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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택의 재검토 - 최상을 꿈꾸던 일은 어떻게 최악이 되었는가
말콤 글래드웰 지음, 이영래 옮김 / 김영사 / 2022년 4월
평점 :
1916년 약 3,700만 명의 목숨을 빼앗아간 세계 제 1차 대전을 겪은 인류는 전후 전쟁에서 싸우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전투기 조종을 맡았던 조종사들은 전쟁터에서 '바람직하게' 싸우는 전쟁을 펼쳐 나가야 한다고 주장 하기 시작한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전투 비행기는 합판과 천, 금속, 고무 재질로 제작 되어 위 아래 두 쌍으로 달려 있는 날개는 지주로 연결 되어 있었다.
좌석은 하나 였고 프로펠러와 동기화 된 기관총이 앞을 향해 있고 총알은 프로펠러 사이로 발사 되었다.
차고에서 순식간에 조립해서 급박하게 움직이는 전쟁터로 출격해야 하는 전투 비행기들은 공습 목표물 폭격 뿐만 아니라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까지 파괴 시켰던 괴물이였다.
폭격 대상을 정밀하게 조준하는 능력이 형편 없었기 때문에 목표물을 향한 정확도가 떨어지는 전투 비행기는 시속 300-500킬로미터로 날아 올라서 800킬로미터까지 치솟다가 9킬로 미터 상공에서 폭탄을 떨어뜨리는 순간 지상으로 폭탄 물이 떨어 질 때 까지 약 35초가 걸렸다.
만약 폭탄이 떨어지는 동안 바람이라도 분다면 시속 160킬로미터까지 이르러서 지상으로 폭탄이 떨어지는 순간 조종사가 조준 했던 목표물이 아닌 엉뚱한 곳으로 떨어 지는 확률이 높았다.
[그들은 목표를 이룰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전혀 몰랐죠. 어디인지는 모르면서도 거기에 이를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집단 내부에서 일어난 정말 특이하고도 중요한 일은 기술적인 진보와 소재 개발에 대한 강한 믿음, 적절한 비행기를 손에 놓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20세기 초 공중에서 적과 교전 할 수 있는 기동성이 뛰어난 비행기는 1차 대전을 겪고 난 후 1930년대 비약적인 항공 기술로 거듭 발전해 나갔다.
알루미늄과 철이 합판을 대체했고 엔진은 더 강력해졌고 항공기 내부 크기는 더 커지면서 더 높이 날아 오를 수 있었다.
어떤 전쟁에서도 멋지게 창공을 가로 지르며 적을 제압 할 수 있는 항공기들은 1930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칼라일 소재 육군 대학원에서 탄생 했다.
이곳에 항공 기지가 설립 되면서 세워진 항공단전술학교에는 하늘과 땅을 가로지르는 속도에 미쳐버린 20-30대 젊은 리더들이 모였다.
'우리는 관습에 구애 받지 않고 진보 한다.'
이들은 일명 '폭격기 마피아'집단으로 불렸던 항공단 교수진들로 대부분 1차 대전에 참전 했던 전쟁 용사들이였다.
전쟁 후 장군으로 진급한 이들은 전자 회사나 거대한 방산 업체에서 근무 하면서 항공 기술 개발에 몰두 했다.
이들 폭격 마피아들은 레닌과 스위스 연방공대 동기 출신의 네덜란드 태생 괴짜 엔지니어 칼 노든이 개발한 폭격 조준기( 망원경·볼베어링·수준기(水準器) 등으로 구성된 조준기에 공기 온도 등에 관한 64개 알고리즘을 활용해 조작하면 어느 시점에 폭탄을 투하해야 지상 목표물에 명중할 수 있는지 계산하는 조준기)로 비행기에 장착해서 적의 병참·군수 핵심만 정밀 타격하면 민간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편은 십 수 명에 불과 하지만 상대편에는 1만 명의 장교로 가득 찬 육군 해군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열의가 충만했다. '
당시 이들의 교육 방침이나 항공 기술에 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폭격 마피아'들이 어떤 일을 시도하거나 추진하고 있을 때 상황을 점검 하라 거나 멈추라고 지시 할 사람이 없었다.
교과서나 지침서도 없었고 강의 계획서도 없었던 항공단전술학교의 모든 교육은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실시 되었다.
