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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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중환자실 앞 면회 시간,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분투하는 그들을 만나기 위해 줄을 서는 그 시간, 6층의 분만실에서는 진통중이던 산모가 더 이상 자심한 고통은 불가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새 생명은 의도하지 않은 채 세상을 향해 밀려 내려 온다.

 

 

오로지 태어나는 것만이 죽으니,

탄생은 죽음에 진 빚이다.

-테르툴리아누스 

 

어떤 내용인지 전혀 모르는 채 이 어둑시근한 제사를 통하여 김영하의 이 책에 들어갔다. 이 책이 십대 폭주족 아이들에 대한 얘기였다는 것을 알았더라도 그랬을까? 때로는 자신이 읽기 시작하게 된 책이 다루는 소재조차 모르는 채 그 책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이 미덕일 때가 있다. 편견도 단견도 자만심도 허영심도 잠시 내려 놓은 채 그들의 얘기를 들어줄 수도 있는 유일한 시간이 허락될 지도 모르니까.

 

 하늘에서 밧줄이 내려온다. 그것부터가 이상하다. 그러나 시작이니까 아직은 다들 입을 다물고 있다.
-p.7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니, 시작이 아닌 것처럼 위장한다. 이 마술의 관람자가 되어 마음을 졸이다 보면 1장은 그 다음부터임을 알게 된다. 그 밧줄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한다. 위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어도 실패한 마술로 피범벅이 되어 현장에 홀로 남겨졌을 소년에 대한 호기심과 연민으로 그를 알아주겠다는 일념으로 밧줄이 흔들거려도 잠시 다리를 꼬아 지지하며 버티어 본다. 참고로 그가 쓴 이야기는 너무 가슴이 아프다. 이렇게 생채기를 그어대고 이렇게 그 생채기를 따갑게 젖혀 놓는 이야기는 언제나 읽는다는 행위를 거룩하게도 진저리나게도 한다.

 

그리고 귓가에 아직 솜털이 보송한 소녀가 힘겹게 쇼핑카트를 밀며 고속버스터미널로 들어가 혼자 아이를 낳는 장면을 참아내야 드디어 이야기에 들어갈 수 있다. 작가는 아이가 나오는 순간을 기민하게 알아챈다. 이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상상할 수 없는 순간 살이 살을 낳는다. 생이 생을 끌고 들어온다. 그렇게 낳은 아이, 제이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임을, 아니 그 제이와 함께 성장하며 이 이야기의 화자가 되는 동규가 제이와 분리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아나가게 된다. 십대 미혼모의 몸에서 태어나 룸살롱 주방에서 일하는 돼지엄마에게 키워지고 또 버려지는 제이의 십대는 부모의 불화로 해체되는 가정에서 자라다 결국 집을 나오는 동규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둘은 결국 폭주족의 리더와 일원으로 다시 함께 하게 된다.

 

"고통을 외면하는 거예요. 고통의 울부짖음을 들어주지 않는 거예요. 세상의 모든 죄악은 거기서 시작돼요."
-p.73

 

"그래, 나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 같아.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내 앞을 지나가면 그들의 고통이 내 영혼을 짓눌러. 그들이 지고 있는 삶의 무게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아."
-p.133

 

제이에게는 타인의, 사물의, 고통을 감지하는 예민한 센서가 있다. 동규가 얘기했듯이 제이는 세상과 고통당하는 자들의 그림자 같은 존재다. 그리고 그 고통 중에서도 가장 무력하고 처절하게 아파야 하는 고통, 폭력에 유린당하는 고통에 제이는 슬퍼하고 분개한다. 여기에 가난한 십대가 있다. 가스통을 지고 피자를 배달하고 때로는 어른의 성적 유희 대상이 되고 그 돈으로 다시 피자를 사먹고 게임을 하고 같은 십대를 성적으로 희롱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세상을 질주한다. 우리가 보는 그들은 폭력적이고 안하무인이고 불결하고 기가 찰 노릇이다. 우리는 그들을 다스려야 한다, 격리시켜야 한다, 우리의 깨끗하고 때묻지 않은 아이들로부터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의 아이가, 우리의 동생이 그럴 수 있고, 우리가 그랬을 수도 있다고, 그 아이들도 아픈 아이들이라고 가슴으로 공감해 주지 못한다. 그 아이들은 우리와 분리된 기이한 외계의 침입자들이 아니다. 우리가 차마 들여다 보고 싶지 않은 가장 아픈 자화상이다. 김영하는 그 아이들과 시선을 맞추려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는다. 여기에 독자가 느끼는 감동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 다 엇나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정당화될 수도 없다. 하지만 이렇게 이미 되어버린 아이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마처 부차적인 것은 아니다.

