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로서 일체적인 완전함을 갖춘 섬과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 본체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다른 사람의 죽음은 나를 축소시킵니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에 속해 있는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조종이 누구를 위해 울리는지 알려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당신을 위해 울리는 겁니다. 

- 존 던, <묵상록>에서('필경사 바틀비' 옮긴이의 말 중 재인용) 

 

유달리 서러운 날이 있다. 세상 사람들에 너무 지나치게 공감해 버려 그냥 존재 자체로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깡총한 바지를 입고 주차장을 배회하는 내 남동생보다 어린 주차요원 남자애들. 내 어머니뻘인데 연신 굽신거리며 시식을 권하는 마트 아주머니들. 관리실을 비워버려 하염없이 집채만한 택배 상자를 이고 끌고 아파트 주변을 배회하는 택배 기사들.  

꽤 오랜 단골임에도 여전히 나의 커피 취향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매번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물어보는 점원이 서러움 하나를 더 얹어 주었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도 영영 떨어져 저마다 허우적 대고 있다는 자각도 매번 쓰리기는 마찬가지다.  

씹을 수 없는 왼쪽 어금니가 우연처럼 맞닿아 몸을 뚫고 지나가는 그 예리한 전율감도 마찬가지다. 그럴 때 살아 있다고 느끼고 사는 게 참 전쟁이구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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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anca님께 - John Donne
    from 유리동물원 2011-04-26 22:59 
    John Donne을 제가 무지하게 좋아하긴 하는데 John Donne 단독 선집이라기 보다는 여러 시들이 한꺼번에 들어있는 데에서만 주로 봤네요. 헤밍웨이 소설의 제목이 된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사람을 보내지는 말지라,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니 (Meditation XVII)' 랑 '죽음이여, 뽐내지 말아라 (Holy Sonnet X)'이 나오는 부분은 볼 때마다 좋아요. 하지만, John Donne 시가 들어있는 아주 유명한 사이트를 알고
 
 
마녀고양이 2011-04-26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신 말이죠, 소소한 기쁨으로 즐거워지는 날도 있죠.
미술 치료 수업 기관 근처 토스트 샵에서 일주일에 한번 토스트를 산지 어언, 3달.
얼마 전부터 인사드리고 이야기 걸구, 가게 앞 벚꽃 좋다 하고 했더니
토스트 할머니가 저를 보면 알아보고 웃으세요. 그러니 블랑카님, 커피 샵 가서 한번 깽판을 부리면..
아마.............. 잘 기억해줄 것임을.. ==3333333 부웅~ 도망가기 전에 뽀뽀 날려요, 쪽~

blanca 2011-04-26 21:51   좋아요 0 | URL
ㅋㅋㅋ 마고님 때문에 웃습니다. 사실 알 것도 같은데 컨셉인지도 모르겠어요. 가격도 싸고 커피도 너무 맛나서 기분이 우울해질 때 가게 되는 곳인데 참, 매번 모든 것을 다시 물어 보네요. 그럴 때마다 기분이 괜시리 별로 안 좋아지는 건 어쩔 수가 없어요--;;

穀雨(곡우) 2011-04-26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와 아무래도 관계가 있을까요. 그루미한 날, 조금 더 나가면 지독한 우울에 빠집니다.
한 숨 크게.....소녀시대의 훗훗이라도...ㅋㅋㅋ

blanca 2011-04-26 21:52   좋아요 0 | URL
곡우님, 소녀시대는 저를 더 우울하게 만듭니다. ㅋㅋ 너무 이쁘고 어리잖아요.

穀雨(곡우) 2011-04-27 09:04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저두 어쩔 수 없는 삼촌팬인가 봅니다..^^
그럴 뜻은 아니었는데 말이지요. 그래도 힘, 내세요....ㅎㅎㅎ

다락방 2011-04-26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토미 씨, 나요......, 서툴러서, 미안해요.
다키오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서툴다니, 뭐가?
뭐든지.
그렇지도 않아. 나도 마찬가진 걸, 뭐.
그래요? 음...... 저기.
웬일로 다케오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히토미 씨도, 세상사는 거라든가 그런 거, 서툴러요? -'가와카마 히로미'의 [나카노네 고만물상] 中 에서


저도 그렇고 블랑카님도 그렇고 커피점의 점원도 그렇고, 우리는 모두 완전하지 못한 인간이잖아요. 늘 해오던 일은 익숙하게 해낼수도 있지만, 늘 해오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실수를 하기도 해요. 유달리 서러운 오늘 같은 날에, 커피점의 점원은 오늘 좀 서툴렀는가 봐요. 다음날은 마법처럼 블랑카님의 커피 취향을 기억할런지도 몰라요. 서투른 날이었어요, 오늘은 유독. 늘 살아오던 세상이고 늘 보아오던 환경인데 오늘 블랑카님은 서투른 블랑카님 본인과 만난거에요. 다른날과는 달리. 그래서 유독 서럽게 느껴졌던 거에요. 그리고 우리는 언제든 서투른 타인과 또 서투른 내 자신과 만나요.

