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27도에 눈이 내리고 있다. 아직 최저 기온이라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가진 않았지만, 체감 온도는 영하 36도라니 그거나 그거나 뭐 다르겠나 싶다. 아침에 담배를 피우는데 숨이 탁 막혔다. 공기가 얼어 붙어서 공기 중에 공기가 반은 사라진 것만 같았다. 운동을 하고 나서 점심을 먹으러 걸어서 15분 거리의 차이나타운으로 향했다. 바지도 두겹이나 입고 모자도 두개나 쓰고 목도리까지 칭칭 감고 무장을 하고 나섰다. 맨날 가는 길인데도 눈 때문에 길을 잃어 40분이 걸렸다. 다리가 찢어질 것만 같았다. 친구와 도대체 왜 우린 이런 날 나왔을까, 왜 진작 택시를 타지 않았을까, 후회하며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혈관에 살얼음이라도 언 것처럼 다리는 녹지 않았다. 울고 싶었다.
친구와 나는 집에서 고기를 거의 먹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추위에 떨고 나선 프로틴이 필요하다며 마구 고기요리를 시켰다. 따뜻하게 먹고는 근처의 중국인 마트를 들러서 장을 봤다. 난 배낭을 멨다고 자만하며 감자와 토마토와 오렌지와 올리브오일과 허니갈릭 소스와 보리쌀을 양껏 샀다. 그 결과 배낭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거웠다. 나는 영상 30도에서 이런 배낭을 메고 돌아다니는 것보단 영하 30도가 낫다며 합리화했다. 그리곤 그 일화를 떠올렸다. 어느 추운 겨울 날 두 남자가 길을 걷다가 길에 쓰러진 남자를 보았다. 한 남자는 춥다며 그 사람을 무시하곤 제 갈길을 가버렸고, 나머지 남자는 아직도 숨이 붙어 있는 그 사람을 업고 천천히 길을 갔다. 힘도 들고, 서로의 체온 때문에 몸이 덮혀져 목적지까지 추운줄도 모르고 왔다. 하지만 먼저 간 그 사람은 길목에 홀로 얼어죽어 있었다. 난 다정했던 그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를 그렇게 업고 있는 것만 같았다. 친구에게 이 얘길 했더니 친구는 자기를 좀 업어달라고 했다.
어깨는 부러질 것 같았고 친구는 안쓰러울 정도로 추워했다. 난 그 정도로 춥진 않았다. 배낭을 업고 있었으니까. 택시를 타고 싶었지만 택시는 보이지도 않았고, 버스는 지척에서 놓쳤다. 오는 길에 엄마가 보고 싶었다. 정신적 지주이자 제공할 수 있었던 모든 안식을 제공해 주었던 전 룸메도 생각났다. 내가 힘들 때마다 별일 없냐고 물어주고, 함께 술 마셔 주고, 라면을 먹다가 울음을 터뜨리던 내 옆에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어주고, 그 사람이 없었으면 당연이 감당해야 했을 고생들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도록 해 주었었다. 생각은 끝없이 물고 이어져 결국에는 눈물이 조금 날 정도로 그 사람에게 고마워져 버렸다. 나와 산지 2달도 안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