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이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그러니까 너무나 급하게 출장이 결정나서 일주일만에 결재받고 부랴부랴 출발했다고 하자. 물론 바쁜 출장 일정이라 절대 책읽을 시간 따윈 나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두 권 주섬주섬 챙겨 왔다. 그 중의 하나가 피니스 아프리카에가 열심히 내주시는 (고맙게도!) 에드 맥베인의 <마약 밀매인>.

 

한국에서부터 계속 읽으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안 나서 손에 쥐고만 있다가 공항 가기 전에 황급히 구겨넣고 나왔다. 제발 이거 읽을 시간은 나길 바라면서... 하지만 역사 예상했던 대로 며칠 내내 밤 11시에 들어오는 - 심지어 토요일까지도! - 강행군이 펼쳐졌고 일요일 오늘. 그간 밀린 잠을 내리 자고 나서 점심 먹으러 어슬렁어슬렁 근처 식당 나가 먹고 커피숍(안제리너스!)에 커피 한잔 받아놓은 채 이 책을 읽는 기쁨을 누렸다. 다 읽고 들어오는데 아 세상을 다 얻은 이 기분. (이건 왠 오바냐)

 

그러니까 나는 하노이에 왔는데 그냥 회사-호텔만 왔다갔다 하다 보니 이게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있는 호텔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고... 결국 귀국할 때까지 이럴 거라고 체념한 채 지금도 방에서 자료를 읽고 있다. 이런 게 진정한 business trip 이지. 암요. 암요.

 

이 책은. 역시나 내게 소중함을 안겨 준다. 에드 맥베인이 쓴 이 87분서 시리즈는, 절대 경찰소설만으로 끝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

 

만약 귀를 만진다면 얼어서 떨어져 나가리라. 그 역시 어머니가 한 말이었다. 그는 귀가 정말 떨어지는지 알고 싶어서 귀가 얼어붙었을 때 만져 보고 싶은 유혹에 몇 번 넘어갈 뻔한 적이 있었다. 사실 그는 귀가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엄마에 대한 믿음이 무너질까 봐 두려웠다. (p9)

 

귀엽기는. 우리는 대부분 이런 생각을 한번쯤 한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이 바뀔까봐 괜히 못하는 것들이 하나씩 있는 것 같다. 특히나 그 상대가 엄마라면.

 

헤밍웨이가 다시 한 번 크게 한숨을 쉬고 얼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고 물었다. "헤밍웨이라는 작가가 진짜 있어요?" (p78)

 

자기 이름이 어니스트 헤밍웨이인데, 그런 작가가 있는 것도 모르는 마약쟁이 꼬마. 엄마가 그 이름을 지어줄 때는 뭘 생각하며 지었을까. 문득 그 때 읽고 있던 책이 헤밍웨이의 책이었고 남편의 성이 우연히도 헤밍웨이 였을까.

 

곤조는 어디 있을까?

크리스마스 쇼핑을 하고 있으리라. 카렐라는 생각했다. 마약 밀매인들 역시 아내와 어머니가 있지 않겠는가? 물론 그들에게도 있을 터였다. 그리고 당연히 크리스마스 선물을 교환하고, 여느 사람들처럼 세례식과 바르미츠바와 결혼식과 장례식도 가리라. 그러니까 곤조는 크리스마스 쇼핑을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것도 그렇게 억지스러운 생각은 아니었다. (p159)

 

가끔 아찔한 건 이런 거다. 범죄인(우리가 흔히 붙이는 말)들도 생물학적인 부모가 있고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을 수 있다는 거. 범죄라고 불리는 행위를 하면서도 어쩌면 따뜻한 아들/딸,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일 수도 있다는 것. 그런 게 뭔가 아뜩함을 안긴다.

 

살인에는 한 가지 성가신 문제가 있다.

정직하게 말해서 살인에는 여러 가지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한 가지는 더 특별하다.

그 한가지는 버릇이 된다는 점이다.

믿거나 말거나 살인은 습관성 행위일 뿐이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며, 다소 바보 같은 말일 수도 있다. 양치질은 습관성 행위다. 목욕도 마찬가지다. 배신행위 역시 그렇다. 영화를 보러가는 것 또한 그렇다. 다소 병적으로 되길 원한다면, 삶 자체 역시 어느 정도 습관성을 띈다.

하지만 살인은 예외 없이, 확실한 습관성을 띤다.

그것이 바로 살인의 가장 큰 문제다. (p194~195)

 

박민규의 소설에서도 이런 비슷한 뉘앙스의 말이 있었다. 삶은 습관성이다. 그리고 에드 맥베인은 살인이 가장 확실한 습관성을 띤다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그럴 지도. 사람을 한번 죽인 사람이 또 사람을 죽일 확률이 높아지는 건 맞는 것 같다. 어떤 한계를 넘어가면 그다음에 또 넘어가는 건 참 쉬워지는 것이지. 흠... 좀 무섭다.

 

*

 

일은 산더미인데, 일하기 싫은 일요일이라 이렇게 4월의 첫글을 하노이에서 올리고 있다. 더이상은 스포일이 될 것 같아 문구를 올리지 못하겠지만, 암튼 에드 맥베인은 너무 멋진 작가다. 내가 그 다음에 집은 소설이 뭔지 아는가. 이 사람도 무지하게 멋지다.

 

 

 

 

 

 

 

 

 

 

 

 

 

 

 

 

 

요 네스뵈! 음으홧홧. ... 이 책은 일좀 하다가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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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4-19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출장중에 이렇게 독서로 즐거운 일탈을^^
삶은 습관성이다, 맞는말 같아요. 그래서 연쇄살인범이 있을까요‥

비연 2015-04-19 21:07   좋아요 0 | URL
ㅋㅋㅋ 주말이 낀 출장이 줄 수 있는 좋은 점 중의 하나죠.
연쇄살인범은..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습관적으로. 일상적으로. 그래서 무서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