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땐 역시나 책과 음악의 세계로 도피하는 게 최고인 나. 사실 현실회피적인 이러한 패턴이 썩 맘에 드는 건 아니지만, 그나마 이렇게 뭐라도 한다는 건 이 상태에서 곧 벗어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암튼 주말동안, 정확히 말하자면 토요일 저녁부터 지금 일요일 저녁까지 읽은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우천염천(雨天炎天)>스티그 라르손의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이 책은 사둔 지 꽤 되었던 것 같다.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읽은 후 너무나 감명을 받은 나머지 하루키의 에세이들은 다 사모았던 기억이. <먼 북소리>의 시기와 겹치는 1988년 어느 즈음, 그리스와 터키를 여행했던 하루키의 에세이다.

나는 하루키의 에세이가 좋다. 사실 읽어보면 별 내용이 있는 건 아니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이고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 여행지에 대해서 열심히 파고드는 것도 없다. 요즘 나오는 여행에세이들처럼 그 나라의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와 풍습까지 공부해서 다 진열하는 류의 에세이가 아니다. 물론 공부는 많이 해서 가지만, 그저 보이는 대로 본인의 사유의 흐름 속에서 써내려가는 에세이다. 그래서 좋다. 보고 있으면 작가의 정신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 지 그 속에서 어떤 작품들이 나올 것인지를 엿보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에세이에서의 그는, 와인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고 야구와 마라톤을 좋아하고 고양이를 좋아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짜증과 고통을 (여행하는 동안 이국인으로서 느껴야 하는) 여과없이 내비친다. 억지로 각색하려 하지 않는다. 느껴지는 대로 쓴다. 그런데 그 속에서 뭔가 속을 정화시키는 그 무엇이 있다, 내게는. 솔직히 하루키의 소설들은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읽기는 읽지만 뭐랄까 백프로 동의안되는 것이 있어 거북하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그가 얘기하려고 하는 것들, 그가 사용하는 문체들, 그런 것들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런 점에서 매우 빼어난 작가이고 그런 그의 소설들을 읽고 싶기는 하지만, 나의 감정과 정확히 싱크로나이즈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에세이는 다르다. 신변잡기적인 그 글들이 이상하게 나의 주파수와 잘 공명한다. 그래서 우울해질 때 힘들어질 때 하루키의 글들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이 책도 그런 류의 책. 그리스의 수도원들을 빗 속에 돌아다니고 터키의 동쪽 쿠르드족들과 혹은 기타의 나라들과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나는 곳을 더운 속에 돌아다니면서 그는 세상을 관조하고 사는 것에 대한 넋두리(?)를 그답게 펼친다. 나는 그를 따라 정말 여행하듯이 (사진이 많아서 그러기에 더 편했다) 그렇게 쭈욱 몰두해서 책을 읽었더랬다.


스티그 라르손의 이 유명한 밀레니엄 시리즈를 지금에야 읽다니. 사실 난 3부작 중에서 이 1부만을 가지고 있다. 한 부에 1000페이지 가량 되는 이 방대한 소설 앞에서 읽기 시작하면 다 읽어버리기 위해 밤낮을 안 가릴 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사로잡혀서 말이다...그러나 역시 이런 시기에는 이런 두껍고도 재미난 책이 있다는 것은 내게 묘한 위안이다. 2부와 3부도 냉큼 보관함에 다시 담아버렸다.

