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승주나무입니다.
이번 의견광고도 쉽지는 않았지만,
많은 회원님들의 참여와
외부에서 도와주셨습니다.
특히 건조기후 님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손수 디자인 작업을 해주셔서 더욱 빛이 났던 것 같습니다.

알라딘과 깊은 관계가 있는 찌리릿 님은
1차 광고 할 때부터 배송을 해주시겠다고 하셨는데,
그래서 2차 광고의 배송은 찌리릿 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신청은 여기서 받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지방에 사시는 분이나
경향신문을 입수하는 게 불가능하신 분은
'비밀댓글'을 통해 신문을 받아볼 주소를 적어주시면 됩니다.
일 주일 정도 신청을 받고
찌리릿 님께 명단을 넘기면
찌리릿 님이 따끈따끈한 경향신문을 보내주실 거에요~~

여러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사랑해요~ 알라디너!!!



★ 반드시 주소,성함,전화번호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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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라딘 2차 의견 광고 확정(23일자 경향신문)
    from 자유를 찾아서 2008-07-22 09:28 
    알라딘 2차 의견광고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알라딘 블로거 82인, 인사회 2인, 언론소비자주권연대 1인, 청소년출판협의회를 포함 총 85명이 참가해주셨습니다. 승주나무님께서 인사회와 청출협 등의 단체와 접촉을 하셨고, 경향과 협의를 하여 최종 금액에 하단 통 광고를 싣게 되었습니다. 광고문안은 크게 총 4개의 안이 나왔고, 그 중 투표를 거쳐 글샘님께서 기본 작성하신 것을 토대로 의견을 수렴해 다듬었습니다. 광고 틀은 건조기후님께서 만
  2. 7.23 경향신문, 알라딘 2차 의견광고
    from 파피루스 2008-07-23 19:38 
    7월 23일 경향신문 8면에 실린, 알라딘 2차 의견광고입니다. 우리 스캐너가 작아서 양끝은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건조기후님의 이미지 원본을 같이 올립니다.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특별히 수고하신 승주나무님, 아프락사스님, 건조기후님, 글샘님 그리고 참여하신 모든 분들과 함께 뿌듯함을 나누며....
 
 
2008-07-22 0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8-07-23 11:01   좋아요 0 | URL
그 주소로 알라딘 무료배송 됩니다. 전화번호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마노아 2008-07-22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 많으셨어요. 올해의 알라디너세요. 승주나무님은요^^

승주나무 2008-07-23 10:56   좋아요 0 | URL
올해의 알라디너는 'YOU' 아닐까요. 모든 알라디너 분들이 올해의 알라디너 같습니다. 장한 일을 했죠 ^^
과찬이시지만 감사합니다.

하양물감 2008-07-22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많으셨습니다. 저는 지난번 광고 이후로 아예 경향신문 구독합니다...^^

승주나무 2008-07-23 10:56   좋아요 0 | URL
탁월한 선택 감사합니다. 이렇게 정론매체가 뿌리를 조금씩 내려가는군요^^

마늘빵 2008-07-22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하셨습니다. :) 경향신문에 시안 넘겼습니다.

승주나무 2008-07-23 10:56   좋아요 0 | URL
아프 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매번^^

바람돌이 2008-07-22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많으셨어요. 알라디너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승주나무님과 아프락사스님덕분이라구요. 감사합니다.

승주나무 2008-07-23 10:57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 님~ 감사합니다. 알라디너 분들의 호응이 없었다면 풀이 죽었을 텐데, 단결력과 문제의식에 다시 한번 반했니다♥^^♥

클리오 2008-07-22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승주나무님, 건조기후 님 그밖에 숨은 님들.. 고생 많이하셨어요. 별 도움도 못되고.. 더욱더 건강하고 복받으실거예요... ^^

승주나무 2008-07-23 10:58   좋아요 0 | URL
클리오 님~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호의적인 관심이 있었기에 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클리오 님이 아무 도움도 안됐다는 것은 당치않습니다. (웬 사극 분위기^^)

2008-07-22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8-07-23 10:58   좋아요 0 | URL
그 주소로 보내드릴 겁니다. 알라딘에서^^

전호인 2008-07-22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인 일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많은 분들께 고마움을 느낍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함께하는 모든 분들의 값진 뜻이 전달되어 지기를 기대합니다.