 

가난한 십대는 외국인 불법체류자와 비슷한 급의 천민이었다. 최저 시급을 받고 비천한 대접을 감수하면서도 항변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기들이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p.164

 

김영하는 이러한 아이들에 대한 공감과 이 아이들을 막다른 곳으로 내모는 기성세대의 '폭력'에 대하여 통찰한다. 최근 일어난 대구 중학생의 자살 사건도 갑자기 사회가 주목하기 시작한 아이들의 폭력성은 소름끼치게 어른들의 그것과 닮아 있다. 심지어 아이들의 폭력 서클은 어른들의 폭력 조직의 사주를 받기도 한다. 우리는 계속 아이들의 이너 서클에서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고 역설하지만 꼬마 괴물들을 키워 놓은 것은 정작 우리 자신들이라는 것을 외면하려 한다. 작가가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다니며 폭주족을 단속하는 박승태 경위를 보여 준 것은 그런 우리의 의도적인 외면이 사실은 툭 치면 무너질 허방과 다름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일 게다. 박승태는 합법적 공권력의 전위 부대다. 그 공권력은 일의 전후 사정과 사람의 삶을 묻지 않는다. 박승태는 소년 시절 캠프 지도교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고 자신을 게이로 규정짓게 된다. "보이지 않는 아버지는 더 이상 두들겨패거나 죽일 수가 없었다."는 그의 얘기는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덮어버린 과거가 어떻게 또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지에 대한 하나의 표본 같다.

 

소설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나'는 동규의 이야기를 받아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시키는 소설가의 시선으로 바뀐다. 거리에서 열일곱이 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말은 어른들 거니까. 하면 자기들이 이기니까 자꾸 대화를 하자고 한다고 했던 아이들의 눈물. 이런 이야기인 줄 모르고 읽었는데 이런 이야기일 거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마지막 장을 덮고나니 자꾸 아연해지며 가슴 한켠이 뻐근해졌다. 모든 상처, 치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외면하지 말라는 이야기. 그것도 내것이니까. 충분히 아파하라는 이야기. 외면당했던 고통이 웅크린 몸을 펴고 가만히 걸어 나온다. 너의 목소리를 듣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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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3-08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하는 아직 글을 묵직하게 잘 쓴 작가라기 보다는
판을 잘 짜는 작가라는 생각이 아직도 있어요.
좋은 스토리텔러라고나 할까? 대충 제 생각은 그래요.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ㅋㅋ

blanca 2012-03-08 22:33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김영하와 김연수의 조합이면 완벽할 텐데^^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답니다.

... 2012-03-08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별다섯!

요즘 쏟아져나오는 한국소설들 중에서 궁금했던 책은 천명관의 [나의 삼촌 브루스리]뿐이었는데 말입니다(체험판을 다운받아 아이폰에 저장해 두었어요 :-)

blanca 2012-03-08 22:33   좋아요 0 | URL
저는 참 재미있게 읽었어요. 소설이라는 것도 잊고 한국 현대 소설에 이렇게 몰입하기는 최근들어 처음이랍니다.

이진 2012-03-08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 멋져요.
저는 무턱대고 한 작가를 읽기보다는 그의 작품을 하나하나 훑어보며 그 작가의 스토리 개연성을 찾아보는 편인데 그래서 이 책은 피하고 "검은꽃"이라는 책을 선물받았어요. 김영하를 만나기가 두근두근 댑니다 ..후

blanca 2012-03-08 22:34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이 읽으면 더 많이 공감하실 수 있을 거예요. 십대의 이야기니까요. 저는 나와바리가 무언가 했다니까요^^;;

비로그인 2012-03-08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것이 좋은 것이고 어떤 것이 좋지 않은 것일까요?
폭력이 되면 그것이 나쁜 것일까.
구원이 되면 그것이 좋은 것일까.
들어주면, 그것이 다행일까.
듣지 않으면, 그것은 다행이 아닐까.
무엇을 듣고 무엇을 침묵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요, 블랑카 님의 글은.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무엇일까, 궁금하게 만드는 리뷰.

blanca 2012-03-08 22:35   좋아요 0 | URL
이 소설은 그 어떤 대안이나 해답 없이 그냥 가장 아픈 부분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물론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라는 얘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그게 본질은 아닌 것 같아요. 읽고 나니까 삶이란 참 아픈 것이로구나, 어리든, 젊든, 나이 들었든, 이해란 참 먼 것이로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그래서 가슴이 참 스산했어요.
 

라디오 예약녹음을 할 일이 있었는데 마침 아이가 서랍에서 굴러다니던 MP3를 꺼내었다. 아이리버, 나의 것이었던 것 같은데 연애 시절 남편에게 빌려줬다 결혼해서 돌아온 그 MP3. 아니 남편이 선물로 주었던 것을 자기가 다시 빌려달라라고 했던 것도 같고. 여하튼 죽어 있는 고물 같은 투박한 그것에 재미삼아 건전지를 넣으니 예상외로 전원이 들어왔다.

 

아이폰에게 이어폰을 빌려 음악을 들으니 세상에나, 예전 음악들이 고스란히 들려온다. 낯선 노래도 있다. 김동욱의 "떠나가 버렸네" 지금의 JK김동욱의 허스키한 음성이 아니라 그냥 깔끔하고 잔잔한 다른 남성 가수의 목소리이니 동명이인인가 싶기도 하고. 내처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작동법을 더듬어 가며 예전 흔적들을 더듬는다. 머라이어 캐리의 "Hero"도 있다. 재수 시절 책상이 앞 뒤로 빽빽이 줄 지어 있어 그저 내 자리에서 몸통 한번 돌려 뒤에 앉았던 친구들과 얘기하는 게 인간관계의 전부였던 그 시간 아침에 자판기 커피 한 잔 마시고 우연히 보게 된 그녀의 뮤직 비디오의 가사는 정말 "다시 한번!"을 외치게 만들어 주었다.

