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나갈 때 내 짐에서 가장 무거운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책'이다..ㅜ 일주일을 넘겨가면 6~7권 가져가는 건 기본이고 가서도 보이는 대로 사니 올 때 심지어 오버차지를 문 적도 있다. 가서 그걸 다 읽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 불행히도 한 권이나 제대로 읽고 올 수 있으려나. 지난 번 베트남 갈 때는 10권은 가져간 것 같았는데 (이주일 머물렀었다) 제대로 읽고 온 건 한 권 (빅픽쳐)이었고 나머지는 군데군데 헝겊잇듯이 읽다가 왔다.

암튼, 그래도. 여행 혹은 출장 가기 전에 가져갈 책을 고르는 재미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을 점유하기도 한다. 특히나 이번처럼 한 달이나 있고 겨울이고 따라서 옷 등등의 무게가 거의 한계용량에 다다르려고 하는 상황에서는 겨우 몇 권 챙겨갈 수 있겠거니 싶으니 더더욱 신중을 기하게 된다. 이번에는 출장이고 가서 논문도 한 편 써야 하고 해서 지금 생각엔 딱 두 권만 가져가려 한다. 대신, 가져간 책을 열심히 진지하게 읽고 싶다. 그래서, '고전' 중심으로 선택하기로 한다.


후보 1. 한시미학산책 (정민)

정민 교수의 책은 나를 실망시킨 적이 별로 없었다. 사실 이 분의 약력을 보면, 정말 돈 안되는 공부만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하는데,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다보니 사람들이 따분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한시를 읽게도 만드는구나 하면서 감탄한다. 이 <한시미학산책>은 거의 700페이지에 달한다. 1996년 초판이 발행한 이후 15년만에 발간하는 완결판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시학의 근원을 탐색하는 스물 네가지 한시 이야기라고 제목을 붙이고 유려한 한시들을 소개하고 있다. 계속 구미가 당기고 있는데, 정말 엄두를 못 내고 있어서 이번에 가져가 매일 조금씩 읽어볼까 싶다. 두께의 압박이 있기도 하지만..ㅜ






후보 2. 시학 (아리스토텔레스)

펭귄클래식 100권 출간 기념으로 나온 이 책,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이것도 장장 672페이지이다..(왜 이리 할 말들이 많은 게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고전 중의 고전이고 따라서 수세기에 걸쳐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인용되어온 책이긴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낸 사람은 그리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 책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자들에게 강의한 텍스트를 세계적인 고전문법의 두 석학이 해석을 단 이 책도 흥미가 화악 당기지 않을 수 없다.









후보 3. 조조평전 (장쭤야오)

난 평전을 좋아한다. 물론 제대로 된 관점을 가지고 쓴 책을 좋아한다는 게 더 정확한 말이겠지만. 특히나 사람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사람에 대한 평가를 쓴 책들을 이 관점에서도 읽어보고 저 관점에서도 읽어보는 걸 즐기는 편이다. 조조라는 인물. 우리가 나관중의 삼국지에서는 아주 사악하고 악덕하고 밉살스럽고 박쥐같은 이미지였던 조조가 이문열의 삼국지에서는 대단한 책략가이고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영웅호걸로 묘사된다. 어떤 순간이든 사람에 대한 평가는 하나일 수는 없는 법. 그래서 이 <조조평전>이 나왔을 때 선듯 살 수 있었다. 물론 이 책은 조조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괜챦은' 사람이라는 관점으로 쓴 책이다. 근데, 812페이지. 뭔 얘기가 이렇게 기냐구.






후보 4. 일본의 걷고깊은 길 1,2 (김남희)

이건 고전은 아니지만서도....일본에 가니까 일본여행기를 하나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다. 김남희는 글을 쓸 때 세상에 대한 애정을 담담하게 표현해서 즐겨 읽게 된다. 물론 도보여행가이므로 다른 여행기에 비해 좀더 다이나믹하고 구체적이며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는 것도 장점이지만. 일본을 이렇게 돌아보고 나서 우리나라의 산천을 다시 볼 마음이 생겼노라고 했었다. 나도 일본의 곳곳을 한번 누벼보고 싶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마 우리나라 산천에 대한 애정을 재발견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을 가지기도 한다.



후보 5. 분서 1 (이지)

파란여우님 소개로 무작정 산 책. 알라딘에는 격정의 생애와 독설의 사유로 알려져 있는 명나라 양명학 좌파 사상가 이지의 <분서>를 국내 최초로 완역했다. <분서>는 명대 말기부터 근대화가 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금서로 묶여 있었던 책. 유교반도로서의 이지와 문학가로서의 이지, 신유학자로서의 이지에 대한 생애와 사상을 다루었다 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또 많은 분들이 이 책의 완역을 축하했고 역자에게 존경을 보냈으면 읽을 만한 책으로 꼽으셨다. 한번 꼭 읽어보겠다고 최근에 산 것이라 이번 기회에 가져가볼까 싶기도 하다. 559페이지. 그나마 양호하네..;;;;







후보 6. 로마 서브 로사 (스티븐 세일러)

요것도 고전은 아니지만.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한 역사추리소설이니까..ㅎㅎ 지금 4권까지 나왔고 원래 10권짜리인데 더 이상 번역이 안된다는 슬픈 얘기도 들리는 책이다. 4권 다 싸들고 가서 볼 수는 없을 것 같고 1과 2 정도만 들고 가서 볼까..싶기도 하고. 아 볼 책은 왜 이리 많은 건지. 후보 고르기도 쉽지 않은 이 현실. 가서 책만 읽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헥헥헥. 일단 여기까지. 이 중에서 적어도 1권은 가져가야지 하고 고민 중이다. 가져갈 2권 중 하나는 이 중에서, 또 하나는 머리 가볍게 읽을만한 책으로 아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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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11-01-12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가시는군요^^ 부러워요. 논문도 쓰시고 좋은 책들과 사귀시길 기대합니다. 한시미학산책은 출간됐을 때 독서모임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비연 2011-01-14 11:11   좋아요 0 | URL
지금 일본이에요..ㅎㅎ 일한다고 오니 며칠은 스트레스로 숙소에만 가면 곯아떨어지고. 인터넷은 일하는 곳에서만 되네요. 책은 두권만 가지고 왔는데 일이 많아 제대로 볼 수나 있을런지. 그래도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lo초우ve 2011-01-25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에 가시면 오래 머무시나봐요?
건강한 여행 되시구요 ^^
책벌레는 어딜가나 책벌레죠ㅎㅎ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이책은 제작년 여름에 다 읽고
지금은 알라딘박스에 여러권의 책들과 함께 포장되었답니다 ^^
설날에 조카에게 가져다 주려구요 ^^
길... 가수 조관우 노래중에 "길"이 있는데 이노래 들어보세요 ^^
전 자주 듣는편이거든요 ^^
길.... 보관함에 저장 콩콩~! ^^%

비연 2011-01-26 13:21   좋아요 0 | URL
하얀안개섬님..오랜만에 들어왔더니 반가운 댓글이~^^
한달 정도 일본에 머무르고 있어요...'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읽으셨구요! 조카분도 좋아할 거 같아요~ 추천하신 노래, 꼭 들어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