승주나무 2008-07-23 10:59   좋아요 0 | URL
네~ 이번 건은 유난히 쉽지 않았네요. 처음 광고를 내보내고 많이 지치셨을 텐데 끝까지 관심을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비로그인 2008-07-22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많으셨습니다. 여러분들의 노력의 결실 잘 맺혀지길 바랍니다. ^^

승주나무 2008-07-23 10:59   좋아요 0 | URL
FTA반대마음행로 님~ 뜻깊은 격려 감사합니다. 당장은 결실을 못 보겠지만, 언젠가는 꽃을 피우겠죠^^

2008-07-22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8-07-23 11:01   좋아요 0 | URL
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님도 전화번호 부탁드릴게요. 택배 직원이 전화로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2008-07-23 16: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07-22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 8면에 우리 의견광고 실렸다고 경향친구한테 방금 문자들어왔어요.
수고하시고 동참하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해요~~ ^^

승주나무 2008-07-23 11:02   좋아요 0 | URL
네~ 지금 므흣한 마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너무 커서 스캔하기는 어렵겠죠^^

. 2008-07-23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고 큼직하게 잘 나왔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승주나무 2008-07-23 11:02   좋아요 0 | URL
노파솔 님~ 큼직하게 잘 나왔습니다. 노파솔 님도 수고하셨습니다.

로쟈 2008-07-23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하는 일도 없이 매번 얹혀가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승주나무 2008-07-23 11:03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로쟈 님은 정신적 지주로 음양으로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로쟈 님 독자라면서 거액을 입금해 주셨어요. 로쟈님이 거액을 유치한 셈이죠^^

여울 2008-07-23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 많으셨네요. 알라디너들이 한걸음 공진화하는 것인가요. ㅎㅎ. 감사드려요

승주나무 2008-07-23 11:04   좋아요 0 | URL
여울마당 님~ 가장 기쁜 것은 몇몇 사람들의 진화가 아니라, 많은 알라디너 분들이 함께 한 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이라고 봅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이걸 보셨다면 이렇게 말씀하셨겠죠
"오늘의 수업을 기억하라"
수고하셨습니다.

2008-07-23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8-07-23 17:49   좋아요 0 | URL
네 배송목록에 넣겠습니다^^

2008-07-23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7-24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시사저널 파업기자가 본 YTN 투쟁
2. 시사저널 투쟁독자가 본 YTN 사건




현장에서 YTN 투쟁을 ‘시사저널 파업’과 비교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노조 집행부는 이야기를 할 때 “우리가 시사저널 파업 때처럼 할 수는 없겠지만...”이라는 전제를 달곤 했고, 집회를 지원하러 온 언론단체 분들도 “YTN 노조도 시사저널 파업 때처럼 잘해야 할텐데...”라고 얘기하곤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추억이란 참 아름다운 것이구나.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만을 기억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삼성기사 삭제 사건’ 이후 벌어진 항의 집회와 파업, 그리고 결별선언과 창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우리가 얼마나 갈팡질팡 했는지, 그 ‘개와 늑대의 시간’ 동안 얼마나 포기하고 싶어했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시사IN 창간을 이뤄낸 ‘신화’가 되어 있었다.


