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사는 게 재밌냐? 

냉장고에서 썩기 직전의 무로도 시원한 뭇국을 끓일 수 있는 엄마는 갑자기 재우쳐 묻는다. 

나 : 엄마, 난 지금 사는 게 재미있는지 물을 수 있는 여유도 없어. 당장 한 시간 뒤에 사랑니를 빼야 하고 그곳에 완전 초보인 내가 운전을 해서 가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아.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생략했다. 비는 내리고. 나는 와이퍼 작동법을 모른다. 물론 만져보면 기억은 나겠지만 헤드라이터를 켜 본 적도 없다. 병원은 걸어서 이십 분, 대중교통은 없다. 나는 완전 초보 운전에 감각도 제로다. 게다가 사랑니를 뽑으러 가야 하는데 너무 심한 감기에 걸려 코는 꽉 막혀 있다.  

나 : 이를 뽑고 운전해서 올 수 있을까? 

엄마 :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정말 반가웠다. 나는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얻었다. 대체 운전을 해서 가야하는 부담감 때문인지 아니면 발치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감기 때문인지 지금 이 순간은 사는 게 재미없는 정도가 아니라 참혹하게 느껴진다. 

우산을 받치고 타박 타박 걸어갔다. 봄비가 으슬으슬하다. 벚꽃은 비 사이로 막 날린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심정이다. 아이도 낳아 봤는데. 왜 갈수록 더 대범해지는 것이 아니라 무서운 것들의 목록만 늘려 가는 것인지. 치과 대기실에 손님들이 즐비하다. 왠지 다들 반갑다. 휑했다면 더 떨렸을 것 같다. 기다리라는 간호사의 말이 정겹다. 그러나 너무 빨리 내 이름은 호명된다. 아주 젊은 의사다. 정말 물어보고 싶었다. 많이 아픈지. 그래서 아줌마는 물었다. 

저.... 저 많이 아픈가요?
 

마취할 때만 따끔하고 그리 아프진 않을 겁니다.
의사는 기분이 좋다. 대체로 친절하다. 그 이유는 후에 나온다.
마취. 이 마취부터가 충치치료 마취와 차원이 다르다고 웬수들은 겁을 줬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안 아프다. 아, 제발 빨리.
마취가 안 되면 어떡하지? 라고 자문하는 순간 통증이 온다.
이빨을 뽑는 느낌이 온다.
순간이다. 생각보다 안 아팠다.
그러나 거즈를 문 순간 구역질이 나온다.
의사가 당황한다.
왜 그러시죠?
저 이 거 못 물고 있겠는데 빼면 안 될까요?
안도하다 그럼 지혈이 안 된다고 한장 만이라도 물란다. 

간호사가 안내해 준다.
아주 이쁘다. ㅋㅋ
거즈를 물고 마취가 깰 그 순간을 고대하며 
타박타박 또 걸어온다.
순대를 샀다. 집에 와서 왼편에 거즈를 물고 오른편으로 순대를 씹었다.
자신감이 생긴다. 하나 더 뽑을 수 있을 것 같다.
갑자기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누구나 제 손톱의 거스러미가 제일 아픈 법.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난 너무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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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4-19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앓던 이 뽑은 기분, 이란 말이 절로 생각나고
제 마음이 다 홀가분해집니다. ㅎㅎ

blanca 2011-04-19 21:20   좋아요 0 | URL
아, 안그래도 오늘 딱 그 생각했어요. 옛말은 그른 것이 없더라구요. 너무 신기하더라구요. 앓던 이 뽑은 기분^^

감은빛 2011-04-19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이를 뽑았군요.
생각보다 견딜만 하셨다니, 다행입니다!

blanca 2011-04-19 21:21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정말 견딜만 하더라구요. 사실 예약하고나서 뽑기 전까지가 어찌나 후달리던지. 그냥 한 번씩 우울해지더라구요. 아, 맞지, 사랑니 뽑아야지-- 하면서요 ㅋㅋ

sslmo 2011-04-19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면 내시경 하고 용감무쌍하게 운전했던 거 생각나네요.
뭇국의 시원함을 알 수 있는 정도라면, 사는게 재밌다에 한표요~^^

blanca 2011-04-19 21:21   좋아요 0 | URL
양철댁님, 그러니까 저는 어떻게든 운전대를 안 잡을 구실을 찾는 거였어요 ㅋㅋㅋ 자신이 없으니까요.

후애(厚愛) 2011-04-19 0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적에 할머니가 썩은 이빨를 실로 묻고 방문 밖에서 실을 잡아 댕겨서 이를 뽑아 주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 때 정말 많이 아팠어요.ㅜㅜ

blanca 2011-04-19 21:22   좋아요 0 | URL
후애님! 저도 그랬어요. 아랫니 두 개. 지금도 그 생각 나요. 할머니가 이쁘게 뽑아 주셔서 그런지 아랫니만 고르게 나왔답니다.^^

비로그인 2011-04-19 0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블랑카님, 다소 몸을 떨며 읽었는데, 뽑으셨군요! 해내셨어요! 얼마나 스스로가 대견할까요! 전 소시적 MRI를 자주 찍은 적이 있는데(대체 이런 건 왜 자주 찍고 난리), MRI를 찍고나서, 그리고 열 몇 시간의 비행을 하고 나서는 제가 진정 대견했더랬어요. 괴롭고 힘들고 끔찍한 일들의 리스트 내에서도 상위에 근접한 그것들을 해냈다는 느낌이었는데, 오늘 블랑카 님의 페이퍼는 그런 목록들의 총체를 보여주시는군요.

