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홈즈2]를 기다린지 근 2년이 지났다. 함께 [셜록홈즈]를 보고 2에서는 '브래드 피트가 모리아티래!!!'라며 루머를 갖고 함께 흥분하던 나의 친구와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최근 [셜록홈즈2]의 개봉 소식에 난 봐야지, 봐야지, 를 반복했지만 결국 보지 않았다. 안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되었다. 함께 보자고 약속했던 사람이 이제 없어서만은 아니다. 

 

그에 반해 영화 [밀레니엄]을 같이 보기로 한 사람과는 함께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내게 [밀레니엄] 1부에서 3부까지 무려 6권을 한꺼번에 서프라이즈로 보내주었고, 난 나의 우울한 시절을 [밀레니엄]에 빠져서 보낼 수 있었다. 이런 하드코어는 싫다고 징징거리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나쁘지 않은 독서였다. 지루한 설명이나 심히 하드코어한 부분은 적절하게 속독 or 패스해줬고, 오래간만에 해리포터를 보는 긴장감으로 독서할 수 있었다.

 

사실 영화를 보며 가장 흥분했던 건 데이빗 핀처에게 미안하지만 영화와는 좀 상관없이 마지막 장면에서 에*님의 페이퍼가 겹쳐졌던 부분이다. 영화를 함께 봤던 사람의 흥분 또한 고스란히 느껴져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본 소감으로는 "또 한번 데이빗 핀처에게 미안하지만 오프닝의 강렬함 빼고는 남는게 없는 영화" 라는 것이다. 난 데이빗 핀처의 열렬한 팬인데 이제 그것을 과거형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 죽은 아티스트의 작품들을 감상하며 남은 것이 하나둘 사라져가는 기분도 짜증나지만, 좋아했던 감독의 몰락을 바라보는 것도 못지않게 허무하다. 슬픈 일이다. 새롭게 좋아하는 감독을 찾는 일이 힘든 일이라 그렇다.

 

영화의 모든 점수는 리즈베트에게 주는 것에 동의하고, 그분과 난 와인을 마셨다. 편의점 투어로 싼 와인을 득템한 뒤 스테이크랑 맛있게 먹었다. 취하진 않은 줄 알았는데 배가 너무 부르고 몸이 뜨거워지며 집에 가고싶어졌다. 그분과 만나면 항상 많이 먹지만, 그렇다고 한참을 걸어도 소화가 되지 않아 집으로 향한 적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니 소화가 되었고, 그분과 나는 각자의 집에서 2차로 술을 또 마셨다. [빅피처]를 또 선물 받았고 난 이제 빚을 갚을래야 갚을 수도 없게 되어 그냥 주면 넙죽 감사하게 받고 말아버린다. 몰라, 마음의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 파산이다 이젠.

 

* 몸이 안좋다는 핑계로 할머니댁에 내려가지 않았지만 알콜로 학대하였기에 딱히 푹 쉬었다고 볼 수는 없는 연휴였다. 5일이나 쉬었지만 하루도 제대로 기억을 하는 날이 없다. 역시 만취 연휴가 진리.

 

* 할 얘기가 좀 있어서 쓰기 시작했는데, 결국 또 수다만 이렇게...... -_- 오늘 밤엔 안산으로 면접을 보러 간다. 두근두근. 은 아니고, 어떻게든 잘 좀 풀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 언제 4만명이 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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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1-25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응? 밤에 면접을 봐요? 어쨌든 화이팅!

Forgettable. 2012-01-30 17:51   좋아요 0 | URL
직종이 변경되다보니 ㅋㅋㅋ
이제 밤에 일할 거임

무해한모리군 2012-01-25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면접보러 가시는구나
잘 될거예욧!

Forgettable. 2012-01-30 17:52   좋아요 0 | URL
아 세상에 쉬운 일이 없더라구요 -_-;;
돈이 뭔지.. ㅠㅠ

카스피 2012-01-26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면접보러 가시는군요.화이팅 입니당^^

Forgettable. 2012-01-30 17:52   좋아요 0 | URL
오늘도 면접이네요. 감사합니다. ㅎㅎ

pb 2012-01-27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연휴 내내 술로만 지폈다는ㅋㅋ근데 정말 셜록2의 모리아티가 브래드 피트입니까? 흠..;

면접 화이팅입니다!

