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고 친구들과 술 마실 계획을 세우며 가방을 싸고 있는데 한 무리의 남자아이들이 들어왔다. 새학기라 반 아이들의 얼굴을 다 외우지는 못했지만 분위기상 다른 반인 것 같았다. 리더는 우리를 지나쳐 시선을 고정하고 창문가까지 직진했다. 순간이었지만 난 그가 나를 그냥 지나쳤다는 것에 안도를 하고, 분위기가 심싱치 않은 것을 느껴 교실 밖으로 뛰어나오는 순간 소리가 들렸다. 바로 내 눈 앞에서 찌르는 걸 보고 있는 것만큼이나 선명한 청각 효과. 북찢는 소리와 피가 흐르는 소리, 비명 소리가 함께 들려왔고 난 친구와 함께 귀를 막고 교실 반대편으로 뛰기 시작했다. 시선을 똑바로 고정한 그의 눈빛이 하스미의 그것과 비슷했을까? 내가 달리던 그 복도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악의 교전]을 읽은 이후로 악몽퍼레이드다. 하루에 하나씩 꾸고 있다. 읽을 땐 막상 그렇게 무섭단 느낌은 아니었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하스미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하스미의 시점에서 모든 사람들은 단지 하스미가 조종하는 꼭두각시 인형이나 도구라는 느낌이 강했기에 자의인지 타의인지 나는 하스미의 입장에서 모든 사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었고 고백하자면 그가 실수없이 일을 잘 해내길 바라고 있기까지 했다. 처단되는 수많은 목숨들이 생명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것이 작가의 의도한 바였고 그의 능력이었다면 나는 감탄해마지 않았겠지만 혹시 내게도 무의식중에 숨어있는 잔혹한 부분이 있을까 두려웠다. 싸이코패스인 하스미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두려웠던 것이 아니다. 하스미의 입장에서 모든 이야기를 바라보고 나였으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라고 계속해서 되뇌어보는 내 자신이 두려웠다. 설령 그가 완전범죄를 기하고 아무 문제 없이 풀려나 내 목을 조여오는 한이 있더라도 그가 공들여 저지른 범죄가 들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나는 대체 어떤 인간일까? 

살육을 일삼는 게임에 중독이 되었던 적도, 나보다 힘 없는 생명체를 괴롭히는 것을 즐긴 적도, 고통에 대하여 무감각했었던 적도 없었다. 그런 내가 왜 하스미를 이해할 수 있었던 걸까? 사디즘과 마조히즘에 매료되었던 적은 있었지만 하스미는 그러한 쾌락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수학 문제를 풀듯이 눈 앞에 닥친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풀어나간다. 설령 그 해결 방법이 살인일지라도.  

   
 

"당신은 전율을 느끼고 싶어서 살인을 한다는 말이야?" 
하야미는 멍하게 하스미를 응시했다.
"아니, 그런 말을 하고 싶은게 아니야. 살다 보면 누구나 여러가지 문제에 직면하잖아? 문제가 있다면 해결해야하지. 나는 너희들과 비교해서 그런 순간에 선택의 폭이 훨씬 넓은 거야."
"뭐라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놈은.
"가령 살인이 가장 명쾌한 해결방법임을 알아도 보통 사람은 주저하지. 혹시라도 경찰에 발각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탓에 아무래도 공포가 앞서게 돼. 그러나 나는 달라. X-sports 애호가들처럼 할 수 있다는 확신만 생긴다면 끝까지 해내거든. X-sports와 다름없이 중간에 망설이지 않고 위험해도 과감하게 질주하면 의외로 끝까지 달릴 수 있다는 얘기야. 어때? 이 정도 설명이면 이해가 돼?"

 
   

기시 유스케의 작품은 언제나 그랬다.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하다. 마이클 코넬리의 [시인]을 얼마 전에 완독했는데, 그 때는 정해진 '악마'가 있었다. 나는 그 악마만 증오하고 두려워하면 됐었다. 피가 철철 넘치고 등장인물들의 공포가 내게도 전해왔지만 그저 살인범만 잡으면 된 것이었다. 하지만 [악의 교전]은 다르다. 작가는 매력적인 하스미를 두려워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가 모리타트의 휘파람을 불든, 미소를 지으며 살인을 일삼든, 아이들의 절규가 얼마나 처절했든, 그는 내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난 내가 두려웠다. 왜 난 이딴 인간(인간이라 할 수 있다면)의 이야기에 공감을 하고 있는걸까?  

오늘도 난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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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 2011-09-16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리뷰 좋은데요. 당장 사고 싶게 만드는.
근데 두 권이란 말입니까.ㅠ 사서 동생 줄까...

Forgettable. 2011-09-16 11:16   좋아요 0 | URL
제가 싸이코패스 취급당할까봐 두려워하면서도 이렇게 강렬하게 뭔가를 느낀 적은 처음이라서 이렇게 적을 수밖에 없더군요. ^^
예전에 우리 강호순에 대해 입장차이가 있었잖아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저 그 땐 많이 어렸었구나 싶더라구요. ㅎㅎ

하이드 2011-09-16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내게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 같은 느낌. 웰메이드고, 난 물론 기시 유스케의 모든 작품을 좋아하지만, 이 작품은 기시 유스케 팬이 아닌 사람들도 좋아할(?) 수 있는 작품. 나에겐 여전히 <천사의 속삭임>과 <신세계에서>가 탑!

