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네스뵈의 이야기를 쓴 지 하룻만에, 그의 책이름과 같지만 작가는 다른 책 얘기를 하다니. 괜히 묘한 느낌을 가지게 하네. 이것은 필립 로스의 <네메시스>.
두려움은 우리를 나약하게 만들어. 두려움은 우리를 타락시켜. 두려움을 줄이는 것, 그게 자네의 일이고 내 일이야.
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정확히는 이 책 속의 닥터 스타인버그. 폴리오가 창궐하는 마을에서 아이들이 수없이 죽어가고 아파하고.. 속수무책인 상태에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 두려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여름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메르스도 그랬다. 진원지가 어디인지 확실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재수없게) 걸리면 누가 死者의 동반자가 될 지 알 수 없다는 데에서 오는 두려움. 그런 두려움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고 불안에 떨게 함과 동시에, 사람을 미워하게 한다. 그래. 가장 큰일인 건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는 거다.
잠시, 이런 행복감 때문에, 그는 자신이 놀이터 아이들을 배신한 것을 거의 잊을 수 있었다. 위퀘이크의 무고한 아이들을 죽음으로 괴롭힌 것 때문에 하느님에게 분노한 것을 잊을 수 있었다. 그는 마샤와 약혼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있는 곳을 외면하고 정상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정상적인 삶의 안전과 예측 가능성과 만족을 끌어안으러 달려갈 수 있었다.
이런 것을 바로 '회피'라고 한다. 이런 최악의 상황이 아닐 지라도 일상에서 수없이 하고 있는 일들. 진실을 외면하고 현실에 매몰하여 기억을 기만하려는 행위들. 돌아오면 그자리임에도 잠시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하는 행위들.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수없이 시도하는 행위들. 아니면 누군가 날 좀 이렇게 만들어 줬으면 하고 수동적인 바램마저 가지게 되는 모습들. 그게 '회피'이다. 나는 요즘 그걸 하고 있다. 나의 고통과 심약함과 외로움을 망각하기 위한 도피처를 추구하고 있다. 딱히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그냥 무작정. 이 책 속의 버키 캔터와 같다. 그는 폴리오와 그로 인한 비극과 모순을 피하고 싶어했고, 나는 인생 자체의 부조리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게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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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는 뭘 읽어도 중간 이상은 간다. 그래서 읽고 싶기도 하고 읽고 싶지 않기도 한 작가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펴놓고 보기에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소설이라 읽고 있다.
날이 많이 선선해졌네. 시간은, 무심히 있으나 바둥바둥 거려대나 자기 페이스대로 흘러만 간다. 그게 요즘은 고맙다. 시간의 항상성. 불변함. 이런 것들이 의외로 날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