Forgettable. 2012-01-30 18:52   좋아요 0 | URL
캐스팅 불발로 다른 사람이 했다 하더라구요! ㅠ
면접은.. 보러 다니고는 있는데 보람없이 고생하고 차비만 날리는 기분;; 오늘도 술이나마셔야 겠어요

버벌 2012-01-28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면접 잘 보셨어요? ^^

Forgettable. 2012-01-30 18:59   좋아요 0 | URL
잘 되지 않은 면접 이야기로 댓글을 달다보니 페이퍼에 더이상 면접을 보러 간단 말을 쓰면 안되겠단 생각이 드네요. 잘 되면 올리겠어요 ㅎㅎ

lazydevil 2012-01-31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셜록홈즈1을 보고 따븐하군...하며 함께 하품했던 내 친구도 볼수없는 사이가 되었죠.ㅎㅎ

Forgettable. 2012-01-31 14:28   좋아요 0 | URL
흠. 슬픈가요?
전 슬프진 않은데 아쉬운 마음이 아직까지도 남아있어요.

lazydevil 2012-01-31 14:42   좋아요 0 | URL
흠. 아쉬운가요?
전 아쉽진 않은데 슬픔이 아직~


덕분에 돌이켜보니, 어울리지않게 지난 일을 아쉬워하는 성격이 아닌가봐욯ㅎㅎ

lazydevil 2012-01-31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핀처의 재능은 젊음이었던 거 같아요. 그는 잘찍는 사람이지 이야기를 잘만드는 부류는 아닌가 싶기도. 그러고보니 놀란은 그 반대인 거 같네요. 갑자기 다크 나이트의 새 시리즈가 떠올라서요..ㅎㅎㅎ

Forgettable. 2012-01-31 14:37   좋아요 0 | URL
잘찍는 사람이란거 인정. [밀레니엄]의 오프닝 장면은 정말 끝내주더라구요.
그러고보니 [파이트클럽]부터 해서 원작, 혹은 실존 인물이 있는 작품만으로 가네요. 안전모드 ㅋㅋ
이젠 잘 찍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파이트클럽] 원작은 정말 영화랑 똑같더라구요 -_-;

놀란은 정말 놀람 ㅋㅋ 성장이 놀라운 감독이에요. 괜찮은 영화가 보고싶네요.
 

회사에서 일적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과중하여 일단 그만두기로 했다. 하루에 한 번 이상씩 울컥, 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몸이 많이 아프고, 피부 트러블도 심해진데다가 흰머리까지 난다. 욕하고 풀어버릴 정도면 감지덕지, 욕할 대상도 없고 회사 체계, 팀의 체계가 문제다 보니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결정을 하고 몇 군데 이력서도 넣어보고, 치과간다고 뻥치고 면접도 보고 왔지만 결과는 여의치가 않았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궁금했는데 오늘 그 이유를 알았다. 

 

영어가 가능한 아르바이트를 뽑고 있어서 이력서를 보는 중인데, 하루만에 백통이 넘는 아르바이트 이력서가 날아왔다. 대학생이면서도 나보다 더 나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제출했다. 단지 아르바이트일 뿐인데도 말이다. (물론 내 급여보다 높은 아르바이트 일당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러다보니 미처 열어보지도 않고 버려지는 이력서가 수두룩하다. 첫 이미지가 좋지 않으면 굳이 이력서 열람까지 해보지도 않게 된다. 취업의 세계는 이런 것이구나. 가혹하다.

 

스트레스 탓인지, 주사가 진상이다. 친한 사람들에게 막말을 하고, 일부러 상처주는 말을 해댄다. "널 상처주겟어." 라며 독기를 품고 말하니 다음날 기억도 뭣도 없는 난 화가난 문자만 보고 무조건 사과 사과 사과 사과. 그래서 요즘은 술에 취하는 것도 두렵다. 하지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취하지 -_-;

 

며칠전 술자리에서 미셸 우엘벡의 책을 선물 받았다. 만난지 2시간만에 사케 900미리 4팩을 비우고 우리는 모두 함께 안드로메다로... 다음날 사상 최악의 숙취를 홀로 견디며 지하철을 탔는데, 사람 냄새 때문에 미추어버리겠는 거다. 음, 사람냄새나는 따뜻한 동네, 뭐 이럴 때 사람냄새 말고 그냥 '인간내'라고 해야할까. 어제 먹은 고기 냄새, 아침에 머리 감은 샴푸 냄새, 향수 냄새, 땀에 쩐내, 담배 냄새 등등 안그래도 토할 것 같았는데 모든 인간들의 냄새가 내 코를 꿰뚫고 들어왔다. 토할 것 같았다. 정말 짜증나는 상황에서 자주 내뱉는 '아, 토할 것 같아.' 의 그 토가 아니라 진짜 토. 웩. 사케, 너란 놈..

 

그래서 미셸 우엘벡의 선물을 받았는데 익히 우울한 책이란 걸 알고 있어서 쉽사리 손을 댈 수가 없다. 일단 밀레니엄 3권부터 끝내고 싶긴 한데, 3권에서 미카엘이 '또' 사랑에 빠지고 섹스를 하는 바람에 조금 짜증이 났다. 대체 얼마나 멋있기에 40넘은 아저씨한테 온갖 매력녀들이 다 들러붙는걸까? 작가가 하루키처럼 여성에 대한 로망을 책으로 푸는건가 싶기도 하고. 1권을 막 마쳤을 때는 스티그 라르손이 죽은게 그렇게 원통하더니, 지금와서 보니 10권을 낼 때까지 살아 있었다고 하더라도 다 읽었을까 싶기도 하다.

