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내게 새로운 관계맺음은 언제나 신선함인 동시에 우중충한 자기비하를 숙명적으로 끌고다니는
양날의 칼이었다.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만큼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은 단 한 번
의 관계에도 빠짐없이 들고일어나 나를 괴롭혀댔고, 관계맺음의 엄청난 환희를 굴복시킬만큼 끈질기게 따
라 붙어서 결국은 그 관계를 독으로 만들어버리고 마는 경우가 허다했다.
엄청 불쌍하고 구차하고 치사스럽게도 난 '의무감에 만나는 거라면 그만둬도 좋아.' 란 말을 목끝자락에서
내뱉어버리고 말 때도 있었다. 그래놓고는 정작 상대방이 멀어져가는 걸 느낄 땐, 울며불며 매달리기도 했
었다. 지금의 나는 내가 상대방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서 짜증이 치밀 때에도 목끝자락에 저 따위 구차한 말
을 간신히 붙잡고 내뱉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쓴다. 끝날 관계라면 내가 굳이 주춧돌을 빼내버리지
않아도 곧 무너질 것이라는 걸 인정하게 된걸까.
친구와, 연인과 뼈아픈 배신과 이별을 겪어야만 했을 때, 나는 내가 점점 자라고 있는줄, 실은 무뎌지고 있는
줄로만 알고 그 힘든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 이걸 겪으면, 다음에는 조금 더 나은 관계를 만들 수 있을거야
라며, 절망을 견뎠고, 실제로도 이후 더 낫다고 판단되는 관계를 맺기도 했었다. 그러나 아직도 난 예전의 의
기소침하고 자기비하에, 사랑받지 않을까봐 몸둘바 몰라하는 소심한 아이란 걸, 인정해야겠다. 솔직히 말해
더 나은 관계를 맺는 것, 더 맞는 사람을 만나는 건 이제 기대도 하지 않는다. 있는 사람이나 잘 챙기고, 새로
만나는 사람도 있는 사람이랑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상처받지 않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물론 받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돌이켜 보면 나는 상처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만 같다.
적어도, '내가 널 언제 좋아했다고 혼자 오바야?' 라며 자기방어는 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 쉽게 포기하지는 말아주었으면 한다. 생채기쯤이야 얼마든지 나도 좋으니, 일단 사랑하고 보자는 마음
으로 사람을 대하고, 조금 더 참고 두손 꼭 그러쥐고, 영영보지 못할 곳으로 너무 쉽게 떠나보내지는 말자.
그러니까
오늘은 화살을 내 안으로 돌리는 날인 것이다. 춥기도 하고, 편두통은 지끈거리고, 애교는 없고, 일은 많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