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허망한 욕심에 후달렸고 그만큼 작은 성과와 큰 낭패감을 맛 본 해였다. 하지만 읽고 쓰는 일이 주는 그 황홀한 즐거움 그 자체만으로 행복한 시간들도 많았다,고 기억하고 싶다. 언젠간 읽어야지, 싶었던 책들을 추려 꽤 열심히 읽은 것도 같다. 지나오면 남는 것은 결국 기억의 흔적들이다. 기록은 삶에 대한 성실한 자세와 통한다. 기억하지 않고 기록하지 않은 시간들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고 늙음만 남긴다. 그래서 자꾸 기록하려고 한다.  

한 해를 결산하며 그 해에 가장 빛나는 연기를 펼친 배우와 감동을 준 작품에 상을 수여하는 연말 시상식처럼 나는 나를 심심하지 않게 했고 때로 눈물짓게 했던 책들에게 기억을 위한 기록의 자리를 주려고 한다. 소박하지만 그냥 그렇게 바깥에서 내 안으로 포박해 들어온 것들에 자리를 주려고 한다.  

재미와 감동을 겸비했던 소설들 

 

 

 

 

 

 

 

 

안토니오 스메르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아이를 앉히고 친정에 가던 중 반을 넘게 읽고 친정에 와서 밤새 눈물 흘리며 다 읽어 버렸던 책이다. 칠레의 정치 사회적 격동기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시인 네루다가 자그마한 어촌의 청년을 감화시키는 내용은 픽션과 논픽션의 아름다운 융합과 어우러져 독자를 포복절도하게 하기도 하고 속수무책으로 울리기도 하는 대단한 저력을 보여줬다. <일포스티노>로 영화화되기도 했던 이 소설은 무엇보다 기가 막히게 재미있고 기가 막히게 뭉클하다.  한없이 가볍고 끈적끈적하기도 하고 한없이 진지하고 엄숙하기도 한 이 잡탕의 미학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은 사실 그다지 재미 없을 거라 각오하고 읽었던 책이다. 원체 유명한 고전은 어느 정도 지루함을 담보하고 있지 않은가, 라는 선입견으로. 하지만 그 다양한 프랑스 파리의 인간군상의 적나라한 묘사와 역동적인 줄거리는 이 책이 고전이 맞는가? 자문하게 할 정도로 책장을 스르륵 넘어가게 한다. 탐욕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미덕을 실천하기도 하는 그 모순적인 인간 존재를 이다지도 구체적으로 현실감있게 잘 그려낼 작가는 발자크 말고는 찾기 힘들 것같다. 모옴이 욕한 그의 짜리몽땅한 체구와 나온 배도 다 포스로 느껴질 정도로 그의 소설은 무게감이 있다. 

로맹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낸 <자기 앞의 생>으로 시작하면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 같다. 성장소설이 기본적으로 담보하는 자기이입이 가능한 그 생생함 뿐만 아니라 로맹 가리 특유의 익살과 감동을 버무리는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그의 자전적인 고백인 < 새벽의 약속>을 읽고 나면 그가 아무리 지루한 소설을 재탕 삼탕해도 끝까지 그의 독자로 남고 싶은 열망을 가질 수밖에 없다. 늙은 싱글맘의 노동을 희생으로 모든 불가능한 소망을 가능한 현실로 구현해 낸 그의 처절한 스토리는 마지막 책장을 감히 앉아서 편하게 넘길 수 없게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바치는 하나의 비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그의 어머니는 모성을 극대화하여 체현하고 있다. 누구나 로맹가리의 어머니에서 늙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작은 공통점 하나라도 건져내어 함께 오열해 버리고 말게 하는 책이다.  

아름다웠던, 정말 너무나 아름다웠던... 

 

 

 

 

 

 

 

자의식 과잉으로 문장을 테두리한 산문들은 때로 지루하고 읽기에 민망하다. 외부의 풍경을 지나치게 객관하여 묘사하는 성실성을 강조한 산문들은 읽는 행위 자체를 부가적인 것으로 폄하하게 된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인상과 풍경>은 그 중간 지대에서 훌륭하게 무게 중심을 잡고 눈을 들어 하늘에서 명멸하는 별을 보는 글들이다. 도저히 책장에 다른 책들과 함께 꽂아버려 이 아름다운 산문들을 기억의 한 곳으로 밀어버리지 못하게 할만치 너무나 매혹적인 산문집이다. 글들에서 음악이 울리고 그림이 떠오르는 환영을 이 책은 선물한다.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에 이 책을 가지고 간다면 그 풍경이 어떻게 내 눈으로 흘러들어올지 기대하고 기억할 수 있게 한다. 가장 멋지게... 

시를 안 읽은지 시집을 안 산지 어언 몇 년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부끄러운 고백을 이 시집으로 두루뭉술하게 덮어버리려고 한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한 대가로 스스로를 고스란히 내어놓아야 하며, 인생에 대한 대가로 인생을 바쳐야 한다고 공짜는 없다!고 외치는 이 폴란드 여류 시인이 히틀러의 한때는 한없이 사랑스러웠을 어린 시절을 상상해 낸 시를 읽을 때는 우리가 왜 시를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만나게 된다. 무엇보다 젠체하지 않고 시 본연의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들의 자리를 송두리째 흔들고 본질적인 것들을 환기하는 솜씨가 돋보인다.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그 처절한 것들에 대하여 

 

 

 

 

 

 

 

홀로코스트 문학은 음울하고 비관적인 것이라는 느낌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위의 두 권은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말살되지 않는 최후의 인간성에 대한 옹호라는 점에서 칙칙하고 비관적인 고백서나 관찰물을 뛰어 넘고 있다. 용변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그 처절한 환경에서도 수용소의 지인들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조촐한 선물들의 교환과 단테의 <신곡>에 대해 토론하고 아름다운 고향의 노래를 부르는 그 정경들은 결국 인간이란 긍정되어야 하는 생의 에너지임을 깨닫게 한다. 현실이 고통스러울 때 이 두 권의 책은 작은 위안이 되어 줄 것도 같다. 비극적인 환경에서 그 환경을 뛰어넘는 아름다움을 문득문득 엿보이게 하는 그들의 모습은 결국 우리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할 테니까 말이다. 