Forgettable. 2011-09-17 13:17   좋아요 0 | URL
진짜 재밌었어요. >_<
책을 읽는 동안엔 몰랐는데.. 읽고 나서 한동안 무서워 무섭다를 입에 무의식중에 달고 있더란;;
사실 기시 유스케 작품 중에 [검은 집]만 읽지 못했는데..
전 이 작가 작품은 순위를 못매기겠어요. 그냥 좋은거/별로인거 로 나눌뿐 ㅋㅋㅋ 순위를 매길 수 없어 ㅠㅠㅠㅠㅠㅠㅠ

다락방 2011-09-16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어쩌지. 뽀 리뷰를 읽어보니 재미있을 것 같은데. 아직 장바구니 결제전인데 이걸 넣을까요 말까요. 아우.

Forgettable. 2011-09-17 13:18   좋아요 0 | URL
넣었어요??
아직 안샀다면 내 책 빌려줄 의향 있음 ㅋㅋ 하지만 전 기시 유스케 책은 소장을 원칙으로 하므로 드릴 순 없어요 ㅠㅠ 미안. ㅋㅋㅋㅋ

책좀 그만사 ㅋㅋㅋㅋ

비로그인 2011-09-1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심리 저도 알 것 같아요. 작가가 교묘하게 살인범을 동일시하게 만든걸까요? 악몽 꿀까봐, 이 책은 날 밝을 때 읽어야겠어요. 그래도 소용 없을 것 같지만... ( '')

Forgettable. 2011-09-17 13:2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아침에 읽었는걸요;;
소용없더라구요.

어제 친구랑 만나서 이책에 대해서 계속 얘기했는데.. 친구도 그러더라구요. 가끔 내 안에 있는 싸이코패스 본능을 일깨우는 작품을 만날 때가 있다고;; 우린 제정신으로 살기엔 너무 각박한 서울에 살고 있나봐요. 여튼 여운이 대단합니다.

mira 2011-09-16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얼마전 도서관에서 보았는데 앙 이런 내용이었군요 무서운 책이란 느낌이 ㅎㅎ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Forgettable. 2011-09-17 13:22   좋아요 0 | URL
오 벌써 도서관에 들어와있나요?
전 연체로 인해... 당분간은 책을 빌리지 못할 예정이라 ㅠㅠ
서재 가보니 추리/미스터리도 좋아하시는 것 같던데 기시 유스케에 한번 도전해 보세요! 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
 

살면서 쿨하지못해 미안했던 적이 있다. 헤어진지 1년이 지났는데도 마음이 그대로여서 이따금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새벽에 전화가 오면 받지도 못하곤 '너였지?'라고 이별한 연인에게 문자를 보낸다던가, 노래방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며 이별의 아픔에 질질 짜기도 했던 것은 약과다. 내가 깊이 짝사랑하던 이와 연애를 하고싶다 고백하는 친한친구에겐 쿨한척 하며 그러라고 해놓고서는 사랑과 우정에 관한 온갖 시를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전체공개'로 써두고는 일촌을 끊고 전화번호를 지워버리기도 했다.  

그 외 더 찌질한 기억들은 쪽팔리니까 자체 기억상실증이 발동하여 지워진듯 하지만 그렇게 찌질했던 나도 헉 소리 날 정도로 [미쓰 홍당무]의 양미숙은 찌질한심 그 자체다. 보면서 내가 얼굴이 다 빨개질 정도로 진상이다. 아무리 봐도 별 의미 없는 남자들의 행동을 죽 읊고는 "그래도 우린 오해를 하면 안된다, 남자들은 '그냥'하는거다." 라고 뭔가 대단한 사실을 깨우쳤다는 양 진지하게 말하는 양미숙의 얼굴을 보면 한숨도 나오고 웃음도 나오고 얼핏 눈물도 난다. 왜 눈물이? 나 역시 내게 남자친구 있냐고 묻는 남자들이 나한테 관심있어서 묻는 것이라 확신하기에 남일 같지 않더라.   

좋아하는 여배우가 몇 있다. 그 중 하나가 공효진이고 그녀의 호감형 인상을 참 좋아했는데 [미쓰 홍당무]에서 비호감의 매력을 발견하곤 그 의외성에 놀라고 재미있고 신기했다. 어떻게 주체가 안되는 곱슬머리에 안면홍조증이라 좋아하는 사람이 말만 걸어도 귀까지 빨개져버리는 촌스러운 여자 양미숙. 외모도 마음도 비호감이긴 한데 짝사랑하는 서선생이 보낸 특수문자 하나에 혼자 오해하고 모텔 엘레베이터에 쭈그리고 앉아서 엉엉 울고있는 모습을 보면 미워할 수가 없다. 얼굴이 남들보다 심하게 빨개지는 것처럼 그녀의 마음의 막도 남들보다 과하게 얇을 뿐이었던건 아닐까.  

