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알라딘 서재에 계신 분들은 다 비슷하시겠지만, 나도 '책'에 대한 책을 즐겨 읽는 편이다. 도서관 이야기, 서재 이야기, 서점 이야기, 북카페 이야기, 다독가들의 책읽은 이야기, 책소개 이야기, 책평론 이야기... 등등등. 읽든 안 읽든 나오면 무조건 산다. 왜냐고?

 

.. 오늘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게.. 나같은 경우는 '책' 속에 '책'이라는 글자가 많이 나와서인 것 같다는 괴상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니까 책을 좋아하니까 글 속에서 '책'이 어떻고 '책'을 보고 '책'파는 곳이 어디고 '책'이 무엇이 있고... 등등등 '책'이라는 글자가 한줄에 여러번씩 나오는 글을 읽다 보면 나혼자 괜히 힐링이 되는 기분이 된다. 흠. 좀 궤변인가. 아뭏든 그러하다.

 

지금 읽고 있는 책,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이건 정말 그 점에서 완벽하다. 내 책장에 버젓이 버티고 있는 <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을 지은 부부저자라는 점에서, 그리고 맨날 외국의 서점만 보다가 지쳐 있었는데 우리나라 동네서점 이야기라니 이게 왠일? 이라는 눈 튀어나올 만큼 놀라운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냥 샀다. 아. 근데 정말 재미있다.

 

 

예전에 우리 동네에 노부부가 작은 책방을 열었었다. 알라딘에서도 한번 얘기했던 것 같은데... 그 당시에는 동네에 서점이 없었고 심지어 인터넷 서점도 활성화되지 않았었다. 그러니까 지금 생각하면 그런 시절이 있었어? 라고 반문할 수 있는 신석기시대 같은 때였다. 책을 사려면 영풍문고나 종로서적이나 교보문고를 가야 했는데 서점이 생기다니 나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작은 책방이었지만 그런대로 볼만한 책들이 가득 꽂혀 있었고 한켠에서는 노부부가 돋보기를 들어올리며 늘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생각하면 그들은, 은퇴를 하고 책을 사랑하는 마음에 서점을 연, 그런 분들이었던 거다. 난 그곳을 좋아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들르듯 오며가며 들러서 책 한권씩 사는 기쁨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곳에 쌓여있는 책은, 내가 좋아라 하는 책이 아니라 참고서가 되고 있었다. 처음엔 정말이지 참고서가 거의 없었던 서점이었다. 그러니까 버티다가 버티다가 수지가 너무 안 맞으니 결국 그런 책 아닌 책들을 좌판에 벌여놓을 수 밖에 없었던 그 분들의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졌었다. 나도 그렇게 되면서 점점 그곳과 거리를 두게 되었고... 어느 새 서점이 있던 자리엔 편의점이 자리하게 되어 버렸었다.

 

별 거 아닌 일인데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저린다. 어쩌면 서점은 그들의 은퇴후 꿈이었을 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사그러들고 만 게 왠지 분했다. 그리고 이넘의 동네는 서점 하나 없이 잘도 버티네 라는 짜증도 있다... 지금은 강남 교보문고가 워낙 크게 자리잡고 있어서 주말마다 한번씩 들러 둘러보는 게 습관처럼 되었고 그 서점에 대한 기억도 가물가물해져 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아주 강렬하게 그때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충북 괴산에서 '숲속의 작은책방'이라는 서점을 운영하는 부부. 다른 동네에는 이런 데가 없나 라고 뒤져보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전국 작은 책방 지도. 보니 참 여러 곳에 내가 그리워하는 책방들이 있었다. (근데 그 와중에도 서울 강남에는 한.. 곳..;;;) 동네 서점은 다 망했을 거라는 나의 편견을 깡그리 없애 주는 이 곳들. 줄까지 쳐가면서 열심히 읽고 그 근처에 가면 꼭 들러봐야겠다 주소도 입력하게 만든다.

 

우리는 모두 자기 사는 지점에서 각자 열심히들 살고 있다고 하지만, 저는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나의 영역에서 나의 삶만 살지 말고 그런 이들이 함께 연대할 때 새로운 움직임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에 지식인, 교양인, 작가, 전문가가 이렇게도 많은데 모두 파편처럼 흩어져 있어서 그들의 목소리가 허공에 흩뿌려지고 마는 것 같아요. 이걸 하나로 모아낼 힘을 갖고 싶어요. 이걸 모아내지 못하는, 그래서 바꿔내지 못하는 무기력을 비판하고 싶습니다. 인디고 서원은 연대할 줄 아는 청년들을 키워내는 게 목표입니다. 연대해서 함께 싸울 줄 아는 사람들 말이죠. 투사가 될 수밖에 없는 세상이라면 혁명의 전사로 살고 싶은 게 우리들의 목표입니다.