남은 책장 두께에 아까워 감히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하고 차마 아픈 결말을 감당하지 못해 두고두고 마지막 독서를 미루는 그 초조한 달뜸은 책만이 책이기에 가능한 것같다. 책 속의 이야기가 나를 뚫고 들어가고 때로 내 삶의 사연들이 책 속의 이야기들과 교차할 때 읽는 것도 결국 나의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행하고 경험한 것들과 내가 읽고 상상한 것들이 가져오는 느낌과 감흥은 결국 기억 속에서 한데 어우러진다. 그건 마치 운명의 일부분 같다. 내가 이 사람을 만나 경험하는 것들과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끼는 것들도 다 결국 희미하게 흔적을 남기고 지나가 버린다. 돌아와 보니 그게 삶 자체와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앞으로 만날 책들은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 만큼 기다려지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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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12-06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어쩜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부럽다!
공감할 수 있는 책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밖에... 한 권이라도 공감할 수 있으니 다행이죠.^^

blanca 2010-12-07 20:15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의 추천으로 읽었던 책이잖아요...순오기님 추천은 보증수표와 같아요^^

cyrus 2010-12-06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에 <고리오 영감>을 읽기 전에는 지루할줄 알았는데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이었습니다.
블랑카님은 문학작품들이 인상깊게 읽으셨군요. 요즘 펭귄클래식 시리즈를 읽고 있는
블랑카님이 소개하신 가르시아 로르카의 작품을 읽어봐야겠군요. 블랑카님의 글만큼이나
글이 멋질거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blanca 2010-12-07 20:16   좋아요 0 | URL
cyrus님 펭귄클래식 시리즈를 읽고 계세요? 저는 주로 민음사인 것 같고 드문드문 문동 시리즈로 읽기도 하고 그러는 것 같아요. 로르카의 산문은 펭귄클래식에서만 나온 것 같네요. 정말 <고리오 영감>은 의외로 참 재미있었어요^^

stella.K 2010-12-07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르카는 오래 전 아는 지인으로부터 시집을 선물 받았는데
좀 어렵더군요. 하긴, 시가 그렇지요. 저도 시집 사 본지가 언젠지 모르겠습니다.
고리오 영감이 재밌군요. 재미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항상 고전은
관심의 2군, 3군으로 밀려나 있어요.
더구나 고전은 꼭 읽어야하는 것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만만찮이 앞으로도
고전이 고전을 면치 못할 것 같아요.
저도 조만간 이런 정리가 필요할 것 같아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만,
왠지 블랑카님처럼 잘 쓸 자신이 없는데요?ㅋㅋ
위의 책들 잘 참고하겠슴다.^^

blanca 2010-12-07 21:18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저도 로르카의 시집은 읽어 보지 못했어요^^그리고 저는 예전에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너무 재미없게 읽은 경험들이 많아 이제 정말 읽고 싶은 책들만 읽기로 했어요...그런데 의외로 고전 중에도 아주 재미있고 감동적인 것들도 있더라구요. 글구 스텔라님이 더 잘 쓰시면서요^^;; 해마다 읽었던 책들을 정리를 안 해 두니까 너무 무의미하게 흘려 보내게 되는 것 같아서요...스텔라님의 글도 기다릴게요...기대됩니다.

마녀고양이 2010-12-08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좋은 책 많이 읽었네요.
나두 그랬어야 했는데, ㅠㅠ, 독서 성적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래도 얻는데 많은 해였는데, 블랑카님은 어땠을까?
아마.. 몇년 후 돌아보면, 알게 모르게 많은 것을 얻은 해였을지도 몰라요. ^^

오늘 눈발이 대단해요. 집안에 있어도 되는 나로서는 멋지다고 할 밖에. 그.러.나.
걸어다녀야 하는 분들은........... 무척이나 짜증나려나요? 울 아파트의 장터 상인두 함께. 이긍.

blanca 2010-12-08 22:54   좋아요 0 | URL
마고님, 방금 전 창 보고 깜짝 놀랐어요. 눈이 막 쌓였던 걸요! 셤 끝나고 눈도 오고 글구 선물도 가고 기분 괜찮으셨죠?^^

노이에자이트 2010-12-08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자크로 시작했으니 19세기 프랑스의 명작을 하나 하나 독파하실 것 같습니다.

blanca 2010-12-08 22:54   좋아요 0 | URL
노자님...19세기 프랑스 명작 추천목록을 주셔야지요^^;;;

노이에자이트 2010-12-10 13:42   좋아요 0 | URL
다 아시면서...장편 말고 중단편으로 프로스페르 메리메 작품을 권합니다.'콜롱바'가 괜찮아요.말로만 듣던 '카르멘'도 좋지요.각각 코르시카와 스페인 남부 코르도바가 배경입니다.범우문고'콜롱바'는 발췌번역이니 완역본을 찾으세요.

blanca 2010-12-10 21:18   좋아요 0 | URL
메리메, 처음 듣는 작가예요. 아직도 발췌번역이 있어요? 좀 난감한걸요^^ 제 찾아 읽어보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꿈꾸는섬 2010-12-08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들어왔을때 그림이 다 깨져서 글만 읽고 추천만 누르고 갔더랬지요.ㅎㅎ
오늘 다시 또 읽었는데 블랑카님의 글은 참 좋아요. 올 한 해 기억에 남기고 싶은 책 이야기, 저도 같이 기억해두었다가 챙겨 읽어야겠어요.^^

blanca 2010-12-10 21:16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그 이미지가 깨졌다는 오류 말씀이시군요...날이 갑자기 또 많이 추워졌어요. 감기 조심하세요. 아이들도 함께..

