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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를 보러 옐로나이프에 다녀왔다. 짐을 풀고 다운타운으로 나서자마자 추운 거리를 전통의상을 입고 활보하는 원주민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에드먼튼에서 봐왔던 원주민들은 대부분이 홈리스처럼 보여서 경계의 대상이었는데 옐로나이프에 사는 원주민들은 그 도시의 생명자체 같았다. 도시 곳곳은 원주민들이 그린 아름다운 벽화와 감각적인 건물로 가득 차 있어서 흐리고 추운 날씨가 주는 찬 느낌 보단 활동적이고 따뜻한 느낌의 도시였다. 

    

애초에 여행이란 어디에 가든, 가서 무엇을 하든, 누구와 함께 가든, 이런 것들의 문제가 아니다. 모두 상관없이 그저 떠나면 좋은게 여행이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재미를 찾을 수만 있다면야 돈이 얼마가 들든,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시간에 쫓겨, 돈에 쫓겨 여행을 하고 그것을 자랑 삼아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면 저것은 허세가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어떤 걸 보고 어떤 걸 느꼈다란 감상 보다 1주일 동안 이만큼 많은 곳을 다녀왔다, 1달 동안 돈을 이정도밖에 쓰지 않았다, 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난 나도 모르게 선을 긋고 만다. 여행은 내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일부분인데, 그 여행을 통해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면 다른 부분에서도 부딪칠 것이 뻔하다는 선입견에서다.  

그렇다고 해서 돈을 낭비하는 여행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을 낭비하는 여행을 추구하는 것은 맞다. 새로운 도시에 가면 일부러라도 길을 잃어보는 것이 좋아하는 일 중에 하나인데, 옐로나이프의 올드 타운에서도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길도 없는 언덕에 올라가버리고 말았다. 별로 높아보이지도 않은 언덕인줄 알았건만, 막상 올라보니 눈 덮인 커다란 호수가 한 눈에 들어왔다. 

              

이리 저리 사진을 찍고 장난을 치다가 탁, 하고 누웠을 때 내게 다가온 하늘을 난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나 가까운 하늘은 충격이고, 기쁨이고, 슬픔이고,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오만가지 감정의 소용돌이에 놀라 벌떡 일어나버리고 말았다. 손을 뻗으면 잡힐 것만 같았고, 까딱하면 뚝 떨어질 것 같기도 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누우니 그제야 행복해서 웃음이 막 난다. 아, 이거구나. 싶었다. 이게 뭔지도 모르면서. 

똑딱이 카메라로 야경사진을 찍는 것도 무리인데, 삼각대도 없이 오로라를 카메라에 담는 것은 당연히 무리였다. 이틀밤 내내 밤은 흐렸고, 눈이 간간히 내리기도 했으며 게다가 풀문이었다. 월요일이 노는 날이라 이 주말로 계획을 짠 것이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날씨며 달이며 우릴 도와주지 않아서 큰 기대를 하진 않았었다. 흐릿하게나마 보기만 하면 다행이라 생각했었는데, 첫 번째날, 영하 25도 가량의 기온에서 몇 시간이고 기다려서 결국 작지만 선명한 빛의 흐름을 볼 수 있었다. 

자연의 오케스트라다, 눈물이 난다, 등등 여러가지 말들이 많았지만, 막상 난 조금 담담했다. 아무 빛도 없이 깜깜한 밤 하늘에서 울렁거리던 초록색 빛이, 뭐랄까.. 참 예쁘다 싶긴 했지만 대단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고개를 하늘과 수평이 되게 들어야 볼 수 있는 북두칠성이 더 신기했고(눈을 45도 정도 들어서 보는 평소의 북두칠성과 90도 제껴서 보는 북두칠성은 뭔가 달라 보였다), 가로등보다도 더 밝게 빛나는 보름달이 더 화려했다. 그래도 그나마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두번째 날. 하루 종일 날이 맑아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밤이 되자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이쪽 동네에서는 내 눈보다 일기예보가 더 정확하다.  

하지만. 눈이 내리기 전 한 10분 가량 아주아주 커다랗고 밝은 오로라가 한 차례 지나갔었고, 운 좋게 그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던 우리는 조용한 동네에서 소리를 지르며 뜀박질을 해댔다. 평생 오로라가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고 살았었고, 전 날에 하도 하늘을 뚫어지게 쳐다보느라고 환각까지 생겨 저것이 오로라인가 하기도 했었는데, 실제로 오로라는 그 무엇에 비교되지 않을 만큼, 대단하고 확연했다.  

진짜. 진실.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사람을 눈으로 쫓으며, 그 사람의 그림자를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진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목도하면 그 수많은 닮은 사람들은 다 허구며 허상이 되어버린다.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만이 진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고, 누구와도 닮지 않은 나만의 사람. 오로라가 그랬다. 그 자체로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진짜였다. 10분만에 그 흔적조차 사라져버려서 의심할 뻔도 했지만, 의심할 여지도 없이 난 그 오로라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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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1-02-22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일빠다! ^^ 뽀님~

오로라를 봤구나, 멋지다. 여행관도, 뽀가 바라보는 진심도 모두!
그곳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서 다행이에요.