그러한 단순함이 좋다가, 어느 순간 늪에 빠질까봐 공무도하가의 백수광부 아내의 마음이 되기도 하지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라고 말하는 그 아내.

blanca 2011-04-19 21:23   좋아요 0 | URL
쥬드님, MRI를 찍으셨었군요. 사랑니 뽑는 거야 엄살이지요. 요새 나이가 들수록 몸이 아픈 게 너무 싫더라구요. 예전에는 잘 견뎠는데.. 그래서 사람이 결국 아파 죽을 것이라는 사실도 너무 무섭고 슬퍼요. 때로 단순해서 견딜 수 있는 것들도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사랑니 뽑는 문제에 집착하니 더 난해하고 풀기 힘든 문제들은 수면 밑에 가라앉더라구요.

프레이야 2011-04-19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휴 고생하셨어요.
근데 왜이케 귀여운 거에요.ㅎㅎ
사랑니를 전 26년 전에 뽑았어요. 지금도 치과는 제일 끔찍한데ㅠ

blanca 2011-04-19 21:24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저도 정말 치과가 제일 무서워요. 과장 안 보태서 아이 낳으러 들어갈 때도 이렇게 떨리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실제 출산시보다 더 고생했다는 얘기도 들어서요. 이십 대에 사랑니를 다 뽑아 버리지 않은 걸 정말 후회합니다.^^;;

2011-04-19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19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붉은구름 2011-04-19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어금니를 손대고 있답니다.. 남 일이 아니네요...ㅋ

blanca 2011-04-19 21:27   좋아요 0 | URL
와우, 안녕하세요. 사진이 너무 귀여우시네요^^ 제 고통을 십분 공감하시겠네요. 이제 신경치료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새는 강박적으로 양치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건강할 때 잘 관리해야 하는 것 같아요. 아름다운마무리님도 어금니 치료 무사히 잘 마치세요.

꿈꾸는섬 2011-04-19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비 맞으며 걷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전 오늘 화창한 거리를 걸었지만요.^^
아이 낳는 것에 비하면 뭐가 무서워..라고 말하지만 전 아직도 주사바늘이 엄청나게 무서워요.ㅎㅎ
운전은 하면 할수록 느는 것 같아요.^^ 주차도 마찬가지구요.^^ 힘내세요.^^

blanca 2011-04-20 22:11   좋아요 0 | URL
그죠, 저는 아이 낳고 나면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줄 알았는데 더 소심하게 되어가네요. 아, 조금씩 느는 것 같긴 한데 여전히 떨리네요.

순오기 2011-04-20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를 빼는 것보다 공포감이 더 무서운데, 다행히 순조롭게 진행됐군요. 고생하셨어요~ ^^
근데 이를 빼고 오면서 순대를 사와서 바로 먹어도 괜찮은가요?

blanca 2011-04-20 22:11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안 되는 줄 알면서 속이 허해서 먹었어요^^;; 제가 또 순대 킬러랍니다.

2011-04-21 0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1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4-23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그러니까 말이죠, 지금 초보로서 차를 운전 가능하다고 하시는거죠?
어쩜 좋아, 흑....... 나두 해야 하는뎅! 아 부러워!

그리고 사랑니를 한방에 뽑았다 하시는거죠? 으, 이것 역시 부러워 미치겠네! 흑흑.

blanca 2011-04-25 11:07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동네 반경 오킬로 내외예요. 그리고 주차시 민폐를 끼칩니다. 사랑니도 매복된 아래 어금니가 대기중이랍니다. 윗니 뽑고 뽑았다고 얘기하기도 그래요^^;;

노이에자이트 2011-04-24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기나 생선을 자주 안 먹는데 일단 먹었다 하면 웬만한 뼈나 가시는 다 씹어먹습니다.쓰레기가 거의 안 나올 정도.거의 맹수이빨 수준이죠.치통 없는 것도 복이라고 하더군요.

blanca 2011-04-25 11:07   좋아요 0 | URL
노자님 ㅋㅋㅋ 그럼요. 튼튼한 치아는 오복 중 하나인 걸요. 맹수이빨 수준이시라니 좀 섬뜩합니다.^^;;

비로그인 2011-04-24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전, 사랑니, 사진, 바이올린..

점점 진행중이신가 봅니다. ^^
좀 있으면 골목 사진이랑, 바욜린 연습기가 등장하겠네요. 헙 기대하겠습니다. ㅋ

blanca 2011-04-25 11:08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바이올린은 아직 여유가 안 나네요. 여러가지로요. 일단 민폐 수준이 운전 실력을 좀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 같아요. 적어도 타인에 피해를 주면 안 되니까요. 사랑니는 하나만 뽑고 나머지는 아껴 두기로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