 

여튼 미셸 우엘벡의 책은 기분이 좀 나아진다면 빠른 시일내에 읽고 싶다. 설 연휴에는 세수도 하지 않고 책이나 읽으며 퍼질러 누워 있고 싶지만 이미 약속이 생겨버려서 취한채로 보내버릴 것 같다. 취하면 무한도전도 눈에 안들어오는데 책이라고 들어올까. 어젠 분명 밀레니엄 3권을 읽으며 미카엘과 근육녀의 사랑에 어처구니 없어하고 있었는데 눈떠보니 눈감고 자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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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1-19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권 근육녀와의 사랑은 진짜 어처구니. 대박 어처구니. 진실한 사랑 운운할 때 진짜 돌아버릴 뻔 했음. 우리 설 연휴에 둘이 모텔잡고 들어갈까요? 그래서 세수도 하지 않은채로 누워서 책이나 읽다가 술 먹고 늦게 일어나서 배 벅벅 긁으며 책 읽다가 밤에 또 술먹고...그렇게 연휴를 다 보내볼까요?

Forgettable. 2012-01-19 17:30   좋아요 0 | URL
아침엔 지하철에서 여자들이 나한테 기대더니.. 왜 또 여자가 나보고 모텔에 가재.....
전 남자가 좋아요. 훈훈한 어린이 남자 +_+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저 배 긁지 않습니다. 흥

근데 밀레니엄같은 책 또 없나요? 아웅 뭔가 스펙타클한 이야기가 필요해요.

Forgettable. 2012-01-19 17:33   좋아요 0 | URL
근데 왠 모텔? 모텔 안가는거 아니었어요?

다락방 2012-01-19 17:49   좋아요 0 | URL
왜 모텔을 물고 늘어져요. 그냥 농담으로 웃고 넘기면 되지.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배 안긁어요? 난 배 긁는데. 엉덩이도 긁고. 슬램덩크 보면 강백호가 맨날 양 손 바지 안에 집어넣잖아. 게으른 일요일에는 원래 그런 포즈로 살아야 되는거 아닌가? 그러니까 연휴에도 그렇게...세수도 안하고 머리도 안감고 냄새 풍기면서....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설 연휴에는 누구랑 술 약속 있어요, 뽀? 대답해봐요, 응? 응?

Forgettable. 2012-01-19 18:04   좋아요 0 | URL
난 진짜 가자는 줄 알고. 진짜 가야하나? 어떻게 거절하지? 난 남자랑 뒹굴고 싶은데. 연휴내내 락방님이랑 함께 모텔에서 뒹굴어야 하나? 오만가지 생각 다했자낭ㅋㅋㅋㅋㅋ

설 연휴엔.. 남자랑, 락방님이랑, 남자랑, 남자랑, 남자랑...
술 약속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

난 근데 바지 속 팬티 안에 손 넣고 있는 남자 시렁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2012-01-19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19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19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25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pb 2012-01-19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ㅋㅋㅋㅋ아 근데 코님은 어제 사진 준다더니 왜 안보냈지? 실종상태임ㅋㅋㅋ

스티그가 하루키마냥 성욕을 작품으로 풀고있네요. 헐헐헐. 생긴게 다니엘 크레이그라면 인정! 저도 설 연휴 내내 집에서 영화와 책에 묻혀 살듯 싶기도. 아님 찐한 연애나 한바탕 뒹굴다 올 수도 있고 뭐 그래욤ㅋㅋ

아. 담엔 그냥 스카치 마셔요. 콜라타서. 진짜 사케나 막걸리 먹은 다음 날은 토해서 돌아버리겠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Forgettable. 2012-01-25 11:45   좋아요 0 | URL
아직까지 실종이네요. 정말 멘붕일까?????? 돌아와요 코 ㅠㅠㅠ

찐한 연애 뒹굴다 오셨습니까? 스카치랑 뒹군거 아니고? ㅋㅋㅋㅋ
전 데킬라에 킬됐네요. 아오 연휴가 어케 지나갔는지 기억이 안나 ㅠㅠㅠㅠㅠㅠㅠㅠ 5일인데 ㅠㅠㅠㅠ
그래도 기억도 없고 숙취도 없고 양주가 깔끔하긴 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마가 연휴때 쌓인 병 버리시며 문자왔음. 알콜중독자 딸 한심하다고..
(병처리 어케 하세요??)

Arch 2012-01-20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종종 회사는 '봐라 이렇게 여기 들어오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라고 겁주고, 뉴스에선 '봐라 이렇게 취업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는식으로 겁을 주는 것 같아요. 나한텐 '니 나이에 아직도 알바할래'가 있고. 젠장

2. 밀레니엄의 근육녀라... 그냥 전 안 볼래요. 별셋은 못주겠는데요^^

3. 예전 글을 보는데 와, 이건 직장이 나를 갉아먹은건지 내가 늙어서 재미없어진건지 싶어졌어요. 뭔가 반짝반짝 했던 것 같은데.

4. 역시 연휴엔 뒹굴어야하는군요! 전 뭔가 찌르르 올라오는게 요새 쑝 사라져서.

5. 이렇게 댓글 쓰는거 재미있어요. 혼자 막 정리하고.