찌질하지 않기 위해서 그 동안 어찌나 많은 노력을 해왔던가. 쿨한 척만 하고 속으론 여전히 찌질해서 결국엔 그걸 드러내곤 더 찐따같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 쿨한 여자가 되었다면 그 노력이 가상키나 하겠지. 난 모태찌질이다. 단지 지금은 찌질한 정도가 되기 전에 애초에 끊어버리자며 포기가 빨라졌고, 가끔 하는 부끄러운 행동들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정도로 만족하고 있다. '제발 쿨해지자'라고 술만 마시면 외쳐대던 날들은 갔다. 지금은 '쿨하지 않은게 어때서! 쿨한 사람이 어딨냐?' 라며 오히려 당당해한다.   

그래서인지 배우가 가장 멍청해보이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고등학교 축제에서 밀가루와 오만 잡쓰레기들을 맞아가며 공연한 양미숙과 서종희가 공연을 끝내고 깔깔거리며 교문을 나서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어보일 수 없었다. 찌질함과 쿨함은 한끝차이인데 난 대체 뭘 위해 노력했던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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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9-15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쉽게 얼굴이 붉어지는 타입이라서요, 그 사실만으로도 당황스러울때가 많아요.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 앞에서 붉어져서 좋아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구요. 이건 잘 치료가 안되더라구요. 전 제가 이렇다는 사실이 몹시 싫어서 이 영화를 끝까지 안 볼 생각이에요. 제 친구중에도 저랑 비슷한 타입의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랑 이 영화 얘기하면서, 우리는 절대 보지말자, 보면 감정이입 오만프로 되서 질질 짤거다, 이랬었어요. 이 영화는 얘기만 들어도 가슴이 너무 아파요. 어휴. 안봐 안봐 안볼거에요.

전 인간이 기본적으로 쿨해질 수 없는 동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쿨하다는 말을 멋지게 써먹는거겠죠. 쿨한 인간은 없어요. 다만 쿨한척 하는 인간이 있을뿐이지.

Forgettable. 2011-09-15 11:56   좋아요 0 | URL
이거 보고 은근히 울었다는 사람 많더라구요. 근데 전 의외로 괜찮았어요. ㅋㅋ 결말도 귀엽고 괜찮았어요. 그러니 봐도 나쁘지 않을거에요. 추천!!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빨개져도 문제지만 안좋아하는데 빨개져도 문제겠네요. 아 짜증나..
근데 락방님 내 앞에선 안빨개지는거 보면 나 안좋아하나봐.. 좋아하는줄 알았는데.. 안좋아한다고하는거 뻥인줄 알았는데......

근데 쿨한 인간들이 있더라구요. [악의 교전]보니까 ㅋㅋ 인간의 범주에 넣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튼 이 리뷰도 곧 써야지.

다락방 2011-09-15 14:33   좋아요 0 | URL
하아-
나는 안좋아한다고 말하는데 왜 내 말을 듣지를 않아요, 뽀? 나는 뽀를 안좋아합니다. 네? 알아들었어요?

ㅋㅋㅋㅋㅋ

Forgettable. 2011-09-16 09:37   좋아요 0 | URL
안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빨개지는 얼굴이니,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안빨개지기도 하나보죠?

라로 2011-09-15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님이 글을 참 맛깔나게 쓰신다는거 알지만 이 글은 또 뭐래요!!!^^
정말 좋은걸요!! 찌질한 인간이라 그런가, 제가 말이에요!!!
저에게 바치는 오마주로 혼자 착각하는 찌질한 중년 여성 다녀갑니다.ㅎㅎㅎㅎㅎㅎㅎ

Forgettable. 2011-09-15 11:59   좋아요 0 | URL
앗 감사합니다. ㅎㅎㅎㅎㅎㅎ 요즘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대폭 상실해서 억지로라도 낑낑거리며 쓰고 있는 중이에요 ㅋㅋ 쓰다보면 감을 찾겠지 싶어서 ^^
영화는 더 재미있어요. 웃음이 픽픽 나오다가 배우가 안쓰러웠다가 내가 안쓰럽기도 하고;; 그런 느낌을 잘 표현을 못하겠으니 영화 보세용 ㅋㅋ
찌질한 우리에게 격려와 박수를 보냅니다 ^^

비로그인 2011-09-15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이네요, Forgrttable님 :)

양미숙... 비호감인데 미워할 수가 없어요. 내가 뭐! 앙탈을 부려도 눈 부라리며 채팅을 해도 그저 귀여워 보이던 걸요. 사진 찍는 장면은 쉽게 지나칠 수가 없었어요. 왠지 예전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쿨하지 못한 나를 애써 괜찮다고 위로해줄 사람 어디 없나 주위를 살펴봐도, 딱히 위로 받을 구석을 찾지 못한 심정도 공감이 가고. [달의 제단]의 주인공도 찌질남이라면 찌질남인데... 그 책 생각도 나네요 ㅎㅎ

미지근한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되도록 따뜻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현실은 찌질하지만 ㅠㅠ)

Forgettable. 2011-09-15 14:0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말없는수다쟁이님^^

전.. 피부과 의사에게 웃겨죽으려고 하면서 '커진다커진다커진다..'를 얘기하는 장면이 너무 부끄럽고 막 죽을것 같아요 제가 더ㅋㅋㅋㅋ 하지만 미워할 수 없더라구요. 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가 얼굴이 더 빨개져 ㅠㅠ

전 차갑게 보이는 여성이 너무너무 매력적으로 보여요. 그 속에 뜨거운 불을 감추고 있는 사람요. 아마 제가 그러질 못하니까 동경하는 거겠죠..