비로그인 2010-12-09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이 펑펑 오니 꼬마아가씨가 좋아했겠군요. 이번 주말엔 드디어 좀 한가할 것 같아요. (아마도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손에 들고) 좀 한갓진 주말을 보내보려구요~

blanca 2010-12-10 21:17   좋아요 0 | URL
만치님! 근데 자꾸 얼음 위로만 다니려고 해서 참 난감합니다. 주말 드뎌 한가해지신 거예요? 우아! 연말 기분 맘껏 누리시면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행복하게 읽으셨으면 좋겠네요^^

비로그인 2010-12-15 0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blanca님! 새벽에 책상에 앉아 잠깨면서 잠시 들렸습니다.
연말인데 이사도 하셔야 하고 좀 바쁘시죠? 하필 한창 추울때 그래야 한다니..

한참이나 지났지만 올리신 글 읽으니 막 예전에 저 책 관련해서 읽던 blanca님 페이퍼가 생각나려 하네요.
내년에도 멋진글 부탁드립니다. ㅎ

음... 저도 바쁘고 할일 많은, 이번주가 지나면 뭔가를 하나씩 정리해 봐야겠습니다~


blanca 2010-12-15 17:10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정말 너무 추운데 이 언덕을 떠날 것을 생각하니 또 맘이 시리네요. 그래도 이런 기회로 주변 정리도 하고 닥치는 상황에 대응하는 법도 배우고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괜히 이래저래 싱숭생숭하고 바쁘고 그래요. 바람결님도 연말 마무리 잘 하시고 정리하시는 흔적도 페이퍼에 올려주시고 그러세요^^

2010-12-16 2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6 2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망 없는 불행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5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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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낳는다는 것보다 더 지축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변화를 동반한다. 이제 '나'는 더이상 온전히 자유의지를 가지고 내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없음을 뜻한다. 타인에게 폐가 되는 행동들이 정작 '내'가 아닌 '나의 아이'에게서 나올 때조차도 나의 배꼽은 아이의 배꼽과 탯줄로 이어져 찌릿한다. 아이는 나의 부속품이 아니지만 아이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은 부메랑처럼 나를 때로 조준한다. 모든 계획과 모든 변화에 아이는 우선순위로 감안되어야 하고 때로 제약이 된다.  

커가는 아이는 시간의 현현이다. 살면서 시간의 그 위업을 이다지도 절절하게 체감할 기회가 또 있을까? 배냇 웃음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키던 아기는 어느새 굽있는 구두를 사달라고 조르고 자신의 행동에 변명을 붙일 줄도 안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는 나를 떠날 것임을 알고 때로 가슴이 저릿해진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더 좋은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라기 보다 더 나약하고 더 나쁜 나를 때때로 발견하고 재조정하는 성장의 단계다. 미혼일 때는 애교로 봐 줄수도 있었을 온갖 약점들이 줄줄이 극대화되어 튀어 나오고 생활인으로서 무능력하거나 약한 그 작은 틈새가 밑창이 벌어진 신발처럼 흉하게 드러난다. 누군가가 아이를 키우는 나를 관찰한다면 '허걱'할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싱글파더처럼 되어 버린 작가가 아이를 키우는 스스로를 객관화화하는 그 지점에 살짝 발을 올려 놓고 시작했다. 페터 한트케의 아이는 내 아이와 많이 닮아 있었다. 예민하고 소심한 그 성정이 또래집단의 아이들에게서 상처받는 풍경들에 아프게 젖어 들어갔다. 고작 네 살인 아이들 집단에서 발현되는 그 이기심과 폭력성은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타인을 배려하는 것은 아이들의 본성이 아니다. 천진난만함과 순진무구함은 때로 잔인한 이기심의 원형의 거친 칼날의 모습이기도 하다. 장난감 하나를 두고 거칠게 싸우다 서로 따귀를 올려 붙이기도 하고 약해 보이는 아이에게 발길질을 하기도 하는 모습들은 그 결고운 볼에 어린 홍조에는 예고되어 있지 않은 것들이다. 가해자의 부모도 피해자의 부모도 견디기 힘든 풍경이 주변에서 펼쳐진다.  

그게 아니면 <아이들>이란 우선 또래들 사이에서 지내는 것이 옳고, 그래야만 고통과 부당함을 겪으면서 자의식을 갖게 되고 무엇인가가 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종족이었던가?
                                                                                                                                                 p.126

