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든파티 (반양장) 펭귄클래식 79
캐서린 맨스필드 지음, 한은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집 근처 백화점 옥상에는 간이 테라스가 있다. 탁 트인 시야로 뽀송뽀송한 구름이 잡힐 듯하고 푸른 하늘이 마치 바다처럼 너울거린다. 그런데 고개를 조금만 숙이면 재개발을 기다리는 노후화된 작은 집들과 잿빛 담들이 다닥다닥 붙어 왠지 조금 서럽게 나를 올려다 본다. 마치 삶 같다. 아름답고 희망찬 것들만 보고 살 수는 없다. 발을 디딜 땅에, 누일 집 한 칸에, 입어야 할 옷과 먹고 마셔야 할 것들을 끊임없이 그러 모아야 살아 낼 수가 있다.  그건 '나'의 얘기이기도 하고 '당신'의 얘기이기도 하니 우리의 얘기도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집으로 오는 가파른 경사로의 가장 아래쪽에 그 작은 초가집들이 모여 있었다. 초가집들과 그들의 집 사이로 큰 도로가 나 있기는 해도 사실 거리는 가까웠다. 초가집들은 무엇보다 눈엣가시였고 그 자리를 차지할 권리가 전혀 없었다. 초콜릿 빛 갈색으로 페인트가 칠해진 자그마하고 초라한 집들이었고, 손바닥만 한 텃밭에는 양배추 줄기와 병든 암탉, 토마토 깡통만 뒹굴었다. 누더기 조각 같은 연기는 셰리던 가의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은빛 구름 같은 연기와 차원이 달랐다. 그 거리에는 세탁하는 여인들과 청소부, 구두장이 등이 살았다.
-p.103 <가든파티> 중


더할 나위 없는 날씨에 수백 송이의 만개한 장미꽃 속에서 가든파티를 열게 된 셰리던 가에는 그 초가집들 중 한 곳에 사는 사내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다섯 아이와 아내를 남겨 놓고 죽게 된 소식이 전해진다. 이에 셰리던 가의 딸 로라는 가든파티를 즐기는 것에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꺼림칙함을 가지게 된다. 로라가 파티에서 남은 음식들을 바구니에 담아 그 집을 방문하게 되는 이야기가 <가든파티>의 사연이다. 로라는 자신의 화려한 모자에 대해 그 초라한 집의 유족들에게 사과한다. 이것은 마치 이렇게 풍족하게 사는 것이 미안하다,는 얘기로 들린다. 죽음과 가난을 지척에서 목도하게 되는 부잣집의 철없는 아가씨의 모습은 성장의 관문을 그녀가 통과하여 이제 그녀가 진짜 삶을 살게 되는 모습을 엿보게 되는 것과 같다. 이제 그녀는 더이상 누더기 조각 같은 연기를 외면하고 셰리던 가의 거대한 은빛 구름 같은 연기를 생각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녀는 말을 멈추고 오빠를 바라보았다.
"인생이, 인생이......"
그녀가 더듬었다. 하지만 인생이 어떤 것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로리는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p.114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우리의 진정한 실재는 모든 생명을 동일시하고 통합하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얘기한다. 여기에 진실이 있다고 덧붙인다. <가든파티>는 호사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날카로운 진실에 대한 성찰이 지나간 자리에 이 짧은 이야기의 중량감이 느껴진다. 생애 마지막 책을 남겨 놓고 요절한 작가에게 깨달음은 한꺼번에 달려왔었나 보다. 우리는 그 깨달음들과 섬세하고 아름다운 묘사들을 그저 손을 뻗어 잡기만 하면 된다.  

보기드문 아름답고 가볍지 않은 단편집.
청량한 푸른 하늘과 판자촌의 어딘가쯤에 아직도 작가의 시선은 머물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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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9-26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이 읽으신 맨스필드 단편집, 저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아직까지 안 읽어봤어요.
한동안 외면하고 있었는데 등교하는 버스 안에서 읽어봐야겠습니다. ^^

blanca 2011-09-27 10:51   좋아요 0 | URL
cyrus님 갖고 계시다면 이 좋은 날씨에 꼭 시도해 보세요. 묘사력이 아주 탁월한 작가랍니다. 시인 같아요.

비로그인 2011-09-26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이야기였네요. 거대한 은빛 구름만 보고 사는 사람들이 누더기 조각 같은 연기를 볼 수 있으면 정말 좋을텐데요. 이건 저한테도 해당하는 이야기 같아요. 글 잘 읽었어요 :)

blanca 2011-09-27 10:52   좋아요 0 | URL
예, 젊은 여류작가가 그냥 예쁘기만 한 얘기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참혹한 진실에 대한 얘기를 가감없이 묘사해서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오늘 하늘은 아예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빛깔이네요.

비로그인 2011-09-26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제 창 너머에는 겨울 내내 구멍만 뻥 뚫려 있던 건물들이 이미 사라져 버렸답니다.

