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골 수집가에서 오늘날의 유명인사 서명 수집가에 이르기까지 수집광의 역사를 소개한 책이다.
저자는 수집의 역사를 따라가면서 그 안에 담겨 있는 사회적ㆍ문화적 배경을 설명한다.

왕이나 귀족의 특권이었던 수집활동이 보편적인 활동으로 확산된 때는 르네상스 시기다. 이 시기에는 특이한 물건이나 생물 표본들이 수집장들을 채웠다. 이 시기 수집가들의 특징은 갖고 싶고 구할 수 있는 것이면 닥치는 대로 모으는 것이었다.
박물학적인 수집의 전성기였던 르네상스와 17세기의 대표적인 수집가로는 용과 결투를 벌였다는 이탈리아 과학자 알드로반디, 자신의 수집장을 '연금술 실험실'로 삼았던 프라하의 황제 루돌프 2세, 빼어난 시체 해부기술과 인체 복원 기술을 가졌던 프레데리크 로이스 박사, 대영박물관의 토대를 제공한 한스 슬로언 경 등이 꼽힌다.
18세기 학술원이 생기고 계몽주의가 태동하면서 수집도 부문별로 분화되었다. 수집선을 한 분야로 집중하는 것이 중요해졌으며, 합리주의적인 분류법과 자연에 대한 총체적 서술이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수집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8세기 후반과 19세기에는 독특한 전시물들이 많이 나왔다. 태어나자마자 죽은 기형아, 샴쌍둥이, 팔다리가 여러 개인 시체, 갈고리 손, 부풀어 오른 뇌, 폐결핵으로 죽은 사람의 시체 등이 전시된다.

아름다움과 죽음을 융합한 바니타스 양식의 우아함은 사라지고 사람의 몸을 마치 딱정벌레 표본처럼 연구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이 등장했다.
이런 시선은 20세기에 들어와 더욱 두드러지다가 표본의 범위를 확장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수용소 포로들을 활용했던 나치 독일의 인체 수집선에서 그 절정에 다다른다.
기계 생산시대에 들어서면서 키치, 즉 예술의 흉내만 낸 대량생산의 결과물이 수집의 가능성을 열어줬다. 대량생산으로 광범위한 계층의 사람들이 싸구려 물건으로 자기 세계를 채우는 재미에 빠져들 수 있었다.
어떤 이는 '사람들이 그냥 내버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우유병을 수집하기도 하며 '이걸 버리면 다시 못 보겠지'라며 제품포장지나 광고물을 모으기도 한다.

저자는 이처럼 역사를 따라 다양한 수집가들을 소개하면서 물건을 모으는 행위 뒤에 숨은 인간심리의 저변을 읽어내고 있다.

 

 

 

 

 

'조엘 온 소프트웨어'를 읽어봤다면 안 사볼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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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6-01-28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에 있는 책 좋은가 봐요. 전 컴에 대해선 그다지 아는 게 없어서...이런 문외한이 읽어도 좋은 건가요? 소프트 웨어쪽이라면 상상력이 좋아질려나?ㅜ.ㅜ
 

 

 

 

 

 

‘차별과 폭력을 넘어, 평화와 공존의 시대를 향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의 서문 앞에는
다산 정약용의 ‘여름 술을 대하다’ 라는 글이 실려 있다.

“한밤중에 책상을 차고 일어나/
탄식하며 높은 하늘을 본다네./
많고 많은 머리 검은 평민들/
똑같이 나라 백성들인데/
무엇인가 거두어야 할 때면/
부자들을 상대로 해야 옳지/
어찌하여 가혹하게 긁어가는 일을/
유독 힘 약한 무리에게만 하는가.”

그리고 서문에 실린 다음과 같은 구절.

“나는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화려한 영화를 재미있게 봐도 과연 그 전투 장면을 어렵게 연출해낸 수많은 엑스트라들이 일당으로 얼마를 받았을까 하는 궁금증을 떨쳐낼 수 없다. 상품이 아무리 좋아도 그 상품을 만든 이들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않았다면 ‘노예 노동의 결실을 즐기고 있다’는 가책을 어떻게 면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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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31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리스 문명의 모태는 이집트’ 17세기까진 상식
19세기 유럽인종주의자 아리안 작품으로 바꿔치기
‘사료 비평’이란 이름 아래 증언자료 폐기 날조
유럽의 문화적 오만 일침 서양사 근본 전복

19년 전 서양사학계를 술렁이게 한 뒤 지금까지 집필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그리스 역사 바로보기’ 연작 <블랙 아테나>(소나무 펴냄) 제1권에는 ‘날조된 고대 그리스, 1785-1985’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부제도 그렇거니와 책 제목부터가 몹시 도발적이다. 아테나는 그리스문명 그 자체를 상징하는 도시국가 아테네와 그 도시의 수호신인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가리킨다. ‘검은’ 아테나.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 언어까지 두루 섭렵한 저자 마틴 버낼 미 코넬대 명예교수는 아테나가 이집트어 ‘헤트 네트(네트 또는 네이트의 신전, 집)’에서 유래했다는 걸 자세히 규명한 뒤 “(두 말간의) 음성학적 일치가 적절한 정도라면, 의미론적 일치는 완벽하다”고 단언한다.