무스탕 2011-09-15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영화 포스터중에 공효진 얼굴이 이~~따만하게 나온거 있잖아요. 머리는 잔뜩 산발을 하고.
그거 보면서 아, 공효진이 제대로 망가졌구나.. 했었는데 결국 영화는 안봤어요. (못봤던가..? --a)
찌질하면 어때요? 적당한 찌질은 인간미를 옴팡 높여줘서 차라리 귀여울때도 있지요 ^^

Forgettable. 2011-09-15 14:03   좋아요 0 | URL
공효진이 이거 찍으면서 이거 하면 예쁜여배우로 남기는 글렀구나, 했었대요. ㅎㅎㅎ
하지만 '배우'인생에 한 점 찍었다고 생각했어요. 예쁘게 나오진 않아도 멋있었거든요.
적당히 찌질하고 어느정도 컨트롤이 되면 괜찮지만 ㅋㅋㅋㅋㅋㅋ 양미숙은 ㅋㅋㅋㅋ 아... 모르겠어요. 귀엽긴 한데... 찌질함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

poptrash 2011-09-15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드 [루이]에 이런 대사가 나와요. "누구나 그런 순간이 있다. 쪽팔려서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은, 밤중에 이불을 차게 만드는 그런 기억들이.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의 40%은 그런 순간들이었다." 뽀님 때문에 저도 이 대낮에 손발 오그라드는 온갖 기억들의 역습을... ㅜ_ㅜ

Forgettable. 2011-09-15 14:07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아까 이 글을 쓰기 전에 한참 제 찌질함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 샤워를 하지 않고서는 못배길 정도가 되어 얼른 씻었어요. 막 구질구질함이 온 몸에서 기어나오는 것만 같은 기분 아시나요?
팝님은 어쩐지 쿨남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 똑같구나 ^^

Arch 2011-09-15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허지웅 책 봤는데 거기서도 미쓰 홍당무 얘기 나와요.
이 영화는 처음엔 그저 그랬는데 (박찬욱에, 대단한 신인 감독 입김이 셌죠) 곱씹어볼수록 좋더라구요.
나는 영화 보면서 낄낄대면서 웃었어요. 의사랑 면담할 때랑 채팅할 때. 이건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러면서.

양미숙의 뜨거움이 부끄럽고 멋쩍지만 거기서 나를 보니까 사랑스럽... 아니, 나도 얼굴이 빨개졌어요.

Forgettable. 2011-09-15 14:25   좋아요 0 | URL
전 박찬욱감독 각본이랬나 그래서 볼 생각도 안하고 있었거든요. 코믹을 가장한 잔혹? 외설? 뭐 이런 것들이 잔뜩 들어있을 줄 알구요. ㅎㅎㅎㅎㅎ
근데 첨부터 너무 빵빵터져서 ㅋㅋ 피부과의사랑 면담할때는 진짜 미치겠더라구요.

하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던게 아치님 말대로 그 안에 내가 있으니까.
아치는 책도 많이 읽네요~

pb 2011-09-15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모태 찌질이었는데
인생이 막장생활이 되면서부터 언젠가 찌질함이 사라져버렸어요..;
예전엔 속으로 끙끙 앓으며 뱉지 못한 말들이 이젠 진짜! 저는 속으로 말한 줄 알았는데 어느새 입 밖에 나와있더라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구남친들과 술마시는건 그냥 일상-_-

그나저나 저도 미쓰 홍당무 너무너무 좋아해요. 개봉날 영화관에서 이거 보다 뒤집어졌는데 감독 차기작이 진짜 궁금할 정도로. 이세상에 둘도 없는 캐릭터 양미숙ㅋㅋㅋㅋㅋ

Forgettable. 2011-09-16 09:40   좋아요 0 | URL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캐릭터이지만 또 보면 어딘가에서나 볼 법한 캐릭터이기도 해요. 그래서 더 매력적이고. 역시 찌질함과 쿨함은 한끝차이라고, 자기가 찌질하단걸 인정하고 당당해지기 시작하면 ㅋㅋㅋ 찌질한것도 쿨해지는거 아닌가? ㅋㅋㅋㅋㅋㅋㅋㅋ 몰라요 ㅋ

나도 구남친이랑 술먹고 싶다................ <-은근한 흑심 발동

mira 2011-09-15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영화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 때론 양미숙이 부럽더라구요 너무나 현실적이고 눈치가 빨라 피곤한 삶이라고 느낄때도 있는데 양미숙처럼 찌질하게 사는것도 나름 괜찮겠다는 생각이 ㅎㅎ

Forgettable. 2011-09-16 09:4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mira-da님 ^^
찌질한것도 이정도가 되면 부러울 정도이긴 하죠. ㅋㅋㅋ 이 영화 보신 분이 꽤 많네요. 이렇게 많이 댓글이 달릴 거라곤 상상도 못했;;

전 [고도를 기다리며]공연하는 장면이 너무 좋았어요.

turnleft 2011-09-16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최고의 장면은 "아빠 미워!" ㅋㅋㅋ

Forgettable. 2011-09-16 09:4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거기서 완전 빵 터졌지요. ㅋㅋ 아 댓글 달다보니 명장면들이 수도 없이 생각나요!