Forgettable. 2012-01-25 10:49   좋아요 0 | URL
1. 하지만 그렇게 겁을 주는 것보다 실상 취업이 더 어렵다는게 절망스러운;; 아.. 취업하기 싫어요. 넘 힘드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2. 전 개인적으로 3부는 좀 억지스러운 면모가 있어서.. 근육녀도 좀 그랬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누구랑 만나든 그 때마다 진심으로 사랑하나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무심하게 떠나버리는 건 짜증나지만. 그래도 다니엘 크레이그라면 그럴만 하다 싶기도 하고. ㅋㅋㅋㅋ

3. 직장이 갉아먹었다에 1표.

4. 전 연휴에 술술술.. ^^^^^^^ 기억이 없어욤ㅋㅋ

5. 그쵸. 할말 많은거 딱 정리해서 써주니 ㅋㅋ 읽고 답댓글하는 저도 편해용~ 아치.. 우리 언제보죠?

Arch 2012-01-25 17:33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나 요새 완전 후리한데^^
 

어제 난 백년만에 소개팅을 했다. 주선자는 남자가 구려도 욕을 하지 말고, 대신 괜찮으면 고마워하라는 이기적인 부탁을 했다. 신기하게도 남자는 주선자를 닮아 있었다. 주선자는 나를 예뻐라하는 언닌데, 남자를 닮았다고 해서 미안하지만 정말로 눈매가 닮았다. 자길 닮아서 이 남자를 좋아하는건가? 란 생각을 잠시 했다.

 

곱창을 먹었다. 맛있었다. 맛집이라고 했다. 난 소맥을 마셨다. 남자는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소주를 마셨다. 난 조언이랍시고 원래 여자랑 처음 만나면 곱창집엘 오는게 아니라고 했다. 남자는 나니까 온거라고 했다. 기분이 좋았다. 난 소맥을 계속 마셨다. 이자까야로 자리를 옮겼다. 복튀김과 낫또오믈렛을 시켰다. 따뜻하고 좋았다. 주선자가 취하지 말라고 했다며 술을 자제하던 남자는 내가 취하는 기미가 보이자 안심했는지 소맥을 함께 마시기 시작했다. 많은 이야기를 했다.

 

분위기는 무르익어 어느덧 나는 고민상담을 하고 있었다. 술집 안은 조용했지만 나와 남자의 말들이 무척 시끄러웠다. 그래서 난 내 말도, 남자의 말도 들을 수 없었다. 연애를 하지 않아도 친한 오빠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가 말을 했던가 모르겠다.

 

요즘 부쩍 우울해하는 난 남자가 부추기자 약간 울기까지 했던 것 같다. 배려심이 많은 남자는 아니었다. 유머감각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자만심이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취하니 귀여워 보이긴 했다. 정치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회의감을 얘기했다가 대단히 혼났다. 우리나라를 바꾸려하는 의지가 꼭 있어야만 하는걸까? 그냥 외국나가 살면 안되나? 비슷한 발언을 했다가 멍청한 여자 취급을 받았다. 난 딴 건 몰라도 멍청한 취급 받는 걸 너무 싫어한다. 하지만 남자는 '난 잘났는데.. 이런 생각 하죠?' 라며 비아냥거려서 기분이 나빴다. 멍청한 취급도 싫지만 내 자만을 비웃는 것도 싫었다. 지도 오만한 주제에.

 

점점 취해가며 기분이 좋다가, 나쁘다가 했다. 스트레스가 많아서인지 요즘은 술마시면 감정이 컨트롤이 안되는데 그 기복도 굉장히 심하다. 남자의 빈정거리는 눈빛에 점차 내 자신이 병신같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남자의 눈빛이 빈정거렸던 것은 나의 느낌이었을까, 아니면 남자의 진심이었을까? 남자의 마지막 한마디, 성격은 좋네요. 에서 '은'이란 조사타령을 했던가? 그 이후로 눈 떠보니 4개 역이나 지나쳐버린 지하철 안이었다.  

 

난 주선자에게 왕자병쉐키. 란 문자를 보냈나보다. 그러곤 바로 아니라고 정정을 했더라. 아침에 문자를 보고 웃었다. 소개팅에서 개만취를 해버리다니. 술때문에 연애를 못하는 거라고 페북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맞다. 다 술 때문이다. 나 때문이 아니라 술이 문제야.

 

가방을 챙기는데 가방에 남자가 헤어질 때 준 핫팩이 들어있었다. 봉지를 뜯지 않아도 마음이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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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1-05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는 어제 이런일이 있었구나...

Forgettable. 2012-01-05 17:16   좋아요 0 | URL
재미있었어요 ㅋㅋ 언제나 그렇듯 술이 있는 자리엔 즐거움이!

