사람을 무시하곤 제 갈길을 가버렸고, 나머지 남자는 아직도 숨이 붙어 있는 그 사람을 업고 천천히 길을 갔다. 힘도 들고, 서로의 체온 때문에 몸이 덮혀져 목적지까지 추운줄도 모르고 왔다. 하지만 먼저 간 그 사람은 길목에 홀로 얼어죽어 있었다. 난 다정했던 그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를 그렇게 업고 있는 것만 같았다. 친구에게 이 얘길 했더니 친구는 자기를 좀 업어달라고 했다. 

어깨는 부러질 것 같았고 친구는 안쓰러울 정도로 추워했다. 난 그 정도로 춥진 않았다. 배낭을 업고 있었으니까. 택시를 타고 싶었지만 택시는 보이지도 않았고, 버스는 지척에서 놓쳤다. 오는 길에 엄마가 보고 싶었다. 정신적 지주이자 제공할 수 있었던 모든 안식을 제공해 주었던 전 룸메도 생각났다. 내가 힘들 때마다 별일 없냐고 물어주고, 함께 술 마셔 주고, 라면을 먹다가 울음을 터뜨리던 내 옆에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어주고, 그 사람이 없었으면 당연이 감당해야 했을 고생들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도록 해 주었었다. 생각은 끝없이 물고 이어져 결국에는 눈물이 조금 날 정도로 그 사람에게 고마워져 버렸다. 나와 산지 2달도 안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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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1-01-17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명 태그가 아니였다면 아니 이 분이 알라스카나 시베리아로 가셨나.....싶었을 정도네요. 근데...한국도 제법 추워요. 날씨 뿐만이 아니라 사람 마음까지...

Forgettable. 2011-01-18 16:41   좋아요 0 | URL
근데 시베리아 다음으로 추운 곳이 여기래요.. 전 어쩌다가 이런데로 와서 정착하게 되었는지;;
한국 춥다는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사람 마음까지 춥다니 괜시리 씁쓸하네요. 제 마음도 못지않게 추워요 ㅠㅠ(이게 위로가 될까)

다락방 2011-01-17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어죽지마요, 뽀. ㅠㅠ

Forgettable. 2011-01-18 16:42   좋아요 0 | URL
힝 죽지 않을게요 ㅠㅠㅠㅠㅠㅠㅠㅠ

Joule 2011-01-17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업어달라는 그 친구 좋은 친구네요. 진정한 친구예요.
근데 제목이 그래서 그랬는지 저 동그랗게 휘어진 도로가 저는 포게터블 님의 각막인 줄 알았어요.
포게터블의 각막에 비친 겨울 나무들이라고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죠.
저번에는 어떤 촛불 사진을 보고 하이드 님 눈동자인 줄 알았는데.
철썩같이, 라는 부사는 정말이지 내가 만든 부사인가 봐요.

2011-01-18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9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11-01-17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춥다고 징징댄 우리가 미안해지네요.

Forgettable. 2011-01-18 16:49   좋아요 0 | URL
엄마도 춥다고 난리시더라구요. 하지만 이곳의 추위는 정말 상.상.초.월.
밖에 10분 이상을 못있겠더라고요;; ㅋㅋㅋ 미안해하지 마시고 그 곳의 따뜻함을 양껏 즐기세요! XO

차좋아 2011-01-17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신기하게 이뻐서 한참 봤어요. 낮인가 보죠? 저 부연 날씨에도 라이트 키고 달리는 차가 한 대 뿐인걸보니 알겠네요.
캐나다에서 의지되는 좋은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다음에는 사서 고생은 마세요ㅎㅎ 눈 길에 위험해요~

Forgettable. 2011-01-18 16:51   좋아요 0 | URL
제 방에서 내려다 보고 찍은 사진이 여러 장이 되는데 어쩐지 이 사진이 가장 좋더라구요. 낮이죠. 밤은 까맣고 낮은 하얘요.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는 캐나다에서 만난 인연들이 참 소중해요. 소중한 만큼 가볍기도 하지만 제 노력에 따라 무거워지기도 하겠죠? 아..... 저 다시는 차 없이 차이나 타운 가지 않을겁니다. ㅠㅠ 내일부턴 날씨가 조금 풀린다해서 약간 기대 중이에요!