하루키식의 표현 때로라면 전력 투구하여 근육을 연마하듯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하는 소설 창작 과정의 그 온전한 시간과 에너지를 페터 한트케는 아이 때문에 가질 수 없었다. 그는 사랑이 이미 식어버린 사람과의 사이에서 부산물처럼 떨어져 나온 아이가 어느새 자신의 삶 속에 스며들어와 그를 제한하고 좌지우지하는 생활을 객관화여 그려내고 있다. 스스로를 '그'로 칭하고 객관화하는 모습은 어떤 안간힘을 연상해 내는 풍경이어서 편안하지 않았다. 주양육자로서의 역할을 '나'에게서 분리해 내어 내 눈 앞에 갖다 놓는다는 것은 불가능에서 출발하여 불가능에서 끝나는 일임을 알기에 그 부자연스러움에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어느새 '나'는 엄마가 아닌 온전한 '나'를 떠올릴 수가 없다. 작가로서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일들조차 글들의 소재로 객관화시켜 버리려는 그의 노력은 때로 삶에 대한 냉소처럼 느껴져 자꾸 뒷걸음질을 치게 했다. 그래서 전반부에 실린 어머니의 자살을 다룬 '소망 없는 불행'에 대한 리뷰를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너무 슬픈데 아니 이제 더이상 슬프지 않을 만큼 소진되어 버린 그 버석거림이 연기된 것인지 사실인 것인지를 나는 분간해 낼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는 가장 객관적으로 반응하기 힘든 혈연의 관계망에서 그것을 시도하고 있고 그것은 어떤 낯선 이질감으로 독자를 매혹하기도 하고 밀어내기도 하는 것같다.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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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12-05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친 객관화도 도피나 회피의 심리를 무의식 중에 반영하는 것이겠지요.
블랑카님, 커가는 아이는 시간의 현현이다,라는 리뷰문장에 공감되어요.
나의 부정적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 섬뜩하지만 그걸 또 끌어 안아줘야겠어요.^^
어떨 땐 아이가 나의 분신이라기보다 내가 아이의 몸으로 이루어진 게 아닌가 싶은 때가 있어요.

blanca 2010-12-06 21:12   좋아요 0 | URL
맞아요...프레이야님 지적에 동감합니다...엄마는 아이를 떠나서 무언가를 그리는 것 자체가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놀랍고 신기해요...아이가 내 품을 떠나면 그 때는 어떻게 홀로 설까요...

2010-12-07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7 2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연말에 태어난 자녀를 둔 부모는 이듬해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야 할지 고민하게 마련이다. 다섯 살배기가 몇 개월 빨리 태어난 아이들과 섞이는 것을 막고 싶기 때문이다. 이 경우 대부분의 부모는 몇 개월 뒤처진 것으로 인해 유치원에서 겪는 불이익이 무엇이든 금세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건 하키와 마찬가지다. 연초에 태어난 아이가 누리는 아주 작은 이익은 연말에 태어난 아이가 겪는 불이익과 마찬가지로 꾸준히 이어진다. 성취감과 낙담, 용기, 좌절이 일종의 패턴이 되어 그 아이를 수년간 묶어두는 것이다. 
                                                                                                                         -말콤 글래드웰 <아웃라이어> 중 

  

이렇게나 직설적으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에 대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쑥 내민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를 씨근거리며 읽던 중 통화하게 된 집주인은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청자 중심의 완곡어법으로 내 애간장을 태웠다. 대한항공 801편 괌추락사건에 대한 신랄하고도 흥미로운 분석은 바로 동양인들의 권력 관계를 의식한 불명확한 의사표현에서 비롯된 기장과 부기장 간의 비행조종의 비능률적 소통 행태가 극심한 피로로 판단능력이 거의 마비되다시피 한 기장을 적절하게 통제, 보완하지 못한 비극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엄동설한에 이사를 가야 한다는 그 힘든 얘기가 에둘러 돌아온 바로 그 길이었다. 아이는 12월생이고 그나마 몬테소리라 맘껏 뛰어놀게 해 준다는 그 유치원의 십 대 일의 경쟁률에서 살아남지 못했고 이래저래 참 마음이 시리다. 

아웃라이어는 아웃라이어가 아니다. 결국 성공은 개인의 미덕이 아니라 환경과 기회의 강력한 조합으로 예측 가능하다,는 그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는 데 설득력이 강한 사례들을 하나 하나 따라가는 경로에 저자가 동행한다.  빌 게이츠는 사립학교의 부유한 어머니회가 투자해서 만들어 준 컴퓨터 터미널을 마음껏 활용하여 실시간 프로그래밍을 배울 수 있었고, 1955년에 태어난 덕에 개인컴퓨터 혁명의 가장 중요한 시기인 1975년에 때맞춰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 저자는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의 특별한 기회에서 성공이 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인의 자질이 아무리 뛰어난들 시대가 때맞춰 그 자질을 요구해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의 기량 정도로 치부되고 말것이다. 이 대목은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온 존 롤스의 정의론과 조우한다. 

존 롤스는 특정한 시기에 사회가 가치를 두는 자질 역시 도덕적으로 임의성을 띤다고 지적했다. 내 기술이 결실을 많이 맺고 적게 맺고는 사회가 무엇을 원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1860년대의 석유와 철도 재벌들의 어마어마한 부의 축적도 사회적 수요와 맞물려 가능했다. 심지어 롤스는 노력의 결과로 성공을 치하하는 것도 경계한다. 노력하는 능력도 하나의 행운으로 주어진 것일 수 있다. 결국 성공을 미덕에 대한 포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끈질긴 믿음을 버릴 것을 마이클 센델은 역설한다.  

그렇다면 이런 각종 임의적인 요인들이 적절하게 조합 발화되어 이루어지는 성공 앞에서 독자들은 망연자실하고 말 것인가. 하필 출생률 절구형 그래프의 불룩한 부분 언저리에 그것도 십이월에 아이를 낳아버린 내 앞에서 말콤 글래드웰은 그런 출발선부터 뒤처진 아이들에게도 기회를 줄 것을, 마이클 센델은 발빠르게 성공한 사람들의 성취물을 공공의 이익으로 함께 나눌 것을 얘기한다. 빈약한 결론이 그들 담론의 핵심은 아니다. 존재하는 방식이 그 자체로 옳은 것은 아니다,라는 그 당연한 진리를 환기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제 역할을 해냈다. 익숙한 집을 떠나는 것과 거대담론의 투망을 벗겨내는 것은 어느 정도 비슷한 일인 것 같다. 귀찮지만 가끔 해줘야 허섭쓰레기들을 미련없이 비워낼 수 있다. 관성은 언제나 쉽지만 불필요한 것들을 당연하게 눈앞에 쌓아놓게 한다. 하필 읽은 책과 일상에서 벌어진 일들이 섬뜩하게 만나는 그 지점에서 때이른 추위로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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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3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4 1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4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4 1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10-12-04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권 다 흥미로운 책이죠.