비는 내리다 멈출거고, 눈물도 흐르다 멈출거고, 서투름도 결국 지나갈 거에요. 매번 쓰리다는 자각도 곧 잊혀질 거에요. 물론, 또다시 그 쓰림이 바깥으로 삐져나오는 날도 있겠지만요. (횡설수설..제가 전하고 싶은 말이 잘 안전해지지만, 아무쪼록 잘 캐치해주세요, 블랑카님 ㅠㅠ)

blanca 2011-04-26 21:5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이렇게 소중한 글도 인용해 주시고 참 고맙네요. 그런 날인 것 같아요. 정말 울고 싶은 날. 몸까지 안 좋고. 게다가 날씨도 멋지게 협조해 주시고. 다락방님의 댓글이 참 따뜻하네요.

... 2011-04-26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의 서러움에 공감하기 전에, 하고 싶은 말. 전 존 던을 무지 좋아해요!

이번엔 공감하며 (끄덕끄덕) 그런 날이 있어요.

blanca 2011-04-26 21:54   좋아요 0 | URL
브론테님!! 그러면요. 존 던 책 추천 좀 해주세요. 저도 이 글이 너무 좋아서 찾아 봤는데 거의 절판이고 대체 갈피를 못 잡겠더라구요. 꼬옥 좀요.

하이드 2011-04-26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러울 때.. 읽기 싫었던 책, 평소 안 읽었던 책 읽으면 잘(?) 읽혀요. 좀 이상하고, 알 수 없는 위안이지만요..

blanca 2011-04-26 21:56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ㅋㅋㅋ 오늘도 꽃집을 지나다 하이드님 생각 했었는데요. 정말 그래 볼까요? 어떤 책이 있을까요? 지금은 참고로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시작했답니다. 저 요새 열린책의 그 사철 방식에 완전 빠져 있잖아요. 이제서야 하이드님 말씀이 이해가 갑니다. 맨날 배 갈라보고 놀아요 ㅋㅋㅋ

2011-04-26 1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6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4-26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 2011-04-26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빗소리랑 창가의 차 지나가는 소리랑 너무 잘 어울리네요. 찾아 보니 슈베르트의 즉흥곡이네요. 바람결님, 고마워요.

비로그인 2011-04-27 0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게 생각하세요. 점원이 혹시 남자라면 블랑카님의 목소리를 더 듣고 싶었든지 아니면 대화를 더 나누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고, 여자라면 왠지 묘한 매력을 풍기는 블랑카님에게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아 확인에 확인을 거듭한 건지도 모르니까요ㅋㅋ(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 또한 블랑카님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터라 남일 같지 않아 위로차 적어봤습니다. 용서하세요)^^

blanca 2011-04-27 21:35   좋아요 0 | URL
후와님, 위로가 되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착각해야겠어요^^;; 유쾌해지는걸요.

sslmo 2011-04-27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깡총바지 입은 주차요원은 제가 못가진 , 그 무엇보다 귀한 젊음을 가지고 있으니 패쓰하고요~
전 파지 줍는 할머니, 우유배달 하는 할아버지, 음~ 또 주차요원 할아버지들의 '아이고~'소리를 듣는 게 일상입니다.
(어째 쓰고보니 '그대를 사랑합니다' 필이...^^)
사는 게 전쟁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그 전쟁 같은 삶을 부러워 하잖아요~
비가 언제 내렸었나 싶게, 날씨가 쾌청이예요~

blanca 2011-04-27 21:37   좋아요 0 | URL
양철댁님, 오늘 갠 날씨로 기분이 많이 좋아졌답니다. 저는 유독 그런 날이 있어요. 그냥 사람들 모두가 (저를 포함) 너무 가엾은 날이요. 연민과 공감이라는 허울 좋은 말로 포장해도 결국 저의 유약함과 오만일런지로 모르지요. 예, 앞으로 열심히 전진해 나가겠습니다.

비로그인 2011-04-27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몰래 흐르는 눈물
때때로 난 고아처럼 느껴요.
이런 오페라 레파토리의 제목이 생각나는 나날들이었어요.

한오백년 살자는데.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

발자국을 떼기가 힘들 때엔, 그저 자리를 지키는 것만 해도 숨이 차요. 타인의 생각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 것. 형용사와 부사를 빼고 생각할 것. 그런데 이 두가지를 내가 아무리 지키려 노력해도 누군가는 자신의 잣대로 나를 난도질하고, 형용사 부사를 빼고 명사와 동사만 남겨도 분통터지는 날들이 있습니다. 지나가기를 조용히 기다려요. 그런데, 막상 지나가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요. 난 그게 더 두렵습니다.

blanca 2011-04-27 21:40   좋아요 0 | URL
쥬드님, 아. 제가 어떤 위로를 드릴 수 있을까요. 형용사와 부사를 빼고 생각한다는 게 저는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나머지로도 힘드신 나날이라면 시간이라는 치유제와 상황의 변화라는 흐름을 기다리고 견디시고 나중에 돌아보면 그래도 가장 그 상황에서는 최선의 것들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쥬드님이 눈물 흘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비로그인 2011-04-28 11:05   좋아요 0 | URL
으허헝 나 이 댓글, 블랑카님을 위로한답시고 쓴 글이었단 말입니다. 울어버릴테요. 저의 개떡같은 글솜씨 때문에요ㅠㅠ

blanca 2011-04-28 13:21   좋아요 0 | URL
ㅋㅋㅋ 쥬드님 너무 귀여우시네요, 백 프로 저의 오독일 겁니다. 제가 좀 형광등이라서요^^;; 오늘 하늘 보셨어요? 너무 이쁘죠!