무스탕 2012-01-05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추웠는데 지나간 4개 역을 다시 돌아오려니 짜증났겠어요. ㅎㅎㅎ

2012-01-05 1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그 2012-01-05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이런 이런.... 결혼해서 좋은 점은 SATC에서의 대사처럼. 누군가를 찾지않아도 된다는거죠. ㅋㅋ
(유부녀로써의 한마디 였습니다.) 하지만 가끔 누군가를 만나서 어색한 시간을 보내거나.. 남편 아닌 남자를 만나는 상상도 합니다. 물론 상상만. ㅋㅋㅋ 우리신랑 처음만난날 제가 무척 취한(^^;;;;) 날 이었어요. 인연은 모르는겁니다. ^^

Forgettable. 2012-01-06 11:42   좋아요 0 | URL
ㅋㅋ 섹스앤더시티를 SATC라고 부르는지 첨 알았어요!!!!!
전 뭐.. 처음 누구 만나도 거의 취해버리니까 어색한 시간은 몇분이나 될라나 ㅋㅋ 전 누군가를 항상 찾고 또 만나고 있는데 이걸 포기할 수가 없어서 결혼을 할 수가 없어요 ㅠㅠ
누군가를 찾지 않아도 되는 삶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도, 부럽기도 하네요 ㅎ

Mephistopheles 2012-01-05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에프터는요????

Forgettable. 2012-01-06 11:43   좋아요 0 | URL
누가 꽐라녀에게 애프터를 신청하겠냐며 ㅋㅋㅋㅋㅋ
애프터란 말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ㅎㅎ

순오기 2012-01-06 0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래글 연애의 추억도 좋았지만, 난 현재진행형이 더 좋아요~~~~~ 아자아자!!
새해엔 술 때문에 연애가 안된다 하지 말고, 술보다 연애에 퐁당 빠지시기를.....^^
핫팩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진 남자라면 왕자병이라도 괜찮지 않을까요?ㅋㅋ

Forgettable. 2012-01-06 11:46   좋아요 0 | URL
ㅋㅋㅋ 술취한 저까지 좋아할 수 있어야 해여. 제가 미소녀라면 그런 남자가 널렸겠지만 미소녀가 아니기때문에 ㅠㅠ 술 너무 좋아하는거 다들 감당 못해하더라구요 -_-;;;
술을 끊어야 하남?? ㅋㅋㅋㅋ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순오기님!!

LAYLA 2012-01-06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뭐야 잘난척 하는 남자 밥맛우웩이죠. 진짜 그렇게 괜찮은 남자가 왜 소개팅을 나오냐고요 흥 ㅋㅋㅋㅋ 훈녀는 넘쳐나노 훈남은 귀한 사회현실이 이런 비극을 만들어내는군요

Forgettable. 2012-01-09 09:43   좋아요 0 | URL
요즘들어 느끼지만 훈녀는 왜케 많습니까?
게다가 훈남은 너무 없어서 훈남 보면 정말 말그대로 눈이 '번쩍'(..)
월요일이에요.. 졸려요... 잉여롭고싶습니다. 아흑. 그럼 연애 안해도 행복한데 ㅠㅠ

코카콜라 2012-01-11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야 너 아무래도 알콜 중독에 의한 정동 장애가 의심 된다
아무래도 안되겠어.. 이러다 조울증 올수도 있어

Forgettable. 2012-01-11 11:10   좋아요 0 | URL
왜 코카콜라지?
너 왜 나 알콜중독에 조울증인거 몰라? ㅋㅋㅋㅋ 이미 성격화 된것 같은데 -_-;;

코카콜라 2012-01-11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요즘 코카콜라에 푹 빠졌어 ㅋㅋ
술좀 적당히 마시구 다녀~!!!

pb 2012-01-13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ㅋㅋㅋ이 정도면 양호하죠
복튀김 궁금하네요. 한 번도 안 먹어봐서.

저도 멍청이 취급당하는 것 질색. 소개팅이고 뭐고 그 자리에서 쌍욕이 먼저 나왔을 듯ㅋㅋㅋㅋ

전 어떤 소개팅남이 만취라 거의 끌고가다시피 해서 모텔에 옮겨놓고 집에 왔는데
다음날 주선자에게 개 욕먹었음;

"그냥 택시태워 보냈다가 강도당하는 것보다 나을 수 있잖아!"라고 항변해봤자
안 조신녀(?!)로 찍혔다면서-_- 참. 내가 무슨 짓을 한 것도 아닌데 ㅋㅋㅋㅋ

Forgettable. 2012-01-16 13:05   좋아요 0 | URL
ㅋㅋㅋ 모텔에 갖다 넣어놨다니 님도 진짜 대박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그거 갖고 안조신녀라니 그 친구도 좀 그러네요~~ 진짜 술취한 사람 감당하기가 얼마나 힘든데 ㅠㅠ
복튀김 있다가 드셔보실래요? ㅋㅋㅋ 동명인데!

일하기 싫어 죽겠음 ㅠㅠ
전 취하면 횡설수설해서 더 멍청이가 되기 때문에.. 당시엔 아무말도 할 수 없었어요. 흑흑

다락방 2012-01-16 16:21   좋아요 0 | URL
아 뽀..뭔가 바람둥이 같아.
복튀김 있다가 드셔보실래요?
이거...멘트 치는것 같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막 유혹하려는 느낌 ㅋㅋㅋㅋㅋ

Forgettable. 2012-01-16 17:08   좋아요 0 | URL
글도 없는 내 서재에 들락거리는 락방을 위해 글을 하나 쓰려고 했지만..
영 안써지네요. ㅋㅋㅋ

전 인생이 유혹입니다. 전 모든이를 유혹해요. 상대방이 유혹 당하든 말든 상관없이.
누군가를 유혹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지요.

