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기록 - 버나드 루이스의 생과 중동의 역사
버나드 루이스.분치 엘리스 처칠 지음, 서정민 옮김 / 시공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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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역사학자 버나드 루이스의 출생연도는 1916년이고 생존해 있다. 이 책의 집필 당시는 아흔다섯이었다. 그러니 '세기의 기록'의 근거는 저자의 삶의 중량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런던태생의 그는 중동 역사에 대한 관심이 처음에는 취미에서 출발하였고 이윽고 집착을 거쳐 직업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유대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었지만 홀로코스트도 부상도 전사도 그의 이야기는 아니었으므로 스스로를 운 좋은 사내라고 칭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오백 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은 현존하는 최고의 중동학자라는 찬사를 받는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갈등과 반목이 끊이지 않는 중동 정세에 대한 역사적 분석이나 이해에도 차고 넘치는 그릇은 아니었다. 하지만 역사학자로서의 기본적인 자세, 아랍권 국가들의 정체성의 근간을 이루는 이슬람교, 서양 국가들 특히 미국이 중동에 대하여 가지는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태도 등에 대하여 대략적으로나마 이해하기에 그의 정제되고 간명한 언어, 직설적인 조언 등은 상당히 유용하고 귀에 잘 들어온다.

 

버나드 루이스의 학문적 성과와 그가 중동의 역사, 언어 등에 기울인 성실하고 겸허한 노력 그 자체와 미국의 중동 정책에 대한 자문이 때로 실책을 낳은 비판 지점을 분리하기란 쉽지 않다. 그 자신이 중동학 분야에서 에드워드 사이드 추종자들 무리에게 미움을 받고 있다고 이야기했고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고 발끈하는 것은 그가 얼마나 이러한 첨예한 논란의 가운데에서 나름 고통을 겪었는 지를 보여준다. 실제 현지 언어를 습득하고 현지를 방문하고 그들과 교류하며 최대한 공감어린 자세로 중동의 역사를 연구하고 저술하여 세상에 내어놓으려 했던 자신의 노력들은 어떤 힘의 행사나 압력에 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어서도 전락할 수도 없다,고 항변하는 그의 모습은 현실이 가지는 그 모호함, 불확실성,가변성 앞에서 역사학자가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서 있어야 하는 지에 대한 지난한 고민, 노력의 반증이기도 하다. 실제 아랍인들의 자생 능력과 민주화, 독재 정권에 대한 그의 언변은 때로 공격적이었다 관용적이었다 상충되는 부분이 발견된다. 그럼에도 이슬람교가 아랍인들에 대하여 가지는 의미와 무게에 대한 사려 깊은 이해와 분석, 설명, 급격한 서구화 이전의 아랍 세계의 협의 문화에 대한 애정은 오늘날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들을 잘못 이해하고 읽고 있는 지 깨닫게 한다.

 

역사학자로서의 그의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몇 번의 결혼 실패와 예루살렘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과의 교유, 여든이 되어 사랑에 빠진 '그녀'와의 사연 등은 넘치지 않게 역사의 갈피마다 스며들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제 그는 아흔다섯 살이다. 그리고 처음 스스로를 운이 좋았다,고 시작했던 것처럼 다시 지금도 여전히 운이 좋다,고 마무리한다. 아랍의 시들을 자신의 언어인 영어로 번역하고 역사의 저술에도 우아함이 있어야 한다,고 강변하는 노학자의 삶, 그 누구의 삶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때로 비판받을 지점이 있어도 그 성실하고 진지한 학문에의 천착과 삶에 대한 열정, 경탄, 사랑은 자연스럽게 감동을 자아낸다. 한 사람의 삶을 그 자신이 변주하는 것은 변호일 수도 있고 변명이 될 수도 있고 때로 미화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마침표가 가지는 중량감은 그 연주조차도 삶 그 자체를 구성하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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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7-19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의 소개로 생소한 책을 알게 되겠네요. 읽고싶어집니다. 성실하고 미려한 리뷰 고마워요. 아흔다섯에 쓴 저서라니‥학자다운 생의 무게를 미리 짐작해봅니다

blanca 2015-07-19 21:59   좋아요 0 | URL
한편으로 참 부럽더라고요.
자신의 분야에 일생을 매진해서 일가를 이룬 모습이 지나간 시간들에 가치와 무게를 더한 것 같아서요. 학자의 삶이 그런 면에서는 참 보람된 것 같아요.

라로 2015-07-19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든이 되어 사랑에 빠졌다는 부분이 가장 흥미로운 걸요~~~^^;;;; 리뷰에 대란 건 프야님과 같은 생각요~~~~^^*

blanca 2015-07-19 22:00   좋아요 0 | URL
저도요, 나비님. 여자친구도 비슷한 연배로 보였어요. 서로의 영역을 인정해 주며 따뜻하게 노년을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cyrus 2015-07-19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노학자의 사생활이 시시콜콜하게 느꼈어요.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부분이 젊은 시절, 학자가 정보병으로 참전했던 시절이랑 사이드가 자신을 비판한 것을 반박하는 내용이었어요.

blanca 2015-07-19 22:02   좋아요 0 | URL
에드워드 사이드에 아주 감정이 많더라고요. 학계에서는 상당히 반목하는 관계로 보였어요. 중간 중간 사생활이 좀 건조하게 덧붙어져 있어 숨고르기가 되는 면도 있고 부조화스런 부분도 있고 했던 것 같습니다.

숲노래 2015-07-19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라도 백 해를 살면 기나긴 이야기가 나올 테지요.
백 해를 살아온 동안 본 것을 쓸 테고
그동안 못 보고 지나친 것은 못 쓸 테고,
보고서 생각한 것은 쓸 테며
보고도 느끼지 못해서 생각하지 못한 대목은 못 쓸 테고...

blanca 2015-07-19 22:03   좋아요 0 | URL
아무리 오랜 시간 삶을 누려도 세상만사를 아우를 수는 없겠지요. 곱씹어 보게 되는 댓글입니다.

붉은돼지 2015-07-19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침 저도 지금 이 책 읽고 있는데, 저자가 정보부대로 전출된 부분인데요, 공직자비밀엄수법 때문에 업무에 대해 자세히 말 할 수 없다고 하네요 ^^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고....어쨋든 나름 재밌게 보고 있어요^^

blanca 2015-07-19 22:05   좋아요 0 | URL
아, 지금 읽고 계시군요!! 저도 이 대목은 좀 김 빠지더라고요. 언급하지 못하겠다,는 이야기가 또 다른 부분에서도 나와요. 궁금증만 자극하고 감질나게요^^;;

희선 2015-08-05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는 취미였다니... 그런 사람이 하나를 오랫동안 알아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여러가지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사람도 있지만... 중동의 역사와 자신의 삶을 함께 쓰다니, 어떨까 싶군요 자신이 나고 자란 나라 역사를 쓰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다른 나라 역사를 공부하고 쓰는 건 더 어려울 듯합니다 하지만 그 나라에 사는 사람이 못 보는 것을 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아흔다섯에 책을 썼다는 게 대단하게 보입니다


희선

blanca 2015-08-05 14:58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이 책은 자전적인 요소가 강하다 보니 중동 역사 그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서술이 있는 것은 아니예요. 자신의 삶과 그 삶을 관통해 온 중동 역사에 대한 애정, 관심, 흥미를 끌 만한 에피소드 들이 나옵니다. 네, 큰 풍파 없이 자신의 분야에서도 일가를 이룬 노학자가 부럽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