2011-04-27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7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8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9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1-04-28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날이 있잖아요.
괜시리 서럽고, 괜히 아무것도 아닌 일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그냥 이유없이 슬퍼지면, 더 슬픈 생각을 짜내어 눈물을 쏙 뽑아내 버리고 싶어져요.

그러고 나면 또 기분이 나아지지 않을까요?

blanca 2011-04-28 13:20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오늘 푸른 하늘을 보고 기분이 참 맑아졌답니다. 하늘 너무 이쁘네요. 뭉게구름도. 그리고 선거결과도요^^;;

잘잘라 2011-04-29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서러운 날」이 너무 오래 가는거 같아요.
얼른 새글 올려주삼!!!

blanca 2011-04-30 23:02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 ㅋㅋ 그래야 할 텐데요. 사실 그 기분도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나 봅니다. 오늘 이 괴괴한 날씨도 그렇고. 빨래에서는 냄새가 진동하고. 빨리 활짝 개었으면 좋겠어요.

세실 2011-04-30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커피숍 점원 사업하면 안되겠네요. ㅎㅎ
나이 들수록 단골가게 찾게 되요. 편안함, 위로와 휴식을 얻고 싶은거겠죠.

blanca 2011-04-30 23:03   좋아요 0 | URL
근데 점원을 가장한 주인인 것 같다는 문제가--;; 나이가 꽤 있어 보이고 알바생을 부리는 것 같더라구요. 오늘도 단골 칼국숫집 갔다가 아주머니의 냉랭한 분위기로 괜히 죄지은듯 먹고 왔네요. 요새들 날씨도 그렇고 다들 기분이 안 좋으신지 왜 그러시나 모르겠어요. 그냥 한 번 웃고 따스한 말 한 마디만 건내도 서로들 더 행복해질텐데 참 아쉽습니다.

후애(厚愛) 2011-05-01 0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제가 많이 서러워요..
울고 싶은데 울 수가 없어요...

blanca 2011-05-02 10:26   좋아요 0 | URL
후애님.....어떤 위로를 드릴 수 있을까요. 힘들 때 억지로 웃거나 담담하려 애쓰기보다 가끔은 크게 목 놓아 우는 게 도움이 될 때가 있는데 우실 수도 없다니 걱정이 됩니다.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더 나아지기를 그래서 후애님이 슬퍼하지 않으시기를 기원합니다.
 
필경사 바틀비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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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로 무식했냐면 <백경>의 작가 허먼 멜빌의 소설이니 <필경사 바틀비>도 그런 고래에 관련된 마초적인 얘기인 줄 알았었다. 고래 鯨과 밭갈 耕자도 구별 못하면서 허먼 멜빌을 안다고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가로로 길쭉한 특이한 판형, 약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삽화, 백 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 실패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적어도 출발 전에 각오해야 하는 거리는 아니다. '재미'를 기대하지는 않았고 '의미'는 있겠다 싶었다.  

화자는 바틀비가 아니다. 야망이 없는, 그러나 어느 정도는 선량하고 어느 정도는 속물적이고 비겁한 초로의 변호사다. 게다가 배경은 월스트리트다. 예전에 복사기가 발명되기 전 인간 복사기의 역할을 대행했던 필경사들을 부리면서 '나'는 종종 당혹스럽게 된다. 역시 기계가 아닌 탓이다. 토너나 갈고 프린트용지나 공급해 준다고 역할을 다 해낼 수는 없는 터. 이미 고용중인 두 명도 만만치 않은데 소극적인 저항을 교묘하게 하는 바틀비가 걸어들어오고 만다. 바틀비는 반항적이다. 시키는 일을 하지 않는 쪽을 택하겠다고 공표한다. 그런데 이 반항은 서글픈 데가 있다. '나'는 모질게 바틀비를 내칠 수가 없는 그 무엇에서 돌아설 수가 없다.  

다소 특이한 사람을 부리는, 이 사회에서 용인되는 평범함 속에 안주하는 '나'의 번뇌와 갈등. 바틀비와 '나'는 분리된 객체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과 같다. 구조와 관습, 상식에서 미끄러져 나가고 소외되는 바틀비를 힘겹게 지켜 보면서 '나'는 한없이 불편하다.  

이러한 얘기들. 언뜻 급박한 전개도 긴장감도 번지르르한 서사도 없는 듯이 보이는 이 얘기가 이다지도 잘 읽히고 결말을 궁금케 하는 것은 작가의 저력이기도 하고 이야기가 품고 있는 인간에 대한 예리한 통찰 덕분이기도 하다. 독자는 '나'와 '바틀비'를 왕복한다. 변호사가 바틀비를 구제해 주기를 바라기도, 외면해 버리고 저만치 앞서가 버리기를 바라기도 한다. 갈팡질팡하는 그 지점이 눈 앞에 펼쳐진다. 들키고 만다.  