-  p62

 

인디고서점의 책방지기의 말에 백퍼 동감한다. 파편처럼.. 이라는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한 개인의 머릿 속에도 파편처럼 흩어진 생각들을 한데 모아 다른 사람과 그것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게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책은, 서점은 제대로 된 역할을 하게 한다고 믿는다. 우리나라처럼 지식은 많으나 사는 게 천박한 나라일수록 정말 필요한 부분이다.

 

책방을 시작할 때는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라기보다는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곳, 사람이 있고 이야기가 있는, 그리고 좋은 책이 있는 작지만 진짜 동네책방을 만들고 싶었어요. 미국의 경우 지역 독립서점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게 되면 지역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아서 그 서점을 지켜준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만틈 동네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뜻이죠. 이런 이야기를 볼 때마다 정말 부럽다고 생각했어요. 작지만 오랫동안 유지되는, 동네에서 사랑받는, 그리고 지역사회에서도 제 역할을 하는 그런 책방을 하고 싶습니다.

- p108

 

부럽다. 외국이 부러운 이유는, (물론 요즘은 미국도 서점들이 문을 닫고 있긴 하지만) 이런 분위기이다. 잘먹고 잘살고 그런 게 부러운 건 절대 아니다. 작은 것을, 그리고 내 주변에서 나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 우리는 비싸고 크고 멋지고 남들이 알아주는 것에만 매달리는 습관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내 삶을 얼마나 질적으로 좋게 만드는가보다는 남의 시선에 따라 휘둘리곤 하는데... 그래서 나는 늘 지역의 책방에 관심이 많다. 진정한 지역의 문화는 어쩌면 책방이라는 곳에서 시작될 지도 모른다.

 

이 책은, 권하고 싶다. 책방 이야기일 뿐일 수도 있지만, 어려운 책방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의 소소한 철학이 담겨져 있고 그리고 이 세상에 책을 사랑하는, 그래서 책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그래서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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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9-13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에 역사가 깊은 유명 고서점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봤어요. 고서점 주인은 고서점 문화가 이제는 죽었다고 말했는데, 씁쓸했어요. 헌책방이나 동네 서점도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비연 2015-09-13 21:48   좋아요 0 | URL
정말 안타까와요... 뭔가 이런 문화를 지켜나가는 저력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데.
 

 

 

 

 

 

 

 

 

 

 

 

 

 

 

 

나무는 단지 겨울 날씨로 인해 앙상해진 것이 아니라 늙어서 시들고 쇠잔하고 말라붙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 나무를 본 것이 나는 정말, 정말로 기뻤다. 무언가가 그대로 남아 있을수록, 그것은 결국 더 변해 버린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나무도, 사랑도, 심지어 폭력에 의한 죽음조차도. (p11)

 

 

빌 게이츠가 인생의 책이라고 꼽았다는 책이다. 제목이 특이해서 영문명은? 하고 찾아보니 영문명도 'Separate Peace' 다. 역시 일전에 읽은 <네메시스> 처럼 전쟁이 한참인 시절의 이야기이다. 2차 세계대전. 이땐 아마도 모두의 가치관이 흔들거리던 때였는 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다 변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록 더 변한다. 늙고 쇠약해지거나 닳아서 힘이 없어지거나 어쩌면 물리적인 것 뿐 아니라 화학적인 부분까지 몽땅 변해 버릴 지도 모른다. 사랑은 지키려 하면 세월의 흐름에 무관심과 애증으로 변모하기도 하지.

 

변해서 기쁘다... 내가 변했듯 내가 생각했던 그 무엇도 그 자리에서 변해가는 게 기쁘다. 그런 심정은 어떤 걸까. 생각해본다. 나는 변했는데 그 무엇은 그대로 남아 있다면 꽤나 비참하겠다 싶다. 단물 빠진 껌 마냥 버릴 수도 삼킬 수도 없는 애매한 느낌. 어쩌면 나에 대한 회한, 상실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기억 속에서는 변해버린 그 대상이 여전히 눈에 보기에 변함이 없더라.. 라는 것에 대한 배신감일 지도.

