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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가까운 후배는 내가 좋아라 하는 범죄/스릴러물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과 경찰들이 등장하는 소설들을 좋아한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좋아하는 영역에 포함되어 있기에 나는 아낌없이 추천해주고 사주기도 하고 그러는데..ㅎㅎ 얼마 전에 경찰소설 중에서 곤노 빈의 소설들을 빌려주고 나서는 리스트업을 해달라고 조른다.


이 작품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싶을 정도로 곤노 빈의 소설들은 대중적으로 어필하는 바가 크다. 엘리트 경찰이지만 좀 독특한 성격의 류자키 신야라는 캐릭터는 매우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범인을 잡는 것에 촛점을 맞추기보다는 경찰들 내부의 일들을 영화를 보듯이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데에 더 큰 장점이 있는 지도 모르겠다. 일본에 가서 보니 곤노 빈의 소설들이 꽤 많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건 이거 두 개인 듯 하다. 앞으로도 좀 많이 번역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특히 류자키 신야 이야기는 꼬옥!


그럼 비스므레한 이야기들로 한번 추천을 시작해볼까나. 물론 곤노 빈의 이야기와 같을 수는 없겠지만 일단 일본의 소설들을 생각해본다. 유럽이나 미국은 경찰 이야기라기보다는 형사 이야기인지라 그 느낌이 좀 다른 것 같아서. 특히 미국의 소설들은 마이클 코넬리의 경우처럼 하이에나같은 탐정들이 등장하여 하드보일드하게 몸으로 부딪히는 소설들이 많은 지라 별로라고 생각할 듯.

















사사키 조의 작품들. 강추다. <경관의 피>를 읽고 느꼈던 그 절렬함과 허무함과...잊을 수 없다. 드라마로 봐도 꽤 인상적이라고 해서 한번 찾아 볼 생각이다. 경관 3대에 걸친 이야기. 일본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내용이라 더욱 인상적이었다. 최근에 나온 <제복수사>도 함께 추천.


















다카무라 카오루의 <마크스의 산>. 이 책을 빼놓을 수는 없다. 경찰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묵직한 인간의 그 무엇을 더듬게 만드는 작품. 이 책을 읽지 않고 일본소설을 논한다는 자체가 무의하다고까지 생각하는 바이다.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들. 이 사람을 경찰소설의 일인자라고 부르니 반드시 읽고 넘어가야 할 듯. <얼굴>은 사실 책으로는 읽지 않았고 일드로 보았었는데 일드만으로도 괜챦아서 책을 볼까 말까 망설이는 중이고. <종신검시관>이나 <루팡의 소식>은 매우 수작들.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들은 번역이 많이 되어 있고 대부분이 경찰소설인지라 아무 거나 집어서 보아도 범작 이상의 수준이라는 건 자신할 수 있다. 나도 번역본들은 거의 다 읽어본 것 같고.


마츠모토 세이조의 <모래그릇>. 고백하건대 난 아직 이 소설을 책으로 읽지 않았다. 일드로는 보았고. 왜냐하면..이걸 일본책으로 가지고 있어서 꼭 일본책으로 읽겠다고 호언장담한 상태이기 때문..ㅜ 일드로 보았을 때 워낙 감동을 받아 본 지라 꼭 한번 제대로 읽어보고 싶어서이기는 했으나 이렇게 가다가는 백만년은 걸릴 것 같아서 마음이 좀 흔들리는 상태이기는 하다..어쨌든 후배에게는 추천하고 싶은 작품. 마츠모토 세이조 자체의 인지도도 있고.



























모리무라 세이치
의 소설들. <인간의 증명>은 일드로도 보았다. 이것들은 다 명작. 일본경찰소설의 원조격들이므로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흠...이러고보니 꼭 읽어야 할 게 너무 많은 게지.ㅜ)  경찰소설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본능, 그리고 삶에 대한 자세 등등등이 너무나 잘 녹아들어있는 작품들이라...강추.