슬픈 결말은 구구절절한 설명을 생략하고 있다. 모든 것을 하겠다고,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미덕으로 간주되는 사회에서 당당하면서도 무력하게 하지 않는 것을 택하는 풍경은 꿈이기도 하고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바틀비'는 살아 있다. 죽을 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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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4-26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이 책에 대한 리뷰를여, 메리포핀스님 서재에서 진짜 인상깊게 본거예요.
이거 같은 소설 맞나 싶을 정도로,, 블랑카님 리뷰는 잔잔하고 이쁘네요.

blanca 2011-04-26 22:02   좋아요 0 | URL
이거 완전 재미나요! 마녀고양이님, 강추합니다. 책 자체도 넘 이쁘고요.

노이에자이트 2011-04-26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빌의 소설은 거의 대부분 바다가 배경인데 이 소설은 도심 한복판이라서 특이하죠.제가 좋아하는 소설이기도 합니다.가끔은 바틀비 같은 사람과 한 사무실에서 일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볼 때도 있어요.물론 사연을 알고 보면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지만...

blanca 2011-04-26 22:03   좋아요 0 | URL
노자님, 멜빌 다시 봤어요. 저도 완전 좋아하기로 했어요. 멜빌 소설 다른 거 추천해 주실 거 있나요? 백경 말구요.

노이에자이트 2011-04-27 16:05   좋아요 0 | URL
'바틀비'같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편이죠.
중편 정도의 분량으로 <빌리버드>를 권합니다.멜빌의 특기인 해양소설이죠.조직을 위해 부하를 희생시키는 것이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지 고민해볼 기회가 될 겁니다.군대조직에 대해 생각할 기회도 되구요.

2011-04-27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7 2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의 우주 - 세기의 책벌레들이 펼치는 책과 책이 아닌 모든 것들에 대한 대화
움베르토 에코.장필리프 드 토낙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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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 틈에 끼여 앉아 얘기를 들으며 까무룩 조는 풍경은 언제나 그립다. 나는 발언권이 없고 발언을 해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해도 괜찮다. 아니, 차라미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으면 좋겠다. 그저 배경처럼 그렇게 앉아 밤새도록 흘러나오는 그 수다의 물결에 몸을 싣고 졸다 깨다 하는 게 좋다. 하지만 이제는 불가능한 꿈 같은 얘기다. 나는 너무 커버렸고 그런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모든 얘기를, 특히나 책에 대한 얘기를 해 줄 어른들은 이제 없다. 

그런데 그 꿈이 간접적으로나마 이루어졌다. 이 책을 통해. 여든 언저리의 탐서가이자 고서 수집가인 기호학자, 시나리오 작가 두 사람이 만났다. 스스럼없이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뻔뻔스러운 장수를 누리면서 무언가를 온전히 총기있게 이해할 수 있다고 얘기하면 안된다고 그건 사기에 가까운 일이라고 용기있게 고백한다.  

움베르트 에코와 장클로드 카리에르의 책의 우주에 대한 도발적이고 때로 저돌적인 대담. 서로의 발언에 대한 의례적인 호응이나 상찬은 없다. 일관된 주제를 논리적으로 관통하는 현학적인 자기 과시들도 없다. 재미있는 일화를 서로 들려주겠다고 하며 버젓이 삼천포로 미끄러져주는 센스들을 과시하시기도 한다.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며 지루한 드라마를 보거나 영양가 없는 남 얘기를 듣는 것도 가능하다. 책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지만 책의 눈을 통해 문명 전체를 재탐색 해보려는 신선한 시도. 사라진 책들, 잊혀진 책들, 읽을 수 없는 책들에 대한 얘기. 현대의 기계문명 앞에서의 책의 미래에 대한 난장토론. 애서가들이 솔깃해 할 모든 이야기들이 실타래처럼 풀려 나온다. 귀여운 할아버지들의 자기 자랑도,대화를 선점하기 위한 은근한 알력 다툼도 구경할 수 있다. 

   
 

 인간은 진실로 굉장한 존재죠. 그는 불을 발견했고, 도시들을 세웠고, 눈부신 시들을 썼고, 세계에 대한 해석들을 행했으며, 신화적인 이미지들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동류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고, 오류를 범했고, 또 자신의 환경을 파괴해 왔지요. 이 드높은 지적 미덕과 한심한 짓거리를 서로 견주어 보면 거의 비등비등하다고 할 수 있어요.
-p.243

 
   

 

에코의 인간관이다. 에코는 일관되게 자신은 오류와 허위의식과 어리석음에 매혹된다고 고백한다. 그러니 그러한 인간이 써 낸 무수한 책들도 인간의 어리석음의 양 만큼이나 허점 투성이다. 책에 끌리는 것은 지적 미덕과 인간의 현명함에만 상관되는 얘기가 아님이 드러난다. 무수한 오류들만큼 우리는 무수한 오류들의 언어화에 자석처럼 끌려간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불탄 것은 어쩌면 다행한 일처럼 얘기된다. 사라지고 없어진 것들이 반드시 아름답고 가치있는 것들로 미화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자, 그렇다면 책에 대한 애착들을 우리의 그 '몹쓸' 성향, 하나의 고독한 비행이라 명명한 이 두 명사들의 서재는 어떤 책들로 채워져 있을까? 서재는 반드시 우리가 읽은 책들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책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카리에르의 자기 합리화와,자신은 쓰느라 읽을 시간이 없다는 에코의 변명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읽지도 않을 책들을 사대는 것을 좀 덜 미안하게 만든다.  