꽤나 특이한 주인공들을 등장시키면서 세상의 인간말종들은 다 모아놓은 듯한 사람들을 상대하게 하면서 그래서 참 암울하다고, 참 세상 더럽다고 느끼게 하면서도 마지막 장을 탁 덮을 때는 '희망'이라는 걸 느끼게 하는 책이다. 세상에. 그런 책이 어디 있담. 그러니까 미국 추리소설을 읽으면 느낌이 그렇다. 자르고 태우고 별별 성적 변태짓을 다 해대는 사이코패스들의 행각을 읽노라면 그리고 그들을 처단하는 미국식 하드보일드 탐정들을 대하노라면 이상하게 기분이 꿀꿀해지고 밥맛이 뚝 떨어지는데 말이다. 이 소설은 그런 느낌이 아니다. 기실 크게 다를 바는 없는데 (더하면 더하더라..ㅜ) 아마도 이 작가는 10부를 계획하면서 끊임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주인공 미카엘 블롬크비스트 기자(스웨덴 사람들이라 이름이 좀 읽기 어렵다는게, 아니 낯설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랄까)와 천재 해커이자 어두운 과거를 지닌 듯한 리스베트 살란데르. 이들이 파헤치는 어느 가문의 흉측하면서도 괴기스러우면서도 잔혹한 사실들도 놀랍지만 나는 스티그 라르손이 창조해낸 이 둘의 캐릭터가 매우 흥미진진하다. 물론 주변인들도 그렇긴 하지만, 특히 리스베트 살란데르라는 여성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인물이고 그녀의 변화라든가 그녀의 생각이라든가 하는 것을 읽고 있노라면 신선한, 아니 환상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10부작을 다 끝냈어야 했는데... 겨우 3부작까지 쓰고 저세상으로 가버린 작가에게 새삼 애도를 표하는 바이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불행이지 뭔가...

....................... 


암튼 이틀 내내 잠깐 밥먹으러 나간 이외에는 계속 책만 봤더니 목 뒤가 뻣뻣할 정도다. 이제 다시 집어든 책은 (내 침대 머리맡에 잔뜩 쌓인 책들을 잠시 응시하다가 - 대부분 읽다가 만 책들인데 약 10권 정도가..철푸덕 - 그냥 새로운 책을 읽기로 결심하고 책장으로 향했다는) 다시금 경제학책. 소설이나 에세이 며칠 동안 진하게 읽었으니 이제 다시 좀 생각하는 책으로 복귀.


요즘 유행하는 '배신' 시리즈가 아닌가. '긍정의 배신', '상식의 배반', '경제학의 배신' 등등.. (다 샀다는..ㅜ) 정통 경제학 이론에 대한 반론이라니 보기만 해도 군침아 싹 도는 주제다. 저자는 현세태의 잘못된 자본주의적 경제학 만능주의를 비판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의 건설과 희망의 사회를 역설하고 있다니 한번 읽어볼 만 하지 않겠는가. 흠.. 당장 읽기 시작해야겠다.

이렇게 책만 읽어대다가는 할 일을 다 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라는 불안감이 크다. 그렇지만 마음이 닫혀있어 일의 진척은 없고 집중은 안되니 그저 책에라도 몰두하면 손해는 아니겠다 싶은 마음과 에라 모르겠다 라는 자포자기 마음이 공존한다. 며칠 두고보자,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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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에 한번쯤, 아니면 이년에 한번쯤 아무 이유없이 (라고는 하지만 뭔가 이유가 있겠지. 내가 그 이유를 찾아내지 못하거나 회피하려 해서 보이지 않을 뿐..) 우울해지는 때가 있다. 무기력해지고 감정이 침잠되어 잠자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시기. 큰일 났다. 지금 내가 그 시기인 듯 하다.

이 떄는 말이다. 말도 하기 싫어서 입에 자물쇠를 채운 것처럼 말수가 적어지고 (참고로 난 엄청난 수다쟁이다) 머리가 깨지게 아플 정도로 자면서도 계속 침대에 누워있고 싶어지고 쌓인 일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안 나게 되며 사람과의 만남을 극도로 피하게 된다. 짧으면 삼사일이고 길면 일이주 그렇게 지낸다. 꼭 가야 할 곳 이외에는 대부분 한 곳에 머물고 전화나 메일, 약속도 삼가하게 되는, 아 정말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블랙홀에 빠진 양 쉽사리 발을 뺄 수 없는 지경이며 결국 몸통까지 잠겨서 소득없이 우울해만 하게 된다. 으으.