 

잠깐 추억에 젖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아무리 이리 누르고 저리 눌러봐도 라디오 예약녹음 기능을 찾을 수가 없다. 분명 무언가를 열심히 예약 녹음해서 공부도 하고 했던 것 같은데. 인터넷에 찾아 보니 지식인은 2004년으로 돌아가 있다. 아, 이 제품이 그 때 나왔었구나. 컴퓨터에서도 과거의 질문과 답들은 마치 현재의 것처럼 살아 움직인 채 고스란히 안겨 있었다. 일단 타이머로 들어가 현재 시간 설정을 해야 한단다. 들어가 보자. 역시나 2004년으로 되어 있다.

 

2004년.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누구와 어떻게 지냈을까. 아무리 더듬어 봐도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이상하다. 열여섯 살 윤진이와 시장통을 헤매며 가사 시간에 만들 치맛감을 끊었던 일은 엊그제 같이 생생하고 그 때 진이와 나누었던 그 따뜻한 공기들은 지금도 내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보다도 훨씬 지금과 가까운 2004년은 일부러 나이를 계산해 보고 되짚어 보지 않으면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아이를 재우며 복기해 보니 알 것도 같은 시간. 인사 이동을 해서 한창 또 손에 익지 않은 일로 괴로워하고 책을 읽을 시간도 생각할 시간도 없었던 나날들. 그 시간들은 기억의 바닥에 가라앉으려 아우성이었나 보다. 별로 떠올리고 싶지도 않고 추억으로 갈무리 해두고 싶지도 않아서 그렇게 망각 속에 묻혀 버렸나. 뜬금없이 회사 앞 골뱅이 집에서 두툼한 계란말이를 서비스로 주어서 열심히 비벼 먹었던 기억 정도가 났다. 한심하고도 서글픈 노릇이다.

 

그는 남자 노인 30명에게 만약 자서전을 쓴다면 반드시 그 안에 포함될 것이라고 생각되는 이야기 다섯 가지를 해보라고 말했다. <중략> 노인들이 들려준 기억들 중에는 열 살에서 스무 살 사이의 기억이 쉰 살에서 여든 살 사이의 기억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았다.

-다우베 드라이스마 <나이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에서

 

 

 

 

스무 살 때보다 서른 살이 되고나서 또 그 중반이 되고 나서 기억은 자꾸 후진한다. 이게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게 더 놀랍다. 그리고 더 심해질 것이라는 것도.  이 책에서 저자는 이러한 회상 현상에 관련된 세 가지 이론을 제시한다. 하나는 이십대 때의 기억력. 두 번째는 열다섯 살에서 스무 살 사이에 사람들이 대개 기억할 만한 일을 많이 경험한다는 사실,  세 번째 이론은 어린 시절과 성인기 초기에 사람들이 성격 형성과 정체감 확립에 영향을 미치고 인생행로의 지침이 되어주는 일을 겪는다는 것.  시간은 점점 빨라지고 추억할 일들은 점점 더 줄어든다는 얘기. 그러고 보면 나이드신 분들은 주로 최근의 일보다 아주 예전의 일들을 얘기하시기를 즐긴다. 자기 전에 내가 떠올리는 일들도 현실의 자질구레한 고민들을 제외하면 이십 년 정도 후진하여 좋았던 시간들이다. 앞으로 가면서 자꾸 더 먼 곳을 뒤돌아 보게 된다는 건 인생이 가지는 기본적인 아이러니일까.

 

가까스로 MP3 시간을 2012년 3월 3일로 리셋했다. 이게 제대로 작동해 줄 지는 의문이다. 2004년에 죽어 버린 녀석을 흔들어 깨워서 다시 8년만에 일어나 제 노릇을 다시 하라고 닥달하니 이 녀석이 앙탈을 부릴 수도 있을 것 같고. 일단 시험 삼아 내일 것을 예약녹음해 보고. 안 되면 또 그 때 가서 다시 대책을 강구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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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3-03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블랑카님께 페이퍼를 자주 좀 쓰시라고 닥달합니다.

blanca 2012-03-04 22:31   좋아요 0 | URL
^^ 맨날 쓰다가 임시저장 해놓고 안 올려서 그런가 봐요. 자꾸 써 버릇하면 또 쓰게 되고 안 써 버릇하면 또 그렇고. 습관의 힘이 무서운 것 같아요. 고마워요, 이 닥달^^

이진 2012-03-04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저도 다박방님과 함께 닥달을 해야겠군요...

blanca 2012-03-04 22:31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ㅋㅋ 저는 이 사진이 소이진님이 교복 입고 찍은 사진인 줄 알고 깜놀했었어요. 이렇게나 근사하다니, 하면서요 ㅋㅋ

이진 2012-03-05 19:26   좋아요 0 | URL
에이 ㅠㅠ 블랑카님 이러지 말아요... 제가 너무 초라해지잖아욧! 흑흑
내심 제가 이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고서는 생각해봅니다...

stella.K 2012-03-04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점점 나이를 먹는지 자꾸 옛날 일만 기억나고 죽겠습니다.
근데 웃기는 건, 그때는 정말 죽을 것 같았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가 왜 그리
그리운 건지. 그나마 다행이죠. 추억이라도 좋게 생각을 하고 있으니.
안 좋게 기억하고 있으면 지금의 저는 되게 안 좋은 모양새를 하고 있을지 몰라요.
하지만 또 그래서일까요, 나이 먹는 게 점점 두려워집니다. 나이 먹어 잘 살 자신이 없어요. 흐흑~
아무튼 추억은 아름다워! 입니다.하하

blanca 2012-03-04 22:32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저도 그래요. 그 땐 죽을 것 같았는데 그 젊음은 참 그리워요. 저도 옛날 생각 자꾸 나서 죽겠어요. 할머니 되면 종일 호시절 타령만 하다 젊은이들 다 도망가면 어떡하죠? ㅋㅋ

마녀고양이 2012-03-05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방금 어떤 물건을 가져다 놓고,
그것을 가져와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나서 다시 가지러 가보니 없고, 제자리 와보니 있고
머 이런 반복이랍니다. ㅠㅠ. 기억력이 없어진단게 이런거구나 싶어져요.