폭격 마피아 교수진들은 장소를 정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 든 지 공개적인 토론을 벌이며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육군성 지휘부의 참모들이 당시 우리가 하고 있었던 일이 무엇이였는지 알았다면 우리 모두 즉시 감옥으로 끌려 갔을 것이다. 기존의 군사 규칙이나 무기 개발과는 완전히 상반 되었던 것으로 이 사실을 알고도 우리가 개발을 지속하고 있는 행위를 절대로 묵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폭격 마피아 교수진들 중 핵심 멤버 도널스 윌슨 자서전 중에서
이렇게 엄청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었던 폭격 마피아들은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항공기, 즉 인입 식 착륙 장치와 가압형 동체를 부착한 항공기를 탄생 시킨다.
이 항공기는 미국 전역으로 승객을 실어 나르는 상업 항공기가 아닌 오로지 폭탄을 싣고 날아 올라서 기상의 적들에게 무시 무시한 파괴력을 보여주는 강력한 무기였다.
1차 대전 당시 적진에 폭탄을 떨어뜨렸던 시기는 어두운 밤, 달빛이 떠올랐던 순간이였지만 이제 폭격 마피아는 훤한 대낮에 공격에 나설 수 있었다.
시야가 확보된 상태에서 목표물을 향해 정확하게 조준하는 변수를 입력해 작동을 시키는 순간 9킬로 상공에서 지상의 오크통 위로 정확하게 폭탄을 떨어 뜨릴수 있다.
하지만 1930년대 폭격기 마피아들의 이런 구상과 설계는 지극히 이론적인 것, 존재하기를 희망하는 것 이였을 뿐 이였다.
1930년대 전장에 투입했던 비행기들을 보게 된다면 이런 말을 내뱉을 것이다.
'뭐야, 이 사람들은 마약을 얼마나 많이 했던 거야?'
1차 대전을 겪었던 공군들은 필사적으로 육군이나 해군과 전혀 다른 전투력을 보여주고 싶어서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전쟁을 치르고 싶었다.
1931년부터 1941년 항공 단 전술 학교를 중심으로 공군은 해군과 육군보다 앞선 기술력을 발전 시켜 나갔다.
이들이 집중 폭격 대상으로 삼은 건 '교량'과 '송수로' 그리고'전력'시설물이 였다.
교량을 파괴하고 송수로를 붕괴 시키고 전력을 불 태워 버리면 전쟁에 승기를 잡는다고 가정 했지만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폭격의 정밀한 기술과 폭격수가 어떤 표적을 정확하게 타격 시킬 수 있는데 만 집중적으로 연구 했다.
'폭격기 마피아'들은 폭격기를 동원해 도시를 초토화 시켜서 단 시간 안에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공군력은 수 개월 동안 적과 충돌을 거듭하며 참호 궤멸 작전 속에서 수 백 만명의 목숨을 잃은 1차 대전의 대 학살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들이 20여 년 동안 운영한 항공단 전술 학교 졸업생은 고작 천 여명 남짓으로 수세 대에 걸쳐 육군 장교를 배출한 웨스트 포인트의 위엄과는 수적으로 전쟁 경험으로 비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1941년 여름 히틀러의 진격으로 유럽 전역에 나치 깃발이 꽂혀 버리자 워싱턴은 폭격기 마피아 전술 교관들을 호출한다.
교관들은 <AWPD-1 air war plans division one>이라는 놀라운 문서를 들고 간다.
이 문서에는 미국이 필요한 항공기(전투기, 폭격기, 수송기)종류 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조종사와 몇 톤의 폭발물이 필요한지 부터 독일 지역의 50개의 발전소와 47개의 수송망,27개의 석유 정제소,18개의 항공기 조립 공장, 6개의 알루미늄 공장,6개의 마그네슘 공급원 같은 중요 표적물 까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은둔의 10년 동안 오로지 항공 기술 개발에 매달렸던 폭격기 마피아 교수진들과 교관들은 미국 군 수뇌부에 단 9일 동안 전쟁을 승기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 준다.
미국 육군 항공단 전술 학교에서는 폭격기 마피아들이 폭탄을 고도로 정밀하게 사용하는 세상을 꿈꾸고 있었다.
반면 영국의 물리학자 린더만은 탁월한 기억력을 바탕으로 아인슈타인 조차 증명 하지 못했던 수학적 명제를 해결 했던 천재로 미국 측 폭격기 마피아들과 전혀 상반된 논거를 처칠 총리에게 제시했다.