아웃라이어에 크게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는 이유를 하나 드릴께요.
아웃라이어의 전제조건은 .... '능력', '재능'이라는거죠. 그것도 아주 보기 드문 재능과 보기 드문 노력과 보기 드문 열정이 합해져있다는 것이 가뿐하게 전제조건. 게다가 집에 돈도 있어야해요. 게다가 운도 따라야 하구요. ㅎ 그것을 다 갖춘 자들 중에서 시대까지 타고나야 '아웃라이어'가 되는 거.

어디에 전제조건을 두느냐에 따라, 목표가 진심으로 세계 최고인 사람이라면 모를까, 아웃라이어는 말그대로 '아웃'라이어인거죠. ㅎ


blanca 2010-12-04 18:41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안그래도 아웃라이어 읽다 보니 정말 루저 같다는 자괴감이 밀려오더라구요. 정말 이 책을 읽고 하이드님 말씀처럼 세상을 더욱더 냉소적이고 비관적으로--;; 보게 되어요. 뒷북 쳤지만 이렇게 늦게나마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것도 다 님 덕택입니다. 정말 흥미로웠어요.

후애(厚愛) 2010-12-04 0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의란 무엇인가> 관심이 가네요.ㅋㅋ
행복한 주말 보내시고 감기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blanca 2010-12-04 18:42   좋아요 0 | URL
후애님~ 제 목표가 이번 겨울 감기 더이상 안 걸리는 거예요. 벌써 두 번이나 걸렸기 때문에 감기기운이 조금이라도 있을라치면 겁부터 덜컥 납니다. 후애님도 저도 감기야, 물럿거라! 해요^^

마녀고양이 2010-12-04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권 모두 꼭 읽어봐야겠네요. 시험만 끝나면, 불끈!
시험 다섯 과목 끝내고, 이제 한과목, 과제 둘 남았어요. 과제 하다가 잠시 여유가 생겨 들려요.

그런데..... 블랑카님 이사가야 해요? 겨울에? 헉.
안 그래도 유치원 때문에 머리 아플텐데. 분홍공주가 겨울이 생일이라, 활달한 아이가 아니라면 조금 치이는 것은 각오해야 할거예요. 그래도 다들 거치는 과정이니,, 맘 단디 묵고, 유치원 버스에 태우세요. ^^ 아니면, 6개월 더 델구 있든지. ㅠㅠ. 코알라도 난리났었어요, 한 10일간 내내 울고불고, 아침마다. 그런데 유치원에서는 울지 않아서, 보내도 되겠구나 라는 판단을 했었던 기억이 나요.

이왕 이사할거면,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하면 안 될까? 얼굴이나 보게.. ^^

blanca 2010-12-04 18:45   좋아요 0 | URL
마고님, 저 공황상태에 빠졌어요. 이 추운 엄동설한에 한 달을 정확히 남기고 이사를 가달라는 통보를 받았답니다.--;; 정말 섭섭하고(사실 그런 관계는 아니지만서도) 아이 유치원 계획도 다시 짜야 하고 이래저래 참 혼란스럽고 속상하네요. 내년에는 얼굴 보기 가능합니다.ㅋㅋㅋ 육아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될 것으로 예상되고 그러니 또 조금 기분이 좋긴 한데... 마고님 마지막까지 가뿐하게 열심히 하셔서 서재에 빨랑빨랑 복귀하세요. 코알라. 제 딸이 한 수 위일 것 같아요. 완전 소심하답니다. 막 울고 난리 날 것 각오하고 있어요. 제발 너무 심하게 울지 않고 조금만 힘들기를 바라고 있어요.--;;

cyrus 2010-12-05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신간평가단 선정도서가 마이클 샌델의 <왜 도덕인가>가 되어서
이번 기회에 전작인 <정의란 무엇인가>를 구입해서 읽어보려고 하는데,,,
유명한 베스트셀러라 도서관에서도 빌려 읽기도 힘든 책이라서
이왕에 구입해서 천천히 읽어봐야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blanca 2010-12-05 22:29   좋아요 0 | URL
cyrus님 신간평가단이시군요. 베스트셀러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가 너무 힘들더라구요. 사서 읽어도 아깝지 않은 책이었어요. 무엇보다 책장이 잘 넘어간답니다.^^
 

07년 12월생을 낳은 죄과를 치르고 있다.  

일단 07년은 황금돼지의 해라고 해서 엄청난 베이비붐이 일었던 해였다.
게다가 12월생이라니.
아이를 가지고 낳는 일은 키우는 일만큼이나 계획과 무관하게 벌어진다.
나의 노력은 너무나 늦은 결실을 맺었기에 황금돼지띠의 아이를 낳고야 말았다.--;; 

그리고 이제 그 전장에 발을 들여놓는다.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다 줄을 서야 한다.
보내고 싶었던 몬테소리 교육 유치원(공부를 거의 안시킴)은
로또 번호 추첨처럼 엄마들이 공을 가지고 추첨을 한단다.
12월 1일, 침상에서 미역국 먹고
아이를 낳았음에도 꺼지지 않은 배(낳으면 바로 홀쭉해지는 줄 알았다)를 보고
놀라워했던 바로 그 날
나는 집근처 언덕 위에 그곳으로 공을 잡으러 간다. 제발. 