아직도 구텐베르크의 성경의 최초 인쇄본을 찾아 고서점들과 벼룩시장을 방황하는 에코와 커다란 공공도서관 책상 위의 종모양의 녹색 빛에 매혹된다는 카리에르의 얘기들. 어른의 얘기를 숨어듣는 아이의 마음은 항상 알 수 없는 든든하고 안온한 느낌과 조금더 현명해지고 있다는 착각어린 생각으로 충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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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4-25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의 매혹적인 리뷰에 열심히 저항 중입니다.
안 그래도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사서, 고히 쟁여두는 중인데, 다른 책이야기를 하는 책이라니!

아, 떠들석하고 열정적인 공간에서 혼자 까무룩하니 졸아버리는 것, 그것도 매력적이군요! ^^

blanca 2011-04-25 21:58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이 책 재미있더라구요. 책 자체도 참 귀엽고 이뻐요. 저한테는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이라는 책이 있어요. 이 책도 괜찮더라구요.

비로그인 2011-04-25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어르신과 제대로 통하셨군요ㅋㅋ 저는 책보다 '종 모양의 녹색빛'이 끌리는데요. 구경해보고 싶네요^^

blanca 2011-04-25 21:59   좋아요 0 | URL
저도요. 한 번 꼭 가보고 싶어요. 두 어르신 ㅋㅋㅋ. 예전에는 노인들이 저와 무관한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저의 미래라는 게 확 와 닿습니다.

sslmo 2011-04-25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에코가 항상 어려웠어서 말이죠, 이 책도 아직 엄두를 못내고 있어요.
그래도 대담집이어서 좀 나으려나요?^^

어른들 틈에 끼어 앉아 얘기를 들으며 까무룩 조는 풍경, 어렸을때 할아버지 할머니랑 돌아다닌 제 전매특허였는데 말이죠~^^


blanca 2011-04-25 21:59   좋아요 0 | URL
양철댁님, 저도 에코 책은 이게 처음이랍니다.--;; 영화나 봤을까요. 안 어려워요. 정말 할아버지들이 정겹게 수다를 떠시더라구요^^

잘잘라 2011-04-25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단락이, 읽으면서 저절로 그림이 그려지는게, 만약 그림으로 리뷰를 쓴다면 보탤것도 뺄것도 없이 그대로 아름다운 작품이 될것 같아요. ^ ^

blanca 2011-04-25 22:00   좋아요 0 | URL
메리포신스님, 지금도 저는 그 풍경이 너무 그리워요. 정말로. 이제는 무언가를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자리들밖에 없으니 때로 서글퍼집니다.
 

너는 사는 게 재밌냐? 

냉장고에서 썩기 직전의 무로도 시원한 뭇국을 끓일 수 있는 엄마는 갑자기 재우쳐 묻는다. 

나 : 엄마, 난 지금 사는 게 재미있는지 물을 수 있는 여유도 없어. 당장 한 시간 뒤에 사랑니를 빼야 하고 그곳에 완전 초보인 내가 운전을 해서 가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아.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생략했다. 비는 내리고. 나는 와이퍼 작동법을 모른다. 물론 만져보면 기억은 나겠지만 헤드라이터를 켜 본 적도 없다. 병원은 걸어서 이십 분, 대중교통은 없다. 나는 완전 초보 운전에 감각도 제로다. 게다가 사랑니를 뽑으러 가야 하는데 너무 심한 감기에 걸려 코는 꽉 막혀 있다.  

나 : 이를 뽑고 운전해서 올 수 있을까? 

엄마 :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정말 반가웠다. 나는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얻었다. 대체 운전을 해서 가야하는 부담감 때문인지 아니면 발치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감기 때문인지 지금 이 순간은 사는 게 재미없는 정도가 아니라 참혹하게 느껴진다. 

우산을 받치고 타박 타박 걸어갔다. 봄비가 으슬으슬하다. 벚꽃은 비 사이로 막 날린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심정이다. 아이도 낳아 봤는데. 왜 갈수록 더 대범해지는 것이 아니라 무서운 것들의 목록만 늘려 가는 것인지. 치과 대기실에 손님들이 즐비하다. 왠지 다들 반갑다. 휑했다면 더 떨렸을 것 같다. 기다리라는 간호사의 말이 정겹다. 그러나 너무 빨리 내 이름은 호명된다. 아주 젊은 의사다. 정말 물어보고 싶었다. 많이 아픈지. 그래서 아줌마는 물었다. 

저.... 저 많이 아픈가요?
 

마취할 때만 따끔하고 그리 아프진 않을 겁니다.
의사는 기분이 좋다. 대체로 친절하다. 그 이유는 후에 나온다.
마취. 이 마취부터가 충치치료 마취와 차원이 다르다고 웬수들은 겁을 줬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안 아프다. 아, 제발 빨리.
마취가 안 되면 어떡하지? 라고 자문하는 순간 통증이 온다.
이빨을 뽑는 느낌이 온다.
순간이다. 생각보다 안 아팠다.
그러나 거즈를 문 순간 구역질이 나온다.
의사가 당황한다.
왜 그러시죠?
저 이 거 못 물고 있겠는데 빼면 안 될까요?
안도하다 그럼 지혈이 안 된다고 한장 만이라도 물란다. 