나이들면 세월이 정말 빨라진다죠... 개인에게 주어진 시간들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지,
정말 그런지 확인하고 싶어져요. 그거... 확인할 방법이 없잖아요? 나랑 블랑카님이랑 느끼는 시간이 다른걸~ ^^

blanca 2012-03-05 16:13   좋아요 0 | URL
저는 이미 이 증상이 시작되었답니다. 고유명사에는 완전 약해졌고요^^;; 아웅, 너무 빨라요. 옛날엔 계속 세월아, 가라!고 했는데 이제는 제발 좀 천천히 갔으면 좋겠어요.

cyrus 2012-03-05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년 전 MP3를 봤을 때 기분이 무척 새로웠을거 같아요. 타임캡슐 안에 귀중한 물건을 보관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잊어버리고 있다가 드디어 발견하게 된 기분이랑 비슷하다고 봐야 하나요? ^^;;


blanca 2012-03-05 16:13   좋아요 0 | URL
너무 신기했어요! 게다가 완벽하게 다 작동이 되더라고요. 라디오 예약녹음도 되고. 현재 시간이 2004년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도 참 신기했어요.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 참을 수 없이 궁금한 마음의 미스터리
말콤 글래드웰 지음, 김태훈 옮김 / 김영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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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뒤늦은 한파가 몰아닥쳤다. 오후에 외출하기 전에 아이는 피곤해서 쉬고 싶다고 했다. 금요일 오전에 병원에 다녀온 후 아이는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 주말에도 해열제로 버텼다. 계속 예감이 안 좋았다. 그냥 감기가 아닌 독감이나, 신종플루, 폐렴이 연상되었다. 수요일 외출부터가 잘못 끼어진 단추였다. 자아비판은 계속된다. 그 때 그렇게 안 했더라면, 맞아! 왠지 그랬어! 역시 엄마의 직감이 맞는거야. 내 생각대로라면 주말에 응급실에라도 갈 수 있었을 텐데. 그때부터 치료했으면 이렇게 악화되지는 않았을 거야. 갑자기 나의 직감력에 대한 신뢰는 고양되고 주변에 비난할 구실을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사후판단 편향은 사태가 벌어진 후 뒤늦게 그 불가피성을 확신하는 경향을 말한다. 사후판단 편향 때문에 사람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를 예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인식한다.
-p.266

 

말콤 글래드웰한테 들켰다. 나는 사후판단 편향에 빠져 자기합리화를 꾀하고 있던 중에 이 책을 만났다.

 

사후판단 편향이 초래하는 보다 심각한 문제가 있다. 과거의 문제를 바로잡는 데 집착하다 다른 미래의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p.272

 

말콤 글래드웰이 <뉴요커>에 실었던 글 중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간의 충동과 관련해 흥미롭고 색다른 이야기를 가려뽑았다(머리말 중 인용)는 이 책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작태들이 '사후판단 편향'에 빠져 있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언뜻 가벼운 칼럼집 정도로 치부되어 평가절하될 수도 있는 그의 글들에는 다른 모든 모호함을 봐 줄 수 있을 정도로 명료하고 진중한 경구들이 군데군데 튀어 나온다. 말콤 글래드웰이니까 가능한 얘기이다. 아마도 그건

 

아이디어를 찾는 비결은 모든 사람과 사물에는 그들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p.9

 

이러한 그의 자세 덕택일 것이다. 이것은 비단 아이디어의 원천 탐색에만 그칠 얘기가 아닐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과 사물에 그들 각자 나름의 서사가 깃들어 있다고 믿는 자세는 삶을 대하는 가장 사랑스러운 자세이기도 하다. 염색약 광고, 개 심리학자, 유방조영술과 항공사진 판독의 한계, 월스트리트의 잘 나가는 펀드 매니저의 몰락, 토니상 후보에도 올랐던 <프로즌>의 표절 논란, 거대 에너지 기업 '엔론'의 파산 등에 관련된 에피소드는 단편 소설처럼 생생하게 재현된다. 저자는 이윽고 이 에피소드들을 색다른, 때로는 이단아적인 시선으로 해부한다. 머리말에서 저자가 했던 '독자를 설득하지 않는다'는 선언은 자기충족적 예언이 되어 때로 모호한 결론으로 이어져 좀 맥 빠지게 하는 구석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그의 재기와 기지는

여전히 빛난다.