아르고스와 테베 등을 식민지배하며 그리스문명을 일군 주역은 아프리카인(이집트인) 및 셈족(페니키아인)이었는데, 유럽 낭만주의자와 인종주의자들이 이 멀쩡한 ‘고대 모델’을 폐기처분하고 그걸 뒤집어놓은 ‘아리안 모델’로 바꿔치기 해놨다는 얘기다. 말하자면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아리안 모델’적 그리스문명은 19세기 유럽의 발명품인 것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신화 자투리·전설·민담 모으고 상상력 보태
상식 깨는 신화 원형 재구성
전설속 마고할미에서 남녀 우위 뒤바뀜 보고
‘바리데기’ ‘제석본풀이’ 등 무가 통해
모계사회·수렵시대의 흔적 끄집어내

<우리신화의 수수께끼>(한겨레출판 펴냄)는 그에 대한 답을 하고자 한다. 티벳, 몽골, 만주, 한국 신화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지은이 조현설은 동아시아 신화를 섭렵하고, 신화 자체는 물론 전설과 민담에서 화석으로 남은 신화의 조각을 모아 잃어버린 신화의 원형을 재구한다.

흩어진 시공의 범위가 광대한 신화들은 연구자로 하여금 시적 상상력을 요구하고 때로는 논리의 비약을 감행케 하지만 깁고 메워 제시되는 ‘물건들’은 으레 그런 줄 알아온 사람들, 특히 교과서로만 신화를 배워온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단군신화의 완고한 틀을 깨면서 첫머리부터 독자의 시각교정을 요구한다. 단군신화의 웅녀는 자궁을 빌려준 대리모에 지나지 않는다! 판이한 에벤키족 신화와 곰나루 전설. 웅녀가 고조선에 편입되어 정체성을 잃었거나 고조선 해체 뒤 잔류집단이 북방으로 간, 혹은 남하한 족속의 시조모라고 추정한다. 나아가 설암(1651~1706)이 지은 <묘향산지>에서 단군의 어미가 곰이 아닌 백호일 가능성까지 연다. 중국 쓰촨, 윈난에 사는 이족의 신화, 손진태 <조선민담집>의 남매혼 홍수신화 변이형, 왕건의 6대조 호경 이야기, 아크스카라족 호랑이 시조신화가 뒷받침 자료로 동원된다.

또다른 단군신화를 전하는 <삼국유사> 왕력편에 주목한다. 즉, “단군이 서하 하백의 딸과 관계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이 부루다. 해모수가 하백의 딸과 사통하여 주몽을 낳았다니 부루와 주몽은 배다른 형제일 것”이라는 내용이다. 지은이는 고려인의 삼한통일 의식이 부루를 고조선, 고구려, 부여의 매개자로 만들었음을 추론한다. 나아가 부루를 오랜 조공관계의 표상으로 삼은 조선 초의 사대의식과 갑오개혁 이후의 변주를 통해 역사 속에서 신화가 살아 움직임을 내세운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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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말 최소사집 윗방에서는 희미한 석유 등잔 밑에 네 사람이 상투를 마주 모으고 앉았다. …“자들 까라고.” “서시(여섯끗).” 돌쇠는 성선이 앞에 놓인 돈을 좍 긁어 들였다.

완득이가 석 장을 까놓는 것이 일육팔 진주(다섯끗)였다. “난 일곱끗이야” 하고 응삼이도 석 장을 까놓으며 머리를 긁는데 돌쇠는 거침없이 응삼이 앞에 놓인 돈도 소리개가 병아리 움키듯 집어 들이면서 “청산만리일고주(靑山萬里一孤舟) 칠칠오 돗대 갑오(아홉끗) 흔들거리고 떠온다.” 툭 제끼는데 그것은 분명히 오칠칠 갑오였다. 응삼이는 두 눈이 툭 벌거졌다.’

소설가 이기영이 1935년 발표한 ‘서화(鼠火)’에는 당시 투전(鬪錢)판의 모습이 눈에 잡힐 듯 하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나 나도향의 ‘뽕’처럼 당시 소설은 이런 노름판 풍경이나 노름꾼을 작품의 에피소드나 캐릭터로 흔하게 다뤘다. 예나 지금이나 노름은 생활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생활사의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별로 조명된 적은 없지만).