네가 한가로와서 그래. 라고 한다면 정말 섭섭하다. 지금 나는 늘 그랬듯이 일이 많고 정리해야 할 일도 산더미이다. 아마 며칠 지나면 메일과 전화로 독촉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올 것이고 나는 그 전화 안 받고 메일 안 읽으려고 노트북 안 켜고 아이폰을 꺼둘 지도 모르겠다...이런 걸 잠정적 잠적이라고 하나.

책은 읽는다. 그대로 앉아서 책장만 넘긴다. 경험상 이런 때 우울한 내용의 책이라도 읽으면 거의 그 효과가 백만배라서 더더더욱 우울의 강에 빠지는지라 가급적 가볍고 즐겁고 해피엔딩일 수 있는 책들만 골라읽는다. 그래서 오늘 멍하니 앉아 있다가 고른 책이 이 책.


내용으로 보았을 때 무척 가벼운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예상적중. 가벼워도 가벼워도 이렇게 가벼울 수가. 대재벌의 딸이 경찰이 되었고 (이 내용은 일드 중의 '부호형사'와 거의 비슷) 그 대재벌 딸의 상사도 중재벌의 아들. 그리고 그들은 말도 안되는 가벼운 어조로 살인사건을 분석하고 결국 해결못하고 헤매다가, 대재벌 딸 (호쇼양) 이 집에 돌아와 부유한 아가씨의 모습으로 돌아온 채 만나게 되는 집사 겸 운전수의 추리를 빌어 해결하게 된다는, 만화같은 이야기 (표지를 보라, 만화다). 호쇼양과 그 집사와의 농담 따먹기도 아닌 말장난은 더욱 가벼워서 아..난 풍선을 타고 날아오를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고 사실 이건 그닥 유쾌하진 않았다.

재미없다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매우 추천할 만하다고 얘기하기도 곤란한 책이라고나 할까. 여섯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추리하는 내용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그넘의 말장난, 그것도 솜털처럼 가볍고 무의미한 그 말장난의 할애는 좀 줄이는 게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암튼 이걸 읽으면서 내 아무리 우울하다고 해도 이런 류의 책으로는 오히려 불쾌해질 뿐이구나 싶어서 다시 책장으로. 근데 잘 살펴보면 내가 요즘 유쾌한 책을 잘 안 샀던 것 같다. 찾기가 힘들고... 그래서 고른 책이 '곰스크로 가는 기차'이다.


이건 결코 가벼운 책이 아니지. 오히려 생각하고 사색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들었다. 그래..오히려 이게 나을 지도. 책 자체의 두께는 얇아서 가벼우나 내용은 약간 무게감이 있는 것이 지금의 나에겐 더 어울릴런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는 이곳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아내는 이곳을 '고향'이라고 부르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우리 아이들 정도는 돼야 이곳을 고향이라 부를 자격이 있지 않을까.

라는 단락으로 시작하는 소설.

아내와 나는 그저 우연히 여기에 정착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사실 나는 아직도 여기를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떠나고 싶을 뿐이다. 여기 머무는 한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머물게 된 이곳을 뜨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가 쉬운 노릇은 아니다. 게다가 내 노력을 가장 심하게, 그리고 가장 불쾌하게 방해하며 막는 사람은 - 마지못해 말하긴 하지만, 사실이 그러하니-바로 내 아내가 아닌가.

로 이러지는 소설. 왠지 처음부터 느낌이 좋은 책이다. 오늘은 이 책으로 내 우울을 달래보려고 한다. 이럴 때 와인이나 맥주가 곁에 있었으면 좋겠지만, 어제 맥주 한 캔 먹고 자서 아침에 머리 아팠던 기억이 문득 나서 패스. 그냥 오늘 속에 퍼붓고 있는 커피를 한잔 더 넣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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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1-07-16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크 리 감독의 '해피 고 럭키'를 주말에 꼭 찾아서 보도록 하세요.