그런 이야기에는 늘 싱거운 대답을 해주었다. “우리는 결국 졌잖아요. 우리처럼 지면 안 되죠. YTN이 우리처럼 방송사를 새로 차릴 수도 없는 것이고. 그리고 우리처럼 길어져서도 안 되죠”라고.
- 고재열의 '독설닷컴' 중에서


시사저널 사태의 최정점에서 한국언론의 처지와 자본의 폭력 실상을 온몸으로 견뎌온 고재열 기자와 투쟁 기간이 살짝 겹치는 독자로서 고재열 기자가 논평한 글 '시사저널 파업기자가 본 YTN 투쟁'에 대해서 몇 가지 덧붙이고자 한다.

나는 2007년 3월 16일부터 시사저널 사태에 개입하기 시작해서 '시사모'(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이후 '참언론실천시사독자단으로 개칭')라는 조직이 공식 해단하던 2007년 10월 13일까지 만 7개월 정도 그들과 함께 했고, 그 이후로도 직간접적으로 '시사IN'과 관계를 맺고 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YTN 사태'에 비하면 '시사저널 사태'는 연습게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시사저널 사태는 자본에 대한 언론의 위태로운 위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지만, 사실 서울문화사와 시사저널 기자들, 그 이면에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이 펼치던 전쟁이었다. 몰상식의 표본(이러한 표현을 쓰는 것은 법적으로 가능하다)인 금창태라는 사람이 '편집권은 경영권의 일부일 뿐이다'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들이대며 기사를 무단으로 삭제했고, 본사인 서울문화사와 두터운 후원 세력인 삼성이 여기에 동조해주었다.
여기에 저항군은 시사저널 기자들과 이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각종 시민사회단체와 '독자들'이었다. 저항군이 정비될 수 있었던 까닭은 '명백한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사IN이 창간된 것을 일종의 '승리'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나는 "우린 결국 졌다"고 자평한 고재열 기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문맥으로 보았을 때 '시사IN'이라는 존재는 편집권과 경영권으로 대비되는 언론과 자본이 타협하지 못하고 끝내 돌아선 바로 그 자리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시 경영진이 기자들의 주장에 대해서 들어주는 척이라도 하면서 백기를 들었다면 상황은 더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초기에 '시사IN'의 품절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구독자가 많았고, 독자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은 것을 냉정하게 따지고 봤을 때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만은 없지 않은가.
결국 언론자유라는 것이 사회에 정착될 수 있기 위해서는 '시사IN'이라는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시스템이나 구조가 확보되어야 하지만, 시사IN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 그러한 시스템과 구조가 확보되지 않았다는 것을 강력하게 증명하므로 시사IN 살리기에 적극 나선 독자로서 나는 시사IN이 우리 시대의 매우 슬픈 증거라고 본다.

시사저널 투쟁 당시 내세웠던 구호는 "선배들이 펜은 권력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면, 후배들은 펜이 돈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였다. 이는 권력이 언론을 움직일 수는 없지만, 자본은 권력을 충분히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자본-권력-언론의 위계질서가 변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담론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YTN 사태를 비롯한 자금은 '언론 접수 작전'은 권력과 자본이 완전히 결합한 '괴물'이 탄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시사저널 사태가 한창이던 당시 청와대가 어떤 포지션을 취했는지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청와대, 시사저널 '절독' 선언  
- "신뢰하기 어려운 매체"…시사저널 "개의치 않아" (미디어오늘, 2007년7월12일)


당시 청와대는 겉으로나마 언론의 정의와 신뢰성에 대해서 암묵적지지를 보낸다는 신호를 보내주었다.
지금의 청와대의 포지션과 어떻게 다른지 보면 지금의 상황이 어느 정도 들어올 것이다.
때문에 고재열 기자도 "구본홍은 금창태보다 더 강적이다. 비유하자면 금창태 전 사장의 행위가 ‘생계형 범죄’라면 구본홍 내정자의 행위는 ‘권력형 범죄’다."라고 썼다.