 

요즘, 변하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변할 것이고 내 주위도 변할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가 있다가 없다는 것. 그리고 그게 누구나에게나 해당된다는 것. 그것 뿐이라는 생각에 많이 힘들다. 힘들 주제는 아니지만, 있다가 없는 것을 느끼는 내가, 또 어느 순간엔 없어지고 그 있다가 없다가를 느꼈던 나는 어디론가 사라진다는 게 이상하고 묘하고 비애스럽다. 결국 사는 건 무엇이냐. 그런 문제에 천착된 슬픔인 지도 모르겠다. 슬픔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좀 묘한 경계선을 가지고 있지만.

 

이렇게 점심시간에 책을 읽고 생과 사의 문제를 고민하다가, 책을 덮고 업무를 시작하면 고객과 지극히 사소하고 현실적인 문제로 언성을 높이게 된다. 서로 돌대가리라고 생각하면서, 서로 말을 바꾼다고 생각하면서. 근데 그 흥분의 시간이 지나 차분히 생각해보면,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다. 어차피 있다가 없을텐데, 누구나가.

 

이 책의 저자인 존 놀스의 작품은, 이 책 하나만 번역되어 나와 있다. 영문판도 이것뿐이고. <호밀밭의 파수꾼>에 버금가는 작품이라고 했는데.. 이 책 하나로 멋지게 살 수 있었던가 보다. 있다가 없지만, 이 책은 변함없이 남았다. 어쩌면 변화하지 않고. 그래서 사람들은 창작이란 걸 하고 작품이란 걸 만들고 하나... 남기기 위해서. 있다가 없지만, 영원히 있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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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2015-08-28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인듯 싶습니다. 저희 회사가 지금 구조조정 중에 있거든요. 포지션이 닫히는 대로 몇 년 같이 일한 사람들이 매달 떠나고 있는데 , 웃고 싸우고 (?) 했던 사람들인데 , 안 보이니까 또 익숙해지기 시작하고...삶이란게 이런 것 같아요. 만나면 헤어지고... 매끈하던 목에 주름이 생기기 시작하고..ㅎㅎ...... 그저 순간순간 즐기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어요. ㅎㅎㅎㅎ.

서로 돌대가리라고 생각한다는 말에 뻥 터져서 웃다 갑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비연 2015-08-30 09:37   좋아요 0 | URL
몬스터님. 요즘 많이 드는 생각이 그거에요. 순간순간 즐기는 것이 진리다.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이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이라면 변할 수밖에 없는 그 순간을 지극히 누리는 게 맞는 것 아닌가... 회사가 구조조정이라니 많이 심란하시겠네요... 그런 상황이 익숙해진다는 것도 좀 슬픈 일인 것 같기도 하구요.
 

 

 

 

 

 

 

 

 

 

 

 

 

 

 

요 네스뵈의 이야기를 쓴 지 하룻만에, 그의 책이름과 같지만 작가는 다른 책 얘기를 하다니. 괜히 묘한 느낌을 가지게 하네. 이것은 필립 로스의 <네메시스>.

 

두려움은 우리를 나약하게 만들어. 두려움은 우리를 타락시켜. 두려움을 줄이는 것, 그게 자네의 일이고 내 일이야.

 

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정확히는 이 책 속의 닥터 스타인버그. 폴리오가 창궐하는 마을에서 아이들이 수없이 죽어가고 아파하고.. 속수무책인 상태에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 두려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여름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메르스도 그랬다. 진원지가 어디인지 확실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재수없게) 걸리면 누가 死者의 동반자가 될 지 알 수 없다는 데에서 오는 두려움. 그런 두려움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고 불안에 떨게 함과 동시에, 사람을 미워하게 한다. 그래. 가장 큰일인 건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는 거다.

 

잠시, 이런 행복감 때문에, 그는 자신이 놀이터 아이들을 배신한 것을 거의 잊을 수 있었다. 위퀘이크의 무고한 아이들을 죽음으로 괴롭힌 것 때문에 하느님에게 분노한 것을 잊을 수 있었다. 그는 마샤와 약혼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있는 곳을 외면하고 정상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정상적인 삶의 안전과 예측 가능성과 만족을 끌어안으러 달려갈 수 있었다.