올 한 해 원했던 일들은 거개가 좌절되었드랬다. 
그러니 행운의 공이라도 연말에 움켜쥘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 본다.
손씻는 물을 마시는 물인줄 알고 들이켰던 거지 소년 얘기와
들이붓는 믹스를 제발 끊을 수 있기를 소망하며
주문한 커피원두를 기다리며
남자들이 다 영의정 신발이라고 왜 신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대는 어그 부츠를 검색질하며  

그 유치원의 재가를 기다린다. 들어옵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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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11-22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유치원 추첨일이 얼마남지 않았군요. 올해는 부디 성공하시길~~~~~~~~~
어그부츠 정말 따뜻하더라구요. 전 어그부추에 어울리는 스키니진을 사려고 합니다. 쿄쿄쿄

blanca 2010-11-23 22:56   좋아요 0 | URL
세실님, 제 어그가 오는 중입니다. ㅋㅋㅋ 괜시리 설레네요. 어그에는 스키니진이 최고지요. 오늘 탐방을 갔는데 경쟁률이 엽기적이던걸요. 아이는 유치원 맘에 든다고 벌써 갈 준비하고...제 대입때보다 더 떨릴 것 같아요.

하이드 2010-11-22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77년 엄청 베이비붐이었던 시절을 살았고, 살고 있습니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 에 의하면, 77년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이미 손해.. 라는 거겠죠.

그나저나 유치원 줄세우기..같은건 드라마에나 나오는 줄 아는 주변에 어린이라고는 없는 환경에 사는 저인데,그게 요즘 어린이(..라는 말을 쓰면서 복잡한 마음이 드네요;;) 들의 현실(..여기서도 또 한 번 복잡한 마음..) 인거죠?

blanca 2010-11-23 22:58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77년에 태어나 07년생을 낳은 저를 두 번 좌절시키는 얘기이군요--;; 맞아요, 생각났어요.우리 초등학교 1학년 때 이부제였잖아요. 오전반, 오후반. 지금 생각하니 희극이네요. 아웃라이어 안 읽어 봤는데 생각난 김에 주문하고 읽어보며 자학좀 해봐야 겠습니다.^^;; 저도 제가 이런 어린이의 보호자가 될 줄은 생각 못했습니다.--;; 인생은 반전 투성이인 것 같아요. 그리고 생각난 김에 이쁜 꽃집 언니 될 수 있어요!!! 그럼요, 하이드님 정도면...

프레이야 2010-11-23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하시는 유치원 당첨 잘 되길 빌어요.
꺼지지 않는 배,에서 그만 ㅋㅋㅋㅋㅋ
저도 첫애 낳고 한동안 그렇더라구요. ㅎㅎㅎ

blanca 2010-11-23 23:00   좋아요 0 | URL
프야님, 저 애 낳은 당일날 아직 애 하나 더 배에 있냐는 말 들었잖아요. 산모한테 너무 가혹한 얘기 아닌가요?==;; 유치원은 오늘 구경 가보니 더 초조합니다. 남들이 가고 싶어하니 저도 부화뇌동하여 그 자유롭고 이쁜 분위기가 참 맘에 들더라구요. 천주교 재단의 자유롭게 뛰어노는 그런 곳이거든요..

후애(厚愛) 2010-11-23 0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열심히 빌어 드릴께요.^^

blanca 2010-11-23 23:00   좋아요 0 | URL
후애님 너무 감사해요. 왠지 좋은 예감이 드는걸요^^

sslmo 2010-11-23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가를 기다린다,전 사직서 쓸 때 나오는 단어인 줄 알았어요,ㅋ~.

전 커피 당분간 끊었어요.믹스고 원두고...
대신 보리차 끓어 보온병에 담아갔고 나왔는데...아무 맛 없어요~ㅠ.ㅠ


blanca 2010-11-23 23:02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커피를 끊으셨다구요? 제가 세상 제일 대단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바로 커피를 끊었다는 이들이랍니다. 저는 아이를 가진 한 아홉 달 동안만 참았다가 모유수유할때도 열폭하여 두 잔씩 마셨더랬어요. 보리차도 뜨겁게 마시면 구수하긴 한데 커피만 하지는 않은데..(염장모드입니다.ㅋㅋㅋ) 그래도 저도 또 시도해 보려고 해요...재가를 기다린다,,사직서에 쓰는 용어군요 ㅋㅋ

stella.K 2010-11-23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해 다 원하는대로 된 건 없네요.
우리네 인생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도 그 안 되는 것 중에 하나 어쩌다 돼면 기분 좋아 어깨를 으쓱이곤 하죠.
12월부터 시작해서 블랑카님 좋은 일 많이 생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blanca 2010-11-23 23:03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저는 사실 인생 전체로 봐서 원하는 고대로 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지나서 돌아보면 다 납득할 만한 결과였지만...스텔라님이랑 저랑 내년에는 소망한 바 다 이루자구요!

비로그인 2010-11-23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 인생은 완벽하게 제 뒷통수를 후려칩니다. 이정도면 한때 유행했던 빡치기 수준이에요. 그런 다음 살랑살랑, `그래도 이거 하나 보고 살아, 응?' 하는 꼴이라니!
모쪼록 꼭 운명의 수레바퀴를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행운이라니요, 그런 건 없습니다. 단지 운명이 있을 뿐이죠. 그리고 저는, 그 운명이 blanca님이 원하는 그것이기를 간절히 함께 바랍니다. 행운보다 운명이 강할 테니까요!

blanca 2010-11-23 23:05   좋아요 0 | URL
쥬드님, 운명....그런 걸까요? 저는 아직도 행운을 포기 못하나 봐요. 저한테 행운이 너무 인색해서요. 운명의 수레바퀴. 쥬드님의 언어들은 어떻게 하나 하나가 이렇게도 의미심장할까요...인생에 있어서는 저보다 선배이신 것 같아요.