다락방 2012-01-17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는 바람둥이 빵꾸똥꾸!
 

그를 처음 봤을 때 나는 다른이와의 관계를 막 시작하려 하던 참이었다. 그는 내 친구의 친구였는데, 전여자친구와의 관계가 틀어져 심적 상황이 안좋다고 들었고, 우리의 술파티에 잠시만 들렀다가 간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반대로 그는 기분이 좋아보였고, 자리를 일찍 뜰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정신적으로 많이 약해진 상태라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말과는 달리, 그닥 강권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술까지 마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몰랐다. 하지만 술을 마시고 다같이 취해가기 시작할 무렵 난 그의 강한 눈빛을 언뜻 느꼈다. 그는 어느새 내 옆자리로 와 있었고, 얼핏 들으면 다같이 놀자는 것이었지만 또 얼핏 들으면 데이트 신청 같기도 한 말을 해서 난 그가 날 바라보는 눈빛과 나를 향한 초조한 미소가 신경쓰일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불안하고 초조해하는 모습 저편에서 당당함이 느껴졌고 그날 새벽, 나는 직감했다. 내가 시작하려고 했던 다른이와의 관계는 이미 끝났다는 것을. 

 

다음날 약속했던 대로 권총 사격장에 가자고 전화가 왔다. 난 전날 숙취가 가시지 않아 쉬고싶다고 얘기했고 숙취가 좀 가신 그 다음날 그는 그의 트럭을 끌고 나를 태우러 내가 사는 아파트 앞으로 왔다. 운전을 하며 그는 내내 담배를 피워댔고 그의 손은 약간씩 떨리고 있었다. 펍에 도착하자마자 우린 또다시 맥주잔을 비워대기 시작했고, 펍 안에 있던 그의 동생과 친구들을 소개시켜주며 그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귀빈 대하듯 정중히 대했다. 그는 신세계와도 같았다. 체크무늬 남방에 가디건, 멜빵과 청바지. 파티를 할 땐 정장, 베레모, 빡빡 민 헤어스타일, 청바지에 청자켓 패션을 당연시하고, Oi 뮤직에 열광하고, 광적으로 싸우고, 백인우월주의를 혐오하는 마초 중의 마초 스킨헤드였다. 

 

그런 사람이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는 건 뭐랄까, 설렌다기 보다는 흥분된다고 해야 하나. 내 평생 애인으로 삼을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해봤던 사람이 눈이 하트가 되어 날 바라보며 웃는데, 머리가 멍해지며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것만 같았다. 담배를 피우러 펍 밖으로 나와서, 추워하는 내 어깨를 감싸며 그는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했다. 평소처럼, 만난지 이틀만에 개뿔 사랑타령이야, 하면서 비웃으려 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진심은 무거운 것인줄만 알았는데 그보다도 가벼울 수가 없어서 들뜬 마음이 불안할 뿐이었다. 가벼워서 무거운 마음이 눈발과 함께 흩날렸고 그 때 나는 그 순간이 행복이란 걸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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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12-28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해요 뽀.
이런 글을 써주다니. ㅠㅠ
추천추천.

뭔가 뽀의 가치가 더 빛난다. 흑흑. 멋져요!

Forgettable. 2011-12-28 17:0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역시 락방님은 이런 글을 좋아할 줄 알았지 ㅋㅋㅋㅋㅋ

내가 한가해서 신난 사람은 어쩐지 락방님인듯?!

다락방 2011-12-28 17:14   좋아요 0 | URL
네네네네. 나는 평생 뽀가 한가했으면 좋겠습니다!!!!!

Forgettable. 2011-12-29 11:39   좋아요 0 | URL
저두 제가 한가했으면 좋겠어요 ㅋㅋ 아웅 피곤해

세라비 2011-12-28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정말... 읽으면서 두근두근!ㅠㅜ

죽을때까지 계속 써주게나! 즐퇴근

Forgettable. 2011-12-29 11:40   좋아요 0 | URL
앗 그정도? ㅋㅋㅋㅋㅋ
죽을때까지라고 하니.. 아라비안나이트의 여자가 죽기 싫어서 자꾸 재미있는 이야기를 지어냈다는 일화가 생각나네 ㅋㅋ

라로 2011-12-29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뭐야요? 이거 2부 있는 거죠???기대기대,,ㅎㅎㅎ

Forgettable. 2011-12-29 11:41   좋아요 0 | URL
2부는.. 또 찬 겨울바람에 마음이 들뜨면 ㅋㅋ 게다가 그날 한가하기까지 해야하고요 ㅋㅋ
아웅 일하기 싫어요!

조선인 2011-12-29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제가 더 설레잖아요.