간호사가 안내해 준다.
아주 이쁘다. ㅋㅋ
거즈를 물고 마취가 깰 그 순간을 고대하며 
타박타박 또 걸어온다.
순대를 샀다. 집에 와서 왼편에 거즈를 물고 오른편으로 순대를 씹었다.
자신감이 생긴다. 하나 더 뽑을 수 있을 것 같다.
갑자기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누구나 제 손톱의 거스러미가 제일 아픈 법.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난 너무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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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4-19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앓던 이 뽑은 기분, 이란 말이 절로 생각나고
제 마음이 다 홀가분해집니다. ㅎㅎ

blanca 2011-04-19 21:20   좋아요 0 | URL
아, 안그래도 오늘 딱 그 생각했어요. 옛말은 그른 것이 없더라구요. 너무 신기하더라구요. 앓던 이 뽑은 기분^^

감은빛 2011-04-19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이를 뽑았군요.
생각보다 견딜만 하셨다니, 다행입니다!

blanca 2011-04-19 21:21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정말 견딜만 하더라구요. 사실 예약하고나서 뽑기 전까지가 어찌나 후달리던지. 그냥 한 번씩 우울해지더라구요. 아, 맞지, 사랑니 뽑아야지-- 하면서요 ㅋㅋ

sslmo 2011-04-19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면 내시경 하고 용감무쌍하게 운전했던 거 생각나네요.
뭇국의 시원함을 알 수 있는 정도라면, 사는게 재밌다에 한표요~^^

blanca 2011-04-19 21:21   좋아요 0 | URL
양철댁님, 그러니까 저는 어떻게든 운전대를 안 잡을 구실을 찾는 거였어요 ㅋㅋㅋ 자신이 없으니까요.

후애(厚愛) 2011-04-19 0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적에 할머니가 썩은 이빨를 실로 묻고 방문 밖에서 실을 잡아 댕겨서 이를 뽑아 주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 때 정말 많이 아팠어요.ㅜㅜ

blanca 2011-04-19 21:22   좋아요 0 | URL
후애님! 저도 그랬어요. 아랫니 두 개. 지금도 그 생각 나요. 할머니가 이쁘게 뽑아 주셔서 그런지 아랫니만 고르게 나왔답니다.^^

비로그인 2011-04-19 0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블랑카님, 다소 몸을 떨며 읽었는데, 뽑으셨군요! 해내셨어요! 얼마나 스스로가 대견할까요! 전 소시적 MRI를 자주 찍은 적이 있는데(대체 이런 건 왜 자주 찍고 난리), MRI를 찍고나서, 그리고 열 몇 시간의 비행을 하고 나서는 제가 진정 대견했더랬어요. 괴롭고 힘들고 끔찍한 일들의 리스트 내에서도 상위에 근접한 그것들을 해냈다는 느낌이었는데, 오늘 블랑카 님의 페이퍼는 그런 목록들의 총체를 보여주시는군요.

그러한 단순함이 좋다가, 어느 순간 늪에 빠질까봐 공무도하가의 백수광부 아내의 마음이 되기도 하지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라고 말하는 그 아내.

blanca 2011-04-19 21:23   좋아요 0 | URL
쥬드님, MRI를 찍으셨었군요. 사랑니 뽑는 거야 엄살이지요. 요새 나이가 들수록 몸이 아픈 게 너무 싫더라구요. 예전에는 잘 견뎠는데.. 그래서 사람이 결국 아파 죽을 것이라는 사실도 너무 무섭고 슬퍼요. 때로 단순해서 견딜 수 있는 것들도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사랑니 뽑는 문제에 집착하니 더 난해하고 풀기 힘든 문제들은 수면 밑에 가라앉더라구요.

프레이야 2011-04-19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휴 고생하셨어요.
근데 왜이케 귀여운 거에요.ㅎㅎ
사랑니를 전 26년 전에 뽑았어요. 지금도 치과는 제일 끔찍한데ㅠ

blanca 2011-04-19 21:24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저도 정말 치과가 제일 무서워요. 과장 안 보태서 아이 낳으러 들어갈 때도 이렇게 떨리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실제 출산시보다 더 고생했다는 얘기도 들어서요. 이십 대에 사랑니를 다 뽑아 버리지 않은 걸 정말 후회합니다.^^;;

2011-04-19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19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붉은구름 2011-04-19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어금니를 손대고 있답니다.. 남 일이 아니네요...ㅋ

blanca 2011-04-19 21:27   좋아요 0 | URL
와우, 안녕하세요. 사진이 너무 귀여우시네요^^ 제 고통을 십분 공감하시겠네요. 이제 신경치료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새는 강박적으로 양치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건강할 때 잘 관리해야 하는 것 같아요. 아름다운마무리님도 어금니 치료 무사히 잘 마치세요.