주주총회라는 자본주의의 절차에 따라서 구본홍이 결정됐고, 청와대의 합법적인 권리에 따라 사장으로 내정됐다. 그 형식논리 안이 아무리 구역질나다고 할지라도 '명분'의 관점에서 공격할 수 있는 틈새가 잘 안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YTN 사옥 앞에서 촛불을 들고 TYN의 위태로운 운명을 걱정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것 외에 독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이것을 누가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부당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짓밟는 모습에 분노가 치밀고 가슴이 터지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사실상 보이지 않을 때 느끼는 독자의 처절함이란...

정말 제대로 된 언론을 보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방송사를 중심으로 한 언론사들이 하나하나 쓰러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겁간'을 당하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공공미디어연구소에서 주최한 '진보매체의 도약을 위한 토론회'에 패널로 나온 한겨레신문의 안수찬 기자는 권력과 기업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공 기금을 형성하고, 이 기금으로 뜻 있는 신문, 인터넷 매체 등을 지원하는 거대하고 강력한 공공 기금, 예컨대 '참언론재단'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문제는 돈을 어떻게 형성하는지이다. 시민사회와 독자, 시청자들의 역량을 총집결한다고 해도 수십 억 정도의 규모일 텐데 이것은 신문사의 1년치 인건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자본의 도움을 얻어야 하는데, 자본은 권력의 눈에 찍히면 영업하기 어려워지므로 제3의 주체가 기업과 협상하는 모델을 구상했다. 결국 자본에 대한 설득이 관건일 텐데, 이때 최초에 제기한 '자본과 언론의 타협 문제'로 다시 되돌아가게 된다. 자본과 언론의 적절한 타협 모델을 제안해줄 지식인이 나오지 않는 한 이 문제는 미제의 과제로 남을 것이다.

토론회에는 '국민포털'이라는 제안도 나왔는데, 하나같이 '규모'에 방점을 찍었다. 규모를 만드는 로드맵이 빠져 있어서 '주장' 수준에 불과하긴 하지만, 결국 지금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것은 폭압적인 괴물에 대한 '대항마'를 만드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YTN 문제와 직결된 사안은 아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연결돼 있기 때문에 조금만 결론을 덧붙인다면, 뜻 있는 매체와 뜻 있는 독자들이 협심해서 괴물에 대항하는 산물을 낳아야 한다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 이상 자본과 권력에 수세적으로 대하는 것으로는 그나마 남아 있던 자유언론의 토양만 잠식되다가 이내 사라질 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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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7-20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렇게라도 해서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할까요? 훗날의 평가가 저들은 두렵지 않은가 봅니다.ㅠㅠ

승주나무 2008-07-20 22:54   좋아요 0 | URL
정치적 작전세력이라고나 할까요. 일단 긁어모을 것은 다 긁어모으고 냅따 내빼는...

드팀전 2008-07-21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확합니다...YTN은 시작입니다. 이명박은 다른 것은 다 포기해도 '언론' 만큼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차기 정권 창출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MBC를 민영화시키지 않고도 자본-권력의 합법적이고 조직적인 압박으로 상당히 힘겹게 할 수 있습니다.일종의 광고 압박이 될텐데요. 신규 미디어 시장에 적극적인 대기업이나 신문기업들에게 자유시장의 논리를 적용하여 진입을 무제한 풀어줄 경우 담론과 광고의 흐름이 어떻게 나아갈지 눈에 보이는 듯 뻔합니다.담론은 친정부 지향성이 노골화될 것이고 광고는 조직적인 회피나 또는 분산효과를 발휘하겠지요. KBS를 제외하고는 치명적이됩니다. KBS는 사장임명권에 대해 실제적인 힘이 있으니 그건 그런 방식으로 처리하려 하는 거겠지요.



2008-07-22 0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7-22 0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명박산성과 국민토성은 2008년 현재를 가리키는 대표적인 키워드다.
저마다 조형물에 뜻을 담았다.