Forgettable. 2011-02-22 15:16   좋아요 0 | URL
지금 누구 서잰 줄 알고 등수놀이를 예서 하는겁니까? 버릇없이... 쯧쯧..

ㅋㅋㅋㅋㅋ

아치 안녕? 보고싶어요.

Arch 2011-02-22 15:19   좋아요 0 | URL
어머! 실시간 댓글이다. 버릇없이에서 상심했다가 보고 싶다에서 개운한 표정이 되었어요. 아, 나는 어쩔 수가 없어요

Forgettable. 2011-02-22 15:23   좋아요 0 | URL
사랑을 갈구하는 아치. ㅋㅋㅋ

전 어째 여기서 감기도 한 번 안걸리네요. 날이 이렇게 추운데도;; ㅋㅋㅋ
하지만 건조하고 추워서 피부는 늙고 있어요. ㅠㅠ
그리고 버는 돈은 족족 모두 여행에 부어넣고 있어서... 한국가서 어쩌나 싶네요. 흑흑

그럼에도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회사는 적응할만 하죠?

Arch 2011-02-22 15:58   좋아요 0 | URL
다행히다... 아프면 속상하잖아요.

그래도 뽀는 잘 해내리라 믿어요. 시간을 낭비하는 여행을 하면 되는 거고. 보습에 집중하고 어쩌구 하는 뻔한 얘기는 하지 않을게요. 관리를 안 해서 내 피부가 요모냥인건 아니니까.

적응할만 하겠어요. 그냥저냥, '그저 가을 날씨가 참 좋군요'하는거죠

Forgettable. 2011-02-24 12:10   좋아요 0 | URL
전 뭐.. 저 아픈거나 남 아픈거에 별로 신경 안쓰는 타입이라. ㅋㅋㅋㅋ

잘 하겠죠. 잘 하고 있는진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한 번 그렇게 믿으려고 노력중이에요. 노력이랑은 참 거리가 먼 사람이긴 하지만 ㅋㅋㅋㅋㅋ

슬슬 여름 되면 볼 수 있겠네요!

무해한모리군 2011-02-22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비현실적이게 파란 색깔이네요.
저런 하늘을 가진 곳으라면 오렌지색이랑 노란색을 반반씩 칠한 집에 살고 싶어요.

Forgettable. 2011-02-24 12:11   좋아요 0 | URL
이게 카메라가 파란색을 잘 잡았느냐, 하면 그건 아니에요. 아 정말로 저렇게 파랗더라구요. 눈도 많이 오고 흐린 동네인데 운이 좋았죠. ^^

Ljh 2011-02-23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영화나 다큐에서만 볼수있는 줄알았는데...부럽구만

Forgettable. 2011-02-24 12:12   좋아요 0 | URL
여름이 2달뿐이래.. ㅎㄷㄷ 멋있더라 진짜.

turnleft 2011-02-23 0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부러워라. 나도 오로라 직접 보고 싶어요!!

Forgettable. 2011-02-24 12:13   좋아요 0 | URL
제 카메라가 후져서 잘 못잡아낸게 아쉬울 따름이지요. ㅋㅋㅋㅋ
필카는 솔직히 가져가긴 했는데 온도가 낮아서 밧데리 방전될까봐 켜지도 못했어요.

오로라 보러 한번 다녀오세요. 얼마 안걸리잖아요 거기서!

Mephistopheles 2011-02-23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진짜 부럽네여.....그대는 천상천하유아독존...

Forgettable. 2011-02-24 12:14   좋아요 0 | URL
하하 어쩐지 이 말 들으니 칭찬같아 기분이 좋네요.
사진 좀 더 잘 찍혔으면 더 좋았을텐데 아쉬울뿐..

가시장미 2011-02-23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환상... 그 자체군요.^^
믿어지지 않는 풍경입니다!!

Forgettable. 2011-02-24 12:15   좋아요 0 | URL
그쵸? 저도 정말 놀랐어요.
멋있는 사진들 많이 보고 간 터라 약간 기대했었는데 정말이지 기대 이상!!
눈으로 보지 않으면 정말 몰라요 이 느낌 ㅠㅠ

기웃 2011-02-24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빌 브라이슨이 오로라를 보기 위해 노르웨이를 갔듯, 북구 유럽의 오로라만 생각했었지 캐나다는 생각도 못했네요. 경이롭다는 단어는 오직 자연만이 붙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마지막 오로라의 사진은 그 경이로움을 온전히 담을 수 없기 때문인지 뭔가 '으스스'하군요.

Forgettable. 2011-02-27 15:27   좋아요 0 | URL
전 오히려 알래스카만 생각하고 있어서 얼마 전에 [북극의 연인들]을 보고 놀랐었어요. 왠 핀란드? 요랫음.