2미터나 될까 한, 길 하나를 건너 휑하니 건물들이 사라져 있는 모습이 뭔가를 떠올리게 하네요. 언젠간 이곳도 그렇게 삶이 통채로 사라지는 그런 휑한 곳이 되겠지요. ^^

blanca 2011-09-27 10:53   좋아요 0 | URL
요새는 무언가 통째로 들어내고 다시 세우는 일들이 너무 빈번한 것 같아요. 그래서 골목길이 참 소중하고 또 아련하기도 하고 그래요. 그런 것들이 반드시 필요한 일인가 의문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프레이야 2011-09-26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더기 조각 같은 구름이 아니라 이 가을 바다 수평선에 맞닿을 정도로 낮게 깔려
두둥실 흘러가는 흰구름을 보는 것도 미안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오늘 전 그런 구름을 보고 왔어요. 그래도 그런 호사쯤은 이 가을에 누려도 되겠죠.^^

blanca 2011-09-27 10:55   좋아요 1 | URL
그럼요.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 느끼는 것도 정말 중요한 일이잖아요. 프레이야님, 사시는 곳은 바다내음도 맡을 수 있고 수평선도 보실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실까요. 어린 시절 외가가 있는 부산역에 내릴 때 풍겨오던 그 바다냄새가 참 그리워요.
 

 

 

 

구름 한 점이 없어도 구름이 휘핑크림처럼 쌓여 있어도 찬연하다. 우산 밑에서 고개를 떨구어야 했던 숱한 나날들은 거짓말처럼 가버리고 절로 까치발을 하고 고개를 쳐들게 하는 하늘. 어딘가에 가두어 놓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설픈 사진과 조야한 말재간으로 가능할 성싶지 않다.  

고3, 2학기 가을 바람이 스산해지면서 입시의 중압감이 본격적으로 느껴졌다. 하늘을 감히 보지 못하고 바람만 느꼈다. 해방을 예감하게 하는 야릇한 전조가 싫지 않았다. 입사해서는 결산과 실적을 예고하는 계절. 어리버리한 신입사원은 실적보다 한번도 해보지 못한 결산업무가 자신에게 떨어지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느라 가을을 놓쳐 버렸다. 첫애를 가진 임산부는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산고에 대한 공포와 잦은 요의로 가을밤을 전전반측하며 보내느라 푸른 하늘을 등졌다. 작은 생명체가 젖을 떼고 두 발로 서고 걷고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기까지 하늘은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사계절 병풍에 그려져 있는 달, 그리고 거지 법사와 소설속 화자인 '나'의 삶은 평행하게 흐르는 듯하다 결국 겹친다. 가을 병풍, 지금의 '나'로부터 꼭 십년 전, 서른 살 때의 '나'  이미 '나'는 충분히 늙어 있다.  미루야마 겐지는 망설이지 않고 단언해 버린다.

그러나 비쩍 마른 그의 몸은 추억에 가득 차,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행복했던 나날들을 생생하게 기억해낸다.-p.61 

봄과 여름에는 가을과 겨울을 상상하지 못하지만 가을에는 겨울의 차가움을 상상할 수 있고 봄과 여름의 따스함과 설익음을 기억해 낼 수 있다. 안 좋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좋은 것 같기도 한 모호함. 나는 지금 유년을 다시 살고 있다. 아이를 먹이는 것도 재우는 것도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고민하는 것만큼 힘들지 않다. 아이와 함께 논다는 것이 영 낯설고 어색했다. 부모교육을 받다 보니 나를 놀아준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나는 내 안의 항상 심심하고 외로웠던 그 어린 '나'를 다시 아이 앞에 불러내야 할 것 같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 병풍을 두고 이루어지는 <달에 울다>의 '나'의 회고. 여기 나의 회고는 아이를 앞에 두고 이루어진다. 삼십 년 전. 이십 년 전. 십년 전.  

"잘 있어"하고 법사는 중얼거린다.
바람 소리가 마치 칼을 휘두를 때 나는 신음소리 같은 초원을 헤쳐나가며, 한 발자국씩 내디딜 때마다 "잘 있어"를 되풀이한다. 그렇게 그는 '어제'와 헤어져 간다.
-p.80 

가을은 그런 계절. '어제'와 잘 헤어져야 하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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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9-24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 하늘은 언제 어떤 사각 프레임에 담겨도 멋져요!
외로웠던 어린 날의 '나'를 불러내어 분홍공주와 같이 놀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가을은 조금 외로워도, 쓸쓸해도 좋은 계절이어요!^^

blanca 2011-09-25 20:37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순오기님. 정말 살 맛이 나는 계절이지요. 요 며칠 새 날씨가 정말 너무 좋아요. 야외에 앉아 있으면 살아 있다는 게 참 눈부시게 느껴지는 나날들입니다.

프레이야 2011-09-24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와 잘 헤어져야 하는 계절!
블랑카님의 언어창고엔 찬란한 언어들이 얼마만큼이나 있는걸까요?^^
잘 헤어져야 잘 만날 수 있는 것이겠죠!
어디에 있어도 마음에 가을바람 선선하게 안기는 주말 보내고 싶어요. 블랑카님도^^

blanca 2011-09-25 20:38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저는 이 좋은 계절 '감기'님의 왕림의 조짐이 또 보이네요. 호되게 앓는 편이라 걱정입니다. 벌써 두 번째인 것 같아요. 프레이야님은 행복한 주말 마무리하고 계시나요.

oren 2011-09-24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동네 마을도서관에 나와, 나무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서 '가을 바람'을 느껴가며 '커피'를 즐기면서, blanca님의 이 글을 읽고 있답니다. 오늘은 비록 하늘에 구름 한점 없지만 벤치 한켠에서는 어느새 벌써 샛노란 은행잎이 '뚝뚝' 떨어지고 있네요. 가을은 대체로 제겐 '너무 슬픈 계절'인 것 같아 애써 가을의 '좋은 것들'만 보고 느끼려 애쓰는 그런 계절이지만, 우리들 모두에겐 각자 저마다의 '그런' 계절이 또 있겠지요. 어김없이 또 찾아온 그런 가을도 머지않아 또 훌쩍 우리곁을 떠나가고 말겠지요. . . '좋은 가을' 되세요. . .blanca님.