명박산성은 물리력에 의존한 반면, 국민토성은 그 상징성에 방점이 찍혔다.
물리적으로 국민토성은 청와대는커녕 전경버스조차 제대로 넘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래주머니를 애써 옮겨 가며 토성을 쌓은 것은
정부가 국민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읽어주지 않기 때문에 조형물로서 마음을 기탁해본 것이다.

쌓는다는 행위 또한 의미가 있다.
7월 18일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2차 긴급현안질의에 참석한 한승수 국무총리는 뜬금없이
"김대중 전 대통령은 39만표, 노무현 전 대통령은 57만표, 이 대통령은 500만표 차이로 당선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이 받은 표는 중요하게 보면서, 국민이 하나하나 쌓아놓은 분노는 보지 못하는 모양이다. 진정 중요한 것은 토성의 높이가 아니라 토성을 받친 모래주머니 하나하나의 염원이다.


[##_1C|4882019c80e568H.jpg|width="500" height="38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
경찰이 이른바 명박산성을 쌓아놓고 국민을 한껏 조롱하자 시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래주머니를 날라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하려 했다. 6월 26일 광화문에 길다란 인간띠를 만들어 모래주머니를 옮기고 있다.

토성을 쌓은 과정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하다. 토성이 어긋나지 않기 위해 현장에서 논의를 하며 어디에 모래주머니를 둘지를 정하였고, 토성 쌓는 벗의 손이 다칠까봐 손수 장갑을 사다가 공수하기도 했다. 장정뿐만 아니라 노약자, 어린이까지 토서 쌓는 데 동참했다. 심지어 외국인도 거들었다. 특히 두 줄로 늘어선 길다란 인간띠가 모래주머니를 하나하나 나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맹자에 "무력으로 사람을 진압하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단지 힘이 부족해서 굴복할 뿐 마음으로 굴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덕으로 사람을 굴복시키면 마음속이 기뻐서 진실로 복종하게 된다."(以力服人者, 非心服也, 力不贍也; 以德服人者, 中心悅而誠服也. - 공손추 상)라는 말이 있다. 이명박 정부는 태생적으로 도덕적으로 치명상이 있어서 이 말이 필요조차 없을지도 모르지만, 권불십년이라. 권력은 오래 가지 않는다.

정부와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는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이 가진 거라고는 '도덕성'밖에 없다. 도덕성이라는 것은 고도의 실천이 요구되는 무기다. 국민들에게 지속적인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도덕성을 정교하게 다듬고 부자신문들이 트집을 잡을 수조차 없도록 해야 한다. 다급하다고 빈틈을 보이면 다시 진흙탕에 빠질 뿐이다. 차분히 스스로의 페이스를 지켜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국제 앰네스티 노마 강 무이코 조사관은 촛불집회에 대해 평화의 집회, 신개념의 집회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것이 세계시민의 보편적인 평가다. 이들의 지지를 계속 받고 측면지원을 받기 위해서라도 도덕성의 유리그릇을 깨뜨리지 않기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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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정진국 지음, 생각의나무 


책의 속도로 천천히 걷다


키보드 몇 번에 세상 모든 정보가 일렬종대로 모이는 세상이 왔다.

책의 속도로는 따라잡지 못하는 불행한 시대가 온 것인가?

출판사의 영업자들을 만나 보면 출간 1달 내에 '승부'를 보지 못하면 이미 책의 운명이 결정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책은 많지만 '스테디셀러'에 오르는 책은 점점 줄어든다. 책 정보는 넘쳐나되 책은 없는 기이한 현상이 펼쳐지고 있다. 인류의 정보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책 읽는 속도는 달라지지 않는다. '독서'는 한장 한장 걷듯이 읽지 않고 방법이 있을까?