루체오페르 2011-01-17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은 한 권의 책이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추위마저 끌어안는 모습이 좋습니다.^^

Forgettable. 2011-01-18 16:52   좋아요 0 | URL
제가 워낙에 추운 걸 좋아해서요. 더운 날씨 였다면 이런 차분한 모습 보여드리지 못했을거에요. ㅠㅠ

제 삶이 한 권의 책이 될 정도로 괜찮은 삶이 되도록 요즘 생각도 많이 하고 노력도 많이 하는데요.. 그게 참 힘들어요. 흑흑 ㅠㅠ

비로그인 2011-01-17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쿠야.. ㅠㅠ 잠시 같이 울어 드리겠습니다.

Forgettable. 2011-01-18 16:54   좋아요 0 | URL
아흑 ㅠㅠ 감사합니다. ㅠㅠㅠㅠ

눈 바람을 마주하며 흩날리는 눈이 온 얼굴에 부딪칠 때의 그 쓰라림을 누가 알아줄까요. ㅠㅠ

양철나무꾼 2011-01-18 0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주말에 강원도 스키장엘 다녀왔는데...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추위에 이를 부딪혀가며 덜덜 떨다왔거든요.

“나는 영상 30도에서 이런 배낭을 메고 돌아다니는 것보단 영하 30도가 낫다며 합리화했다.”
전 이말에 동의해요.
옛날에 플로리다 해변에서 얇은 티셔츠에 책이 여러권 든 배낭을 매고 다니던 기억이 떠올라서 말이죠.
어깨가 쓸리고 까지고 장난이 아니었어요~^^

이제 곧 서울 나오신다면서요, 조금만 참고 힘내세요.

Forgettable. 2011-01-18 16:57   좋아요 0 | URL
친구들이 록키로 스키장에 갔다던데...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그 곳에서 보드 잘 타고 있을지 급 걱정이 되네요. 그나 저나 날 풀리면 저도 오로라도 보러 가고, 천연설 위에서 스키도 타고 해야 할텐데. 갑자기 금전적 문제가.... 님의 스키장 댓글을 보면서 훅 다가오는군요 ㅠㅠㅠㅠ

제가 인도 배낭여행 할 때 그 더운 날씨에 이보다 훨씬 무거운 배낭 메고 다녔었는데;; 사람 할 짓이 못되더라구요. ㅠㅠ 어깨 쓸리는 건 둘째고... 숙소 도착해도 샤워장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그 기분 ㅠㅠㅠㅠ 아흑. 그나마 이곳에선 따뜻한 물 나오고 따뜻한 전기장판이 있는 집이 있어서 다행 ㅠㅠㅠㅠㅠ

견딜만해요 .사실은. 좋아요;;; 추운 건 얼마든지 견딜 수 있거든요! ^^

라로 2011-01-18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월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Forgettable. 2011-01-18 16:58   좋아요 0 | URL
저 한국 가봤자 백수라.... 나비님 집에서 몇날 며칠 죽치고 있을지도;;; :p

무스탕 2011-01-18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하 30도에 엄청난 무게의 배낭을 메고 걸으셨다니 흡사 남극대륙 횡단을 떠올렸어요.
여기도 엄청 추워요. 생전 이렇게 추워 봤어야 '어휴, 뽀님은 여기보다 더 추운데 계시네..' 할텐데 이것보다 더 추운것도 이런 추위도 처음이라서 뽀님 계신곳 추위가 와 닿지 않네요.
사진이랑 글로만 엄청난 곳에 계시는구나.. 싶어요. 하여간 육체적 정신적 건강 조심!!

