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의 회사는 직류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해 여러 지역에 전송했다. 하지만 직류 방식은 중간 전류 손실이 커서 발전소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이 틈을 노리고 피츠버그 출신 기업가 겸 발명가 조지 웨스팅하우스가 교류 방식을 들고 전기사업에 뛰어들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에디슨은 “웨스팅하우스의 교류 장치에서 나오는 전류는 접촉만 해도 즉사하므로 매우 위험하다. 사형집행에나 유용한 것”이라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고압의 교류 전류를 사용하는 전기의자를 만들어 뉴욕 주 교도소에 전달했다. 결국 ‘도끼 살인마’ 윌리엄 케믈러의 사형이 교수형 대신 처음 전기의자로 집행됐다. 그러나 케믈러는 즉사하지 않았고 에디슨은 궁지에 몰리는데….

이 책은 ‘전기(電氣)’가 특별한 부와 명성의 가능성을 약속하는 열쇠였던 19세기 말 전기의 시대를 선점하려는 세 전사(戰士), 즉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 세르비아계 괴짜 발명가 니콜라 테슬로 간의 치열한 경쟁과 암투를 드라마처럼 펼쳐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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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3-11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개는 재미있는데..
 

 

 

 

 



“동물은 언제나 사람보다 흥미로웠다. 사람들은 약간 특별한 동물로서 내 관심을 끌었다.”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1903∼1989)의 생애는 한 인간의 공과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그는 알에서 갓 깨어난 새끼 오리가 처음 본 물체를 어미로 알고 따라다니는 ‘각인’ 현상을 발견하는 등 동물 행동의 의미를 분석하는 비교행동학을 창시했다. 또 회색기러기가 알을 굴리는 습성에 대한 연구로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그는 나치당원이었다는 어두운 과거를 갖고 있다. 로렌츠가 죽기 전 구술한 회고록 등 각종 미출간 원고를 토대로 엮은 이 평전은 로렌츠의 삶과 업적은 물론 그 뒤에 가려져 있던 어두운 과거까지 복원해 보여 준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인간, 개를 만나다’도 함께 번역돼 출간됐다. 로렌츠가 수십 년간 개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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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부터 96년까지 아사히 신문 기자를 지낸 저자가 전후 일본 정치사를 훑었다. 중요한 사건과 인물, 주요 정치 세력과 파벌간의 갈등 및 변화, 내각 교체 등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일본에서는 비판적 지식인들이 많이 읽었다. 사실에 대한 정확한 기술과 자료의 엄밀함이 돋보인다.

전후 천황제가 유지된 이유, 일본 정당
정치의 보수적 구조 및 일본 정치의 보수화, 사회당의 실패 등 일본 정치가 걸어온 길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자민당 파벌의 계보, 정당 재편, 전후 총리 일람 등이 도표로 정리돼 있으며 각종 선거 결과가 데이터로 수록돼 있어 일본 정치사 사전처럼 활용할 수 있다.

 

 

 

 

 

죠지 몬비오는 2003년에 쓴 이 책 〈도둑맞은 세계화〉(원제는 '동의의 시대: 새로운 세계질서를 위한 선언')에서 '가짜 세계화'에 대한 현재의 대응방식들에 동의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세계무역기구(WTO) 회담이 열리는 건물 앞에서 '반세계화' 구호를 외치는 기존의 '반세계화 운동', 개별 국가를 위한 대안적 경제정책을 시행하자는 남미식의 '지역화 운동', 또는 '反권력'으로 권력을 해소하거나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선진국 중심의 '무정부주의 운동'은 '가짜 세계화'를 '진짜 세계화'로 되돌리기엔 부족하거나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그는 지구적인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은 지구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주장하는 "지구적인 수단과 기구"는 크게 네 가지다. 민주적으로 구성된 세계의회, 현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부여된 권한을 이임받은 민주화된 유엔총회, 무역적자를 자동적으로 소멸하고 채무 축적을 예방하는 국제청산동맹, 부자 나라를 제약하고 가난한 나라들을 해방시키는 공정무역기구가 바로 이것들이다.