blanca 2011-09-25 20:40   좋아요 0 | URL
oren님 읽기만 해도 얼마나 찬란한 풍경인지. 도서관 벤치에서 커피까지^^ 저는 오렌님 댓글 읽을 때 하늘을 보고 있었어요. 아, 가을이 은근히 신산하기도 하지요. 겨울이 올 테니까요. 그래도 가장 살아 있다는 것에 즐거움과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잘잘라 2011-09-24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감각은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우리의 판단이 우리를 속인다. -괴테

사진과 프로필 글귀가 잘 어울려요. 하늘만큼 사람도 멋있게 보이는 가을,이 좋아요.

blanca 2011-09-25 20:42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 저도 모르게 저도 자꾸 감각이 느끼는 것들을 외면하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다시 한번 짚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차가운 바람이 불면 또 겨울 추위에 대한 예감 때문에 좀 움츠려지기도 하고 한 살 더 먹을 일이 아연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래도 정말 근사한 날씨들입니다.

cyrus 2011-09-24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막 해가 질 무렵의 가을 구름도 운치가 있고 멋져요. 그런데 여기 대구는
낮에만 여름인거 같아요. 밤이 되서야 가을 바람이 불어서 선선해요.
그래서 여름이 한순간에 지나간거 같아서 아쉽기도 합니다.

blanca 2011-09-25 20:43   좋아요 0 | URL
아, 그래요? 대구는 아직 그렇군요. 대구 얘기만 하면 괜시리 반가워져요. 아버지 고향도 할머니와의 시간들도 다 대구인지라. 언젠가는 대구를 한번 꼬옥 가서 제 유년 시절들의 추억들을 되짚어 보고 싶어요.

비로그인 2011-09-25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집니다. blanca님! ^^

blanca 2011-09-25 20:43   좋아요 0 | URL
무엇이요? ㅋㅋㅋ 그냥 다 멋진 걸로 알게요, 바람결님.
 

 

절해고도에 갇혀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순간 '이해'라는 것은 나의 못난 모습을 적나라하게 알아 주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내가 꽤 괜찮은 인간임을 긍정받고 싶은 욕망과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를 읽다 깨달았다. 

   
 

 김소연은 마음에 대해서 말한다.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다. '너는 나를 이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잘 오해해준다는 뜻이며, '너는 나를 오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보여주지 않고자 했던 내 속을 어떻게 그렇게 꿰뚫어보았느냐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요즘 자존감에 대하여 많이 생각해 본다. 내가 비교적 자존감이 높지 않은 사람이라 더 민감하게 주변 사람들을 지켜보게 된다. 자존감은 유아기 때 주양육자와의 관계 속에서 싹트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 틀 자체를 바꾸기란 여간해서는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유아기가 전생애를 지배한다,는 식으로 완강하고 체념적으로 결론 내리는 요즘의 분위기도 쉽게 수긍하고 싶지 않다.  이는 주양육자의 죄책감을 자극하고 성인교육을 방해할 위험이 다분하다.

누구나 결국 내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가지고 살고 싶어한다. 자존감이 높으면 타인의 판단에 기대지 않아도 된다고는 하지만 타인의 평가에 덤덤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런지. 

그러니까 나도 나를 제대로 오해해 주기를 바라나 보다. 신형철이 소개한 김소연 시인에게 들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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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9-06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해받지 않고도 충분히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날들이 있었어요.

blanca 2011-09-07 12:44   좋아요 0 | URL
쥬드님, 저는 이해받고자 하는 욕구가 너무 큰가봐요. 혼자서도 맨날 속으로 행동들을 합리화합니다.

비로그인 2011-09-06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공감이에요. 이해 받고 싶은 맘, 사실은 날 좋게 봐주길 바라는 마음과 다름 아니죠. 저도 자존감에 대해서라면 무척이나 궁금한 게 많아요. 유아기에 형성된 자존감이 사람 일생을 결정짓는다는 말은, 조금 수긍이 가면서도 결코 인정하고 싶지는 않은 말이에요. 저는 지하철에서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그 자리에서 특히 자존감에 대해 많이 생각한답니다. 마주 보기 부끄러워서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다가, 힐끔힐끔 마주 앉은 사람들 훔쳐보기도 하구요. 근데 잘 모르겠어요. 어떨 때는 자존감이고 자존심이고 자신감이고 뭐고, 그런 거 상관 없이 다 내려놓고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싶은데 그것도 잘 안 되고... 정말 난센스에요. 자존감을 그저 편리한 용품이라고 생각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생활하는 게 편할 것 같기도 해요. 절대성을 부여해버리면, 절망하게 될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니까요.

blanca 2011-09-07 12:46   좋아요 0 | URL
말없는수다쟁이님, 대인관계에서 자존감을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저도 지하철에서 사람 구경 열심히 합니다. 특히 미남 미녀는 아주 뚫어져라 ㅋㅋㅋ 쳐다보기도 하고요. 담담하고 쿨하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합니다. 맞아요. 어렸을 때 애착형성이 평생을 결정한다,고 지나치게 절대성을 부여해 버리면 나머지 인생이 어둡게 느껴집니다.^^

sslmo 2011-09-06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미루어 짐작한다는 말 좋아해요.
이런 경우 어긋나도...짐작하는 동안 즐거우니 그걸로 된거 아닐까요?