 

이런 것을 바로 '회피'라고 한다. 이런 최악의 상황이 아닐 지라도 일상에서 수없이 하고 있는 일들. 진실을 외면하고 현실에 매몰하여 기억을 기만하려는 행위들. 돌아오면 그자리임에도 잠시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하는 행위들.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수없이 시도하는 행위들. 아니면 누군가 날 좀 이렇게 만들어 줬으면 하고 수동적인 바램마저 가지게 되는 모습들. 그게 '회피'이다. 나는 요즘 그걸 하고 있다. 나의 고통과 심약함과 외로움을 망각하기 위한 도피처를 추구하고 있다. 딱히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그냥 무작정. 이 책 속의 버키 캔터와 같다. 그는 폴리오와 그로 인한 비극과 모순을 피하고 싶어했고, 나는 인생 자체의 부조리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게 성공할까...

 

*

 

필립 로스는 뭘 읽어도 중간 이상은 간다. 그래서 읽고 싶기도 하고 읽고 싶지 않기도 한 작가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펴놓고 보기에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소설이라 읽고 있다.

 

날이 많이 선선해졌네. 시간은, 무심히 있으나 바둥바둥 거려대나 자기 페이스대로 흘러만 간다. 그게 요즘은 고맙다. 시간의 항상성. 불변함. 이런 것들이 의외로 날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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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 눈팅만 한 40여일 동안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사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던 초반도 있었지만, 역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책을 떠나 살 수는 없었다. 머리 아픈 거 싫어서 스릴러물도 읽었다가 만지작거리다 못 읽었던 미술사책도 읽었다가... 그리고 이렇게 돌아와 맨 처음 거론하는 책은, 요 네스뵈의 <아들>이다.

 

요 네스뵈 라는 이름 만으로 두말 않고 고를 수 밖에 없었다. 해리 홀레 시리즈를 목빼고 기다리지만, 시리즈물이 아니라 스탠드얼론한 작품이라니. 그것은 또 어떨까? 라는 궁금증에 사놓고 며칠을 못 버틴 것 같다. 장장 6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읽고 나니, 아니 이건 해리 홀레 시리즈를 능가한다고 해도 되잖아. 라는 감상만이 오롯이 남았더랬다. 세상에. 이 사람은 정말 괴물야.

 

"평균적인 지성과 능력을 가진 사람의 경우, 미모가 경력에 도움이 된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죠. 일라 센터에서 일하는 건 성공을 위한 어떤 발판도 되지 못하잖아요, 제가 알기로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가치요? 저 사람들 월급이 얼마나 되는지..."

 

다 맞는 말이다. 외모지상주의라고 사람들은 욕하지만, 외모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게 인지상정이다. 어쨌든 첫 대면에 좀 괜찮은 혹은 호감가는 외모를 가진 사람이 온다면 일단 호의적인 태도로 시작할 수밖에 없고 (물론 그게 쭈욱 간다는 보장은 없다) 그게 업무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장담할 자가 누구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 뒷말, 가치 있는 일이라는 말에 조금 뜨끔했다. 모르겠다. 그냥 뜨끔했다. 내가 요즘 가치 있게 살지 못한다는 자괴감이 있어서일까.

 

햇빛의 키스를 받은 살갗에 떨어지는 순간 따뜻해지던 작은 빗방울. 아스팔트에서 피어오르던 흙냄새. 꽃과 풀, 이파리의 냄새는 그의 야성을 깨어나게 했다. 아찔하게 했다. 성적으로 흥분시켰다. 다시 젊어지게 만들었다. 아, 젊음.

 

폐암에 걸려 죽어가는 노인이 있다. 교도소안의 노인. 젊음도 지나가고 지나온 세월은 후회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감정이 다 죽은 건 아니다. 생동하는 자연 속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의 탄력 속에서 스러져간 젊음을 일깨우곤 한다. 사람이 무언가를 절렬하게 느끼는 순간은, 참 대수롭지 않은 어느 시점에서인 것 같다. 그냥 스윽 지나칠 수 있는 그런 시점에서.

 

소니가 제대로 이해했을까?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소니가 이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었다. 혹은 그 결과도 아니었다. 마침내 이야기한다는 것, 그 행위 자체에 있었다. 이 이야기를 원래의 정당한 주인에게 전달하는 데 있었다.

 

그리고 그 노인은 이제 자신이 아는 진실을 고백하고자 한다. 들어야 할 사람에게. 속에 꾹꾹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하는 내가 중요하고, 말하고야 마는 이 행위가 중요하다는 거. 가끔 벽보고 중얼거리는 심정이란 비슷한 걸까. 하긴, 대상이 사람이어야 해소되는 느낌이 든다는 점에서, 벽은 별로 좋은 벗은 되지 못한다.