 

지적 재산권에 의외로 열정적으로 매달리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보다 돈을 관리하는 사람을 뽑는 데 더 많은 돈을 들이는 사회를 비판하며 채용을 개인과 회사가 맺는 낭만적인 관계로, 면접관이 듣고 싶어하는 말은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헛된 약속이라고 중얼거리는 말콤 글래드웰, 그를 나는 지극히 편파적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과거의 문제를 바로잡는 데 집착하다 미래를 망쳐버릴 지도 몰랐던 나를 구원해 주는 지점에 그가 서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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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 - 다치바나 다카시의 암과 생명에 관한 지적 탐구
다치바나 다카시.NHK스페셜 취재팀 지음, 이규원 옮김, 명승권 감수 / 청어람미디어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살고 싶은 생각이 있는지 시험을 당하고 있다. 평소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 병이 내 앞을 가로막고 들이밀며 묻는다. 살고 싶은 생각이 얼마나 강하냐고.

-p.131 <방송인 치쿠시 데츠야 폐암 투병 중 메모>

 

 

병원 생활 이 주 동안의 풍경은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갈라 놓는 차광막을 쳤다. 가족이 아파서 치료를 받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문제들 앞에서 참으로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생각들이 밀려왔다. 입원하며 관리를 받아야 하는 만성질환으로 고통받는 그들은 환자복을 입고 닝겔 거치대를 밀며 병실 복도를 산책하는 것이 운동이자 유일한 외출이자 소통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어딘가를 응시하는데 그곳이 어디인지 모호한 그 모습들 속에 미래의 가족, 나를 훔쳐보고 움찔했다. 산다는 것이 이다지도 간절하고 흉포한 것일까. 살고 싶다. 살리고 싶다. 다 같이 살아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됐다. 가장 단순해지는 것은 결국 생존 앞이다.

 

"암에 걸렸다, 암으로 투병 중이다, 암으로 죽었다, 암환자를 간호 중이다" 여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현대인에게 암은 익숙하다. 나이들어 가는 것과 암과의 거리는 너무나 가깝다. 언론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암 정복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제시하건만 과연 우리는 암의 완치를 향해 내딛고 있는 것인지 모호하고 의심스럽기만 하다. 분명 그 분은 암을 치료하기 위하여 힘든 수술을 하고 항암요법, 방사선치료를 받았건만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가다 힘들게 가셨다. 대체 암은 무엇이고 왜 이다지도 인간을 괴롭히고 인간의 자유 의지를 무력화시키는 것일까.

 

이 책은 그러한 질문들을, 그러한 의심들을 명료하게 걸러내어 준다. 답을 주는 대신 질문하고 의심하고 회의한다. 저자 다치바나 다카시는 NHK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다치바나 다카시의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 프로그램에 관련된 제작 의도, 제작 과정 등에 대한 서술과 더불어 실제 자신의 방광암 투병기를 통하여 암의 본질에 대한 탐사를 시도한다. 실제 다큐를 보지 못한 아쉬움을 충분히 달랠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고 친절한 책이다.

 

이란 무엇인가

암은 세포의 병입니다. 정상 세포가 미쳐 버려 무한 증식 능력을 가진 암세포가 되는 병입니다. 정상 세포는 태어났다가 죽어가는 과정을 거듭하는 유한한 수명을 가진 세포인데, 암세포는 죽지 않습니다. 불사의 세포입니다.
-P.33

암은 외부에서 침입하는 적이 아니다. 인간 몸을 이루는 60조 개의 세포가 복제를 거듭하며 생명을 이어가는 동안 생긴 오류에 의한 변이의 축적으로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불온한 일이다. 내 몸 안에서 일어난 이 일을 깨끗하게 지워버리는 것은 불가능한 환상이다. 저자도 전문가들도 암정복이 우리 세대에서 가능한 일인지에 회의한다.

 

의학은 아직 암 극복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는 것이 암에 관하여 제일 먼저 알아야 할 사실입니다.
P.99

그렇다면 정상 세포의 손상까지 각오하며 받는 항암치료에 대한 의구심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애초 항암제는 독가스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항암제가 효과를 발휘하는 암은 소수이며, 환자가 바랄 수 있는 것은 약간의 연명 효과와 증상 완화에 불과하다는 절망적인 얘기는 담담하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암 정복을 위해 경로 전체를 파악하려는 암게놈프로젝트가 진행중이긴 하지만 아직 장님 코끼리 더듬기 정도라고 한다. "암유전자를 최초로 발견한 와인버거 교수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암을 낳는다. 암은 다세포 생물의 숙명'이라고 말한다."(인용) 이 책은 인간의 숙명에 가 닿는다. 우리는 그 간단 명료하지만 직시하고 싶지 않은 진실, "인간은 아파 죽는다"는 명제와 또 만나고 만다. 머리로는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당사자가 되기도 싫고 가족도 되고 싶지 않기에 외면하고 싶은 인간의 한계를 정작 이 책에서는 아프도록 절감해야 한다. 생의 본질은 때로 무력함에 닿아 있다.

 

그렇다. 이제는 이러한 다큐를 만들었던 저자까지 중기 이후의 암에 걸려 투병하는 모습을 봐야 한다. 첩첩산중이다. 마음은 한없이 무겁지만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까지도 하나하나 관찰하고 기록하고 전달하며 자신이 천착했던 문제의 핵심에 가 닿으려는 그 간절한 노력에 우리는 저릿한 마음을 누르고 다가가야 한다. 절망하지도 분노하지도 않고 담담하게 자신의 수술 과정까지 증언하는 모습은 건조한데 깊은 곳에서 공명한다.  수술대 위에 누워서까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리고 그 정상적이지 않은 세포의 발작을 제어하려는 인간의 시도와 노력을 명징하게 인식하고 얘기하는 대목. 그리고 그는 가차없이 인정하고 말한다. 암의 재발확률에 대하여.