약간 무섭죠?
실제로 보면 더 무서워요. 압도적이라고 해야 할까.
저 빛이 스물스물 움직이면서 사라져버리는데, 정말 나의 존재감이 그렇게 초라하게 느껴졌던 적도 없었던 것 같네요.

이 곳에서 하도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서 이제 왠만한 하늘은 하늘같지도 않네요. ^^

2011-03-01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진 정말 예쁘네요.
집에 내려가서 어머니랑 사진기 들고 산을 올랐는데 왠지 삭막한 풍경만 찍게 되더라구요;
아니 사진보다는 그곳의 운동기구들에 집착하여
굳은 몸을 풀며 시원함을 느끼는 스스로를 돌아보자니 이제 이대로 늙어가는건가 싶네요 ㅜㅡ

Forgettable. 2011-03-04 13:29   좋아요 0 | URL
코님께 사진 칭찬을 들으니 기쁘군요!!!

굳은 몸을 풀며 시원함을 느낀다니... 아니 혹시 스트레칭 중독?? ㅋㅋㅋㅋ 운동도 근데 정말 은근히 중독성 있더라구요. 저한테 늙어간단 말을 하시다니!! 흥! 아직 어리잖아요 게다가 대학생ㅋㅋㅋㅋㅋㅋㅋㅋ

한번도 카메라에 대한 욕심을 부려본 적이 없는데(????!!!) 오로라 찍을 땐 좀 더 좋은 카메라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피비 2011-03-03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여행하다 만난 애들중에 특히 유럽배낭여행자들은 돈자랑하는애들이 너무 많았어요. 돈 많다는 자랑이 아니라 얼마나 적게 썼나 하는 그런 자랑. 무슨 군대갔다온 사람 경험담 듣기 싫은것처럼 걔네 막 진짜 찌질하게 돈 깎고 갈 곳 못 가고 돈 생각만 하며 밥 시키고 이런거 보니까 진절머리가 났다는.


+저도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보는게 가장 좋아요. 출발비디오여행도 그래서 넘넘 싫어하는 코너중 하나였는데 요새 영화관에 안가다보니 가장 즐겨보는 코너가 되어버림 ㅠㅠㅠ거기 방송작가들 말빨이 너무 장난이 아니라 ㅋㅋㅋ
블랙스완 며칠전 봤는데 아...ㅠ_ㅠ 리뷰쓰기귀찮아서 여즉 냅두고 있음;

Forgettable. 2011-03-04 13:33   좋아요 0 | URL
인도여행때는 그런 사람 못만났어요??? 전 비행기표값까지 80만원 썼다는 사람 만나서 친구랑 뒤에서 진짜 욕했거든요. 도대체 얼마나 깎은거냐며;;;;;; 정말 여행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너무 돈에 집착하게 되는건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더라구요.

출발비디오여행 영화 안볼 땐 정말 최고의 프로그램이죠. 신기한 TV 서프라이즈 끝나면 그거 보곤 했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 블랙스완 보셨어요? 괜찮죠? 마지막엔 정말 소름이 좍좍좍- 전 그거 리뷰 못쓰겠더라구요. 영화 자체만으로도 할 말이 없어져서.

그나저나 대만에서 9시간 경유하며 기다리게 되어버렸는데... 그 동안 파인애플 과자 다먹어버릴지도 모른다능 ㅋㅋㅋㅋㅋ
 


 



 

 

   

 

바래고, 지워지고, 버려진 것들.  

저물녘의 아픔이 날 깨우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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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10-05-01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님의 사진은 계속 볼 수 있는거죠??

Forgettable. 2010-05-03 10:53   좋아요 0 | URL
그럼요. :)

순오기 2010-05-01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 사진 좋다!!!

Forgettable. 2010-05-03 10:54   좋아요 0 | URL
호호 고맙습니다!!!

뷰리풀말미잘 2010-05-08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중간 사진 내가 아는 사람이에요?

Forgettable. 2010-05-08 16:28   좋아요 0 | URL
역시 실루엣만으로도!
 

*
남부 아열대 지방의 추억은 그 공기에 그대로 녹아 있어서 원하는대로 새로 주조해낼 수 있었다. 현실이 어디 그저 있는대로의 객관적 현실이었던가, 우리는 악마가 불어넣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듣되 목소리만 못듣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 보고, 듣고, 체감하고 있는 이 현실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거든요. 뇌가 그 재량에 의해 선택한 정보로 재구성된 것이지요. 따라서 부분적으로 선택되지 않은 요소가 있는 경우, 당사자는 전혀 지각할 수 없어요. 기억은 갖고 있어도 의식은 무대에 올라오지 않으니까요. 

 아아- 우리들이 보고 듣는 것은 모두 가상현실인 셈이로군. 그것이 진짜 현실인지 아닌지 본인은 구별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지-.