 

한 남자가 벤치에 앉아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고 있었다. 은퇴한 남자일 거라고 시몬은 생각했다. 은퇴하면 저렇게 된다.

 

요 네스뵈는 정말 이런 걸 느꼈던 게 아닐까. 이 구절이 가슴에 박힌다. 은퇴하면 저렇게 된다... 나는 은퇴하면 어떻게 될까. 은퇴라는 걸 하면 빈 벤치에 홀로 앉아 모이 주는 것에만 의지하여 몰려드는 비둘기들에게 먹을 거리나 주는 할머니가 될까. 흠.. 근데 이건 나의 장면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비둘기를 몹시 싫어하니, 이런 은퇴 후 모습은 해당사항 없음일 거라 확신한다. 다만, 나도 은퇴한 나의 모습이 많이.. 궁금해졌다. 이 대목에서.

 

*

 

... 그렇게 소니가 나오고 시몬이 나오고 카리가 나온다. 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소니는 경찰관이었던 아버지가 부패경찰이었음을 자백한 유서 한장 달랑 남기고 자살하는 바람에 모든 희망을 버리고 마약중독자가 되어 교도소에서 12년을 보낸 청년이다. 시몬은 경찰이고 그 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리고 카리는 그 시몬과 함께 사건을 해결하러 다니는 사람이다.

 

빗방울과 자연의 냄새에서 젊음을 느꼈던 요하네스는 소니에게 네 아버지는 죄가 없고 억울하게 죽었다.. 라고 얘기해준다. 그 애기를 들은 그 아버지의 아들은 탈옥을 감행하고 자신에게 죄롤 뒤집어 씌웠던 사람들, 아버지를 죽게 한 사람들에게 복수를 시작한다. 잔인하고 참혹하게. 그 사건들 속에 시몬과 카리가 있다. 이야기는 그렇게 전개된다.

 

더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될테니 이쯤해두겠지만, 솔직히 이 책 읽으면서 속이 시원했었다. 권선징악은... 이제 우리에겐 판타지에 불과하다.. 영화 <베테랑>을 보면서도 그랬었다. 상황묘사는 그지없는 현실주의인데 결말은 판타지구나. 그렇게 마치 술에 취하듯 약에 취하듯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일들을 영화나 책에서 맛보는 것도, 과히 나쁘진 않았다. 사실 슬픈 일인데 말이다. 씁쓸한 일인데 말이다. 요즘의 기분으로는 그렇게라도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커서.. 라고 생각해본다.

 

요 네스뵈는 이 어두운 소설로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세상의 많은 숨겨진 진실들에 대해? 혹은 제도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악을 개인이 응징할 수 있는 (브라보) 세상에 대해? 사는 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거, 사람들은 속에 묻어둔 자신만의 이야기로 고통받기도 한다는 거, 뭐 그런 거? 어쨌거나 이 소설의 마지막은, 권선징악의 끝장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으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요 네스뵈는 이런 이야기를 쓴 거겠지. 어쨌든 이런 멋진 소설을 만들어낸 요 네스뵈,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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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이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그러니까 너무나 급하게 출장이 결정나서 일주일만에 결재받고 부랴부랴 출발했다고 하자. 물론 바쁜 출장 일정이라 절대 책읽을 시간 따윈 나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두 권 주섬주섬 챙겨 왔다. 그 중의 하나가 피니스 아프리카에가 열심히 내주시는 (고맙게도!) 에드 맥베인의 <마약 밀매인>.

 

한국에서부터 계속 읽으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안 나서 손에 쥐고만 있다가 공항 가기 전에 황급히 구겨넣고 나왔다. 제발 이거 읽을 시간은 나길 바라면서... 하지만 역사 예상했던 대로 며칠 내내 밤 11시에 들어오는 - 심지어 토요일까지도! - 강행군이 펼쳐졌고 일요일 오늘. 그간 밀린 잠을 내리 자고 나서 점심 먹으러 어슬렁어슬렁 근처 식당 나가 먹고 커피숍(안제리너스!)에 커피 한잔 받아놓은 채 이 책을 읽는 기쁨을 누렸다. 다 읽고 들어오는데 아 세상을 다 얻은 이 기분. (이건 왠 오바냐)

 

그러니까 나는 하노이에 왔는데 그냥 회사-호텔만 왔다갔다 하다 보니 이게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있는 호텔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고... 결국 귀국할 때까지 이럴 거라고 체념한 채 지금도 방에서 자료를 읽고 있다. 이런 게 진정한 business trip 이지. 암요. 암요.