더 있을라나. 여기까지 생각나는데..저녁에 먹은 라면이 속에서 불고 있나보다..어쩐지 머리가 띵. 모든 피가 위로 쏠리는 느낌..흠...이제 그만 먹어야지..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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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중독 2011-03-01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보고갑니다..체체^^*

비연 2011-03-02 08:53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하~
 


꽤나 유명한 '수도원의 죽음'을 집어들면서 앞에 적힌 말에 조금 망설였었다. '<장미의 이름> 만큼이나 기발하고 매력적인 작품이다'....이런 말 붙여놓은 책 치고 <장미의 이름>을 넘어선 작품은 없었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의견..그래서 망설이다가 때아니게 역사추리소설이라는 것이 끌려서 말이다. 그냥 읽기 시작했다.

헨리 8세 시절, 앤불린이 참형을 당하고 세번째 왕비가 등극을 한 즈음, 종교개혁의 꿈을 이루고자 전국 수도원들을 하나둘 폐쇄하는 중인 크롬웰. 스칸시 수도원에 보낸 그의 특사가 살해를 당하고 그곳에 있던 '죄수의 손'이라는 유물이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크롬웰의 측근인 매튜 샤들레이크 변호사는 크롬웰의 명을 받아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파견되는데. 이 샤들레이크 변호사는 어릴 때 병을 앓아 꼽추가 된 사람으로 크롬웰의 종교개혁에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마크 포어라는 조수와 함께 수도원에 간 샤들레이크 변호사는 그 곳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들을 더 만나게 되고 사건을 파헤쳐가는 중에 자신의 신념이 조금씩 흔들리는 것을, 그리고 현실은 자기가 알던 그대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흠...솔직히 그냥 그랬다..ㅜ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는 미치지 못하는 소설이었다는 것이 나의 느낌.  에코는 정녕 역사추리소설의 정점을 찍어버린 거일까.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두번 읽었었던 <장미의 이름>을 다시 한번 읽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혀 버렸었다. 역사추리소설의 장점은 내가 알고 있는 역사적인 인물과 사건들에 상상을 더하여 뭔가 있었을 지도 모르는 것들을 생각하게 함과 동시에 역사가 함축한 의미들을 다시금 강조하여 전달하는 데에 있지 않을까 싶은데..그렇게 생각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이 있었다면 (이 책에서도 이 <희극론>에 대한 언급이 잠시) 이라는 가정 하에 철학과 역사 뿐 아니라 인간 심리 및 종교에 걸친 폭넓으면서도 깊이 있는 지식을 유감없이 그러나 너무나 재미나게 펼치는 <장미의 이름>은...읽는 내내 사람을 푹 빠지게 하는 매력이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을 때 느꼈던 감흥은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데 말이다. 놀라움이랄까 충격이랄까. 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라는 느낌. 어려울 수도 있는 내용이 일반인에게 이렇게 다가갈 수도 있구나 라는 경이로움까지. 흠...이 책을 다시 사서 아무래도 한번 더 읽어야겠다 싶다. 그 이후로 에코의 책들을 여러권 읽었는데 (<푸코의 진자>라든가 <전날의 섬>이라든가 등등등) <장미의 이름>이 주었던 신선한 충격을 상쇄하는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으으으으. 

  

 

C.J. 샌섬의 책들은 <어둠의 불>이 더 번역되어 나와 있었다. 이 사람의 작품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일면 재미있고 일면 흥미진진하기도 하지만 에코의 작품이 주었던 감흥만큼은 아니었다 라는 나의 정말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일 뿐.
이 책도 매튜 샤들레이크 변호사가 등장하는데, 전편 격인 <수도원의 죽음>에 비해 구성이나 내용이 더 좋아졌다는 평이 많다. 이 책까지는 한번 읽어볼까나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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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2-27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에 잡히는대로 순서가 뒤죽박죽으로 보는책이 많으지라 어둠의 불을 보긴했는데요..
이책이 구성이나 내용이 더 좋아진거라면 전편은 아무래도 손이 안갈거 같아요^^;
나름 극적인 전개에 미스테리한척? 진행되지만 저한테는 결론이 빤해서 감흥이 막 밀려오진 않더라구요~

비연 2011-02-28 00:5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흠... <어둠의 불> 보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듯 싶네요....
 