꿈꾸는섬 2011-04-19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비 맞으며 걷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전 오늘 화창한 거리를 걸었지만요.^^
아이 낳는 것에 비하면 뭐가 무서워..라고 말하지만 전 아직도 주사바늘이 엄청나게 무서워요.ㅎㅎ
운전은 하면 할수록 느는 것 같아요.^^ 주차도 마찬가지구요.^^ 힘내세요.^^

blanca 2011-04-20 22:11   좋아요 0 | URL
그죠, 저는 아이 낳고 나면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줄 알았는데 더 소심하게 되어가네요. 아, 조금씩 느는 것 같긴 한데 여전히 떨리네요.

순오기 2011-04-20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를 빼는 것보다 공포감이 더 무서운데, 다행히 순조롭게 진행됐군요. 고생하셨어요~ ^^
근데 이를 빼고 오면서 순대를 사와서 바로 먹어도 괜찮은가요?

blanca 2011-04-20 22:11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안 되는 줄 알면서 속이 허해서 먹었어요^^;; 제가 또 순대 킬러랍니다.

2011-04-21 0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1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4-23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그러니까 말이죠, 지금 초보로서 차를 운전 가능하다고 하시는거죠?
어쩜 좋아, 흑....... 나두 해야 하는뎅! 아 부러워!

그리고 사랑니를 한방에 뽑았다 하시는거죠? 으, 이것 역시 부러워 미치겠네! 흑흑.

blanca 2011-04-25 11:07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동네 반경 오킬로 내외예요. 그리고 주차시 민폐를 끼칩니다. 사랑니도 매복된 아래 어금니가 대기중이랍니다. 윗니 뽑고 뽑았다고 얘기하기도 그래요^^;;

노이에자이트 2011-04-24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기나 생선을 자주 안 먹는데 일단 먹었다 하면 웬만한 뼈나 가시는 다 씹어먹습니다.쓰레기가 거의 안 나올 정도.거의 맹수이빨 수준이죠.치통 없는 것도 복이라고 하더군요.

blanca 2011-04-25 11:07   좋아요 0 | URL
노자님 ㅋㅋㅋ 그럼요. 튼튼한 치아는 오복 중 하나인 걸요. 맹수이빨 수준이시라니 좀 섬뜩합니다.^^;;

비로그인 2011-04-24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전, 사랑니, 사진, 바이올린..

점점 진행중이신가 봅니다. ^^
좀 있으면 골목 사진이랑, 바욜린 연습기가 등장하겠네요. 헙 기대하겠습니다. ㅋ

blanca 2011-04-25 11:08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바이올린은 아직 여유가 안 나네요. 여러가지로요. 일단 민폐 수준이 운전 실력을 좀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 같아요. 적어도 타인에 피해를 주면 안 되니까요. 사랑니는 하나만 뽑고 나머지는 아껴 두기로 했어요^^;;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 미국 인디언 멸망사
디 브라운 지음, 최준석 옮김 / 한겨레출판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죽는다'는 것은 익명으로 귀환하는 것이다. 누구나 살아 생전에는 더없는 개별성과 특수성에 끄달리지만 '우리'는 결국 이름을, 지금의 이 절절한 순간들을, 잃을 것임을 가끔은 떠올릴 수 있다. '나'는 '우리'가 되고 결국 '그들' 속에 묻히고 만다.  

역사가 결국 승자의 기록이고 문학은 그 기록의 뒤안길에 매몰된 무수한 익명의 '그들'을 복원해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음을 때로 상기한다. 하지만 결국 픽션은 삶의 진실성과 진정성을 담보한다고 해도 팩트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당연히 그랬을 테고 그랬음직한 일들이지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정말 그랬었지만 감히 말하여질 수 없었던 것들, 언젠가는 꼭 말해져야 할 것들이 눈 앞에 펼쳐질 때 삶은 참 남루하고 구차하고도 면면히 이어지는구나 싶다. 결국 또 묵묵히 살아나가겠지만 그래도 순간 또 정지하게 된다. 인간은 아름다운, 가치있는 존재일까? 생은 긍정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중략> 내 피부는 붉지만 심장은 백인과 똑같다. ...

인생이란 다만 잠시 동안만 자기 것일 뿐이다. 당신네 백인들은 나를 정복하지 못했다. 나를 꺾은 것은 내 부족민이다. -캡틴 잭(모도크족) 

 
   

 

1860년 이후 30년 간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역사는 굉장히 호기롭고 도전적이면서도 다이나믹한 것으로 그려진다. 웨스턴 무비들의 단골 배경으로도 자주 등장하는 그 시간들이 사실은 백인들이 정작 그 땅의 주인들이었던 인디언들을 마구잡이로 몰아내고 학살하고 문명과 문화를 짓밟았던 잔혹 행위들로 점철되었었다는 얘기는 공식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이 책이 썩 기분 좋은 책이 아니라는 저자 디 브라운의 고백은 끊임없이 조약과 약속을 남발하며 인디언들의 땅과 삶을 수탈했던 미국인들 자신들에게 던지는 하나의 참회일지도 모른다. 디 브라운은 인디언들의 구전 역사의 자료를 가지고 최대한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의 인디언들의 처연하고도 가슴 저미는 투쟁사와 멸족사를 일구어 냈다.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이라며 결국 모든 인디언들이 자멸하고 그들의 기름진 광활한 땅을 차지하기를 바랐던 그 탐욕스럽고 비열한 욕망 앞에서도 끊임없이 속아주고 믿어주고 화해하기를 바랐던 인디언들의 그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하는 경이로운 신뢰들은 가슴을 저릿하게 한다. 이 둘을 모두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이 인간들의 삶일 수도 있겠다. 인디언 멸망사는 우리 내면에 묻어버린 아름답고 투명한 것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와 지지의 추억들을 복원해 내는 것이기도 하다.  