Forgettable. 2011-01-18 17:01   좋아요 0 | URL
앗 또 엄청난 무게의 배낭+남극대륙 횡단 이라고 하니 뭔가 제가 엄청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 것만 같은데!
그 정도는 아니에요. ㅠㅠ
여름엔 금방금방 걸어다닐 정도의 거리거든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무스탕님이 또 춥다 하시니 가족들의 추위가 고대로 전해져 오는 듯한 기분이;;;; 엄마한테 아무리 여기 춥다 해도 한국도 추워죽겠단 말씀밖에 안하시더군요. 한국엔 추위가. 호주와 브라질엔 홍수가. 자연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근데 저 여기서 감기 한 번 안걸린 거 있죠? 너무 신기해요. 앞으로도 조심할게요!! 하지만 정신적 건강은 저도 어떻게 장담할 수가..................

모모쨩 2011-01-19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9 서재이 달인 님.
안녕하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왜 나는 이 블로그 지금 알려줘서
이런 꺠알같은 재미를 지금 선사하시는 겁니까?!!?
택배하나 보내드리고서야 블로그 주소와 맞교환 하는기분 아세요!?!?
그래도 저는 이제 일등급 VVIP 베프니까 훗.
선배, 엄청 잘살아보여서 다행이네요.
담배와 택시 단어 두개로 엄청 잘 살아보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orgettable. 2011-01-20 14:04   좋아요 0 | URL
아니 알려준다는 걸 까먹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담배는 뭐.. 많이 안피니까 ㅠㅠㅠ 글고 택시는 타지도 않았음 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택배 왔어요. 감동감동 ㅠㅠㅠㅠㅠㅠ
완전 VVIP로 승격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당신의 라섹이 더 부럽습니다. ㅠ

자하(紫霞) 2011-01-23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살고 계시는군요~
예전에 스웨덴 영화 <렛미인>을 보고는 쟈들은 단열재를 뭘 쓰길래 방안에서 속옷만 입고 잔다냐...했는데
캐나다는 어떤가요?

Forgettable. 2011-01-26 14:11   좋아요 0 | URL
방은 따뜻해요. ㅋㅋ 저 일할 땐 반팔입고 스타킹에 반바지만 입고 일하는데, 그래도 덥다능;;
기름나는 동네라 그런지 난방이 아주 빠방합니다. ㅋㅋㅋ

하지만 가끔 저만치 추운 날엔 전기장판 없으면 자기 힘들죠. 는 오바고 전기장판 덕에 좀 따뜻할 뿐 없어도 살만 해요. 춥다 춥다 해도 살만 하니까 사람들이 살고 있겠죠..

2011-02-01 0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2 1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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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1-16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이런 영화 보면 사랑이란 걸 진짜 하고 싶어지는...^^

Forgettable. 2011-01-17 11:17   좋아요 0 | URL
으 근데 참 힘들어보여요. 영화 속의 사랑은. 하지만 멋지긴 하죠. 여주 남주가 훈훈하다 보니;;; ㅋㅋㅋ

다락방 2011-01-16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영화의 끝이 영상의 끝과 똑같네요. 나도 이거 몇년전에 극장에서 봤거든요. 그때 영화광고에 이 영화보고 너무 좋아서 국내 뮤지션 누군가(이름이 기억안나요)가 음악도 만들고 그랬다고 했어요. 그런데 나는 막상 보니까 좀..
아이였을 때와 사춘기 였을때-창문으로 밤마다 찾아가는- 까지는 정말 좋았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는 좀 지루하더라구요. 영화 되게 안끝나는구나, 하고 지루해했는데 이 영상만 보면 되게 아름다운 영화 같아요. 음악도 아름답고.

마지막, 여자의 눈동자 가득 남자가 담기는 건 정말 좋죠! 물론, 공허한 결말이긴 하지만.

Forgettable. 2011-01-17 11:23   좋아요 0 | URL
네.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가 원. 순환. 이런거인것 같아요. 영화의 시작부분과 끝나는 부분이 똑같아요. 눈동자도 동그랗고.. 그 안에 담긴 사람이 오토가 되며 아나의 삶의 원은 오토로 이루어져 있다는 의미도 있는 것 같고.. 공허하긴 하지만 어찌 보면 완벽한 결말인 것 같기도 해요.