 
해외에 나갈 때 내 짐에서 가장 무거운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책'이다..ㅜ 일주일을 넘겨가면 6~7권 가져가는 건 기본이고 가서도 보이는 대로 사니 올 때 심지어 오버차지를 문 적도 있다. 가서 그걸 다 읽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 불행히도 한 권이나 제대로 읽고 올 수 있으려나. 지난 번 베트남 갈 때는 10권은 가져간 것 같았는데 (이주일 머물렀었다) 제대로 읽고 온 건 한 권 (빅픽쳐)이었고 나머지는 군데군데 헝겊잇듯이 읽다가 왔다.

암튼, 그래도. 여행 혹은 출장 가기 전에 가져갈 책을 고르는 재미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을 점유하기도 한다. 특히나 이번처럼 한 달이나 있고 겨울이고 따라서 옷 등등의 무게가 거의 한계용량에 다다르려고 하는 상황에서는 겨우 몇 권 챙겨갈 수 있겠거니 싶으니 더더욱 신중을 기하게 된다. 이번에는 출장이고 가서 논문도 한 편 써야 하고 해서 지금 생각엔 딱 두 권만 가져가려 한다. 대신, 가져간 책을 열심히 진지하게 읽고 싶다. 그래서, '고전' 중심으로 선택하기로 한다.


후보 1. 한시미학산책 (정민)

정민 교수의 책은 나를 실망시킨 적이 별로 없었다. 사실 이 분의 약력을 보면, 정말 돈 안되는 공부만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하는데,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다보니 사람들이 따분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한시를 읽게도 만드는구나 하면서 감탄한다. 이 <한시미학산책>은 거의 700페이지에 달한다. 1996년 초판이 발행한 이후 15년만에 발간하는 완결판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시학의 근원을 탐색하는 스물 네가지 한시 이야기라고 제목을 붙이고 유려한 한시들을 소개하고 있다. 계속 구미가 당기고 있는데, 정말 엄두를 못 내고 있어서 이번에 가져가 매일 조금씩 읽어볼까 싶다. 두께의 압박이 있기도 하지만..ㅜ






후보 2. 시학 (아리스토텔레스)

펭귄클래식 100권 출간 기념으로 나온 이 책,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이것도 장장 672페이지이다..(왜 이리 할 말들이 많은 게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고전 중의 고전이고 따라서 수세기에 걸쳐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인용되어온 책이긴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낸 사람은 그리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 책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자들에게 강의한 텍스트를 세계적인 고전문법의 두 석학이 해석을 단 이 책도 흥미가 화악 당기지 않을 수 없다.









후보 3. 조조평전 (장쭤야오)

난 평전을 좋아한다. 물론 제대로 된 관점을 가지고 쓴 책을 좋아한다는 게 더 정확한 말이겠지만. 특히나 사람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사람에 대한 평가를 쓴 책들을 이 관점에서도 읽어보고 저 관점에서도 읽어보는 걸 즐기는 편이다. 조조라는 인물. 우리가 나관중의 삼국지에서는 아주 사악하고 악덕하고 밉살스럽고 박쥐같은 이미지였던 조조가 이문열의 삼국지에서는 대단한 책략가이고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영웅호걸로 묘사된다. 어떤 순간이든 사람에 대한 평가는 하나일 수는 없는 법. 그래서 이 <조조평전>이 나왔을 때 선듯 살 수 있었다. 물론 이 책은 조조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괜챦은' 사람이라는 관점으로 쓴 책이다. 근데, 812페이지. 뭔 얘기가 이렇게 기냐구.