이번 주의 책글모둠은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정진국 지음, 생각의나무)였다. 총 21명의 리뷰어가 참여했다. 책을 생활화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헌책방 등 책에 관한 향수가 적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부러움 반 질투 반의 시선도 보였다. 하지만 결국 리뷰어들이 도달하는 결론은 '우리들의 책마을'이다. 도서축제니 출판도시니 우리나라에도 많은 책 콘텐츠들이 있지만 그것이 '문화'와 '공동체'로 수렴되지 못하다 보니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게 고민이다. 리뷰어들의 글을 읽으면서 덩달아 향수에 빠져 허우적대고 탈출하고를 반복했지만, 행복한 경험을 공유하는 맛은 언제나 기분좋다.


'파주 헤이리'와 '유럽 책마을'의 다른 점


책마을도 같은 책마을이 아니다. 우리가 '책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는 아이디 '바지런'의 말처럼 "자그마한 책방들이 일상 속 주민들의 삶에 참여하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것 자체로 하나의 풍경"(파란흙)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들의 책마을은 어떤가? 몇 번이나 파주에 다녀온 아이디 '행인'은 "특이하고 예쁜 건물이 있는 곳 이상으로 다가오지 못했다"고 썼고, 아이디 'NO-buta'는 "출판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사고싶은 책을 좀 더 싸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우리 '책마을'의 현주소다. 하긴 그곳의 정식명칭은 '파주 출판단지'이다. 공업단지의 틀에 '출판'이라는 이름만 바꾸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디 '롤러코스터'는 출판단지의 지나치게 깔끔하고 획일적이고 커다란 건물들에게 "그다지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 유럽의 책마을은 어떨까? 잘 사는 동네니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화려한 색색의 건물과 온통 책들로 도배된 마을일까? 그렇지 않다. 그들도 장사하기가 녹록치 않고 우리네 삶처럼 고민이 깊다.(파란흙) 저자의 말마따나 "담배 가게나 빵집이나 카페처럼 책방 또한 우리 곁에 가까이 있어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유럽의 책마을 역시 그 역사가 오래진 않았다. 러시아 마피아라고 부르는 부동산 업자들이 도시의 땅값을 죄다 올려놓는 바람에 소박한 서점들이 하나둘 도시에서 쫓겨났다. 농촌 역시 상황이 마찬가지다. 신자유주의가 유령처럼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세태에 버텨낼 재간이 있을소냐? 하지만 유럽은 책과 농촌의 결합이라는 상상력으로 '책마을'을 만들어냈다. 유럽의 책마을이라고 해서 대단한 것은 아니다. "수백년 된 돌집을 개조하여 서점으로 만들거나 선조들의 오래 전 만들어 놓은 돌바닥에 책을 올려놓고 파는"(바지런) 등 오랜 전통과 소박한 옛 모습에 책이라는 오색 물감을 입힌 것뿐이다. 일상을 뒤엎으려면 돈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문화'를 잃게 된다. 유럽인들에게 '문화'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책마을은 1962년 영국 웨일스 '헤이 온 와이'다. 이 모델이 성공하자 유럽 전역은 물론 일본, 말레이시아, 미국 등 전 세계에 책마을이 만들어졌다. 책마을은 이제 문화상품이나 관광상품의 영역을 넘어섰다. 아이디 '양화소록'의 말처럼 "지방문화의 활력을 도모하는 '정치실험'이자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동참을 요구하는 '사회운동'"이다.


24개의 책마을을 수십 번이나 둘러본 집념의 역작


"수십 년 전부터 책마을을 드나들기는 했지만, 이번 기회에 여기 수록한 마을 전체를 다시 주파했다."(331쪽 저자후기)

단지 책마을을 훑어보고 나서 쓴 여행기가 아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꼼꼼히 살펴본 '순례기'다. 이런 특징은 책 곳곳에 묻어난다. 그래서 아이디 '현지공주'는 "유럽의 한적함과 고즈넉함이 그대로 느껴진다"고 썼고, 아이디 '책방꽃방'은 "책마을에 직접 다녀온 것처럼 오래도록 여운이 남아 아릿향 향수에 젖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썼다. 독자들은 이 책의 차별성도 강조했다. 아이디 'treasure'는 "유럽의 휘황찬란한 문화를 걷는 여행기가 판을 치고 있는 가운데 이런 곳을 소개하는 책을 만났다는 것이 기쁨"이라고 썼다. '발로 쓴 순례기'여서 그런가? 책마을에 대한 아름다움을 볼수록 마음 한켠에서는 작가의 진한 아쉬움이 읽힌다.