 
  [우부메의 여름] 中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형형 색색의 건물과 더운 젊음의 열기, 뜻을 알 수 없는 그림 같은 간판들은 내게 타국에서 보냈던 옛 기억을 불러일으키게끔 작용했다. 함께 있어 두렵지 않았던 습기찬 새벽, 사랑하는 것을 멈추는 것을 배웠다고 하던 내가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닫던 순간, 우리의 미래가 엇갈리는 게 참을 수 없이 비극적이었던 그 날까지.  

도망치다시피 간 그 곳에서 나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이 사람은 외길에서도 고민한다 했다고 누군가 내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사람은 꿈 속에서도 꿈을 꾼다. 고 혼자 생각했다.  

 

**
아열대 기후에 녹아 있는 추억도 잠시, 맛집을 찾다 길을 잃어도, 택시를 타도, 나는 길거리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거리. 거리. 거리.



 

 


***

   
  이처럼 사소한 일에 정신을 쏟다 보면 소중한 시간들이 뭉텅뭉텅 낭비되고, 여행객들은 조토 작품의 뛰어난 질감이나교황 제도의 타락상을 알아보려고 이탈리아를 찾았다가 그저 푸른 하늘과 그 아래 사는 남녀들만을 기억한 채 돌아가기도 한다.  
  [전망좋은 방] 中

짧은 여행에 단 한 권의 책을 고르는 도박을 즐겨하는 나는 예전 [바리데기]에 이어 또 한번 [전망 좋은 방]을 고르는 잭팟을 터뜨렸다. 작가는 조토 작품이나 베데커 여행 안내서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그저 푸른 하늘과 그 아래 사는 남녀들이며, 소중한 시간들이 뭉텅뭉텅 낭비하는 것이 결고 낭비가 아님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 놓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전기선이며 길거리의 행상인들, 알파벳으로 쓰여있지만 뜻을 알 수 없는 형형색색의 간판, 알록달록한 자동차들이 달리는 도로에게 정신을 팔고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두시간을 걷고 묻고 걸으며 맛집을 찾는 것은 더운 날씨에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는 택시만 타면 다 데려다준다고 말하던데, 나는 그 시간만큼 기억에 남는 시간이 없었다.

   
  "책은 날 줘요. 그걸 루시가 들고 다니면 안돼요. 그냥 이리저리 헤매 다녀 보는거예요." 

그래서 둘은 끝없이 펼쳐진 회갈색 거리들을 헤매고 다녔다. 널찍함이나 아름다움과 거리가 먼 그런 골목은 도시의 동쪽 지역에 차고 넘쳤다. 루시는 곧 루이자 아무개 부인이 뭐가 불만이었는지에 관심을 잃고, 대신 스스로 불만을 품게 되었다. 그러던 중 홀연히 이탈리아가 황홀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길거리에서 파는 기타가 신기하고, 태국에서 타고다니던 '뚝뚝'이 이곳, 필리핀에도 있어서 또 신기했다. 신기한 꽃이나 자동차, 한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사소한 물건들에게 정신이 팔려있으면, 갑자기 어딘가에서 나타나 내 팔을 잡아채고 가던 길로 다시 끌어주던 누군가가 아주 조금 필요하기도 했지만, 너무 늦지 않게 식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무슨 파스타와 립요리. 식당을 찾아갈 때 너무 돌아돌아서 간 나머지, 집에 돌아가자마자 약도를 상세히 그려서 블로그에 올려두겠다고 한지 벌써 한달이 넘게 지나버려서 길은 커녕, 식당 이름; 요리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다. 한국 사람이 많이 오는 식당이라 그런지 종업원에게 팁을 주니 2pm의 노래를 불러주었다.;;    

 

****

   
 

"전망이라고요? 아, 전망! 전망이 좋으면 기쁜 일이지요!" 

(중략) 

피렌체에서 깨어나는 일, 햇살 비쳐 드는 객실에서 눈을 뜨는 일은 유쾌했다. 붉은 타일이 깔린 객실 바닥은 실제와는 달리 겉으로는 깨끗해보였다. 천장에 그려진 그림에서는 분홍색 그리핀과 파란색 아모리니들이 노란색 바이올린과 바순의 숲에서 노닐고 있었다. 거기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일, 익숙하지 않은 걸쇠를푸는 일도, 햇빛속으로 몸을 내밀고 맞은 편의 아름다운 언덕과 나무와 대리석 교회들, 또 저만치 앞쪽에서 아르노 강이 강둑에 부딪히며 흘러가는 모습을 보는 일도 유쾌했다.

 
   

  


뭐, E.M. 포스터가 그린 이탈리아의 전망 좋은 방과 아주 유사하진 않아도 그 느낌은 꽤나 비슷하다. 필리핀의 고급 리조트의 넓은 침대에서 깨어나는 일, 햇살 비쳐드는 객실에서 눈을 뜨는 일은 유쾌함을 넘어서 감동적이었다. 다시는 배낭여행을 하며 햇빛도 안드는 우중충한 도미토리에서 깨어나는 일 따위 할 수 없을 것이다. 나 혼자 넓은 풀장을 독차지하고 맘껏 물장구 쳐도 좋을 만큼 풀장은 여러개였고, 마음에 안들면 조금 걸어나가서 프라이빗 비치에서 야자수 그늘 아래 누워 책을 읽거나 수영을 해도 좋았다.   