비연 2011-07-16 17:01   좋아요 0 | URL
아..꼭 찾아서 볼께요..^^ 감사~ 메피님!

비연 2011-07-16 17:02   좋아요 0 | URL
제목부터가 '해피'하고 '럭키'한데..내용은 어떨 지 궁금..

비로그인 2011-07-16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속 해가 없어서 더 심해지는 건 아닐까요?
어딜 좀 다녀오려고 했는데 비가 많이 와 주시네요 흠냥..

저는 축 처지는 날은 몸 좀 움직이면 좀 괜찮던데, 이따 "틈" 타서 밖에 좀 나갔다 와야겠습니다.

비연 2011-07-16 17:02   좋아요 0 | URL
날씨 탓이겠죠? 비는 왜 이리 많이 오는 지. 그칠 기미가 안 보이네요. 저도 몸을 좀 움직여보려고 바깥에 나와 있어요..ㅎㅎ;;;
 




















요즘 조르주 심농, 더 정확히 말하자면 메그레반장에게 꽂혀 있다. 다른 읽을 책들도 많아서 시작하지 말아야지 했었는데, 결국 1권을 손에 들고 나서는 계속 연속으로 2권 3권 읽어내려가고 있다. 조르주 심농에 대해서는 이번 기회에 좀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정말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작가여서 이 사람에게서 나오는 글들은 어떨까 흥미를 유발하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그가 만들어낸 형사 메그레반장은...이제까지 내가 좋아라 한 탐정들, 콜린 덱스터의 모스경감과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존 르 카레의 조지 스마일리(탐정이라 하기엔 좀 그렇지만), 첸들러의 필립 말로 등과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면이 있는 사람. 거구에 트렌치 코트를 입고 파이프담배를 늘상 입에 물고 사는, 그리고 시원한 맥주를 즐겨 먹는 남자.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직관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또한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을 잃지 않는 인간미 넘치는 남자..으으으. 반하지 않을 수 없는 캐릭터다. 그저 메그레반장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하는 독서는....은근한 행복이다.

<수상한 라트비아인>도 그랬지만 <갈레씨, 홀로 죽다>는 마음 한켠 참 쓸쓸해지는 소설이었다. 제목을 보고 대충 내용을 짐작하긴 했었지만 그래도 뭐랄까. 한 사람의 가여운 일생이, 무엇하나 손에 제대로 쥐어보지도 못했던 그 일생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져서 보는 내내 마음이 짠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기다리던 모습. 그것은 상상만 해도 처연하지 않을 수 없다. 일생이 힘들었고 부인에게나 자식에게나 친척들에게 능멸받은 소시민으로서의 에밀 갈레. 그의 일생은 정말 뭐였을까..그리고 <수상한 라트비아인>이나 <갈레씨, 홀로 죽다>에서의 메그레반장의 활약도 활약이지만, 그들을 대하는 마음, 고독함을 함께 느끼는 그 깊은 속내에 함께 빠져들고 말았다.

지금 나온 6권 전부 가지고 있는데 이 속도라면 이번 주 내에 다 보지 않을까 싶다..무섭다..ㅜ 70권이 완간되기를 빠른 시일 내에 완간되기를 바라면서도 시간조절 못하고 읽어대는 내가 무서워서 말이다. 존 르카레나 콜린 덱스터의 소설들은 이제 신간이 잘 나오지 않으니 아쉬울 뿐이고. 체스터튼과 첸들러의 책들은 다 나와버렸으니 시시하고. 이제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조르주 심농의 메그레반장 시리즈. 게다가 가볍고 종이질도 좋고 표지 디자인도 맘에 들어서 들고 다니기 좋은 책들이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지금 <생폴리엥에 지다>를 읽고 있는데, 이 역시 내 마음을 울릴 조짐을 첫장부터 보이고 있다. 탐정이나 스파이가 등장해도 그것이 유독 범죄소설이나 추리소설로 느껴지지 않고 그저 '소설'로 심지어는 '명작소설'로 다가오는 것은 작가가 인간에 대한 깊은 혜안을 가지고 그들의 삶에 뛰어들어 표현하고자 하기 때문이 아닌지. 특히, 사람의 본성, 저 밑바닥에 깔린 감정들, 미묘한 느낌, 어떨 때 드러나는 사악함, 욕심, 그리고 이어지는 씁쓸함 등이 마치 나의 옆에서 일어난 양 자연스럽게 그리고 너무 야단스럽지 않게 묘사되는 글들을 만나는 건...진정한 행운이다. 따라서 조르주 심농의 책들을 만난 나는, 아무리 힘들다 힘들다 투덜거리기 바빠도 행운아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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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ck 2011-07-07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바쁘다는건 다 거짓말~~~~~