무해한모리군 2011-09-16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실생활에서 양미숙 찜쪄먹게 찌질한 행동을 많이 해봐서 이 영화를 보면서 어찌나 동감이 되던지요.
나는 정이 많고 마음이 따뜻해서 찌질한거라고 스스로 위로를 해봐요~
뽀님의 찌질한 모습은 상상도 안가는군요.

Forgettable. 2011-09-16 09:45   좋아요 0 | URL
전 휘모리님의 찌질한 모습이 상상도 안가는데.. 휘모리님이라면 아무리 찌질한 행동을 해도 멋있어보일것 같아>.<

그나저나 축하합니다. ㅎㅎ 축하할 일 맞죠? 전 기분이 이상해요;

Mephistopheles 2011-09-23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만 그런가요. 남자도 연애하다 헤어졌을 때 충분히 찌질해져요.^^ 그리고 전 저 쿨하다란 표현이 참 별로에요. 온혈동물 인간이 변온동물 파충류가 아닌 이상 어떠케 쿨할 수가 있다고...ㅋㅋㅋ 그리고 저 영화 찍고 나서 평소 공효진씨와 친분있는 감독이 이랬데요. "넌 이미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영화를 찍었기에 이제 영화 그만찍고 죽을 일만 남았다." 라고.. 그만큼 이 영화에서 공효진씨는 최고였어요. 물론 재 개인적인 사심이 가득한 평가이긴하지만 객관적이더라도 이는 충분히 공감하리라 보고 싶어요.

Forgettable. 2011-09-23 10:53   좋아요 0 | URL
전 영화 보면서 '이거슨 분명 공효진의 진짜 모습인게 분명해..'라고 거듭거듭 생각했죠.
연기가 아니잖아요? 이미??!!!

쿨해질 수 없는 찌질함을 인정하고 당당해질 때 우린 진정 멋있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ㅋㅋ 그래도 우리가 온혈동물이기 때문에 진정 차가워질 순 없겠지만요?! ㅎㅎㅎ 그렇다고 제가 멋있다는 건 아니고 ( '') 맞나? ㅋㅋㅋㅋ
 

일제 강점기든 뭐든 중요한 것은 시절이 아니었다. 나만 멋있으면 되고, 숨 한 번 꼴딱 넘어갈 것만 같은 여인과 영화 같은 사랑 한 번 찐하게 하면 된거였다. 영화 [모던보이]의 이해명이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그런 신념 때문이었다. 꼭 애국심이나 곧은 지조 같은 것이 신념이 될 필요가 있나? 낭만적인 사랑, 돈만 있으면 된다는 기회주의는 신념이 왜 안되나?   

"여기 답이 있어."라고 살랑살랑거리며 [나는 영국왕을 섬겼다]는 시작한다. 땡그랑 동전 소리에도 온갖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칠렐레 팔렐레 보이는 부자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 디떼는 돈을 뿌린다. 동전도 뿌리고, 지폐도 뿌리고 웃는다. 공짜로 얻은 돈만큼, 언젠가 그 배로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는 나의 미신은 영화에서 반대로 작용해서 돈을 뿌리고 다니는 디떼는 그 배로 돈을 번다. 그것이 천부적인 재능인지 아니면 운인지는 모르겠지만.  

돈을 흥청망청 뿌려대는 어린 디떼의 모습은 다 늙어 체념한듯 생활하는 늙은 디떼의 모습과 겹쳐 치기어리고 우스꽝스러워보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한 몫 잡았다 싶으면 더 좋은 직장으로 쿨하게 떠나버리는 모습은 영리해보이고, 아름다운 여인들의 나신을 예쁘게 치장해주는 모습은 낭만적인데다가, 히틀러의 통치가 시작된 체코를 과감히 버리고 독일 여자와 결혼해 히틀러에게 충성을 표시하는 모습은 비장해보이기까지 한다.  

참 가볍다, 싶으면서도 이런 영화 또 없나 하며 다른 영화에 몰입할 수 없게 만드는 이 영화는 이를테면 필립 말로의 이런 멘트와 비슷한 매력을 갖고 있달까. 

   
  84센트짜리 저녁식사는 버려진 우편 가방 같은 맛이 났다. 음식을 날라다준 웨이터는 25센트만 주면 나를 때려눕히고, 75센트에 내 목을 따버리고, 세금 포함해서 1불 50센트만 주면 콘크리트 통에 내 시체를 넣어 바다에 갖다 버릴 사람 같았다.  
   