Forgettable. 2011-12-29 11:42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 오랜만 *^^*
마로랑 해람이는 잘도 크네요!! ㅋㅋ

설렜던 날들이 불과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

Arch 2011-12-29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히~) 연애 하기 전의 설렘 같은게 언제적이었던지(먼 산 " ")

Forgettable. 2011-12-29 14:48   좋아요 0 | URL
아이참, (히~) 연애 하기 전의 설렘 같은게 언제적이었던지(먼 산 " ") 3333333333333

글은 이따위로 써놓았지만 현실은!!!!!!!!!!!!!!!!!!!!!!!

레와 2011-12-29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히~) 연애 하기 전의 설렘 같은게 언제적이었던지_2222 ㅠ_ㅠ




추천을 아니 누를 수 없잖아요, 아흥 말랑말랑해졌어요. ^^

Forgettable. 2011-12-29 14:50   좋아요 0 | URL
본의아니게 제가 알라딘 미녀들을 여럿 설레게 했구만요, ㅋㅋㅋㅋ
레와님 안녕? ㅋㅋㅋㅋㅋㅋ 반가워요 ㅋㅋㅋㅋㅋㅋㅋ
아는사람같기 ㅋㅋ

무스탕 2011-12-29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어머어머~~~~ >ㅇ<
그래서요, 그래서 그 다음엔 어떻게 된거에요. 궁금해 미치고 팔짝 뛰겠잖아욧-!!
얼른 퇴근해서 집에가셔서 한가해지셔서 다음 글을 쓰세욧-!!
^^*

Forgettable. 2012-01-02 17:02   좋아요 0 | URL
그 다음까지 쓰게되면.....
제가 알라딘 뭇 여성들을 여럿 잠못자게 할듯하여 박수칠 때 떠나려구요 ㅋㅋㅋㅋㅋㅋ

아웅 고양이 너무 귀엽네요 >.<

pb 2011-12-30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대박이로군요 ㅋㅋㅋㅋ아 님 글솜씨 보면 할리퀸로맨스 저리가라 할 정도!

Forgettable. 2012-01-02 17:0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사실이 아닌것은 분명하나 기분은 좋네요!!!! ㅋㅋㅋㅋ 무려 할리퀸!!
전향할까요 이쪽으로??? ㅋㅋ

lazydevil 2011-12-30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겟님이 한가니까 좋네요. 신나는 글도 만날 수 있구요...
암튼 포겟님의 넘치는 에너지가 부러워요. 비실비실~~ㅜㅜ

Forgettable. 2012-01-02 17:05   좋아요 0 | URL
마지막 댓글이 감기걸리셨다는 댓글이었는데 아직도 ㅠㅠㅠㅠ
몸이 넘 약하신듯 해요! ㅠ

저야말로 지금 감기땜에 완전 골골 ㅠㅠ
웬만함 병원 안가는데 약받으러 병원 다녀왔네요. 흑 ㅠ

2012-01-01 0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2 1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요즘 무척이나 한가하다. 연초 인사조정이 있어 팀을 옮기기 때문에 인수인계서 작성 외에는 별다른 일이 없다. 하지만 인도에서 모든 혼과 에너지를 소진하고 나선,  퇴근 후 술을 마시러 다니기엔 마음이 무척 게을러져 있어서 집에서 혼자 간단히 마시고 만다. 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면 얼굴이 금새 빨개지는데 집에 따뜻해서인지 술 조금에도 쉬이 취하고 쉬이 깨진 않아 좋다.

 

어제도 그런 날 중 하나였는데, [뿌리 깊은 나무]를 시청하며 얼굴을 잘라낸 새우를 잔뜩 넣은 올리브오일 스파게티와 함께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세종과 정기준의 대담이 약간 지루해져서 취중에 지인의 블로그에 댓글을 달며 노는데 그녀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오는 것이 아닌가?! 조만간 술을 먹자며 번호를 교환한지 어언 6개월은 지난듯 한데, 이러다가 결국 못보지 않겠냐며 지금 당장 보자는 제안에 난 흔쾌히 승낙을 하고 집을 나섰다.

 

원래 한 번 들어오면 잘 나가고 싶어하지 않는데, 나가기로 결심한 이유는 '이러다 결국 못보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예감도 있었고, 씻거나 옷을 갈아 입지 않고 퇴근 후 귀가한 상태 그대로여서 별 채비 없이 그냥 나가도 됐었고, 술이 약간 모자라기도 했었고, 약속 장소가 동네급(?)이어서이기도 했었고, 등등 많지만 무엇보다도 난 미소녀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언제 어느때, 전국 어디라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미 취한듯 했고, 그녀의 블로그를 통해 그녀의 술버릇은 익히 알고 있었기에 추운 길을 나서며 걱정이 앞섰다. 바람맞으면 어떡하지....? 술마시고 불러낸 사람 바람 맞추기는 그녀의 특기 중 하나였고 나는 그 희생양 중 하나가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잠시 흔들렸지만, 오히려 그녀는 내가 잘 오고 있는지 나의 위치를 10분마다 체크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집에서 키를 잃어버리는 술버릇은 언제 고치실런지, 그녀는 이번에도 키를 찾느라고 조금 늦긴 하셨지만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미소녀를 만날 수 있었다. 우유냄새가 나는 듯한 피부에서 빛이 나는 듯 했다. 둏구나..  풀서비스로 제공한다고 하더니 정말 보자마자 내게 선물을 내밀었다. 급만남인데, 소소한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농담삼아 편지도 있냐 물었더니 정말로 있었다. 나의 닉네임이 의미심장하다는 쪽지.... 그 외의 글은 사랑 고백 한줄,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문장 한줄.