유승훈(36) 부산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쓴 ‘다산과 연암, 노름에 빠지다’는 아마도 고금의 우리 문화 속에 나타나는 도박의 역사를 통사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저작물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출판사에서 의미 부여한대로 한국사 속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들의 발견’이다.

신라 시대 최상류 귀족들의 연회장이었던 경주 안압지에서 발견된 주사위는 당시의 놀이 문화가 지금과 별로 다를 게 없다는 점에서 놀라울 정도다. 1975년 찾아낸 이 목제 주사위는 4각형이 6면, 3각형이 8면인데 각 면에는 벌칙일 것으로 추정되는 문구가 새겨 있다.

술 세 잔 한 번에 마시기(三盞一去), 혼자 부르고 혼자 마시기(自唱自飮), 노래 없이 춤추기(禁聲作儛), 시 한 수 읊기(空詠詩過), 얼굴 간질여도 꼼짝 않기(弄面孔過) 등이다. 고려에서 조선 초까지 유행했던 격구(擊毬)도 내기를 걸었던 까닭에 단순한 운동 경기가 아니라 도박으로 이어지기가 단사였다. 유 학예연구사는 “당시 유흥 풍속과 놀이 문화의 발전은 귀족 계급의 성장과 무관하지 않다”며 “계급의 분화, 귀족 문화의 발전, 통치 계급의 부패 등이 도박이 발전하는 원인”이라고 풀이했다.

너댓 명이 둘러앉아 말판이나 종잇장을 들고 돈따기를 목적으로 벌이는 본격적인 노름은 조선 시대부터 유행했다. 주사위 두 개를 던진 뒤에 나온 수만큼 말을 움직여 승부를 가리는 쌍륙(雙六), 조선 후기 도박꾼을 사로 잡았던 투전, 일제 강점기 이후 지금까지 우리 생활에 깊이 뿌리내린 화투는 가볍게 즐기면 놀이고, 돈이나 재물 따위를 걸고 승부를 다투면 진짜 도박이다.

책 끝에서 저자는 도박에 얽힌 ‘흥미로운 일상의 역사’를 복원한다는 당초 취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수많은 도박꾼들로 법석거리’로 세상에 한 마디 메시지를 던진다. 저자는 “현대에 들어서는 도박의 시장이 국가 권력의 용인 하에 비대해지고 있으므로 그 위험성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마당”이라며 “도박으로 인한 폐단 역시 개인의 문제이기보다는 엄연히 사회적 문제”라고 환기했다.

 

 

 

 

악마 천년의 역사’는 중세 중반부터 서양 문화 속에서 악마가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꼼꼼하게 살펴나간 책이다.

책을 쓴 프랑스 역사학자 로베르 뮈샹블레는 ‘악령은 서양 문화의 감추어진 부분, 말하자면 십자군 원정부터 우주 정복에 이르기까지 서양 문화가 만들어 내고 온 세상에 전파한 위대한 사상들의 정반대’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악마는 ‘수많은 문화적 경로들에 의해서 발생된, 매우 실제적인 집단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사탄에 대한 이미지가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13세기. 한때 인간을 속이기도, 인간에게 속기도 하던 인간적인 악마는 15, 16세기를 만나 마녀 사냥이라는 광적인 집착의 대상으로 바뀐다.

저자는 이 책에서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등 수많은 악령 영화에서 만화의 주인공, 맥주 광고, 대중 음악, 혹은 도시의 정글에서 떠도는 소문까지 살펴보면서 악마의 역사ㆍ문화적 실체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종교의 역할이 적지 않지만 악마는 서양 문명이 공동의 정체성을 구축하려고 노력하면서, 악마 이데올로기는 사회를 통제하고 개인의 의식을 감시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사회정의에 대한 토론을 소설 형식으로 풀어 쓴 윤리학 책.

윤리적 추론을 거의 하지 않던 한 젊은이가 윤리학에 대해 토론하는 맥주집 '콜버그의 호프집'에서 개성 넘치는 사람들을 만나 논쟁적 사회문제에 관한 열띤 토론을 통해 윤리적으로 사고하는 체계적인 방법을 키워나간다.

윤리 상대주의 논쟁, 포르노 허용 문제, 매매춘 문제, 재산권 문제와 분배 문제 등을 주제로 한 논쟁을 통해 통념을 깨는 비판적인 윤리적 사고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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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위기의 뭇 생명들을 대신하는 탄원은 윌슨 특유의 사려깊음이 곁들여져 깊은 울림으로 연결된다. 독설도 마다 않는다. "사람이 점령한 에덴은 도살장에 다름 아니었다"는 것이고 "논쟁을 하기에는 이미 늦었고, 이제는 경제주의자와 환경주의자가 의기투합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책을 채운다. 인류는 지구 환경의 '탕아 소유주'가 아니라 '성실한 관리인'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눈이 부시게 지적이며, 놀라운 희망의 메시지가 담긴 책 앞에 누가 감히 "노!"할 수 있겠는지….