후보 4. 일본의 걷고깊은 길 1,2 (김남희)

이건 고전은 아니지만서도....일본에 가니까 일본여행기를 하나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다. 김남희는 글을 쓸 때 세상에 대한 애정을 담담하게 표현해서 즐겨 읽게 된다. 물론 도보여행가이므로 다른 여행기에 비해 좀더 다이나믹하고 구체적이며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는 것도 장점이지만. 일본을 이렇게 돌아보고 나서 우리나라의 산천을 다시 볼 마음이 생겼노라고 했었다. 나도 일본의 곳곳을 한번 누벼보고 싶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마 우리나라 산천에 대한 애정을 재발견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을 가지기도 한다.



후보 5. 분서 1 (이지)

파란여우님 소개로 무작정 산 책. 알라딘에는 격정의 생애와 독설의 사유로 알려져 있는 명나라 양명학 좌파 사상가 이지의 <분서>를 국내 최초로 완역했다. <분서>는 명대 말기부터 근대화가 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금서로 묶여 있었던 책. 유교반도로서의 이지와 문학가로서의 이지, 신유학자로서의 이지에 대한 생애와 사상을 다루었다 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또 많은 분들이 이 책의 완역을 축하했고 역자에게 존경을 보냈으면 읽을 만한 책으로 꼽으셨다. 한번 꼭 읽어보겠다고 최근에 산 것이라 이번 기회에 가져가볼까 싶기도 하다. 559페이지. 그나마 양호하네..;;;;







후보 6. 로마 서브 로사 (스티븐 세일러)

요것도 고전은 아니지만.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한 역사추리소설이니까..ㅎㅎ 지금 4권까지 나왔고 원래 10권짜리인데 더 이상 번역이 안된다는 슬픈 얘기도 들리는 책이다. 4권 다 싸들고 가서 볼 수는 없을 것 같고 1과 2 정도만 들고 가서 볼까..싶기도 하고. 아 볼 책은 왜 이리 많은 건지. 후보 고르기도 쉽지 않은 이 현실. 가서 책만 읽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헥헥헥. 일단 여기까지. 이 중에서 적어도 1권은 가져가야지 하고 고민 중이다. 가져갈 2권 중 하나는 이 중에서, 또 하나는 머리 가볍게 읽을만한 책으로 아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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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11-01-12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가시는군요^^ 부러워요. 논문도 쓰시고 좋은 책들과 사귀시길 기대합니다. 한시미학산책은 출간됐을 때 독서모임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비연 2011-01-14 11:11   좋아요 0 | URL
지금 일본이에요..ㅎㅎ 일한다고 오니 며칠은 스트레스로 숙소에만 가면 곯아떨어지고. 인터넷은 일하는 곳에서만 되네요. 책은 두권만 가지고 왔는데 일이 많아 제대로 볼 수나 있을런지. 그래도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lo초우ve 2011-01-25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에 가시면 오래 머무시나봐요?
건강한 여행 되시구요 ^^
책벌레는 어딜가나 책벌레죠ㅎㅎ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이책은 제작년 여름에 다 읽고
지금은 알라딘박스에 여러권의 책들과 함께 포장되었답니다 ^^
설날에 조카에게 가져다 주려구요 ^^
길... 가수 조관우 노래중에 "길"이 있는데 이노래 들어보세요 ^^
전 자주 듣는편이거든요 ^^
길.... 보관함에 저장 콩콩~! ^^%

비연 2011-01-26 13:21   좋아요 0 | URL
하얀안개섬님..오랜만에 들어왔더니 반가운 댓글이~^^
한달 정도 일본에 머무르고 있어요...'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읽으셨구요! 조카분도 좋아할 거 같아요~ 추천하신 노래, 꼭 들어볼께요~
 


감기기운이 세다. 엄마가 일주일 전쯤 감기가 걸리셨는데 병원을 계속 다니셔도 쉽사리 낫질 않으시더니 급기야 나도 걸린 느낌이다. 머리도 아프고 몸도 노곤하고 코랑 목이 아프고. 낼 모레 일본 출장이 예정되어 있어서 (그것도 한달이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제 오늘 많이 쉬었다. 좀 나은 것 같기는 하지만, 긴장해서인지 아니면 감기의 기세가 등등해서인지 아주 개운한 맛은 없다.