신형철에, 김소연에, blanca님의 글까지...이런 호사가 따로 없네요~^^

blanca 2011-09-07 12:48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아,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군요. 그냥 다들 그렇게 그러면서 사는 게 또 인생의 묘미 같기도 해요. 오늘 시장 보러 나섰는데 여긴 시장 근처라 정말 엄청 막히더라고요. 우회전 못할 정도로 횡단보도로 앞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한참을 기다리는데 교통 경찰 아저씨가 너무 잘 정리해 주셔서 꾸벅 목례를 하면서 그냥, 산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2011-09-07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저도 신형철씨의 저 구절이 인상깊었는데, 블랑카님과 같은 생각은 못 했었어요. 맞아요. 이해해 주길 바라는 건 날 괜찮게 봐 주길 바라는 욕망이에요! 근데, 그냥 '오해' 말고, '제대로 오해'인 것도 맞죠. '제대로 오해'가 뭐냐,는 참 복잡한 문제예요.
여튼 그런 즐거운 오해를 서로 함께 해 주며 몇몇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고픈게 제 소망인 듯. 인간은 외로움에 어떻게든 대처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잖아요.

blanca 2011-09-07 12:49   좋아요 0 | URL
섬님 찌찌뿡이요 ^^ 신기하네요. 혼자가 편하다는 말은 어느 정도만 맞는 것 같아요. 결국은 사람이 그리워져요.

순오기 2011-09-08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목 멋져요! 물론 글도 공감되고요~~ ^^

blanca 2011-09-08 14:20   좋아요 0 | URL
제가 그렇게 느껴서 더욱 와닿더라고요. 아, 순오기님 한가위 풍성하게 보내세요! 여긴 재래시장근처랑 벌써 들썩이는 분위기랍니다.

2011-09-10 1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0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1-09-18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인의 평가에 덤덤할 수 있는 척 하는 사람은 꽤 되겠지요. 저를 포함한....
자존감은 유아기때 형성되지만, 충분히 발전 가능한 거라고 믿어요. 느낌의 공동체 보관함에 넣어요^*^



blanca 2011-09-19 09:50   좋아요 0 | URL
세실님, 다들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는 자유로워지기 힘든 것 같아요. 예, 그래서 저도 되도록 자존감을 좀 높여 보려고 노력 중이랍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9-19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들이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면서도 나는 남을 이해하려고 안 하는 인간의 마음이 참 복잡하죠.

blanca 2011-09-22 22:4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인간은 대부분 자기 중심적이니까요.
 
신화의 힘
조셉 캠벨 & 빌 모이어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이끌리오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허덕이며 오르막길을 올라갈 때 문득 그 고개를 넘어 이미 내리막길을 타박타박 걷고 있는 사람의 얘기가 간절해질 때가 있다.
허세 섞인 과거담도, 지겹게 이어지는 신세타령도, 자만 섞인 충고도 아닌, 자기 마음에서 비늘을 벗겨낸 속살을 그대로 온전히 보여주기를 기대할 때가 있다.  그 속살에는 차곡차곡 나이테가 새겨져 있을 것이다. 그 나이테의 어딘가에쯤 나의 좌표를 찍어 보고 좀더 담대해지기를 꿈꿀 때가 있다. 그럴 때 너무 다행하게도 섬님의 글에 이 책이 있었다.

나는 캠벨만큼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원시 사회에 관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열린 하늘이라고 하는 거대한 지붕 밑으로 펼쳐진 광막한 들판으로 나가거나, 수목에 묻혀 있는 숲속의 동굴로 들어가는 느낌을 맛보고는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신들의 이야기가 왜 바람 속에서, 천둥 속에서 울려나올 수 있는지, 어째서 산자락의 시내는 다 하느님의 육성을 내는지, 어째서 온세상이 다 성소일 수 있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빌 모이어스의 서문 중  

이 책에서의 대담 2년 뒤 죽음을 맞게 되는 '그'의 이야기는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었다. 신화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의 메타포에 불과했다. 그 사이 사이 슬며시 '그'는 삶, 사랑, 결혼, 죽음에 대한 진지한 통찰과 깨달음의 전언을 차분하게 들고 나온다.  

 

여기에 있는 나는 여든을 헤아립니다.
 

그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다. 저널리스트 빌 모이어스와 이루어진 대담. 틀린 부분이 보이는 데로 지적해주시면 앞으로 몇 차례라도 바로잡겠다고, 겸허한 자세로 시작하는 번역자 이윤기의 손끝에서 나와 더욱 찬연하다.  

 

신화 

이 책의 곳곳에서 신화에 대한 정의가 다양하게 변주된다. '육신의 노래에서 부추김을 받은 상상력의 노래', '사회가 꾸는 집단적인 꿈' 그러나 가장 절창은 이것이다. 

신화에는 개인이 지닌 완전성과 무한한 힘의 가능성을 깨닫게 하고 그 세계를 날빛 아래로 드러내는 힘이 있어요.
-p.272 

날빛 아래 드러난 세계는 구태의연하지 않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세계 앞에서 우리는 부조리한 눈앞의 세계를 비로소 이해하고 쓰다듬게 된다. 실재를, 본질을 확신하고 스쳐라도 지나간 사람은 그 주변부에 있어도 안정감 있게 마음의 추를 내릴 수 있다. 신화의 문맥을 생각하면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눈물과도 화해할 수 있다는 조셉 캠벨의 얘기는 밤하늘의 별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오디세우스의 눈물의 여정. 그 어딘가에 누구나 슬며시 걸터앉아 있을 것이다. 고통이 지나간 자리는 하나의 지도가 되어 그의 삶을 완성하지 않았던가. 