 

이 책은. 역시나 내게 소중함을 안겨 준다. 에드 맥베인이 쓴 이 87분서 시리즈는, 절대 경찰소설만으로 끝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

 

만약 귀를 만진다면 얼어서 떨어져 나가리라. 그 역시 어머니가 한 말이었다. 그는 귀가 정말 떨어지는지 알고 싶어서 귀가 얼어붙었을 때 만져 보고 싶은 유혹에 몇 번 넘어갈 뻔한 적이 있었다. 사실 그는 귀가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엄마에 대한 믿음이 무너질까 봐 두려웠다. (p9)

 

귀엽기는. 우리는 대부분 이런 생각을 한번쯤 한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이 바뀔까봐 괜히 못하는 것들이 하나씩 있는 것 같다. 특히나 그 상대가 엄마라면.

 

헤밍웨이가 다시 한 번 크게 한숨을 쉬고 얼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고 물었다. "헤밍웨이라는 작가가 진짜 있어요?" (p78)

 

자기 이름이 어니스트 헤밍웨이인데, 그런 작가가 있는 것도 모르는 마약쟁이 꼬마. 엄마가 그 이름을 지어줄 때는 뭘 생각하며 지었을까. 문득 그 때 읽고 있던 책이 헤밍웨이의 책이었고 남편의 성이 우연히도 헤밍웨이 였을까.

 

곤조는 어디 있을까?

크리스마스 쇼핑을 하고 있으리라. 카렐라는 생각했다. 마약 밀매인들 역시 아내와 어머니가 있지 않겠는가? 물론 그들에게도 있을 터였다. 그리고 당연히 크리스마스 선물을 교환하고, 여느 사람들처럼 세례식과 바르미츠바와 결혼식과 장례식도 가리라. 그러니까 곤조는 크리스마스 쇼핑을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것도 그렇게 억지스러운 생각은 아니었다. (p159)

 

가끔 아찔한 건 이런 거다. 범죄인(우리가 흔히 붙이는 말)들도 생물학적인 부모가 있고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을 수 있다는 거. 범죄라고 불리는 행위를 하면서도 어쩌면 따뜻한 아들/딸,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일 수도 있다는 것. 그런 게 뭔가 아뜩함을 안긴다.

 

살인에는 한 가지 성가신 문제가 있다.

정직하게 말해서 살인에는 여러 가지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한 가지는 더 특별하다.

그 한가지는 버릇이 된다는 점이다.

믿거나 말거나 살인은 습관성 행위일 뿐이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며, 다소 바보 같은 말일 수도 있다. 양치질은 습관성 행위다. 목욕도 마찬가지다. 배신행위 역시 그렇다. 영화를 보러가는 것 또한 그렇다. 다소 병적으로 되길 원한다면, 삶 자체 역시 어느 정도 습관성을 띈다.

하지만 살인은 예외 없이, 확실한 습관성을 띤다.

그것이 바로 살인의 가장 큰 문제다. (p194~195)

 

박민규의 소설에서도 이런 비슷한 뉘앙스의 말이 있었다. 삶은 습관성이다. 그리고 에드 맥베인은 살인이 가장 확실한 습관성을 띤다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그럴 지도. 사람을 한번 죽인 사람이 또 사람을 죽일 확률이 높아지는 건 맞는 것 같다. 어떤 한계를 넘어가면 그다음에 또 넘어가는 건 참 쉬워지는 것이지. 흠... 좀 무섭다.

 

*

 

일은 산더미인데, 일하기 싫은 일요일이라 이렇게 4월의 첫글을 하노이에서 올리고 있다. 더이상은 스포일이 될 것 같아 문구를 올리지 못하겠지만, 암튼 에드 맥베인은 너무 멋진 작가다. 내가 그 다음에 집은 소설이 뭔지 아는가. 이 사람도 무지하게 멋지다.

 

 

 

 

 

 

 

 

 

 

 

 

 

 

 

 

 

요 네스뵈! 음으홧홧. ... 이 책은 일좀 하다가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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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4-19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출장중에 이렇게 독서로 즐거운 일탈을^^
삶은 습관성이다, 맞는말 같아요. 그래서 연쇄살인범이 있을까요‥

비연 2015-04-19 21:07   좋아요 0 | URL
ㅋㅋㅋ 주말이 낀 출장이 줄 수 있는 좋은 점 중의 하나죠.
연쇄살인범은..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습관적으로. 일상적으로. 그래서 무서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