저의 운명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요.....

반딧불이 2010-11-24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시대 책을 읽다보니 저는 '재가'를 재혼하는 의미로 읽어버렸네요.~
'행운의 공'을 위해 '올 한해 원했던 일들이 좌절'되었던거라 믿습니다. 좋은 결과가 블라카님에게 환한 미소를 전해주기를....

blanca 2010-11-23 23:07   좋아요 0 | URL
반딧불이님, 재혼^^;;저의 재가라는 표현이 적절하게 쓰인 것 같진 않아요. 임금님의 허락을 유치원 입소에 비유하는 건 아귀가 꼭 맞는 비유는 아닌 것 같습니다. 덕분에 사전도 찾아보고 감사합니다. 행운의 공을 위한 좌절들, 이 표현 너무 좋고 가슴에 코옥 박히네요. 그럴래요. 그렇게 생각할래요.^^

루체오페르 2010-11-24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에게 좋은 결과 원하는 결과 있길 바랍니다!

저는 어그가 따뜻할거 같아 호기심은 가는데 남자는 어그 안신는거야...라는 분위기가 있어서 도전 못하고 있습니다ㅋㅋ;

blanca 2010-11-24 22:28   좋아요 0 | URL
루체오페르님, 감사합니다. 요새 남자도 어그 신는 경우가 있다곤 하더라구요 ㅋㅋㅋ 용기가 필요하긴 할 것 같아요^^;; 사실 인식이 그런 거지 남자분들이 더 잘 어울릴 것도 같아요.

비로그인 2010-11-24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꺼지지 않는 배를 계속 유지하며 셋째까정 낳고나니까...이것이 없어지진 않고 중력을 못이겨 밑으로 쳐집디다~~ㅠ
엄마는 슬퍼요~~
유치원의 재가를 기다리는 그 마음...
블랑카님에게 꼭 좋은 소식이 올거라고 믿씨미다~~!!!!

blanca 2010-11-24 22:29   좋아요 0 | URL
마기님, 저도 꺼지고 다시 부르고 꺼지고 다시 부르고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완전히 꺼지기 전에 다 불려서(이게 무슨 소리인지) 끝내고 난 다음 화끈하게 꺼지게 하는 플랜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저는 벌써 쳐지고 있답니다.--;; 쓰다 보니 또 슬퍼지네요.

2010-11-24 1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4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4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4 2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0-11-24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전에 대한민국 어린이의 수가 적어서 유치원이 문 닫을 정도로 인구 문제가 심각했다고 들었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군요. 좋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들어가려고 수많은 부모님들과 아이들이
줄을 서고 있었군요. 몬테소리,, 이름만 들어도 참 좋은 곳이죠. 어렸을 때 몬테소리 장난감 가지고
논게 생각이 나네요. 정말 블랑카님과 애기에게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blanca 2010-11-24 22:33   좋아요 0 | URL
cyrus님, 2007년에 반짝 출산붐이 일어서 아이들이 대박으로 많아졌답니다. 유치원도 놀랠 정도로 아이들이 갑자기 늘어나서...몬테소리 장난감 가지고 노셨어요? 저는 미술학원 잠깐 다니다 초등학교 입학해서 참 서운했던 기억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10-11-28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따님 유치원에 가면 사진도 찍고, 바욜린도 배우시고, 등등..
뭔가 blanca님만의 시간이 "그래도" 쪼끔 더 생기지 않으실까요? ㅎ

얼마전 퇴근길, 2호선에서 제 나이 또래의 어떤 분이 4-5세 되는 딸과 함께 나들이를 나왔더라고요. 유모차를 끌고 나왔는데 호기심 많은 소녀께서 이리저리 정신없게 하느라 유모차가 뒹굴. 앞에 있던 제가 잡아 드렸죠 ㅋ

그때 blanca님 생각나면서 왜그리 웃음이 나던지욥 ^^

blanca 2010-11-29 22:08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같은 배려와 도움이 아기 엄마들한테는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몰라요...재작년인가 낑낑대며 유모차를 둔덕 위로 못 넘겨기고 있는데 저 멀리서 달려와 도와주신 분 생각이 나네요. 바람결님은 좋은 아빠가 될 것 같아요^^

날씨는 춥고 하늘은 너무 파랗고 나이는 또 한 살 더 먹고 이래저래 싱숭생숭한 하루입니다...바람결님은 어떻게 한 주를 출발하셨는지 궁금하네요...

2010-11-30 0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30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은 나의 기갈에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그것들은 세계의 불가해한 운명처럼 나를 배반했다. 그러므로 나는 가장 빈곤한 한 줌의 언어로 그 운명에 맞선다. 나는 백전백패할 것이다.

-김훈 <자전거 여행> 책 머리에 중


 


백전백패할 것을 알고 또 만인앞에 공표하고 그럼에도 한 줌의 언어로 그 운명에 맞설 것을 약속한 사람을 쉽게 저버릴 수 없음을 나는 안다. 삶이 치사하고 남루하고 던적스러움을 눈물을 흘리며 응시함에도 결국 남은 시간 사랑과 희망을 얘기하고 싶어하는 초로의 사내는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형해이다. 결국 그렇게 될 것을 알기 때문에 그의 언어들은 읽는 이를 무장해제 시키고 만다.