 

삶 

본질적으로, 그리고 속성상, 인생은 죽이고 먹음을 통해야 살아지는 무서운 신비의 덩어리입니다. 
p.132 

" 인생은 슬픈 것이다", 이것은 석가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입니다. 사실이 그렇지요. 세속성이 개입되어 있지 않은 삶은 삶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삶을 긍정하고, 이대로도 훌륭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p.133 

여든을 헤아리는 사람은 삶 자체를 고결하다고 기만하지 않는다. 무서운 신비의 덩어리. 슬픈 것. 내가 행하는 일들이 어떤 이들에게 해악을 주고 상처를 만들 수도 있음을 가능성이 아닌 하나의 숙명으로 인정하는 모습. 그러나 절망, 체념과 타협하지 않는 태도. 이토록 슬프고 무책임하고 잔인한 삶이지만 그래도 그 삶 속 순간 순간을 온전하게 향유하고 절절하게 살아나가기를 조언하는 신화학자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싶어졌다. 슬프디 슬픈 삶이 허무하지 않다고 반드시 의미가 있다고 정직하게 희망적으로 얘기해 주는 노인을 만나 본 적이 없다. 막다른 지점에 가서 진실과 희망은 흔히 양립하기 힘들다고 여겼었다. 이 위대한 노인은 인생은 이대로도 굉장하다고 찬탄한다. 참혹함이 역설적으로 삶의 무서운 신비라고 덧붙이며. 그리고 뒤이어 죽음의 이야기. 죽음조차 그의 앞에서는 삶의 위대함을 손상시키지 못한다. 

 

죽음

죽음을 받아들여야, 삶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 측면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우리는 무조건적인 긍정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삶이라고 하는 것은 어차피 죽음으로, 죽음의 순간에 끝나는 법입니다.
p.278 

 

사람들은 죽음의 문을 한사코 거부해요. 그러나 육체는 의식의 수레와 같은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의식과 동일시하게 되면, 우리는 그 의식의 수레인 육신이 낡은 자동차처럼 부서져가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처음에는 범퍼가 내려앉고, 다음에는 타이어...... 그런 식으로 하나 하나씩 내려앉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예측이 가능해요. 이렇게 하나씩 무너져가다 보면 이윽고 의식이 의식과 다시 만나는 대목이 옵니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면 더 이상은 살아 있는 상황이 아니지요.
-p.143  

죽음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죽음과 화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조셉 캠벨의 얘기에 가슴이 저릿했다. 너무 일찍 경험해 버린 죽음은 아직도 트라우마다. 나는 가족의 죽음을, 친구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것과 화해해야 하는 일이 결국은 오고 만다는 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아니, 언젠가는 내가 죽어간다는 사실도 납득해야만 하고 더 이상 '내'가 주어일 수 없는 세상사 앞에서 무력하게 호흡이 잦아들 것임을 생각하면 벌써 숨이 턱턱 막힌다. 살아가는 일은 결국 죽음과 맞닥뜨리러 가는 일과도 같다. 죽음의 순간에 끝나는 삶. 그의 전언을 뼛속까지 실감하고 싶다. 슬프고 고통스러워도 삶의 의미와 존재의 축까지 뒤흔드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연민 

서러운 삶을 공유하는 우리들. 이제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할 일만 남았다. 

우리 삶의 모든 행동은 그 결과에서도 한 쌍의 대극을 낳는다는 겁니다. 가장 바람직한 삶은 빛을 향하여, 남을 이해함으로써 남이 고통에 동참하는 자비를 통해서 가능해지는 화합의 관계를 향해 나아가는 삶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배가 의미하는 것, 이것이 바로 중세의 로망스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p.359 

그가 말하는 결혼을 기억하고 싶다. 날마다 사랑하고 날마다 용서하는, 사랑과 용서의 현재 진행형 성사가 결혼이라는 얘기. 성스러운 연결에 자신을 던져 넣는 행위. 전혀 낭만적이지 않는 결혼관임에도 더없이 이 얘기가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들려오는 것은 이 소중한 관계에서조차 영혼의 성장을 얘기하는 그의 진지함에 결국 승복하기 때문이다. 그의 앞에서는 만물이 메타포다. 모든 것에서 배우고 모든 것에서 눈물겨운 연결과 메시지를 발견하는 그의 얘기들을 이제 곧 환갑을 맞이하게 되는 나의 친정 엄마에게 들려주고 싶다. 이제는 책을 읽고 싶어도 노안 때문에 읽을 수 없다고 슬퍼하고 지난 삶에 부쩍 회한을 느끼고 남은 삶이 너무 미약하고 슬플까봐 두려워하는 나의 엄마. 

천복을 좇으면, 나는 창세 때부터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입니다. 이걸 알고 있으면 어디에 가든지 자기 천복의 벌판에 사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문을 열어줍니다. "천복을 좇되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어도 문은 열린 것이다."
-.p.227 

참, 그는 어머니가 영웅이라고 했다. 당신은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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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9-05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는 어머니만 영웅인거죠? 그럼 난 영웅인거네? ^^

그냥 신화나 읽고 옛이야기나 읽고 판타지나 읽고, 그리고 현실과 연관시키지 않을까봐요.
요즘 현실을 바라보겠다고 이런 저런 것들을 생각하고 읽어대니 머리가 아파요. 혼란스럽구요.
사람 심리, 관계에 대한 책들이나 생각도 마찬가지예요.