 

*****

  

   
 

저 멀리, 저녁과 아침에서
열두 바람이 부는 하늘에서
나를 이루는 생명의 재료가
불어왔네, 나 여기 있네. 

"조지도 나도 이 사실을 잘 알아요. 그런데 그렇다고왜 괴로워해야 하는거요? 우리가 바람에서 왔고, 그래서 바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잘 알아요. 인생이란 영원한 평탄 속에 불거진 매듭, 얽힘, 흠집이라는 것도 말이에요. 하지만 그게 왜 불행의 이유가 되야 하는거요? 그저 서로 사랑하고 일하고 즐거워해야 하지 않소? 나는 이런 세상 한탄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    

어느 도시의 분위기에 겨우 적응할 수 있는 가장 짧은 기간(일주일 정도로 본다)도 못채우고 부랴부랴 돌아와야 했다. 책 한권도 모두 읽지 못했던 일정이었으니, 에머슨 노인의 말에 공감하며 낯선 공기를 내것으로 만들 새도 없었다.  

남은 건 7D 건망고 몇봉지와 캐리어 안에서 터져버린 산미구엘 캔 뿐이었나. 싶을 만큼 아쉬움이 컸다.  

길거리 음식도 먹어보지 못했고, 시내 골목골목을 후비며 다니지 못했고, 시장에도 가보지 못했고, 다른 여행객들과 삼삼오오 어울려 놀지도 못했다. 너무 급격히 개발되서 여행객의 뜻하지 않은 소소한 재미보다는 관광객의 편의에 모든 자본이 집중되어 있었고, 외국인 남자들은 현지 여성들을 장식품처럼 달고 껄껄댔으며, 더운 밤에 거리로 몰려나와 길 잃은 듯 방황하는 것처럼 보이는 젊은이들의 갈 곳이 불투명해 보였다. 눈 닫고 귀 닫고, 쓴 돈만큼 편히 쉬었으면 되었다는 생각만 할 수 있었다면 에머슨 노인의 말이 어떻게 들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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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0-03-09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시도해보는 책이야기와 사진을 짬뽕한 여행기.
산만하군.

다락방 2010-03-10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좋은데요. 책의 인용과 여행지의 사진보다는 군데군데 섞인 뽀게터블님의 느낌과 감상이 더 좋아요. 아마 그것들을 인용과 사진이 더 빛내주었겠지만.

눈 많이 오는데 늦지 않게 일하러 갔어요?

Forgettable. 2010-03-10 11:02   좋아요 0 | URL
사실 공들인건 사진이랑 인용구인데 ㅋㅋ 항상 너무 공들이면 반응이 미미하더라구요 ㅎㅎ
저 안늦었어요. 실은 오는 길에 같은 동네사는 파티쉐 아이만나서 수다 떨며 오느라고 초큼 늦었어요. 저 근데 왜케 졸리죠. 어제 열시에 잤는데 ㅡㅡ

날씨가 안좋아서인지 엄청 한가하네용ㅋㅋ

다락방 2010-03-10 13:08   좋아요 0 | URL
난 뽀게터블님의 이 문장이 너무 좋아서 몇번이고 읽었어요.

'신기한 꽃이나 자동차, 한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사소한 물건들에게 정신이 팔려있으면, 갑자기 어딘가에서 나타나 내 팔을 잡아채고 가던 길로 다시 끌어주던 누군가가 아주 조금 필요하기도 했지만'

눈앞에 풍경이 그려지는데 꽤 따뜻하잖아요. 다정하고. 정신이 팔려있는 나의 팔을 잡아채고 가던 길로 다시 끌어준다니, 아, 다정해요. 마음이 가는 그런 모습이에요. 가끔 내 로망들중 어떤것들을 뽀게터블님은 실현한 것 같아요. 물론, 이번여행기에서 그랬다는 글은 아니었지만, 뭐, 그렇다구요.

Forgettable. 2010-03-10 15:46   좋아요 0 | URL
전 좀 애정결핍증인가봐요. 누가 절 그렇게 챙겨주는게 좋아요. 막 어리버리 하다고 탓하면서도 뒤에서 다 챙겨주고, 옆에서 끌어주고 그런거 ㅋㅋㅋ 근데 실상은 제가 챙겨주고 (정말? ^^)

예쁜 문장 잘 골라내기 대가인 락방님께 인정받았다니 왠지 기분이 좋네요.
댓글 추천기능 있다면 요 댓글을 베플로!! ㅋㅋ

머큐리 2010-03-10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족 안 달고 추천으로 의견표시합니다..ㅎㅎ