 

그렇다면 이 책은 절망과 체념에 관한 것일까. 살면서 우리는 몸 속에서 저도 모르게 일어나는 오류들마저 그러안고 잠식당하며 견뎌야 하는 걸까. 외부와 내부에 모두 속수무책으로 좌지우지당하면서도 남고야 마는 것이 있기는 하는 걸까.

 

암의 최대 무기는 오랜 진화의 역사상 가장 초기 단계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 자체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에 맞서는 우리의 무기는 진화의 오랜 역사가 낳은 두뇌이며, 그 두뇌가 주는 우리의 불굴의 의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암이 제 아무리 강인하다 해도 그것을 기필코 극복해 내고야 마는 우리의 강한 의지, 이것이 암에 맞서는 인간의 최대 무기라고 봅니다. 그리하여, 시간은 걸리겠지만 암은 반드시 극복될 거라고 나는 믿습니다.

-p.167

 

반드시 극복될 거라 믿는 그 의지가 왜 이리 서글프게 들리는 걸까. 영생을 갈구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지만 인간의 존엄을 무너뜨리며 종착점에 가 닿게 하는 암이라는 질병 앞에서 그 의지가 제발 무력하게 패배하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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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5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25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2-02-25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놓기만 하고 못 읽은 책이에요. 왠지 손에 들기가 두려워지더라는.

blanca 2012-02-25 23:20   좋아요 0 | URL
moonnight님 저도 이 책 읽는 내내 그리고 읽고 나서도 지금도 참 여러가지로 우울해지네요. 괜시리 걱정도 되고. 마지막 문장이 참 무섭거든요. 익명의 독자들이 암에 걸려 있을 확률을 경고하는...살면 살수록 왜이리 두려워지는 것들이 많은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꼭 한번 읽어 보세요. 비단 암뿐 아니라 사람이 병에 걸린다는 것에 많은 통찰을 주는 책이고 일단 재미도 있답니다.

마녀고양이 2012-02-27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이란, 우리가 진화학적으로 설계된 나이보다 훨씬 오래 살게 되었기 때문에...
일종의 자연에 맞서는 행동을 하기 때문에 나타난 부작용이라 할 수 있겠죠. 제 주위에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이, 먼저 자궁암 유방암을 걸리는 것을 보면서, 너무 속이 상하고, 마음이 심란했습니다. 작년 내내 그랬죠. 회사 다니며 술 많이 먹는 친구들은 위암이 걸렸구요. 바로 얼마전 대학원 오티에서 만난 동기는, 곧 갑상선 암 수술 들어간답니다.

다들 초기라 하지만, 그것은 죽음의 직접적인 경험이라는 점에서... 많이들 힘들겁니다.
그러니 더욱 한순간 한순간 모두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건강 나아지셨나요? 블랑카님, 봄이예요. 우리 화이팅해요.

blanca 2012-02-28 22:14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아이는 다 나았어요. 이제 빨리 봄이 와서 이런 생각들 다 잊고 단순하게 따뜻함, 꽃향기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가 조금 더 담대해졌으면 좋겠어요. 너무 나약한 것 같아서요. 대학원 오티라니 듣기만 해도 향기롭습니다.^^

프레이야 2012-02-27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 가족이 암 수술을 한 걸 보게 되고 암으로 사망하는 것도 보게 되니
암이란 게 정말 남의 얘기가 아닌 것 같아요. 힘든 시간 견디고 이젠 나아져가는 모습을 보며
그저 보는 이와는 달리 그걸 몸소 겪고 이겨내는 사람들 스스로는 어떤 마음일까 감히 짐작도 안 되어요.
암과 친하게 같이 살아가야 하는 현실인가 봅니다.
덜컥 겁이 나요. 스트레스 안 받고 살아야되는데 말에요.

blanca 2012-02-28 22:16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저도요. 살면서 점점 두려워지는 것들이 많아지지만 그래도 살 만하다, 즐겁다, 느끼면서 곱게 늙어가고 싶어요. 이것도 큰 욕심일까요? 고통을 직접 겪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데 분명 어떤 깊이가 생기는 것 같아요. 어깨 너머에서 그 분들을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마태우스 2012-05-08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거 의대생들한테 수업할 때 한 시간을 이 책에 할애했어요. 근데 학생들이 읽기엔 좀 난해한 느낌도 들었답니다.

blanca 2012-05-09 22:26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암치료'에 지나치게 회의적인 시각이 좀 불편하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하고 그랬지만 새로운 시각을 접할 수 있어 유익했어요.
 

처음에는 콧물감기였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외출도 했다. 주말부터 여덟 시간 간격으로 열이 사십 도까지 오르기 시작했다. 예감이 안 좋았다. 아이는 열이 오르자 처지기 시작했다.