생명은 결국 긍정이다. 실존적 고통은 무한한 낙관주의와 긍정을 저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헤어나올 수가 없다. 지금 아프지만 우리는 또 노래하고 꿈꾼다. 김훈은 그걸 고약하게도 너무 잘 안다. 건조하고 예리한 그의 단문들에 자꾸 쓸리우는 듯한 환각은 무언가를 너무 적나라하게 들키고 만 것 같은 낭패감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긴박하고 박진감 넘치는 서사가 썰물처럼 쓸려 나가고 해안가에 남은 그의 연필 자국들은 내가 이미 밟아 놓은 흔적과 앞으로 밟고 지나가게 될 삶 그 자체다. 사실 우리 삶이 뭐 그리 드라마틱하겠는가. 누군가가 나의 삶을 기록하게 된다면 어쩌면 날카로운 회한과 망상과 소망의 어휘 몇 묶음이 고작일런지도 모른다. 우리가 자꾸 이야기를 찾아 읽고 서사에 집착하는 것도 결국 그게 아닌 것임을 알기 때문인 것 같다. 삶이 드라마틱한 여정과 정교한 플롯으로 채워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삶은 생각보다 지루하고 비상식적이고 아귀가 맞지 않는다. 그 결을 쓰다듬으며 부조리와 모순을 하나 하나의 언어로 차례차례 걷어내다 보면 그것은 하나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체념을 위한 설득의 얘기에 가까워진다. 여기에 반하는 행위는 도발적이고 매혹적이다. 그게 문학이고 예술이다.


<내 젊은날의 숲>에서는 유독 서사가 휘하다. 민통선 안 국립 수목원 전속 세밀화가인 ‘나’는 언뜻 김훈 그 자신을 연상시키듯 주변을 냉연하고 관조적으로 읊조린다. 말단 공무원으로 뇌물을 공공연하게 받아 상사에게 상납하다 구속된 아버지가 서서히 시들어 가는 모습과 자폐아 아들을 둔 싱글파더 수목원 연구실장이 꽃이 제 색깔을 내는 그 필연성을 설명하고자 그 무위의 시도를 계속하는 모습이 이제 곧 사회로 첫발을 내디딜 학군단 장교의 모습과 서로 교차하고 비껴가는 모습이 나를 통과하여 펼쳐진다. 세상으로부터 겉돌고 헤매는 자들의 메마름, 황폐함을 얘기하는 것은 ‘내’가 도저히 종이 위해 온전하게 옮겨 놓을 수 없는 개별적 생명의 현재성을 지난하게 찾아 헤매는 일과도 같다. ‘나’는 끊임없이 한계를 확인하고 그것에 쓸리우며 멀고 무관한 삼인칭인 ‘그’를 내 눈앞의 이인칭인 ‘너’로 바꾸어 놓고자 한다.

복수초의 노란 꽃 안에서도 오십 년 전 ‘아’와 ‘피아’의 구별이 무너졌던 전장에서 죽어가며 상추쌈을 그리워했던 학군단의 백골 위에서도 안실장의 자폐증 아들의 빛이 내리는 머리 가마 위에서도 울리는 ‘쟁쟁쟁’ 소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 안에 움켜쥐고 싶은 사랑과 희망에 대한 가능성의 울림이다. 그 ‘쟁쟁쟁’ 소리는 도저히 화폭에 옮겨 담을 수도 언어로 형상화할 수도 없지만 삶의 골조이자 생의 동인이다. 모든 불가능한 것들을 소망하게 되는 발원지이자 아름다운 것들을 꿈꾸게 되는 몹쓸 환각 지대다.

작가는 육십이 넘어 그 환각 지대에 발을 담궜다. 언어로 도저히 가둘 수 없는 것들이기에 그것들은 더 아름답다. 우리의 인식의 한계의 지평 저너머에 옹크리고 있는 그것들이 결국 우리 삶 그 자체를 지배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은 전 우주를 다 채우고도 모자랄 만한 것임에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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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0-11-22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 진짜 멋지네요.. 라고 하면 안 되고, 블랑카님 페이퍼 댓글이 이모양이라 죄송하지만, 존나 멋있네. 라고 해줘야 할 것 같아요. ㅎ

blanca 2010-11-23 22:36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ㅋㅋㅋ 저 그 용어 좋아라 합니다. 이런 댓글이 더 좋은데요 ㅎㅎ

굿바이 2010-11-23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교자는 오늘도 웁니다 ㅜ.ㅜ

blanca 2010-11-23 22:52   좋아요 0 | URL
굿바이님의 배교는 어떤 것에 대한 것일까요? 힌트좀 주셔요...혹 김훈 작가일까요?

2010-11-23 1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3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poptrash 2010-11-23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저는 백일전백일패... 쿨럭

blanca 2010-11-23 22:54   좋아요 0 | URL
poptrash님, 저도 쿨럭. 저는 백전은커녕 한 십전하면 나가떨어질 깜냥입니다.

비로그인 2010-11-23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면서도 가는 길이 있습니다. 이미 뻔히 알고 있는데, 그 길로 가야만 하는 경우.

blanca 2010-11-23 22:55   좋아요 0 | URL
쥬드님...그런데 그건 머리로 알고 가슴을 따르는 일일까요? 아니면 가슴으로 고통스러워하며 머리를 따르는 일일까요....그 앎이 의외의 해피엔딩으로 막이 내리기를 바랍니다...

2010-11-23 2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3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11-24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오랫동안 음미하고 갑니다^^

blanca 2010-11-24 22:34   좋아요 0 | URL
후와님 좋은 글이라고 하시니 진심으로 부끄럽네요...의욕만 앞서지 항상 너무 모자라요...

cyrus 2010-11-24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유만 있다면 자전거 여행을 해보고 싶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blanca 2010-11-24 22:3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생각했었어요...자전거에 몸을 싣고 몸전체로 대지 위를 굴러가고 호흡하고 싶은 소망. 하지만 저는 자전거 안장에 앉기만 하면 바로 앞으로 고꾸라진답니다. 겁이 너무 많아서 자전거를 배우지 못했어요. 언젠가는 또다시 도전해서 신나게 가로수길을 달리는 꿈을 가져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