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추리작가협회보 3호에 실린 글로 저자는 '노원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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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즈 시므농의 비밀
노 원 (한국추리작가협회 고문)
어떤 형태의 추리소설이 과연 대중을 매료시키는 걸까? 추리작가로서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과제일 듯싶다. 그것은 성공한 추리작가들을 통해 그 비결을 찾으면 될 것이다.
우선 조르즈 시므농의 경우를 살펴보기로 하자.
조르즈 시므농 하면 다음 세 가지로 소개되는 작가이다.
첫째로, 어떤 형태의 작가라고 해도 그만큼 많은 소설을 쓴 사람은 없다(꽁트 1,067편, 대중소설 179편, 메그레 경감 시리즈 113편, 메그레 경감이 등장하지 않는 추리소설 24편 등 합계 1,383편).
둘째로, 그의 작품 매상 부수는 3억 부를 돌파하고 있다(1970년 통계).
셋째로, 성서와 레닌의 저서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작품도 번역된 숫자에 있어 시므농을 따를 사람이 없다.
조르즈 시므농은 19개의 펜네임을 지녔는데, 월 4권의 장편소설을 펴낸 것으로 알려져 있고, 대충 10일간에 한 편의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는 초기 시절에 이미 전용 기사가 딸린 리무진을 타고 다녔으며, 호사스런 요트도 마련해서 그 선상에서 집필하기도 했다.
그가 한때 살았던 에버랭쥬의 성채를 연상케 하는 그의 광대한 저택은 방이 40개나 되는데, 언덕의 중턱에 세워져 있다. 독립된 건물이 3개이고, 전화기가 21대, 텔레비전이 7대, 전자조리실이 3개소, 그리고 올림픽을 개최해도 무방할 풀장이 있다. 시중드는 일꾼이 9명이고, 그 중의 한 사람이 스위스인 요리사이다.
시므농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을 뿐만 아니라 명성도 쌓았다. 앙드레 지드는 그를 ‘우리가 현대문학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소설가이며 가장 진실한 소설가’라고 격찬하고 있다.
시므농을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시키고 그에게 부를 쌓게 한 것은 물론 그가 창조한 메그레 경감 시리즈 탓이다.
추리작가로서 훌륭한 걸작을 남겼으면서도 잊혀지는 작가가 있는데, 그것은 메그레 경감 같은 명탐정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럼 어떤 형태의 추리소설을 썼기에 시므농은 크게 성공한 것일까?
그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추리소설의 발전적인 분야라고 하는 이른바 ‘경찰소설’을 썼기 때문이다. 그의 폭발적인 성공은 전적으로 메그레 경감의 인기 탓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추리소설이 소련에서 처음 번역되어 출판되었을 때 하루만에 5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그의 추리소설에서 다루는 트릭은 유치하며, 그 음모도 빈약하다. 귀신같은 추리도 없으며 제대로 수사과정을 취급하지도 않고 있다. 그의 작품은 추리소설의 걸작으로서는 떨어지며, 심지어 추리소설도 아니라고 단언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추리소설이 독자를 매료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아이러니하다고 할까? 그의 추리소설이 지닌 추리성 탓이 아니라 그의 추리소설이 지닌 높은 문학성 탓이다.
시카고 대학의 영문학 교수 존 카웰티는 추리작가들 가운데서 조르즈 시므농만큼 예술적인 숙련성을 지니고 창작에 임하는 작가는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시므농이 애거서 크리스티나 도로시 세이어즈와 동일한 장르에서 창작을 하고 있다는 주장에는 중대한 의문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했다.
그는 시므농의 추리소설을 순수소설이라고까지 말했으며, 다만 수사과정을 통해서, 말하자면 메그레 경감의 눈을 통해서 인간의 드라마를 창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서 중요한 교훈을 찾을 수가 있다.
추리소설의 형태를 차용해서, 예컨대 메그레 경감 같은 인물을 등장시켜 미스터리 수법으로 인간의 드라마를 독특한 색채로 묘사할 수만 있다면 성공하는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카웰티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이런 경향으로 발전할 때 보통 소설과 추리소설의 경계가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다.
어쨌거나 분명히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문학성 있는 고급의 추리소설을 쓰지 않으면서 부와 명성을 바라는 사람은 일찌감치 꿈을 깨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조르즈 시므농이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다.
(추리작가협회보 제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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