 

그는 비에 젖은 어두운 거리를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속도를 늦췄다. 지금까지 그의 삶은 순탄하기만 했고 어디 하나 부족한 게 없었다. 대학도, 결혼도, 경영학 고급과정 학위를 받기 위해 다시 다닌 일 년의 대학생활도, 투자회사에 하위 파트너로 들어가게 된 일도, 아빠가 된 것도, 그는 행복했고,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다. 그도 알고 있었다. 부모님은 여전히 살아 계시고 형제 자매들은 다들 자리를 잡았으며 대학친구들은 모두 사회에 나가 나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 어떤 쓰라린 경험도 없었다. 운이 다하면, 갑자기 모든 상황이 바뀌면, 한 사람을 꺾어버리고 내팽개치는 어떤 힘 같은 게 이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 레이먼드 카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p.101

 

 

나의 삶은 하워드처럼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우여곡절도 있었고, 때로는 운이라고는 따르지 않는다고 비관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도 쓰라린 경험은 처음이었다. 아이는 폐렴에 걸렸다. 겁먹고 아픈 아이를 입원시키고 보조침대에 웅크려 세 밤을 자기까지 절망하지는 않았었다. 기관에 다니는 유아가 폐렴에 걸리고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다. 조지프 캠벨의 <신화와 인생>을 갖고 와 베개로 쓰고 읽기도 하고 그랬다. 와닿는 구절들에는 줄도 그었다.

 

 

조지프 캠벨의 "모든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한다"는 말은 슬픈 예언처럼 가슴을 찔렀다. 아이는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악화되었다. 입원하고 오일 째 되던 날 아이는 하루종일 열에 들떠 먹지도 놀지도 않고 자고 또 잤다. 너무 무서웠다. 나는 모든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울 좋은 경구인 줄 체감하는 중이었다. 눈이 펑펑 오기 시작했다. 눈발 하나 하나가 가슴에 와닿아 선뜩하게 생채기를 내는 것 같았다.  레이먼드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 부부의 아이는 생일날 등굣길에 당한 교통 사고로 혼수 상태에 빠진다. 그 아이는 잘못되었었다. 펑펑 내리는 눈발 속에서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 속에 나 혼자 철저히 불행했다. 아이에게 눈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아이는 휠체어조차 탈 힘이 없는지 눈을 보지 않으려 했다. 강아지처럼 눈 위를 뛰어 다니던 과거의 나의 아이와 이렇게 누워 있는 아이가 같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알라딘에 글을 올리고 댓글을 확인하던 그 평범한 일상들이 백 년도 더 오랜 옛날 일같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단 한 마디가 필요했다. 그 한 마디를 해 줬던 사람은 담당의가 아니라 외국인 의사였다. 낫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니고 더 심한 아이들도 있었다,고. 미묘한 조사도 억양의 간극도 뛰어 넘어 눈이 파란  그 사람의 위로 한 마디에 나는 견딜 수 있었다.

 

거의 열흘 만에 열이 떨어지고 놀기 시작하게 된 아이의 모습을 보며 인간이란 이다지도 나약하기도 하고 강하기도 한 존재인가 싶었다. 생명이 있기에 가능한 모든 일들 앞에서 정작 그것은 잊혀지고 수많은 자잘한 것들에 끄달리고 절망하고 집착했던 하루 하루가 어리석게도 느껴지기도 하고 눈물나게 그립기도 했다. 근시가 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삶이 진저리가 나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했다.

 

퇴원 후 집에 와서 레이먼드 카버의 차마 그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를 천천히 다시 읽었다. 단어 하나 하나, 구절 하나 하나, 문장 하나 하나 이렇게도 절절하게 와닿을 수 있을까. 이미 이건 그냥 그런 소설이 아니었다. 카버는, 소설 속 아이를 끝내 잃고 만 부부는 이미 내 등 뒤에 가만히 다가와 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 나의 아이는 건강해졌지만 때로 지리멸렬하게 느껴지는 삶이 숨긴 이 예리하고 잔인한  칼날을 엿보고 나니 많은 것들이 다르게 보인다.

 

또 다시 다 잊어버릴 것이다. 사소한 일들에 한숨을 쉬고 불평하고 질투를 하고 좌절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 또 이러한 가르침의 순간이 와 버리기도 할 것이다. 그게 생이고 그게 인간일까? 그럼 하나만 아니 둘만 기억하기로 하자. 하나는 평범한 일상은 눈부신 축복의 찰나라는 것, 둘은 누군가에게 주는 작은 위로가 그 사람을 버티게 할 수 있다는 것. 솔직히 위로보다는 불길한 복선처럼 나를 겁나게 했던 책이지만 그래도 정말 정말 추천하고 싶은 카버의 책도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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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2-20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오늘 문득 브랑카님이 생각났는데...
얼마나 놀랐을까요. 그래도 딸래미 장하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blanca 2012-02-21 23:1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스텔라님. 살면서 참 다행이다, 싶은 일들도 많이 만나게 되네요.

... 2012-02-21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읽고 <대성당>을 꺼내고야 말았어요.

blanca 2012-02-21 23:19   좋아요 0 | URL
브론테님, 사실 저도 이렇게 <대성당>을 이따금씩 떠올리고 다시 읽게 될 줄은 몰랐어요. 이게 카버의 힘이겠지요?

oren 2012-02-21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께서 그동안 '정말 힘든 일'을 겪으셨군요. 아이가 다시 활력을 되찾았다니 정말 다행이고, blanca님께서도 어서 빨리 소소한 일상의 평온과 행복 속으로 되돌아올 수 있기를 빌께요.

