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허망한 욕심에 후달렸고 그만큼 작은 성과와 큰 낭패감을 맛 본 해였다. 하지만 읽고 쓰는 일이 주는 그 황홀한 즐거움 그 자체만으로 행복한 시간들도 많았다,고 기억하고 싶다. 언젠간 읽어야지, 싶었던 책들을 추려 꽤 열심히 읽은 것도 같다. 지나오면 남는 것은 결국 기억의 흔적들이다. 기록은 삶에 대한 성실한 자세와 통한다. 기억하지 않고 기록하지 않은 시간들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고 늙음만 남긴다. 그래서 자꾸 기록하려고 한다.
한 해를 결산하며 그 해에 가장 빛나는 연기를 펼친 배우와 감동을 준 작품에 상을 수여하는 연말 시상식처럼 나는 나를 심심하지 않게 했고 때로 눈물짓게 했던 책들에게 기억을 위한 기록의 자리를 주려고 한다. 소박하지만 그냥 그렇게 바깥에서 내 안으로 포박해 들어온 것들에 자리를 주려고 한다.
재미와 감동을 겸비했던 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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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스메르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아이를 앉히고 친정에 가던 중 반을 넘게 읽고 친정에 와서 밤새 눈물 흘리며 다 읽어 버렸던 책이다. 칠레의 정치 사회적 격동기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시인 네루다가 자그마한 어촌의 청년을 감화시키는 내용은 픽션과 논픽션의 아름다운 융합과 어우러져 독자를 포복절도하게 하기도 하고 속수무책으로 울리기도 하는 대단한 저력을 보여줬다. <일포스티노>로 영화화되기도 했던 이 소설은 무엇보다 기가 막히게 재미있고 기가 막히게 뭉클하다. 한없이 가볍고 끈적끈적하기도 하고 한없이 진지하고 엄숙하기도 한 이 잡탕의 미학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은 사실 그다지 재미 없을 거라 각오하고 읽었던 책이다. 원체 유명한 고전은 어느 정도 지루함을 담보하고 있지 않은가, 라는 선입견으로. 하지만 그 다양한 프랑스 파리의 인간군상의 적나라한 묘사와 역동적인 줄거리는 이 책이 고전이 맞는가? 자문하게 할 정도로 책장을 스르륵 넘어가게 한다. 탐욕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미덕을 실천하기도 하는 그 모순적인 인간 존재를 이다지도 구체적으로 현실감있게 잘 그려낼 작가는 발자크 말고는 찾기 힘들 것같다. 모옴이 욕한 그의 짜리몽땅한 체구와 나온 배도 다 포스로 느껴질 정도로 그의 소설은 무게감이 있다.
로맹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낸 <자기 앞의 생>으로 시작하면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 같다. 성장소설이 기본적으로 담보하는 자기이입이 가능한 그 생생함 뿐만 아니라 로맹 가리 특유의 익살과 감동을 버무리는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그의 자전적인 고백인 < 새벽의 약속>을 읽고 나면 그가 아무리 지루한 소설을 재탕 삼탕해도 끝까지 그의 독자로 남고 싶은 열망을 가질 수밖에 없다. 늙은 싱글맘의 노동을 희생으로 모든 불가능한 소망을 가능한 현실로 구현해 낸 그의 처절한 스토리는 마지막 책장을 감히 앉아서 편하게 넘길 수 없게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바치는 하나의 비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그의 어머니는 모성을 극대화하여 체현하고 있다. 누구나 로맹가리의 어머니에서 늙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작은 공통점 하나라도 건져내어 함께 오열해 버리고 말게 하는 책이다.
아름다웠던, 정말 너무나 아름다웠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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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식 과잉으로 문장을 테두리한 산문들은 때로 지루하고 읽기에 민망하다. 외부의 풍경을 지나치게 객관하여 묘사하는 성실성을 강조한 산문들은 읽는 행위 자체를 부가적인 것으로 폄하하게 된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인상과 풍경>은 그 중간 지대에서 훌륭하게 무게 중심을 잡고 눈을 들어 하늘에서 명멸하는 별을 보는 글들이다. 도저히 책장에 다른 책들과 함께 꽂아버려 이 아름다운 산문들을 기억의 한 곳으로 밀어버리지 못하게 할만치 너무나 매혹적인 산문집이다. 글들에서 음악이 울리고 그림이 떠오르는 환영을 이 책은 선물한다.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에 이 책을 가지고 간다면 그 풍경이 어떻게 내 눈으로 흘러들어올지 기대하고 기억할 수 있게 한다. 가장 멋지게...
시를 안 읽은지 시집을 안 산지 어언 몇 년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부끄러운 고백을 이 시집으로 두루뭉술하게 덮어버리려고 한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한 대가로 스스로를 고스란히 내어놓아야 하며, 인생에 대한 대가로 인생을 바쳐야 한다고 공짜는 없다!고 외치는 이 폴란드 여류 시인이 히틀러의 한때는 한없이 사랑스러웠을 어린 시절을 상상해 낸 시를 읽을 때는 우리가 왜 시를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만나게 된다. 무엇보다 젠체하지 않고 시 본연의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들의 자리를 송두리째 흔들고 본질적인 것들을 환기하는 솜씨가 돋보인다.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그 처절한 것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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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문학은 음울하고 비관적인 것이라는 느낌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위의 두 권은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말살되지 않는 최후의 인간성에 대한 옹호라는 점에서 칙칙하고 비관적인 고백서나 관찰물을 뛰어 넘고 있다. 용변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그 처절한 환경에서도 수용소의 지인들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조촐한 선물들의 교환과 단테의 <신곡>에 대해 토론하고 아름다운 고향의 노래를 부르는 그 정경들은 결국 인간이란 긍정되어야 하는 생의 에너지임을 깨닫게 한다. 현실이 고통스러울 때 이 두 권의 책은 작은 위안이 되어 줄 것도 같다. 비극적인 환경에서 그 환경을 뛰어넘는 아름다움을 문득문득 엿보이게 하는 그들의 모습은 결국 우리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할 테니까 말이다.
남은 책장 두께에 아까워 감히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하고 차마 아픈 결말을 감당하지 못해 두고두고 마지막 독서를 미루는 그 초조한 달뜸은 책만이 책이기에 가능한 것같다. 책 속의 이야기가 나를 뚫고 들어가고 때로 내 삶의 사연들이 책 속의 이야기들과 교차할 때 읽는 것도 결국 나의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행하고 경험한 것들과 내가 읽고 상상한 것들이 가져오는 느낌과 감흥은 결국 기억 속에서 한데 어우러진다. 그건 마치 운명의 일부분 같다. 내가 이 사람을 만나 경험하는 것들과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끼는 것들도 다 결국 희미하게 흔적을 남기고 지나가 버린다. 돌아와 보니 그게 삶 자체와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앞으로 만날 책들은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 만큼 기다려지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