저 요즘 생각 너무 많이 하는거 같아요, 음, 15년 동안 안 한거 몰아서 다 하나봐요. ㅠㅠ

blanca 2011-09-06 11:25   좋아요 0 | URL
마고님도 영웅이시죠. 언제 안 그랬겠냐마는 최근들어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거의 소설 수준인 것 같아요. 서사가 어찌나 다이나믹한지. 내년은 더할 것 같아요. 그래도 자꾸 고민하고 생각하고 동참하고 그러는 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힘이 되지 않을까요?

오늘 하늘 보셨어요? 정말 너무 이뻐요. 마고님도 하늘 보시고 기분이 좋아지셨으면 좋겠어요.

잘잘라 2011-09-05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로 돌아와서 처음으로 읽고 싶은 책을 만났어요.
고맙습니다. blanca님^^

blanca 2011-09-06 11:26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 저도 섬님 서재에서 이 책을 만났지요. 다 읽었는데도 책장에 꽂지 못하고 책상 위에 두었답니다. 정말 뭉클하고 감동적인 책이었답니다. 메리포핀스님에게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2011-09-05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6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블루데이지 2011-09-05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이 학교 개교 기념일이라서 모처럼 친구엄마들이랑 신나게 놀이공원가서 전세내고 놀았어요~~
평일 놀이공원...그 맛 짜릿하던데요~~ㅋㅋ
피곤하지만 blanca님 글 읽고,,,마지막에 당신은 영웅이다라는 문장까지 읽으니...뭔가모를 뭉클함이 생겨요~~
blanca님의 글은 언제나 삶의 활력소~

blanca 2011-09-06 11:28   좋아요 0 | URL
우아, 블루데이지님 너무 재미있으셨겠어요! 날씨도 넘 좋고. 놀이기구도 타셨어요? 고마워요. 평일 놀이공원ㅋㅋㅋ 최고일 것 같아요. 저 모노레일 아기랑 탄 적 있는데 정말 넘 좋더라고요. 제가 막 신이 나서 ㅋㅋ

cyrus 2011-09-06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는 이윤기 씨의 글은 술술 잘 읽히고 재미있게 느껴지는데,,
캠벨의 글은 방대한 세계의 신화를 다루는데다 이윤기 씨의 글보다는 더 전문적이다보니
잘 안 읽혀지더라고요. 블랑카님이 읽으신 대담집 정도는 다른 책보다도 조금 쉽게
읽을 수 있을거 같아요. ^^

blanca 2011-09-06 11:32   좋아요 0 | URL
아, cyrus님 대담집이라 술술 읽힌답니다. 다른 책은 안 읽히는군요. ^^;;

2011-09-07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하는 건 모두에게 권하지만, 의미있게 읽어주는 건 일부예요. 서재 생활 중 가장 보람있는 게 이런 거 아닐지.ㅎㅎ 블랑카님의 리뷰는 좀 있다 읽어 보겠어요. 천천히 읽어보려구요. (지금은 시간이 부족해서요.) 여튼 기쁩니다. 좋다고, 아주 좋다고 해 주시니, 보람 만빵! /리뷰에 대한 답글은 좀 있다 하렵니다~~~

blanca 2011-09-07 12:49   좋아요 0 | URL
섬님...음, 이 책을 만나게 해 주셔서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2011-09-09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제가 좋아했던 구절들을 블란카 님도 인용하셨군요. 헤헤~ 이 책의 너무 많은 구절들이 '마음에 깊이 새길만한' 명언들이지요. 일일이 다 얘기하기엔 너무 길어서 그저 저 혼자 읽고 또 읽을 구절들입니다!

그리고 '연민'으로 이 글이 맺어지는 것에,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저자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소개한 친구가 저에게 그랬지요. 영웅은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는..)

켐벨은 결혼에 대해 '결혼한 상대와 만나는 일이 자기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지 않다면, 그는 결혼한 게 아니다.'라는 말을 했는데, "결혼을 우습게 아는 우리나라 남자들이 읽으면 정말 콧웃음치겠군, 아, 근데 나는 이 얘기가 참 맘에 들어!" 했어요. -결혼을 한다면, 그런 결혼이고 싶어요.^^

blanca 2011-09-10 22:24   좋아요 0 | URL
섬님, 정말 너무 좋은 구절들이 많아서 다 기억해 두고 싶어요. 일단 줄을 그어놓고 메모만 해 놓았지만 역시나 다 잊어버리고 다 자질구레한 일들에 치이고 연연하며 살게 될 것 같아 안타까워요. 아, 섬님 앞에 결혼을 정말 존귀하게 여기는 그런 분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그럴 거예요^^
 

알라디너분의 홍릉수목원 관련 페이퍼를 보고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일요일 아이와 길을 나섰다.
집 처에 바로 고가도로가 지나고 있어 공기가 여간 안 좋은 것이 아니다. 소음도 소음이지만 환기를 한번 시키면
방바닥에 새까만 먼지가 가라앉는다.  숨쉬는 게 때로 꺼림칙하다.   