Forgettable. 2010-03-10 11:03   좋아요 0 | URL
흐흐 고맙습니당ㅋㅋ
오늘 너무 심심해용

다락방 2010-03-10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심심해요? 그러면 나 캬라멜마끼아또 한잔만 만들어줘요. 나 그거 마시고 싶어요. 히히

Forgettable. 2010-03-10 15:47   좋아요 0 | URL
카라멜 마끼아또.. 저 오늘 녹차라떼도 벌벌 떨면서 만들어봤다능 ㅋㅋㅋㅋㅋㅋㅋ
아직도 우유 앞에 서면 가심이 두근두근 합니다요

lazydevil 2010-03-10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둘은 끝없이 펼쳐진 회갈색 거리들을 헤매고 다녔다.'
부러워요, 그 '둘'말이에요ㅜㅠ

포겟님의 인증샷이 없어 아쉬워요^^

Forgettable. 2010-03-10 15:56   좋아요 0 | URL
다행히도 그 '둘'은 연인이 아닙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되게 좋아해)

안그래도 치파오(!!) 입고 셀카 몇장 찍어둔것 중에서 고르다가 이게 무슨 쇼인가; 하며 왠지 불쌍해보여서 그냥 탈락시켰습니다.
다음기회에.. ^^

머큐리 2010-03-11 10:45   좋아요 0 | URL
치파오(!!) 입고 찍은 셀카를 올려라~ 올려라~

Forgettable. 2010-03-13 21:38   좋아요 0 | URL
흐흐 생각좀 해보겠습니다 ㅋㅋ

비로그인 2010-03-11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오토..(쓰신 글중에 눈에 띄는 이름인, 조토의 그림들이 생각나서 이렇게 간단히 적었다가. 다시 쪼끔 길게 남깁니다. ^^)

Forgettable. 2010-03-13 21:37   좋아요 0 | URL
전 어떤건지 몰라서 책 읽을 때 궁금해했었는데, 바람결님의 점두개를 보니 왠지 굉장히 궁금해졌어요.
바람결님은 음악에만 소양이 깊으신줄 알았는데 상당히 많은 그림도 보셨나봐요.
저도 언젠가는 볼 수 있으려나요 ㅎㅎ
 

이건 아니다. 

또 다시 일에 파묻힌 꿈을 꾸면서 잠을 설치고, 허리가 아파서 자꾸 깨도, 내일 아침을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잠을 청하고, 새벽 5시에 눈을 떠서는 그래도 1시간 더 잘 수 있겠다며 안도하고, 어둠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시끄러운 알람에 눈을 겨우 떠서는 대충 씻고 밥을 먹고 버스에, 지하철에 올라 어두운 꿈속으로 다시 달려간다.  

정말 이건 아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후덥한 공기와 눅눅한 습기가 날 압도한다. 처음 온 나라임에도 그립고 아련한 향내를 맞닥뜨리는 것만 같다. 새벽이지만 길거리에는 활기차고 젊은 걸음이 가득하다. 택시에서 내려 누구라도 끌어안고 인사를 하고, 함께 손잡고 길거리 식당에 앉아 뜨거운 국수라도 후후 말아먹어야 할 것만 같다. 알록달록한 색깔과 알 수 없는 글자들로 가득찬 어두운 거리를 뒤로 하고, 햇빛이 창으로 투명하게 스며드는 방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푹신한 침대 위에서 눈을 뜬다. 

그래, 이거지.  

난 지금 잠시 꿈을 꾸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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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02-08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한겨울밤에 한여름의 꿈을 꾸셨으니 시공을 초월하는 일교차만큼은 확실하겠군요.

Forgettable. 2010-02-08 11:52   좋아요 0 | URL
에고 죽겠어요-_-;
지금이 추운 여름입니까, 따뜻한 겨울입니까? ㄷㄷㄷ

lazydevil 2010-02-08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겟님... 취생몽사의 내공이 절정에 이르셨다봅니다.ㅡ.ㅡ;; 걱정...

2010-02-08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09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09 2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10-02-08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왔구나, 왔어! 뽀가 왔구나~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멋진 사진을 들고, 뽀님이 왔어요! 무사히 잘 돌아와서 다행이에요.

Forgettable. 2010-02-08 11:59   좋아요 0 | URL
반가우면 추천좀. 굽신 ㅋㅋㅋㅋㅋㅋ
뭐 얼마나 갔다왔다구요-_-; 지금 뭐가 꿈인지 모르겠어요. 취생몽사입네다. (사자성어 하나 배우삼)
이 사진은 허접 뽀샵이네요. ㅋㅋ 어째 눈으로 본 것보다 잘 안나오대요~

Arch 2010-02-08 13:09   좋아요 0 | URL
추천했어요. 크~

perky 2010-02-08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좋아요좋아!
여행 잘 하시고 건강히 돌아오세요!

Forgettable. 2010-02-08 13:42   좋아요 0 | URL
아뇨아뇨. 벌써 댕겨왔어요! ^^

머큐리 2010-02-08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뽀님 떠난간가요??