 

우린 동동주집에 가서 백세주와 소주를 시켜 들이 부어 섞고는 한치를 시켰다. 그녀는 오십세주 한잔에 오십병을 들이킨 것 마냥 급속도로 취해갔고, 난 남이 취하면 못취하는 성미라 그나마 취했던 술도 점점 깨어갔다 -_-; 가끔 멀쩡한 정신으로 취한 사람을 볼 때 (이런 경험은 지금껏 딱 2번 있는데, 내가 매번 먼저 취해버리기 때문) 놀라는 건 취한 사람의 눈이 빛나기 때문이다. 눈에 별이 총총 이런 느낌이 아니라 눈알 전체가 빛을 발하는 느낌이랄까..

 

뭐 여튼, 그녀의 대표적인 술버릇 중 하나가 필름불태우기란 걸 알기 때문에 난 누구에게도 쉽게 할 수 없었던 내 얘길 거리낌 없이 했고, 영광스럽게도 그녀는 들어주기도 하고, 말인지 당나귄지 모를 말도 주절주절 하기도 했다. 재미가 없다고 내게 화를 내기도 했고, 먼길을 와줘서 고맙다고도 했고, 드디어 만나서 너무 좋다고도 했고, 어쩐지 약간 슬퍼하기도 했다.

 

흘러가는 말, 말, 말들.

단연코 나보다 어리다고 생각해서 늙은 언니를 오라고 했다고 막 그랬는데, 알고봤더니 나보다 언니래서 대단히 놀랐지만 여전히 난 그녀를 어린이 취급했다. 택시비 왜 안주냐고 했더니, 준다 했다고 진짜 달라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사람 처음 봤다며 화를 냈다. 우리의 화제가 재미없다며 섹스 좋아하냐고 물어서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몸도 잘 가누지 못하면서 기어이 날 지하철 타는 데까지 데려다 주고 그녀는 사라졌다. 집으로 혼자 오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그녀가 편지와 함께 준 하루키의 [잡문집]이 가방도 없는 내 손에 들려 있었으니까. 는 아니고 오십세주가 뒤늦게 올라와 만취해버려서 집에오는 길 필름 폭발했기 때문에.

 

미소녀들은 마음 놓고 잘도 취한다. 왜냐면 미소녀가 취해서 꼬장을 부린다 해도 그 모습을 미워할 사람은 없으니까. 취해서 내게 꼬장을 부려도, 횡포를 부려도, 나는 그녀들과의 만남이 즐겁다. 다음엔 맨정신에 만나서 같이 취해요.

 

(이 글을 불태워진 그녀의 필름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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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 2011-12-27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필름은 님 얼굴외에 하나도 기억나는게 없는데
기분은 완전 업업업!되어있었어요:D
다시 한 번 감사~

Forgettable. 2011-12-27 23:3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즐겁게 남아있어 다행이군요 ㅋㅋㅋㅋㅋ 저도 롤러코스터 탄 기분이었어요!! >_<

타자치는 스누피 2011-12-28 0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ㅋㅋ 옆에 있었던 듯 생생한 묘사와 서술 재미나게 읽고 갑니다. 미소녀들은 비슷한 데가 많은 모양입니다.
겪어 본 사람만이 아는;;; 환상특급 같은 스릴과 서스팬스!!

Forgettable. 2011-12-28 09:1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정말 겪어 본 사람만 아는 ㅋㅋㅋㅋ
그나저나 스누피오빠님이시네요.. 바운티가 먹고싶어진다능 `-`)

세라비 2011-12-28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편의 에세이를 읽는 듯한...미소녀 좋지!

아. 나도 술친구가 많았으면 좋겠구나.

Forgettable. 2011-12-28 16:21   좋아요 0 | URL
ㅋㅋㅋ 술친구는 딱 몇명만 있으면 됨 ㅋㅋ
그마저도 없으면 나처럼 티비나 모니터랑 술 마심 되지요!

무해한모리군 2011-12-28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끼 잡문집은 그냥저냥이였는데 이 글은 좋네요 ^^
안녕.

Forgettable. 2011-12-29 11:43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전 하루키의 에세이가 좋다고 해서 약간 다를거라 생각하긴 했는데....
ㅋㅋㅋㅋㅋ 수상소감 부분에서 딱 막히네요 ㅋㅋㅋㅋㅋㅋ

아이는 잘 크고 있나요?
안녕 이라고 하지 말아요.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