역시 옛말이 틀린게 하나 없음... 바쁜척 하는 사람치고 정말 바쁜 사람 없다고...

비연 2011-07-07 21:47   좋아요 0 | URL
으으으. 이게 다 없는 시간 쪼개서 읽는 거라궁....ㅜ 지하철 이런 데서.
 


어제, 정말 할 일이 많다고 아침에 눈을 뜨면서 생각을 했었는데,
그래서, 일요일이지만 일해야겠다고 결심을 했었는데,
왠지, 아프고 (꾀병?) 졸리고 (잠병?) 피곤하고 (춘곤증?)....나 이거 큰병? ㅜㅜ

수만가지 핑계를 속으로 되뇌이면서 침대에 딱 붙어 띵가띵가 졸고깨고 뒤척뒤척 하다가 어느새 오후 5시. 켁. 야구다! 라고 소리를 지르며 아이패드를 열고 야구중계를 보기 시작..이것만 보고 일해야지 하다가 너무나 크게 지는 두산에 실망 또 실망했다고 핑계를 다시 대며 그냥 침대에 계속 들어붙어 독서를 했다는..나의 슬픈 전설같은 어제, 일요일의 하루.





기아의 트래비스군은 심지어 두산에게 완봉승을 거두어버렸다. 기아는 잠실구장에서만 13연패인가를 했었고 지난 며칠동안 3연패를 하고 있어서 이거 또 예전의 악몽이? 라는 처절한 심정으로 경기에 임했을테고. 그 처절함 때문인지 두산은 기 한번 못 펴보고 8:0으로 져버렸다. 3회초에 김선우가 완전 흔들거리면서 중앙에 공을 자꾸 던져주시고, 덕분에 기아 타선은 무슨 불이 붙었는지 치는 것마다 안타. 그 회에만 5점 뽑아가고 두산은 결국 주저앉아 버렸다. 더욱 실망인 건 조승수. 구원으로 나왔는데 맷집이 약한지 부담이 너무 되었던 건지 휘청대다가 바로 강판...쯔쯔쯔.

SK 김광현도 어제는 난조를 보였고, 한화의 류현진도 요즘 상태 불량이고. 에이스들이 왜 이런다냐. 두산은 특히나 불펜도 약한데...이거 초반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불협화음이 늘 끊일 새 없었던 LG가 정비를 하고 나서니 아주 잘 나가고 있고. 그 팀이 원래 잘 하는 팀이었단 말이지. 근데 선수들 사이에 자꾸 잡음이 생기면서 팀이 무너지기 시작, 몇 년만에 제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니 아니 무서울쏘냐..쏘냐...

암튼 뭐.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야.구.가.아.니.라. (뭐가 신나겠나..완봉패..ㅜ) 책 얘기. 어젠 그간 열심히 읽던 <보이지 않는 고릴라> 다 읽고 <소비의 심리학>과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을 들었다.  