저는 요즘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책에 완전히 매료되어, 그 책을 다 읽은지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시간이 날 때마다 여전히 그 책을 붙잡고 지낸답니다. 왜냐하면 아예 그 책을 '필사를 하다시피' 베끼고 있거든요. 그 와중에 요즘 읽은 책이 조셉 캠벨의『신화의 힘』이었는데, 저는 그 책 속에서도 무수히 자주 '쇼펜하우어'를 다시 만나는 것 같았답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blanca님의 이 글에서 마주친『신화와 인생』도 꼭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 * *
캠벨은 계속해서 쇼펜하우어의 말을 인용한다.
"쇼펜하우어는 마침내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진실로 당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지난 일을 돌아보면 당시에는 엄청난 재난으로 보였던 일들이 결과적으로 내 인생과 경력의 실로 커다란 일면을 형성했음을 발견한다."
- 필립 로건, 리처드 로건, 『위대한 영감』 중에서

blanca 2012-02-21 23:21   좋아요 0 | URL
지나고 보니 참 고통스러웠지만 의미없는 경험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살면 살수록 인생은 참 다층적이고 다이나믹한 것 같아요. 죽을 때까지 배우고 되짚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oren님이 인용해 주신 쇼펜하우어의 말이 참 와닿네요.

2012-02-21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21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2-02-21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분홍공주가 많이 아팠군요.ㅜㅜ
아이가 아플때의 부모 마음은 겪은 사람만이 알겠죠.
대신할 수 없는 그 속수무책이란....
아이도 엄마도 고생이 많으셨네요, 정말 건강이 최고로 소중하다는 걸 또 다시 느껴요.
아이도 엄마도 맛난 거 많이 먹으면서 기운 회복하시길...

blanca 2012-02-21 23:25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건강보다 더한 가치, 생명보다 더 절박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아주 뼈아프게 배운 시간들이었답니다. 병실에서 순오기님을 화면으로 뵈었어요. 회복되어가는 와중이어서 반갑게 열심히 볼 수 있었답니다.^^

굿바이 2012-02-21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괜찮은건가요?
저는 <대성당>이 뭔가 허전하다 싶었는데
blanca님의 글을 읽으니 만나야 할 순간이 아니어서 그랬구나 싶네요.
평범한 일상이 축복이라는 것을 저도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어리석어요.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여튼 아이도 blanca님도 무조건 건강하세요!!!!! ^---^

blanca 2012-02-21 23:26   좋아요 0 | URL
굿바이님, 예, 이제는 아이가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네요^^ 저도 당시에는 카버에게 전적으로 몰입할 수 없었어요. 이렇게 다시 읽으니 특히 이 단편이 아주 다르게 새롭게 다가오더라고요. 감사합니다.^^

cyrus 2012-02-21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아이가 건강에 회복되어서 다행이네요. 요즘 같이 추운 날씨에 블랑카님도 건강에 유의하세요 ^^
알라디너분들 사이에서는 카버의 <대성당>을 소개하는 글이 많이 있던데 저도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blanca 2012-02-21 23:27   좋아요 0 | URL
cyrus님 안 그래도 이제 겁이 덜컥 나서 건강 염려증이라도 생길 것 같아요. 아,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읽어 보세요. 단편에 있어서 아주 월등한 부분이 있는 작가랍니다. cyrus님은 어떻게 읽으실지 기대가 됩니다.

2012-02-22 0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12-02-22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급하신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은, <사랑을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라는 책으로 읽었거든요. 아이를 잃은 부부의 이야기 또한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이 책 속에 단편 중 하나가, 대성당이 있었는데요. 노란 표지의 대성당이 나왔을 때도 다른 책인 줄 알고, 덥썩 샀는데, 같은 내용이려나요~ 아직 읽지 않아서 아마 대성당을 표제작으로 해서 개정된 같은 책이지 싶어요.
제가 깜짝 놀란 이유는, 저 또한 아이가 아플 때, 아이와 관련해서 불길한 예감이 드는 상황에 처할 때마다 레이먼드 카버의 이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단편이 문득 떠오르곤 하거든요. 평범한 일상과 그렇지 않은 일상 사이의 미묘한 간극이랄까,,,
제가 느끼는 블랑카 님의 글 속에 임팩트 있는 통찰은,,, "또 다시 다 잊어버릴 것이다." 인 것 같습니다. ㅎㅎ 저릿했습니다.

blanca 2012-02-23 18:34   좋아요 0 | URL
icaru님, 맞아요. 이 단편이 좀 불길하잖아요. 병원에 있는 동안 자꾸 떠오르는데 참 기분이 그렇더라고요. 퇴원하고 나서 다시 읽어 봤는데 문장 하나 하나가 어찌나 절절하게 와 닿던지요. 카버는 분명 아이를 입원시켜 봤을 거예요^^;; 벌써 잊어버리고 아이랑 싸우고 있답니다.^^

2012-02-25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컷 저항하고 있었는데, 결국 <신화와 인생>을 사서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모든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동참한다,니요. 정말 어쩌려고 조셉 켐벨을 이토록 멋진 분인지!

blanca 2012-02-25 23:22   좋아요 0 | URL
사실 병원에 있을 때는 이 말이 참 과하다고 생각했어요. 지나고 나니 무슨 말인지 어떤 의도인지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됩니다. 거기에 캠벨의 위력이 있는 것인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