대지와 공동의 척도를 지녔던 인디언들은 그저 자신들의 땅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일하고 살기를 바랐을 따름이다. 그 자연스러운 본능과 소망을 억압하고 기만했던 백인 이주자들 앞에서 그들도 점차 낙망하고 불신하고 응전을 다짐하게 된다. 인디언령이라는 허울좋은 명분아래 인디언들을 지배하고 통제하고 가두려했던 저의는 점차 인디언을 동등한 인격체와 생명이 아닌 하나의 부속물이자 성가신 이방인 정도로 여기고 생사여탈권까지 틀어쥐었다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군들은 그들이 정해 준 주거지역에서 이탈하는 경우 여자, 아이, 노인들을 가리지 않고 살상을 일삼았다. 나바호족, 샤이엔족, 아라파오족, 수우족, 크로우족, 유트족 등은 죽어 모두 좋은 인디언이 되었다. 멸족의 위기에 선 인디언들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망령의 춤'을 추며 죽은 인디언들이 모두 돌아와 그 옛날의 좋은 시절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주문은 눈물겹다.  

   
 

그 당시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이 끝장났는지 모르고 있었다. 이제 나이들어 높은 언덕에 올라 돌아보니 학살당한 여인네들과 아이들의 시체가 굽이도는 계곡을 따라 겹겹이 쌓이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게 보인다. 나는 또 한 가지, 그 피 묻은 눈보라 속에 죽어 묻혀 있는 걸 본다. 한 민족의 꿈이 거기 죽어 있다. 그건 아름다운 꿈이었다. <중략>
- 검은사슴 

 
   

모든 강하고 단단한 것들이 작고 여린 것들을 누를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는 결국 끝나고야 말 것이다. 내 안의 나마저도 그렇다. 아름다운 꿈은 결국 돌아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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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4-18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부터 한번쯤 꼭 정독하고 싶은, 제 마음 속의 리스트에 올라가 있는 책 중 하나예요. 사두고 분명히 안 읽은 채로 둘 것같아 미미적거리다가 보니 어느새 개정판이 나왔네요. 잘 읽었어요, blanca님.

blanca 2011-04-19 21:27   좋아요 0 | URL
브론테님 저도 분량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집어들었어요. 천천히 조금씩 읽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참 처연한 책이랍니다.

비로그인 2011-04-18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땅을 사고 파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인디언.
백인이 어느날 들어와 마음대로 선을 긋고 그들의 그어 놓은 선 밖의 음지로, 음지로 흘러야 했던 그들의 역사가 생각납니다.

그러면서 또 생각나는 것은 땅에게 빌려 쓰고 다시 땅으로 되돌려 주는 그런 것들에서 왜 점점 멀어지는 것일까 하는 것인데요. 이제는 산도, 강도, 땅도 삶에서 점점 멀어져만 가네요.

blanca 2011-04-19 21:28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저는 그 순정함과 순진함이 참 슬프게 느껴지더라구요. 속고 또 속고 믿고 또 믿고. 인간이 자연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벌어질 비극이 이미 현재진행형이잖아요.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부터도요.

sslmo 2011-04-19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옛날에 한번 읽었었어요.
나이가 들면서 같은 팩트를 바라보고도 다르게 해석하게 되는거 같아요.
무뎌지는 걸 테지만, 부드러워진다고 생각하고 싶어요~^^

blanca 2011-04-19 21:30   좋아요 0 | URL
양철댁님 이미 읽으셨군요. 저는 개정판이 나오면서 처음 알게 되었어요. 그럼요. 어느 드라마에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상황이 있는 거라는 얘기가 정말 요새는 동감 가더라구요. 무뎌지는 것도 성숙의 일환인 것 같아요.

레와 2011-04-19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탈자들이 붙여준 '인디언'이라는 이름말고, 그들은 자신들을 뭐라고 불렀을지 궁금해요.

더 늦기전에 읽어볼게요. :)

blanca 2011-04-19 21:31   좋아요 0 | URL
아, 레와님! 제가 그 얘기는 적지 않았는데 정말 이름들이 눈부시더라구요. 예전에 '늑대와 함께 춤을'처럼 정말 아름다운 자신들 만의 작명법으로 서로를 부르는 대목들이 참 인상적이랍니다.

북극곰 2011-04-19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성각님 책에서 보고 읽으려고 적어뒀던 책리스트에 있던 책이에요. 절판이었던걸로 알고 있었는데 ^^ 잘읽고 갑니다.

blanca 2011-04-19 21:31   좋아요 0 | URL
북극곰님 아기가 참 사랑스러워요. 예, 안그래도 개정판이 나와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절판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