"'역사적'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엄청난 예산을 투입했던 신도시 건설에 편승한 각종 문화관광 단지가 되레 몰락의 길을 걷기도 했다."(77쪽)

"아직도 20년 전의 원고료와 저임금 속에서 인문학도 출신의 수많은 젊은 여성이 출판의 수레바퀴를 사명감 같은 의협심으로 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번역서와 그 정가로 미루어볼 때 분명 어려움을 무릅쓰고 번역하고 교정을 보느라고 청춘을 불사르는 아까운 인재가 얼마나 많은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100쪽)


저자는 우리의 현실로 줄기차게 돌아온다. 유럽의 책마을을 다니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의 책마을을 자꾸 그려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디 '파란흙'은 "정작 책마을 소개는 그리 박력 있는 문체로 하지 않는데, 우리의 책 업계 사정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침이 튈 정도로 강한 어조를 구사한다"한다며 글끝을 흐렸다.


저자의 '순례기'를 여행하면서 드는 아쉬운 점이 한 가지가 있었다. 리리시즘이(lyricism, 시간 ·공간의 한정, 사상 등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내면적 감상을 서정적으로 서술하는 예술 표현의 기법)이라고나 할까?  책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들리지 않는다. 물론 아이디 '책방꽃방'의 말처럼 "이런 저런 책마을의 상황"이나 "책마을을 추진하고 일구어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없지는 않지만 생생하지는 않다. 그래서 아이디 '오로지관객'은 "보아야 할 것을 다 보지 못해서 마을을 산책하는 것이 아니라 취재만 하고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썼다. 비교하기는 뭣하지만 김연수의 여행 산문집 <여행할 권리>에서는 '사람'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전혀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부딪히며 느낀 장벽이라든지, 사람 때문에 혼난 이야기 때문에 정감이 가기도 했다. 아름다운 유럽의 책마을도 좋지만 '유럽 책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7월 18일 영풍문고 종로점에서 저자 정진국씨의 펜사인회(오후 5시)와 강연회(오후7시)가 펼쳐진다.


※  '책글모둠'은 20여 명의 리뷰어가 써놓은 리뷰를 모아놓은 글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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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9 23: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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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0 01: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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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0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일상의 전선과 세가지 시나리오

촛불의 전선이 '일상'으로 옮겨졌다. 쇠고기가 동네 정육점까지 들어오고 소비자의 판단에 촉각이 곤두섰다.

세 가지 길이 있다.
1. 동네 정육점과 고기집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매출이 활발할 경우 지금까지 정부의 논리가 맞았고 촛불을 들고 모였던 시민들은 불량세력으로 매도될 확률이 많다. 어느 식당 주인의 이야기처럼 광화문의 촛불이 대한민국의 민심을 전혀 대변하지 못하는 결과에 직면한다.
2. 적지않은 식당에서 쇠고기 관련된 상품 자체를 포기하는 것처럼 미국산 쇠고기와 한우 쇠고기가 동시에 몰락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이는 쇠고기 자체에 대한 피로감과 논쟁에 대한 혐오감의 표출로 해석될 수 있다. 승자 없는 전쟁이다.
3. 한우농가의 어려움을 보듬어주고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심판을 내리는 현명한 소비자의 탄생이다. 가장 긍정적인 시나리오로 이명박 정부는 촛불에 담긴 민심의 엄정함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이 일상의 전투에 비하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것은 '워밍업'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제 국민들이 심판대 위에 올라갔다.