[영국의 모든 자원을 동원해 폭탄을 만들고 폭격기 승무원을 훈련 시키고 이 모든 폭격기와 승무원을 독일 노동자 계급의 가옥을 폭격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전력을 다한다면 18개월 안에 인구 5만 이상 모든 도시의 50퍼센트를 파괴 할 수 있습니다.]
린더만은 처칠을 설득했고 처칠은 영국 폭격 사령부 지휘관 자리에 아서 해리스를 임명한다.
부하들에게 도살자로 불렸던 아서 해리스는 폭격 작전을 맡자마자 독일 쾰른 시에 대규모 공격을 시작한다.
표적을 확인하지 않고 영국에서 천 개의 폭탄을 싣고 서 쾰른 시 중심부에 90퍼센트를 초토화 시켜 버렸다.
그는 단 3일 만에 드레스덴을 폭격해서 2만 5000명의 민간인을 죽였다.
폭격의 이유는 군의 이동을 막기 위한 것 이였지만 폭격의 대상은 민간인들 이였다.
그는 폭격을 더욱 정확하게 해서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믿으며 전쟁에서 사람들이 아닌 전쟁 기계를 파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1942년 가을 B-17 폭격기를 몰고 슈바인푸르트를 향하고 있었던 육군 항공대 대령 커티스 르메이는 회피 기동을 하지 않은 채 약 8분 동안 직선 고정 비행으로 목표물에 접근해서 폭탄을 떨어뜨리는 전략을 세운다.
슈바인 푸르트 공습 전날 대령 르메이는 제4폭격비행단(B-17 폭격기)를 이끌고 레겐스부르크에 있는 매서슈미트 전투기 공장을 폭격하기 위해 출격하기로 했지만 출격 당일 날 아침 극심한 안개로 인해 활주로에 발이 묶여 버린다.
기상 악화로 인해 125대 비행기 중 24대가 독일 폭격기에 맞아 공중 분해 되었고 50-60대 비행기가 크게 파손되었다.
각각 8-9개의 폭탄을 실은 230대 폭격기들이 총 2000여개의 폭탄을 떨어뜨렸지만 목표물 중 고작 80여개 만 사라졌고 매서슈미트 전투기 공장은 큰 파손 없이 정상으로 가동 되었다.
슈바인푸르트는 1,2차 공습을 당해도 항공기 산업이 전혀 마비 되지 않았다.
반면 미국 측의 제 8공군이 출격한 60대의 전투기 중 17대는 심각한 손상으로 폐기 해버렸고 650명의 항공병이 사망하거나 포로로 잡혔다. 참전한 대원 중 4분의 1이 사라져 버린 폭격기 마피아는 절박한 심정으로 새로운 전투 계획을 세우고 기술력을 보강해 나간다.
1944년 12월 괌 사령부의 대 언론 공식 발표 자리에 선 공군 사령관 해이우드 핸셀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폭탄을 우리가 원했던 장소에 정확히 떨어뜨리지는 못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까지 해온 일에 전혀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 초기 실험 단계에 있을 뿐이다. 배워야 할 것이 많고, 많은 운영상의 문제와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1944년 미군은 일본 군이 주둔하고 있던 괌, 사이판 등 서태평양 마리아나제도를 점령하자마자 일본 본토를 공략하기 위한 전초 기지로 변모한다. 당시 이곳 전초 기지를 지휘 했던 인물은 헤이우드 핸셀 준장으로 그는 제21폭격기 부대를 이끌었다.
핸셀 준장은 낮에 폭격기를 출동 시킨 뒤 공장, 발전소 등 적국의 기반 시설을 조준해 타격하는 ‘정밀 폭격’ 전술을 선호했지만 적의 대공포를 피하려 구름 위를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며 정확한 위치에 폭탄을 투하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전략이 연달아 실패하자 민간인 학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항변했지만 결국 미국 본토에선 새 지휘관 커티스 에머슨 르메이 소장을 새 지휘관으로 임명한다.
르메이 소장은 정밀 폭격을 포기하고 적의 대공(對空)공격을 피하기 위해 야간 시간대에 표적이 어디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보단 광범위한 공격을 가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르메이 소장은 야간 공습 전략에 '사탄의 제안'이라고 불렸던 '네이팜탄'을 썼다. .
1945년 3월9일 밤 도쿄 커티스 르메이의 지휘로 첫 대규모 공격이 시작되었고 네이팜 탄을 장착한 폭격기는 오사카-구레-고베-니시노미야-오카야마-도쿠시마-도야마를 초토화 시켰다.
