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접할 일 없는 노집사의 이야기이지만 곳곳에 심어둔 익숙한 영국적인 면모가 재미있다. 전혀 그립지 않은 전쟁시절에의 향수를 돋구는 이야기. 캐릭터와 상황의 아이러니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별 일 없는데도 자꾸 궁금해서 페이지가 넘어간다. 작가의 또 다른 작품들이 궁금하다.
나만 또 불편러인가 싶은데 “그녀는 세상이 그녀를 강간하려 한다는 듯이 울기 시작했다“ 이건 뭐냐.. 아무리 옛날 작가라고 해도 더 마초스러운 챈들러나 로렌스 블록도 이런 표현은 안 썼다. 그것도 결혼식 날 우는 신부에게 이런 표현을? 안 그래도 번역도 마음에 안드는데 진짜. 무슨 이런 직독직해 번역이지 하면서 찾아보니 <리가의 개들> 번역가네. 이 책도 겨우겨우 읽었는데.. 어쩐지 <800만 가지 죽는 방법>보다 이 번역가의 <성스러운 술집이 문 닫을 때>도 안 읽혔음. 바로 직전에 한강 소설이랑 <기억의 빛> 을 읽으며 문장의 아름다움에 심취해 있다가 이렇게 대강 쓴 문장 보니까 좀 화가나는 것 같기도 하다. 좋은 책 많이 내주는 피니스 아프리카에이지만 번역 좀 어떻게 ㅠㅠㅠㅠ 암튼 다시 돌아와서 이렇게 우는 장면도 첫날밤에 뭐 하는지 모른다고 두려워하면서 결혼식날 친오빠에게 오늘밤 뭘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물어보는 여동생 이야기이다…. 평소 “그럴 수도 있지”의 태도가 여기에서는 도저히 안되는데 ㅋㅋㅋㅋㅋ 에드 맥베인 더 읽을지 말지 너무 고민이 된다.
병렬독서 책장 사고 싶다. 트위터에서 본 멋진 책장. 꽤 비쌈.암튼 이 책 나의 침대 머리맡에 가장 오래 있었다. 드디어 상권을 끝냄. 근데 하권은 없음. 안 산 건지 못찾는 건지 모르겠다. 백치라 불리우는 미쉬킨 공작의 다사다난한 이야기. 별다른 사건은 없고 울부짖고 떨리는 목소리를 어찌하지 못하는 많른 사람들이 다양한 감정을 갖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로고진의 강렬한 악마같은 눈빛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는데 그 이후로는 이렇다한 전개가 없다. 읽다가 자꾸 잠드니까 누가 누구인지도 까먹음. 그래도 중간 중간 엄청 강렬한 순간들을 그림을 묘사하듯 보여주는데 그런 부분들 때문에 독서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미쉬킨 공작은 그저 우유부단하고 약할 뿐인데 너무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 덕분에 현대인의 눈에는 오히려 정상적이고 관대하게 보인다. 작가는 미쉬킨 공작을 약간의 애정과 우호가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는 듯 하다. 이런 미쉬킨 공작이 미약하나마 광기를 뿜어내게끔 하는 나스타샤와 과연 어떻게 될지 하권을 읽어야겠다.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들을 빚어낸 건 작가의 능력도 있지만 모국어로 오롯이 즐길 수 있게 해준 번역자의 몫도 크다. 와, 이걸 어떻게 이렇게 쓰지! 했던 순간들이 몇 있었고.. 크게 마음을 사로잡는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건만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기억에 사로잡혀 즐겁게 독서할 수 있었다. (초반 레이첼과 너새니얼의 어린시절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어렸을 적 부모가 외국에 나가는 바람에 보딩스쿨로 보내졌던 마더인로의 스토리와 겹쳐지기도 했기 때문. 비올라가 오래오래 살았더라면 그래니랑 비슷했을 것 같다.)
고통의 민낯을 켜켜이 들쳐내어 보여준다. 픽션이 아닌 징그러운 현실에 역겨움이 들어 역시 상을 받지 않았다면 읽지 않았을 책이라는 생각이지만 그래도 이번 기회에 나 포함 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여져 있다. 특히 두번째 소년의 영혼 이야기는 담고 있는 내용과는 다르게 아름다운 잔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