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 참을 수 없이 궁금한 마음의 미스터리
말콤 글래드웰 지음, 김태훈 옮김 / 김영사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 날은 뒤늦은 한파가 몰아닥쳤다. 오후에 외출하기 전에 아이는 피곤해서 쉬고 싶다고 했다. 금요일 오전에 병원에 다녀온 후 아이는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 주말에도 해열제로 버텼다. 계속 예감이 안 좋았다. 그냥 감기가 아닌 독감이나, 신종플루, 폐렴이 연상되었다. 수요일 외출부터가 잘못 끼어진 단추였다. 자아비판은 계속된다. 그 때 그렇게 안 했더라면, 맞아! 왠지 그랬어! 역시 엄마의 직감이 맞는거야. 내 생각대로라면 주말에 응급실에라도 갈 수 있었을 텐데. 그때부터 치료했으면 이렇게 악화되지는 않았을 거야. 갑자기 나의 직감력에 대한 신뢰는 고양되고 주변에 비난할 구실을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사후판단 편향은 사태가 벌어진 후 뒤늦게 그 불가피성을 확신하는 경향을 말한다. 사후판단 편향 때문에 사람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를 예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인식한다.
-p.266

 

말콤 글래드웰한테 들켰다. 나는 사후판단 편향에 빠져 자기합리화를 꾀하고 있던 중에 이 책을 만났다.

 

사후판단 편향이 초래하는 보다 심각한 문제가 있다. 과거의 문제를 바로잡는 데 집착하다 다른 미래의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p.272

 

말콤 글래드웰이 <뉴요커>에 실었던 글 중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간의 충동과 관련해 흥미롭고 색다른 이야기를 가려뽑았다(머리말 중 인용)는 이 책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작태들이 '사후판단 편향'에 빠져 있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언뜻 가벼운 칼럼집 정도로 치부되어 평가절하될 수도 있는 그의 글들에는 다른 모든 모호함을 봐 줄 수 있을 정도로 명료하고 진중한 경구들이 군데군데 튀어 나온다. 말콤 글래드웰이니까 가능한 얘기이다. 아마도 그건

 

아이디어를 찾는 비결은 모든 사람과 사물에는 그들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p.9

 

이러한 그의 자세 덕택일 것이다. 이것은 비단 아이디어의 원천 탐색에만 그칠 얘기가 아닐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과 사물에 그들 각자 나름의 서사가 깃들어 있다고 믿는 자세는 삶을 대하는 가장 사랑스러운 자세이기도 하다. 염색약 광고, 개 심리학자, 유방조영술과 항공사진 판독의 한계, 월스트리트의 잘 나가는 펀드 매니저의 몰락, 토니상 후보에도 올랐던 <프로즌>의 표절 논란, 거대 에너지 기업 '엔론'의 파산 등에 관련된 에피소드는 단편 소설처럼 생생하게 재현된다. 저자는 이윽고 이 에피소드들을 색다른, 때로는 이단아적인 시선으로 해부한다. 머리말에서 저자가 했던 '독자를 설득하지 않는다'는 선언은 자기충족적 예언이 되어 때로 모호한 결론으로 이어져 좀 맥 빠지게 하는 구석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그의 재기와 기지는

여전히 빛난다.

 

지적 재산권에 의외로 열정적으로 매달리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보다 돈을 관리하는 사람을 뽑는 데 더 많은 돈을 들이는 사회를 비판하며 채용을 개인과 회사가 맺는 낭만적인 관계로, 면접관이 듣고 싶어하는 말은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헛된 약속이라고 중얼거리는 말콤 글래드웰, 그를 나는 지극히 편파적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과거의 문제를 바로잡는 데 집착하다 미래를 망쳐버릴 지도 몰랐던 나를 구원해 주는 지점에 그가 서 있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