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도 심란하고 그래서 주말엔 이 책 한권 딱 읽어내기로 결심했다.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 중 4편에 해당하는 이 책. 517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두께가 늘 좀 부담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짜증나는 인생사에 시달리느라 혈압이 급상승할 때는 해리 보슈의 이야기만큼 날 해독하는 건 없는 것 같아서 말이다.
침대 위에 벌렁 누워서 읽고 있는데 이번에 초등학교 들어가는 울 조카 불쑥 들어와서는 이 책을 집는다. 예전에는 내가 아무리 책을 읽고 있어도 절대 관심을 보이지 않더니 요즘 들어 부쩍 글자와 책에 관심이 높아져서 말이다. 흠칫. 했는데..이 표지를 보면서 "라스트 코요테? 이게 뭐에요 고모?" 그러길래.."응 좀 무서운 얘기. 울 조카는 보면 안되요.." 그랬다.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왜 늑대그림이 그려 있느냐며 왜 자기는 읽으면 안되냐며...자꾸 묻는다. 으으. 뒤 표지에는 "저는...제 어머니를 죽인 자를 찾아내려고 합니다." 라고 크게 써있는데...책을 슬쩍 뺏고는 "나가서 놀까?"로 아이를 현혹시켜 마루로 나왔다.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인데, 내가 워낙 추리/스릴러물을 좋아해서 집에 한가득인지라 이젠 조카가 다 커서 나 없는 동안에 빼서 볼 수 있겠다 싶다. 게다가 그 제목들이라는 것부터가...ㅜ <...죽음>이라든가 <...살인사건>..이런 건 예쁜(?) 제목에 속하고 내가 봐도 소름 쫘악 끼치는 표지그림과 제목들이 난무하니...고민이 된다. 이걸 다 치워버려야겠는걸. 이거 읽기에 넘 어려..절래절래. 아이가 큰다는 건 너무나 기쁜 일이지만 이런 고민도 생기는 건가보다..
암튼, 해리 보슈. 이 책에서는 삼십몇년 전에 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찾는 과정이 그려지고 결국 여러 번의 반전 끝에 찾게 되며 결국 경찰청을 떠나기로 결심하게 된다.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는 터프하고 하드보일드한 형사가 나와서 좋은 게 아니라 마음에 깊은 상처가 있고 그래서 늘 그 부분에 연약함을 보이면서도 진실을 찾는 데 있어서는 원칙과 올곧음을 버리지 않는 인간다운 형사가 나와서 좋다고 해야할까. 시리즈물이 다 그렇지만 주인공도 회가 거듭함에 따라 진보하고 달라지는 모습들이 좋기도 하다.
이 작품은 특히, 인간적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죄책감,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 그 속의 사랑, 정치, 질투, 경쟁, 죄악 등등등이 참 슬프게 그려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해리 보슈는 그 속에서 스스로를 잃지 않고 중심을 지키면서도 하나하나 문제해결의 고리들을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는 자기만의 비밀스러운 상처들이 있을진대, 그것이 남들이 봐서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그 본인에게는 늘 '구두 속의 돌멩이'처럼 때때로 자신을 아프게 건드리는 것이겠지..그렇다고 딱히 벗어던질 수도 없는.
책 마지막을 넘기니 이런 말이 써있다. "누구보다 해리 보슈를 사랑했던 한 리뷰어를 추모하며". 물만두님...물만두님이 좋아하는 형사들은 늘 인간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상처로 괴로와했고 그래서 술을 먹거나 과도하게 폭력을 보이거나 애정을 갈구하곤 했다. 그러나 정의를 지키는 데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도 단호하고 명료한 태도를 보이는 그런 형사들을 좋아하셨다...좋아하는 책을 함께 기뻐하며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를 알게 해준 분이었구나. 온라인상에서라도 그 분의 리뷰를 읽으며 수많은 책들을 골라잡아 장바구니에 던져넣던 나를 기억한다. 물만두님..해리 보슈 시리즈가 또 번역되어 나왔어요. 앞으로도 쭈욱 번역되어 나오겠죠..그러나 님의 리뷰는 이제 간 곳이 없네요..참..서러운 일요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