Forgettable. 2010-02-08 13:43   좋아요 0 | URL
아뇨아뇨. 벌써 댕겨왔어요! ^^ (2)
3.4초 였습니다. ㅋㅋ

뷰리풀말미잘 2010-02-08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악!! 저곳을 마구 뛰어다니고 싶어요. 야생마처럼! 갑자기 떠나지 못한것이 한스러워질 정도로 멋진 사진이에요! 저 야자수라면 하루 왼종일이라도 매달려 있고 싶어요!

Forgettable. 2010-02-08 16:31   좋아요 0 | URL
아무리 생각해도 캐리어에 넣어갔어야 했네요. ㅎㅎㅎ
전 뛰어다니진 않았고, 헤엄쳐다녔어요. 하도 풍덩거리고 놀았더니 세상에, 배땡기고 팔 아프고, 온 등이 다 익어서 가렵고 아주 난리입니다. ㅋㅋ

무스탕 2010-02-08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저런곳엘 혼자 다녀오셨다구요? 아니죠? ^^

Forgettable. 2010-02-08 16:31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
이런 곳엔 혼자 가야 로맨스가 싹튼다구요.(속닥속닥)

뷰리풀말미잘 2010-02-08 18:16   좋아요 0 | URL
정말 뽀는 사려깊은 사람이에요.

Forgettable. 2010-02-09 21:04   좋아요 0 | URL
다.. 제 personality의 깊이는 다 경험에서 비롯된;;;

비로그인 2010-02-10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의자 앞 물이 째끔 적어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후아.. 오늘 밤 저곳으로 여행 다녀오겠습니다. +_+

Forgettable. 2010-02-12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조트에 딸려있는 프라이빗 비치인데, 아무래도 자연산이 아니라서요.. 저 너머엔 조금 더 깊은 바다가 있는 것 같은데 전 그냥 수영장에서만 놀았습니다. 러시아 꼬마애랑 같이 미끄럼타구요 ㅎㅎㅎ

여행 성공 하셨나요? ^^

비로그인 2010-02-13 00:02   좋아요 0 | URL
(속닥) 비몽사몽으로 출근했어요~
 

짜잔!! 

프랑소와 오종의 쌔 영화가 내일 개봉한다. 한 때 그의 대담함에 사로잡혀서 단편까지 다 찾아다 보았었는데, [타임투리브] 부터는 왠지 시들해져서 보지 않았었다.  

이번에도 역시 가족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왠지 아기가 나오니까. -_- 다음주에 봐야지. 혹시 프랑소와 오종 좋아하시는 분 저랑 같이 보러 가실래요?  

 

 용서는 없었다. 제목이 반전을 암시할 줄이야..  

 작정하고 재미있으라고 만든 영화이고, 기대에 부응하여 아주 재미있다. 2시간이 후르륵 지나간다. 난 근데 설경구가 왜케 멋있지.. 뭐가 멋있냐면, 그의 어깨라인과(..) 훤칠한 키와 남자다움이 좋다. 괴로움에 울부짖는 연기는 약간 패턴화 된 것 같긴 하지만, 역시 최고. 류승범은.. 파스타에 나왔는데 무서웠다. 친구가 기겁하면서 문자왔다. 소름끼친다고.  

 한혜진인가.. 이다해 닮았는데, 약간 깬다.  

용서할 수 없는 일이 있더라. 차라리 내가 죽는게 나을 정도의 증오. 점점 자극에 면역이 되어가는 나를 무덤덤하게 바라보았다.

 이 영화도 재미있었다. 

 남자배우는 약간 동양인 삘이 나면서 아주 멋졌다. 써머가 마지막에 책을 보다가 만난 남자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사랑의 우연성을 진작에 알았다며 뿌듯해했다. 젊은 날의 상처와 아픔과 희망이 스치듯 지나갔고 난.. 로맨틱 영화를 진지하게 보기엔 너무 연애를 많이 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왠지 아빠미소를 짓고 있었단;

 다 함께 노래부르며 춤추는, 뮤지컬 컨셉 씬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
어제 두명의 부고를 들었다. 한명은 안친한 선배의 아버지. 한명은 안친한 친구. 누군가의 결혼소식을 들어도 놀라지 않을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 엊그제였는데, 누군가의 죽음을 들으니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죽음 자체가 두렵지는 않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하루에 두 죽음이 닥쳐오고, 돌이켜보니 아쉬운게 많다. 아직은 죽지말고 신나게 살고싶다. 내 목적은 이거다. 신나는거. 재밌는거. 

**
인수인계서를 작성중이다. 아웅, 지루해. 이게 답이 없는 일이니까 진짜 지루하다. 지겹게 1시간에 1줄씩 쓰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어제 거울을 보는데 옆구리살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튜브 끼고 수영장 갈듯.. 충격받았다. 얼굴이 엄청 뚱그래졌대서 뻥인줄 알았는데 진심이었던거다....... 3월되면 수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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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2-03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죽음이 두려워요. 타인의 죽음도 두렵지만 제 죽음도 두려워요.