광고주 압박 운동과 식당 거부 운동

<죽음의 밥상>을 쓴 피터 싱어는 "이제는 식탁을 먹거리도 투표하듯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지 내 배를 채우는 문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식자재가 정당한 방법으로 생산되었는지, 비인간적인 과정을 통해서 동물을 학살하지는 않았는지, GMO 조작 식품 등 소비자에 대해서 생체실험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꼼꼼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광고주 압박운동에 대입해 본다면 우리가 소비하는 상품이 왜곡언론의 광고주인지 판단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상품에 대한 투표행위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내가 이용하는 식당에서 왜곡언론을 구독할 경우 그 식당을 거부하는 행위 역시 투표행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광고주 압박 운동의 경우 상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넘어서서 기업에 대한 협박이나 영업방해까지 확대되었다는 검찰과 조중동의 논리가 궁색하기 짝이 없지만, 압박운동 측도 논란에서 벗어날 만큼 정교하다고 할 수는 없다. 게다가 회사 홍보부서에 전화를 해서 항의하거나 게시글을 남기지 못하는 대다수 일반 소시민에게 이 미션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식당'에 주목하는 이유는 '신문'이 가장 활발하게 소비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손님들은 식당에 들어가면 대개 널브러진 신문을 찾는다. 하루에 2~30명은 족히 된다고 할 때 어떤 신문이냐에 따라 여론의 왜곡과 확산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우리 동네 식당들을 조사해본 결과 대체로 식당은 조중동 마니아라고 할 수 있다. 조중동에서 경향이나 한겨레 신문을 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얼마 전 식당 아저씨와 논쟁을 했을 때도 조선일보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듯한 인상을 받았는데, 이것은 '언론소비자운동'에서 '식당'이 매우 중요한 전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동네 식당 조사하기와 식당 지도 만들기

우리 회사에서 자주 가는 식당 3곳을 조사했다.
A식당은 조선일보, B식당은 한국일보와 스포츠조선, C식당은 중앙일보와 일간스포츠를 구독하고 있었다. 직장인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회사 주변에 갈 만한 식당이 많지가 않다. 그래서 조선일보를 구독한다고 해도 아예 발을 끊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만약 강경하게 소비자운동을 전개하고 싶다면 도시락을 싸고 다닐 수도 있다. 하지만 조중동 구독 식당의 이용을 조금씩 줄여 나가는 것도 언론소비자운동의 정신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식당에서 "어떤 신문을 구독하느냐"라고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식당주인은 압박을 받게 돼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매우 주의할 점이 있는데, 식당주인을 설득하거나 어떤 신문을 구독하도록 강요한다는 인상을 풍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식당주인도 나와 같은 동등한 선택의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강요할 수는 없다. 나는 다만 그 식당의 출입을 줄이거나 거부함으로써 식당주인에게 영향을 끼칠 수는 있다.

광고주 압박운동의 댓글까지 조사한다는 검찰이라고 하더라도 정당한 나의 권리에 대해 위법이라는 허울을 씌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광고주 압박 운동과 이 운동을 비교했을 때 '일상'인가 그렇지 않은가가 결정적인 차이이다. 우리는 대다수가 생활인이며 일상의 지배를 받는다. 광화문에서 촛불을 든 것은 일상이 아니라 비상시라고 할 수 있고, 광고주 압박 운동 역시 비상시이다. 일상은 하루하루를 견뎌나가는 것이므로 촛불의 뜻을 펼치기에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공간이다.

이 운동의 포지티브도 가능하다. 광고주 압박운동은 조중동의 광고주 전화번호 등 정보를 공유해 압박을 하는 것이지만, 경향이나 한겨레 등 정론매체를 구독하는 식당의 목록을 공유하는 것은 위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자기가 사는 동네를 조사해서 정론매체를 구독하는 곳을 공유하고 이 식당을 이용해준다면 다른 식당주인들이 자극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식당과 조중동의 오래된 침묵의 카르텔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구도 이러한 캠페인에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 이것이 포지티브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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