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독서의 질병이 잠식해 들어가면 몸이 너무나 쇠약해져서, 잉크병에 숨어 있고 깃털 펜에서 곪아 가는 치명적 병균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어 버린다. 가여운 인간이 글을 쓰는데 빠져드는 것이다. 이것은 가진 것이라고는 비가 새는 지붕 아래 놓인 의자와 탁자뿐이라서 결국 잃을 것이 많지 않은 가난한 사람에게도 나쁜 일이지만, 여러 채의 저택과 가축, 하녀, 당나귀와 리넨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글을 쓰려는 부자의 고충은 가련하기 그지없다. 그 모든 재산을 향유하는 즐거움이 달아나 버린다. 그는 뜨거운 쇳덩이에 난타당하고 해충에 뜯긴다. 작은 책 한 권을 쓰고 유명해질 수 있다면, 가지고 있는 마지막 동전 한 푼까지도(그 세균의 악성은 이 정도로 지독하다) 내놓을 것이다. 하지만 페루의 금을 모두 내놓아도 보석처럼 우아한 시 한 줄도 얻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폐결핵에 걸려 앓아눕거나 자기 머리통을 권총으로 쏴버리고 혹은 돌아누워 벽만 바라본다. 그가 어떤 자세로 목격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는 죽음의 문턱을 넘었고, 지옥의 불꽃을 경험한 것이다. (p79)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마도 버지니아 울프가 글을 쓰면서 느꼈던 심정을 옮겨 담은 게 아닌가 싶었다. 독서를 하고 글을 쓰고 거기에 빠져들고. 참으로 유려한 표현이다. 문득, 예전에 본 영화가 기억났다. 제목도 가물가물했는데, <디 아워스(The Hours)>. (<디 아더스(The Others)> 아님다.. ㅎㅎ 여기에도 니콜 키드먼이 나와서 엄청 헷갈리는 비연)..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었다. 심지어 2002년 작이네. 극장에서 보았던 것 같은데... 아마 아카데미상 탔다고 봤던 듯.
여기에 메릴 스트립과 줄리안 무어가 나왔던가. 그냥 기억나는 건, 버지니아 울프로 분했던 니콜 키드먼의 모습. 뭔가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은 예민함이 보였고 담배를 계속 피던 모습이 떠오르고. 그리고 호숫가로 걸어가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마 내가 버지니아 울프를 우울함으로 기억하는 건, 이 영화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에서의 울프의 모습은 적절한 유머가 있고 세상에 대한 냉소를 돌려치며 말하는 위트가 있고 무엇보다 표현이 섬세해서, 우울함은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그녀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에 인생 자체를 비극으로 여기는 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 다시 한번 봐야겠다 싶어서 찾아보니 왓차에 있는 것이다. 흐흐흐. 돈 낸 보람이 있구나, 왓차. 이번 설 연휴는 짧은데 할 일은 많고.. 그 중에 이 영화 보는 것도 하나 넣어둬야겠다.
일요일 아침에 괜한 일로 약간의 스트레스르 받았었는데 (세상 졸렬한 사람이 널렸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발견할 줄은 몰랐다. 심지어 일요일 아침에) 이 책 잠시 들춰보니 마음에 슬며시 평안이 깃든다. 자. 이제 일요일의 일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