그런데 며칠전 좀 좌절하고 힘들었던 날에 문득, 집에가는 길에, 아주 찰나의 시간에, 자살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아주 충동적인 생각이었는데, 그저 물끄러미 한 빌딩을 바라보다가 '저 위에서 떨어져 죽어버릴까' 하고 생각한거죠. 한 5초쯤 혹은 8초쯤.

그러면서 놀랐어요. 어어,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는데 왜 자살에 대해 생각한거지?

그리고 또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전 자살하는 사람들이 자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들이 늘상 자살에 대한 생각만을 하고 살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들중 많은 사람들은 저처럼 순간의 충동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평소엔 자살에 대해 생각하지 않다가 아주 순간적으로 가장 약해져 있는 시간에 나도 모르게 실행해 버리게 되는거죠.

결국 그날 밤에 자살에 대한 꿈을 꿨고, 꿈속에서 울었어요.

네, 아직은 죽지말고 신나게 살고 싶어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정말로요.

Forgettable. 2010-02-03 15:39   좋아요 0 | URL
저는 타인의 죽음이 더 두렵다고 생각했는데 제 죽음도 두려웠어요.
전 항상 지하철을 보며 자살에 대해서 생각해요. 뛰어내리면 아플까. 그래서 지하철이 제 앞으로 바람소리를내며 슉 지나갈 때마다 괜히 뛰어내려버린양 소름끼쳐하고 두려워하고 그러면서 한발짜국 뒤로 물러서요.

전 그 친구의 소식을 들으면서 생각했어요. 교통사고가 아니라 차라리 자살이었으면 괜찮았을지도 모른다구요. 처음으로 자기가 선택한 죽음에 대해서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어요. 당장 내가 사고나 심장마비로 죽게된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내가 선택한 시간에 죽는게 낫지 않을까 이런생각.

꿈속에서 울었다니 다행이에요. 좀 풀리셨을거라 믿어요! 토닥토닥

Mephistopheles 2010-02-03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셉 고든 레빗이 멋졌다면 "브릭"이란 영화를 꼭 보시길...^^

Forgettable. 2010-02-03 15:39   좋아요 0 | URL
제가 선댄스랑 코드가 좀 맞는데, 저 이거 볼래요, 불끈!
메피님은 아는 영화도 많으셔 증말~ ^^

Tomek 2010-02-03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한 시간에 한 줄씩 업무처리하느라... 머릿속엔 망상만 가득하고, 좀 우울한 나날입니다. 요즘들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유난히 많이 해요. 이 낭비하는 시간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시간에 수도꼭지가 달려 있다면, 잠시 잠그고 싶은 심정이에요.

신나는 것, 재미난 것. 봄엔 싱그럽게 살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

Forgettable. 2010-02-03 17:03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저역시 2월은 버린 2월이네요. 그래도 어차피 주어진 걸 하면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니 버릴 수밖에요. ㅠㅠ 전 오히려 콸콸 틀어서 얼른 보내버리고 싶은 심정인걸요. ㅎㅎ

그나저나 Tomek님 생각보다 굉장히 귀여우신듯 ㅋㅋ

머큐리 2010-02-03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수인계 후의 해방을 생각하면서 이겨내셈..ㅋㅋ
나도 춤추는 씬에 대해서 인상깊었는데..ㅎㅎ 난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들이 넘 좋아요~~
(문제는 정작 내가 몸치라는 거...흑!)

Forgettable. 2010-02-08 10:41   좋아요 0 | URL
몸치여서 더 좋은게 아닐까요, 저도 몸치라서 그런지 춤추고 노래하는 영화 엄청 좋아합니당ㅋㅋ
오늘도 겨우겨우 출근했네요^^

후애(厚愛) 2010-02-04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키> 아기 얼굴이 넘 귀여워서 계속 쳐다봤어요.^^
뽀뽀해 주고 싶어요~ㅋㅋㅋ

Forgettable. 2010-02-08 10:42   좋아요 0 | URL
너무 귀엽죠? 근데 표정이 왠지 어른스러워요 ㅎㅎㅎ

순오기 2010-02-07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경구를 좋아하지만 같은 캐릭터의 영화에 또 나오면 보고 싶지 않아요.ㅜㅜ
그래서 아직 안 봤는데...우리 동네선 끝나버렸어요.
썸머 500은 심야 한 타임 짜였고... 리키는 걸린다는 보장도 없을 거 같고...
죽음을 눈앞에 둔 우리 아버지도 두려워 하셨어요.
자기 죽음을 두려움없이 받아 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은 거 같아요.
아마 후회없이 산 사람은 편안하게 기다리지 않을까 싶은...

Forgettable. 2010-02-08 10:43   좋아요 0 | URL
전 왠만하면 설경구 나오는 영화는 다 보는 편이에요.
매번 열심히 한다는게 느껴져서 영화가 별로더라도 아주 재밌게 봤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그래서 후회 없이 살려고 매 순간 노력하는데, 이게 참 어렵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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