전 이 영화 대사도 너무 좋고 템포도 꽤나 빠르고 해서 같은 시간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어요. 다 보고 나서도 계속 잔상이 남아서 좋았던 대사도 찾아보고 이런 영상도 찾고 그러고 있었죠. ㅋㅋㅋ 음악은 this love라는 노래래요. Craig Armstrong의.
 

기다린다는게 어떤건지. 밤새도록 잠을 못이루며 그 사람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넬지 이 문장을 만들어봤다가, 저 문장을 만들어봤다가 그렇게 아침이 오고 까페에 가면 오른쪽에서 들리는 문소리에 수십번 실망하고 또 기대하며 그 사람이 오는 쪽을 바라본다. 그래서 막상 그 사람이 내 이름을 부르며 들어오면, 나는 그대로 얼어 붙어서 몇번이나 소리내어 연습했던 말을 까먹고. 그나마 그 사람이 묻는 질문에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채 그 사람을 보낸다. 그러고 나선 또 밤새도록 뭐라도 대답했어야 하는지 계속해서 도돌이표 하고. 

[엘 시크레토]에서도 그런 장면이 나온다. 

   
 

 
영화속에서 남자는 머릿속에 여자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있다.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건넬 말을 세시간이나 생각해보지만, 결국 그녀의 얼굴을 맞닥뜨리고 나면 아무말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와 함께 일하는 동료는 그녀를 보자마자 천사가 온 줄 알았다는 멘트를 한다. 남자는 그에게 묻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나는 몇시간을 준비해도 말할 수 없는데, 너는 어떻게 그녀를 보자마자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냐고. 그러자 그가 대답한다. 

"당연하지.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거든." 

 
  다락방님의 페이퍼 인용

 

이 페이퍼를 보고 나서 영화를 봐서 그런가, 사실 이 영화를 볼 때 난 이 사람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볼 때마다 난 이 장면이 계속해서 생각난다. 그 사람이 까페 문을 열고 들어 와서 내게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며 'Save me'라고 할 때 난 'Americano can't save you, but i can.' 라고 한다던가, 'don't pretend to be an angel'이라고 할 때 'yes, i am the angel. your gaurdian angel to save you.'라고 한다던가. 너무 느끼한가. 어쨌든 여러 옵션의 대답들이 그 당시에는 생각이 안나고 그 사람이 등을 보이며 인사를 하고 사라진 후에 계속해서 날 괴롭힌다는 거다.  

그 사람과 하루만 함께 저녁 먹고 놀았으면 바랄 게 없겠다는 욕심은 현실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욱 더 기다리고, 더욱 더 욕심낸다. 영화 속의 남자와 여자는 도대체 25년을 어떻게 기다렸을까. 그 욕심과 그 기다림과 그 체념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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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1-12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orgettable, save me.

Forgettable. 2011-01-12 14:25   좋아요 0 | URL
too many lovers to save you.

ㅋㅋㅋㅋ 장난이고, 좀만 기달려요. 4개월 남은거 있죠?????????????????? ㅠㅠㅠㅠㅠㅠㅠㅠ
한국가기 싫지만 락방님을 위해 갈거에요!!

Joule 2011-01-12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월에 오시는군요. 문득 그런 노래가 떠올라요.

꽃피는 봄이 오면 내 곁으로 온다고 말했지~

http://withmetheny.tistory.com/entry/%EC%9C%A4%EC%8A%B9%ED%9D%AC-%EC%A0%9C%EB%B9%84%EC%B2%98%EB%9F%BC


제비처럼 잘 날아오세요.

2011-01-13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1-01-12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지말고 한국 올 때 그 남자도 델꼬와요!!ㅋ~

Forgettable. 2011-01-13 14:42   좋아요 0 | URL
저 캐나다 생활 하면서 딱 하나 얻은 게 있다면 마음 접는 방법 배운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