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유명한 '수도원의 죽음'을 집어들면서 앞에 적힌 말에 조금 망설였었다. '<장미의 이름> 만큼이나 기발하고 매력적인 작품이다'....이런 말 붙여놓은 책 치고 <장미의 이름>을 넘어선 작품은 없었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의견..그래서 망설이다가 때아니게 역사추리소설이라는 것이 끌려서 말이다. 그냥 읽기 시작했다.

헨리 8세 시절, 앤불린이 참형을 당하고 세번째 왕비가 등극을 한 즈음, 종교개혁의 꿈을 이루고자 전국 수도원들을 하나둘 폐쇄하는 중인 크롬웰. 스칸시 수도원에 보낸 그의 특사가 살해를 당하고 그곳에 있던 '죄수의 손'이라는 유물이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크롬웰의 측근인 매튜 샤들레이크 변호사는 크롬웰의 명을 받아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파견되는데. 이 샤들레이크 변호사는 어릴 때 병을 앓아 꼽추가 된 사람으로 크롬웰의 종교개혁에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마크 포어라는 조수와 함께 수도원에 간 샤들레이크 변호사는 그 곳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들을 더 만나게 되고 사건을 파헤쳐가는 중에 자신의 신념이 조금씩 흔들리는 것을, 그리고 현실은 자기가 알던 그대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흠...솔직히 그냥 그랬다..ㅜ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는 미치지 못하는 소설이었다는 것이 나의 느낌.  에코는 정녕 역사추리소설의 정점을 찍어버린 거일까.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두번 읽었었던 <장미의 이름>을 다시 한번 읽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혀 버렸었다. 역사추리소설의 장점은 내가 알고 있는 역사적인 인물과 사건들에 상상을 더하여 뭔가 있었을 지도 모르는 것들을 생각하게 함과 동시에 역사가 함축한 의미들을 다시금 강조하여 전달하는 데에 있지 않을까 싶은데..그렇게 생각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이 있었다면 (이 책에서도 이 <희극론>에 대한 언급이 잠시) 이라는 가정 하에 철학과 역사 뿐 아니라 인간 심리 및 종교에 걸친 폭넓으면서도 깊이 있는 지식을 유감없이 그러나 너무나 재미나게 펼치는 <장미의 이름>은...읽는 내내 사람을 푹 빠지게 하는 매력이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을 때 느꼈던 감흥은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데 말이다. 놀라움이랄까 충격이랄까. 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라는 느낌. 어려울 수도 있는 내용이 일반인에게 이렇게 다가갈 수도 있구나 라는 경이로움까지. 흠...이 책을 다시 사서 아무래도 한번 더 읽어야겠다 싶다. 그 이후로 에코의 책들을 여러권 읽었는데 (<푸코의 진자>라든가 <전날의 섬>이라든가 등등등) <장미의 이름>이 주었던 신선한 충격을 상쇄하는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으으으으. 

  

 

C.J. 샌섬의 책들은 <어둠의 불>이 더 번역되어 나와 있었다. 이 사람의 작품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일면 재미있고 일면 흥미진진하기도 하지만 에코의 작품이 주었던 감흥만큼은 아니었다 라는 나의 정말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일 뿐.
이 책도 매튜 샤들레이크 변호사가 등장하는데, 전편 격인 <수도원의 죽음>에 비해 구성이나 내용이 더 좋아졌다는 평이 많다. 이 책까지는 한번 읽어볼까나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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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2-27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에 잡히는대로 순서가 뒤죽박죽으로 보는책이 많으지라 어둠의 불을 보긴했는데요..
이책이 구성이나 내용이 더 좋아진거라면 전편은 아무래도 손이 안갈거 같아요^^;
나름 극적인 전개에 미스테리한척? 진행되지만 저한테는 결론이 빤해서 감흥이 막 밀려오진 않더라구요~

비연 2011-02-28 00:5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흠... <어둠의 불> 보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듯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