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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면 운동 열심히 해도 살 안빠진단 말을 절감하면서 운동하는 요즘이다. 살 빼는 건 그냥 포기 했고. 술담배커피로 망가지는 건강을 조금이라도 챙기자는 의미에서 운동하는데, 살도 안빠지는데 운동하는 낙은 TV를 보는 것이다. 스펀지밥도 보고, 발리우드의 유치뽕짝 영화도 보고, 하지만 대부분은 BBC 뉴스를 본다. BBC 월드 뉴스를 보면서 가장 절감하는 것은 세계의 이슈가 되는 뉴스들을 우리 나라에선 크게 보도가 되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한국 뉴스를 보지도 않고, 관심도 없으니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포털 사이트의 화두가 되는 소식들은 별 쓸데없는 것들이라는 거.
아마 월드 뉴스의 성격상 또 특별한 것이긴 하겠지만, 이걸 하루에 30분씩 보다 보면 참 내가 작은 나라에서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세계에는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데, 한국에 돌아가면 눈 감고 귀 닫고 또 아등바등 거리면서 먹고 살 일에만 전념하겠지. 생각하니까 참 답답해지는거다. 호주 홍수난 거랑 스리랑카 홍수난 거 비교도 못해볼 테고, "I am so proud of being Egyption guy now." 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시위대의 인터뷰도 못볼테고, 아마존이 얼마나 망가져가고 있는지도 상상도 못해볼 것이다. 뉴스를 보면 볼 수록,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아지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아지는데 나의 미래는 결국 '그보다 더 미래'를 위해 한정되겠지 생각하면 참 무섭다. 난 이제 그런 나이인가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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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을 봤다. 이 곳에서 영화관 몇 번 가보진 않았지만, 평일에 줄 서서 표 사 본적은 처음이었다. 감독의 전작인 [레퀴엠]을 본 적이 있었는데 [레퀴엠]은 뭐랄까 외향적인 영화였다고 해야 하나. 영화의 주인공들이 얼마나 힘들고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지 보여주기 위하여 영화를 찍은게 보였다. 관객을 위한 영화. 레퀴엠이 죽은 당사자를 위한 음악이 아니라 장례식에 모인 사람을 위한 음악인 것처럼 철저하게 영화 밖의 관객들을 위한 영화였다.
그에 비해 [블랙 스완]은 관객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 철저하게 니나(나탈리 포트만)를 위한 영화였고,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자신을 잊고 그녀의 인생에 몰입하게 되어 버린다. [레퀴엠]과는 그런 점에서 반대지점에 있다. 관객은 니나를 동정조차 할 수 없다. 그녀는 그녀 자체일 뿐. 우리가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수 없다. 하찮은 관객일 뿐이니까. 영화를 본 지 꽤 됐고, 영화가 너무 좋아서 다시 봤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대해 아무 것도 말 할 수가 없다.
그나저나 난 아무 정보도 없이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내가 영화를 보다가 가장 충격 받았던 부분을 네이버 영화 정보에 버젓이 첫줄로 써둔 것을 보고 정말 더 놀랐다. 정보의 폭력성을 절감. 이 영화 보려면 줄거리 아주 조금이라도 안 읽고 가는 걸 추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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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열심히 하고 마칠 때 쯤에 엔딩 무렵의 나탈리 포트만처럼 신음소리를 낼 때가 있는데, 몸과 마음의 긴장감이 모두 풀어지는 기분을 새삼 공감하며 느끼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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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처럼 매일 같이 술먹고 노는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원서를 다시 좀 읽어 보려고 여러가지 E북이 들어있는 앱을 다운받았다. 그런데 조그만 걸로 보려니 읽히지도 않고 문장에 대한 감도 안와서, 공부할 겸 죽죽 쓰고 있다. 회사 후배가 보내준 나무연필을 깎아서 휘모리님이 주신 노트에 열심히 쓰며 읽고 있는 책은 쥘 베른의 [The mysterious Island]. 이왕이면 영미권 작가의 작품을 읽고 싶었는데, 고르다 보니 또 프랑스 작가다. 마르케스 외에 완독한 영어책은 쥐스킨트의 [향수]였었는데. 영미권 작가랑은 어째 인연이 안닿는 것인지.
노트북 붙잡고 있으면 한시간이고 열시간이고 시간이 잘도 가는데, 펜 잡으면 잠이 솔솔 와서 요즘 참 일찍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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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관리 하는건지 평소 생활이랑은 확연히 다른 건전해 보이는 근황 페이퍼 탄생. 실제로는 좀 미쳤고, 타락했고, 나태하며, 정신줄 놓은, 그렇지만 음란하지는 못해서 좀 그랬으면... 하는 삶을 살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