하하하 

결국 이 영화는 내게 답을 주지 않았다. 빨강머리 아름다운 아가씨마저 떠나버린 국경 촌구석에서 틀어박혀 마을에서 주워온 거울로 온 벽을 장식해놓고는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노년의 가난뱅이 디떼만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저 그를 다시 부자로 만들어줄 우표를 파란 하늘에 훌훌 털어버리고는 백만장자 친구와 함께 직접 따른 맥주를 맛있게 마시며 "맥주맛이 일품이에요. 여기가 내가 돌아올 곳입니다."라 말하는 상쾌한 그의 모습에 웃음지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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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9-09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윽, 저도 맥주를 마시면서 웃고 싶은데 당분간은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라는게 몹시 유감이에요. ㅜㅜ

그나저나 뽀도 필립 말로한테 푹 빠졌군요!

Forgettable. 2011-09-10 17:10   좋아요 0 | URL
쌍커플 수술 ㅋㅋㅋㅋㅋ

필립말로는.. 정말 설레요. 두근거려. 매력적이야>.<

Mephistopheles 2011-09-09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도 보고 소설도 보면서...다떼가 돈에 집착하는 것 같은 느낌이면서도..
그 돈에 초월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늙고 혼자 남자 초라하고 외로워보여도..
왠지 그것마져도 초월한 듯한 느낌...^^

Forgettable. 2011-09-10 17:12   좋아요 0 | URL
그쵸? 젊었을 때도 돈에 집착하는 모습인 것 같은데도 동시에 돈 자체에는 초월한 듯한 모습이었어요.
오히려 '백만장자'라는 허상에 집착하고 있었던것이 아닌가.. 싶어요.
오랜만에 괜찮은 영화 하나 건졌습니다 ㅎㅎ

그나저나 무슨 안보신 영화가 없냐는 -_-

라로 2011-09-09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영국왕을 섬겼다] 저도 가지고 있는데 읽어봐야지,,,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요,,( ")
해피추석 되시어요~~~~.^^*

Forgettable. 2011-09-10 17:12   좋아요 0 | URL
저도 책 읽어보고 싶어요. 책이 원작이겠죠?

나비님도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

버벌 2011-09-10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움... 저는 가지고 있지조차도 않아요. 구해야겠네요. 저도 맥주.......좀........

Forgettable. 2011-09-10 17:14   좋아요 0 | URL
전 이 영화 IPTV에 들어있길래 우연히 봤어요.
책 구하시면 저도 좀........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맥주.. 정말 숙취에 아직도 어질거리지만 전 또 와인마시러 나갑니다 흐흐 주종이 와인이니 귀찮아도 나갈수밖에 없네요 ㅠ

파고세운닥나무 2011-09-13 0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컬럼비아 시, University of South Carolina에서 추석 안부 묻습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말이 잘 안 통하니 마음도 잘 안 통해 답답하지만요^^;
지내보셔서 아시겠지만 여긴 추석이 없잖아요?^^; 아내랑 조촐히 명절 음식인 잡채 해먹었답니다. 교회선 송편 2개 주더군요.
명절 잘 보내세요!!!

Forgettable. 2011-09-14 10:16   좋아요 0 | URL
저도 명절 때마다 잡채 해먹었다보니 이젠 잡채 달인 ^^^^ 한국명절, 캐나다 명절(?) 다 챙겼었죠. 하하
송편 2개.. ㅠㅠ 아 유학생활이란..
그래도 뭐 잘 지내시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공부 열심히 하시고..
종종 소식 전해주세요 ㅋ

다락방 2011-09-14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 나 오늘 아이팟 안가지고 왔어요. 그냥..그거 말해줄라고 ㅎㅎㅎㅎㅎ

Forgettable. 2011-09-14 10:16   좋아요 0 | URL
그러게 ㅋㅋ 답이 없어요!

다락방 2011-09-14 13:22   좋아요 0 | URL
혹시라도 말걸까 싶어서 ㅋㅋㅋㅋㅋ

Forgettable. 2011-09-15 09:06   좋아요 0 | URL
이 쯤 되면 말 안걸곤 못배기겠어요 ㅋㅋ

pb 2011-09-14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건 평소에 나 혼자 하던 것과는 확실히 틀렸다. 내가 몹시도 원하던 금지된 아름다움이었다. 이후로 나는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이 대사 기억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Forgettable. 2011-09-15 09:05   좋아요 0 | URL
전.. 그 대사가 기억이 안나요. ㅠ
피비님의 대사 찝어내는 능력은 최고 ㅋㅋ 전 마지막 대사도 인상깊게 느꼈으면서 기억못해서 검색해봤잖아요;;;;;;
영화 참 좋았어요 전. ㅋㅋ

lazydevil 2011-09-15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이, 영화도 있는 있는 줄 몰랐슴다.
역쉬 사람은 가끔 외출을 해야해. 특히나 늙을 수록 말이야. ㅡ.ㅡ
참, 어제부터 포겟님의 상위 리스트작인 <거미여인...> 읽기 시작했슴다.(딴님이었나?^^;)
요즘 나홀로 백쪽당 하느라... 다 읽을라면 한 삼일 걸리겠네요.ㅎㅎ(스포 사절!)