역시나 쉴 때는 침대에 데굴거리면서 보는 독서가 제 격이다. TV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밥 먹을 때 엄마와 보는 프로그램 빼고는 쉰다고 TV를 찾아서 보지는 않게 된다. 결국 뭐..자다가 보다가 하면서 어제 오늘 읽은 책이 세 권이다.


아우슈비츠 등의 수용소를 경험했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의사 빅터 프랭클이 그 체험담과 그로부터 끌어낸 자신의 이론을 쓴, 꽤 오래 전 책이다. 이시형 박사가 번역을 했다. 수용소 생활을 하고 극적으로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 글을 쓴 사람들이 여럿 있다. 나는 프리모 레비의 글을 좋아하는데, 이 분이 아니라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꽤 된다. 그 혹독한 수용소 생활에서는 자살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그 고초 다 겪어내고 이제 평온한 생활 속에서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는데 어느덧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다는, 아니 끊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참 무섭고 아이러니했다. 빅터 프랭클은 그런 일상의 위기에서도 벗어나 93살까지 장수한 분이다. 사람이 자신의 알몸 외에는 아무 것도 남겨진 것이 없을 때, 그리고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 죽음을 직면하고 있을 때 어떠한 심리상태가 되는가. 그 속에서도 사람은 동물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따라서 의미를 찾는 생활을 통해 목숨을 연명해나갈 수가 있다. 어찌보면 긍정적인 마인드라고 일반적인 단어로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실존적인 상황에 어울리는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을 사랑했던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잊지 않고 자신의 존재적 의미를 붙잡고 놓지 않는 사람만이 희망을 잃지 않고 그 혹독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무서운 아우슈비츠 등의 수용소에서도 그것은 통하더라는 것. 그것은 읽는 내내 너무나 감동이라 믿기가 어려웠었다. 따라서 빅터 프랭클 박사는 프로이트적인 정신분석학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인간은 쾌락만을 쫓는 것이 아니며 과거의 어떠한 성적인 외상에 의해 평생을 지배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재적인 요구와 소망과 의미추구에 의해 생활을 질적으로 풍요하게 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어떤 이론이 맞다 안 맞다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체험에서 나온 글은 가슴에 뻐근하게 다가온다.



요코미조 세이지. 사자마자 꼭 봐야지 하면서 잡아든 책이다. 후기의 걸작이라고 평가받는 이 <삼수탑>. 근데...좀 실망이었다. 숱한 우연의 일치와 격한 로맨스, 그리고 너무나 뻔한 결말. 게다가 긴다이치 코스케는 처음과 끝에만 나온다는. 로맨스가 많이 나온다는 게 이색적이라고 할 수는 있었겠지만, 추리의 묘미도 떨어지고 인간들의 심리적인 부분의 묘사도 미흡하고 그저 두 남녀의 사랑이 주안점이 되어 어떠한 역경도 사랑으로 이겨내리..뭐 이런 내용? 게다가 사랑한다고 처음에 여자가 그다지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도장이라도 찍듯이 남자가 억지로 관계를 맺는 장면은 현대의 우리로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흠....아뭏든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 작품이었다고 한 마디.