배영대 기자

 

 

 

 

 

 

2004년 일본 추리작가협회상과 본격미스터리상 대상을 수상한 일본 소설. 그해 말 각종 베스트셀러 순위 미스터리 부문을 대부분 석권한 인기작이다. 방금 사정을 하고 늘어진 한 남자의 질펀한 입담으로 시작되는 도입부가 독자를 사로잡고는 곧바로 긴장감 넘치는 추리 세계로 이끌어간다.

 

 

 

 

 

중국 당나라 때 신화와 도교를 바탕으로 원숭이 아내, 신선, 협객, 귀신이 등장해 기이한 상상력과 환상적인 서사를 펼친 ‘배형전기’를 옮겼다.

 

 

 

 

 

영국 개방대학 물리학과 교수 출신인 스티븐 웹의 ‘…모두 어디 있지?’는 과학자, 철학자, 역사학자, SF 작가 등이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찾아가는 흥미로운 책이다. 책은 “모두 어디 있지?”라는 질문에 대해 다방면에 걸친 다양한 풀이를 크게 세 범주로 정리한다.

첫번째가 외계인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는 주장이다. 영국의 거석 유적 스톤헨지, 남태평양 이스트섬의 거상을 우주인이 세웠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외계인이 존재는 하지만 아직 우리와 의사 소통이 안 된다는 부류이고, 세번째는 외계인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난해한 개념이나 독자를 가르치려는 작가의 욕망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불과 몇 문단으로 이루어진 짧은 글들은 무지개 송어처럼 꿈틀대면서 손에 잡혔다가 곧 미끄러져 나간다. 우리가 성인이 되면서 잃어버린 모든 것들이 그곳에 그대로 남아있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어린 왕자>의 사막여우같이 한두 가지의 교훈을 전하려 하거나 <루바이야트>의 늙은 현자처럼 당신을 달콤한 허무로 초대하지 않는다. 그가 현대문명의 위기를 그렸다거나 환경생태문학의 선구자라거나 하는 얘기도 그냥 거창하게만 들린다. 그는 몇 가지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나지막이 들려줄 뿐이다.

그는 1984년 49살의 나이에 자살했다. 얼굴이 날아간 그의 시신은 몇 주가 지나서야 발견되었다. 그의 몸 옆에는 술병과 44구경 총이 놓여 있었다. 집의 벽과 문, 천장에는 수백 개의 총알구멍이 나 있었다. 그때 미국의 대통령은 레이건이었다. 카프카의 말처럼 미국인은 너무 건전하고 낙천적이었다. 남들이 다 좋다는 시절에 그는 미국이 잃어버린 송어를 낚으러 일찍 떠났다.

이 책의 번역본은 1987년 한 문예지의 부록으로 처음 나왔다. 서울대 김성곤 교수의 번역은 훌륭하다. 주변에 책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면 절대 이 초판본을 그에게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절판되어서 중고서점에서도 찾기 힘든 이 책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최근 역사를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는 강의로 엮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역사학자와, 인문학적 깊이가 담긴 만화를 꿈꾸던 젊은 만화가”가 만나 만들어낸 <현대사 인물들의 재구성>(앨피 펴냄)에 따르면 류근일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봉건적 자유주의자”에 불과하다. 그의 행적은 ‘과대포장된 순수 청년의 텍스트 놀음’이었고 ‘노블리스 오무라이스(?)’였으며 ‘김일성주의 비판에서 알리바이 찾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를 한국 노동운동사에 전설을 남긴 안쓰런 ‘생계형 전향자’ 김문수와 함께 엮어놓은데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연들이 있다.

한국 현대사 인물 22명. ‘북으로 간 사람들’에는 박헌영, 홍명희, 그리고 문익환, 임수경이 등장한다. 김주열과 전태일, 박종철은 ‘변혁의 불씨들’로 묶었고 김종필과 이기붕은 ‘절대권력의 2인자 되기’로, 김용무, 이인, 오제도, 선우종원은 ‘절대권력의 조력자 되기’로 엮었다. 신군부 ‘전·노’에 대한 경멸에는 거침이 없다.

때로 너무 튄다 싶을 정도로 익살과 재치, 풍자와 야유가 범람하는 독특한 글쓰기는 어쨌든 읽는 재미를 주며 설정한 주제에도 충실하다. 과감한 생략과 단순화로 역사를 지나치게 희화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는 뒤로 읽어갈수록 해소된다. 그만큼 독특한 감식안과 나름의 진지성, 방대한 텍스트를 소화해낸 성실성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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