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아홉 살 어린 동생이 있다. 동생과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문득 '젊음이란 이런 거구나.' 싶다. 아직 동생에게 내일은 가능성으로 채워진 열린 공간이다. 희망도 있고 꿈도 있고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신뢰도 있다. 반면 동생 앞에 선 나는 이제 미래를 거진 닫힌 것으로 느낀다. 동생은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 반해 이제 나에게 몸은 통증이나 노쇠의 잠재태로 끊임없이 화제에 오른다. 누구나 자신을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특별한 존재로 느끼지만 어쩌면 두 사람의 공통점은 성격보다 연령대에서 더 많이 찾아질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나보다 아홉 살 어린 내 동생보다 나보다 아홉 살 더 많은 김영하 작가가 쓴 글에서 더 많은 공감대를 느끼게 됐다.






칠십대의 하루키가 최근에 쓴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말로 하기 힘든 먹먹함을 느꼈다. 이건 비단 작품 얘기가 아니다. 이제 하루키의 마지막 장편이 될지 모른다는 예감 때문이다. 하루키는 나의 아버지 뻘 나이지만 그의 작품은 내 청춘과 동년배다. 그 시대의 힙함을 아우르던 그가 이제는 마지막 장편이 될지도 모를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실감은 곧 나도 그런 순간을 맞이하게 될 날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김영하의 <단 한 번의 삶>을 읽으며 비슷한 생각을 했다. 특히나 작가가 마지막에 자신의 입으로 그런 고백을 한 대목을 맞닥뜨리고는 더더욱 그랬다.


다른 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때로 어떤 예감을 받을 때가 있다. 아, 이건 이 작가가 평생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글이로구나. 내겐 이 책이 그런 것 같다. 그런 책을 너무 일찍 쓴 것은 아닌가 두렵기도 하지만 이젠 돌이킬 수 없다. 

-김영하 < 단 한 번의 삶>


이 책은 분량이 많지 않다. 어쩌면 앉은 자리에서 집중하면 서너 시간이면 다 읽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영하 작가가 솔직하기로 작심하고 쓴 그의 사적인 인생 얘기가 가지는 여운은 작가가 많은 말을 하지 않으려 했던 기존의 결심에 설득당할 수밖에 없게 한다. 담담하고 솔직하게 부모님의 오랜 이야기로부터 작가의 어린 시절, 대학 시절,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그가 젊음으로부터 늙음으로까지 걸어올 때까지 그라는 사람이 어떤 변화를 겪었으며 그러한 변화가 그의 글에 어떻게 투영되어 있는지를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한때는 열정적으로 음습하고 파괴적인 인간의 숨겨진 욕망을 서사화하던 작가의 모습은 누구나 젊음의 통과의례처럼 겪는 하나의 성장통과 연결되어 있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상하게 마음이 서글퍼졌다. 나였던 그 아이로부터 지금의 나는 얼마나 멀어져 왔는지를 나도 작가와 덩달아 반추하니 그 과거를 이제는 만날 수 없다는 생각과 과거의 내가 읽었던 작가 또한 이제 그때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이런 내밀한 마지막이 될 고백을 하고 있다 생각하니 말로 형언하기 힘든 감회가 몰려왔다. 


대체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그 흔적은 다 어디로 사라졌나. 수많은 작별과 상실이 기다리고 있을 길을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이 절로 느려지고 무겁게 느껴진다. <단 한 번의 삶>이라는 그 자명한 전제를 각성시키는 작가의 글이 이 봄날 아이러니하게도 꽤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보는 이 봄꽃들은 이제 단 한 번이다. 내년의 봄꽃은 이 봄꽃과 다르다. 이생에서 겪는 모든 일들이 다 그러하다. 우리는 영원할 거라 생각하며 살지만 그 생각을 품은 우리는 그럴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질문을 일깨우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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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5-04-04 16: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껴 읽고 있어요^^
그리구... 용필 오빠 앨범 들으며 오빠의 마지막 앨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면서 가버린 시간을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blanca 2025-04-05 09:04   좋아요 0 | URL
분량이 참 아쉽긴 하죠. 그래도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쓴 느낌이 이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이 느껴지더라고요. 조용필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조용필이 라이브로 부른 <사랑하기 때문에> 들으면 정말 눈물 나더라고요. 일생을 자신이 부른 노래에 부끄럽지 않게 잘 관리하며 나이드시는 모습도 존경스럽습니다. 저희 엄마가 정말 너무너무 좋아하는 가왕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