박민규. 이 사람의 작품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적어도 내게는.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이라는 소설에서 처음으로 만났는데 읽고 나서 아하. 싶었었다. 이거 몇 권의 작품을 한번 더 읽어볼 만 하겠는걸?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중에서 고른 게 이 작품이었다. 사랑이라는 소재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이런 의구심에서 고르게 되었던 것 같다. 천하 박색의 여자. 그래서 어려서부터 누구에게나 멸시를 받고 잉여인간으로 취급받아온 나머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사랑받는 것도 감히 해보지 못했던 여자. 그런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배우랍시고 출세한 아버지의 버림받은 아들. 대학도 갈까 말까 결정 못 한 채 우연히 만난 아르바이트 자리에 뜻없이 몸담고 있는 남자. 아버지를 닮아 생긴 건 반반해서 백화점 미스터 아르바이트에 뽑히기도 한 그 남자가 천하 박색의 그 여자를 19살의 나이에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는 요한이라는 남자가 자리한다. 서로 머뭇거리고 서로 수줍어하는 연인의 사이에서 메신저가 되고 사랑을 꽃피우게 도와주던, 또 하나의 상처 투성이 남자. 이 작품은 이 세사람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정말로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이다. 사랑이야기가 아름답다는 거, 뭘까. 모든 사랑이야기는 아름다울 수 있으나, 이 책에서 나오는 사랑은 그 무엇보다 서로의 상처를 말없이 보담는 진실이 담뿍 들어가 있어서 서로에게 빛을 발하게 하고 그래서 천하 박색의 그 여자가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게 하는 그런 사랑이었다. 그래서 진하고 깊고..잊혀지지 않는 그런 사랑이었다..박민규의 관심사는 대부분 상처를 가진 사람들, 사회의 소수자들에게 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의 인생이 대역전홈런을 터뜨리게 되는 개연성 없고 현실설 결여된 결론으로 절대 유도하지 않는다. 씁쓸한 인생의 길에서, 어쩔 수 없이 사회라는 곳에 귀속되어 있는 사람들로서 이러저러하게 그 상처가 옅어지고 쓰다듬어지면서 살아가게끔 한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항상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모두 보통 사람들, 어쩌면 사회의 주변인물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읽는 사람들에게 몰입하게 한다. 대부분이 인생을 살면서 세상의 주역이라고 느끼지는 않을 게다. 늘 액세서리이고 그래서 늘 당하고 있고 그러나 힘이 딸려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기에 박민규의 소설을 읽으면서 동감을 하게 된다...그리고 이 책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진실한 사랑을 너무나 아름답게 이야기하고 있다. 추천한다.

*************

책 세권을 후다닥 읽고 나니 일요일의 밤이 깊어가고 있다. 이제 좀 나아진 몸을 이끌고 남은 일을 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사는 게 뭔지.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남들이 한다고 나도 다 따라하는 게 옳은 삶인지. 그리고 인생은 참으로 쓸쓸하고 적막한 것이구나 라는 뜻없는 감상에 젖어보기도 한다. 물론 나락에 떨어지는 감상은 아니고, 그냥 담담하고 건조한 감상일 뿐이지만. 날이 추워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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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1-09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의 수용소를 읽으면 정말이지 웬만한 불평불만은 쏙- 들어가버려요. 쏙- 쏙- 쏙- 쏙- 그 많은 걱정 그 많은 불평 그 많은 불만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걸까요. 으으--

비연 2011-01-09 19:56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 안녕하세요. 정말 이 책을 신년초에 읽길 잘 했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좀더 긍정적으로 가지고 있는 많은 장점들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책인 것 같아요~^^

라로 2011-01-11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픈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멋진 글을 쓰시다니,,,그리고 일본 출장을 한 달이나 가시는 사람은 얼마나 능력이 있는 사람인가요???????암튼 결론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겠다는 ,,,,^^;;

비연 2011-01-11 10:24   좋아요 0 | URL
나비님, ㅎㅎㅎ. 칭찬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다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꼭 읽어보시고 감상 알려주세요~
 

 