 

 

녹음. 구태여 피톤치드라는 거창한 용어를 빌리지 않더라도 사람은 때로 흙을 밟고 녹음 속에서 호흡을 해야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더웠다. 정수리에 내려앉는 햇발이 아직은 날카로웠다.
아이는 화장실에 가자고 보챈다. 

화장실은 강렬한 햇빛을 맞으며 작은 둔덕 하나를 올라가야 하는 곳에 있었고
자연발효식 재래식 변기였다. 

아이는 기겁을 한다.
솔직히 나도 적나라한 구멍을 보고 멈칫하긴 했다.
희한하게 주장대로 냄새가 하나도 안 나긴 했다.
참아 보겠다,고 해서 데리고 내려와 보니 또 화장실에 올라가 보겠단다. 

시범을 보여주었는데도 ㅋㅋ
역시나 무섭다고 싫단다.
순간 짜증이 올라왔다. 참지 못하고 구시렁구시렁 하나마나한 잔소리를 시작했다. 

엄마는 실망했다.
새로운 것들을 그런 식으로 두려워하면 세상 사는 거 재미었다,는 둥. 

한 소리 또 하고 한 소리 또 하며. 그건 진짜 아이를 위한 훈계가 아니라
더운 날씨에 부려보는 치사한 신경질이었다. 새로운 것들을 두려워하며 재미없게 사는 건
정작 나면서. 조그만 꼬맹이는 입가를 실룩이며 울음을 참는다.
낯선 재래식 화장실에서 쉬 못했다고 야단치는 엄마 앞에서.

예쁜 싱그러운 연인. 팔랑거리는 꽃무늬 원피스에 짧은 커트머리의 아가씨는 
배시시 웃으며 연인과의 사진촬영을 부탁했다.
두 장을 각기 다른 구도로 찍어주며 한숨이 나왔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을까?  
요즘은 과거가 마치 전생 같다. 아니면 거짓말 같은 이야기.

그리고 우사인 볼트
나는 그 청년이 좋다.
장난스럽고 좀 우악스럽고 에너지가 넘치고
그 청년 앞에서는 세상이 쉬워 보인다.
자신을 찾으려면 자메이카의 나이트 클럽을 찾으라던 너스레도 귀여웠다. 

그런데 그 모든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 것 같았던 우사인 볼트가 
부정출발로 실격 당했다. 출발선에서 뛰어 나오며 스스로도 바로 깨달은 듯
바로 윗옷을 벗어던지고 포효한다. 

음. 세상은 누구에게나 쉬운 게 아닌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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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8-29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세상은 쉬운게 아니예요. ㅠㅠ

blanca 2011-08-29 22:36   좋아요 0 | URL
아, 시국도 그렇네요--

페크pek0501 2011-08-29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몇 번 들어온 곳인데, 댓글은 처음 남겨요. 오늘은 순오기님의 방에서 뵙고 오게 됐어요.

제목이 맘에 들어 댓글 남깁니다. '세상은 누구에게나 쉬운 게 아닌거야.'

누구에게나 쉽지 않지요. 어젯밤 오세훈 시장은 잠을 푹 자지 못 했을 것이고,
오늘 시합이 있는 운동선수 역시 그랬을 것이고,
오늘 무슨 시험이 있는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고,
지금쯤 어느 장례식장에선 울음바다가 됐을 것이고,
화장터에서도 그랬을 것이고,
학교생활을 시작하고 있는 초등학생 저학년들도 자기 나름대로 고충이 있을 것이고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그럴 것이고...
부부싸움 또는 연인싸움을 한 사람들은 속이 좋지 않았을 것이고

다 그렇지요. 그래서 이렇게 불러 주고 싶군요. '가엾은 사람들이여!'라고. ㅋ

blanca 2011-08-29 22:38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예, 남들 문제보다 자신의 문제가 더 절실하고 크게 보일 뿐 다들 고만고만한 문제들로 고민하고 고통받고 그러면서 살아가는 건 비슷할 것 같아요. 그런데 댓글이 마치 시 같아요^^

블루데이지 2011-08-29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우사인 볼트 결승전보려고 tv틀었다가 실격되는 거 보고 주저 앉았네요^^
아~ 아까운 기회!!
인생이든 스포츠경기든 지나간 것에 후회하며 살지는 말아야할텐데...그 게 잘 안되요!!ㅋㅋ

blanca 2011-08-29 22:39   좋아요 0 | URL
블루데이지님, 본인은 또 얼마나 허탈했을까요. 담대한 척 모션을 취해 봤지만 결국 우사인 볼트도 긴장하고 부담 느끼고 그랬던 것 같아요. 기록갱신을 보고 싶었는데 참 아쉬워요.

pjy 2011-08-29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시간대에 따라서 변화무쌍하더라구요~ 타이밍은 중요한거죠^^;

blanca 2011-08-29 22:39   좋아요 0 | URL
아, 요새 날씨는 다시 한여름으로 가고 있더라고요. 타이밍을 완전 잘못 맞추었어요. 정말 푹푹 찌더라고요.

노이에자이트 2011-08-29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허...아직 블랑카 님은 연인들을 보며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던가'하고 한숨쉴 나이는 아닌데...왜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요...

blanca 2011-08-29 22:40   좋아요 0 | URL
노자님, 그럴 나이 맞아요 ㅋㅋㅋ 저보다 한 십 년은 어려 보이던걸요.