요 책. 재밌다. 사람들이 인식한다고 다 인식한다고 하는 것들에 헛점이 있음을, 기억한다고 다 기억한다고 하는 것들이 다 맞지 않음을, 안다고 다 안다고 하는 것들이 사실 다 알지 못하는 것임을 적나라하게 얘기하고 있다. 요즘 잘 나가는 말콤 글래드웰의 얘기들에도 조금씩 반박을 하고 있고. <스틱>에 대한 얘기들도 언급하고 있어서 이 관련 책들을 대부분 읽은 나로서는 더욱 재미있는 책이었다.  








사실 이 책은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이 읽는 책이다. 소비자들의 심리를 제대로 파악해서 마케팅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책인데, 그 방면에서는 바이블 같은 책이라나. 하지만 우리 모두는 나름의 '상품'을 팔며 살고 있고 따라서 우리의 상대는 전부 '소비자'인 것이기에 이 책이 비단 마케팅 관련 서적만이라는 생각은 안든다. 책이 비교적 쉽고 예시가 많아서 술술 잘 읽힌다. 소비자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어야만 요행에만 자기를 맡기지 않고 길게 잘 할 수 있다라는 서두의 말들이 마음에 든다. 생각을 하면서 읽고 싶은 책이다.







김훈의 책을 제대로 읽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가끔씩 쓰는 글들에서 마초적인 냄새가 너무 나서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왠지 손에 잡혔다. 알고 보니 제목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덕규의 가사 말미를 옮겼노라고 쓴 글귀를 보면서 아..그래서 내가 이 책을 잡았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말단 공무원이자 체제순응적인 아버지는 평생 횡령을 해왔고 그 돈으로 집을 사고 딸아이를 공부시키고 그리고 먹고 살았다. 그게 들통이 났고 그래서 감옥에 갔고 거기서도 모범수가 되어 좋은 감옥으로 이감이 된다. 딸은 세밀화가이고 그래서 수목원에 계약직으로 가게 된다. 이 책은...그 와중에 가족의 역사를 담고..어쩌면 분단의 얘기도 나올런지 모른다. 아직 첫 1/5 정도만을 읽어 다 가늠은 안되지만, 어쩐지 좀 잘 쓴 글을 보니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김훈. 글을 잘 쓰는 작가로구나. 최근의 얄팍한 글들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좀 질려있던 나는 무게감 있고 묘사가 경박하지 않은 이 작가의 글이 꽤 좋아지려고 한다. 차분히 읽어봐야겠다.


그러나, 아마 이번 주는 죽음의 한주가 될 예정인지라 책 보는 건 글렀을 지도 모르겠다. 제출해야 하는 프로포잘의 기한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내가 아는 내용이 거의 없다는 것은 불행 중의 불행. 인간은 닥치면 다 한다. 다만 체력이 고갈되고 성격을 버릴 뿐이다. 일주일 후의 내가 두렵기까지 하는 월요일 오전. 이 바쁜 와중에 알라딘에 글을 남기는 너는 누구냐..(비연이오..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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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4-11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닥치면 다 한다. 다만 체력이 고갈되고 성격을 버릴 뿐이다~~~ 완죤 공감입니다!

비연 2011-04-11 16:0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Mephistopheles 2011-04-11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기아는 올해 절대 약한 팀이 아닙니다. 특히 공격쪽은 제작년 크레이지 모드의 기미까지 보이니까요. 더불어 두산의 선발진은 에효....아직 시작이라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선발진만 제자리 잡으면 이번 시즌엔 우승에 가깝게 되겠죠.

비연 2011-04-11 19:16   좋아요 0 | URL
기아의 타력은 정말 올해 기대해볼 만 한 것 같아요. 폭발적. 두산은 그넘의 투수력만 보강되면 우승이 늘 코앞인 듯 한데 말이죠 ㅠㅠ

d 2011-06-28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이패드로 어떻게 야구중계 실시간으로 보죠 ㅠㅠ?어플좀
 

  
















마음도 심란하고 그래서 주말엔 이 책 한권 딱 읽어내기로 결심했다.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 중 4편에 해당하는 이 책. 517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두께가 늘 좀 부담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짜증나는 인생사에 시달리느라 혈압이 급상승할 때는 해리 보슈의 이야기만큼 날 해독하는 건 없는 것 같아서 말이다.