Forgettable. 2011-09-15 11:46   좋아요 0 | URL
저도 우연히 보게 됐는데 완전 재미있었어요. ㅋㅋㅋ
[거미여인의 키스]는 제 상위 리스트인건 맞는데 오래 전에 언급하고는 언급하질 않았는데 용케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전 그거 하루만에 다 읽었는데 ㅋㅋㅋㅋㅋ 리뷰 기대할게요?!!!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ㅎ

lazydevil 2011-09-15 11:52   좋아요 0 | URL
감기죠... 쿨럭..^^

Forgettable. 2011-09-15 12:00   좋아요 0 | URL
늙으신거 티낸다고 환절기에 감기나 걸리고 그러십니까? ㅋㅋ
(저도 걸렸어요 ㅠㅠ)

lazydevil 2011-09-15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흥청망청이라는 거... 언제 꼭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ㅠㅠ

Forgettable. 2011-09-15 11:46   좋아요 0 | URL
흥청망청 돈쓰며 노는거요? ㅋㅋ 하실 때 저도 좀 불러주세요 ^^ 화끈하게 놀아보아요 ㅋ
 

오랜만에, 얼굴 보면 두근거리고 만날 생각에 설렜던 사람과의 관계가 늦더위와 함께 끝났다. 그 어떤 관계든 마지막이 매번 최악인건 똑같아서인지 이젠 점점 익숙해져가는 걸 느낀다. 이런 더러운 기분엔 면역이 없을 것만 같았는데 그래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익숙해지더라. 감정은 점점 무뎌지고 뜨거웠던 나는 미지근하게 식어간다. 가끔 두렵다. 더이상 뜨거워질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니가 좋아. 너도 날 좋아해줬으면 좋겠어. 하지만 니가 날 좋아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나의 마음도 그렇게 깊은 건 아니니까. 이게 내 자기방어라던가 상처받지 않고 싶은 마음인지 뭔지는 모르겠다. 아마 아닐 것이다. 단지, '너'를 아직 만나지 못했을 뿐. 

[Let the right one in]
이 영화의 원제가 [렛미인]보다 마음에 각인되었던 건 아무래도 내 마음이 어느 때보다도 내가 그것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딱 들어맞는 것을 알아 보는 것. 그리고 그것을 내 퍼즐의 잃어버렸던 한 조각을 끼워넣듯 내 안으로 들이는 것.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던가. 생각한다. 사랑에 빠지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지, 사랑에 빠질만한 사람을 만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와 같은 종류의 사람을 첫눈에 알아보고, 평생의 관계를 쌓아가기 시작하는 어린 연인들을 영화에서 볼 때면 마음이 사무친다. 이제 갓 걸음마를 뗀 것처럼 휘청거리며 사랑을 시작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때묻고 편협해진 내모습이 자꾸 어린 연인의 모습에 겹쳐져 슬프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을 것을 이젠 알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장면들이 스쳐지나간다. 다 맞춰진 큐브, 피를 마시지 못해 점점 야위어가는 이엘린의 얼굴, 염산을 붓기 전의 아저씨의 목소리, 눈 위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비명을 지르는 코니, 수영을 하며 아이처럼 웃고 있는 오스카,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며 숨을 들이쉬는 아줌마, 숨을 참고 있는 오스카, 가방 안의 이엘린..  빛이 사라지면 너에게 가겠다는 이엘린의 쪽지까지.

그 끝이 어찌 될지 알면서, 연인들은 사랑을 시작한다. 사랑할 수밖에 없으니까. 나의 아름다웠던 시절은 이미 다 스러져버린 것 같아서 그들의 모습을 보며 괴로웠다. 내게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날들이 다시 오지 않을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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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9-07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는 새삼 뽀의 닉네임을 다시 한번 보게 만드네요. 늦더위와 함께 끝나버린 것 때문에. Forgettable.

뽀,
설레임이 끝나버린 건 애석하지만,
설레임은 또다시 찾아올거에요. 이건 그저 헛된 희망이 아니라 사실이에요.

Forgettable. 2011-09-07 18:36   좋아요 0 | URL
닉네임을 바꿀까.. 자꾸 잊혀질 기억만 만들고 있어요. ㅎㅎ
고마워요. 다시 찾아올 설레임을 한번 또 기다려 봅시다. ^^

다락방 2011-09-07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운내요. 나 성형수술(알죠?) 끝나고 좀 상태 나아지면 고기 먹으러 가요. 전도. 소주에 몸을 맡깁시다. 수술 잘되라고 기도해줘요.