어제 후배랑 이야기를 했었다. 후배는 올해 일주일에 한권씩 책 읽는 게 목표라고 했다. 나랑 다니면서 독서량이 좀 늘어났지? 라며 서로 깔깔거렸다. 근데 아이퐁 땜에 책 읽는 게 힘들다는 이야기도 했다. 후배는 게임을 좋아해서 얼마 전까지는 angry bird라는 게임에 몰입하더니 요즘엔 god finger라는 신종게임에 열중 중이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너 독서할 수 있게 내가 책 사준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 소설 나오면 내가 사줄께.
(후배는 미미여사의 에도시대 소설을 무지하게 좋아한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메일을 열어보니..세상에. 미미여사의 에도시대 소설이 신간으로 나온단다. 그것도 두 권짜리로. 으윽. 이건 뭐지. 어제 얘기한 게 오늘 실현되다니. 이럴 수가. 철푸덕. 하면서 약속은 약속이니까 눈물을 머금고(ㅜㅜ) 바로 장바구니에 골인. 22일쯤 받을 수 있단다.
















<얼간이>에 나왔던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책인 것 같다. 바로 얼마 전에 <얼간이>를 읽은 나로서도 혹하는 출간이 아닐 수 없어서 후배네 집에 보내고 바로 나의 책쇼핑을 시작했다..ㅎ 올해 첫 책구입이라니. 올해는 한달에 한번만 구입하기로 결심했던 터라 오늘 구입하면 다음 달에나..

  

 

 

 

 

 

 

<분서> 파란 여우님이 극구 추천하신 책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사고 나서 과연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싶어 계속 미루고 있었다. 신년이고 하니 한번 시작해볼까나 하고 구입.

<시학> 아리스토텔레스의 그 유명한 책. 이번에 펭귄클래식에서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보관함에 골인시켰던 책이다. 요즘엔 옛날 작품들에 흥미가 많이 끌린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시대를 관통하는 사람의 본질에 관심이 많아졌다고나 할까...





 

 

 

 

 

 

<삼수탑> 요코미조 세이지의 작품은 정말 나오기가 무섭게 사게 된다. 뭔가 마력이 있다고까지 느껴지는 책. 사실 좀 전근대적이고 너무 일본 색채가 짙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도 섞여있지만 긴다이치 코스케의 활약이나 사람의 본성에 대한 통찰력이 마음에 와닿는 작품들이다. 이번에도 꽤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블랙라이크미><정글> 영어로 살까 하다가 그냥 한글로. 아는 언니가 힘들어하던 나에게 권해준 책들이다. 몇 권 더 권해주었었는데 그것들은 내가 다 읽은 거였고 이 두 권은 말만 듣고 읽지는 않았던 거라 이번 기회에 같이 사본다. 영어로 사면 좋겠지만...그러면 언제 읽을 지 모르겠다 싶어서..ㅎㅎ 괜챦으면 나중에 영어로 한번 읽어보지 뭐.



이렇게 해서 올해도 10만원 상당의 책 구입으로 테이프를 끊는다..ㅠ 다행히 후배에게 받은 상품권(생일선물!)이 있어서 내 돈이 안 빠져나가고 어떻게 해결이 되었지만..호호. 그래도 책을 사는 기쁨은 그 어느 것에도 비길 수 없는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겐.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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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1-01-04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갓 핑거라면..기동전사 G건담...에서 번쩍번쩍 금동이로 변신하여 펼치는 필살기 중에 하나인데...(책 페이퍼에서 난 애니 이야기 하고 있고...)

비연 2011-01-04 20:56   좋아요 0 | URL
허억~ 그게 그런 건가요^^;; 전혀 모르고 있는 비연 ㅎ

후애(厚愛) 2011-01-07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책 구매하시는 분들이 많이 많이 부러워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행복한 일 가득하시길 빕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비연 2011-01-08 16:53   좋아요 0 | URL
후애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즐거운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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