2011-08-29 1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9 2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1-08-29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은 어린 분홍공주 데리고 나들이 하시느라 고생하셨어요. 토닥토닥^^
그래도 피톤치드는 좀 마신거죠?

blanca 2011-08-29 22:42   좋아요 0 | URL
너무 조금 마셨어요. 또 마시러 가야 하는데 자기는 거기 안 갈 거라고 오늘도 두 번이나 다짐받듯 얘기하네요--;; 화장실도 무섭고 벌도 많대요. 에혀. 피톤치드는 또 집 근처 영휘원에 할머니처럼 혼자 마시러 가야 겠습니다. ㅋㅋㅋ

2011-08-29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30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8-30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막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저 수목원은 재래식 화장실인가 봅니다.
어릴적에 꽤 오래 재래식 화장실을 썼어도 지금 다시 그렇게 쓰라면 전 좀 .. 이상하고 막 그럴듯 싶습니다
또 급해서 들어가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올지도 모르겠어요~

설명해주신 다양한 장면 생각하며 혼자 웃어봅니다. 씨익하고욥!!

blanca 2011-08-30 22:55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초절정 적나라한 재래식이었어요. 저도 사실 처음 보고는 놀랐답니다. 그래놓고 꼬맹이보고 해 보라고 했으니 얼마나 이기적이고 배려없는 마음인가요. 이래저래 제 컨디션 안 좋다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 주지 못해 참 미안합니다.

2011-08-30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누구에게도 세상은 쉬운 게 아니라는 게, 못됐게도 위안이 되네요.

과거가 전생같다니... 실감나는 표현!
모든 과거는 그런가 봐요.
그곳에서, 세월에 휩쓸려 너무 멀리 떠내려온 느낌이에요. 과거에 비하면 이 현재가..

blanca 2011-09-01 12:22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걸로 위로 받아요, 섬님! 섬님, <신화의 힘> 정말 너무 좋아요. 정말 고마워요....이런 좋은 책을 만나게 해 주셔서...

yamoo 2011-08-31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우사인 볼트가 좀 아깝습니다. 조금 늦게 출발해도...금메달은 따놓은 당상일터인데...
뭐, 순간적인 실수였겠죠...
200미터에서는 충분히 기량 발휘를 하겠죠?^^

blanca 2011-09-01 12:23   좋아요 0 | URL
야무님, 저는 한번 더 기회를 줬음 하는데 그게 논란거리더라고요. 상습적인 부정 출발로 경쟁자들 집중력을 흩뜨려 놓는 경우가 있다면서요. 그래도 너무 가혹해요. 그런데 200미터는 언제 하는지 모르겠네요.

비로그인 2011-09-01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blanca님! 저도 제목이 와닿아서 이렇게 덧글 남겨요. 정말이지 한 순간 한 순간은 사는 게 더럽게 힘들다 싶을 때도 있어요. 사소한 사건 하나 때문에 하루 종일 마음 졸이기도 하고요. 그러다가도 또 사소한 일 하나 때문에 마음이 금세 행복나라로 급변하고...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요. 오늘은 거리를 걷는데 문득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무서운 거에요. 그래서 마음이 무겁고 우울했는데, 혼자 공원 가서 산책하니까 자연의 기운을 받아서 그런지 또 상쾌하더라구요. 진짜 인간 마음이 간사하죠? ㅎㅎ 아참 그런데 프로필 사진은 사강인가요?

ps. 육상 200m 결승 경기는 토요일 밤 9시 20분에 한답니다 :)

blanca 2011-09-02 22:42   좋아요 0 | URL
말없는수다쟁이님 반갑습니다.^^ 아, 예 저 맞아요 ㅋㅋㅋ 사강 맞아요. 한창 이쁘고 사랑스러울 때 모습이더라고요. 맞아요. 사소한 일 하나로. 기분이 나빠졌다가 좋아졌다가 해요. 특히나 인간 관계에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아. 완전 유용한 정보입니다. 정말 고마워요.

순오기 2011-09-02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에게나 세상은 쉽지 않지만, 꼬맹이에게 재래식 화장실의 공포만 하겠습니까?^^
더운 날에 고생하셨네요~ 원래 가을볕이 더 따갑습니다. 그래야 나락도 익고 가을 과실도 단맛이 들거든요.

blanca 2011-09-02 22:44   좋아요 0 | URL
아, 순오기님의 따가운 가을볕에 대한 이야기는 또다른 깨달음을 줍니다. 그럼 좀 잘 견디어 볼까요? 그죠. 여학생들도 무서워하는 곳인데. 지금도 거기는 절대 안 간다고 몇 번이나 그러네요. 너무 이쁜 수목원인데. 아쉬워요.--;;

소하아녜스 2011-09-04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치 우리 아이이야기 같아요^^

우리 아이는 결국 나무에 oooo했거든요..

ㅋ.ㅋ 새로운것을 쉽게 받아들이기엔 너무 다른 환경과 사회에서 커 버린걸요...

아마도 다음엔 용기를 낼 수 있을거예요.

그래도 한번 보기라도 했던 경험이니까요...

저도 어리적 시골에가면 너무 무서웠답니다.

blanca 2011-09-05 11:37   좋아요 0 | URL
혹시 소하아녜스님 세례명이세요? 그렇죠. 저는 커서도 재래식 변소에서 일 보라고 하면 망설였을 것 같은데 꼬맹이보고 새로운 것 운운하며 참, 아이의 눈높이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입으로는 잘도 떠들면서 반대로 가고 있었어요. 소하아녜스님,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