Forgettable. 2011-09-07 20:26   좋아요 0 | URL
토욜이죠?? 고생해요.... 그 내가 얘기했던 레이저 저절로 작동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길 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ㅠㅠ
고기먹으러 갑시다. 그 전에 고기 좀 자제해서 그날 고기 많이 먹어야징ㅋ

2011-09-07 2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7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8 0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8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9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지 2011-09-09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렛미인> 보고 당장 미국판도 찾아서 봤는데. 며칠동안 내내 생각이 나더군요. (나는 미국판이 현실적이어서 더 좋았던가) 이 페이퍼 보면서 순간 여러가지 아련한 기분이 드네요. (더럽고 괴롭다는데.. 괜히 말 잘못 붙여서 나도 한방 먹는 거 아닌가;;;)

Forgettable. 2011-09-08 15:1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신지님 ㅋㅋㅋㅋㅋ 저 그런애 아닌거 아시잖아요 ^^*

미국판은 좀 더 다른느낌이라 하더라구요. 전 보는 내내 괴로워하면서도 북유럽 영화들을 꽤나 좋아하는 것 같아요. 영화 보면서 많이 울기도 했고. 뭐.. 아련한 느낌이라는게 맞는 표현인 것 같네요.
의외로 이런 감성적인 영화를 보고 좋아하셨다니 의외의외의외 ㅋㅋ

신지 2011-09-08 23:04   좋아요 0 | URL

의외라니, 몽환적이고 몽글한 분위기 특유의 색감이 얼마나 좋았는데..(지금 생각해보니, 유럽 여자애 남자애보다 미국 여자애 남자애가 더 좋아서가 이유였음, 미국판 남자애 '로드'의 그 주인공 ㅠ) 마치 천공의 섬 라퓨타처럼 " 딱 들어맞는 것을 알아 보는 것. 그리고 그것을 내 퍼즐의 잃어버렸던 한 조각을 끼워넣듯 내 안으로 들이는 것 " 나도 이런 느낌 때문이었음, 내내 생각났던 이유.

Forgettable. 2011-09-08 23:30   좋아요 0 | URL
동생도 미국판 좋았다고 하더라구요.
전 오스카는 좋았는데 이엘린의 느낌은 어쩐지 진짜 뱀파이어같아서 ㅋㅋㅋ 좀 무서웠음ㅋㅋ
천공의섬라퓨터 저도 봤는데 몇개의 이미지들 말곤 잘 기억이 안나요 ㅠ 여튼 제 글이 영화의 느낌을 되살렸다니 기쁘군요 :)

2011-09-08 2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8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11-09-09 0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판 주인공이..........
킥 에스에서 그 살벌하게 총질하는 소녀랍니다....

Forgettable. 2011-09-09 10:42   좋아요 0 | URL
대체 [킥애스]의 그녀와 [로드]의 그는 누구인가(두개 다 안봤음) 하면서 찾아봤는데 이 느낌도 괜찮군요. ㅎㅎㅎㅎㅎ 미국판도 볼까.. ^^

lazydevil 2011-09-15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영화 세번 봤는데.. 주인공 소년님이 콧물 찔찔 흘리는 장면에 크게 공감했답니다.
나도 그랬을 거란 생각에...ㅎㅎㅎ

이름도 어려운 감독님이 르카레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영화판을 연출했다네요.
<렛미인>에 대한 신뢰, 르카레의 애정으로 기대충전중입니다.

Forgettable. 2011-09-15 11:5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장면에 공감을 하시고 그래요 ^^
전 마지막 수영장씬에서 괜히 눈물콧물 짰네요;; 왜그런가 몰라..

아 르카레 궁금했는데.. 곧 개봉하나요? 개봉 전에 꼭 읽어봐야겠어요. ㅋㅋ
전 요즘 말로와 사랑에 빠져있다는 ㅋㅋㅋㅋ
 

 

취업을 준비하는 마음 상태가 좋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던 바도 아닌데, 그래도 힘들다. 자꾸 마음이 축축 늘어지는 걸 다잡아 올리는데 쏟는 에너지가 생각보다 엄청나다. 이건 뭐 주름살 수술도 아니고; 얼마 전에는 면접을 보고 왔는데, 과제로 낸 에세이를 피티하면서 면접관에게 대단하게 혼이나고 말았다. 다른 건 몰라도 글쓰기는 자신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걸로 비판받으면서 혼나니까 표정관리 안되고 식은땀이 줄줄 날 정도로 당황했다. 아.. 힘들어. 

영화 [내 깡패같은 애인]을 봤다. 박중훈을 좋아하지 않아서 별 기대 없이 봤는데 박중훈이 정유미한테 그런다. 우리나라 백수들 참 착하다고. 왜 프랑스같은 유럽에서는 일자리 없다고 정부에 데모하고 난리통인데 우리나라 백수들은 지가 못나서 취업못하는 줄 안다고. 니 탓 아니라고. 그러는데 마음이 짠했다. 내 잘못 아닌거지. 

책을 읽은 책 또 읽고, 도서관 가서 몇 권 빌려보고 하고 있다. 읽긴 읽는데 권태기인지, 선별 능력에 이상이 생긴건지 데면데면하다. 책 읽고 영감 팍팍 받아서 후르륵 페이퍼도 멋지게 쓰면 좋은데, 글쓰기고 독서고 요즘엔 당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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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1-08-28 0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영혼에 맞을 수 있는 보톡스라도 있으면 늘어지진 않을텐데 말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11-08-29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누군가 나를 평가하는 사람앞에서 뭘 하는건 언제나 별루예요.
놀러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