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알라딘 서재에 계신 분들은 다 비슷하시겠지만, 나도 '책'에 대한 책을 즐겨 읽는 편이다. 도서관 이야기, 서재 이야기, 서점 이야기, 북카페 이야기, 다독가들의 책읽은 이야기, 책소개 이야기, 책평론 이야기... 등등등. 읽든 안 읽든 나오면 무조건 산다. 왜냐고?

 

.. 오늘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게.. 나같은 경우는 '책' 속에 '책'이라는 글자가 많이 나와서인 것 같다는 괴상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니까 책을 좋아하니까 글 속에서 '책'이 어떻고 '책'을 보고 '책'파는 곳이 어디고 '책'이 무엇이 있고... 등등등 '책'이라는 글자가 한줄에 여러번씩 나오는 글을 읽다 보면 나혼자 괜히 힐링이 되는 기분이 된다. 흠. 좀 궤변인가. 아뭏든 그러하다.

 

지금 읽고 있는 책,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이건 정말 그 점에서 완벽하다. 내 책장에 버젓이 버티고 있는 <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을 지은 부부저자라는 점에서, 그리고 맨날 외국의 서점만 보다가 지쳐 있었는데 우리나라 동네서점 이야기라니 이게 왠일? 이라는 눈 튀어나올 만큼 놀라운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냥 샀다. 아. 근데 정말 재미있다.

 

 

예전에 우리 동네에 노부부가 작은 책방을 열었었다. 알라딘에서도 한번 얘기했던 것 같은데... 그 당시에는 동네에 서점이 없었고 심지어 인터넷 서점도 활성화되지 않았었다. 그러니까 지금 생각하면 그런 시절이 있었어? 라고 반문할 수 있는 신석기시대 같은 때였다. 책을 사려면 영풍문고나 종로서적이나 교보문고를 가야 했는데 서점이 생기다니 나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작은 책방이었지만 그런대로 볼만한 책들이 가득 꽂혀 있었고 한켠에서는 노부부가 돋보기를 들어올리며 늘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생각하면 그들은, 은퇴를 하고 책을 사랑하는 마음에 서점을 연, 그런 분들이었던 거다. 난 그곳을 좋아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들르듯 오며가며 들러서 책 한권씩 사는 기쁨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곳에 쌓여있는 책은, 내가 좋아라 하는 책이 아니라 참고서가 되고 있었다. 처음엔 정말이지 참고서가 거의 없었던 서점이었다. 그러니까 버티다가 버티다가 수지가 너무 안 맞으니 결국 그런 책 아닌 책들을 좌판에 벌여놓을 수 밖에 없었던 그 분들의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졌었다. 나도 그렇게 되면서 점점 그곳과 거리를 두게 되었고... 어느 새 서점이 있던 자리엔 편의점이 자리하게 되어 버렸었다.

 

별 거 아닌 일인데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저린다. 어쩌면 서점은 그들의 은퇴후 꿈이었을 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사그러들고 만 게 왠지 분했다. 그리고 이넘의 동네는 서점 하나 없이 잘도 버티네 라는 짜증도 있다... 지금은 강남 교보문고가 워낙 크게 자리잡고 있어서 주말마다 한번씩 들러 둘러보는 게 습관처럼 되었고 그 서점에 대한 기억도 가물가물해져 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아주 강렬하게 그때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충북 괴산에서 '숲속의 작은책방'이라는 서점을 운영하는 부부. 다른 동네에는 이런 데가 없나 라고 뒤져보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전국 작은 책방 지도. 보니 참 여러 곳에 내가 그리워하는 책방들이 있었다. (근데 그 와중에도 서울 강남에는 한.. 곳..;;;) 동네 서점은 다 망했을 거라는 나의 편견을 깡그리 없애 주는 이 곳들. 줄까지 쳐가면서 열심히 읽고 그 근처에 가면 꼭 들러봐야겠다 주소도 입력하게 만든다.

 

우리는 모두 자기 사는 지점에서 각자 열심히들 살고 있다고 하지만, 저는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나의 영역에서 나의 삶만 살지 말고 그런 이들이 함께 연대할 때 새로운 움직임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에 지식인, 교양인, 작가, 전문가가 이렇게도 많은데 모두 파편처럼 흩어져 있어서 그들의 목소리가 허공에 흩뿌려지고 마는 것 같아요. 이걸 하나로 모아낼 힘을 갖고 싶어요. 이걸 모아내지 못하는, 그래서 바꿔내지 못하는 무기력을 비판하고 싶습니다. 인디고 서원은 연대할 줄 아는 청년들을 키워내는 게 목표입니다. 연대해서 함께 싸울 줄 아는 사람들 말이죠. 투사가 될 수밖에 없는 세상이라면 혁명의 전사로 살고 싶은 게 우리들의 목표입니다.

-  p62

 

인디고서점의 책방지기의 말에 백퍼 동감한다. 파편처럼.. 이라는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한 개인의 머릿 속에도 파편처럼 흩어진 생각들을 한데 모아 다른 사람과 그것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게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책은, 서점은 제대로 된 역할을 하게 한다고 믿는다. 우리나라처럼 지식은 많으나 사는 게 천박한 나라일수록 정말 필요한 부분이다.

 

책방을 시작할 때는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라기보다는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곳, 사람이 있고 이야기가 있는, 그리고 좋은 책이 있는 작지만 진짜 동네책방을 만들고 싶었어요. 미국의 경우 지역 독립서점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게 되면 지역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아서 그 서점을 지켜준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만틈 동네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뜻이죠. 이런 이야기를 볼 때마다 정말 부럽다고 생각했어요. 작지만 오랫동안 유지되는, 동네에서 사랑받는, 그리고 지역사회에서도 제 역할을 하는 그런 책방을 하고 싶습니다.

- p108

 

부럽다. 외국이 부러운 이유는, (물론 요즘은 미국도 서점들이 문을 닫고 있긴 하지만) 이런 분위기이다. 잘먹고 잘살고 그런 게 부러운 건 절대 아니다. 작은 것을, 그리고 내 주변에서 나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 우리는 비싸고 크고 멋지고 남들이 알아주는 것에만 매달리는 습관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내 삶을 얼마나 질적으로 좋게 만드는가보다는 남의 시선에 따라 휘둘리곤 하는데... 그래서 나는 늘 지역의 책방에 관심이 많다. 진정한 지역의 문화는 어쩌면 책방이라는 곳에서 시작될 지도 모른다.

 

이 책은, 권하고 싶다. 책방 이야기일 뿐일 수도 있지만, 어려운 책방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의 소소한 철학이 담겨져 있고 그리고 이 세상에 책을 사랑하는, 그래서 책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그래서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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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9-13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에 역사가 깊은 유명 고서점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봤어요. 고서점 주인은 고서점 문화가 이제는 죽었다고 말했는데, 씁쓸했어요. 헌책방이나 동네 서점도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비연 2015-09-13 21:48   좋아요 0 | URL
정말 안타까와요... 뭔가 이런 문화를 지켜나가는 저력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