8월 6일 특별 장비를 장착한 B-29 에놀라 게이가 세계 최초의 원자 폭탄을 히로시마에 떨어뜨린다. 일왕은 곧바로 항복을 선언했고 2차 대전을 끝이 났다.
[전쟁은 비열하고 끔찍한 일이다 많은 사람을 죽여야 한다. 하지만 피할 방법이 없다면 가능한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 노력 해서 전쟁을 빨리 끝내야 한다.]
-커티스 르메이
수천 년 동안 지속 된 세상의 모든 전쟁은 서로를 제거 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사람을 투입했다.
인류는 빠른 시간 안에 전투에서 승리 하기 위해 엄청난 파괴력과 정밀한 조준 기술을 갖춘 무기와 폭탄을 개발하는데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다.
1,2차 세계 대전을 치르면서 군용 폭탄, 신관, 독가스,연막 통, 수류탄 같은 폭탄 물을 해체하고 분해 하면서 수백 번의 실험을 거쳐 무엇에 든 달라 붙어 활활 태워 버리는 '네이팜'을 탄생 시킨다.
[화염병은 사람이나 물건을 끔찍하게 태울 수는 있지만 불은 비교적 빨리 꺼질 것입니다. 반면, 네이팜은 터지는 순간 대상에 달라붙어 복사 에너지를 전달해서 완전히 연소 될 때까지 활활 타오릅니다. M69폭탄의 주요 구성 요소는 특수 처리한 젤 형의 가솔린을 담은 치즈 주머니, 여기에 불이 붙으면 젤이 불타는 동안 끈적한 덩어리가 되어 직경 1미터 이상까지 퍼집니다. M69는 38개의 폭발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뭉치가 해체되어 열리고 거즈띠가 매달린 개별 폭탄이 표적을 향해 떨어져서 달라 붙는 순간 대단한 위력을 발휘 하게 됩니다.]
세상의 어떤 전쟁에서도 민간인들의 피해를 최소화 해서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전쟁을 끝내지 못한다. 거대한 폭탄들이 도시에 떨어지는 순간,사상자의 피해는 막을 수 없다.
정밀한 조준력을 갖춘 폭격기가 개발 될 수록 더 많은 전장 터로 폭격기들은 날아 갈 것이다.
2022년 4월 영토 정복 야욕과 군사적 목적을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며 도시 전체를 불태우고 있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를 중심으로 병원과 학교 그리고 시민들을 가리지 않고 통 폭탄, 열압력 폭탄, 소이탄, 클러스터 폭탄, 집속 탄, 진공 폭탄,벙커 버스터 등 치명적인 무기로 모든 도시를 파괴 하고 있다.
철저하게 지도 상에서 우크라이나의 영혼을 파괴하고 있는 러시아에게 생명에 대한 양심이나 가책 없이 파괴 하며 ICBM무기까지 꺼내 들고 있다.
키이우 인근 도시 부차와 보로디안카 등에서는 민간인을 대량 학살하며 반 인류 범죄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폭격기 마피아의 리더 였던 헤이우드 핸셀 장군은 도쿄에 대한 네이팜(소이탄) 공격을 거부하다 경질되었다.
만일 폭격기 마피아의 양심과 신념이 그대로 지켜졌다면 일본은 연합군에 항복 했을까?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104년 만의 첫 국제 채무불 이행(디폴트) 위기에 처한 러시아는 여전히 폭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러시아의 잔혹한 폭격으로 우크라이나 경제는 84퍼센트가 붕괴 되었지만 러시아의 경제 자금 줄은 고작 34퍼센트만 타격을 받았을 뿐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 세력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대항할 강력한 무기들을 제공하고 있고 러시아는 탈출하는 민간인 통로까지 철저하게 파괴 하고 있다.
여전히 무 정부적이며, 정글의 법칙이 통용되고 있는 국제 사회 현실 속에 한반도의 미래 운명은 어떤 선택을 재검토 해야 할까?
'우리는 제 1차 세계 대전에서 한 것 같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제 1차 세계 대전에서 우리는 수백 만 명의 군인을 학살했다. 우리는 수 백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공장과 전쟁 기계들을 날려버리려고 노력할 것이다.'
-폭격기 마피아의 리더 중 한 명인 헤이우드 핸셀 장군 인터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