침대 위에 벌렁 누워서 읽고 있는데 이번에 초등학교 들어가는 울 조카 불쑥 들어와서는 이 책을 집는다. 예전에는 내가 아무리 책을 읽고 있어도 절대 관심을 보이지 않더니 요즘 들어 부쩍 글자와 책에 관심이 높아져서 말이다. 흠칫. 했는데..이 표지를 보면서 "라스트 코요테? 이게 뭐에요 고모?" 그러길래.."응 좀 무서운 얘기. 울 조카는 보면 안되요.." 그랬다.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왜 늑대그림이 그려 있느냐며 왜 자기는 읽으면 안되냐며...자꾸 묻는다. 으으. 뒤 표지에는 "저는...제 어머니를 죽인 자를 찾아내려고 합니다." 라고 크게 써있는데...책을 슬쩍 뺏고는 "나가서 놀까?"로 아이를 현혹시켜 마루로 나왔다.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인데, 내가 워낙 추리/스릴러물을 좋아해서 집에 한가득인지라 이젠 조카가 다 커서 나 없는 동안에 빼서 볼 수 있겠다 싶다. 게다가 그 제목들이라는 것부터가...ㅜ <...죽음>이라든가 <...살인사건>..이런 건 예쁜(?) 제목에 속하고 내가 봐도 소름 쫘악 끼치는 표지그림과 제목들이 난무하니...고민이 된다. 이걸 다 치워버려야겠는걸. 이거 읽기에 넘 어려..절래절래. 아이가 큰다는 건 너무나 기쁜 일이지만 이런 고민도 생기는 건가보다..

암튼, 해리 보슈. 이 책에서는 삼십몇년 전에 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찾는 과정이 그려지고 결국 여러 번의 반전 끝에 찾게 되며 결국 경찰청을 떠나기로 결심하게 된다.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는 터프하고 하드보일드한 형사가 나와서 좋은 게 아니라 마음에 깊은 상처가 있고 그래서 늘 그 부분에 연약함을 보이면서도 진실을 찾는 데 있어서는 원칙과 올곧음을 버리지 않는 인간다운 형사가 나와서 좋다고 해야할까. 시리즈물이 다 그렇지만 주인공도 회가 거듭함에 따라 진보하고 달라지는 모습들이 좋기도 하다.

이 작품은 특히, 인간적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죄책감,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 그 속의 사랑, 정치, 질투, 경쟁, 죄악 등등등이 참 슬프게 그려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해리 보슈는 그 속에서 스스로를 잃지 않고 중심을 지키면서도 하나하나 문제해결의 고리들을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는 자기만의 비밀스러운 상처들이 있을진대, 그것이 남들이 봐서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그 본인에게는 늘 '구두 속의 돌멩이'처럼 때때로 자신을 아프게 건드리는 것이겠지..그렇다고 딱히 벗어던질 수도 없는.

책 마지막을 넘기니 이런 말이 써있다. "누구보다 해리 보슈를 사랑했던 한 리뷰어를 추모하며". 물만두님...물만두님이 좋아하는 형사들은 늘 인간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상처로 괴로와했고 그래서 술을 먹거나 과도하게 폭력을 보이거나 애정을 갈구하곤 했다. 그러나 정의를 지키는 데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도 단호하고 명료한 태도를 보이는 그런 형사들을 좋아하셨다...좋아하는 책을 함께 기뻐하며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를 알게 해준 분이었구나. 온라인상에서라도 그 분의 리뷰를 읽으며 수많은 책들을 골라잡아 장바구니에 던져넣던 나를 기억한다. 물만두님..해리 보슈 시리즈가 또 번역되어 나왔어요. 앞으로도 쭈욱 번역되어 나오겠죠..그러나 님의 리뷰는 이제 간 곳이 없네요..참..서러운 일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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