 

 

 

 

 

 

서울 문화예술의 원형을 발굴하는 ‘서울문화예술총서’의 첫 책. <서울의 밤문화>(김명환·김중식 지음, 생각의나무 펴냄) 서문은 이런 야심찬 일성으로 시작된다. 하루를 천일처럼 살아온 서울의 일상이 평범할 리 없다. 서울의 밤은 격변의 스트레스를 배설하는 시간인 만큼 격렬하고 기형적이다. 이 책은 어둠의 시공간을 부지런히 탐색하며 즐거움을 선사한다.


<서울의 밤문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서울의 밤을 통시적으로 탐색하고 2부는 공시적으로 탐색한다. 따라서 1부는 시간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2부는 공간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역사적으로 본 서울의 밤문화는 두 단어로 요약된다. 술과 ‘오입’. 밤은 남성들의 욕망으로 질척댔으며 오직 남성의 시각으로 전시됐다. 일제는 기예를 중시했던 조선의 기생문화에 성매매를 들여왔다. 대궐의 관기들은 서서히 민간으로 내려왔으며, 일본의 관습에 따라 공창제가 실시됐다. 기생이 가정파탄의 주범으로 지탄받는 질펀한 밤문화가 시작된 것이다. 명월관을 시작으로 접대부를 고용하는 고급 요릿집들이 서울의 밤을 밝혔다. 1930년대에는 이른바 ‘모던 바람’에 힙입어 서구식으로 꾸며진 카페와 함께 ‘춤 열병’이 번졌다.

해방 이후 무려 37년 동안 서울의 밤은 그야말로 암흑의 시기를 맞는다. 미군정이 사회질서를 유지한다며 시작한 야간 통행금지 때문이다. 그 뒤로 1982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시민들은 밤문화 대신 ‘초저녁문화’를 맛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암흑기에도 술꾼과 춤꾼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1960년대에는 특권층의 요정과 서민들의 대폿집과 아쉬운 대로 아가씨에게 술잔을 받아먹을 수 있는 ‘비어홀’이 있었다. 1970년대에는 카바레와 고고클럽의 등장으로 ‘춤바람’이 불었다. 카바레는 ‘유한마담’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출입하는 사교의 장이고, 고고클럽은 젊은이들이 온갖 억압을 뚫고 마음껏 몸을 흔드는 공간이었다. 물론 둘 다 당대의 사회 문제로 부각됐다. 제비족의 등장과 문란한 ‘작업’이 도마 위에 올른 것이다. 지은이는 “한국 밤문화의 기형적 돌연변이”인 사창가 순례에도 나서는데, 자세한 내용은 대략 생략한다.

2부는 지금 서울의 해방된 밤문화의 현실과 문제점, 대안까지 아우른다. 지은이의 말대로 21세기 한국인들은 밤시간을 “각자의 개성과 취향과 욕구에 따라 갖가지 형태로” 소비한다. 지은에게 서울의 밤문화는 밀실과 광장의 공존과 충돌로 요약된다. 노래방, PC방, 전화방 등 밤을 장식하는 밀실은 급기야 모든 방들의 총체적 형태인 ‘찜질방’으로 진화한다. 시민들은 날이 어두워지면 밀실로 기어들어가 전투 같은 삶의 스트레스를 배설한다. 그러나 네티즌들의 거리응원과 촛불시위처럼, 밀실의 문화는 광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것은 80년대와 다르게 비조직적이고 자발적이고 우연적인 밀실들의 확장이다.

지은이는 ‘문화예술’로 승화될 수 있는 밤문화의 대안을 장황하게 찾아나간다. 이를 위해 대학로와 같은 문화지구의 상업화, 시민을 위해 전시되지만 시민의 참여를 제한하는 청계천 등을 자세히 짚어본다. 지은이의 결론은 문화인프라 확충이다.

이 책이 서울의 밤문화에 대한 완벽한 보고서가 될 수는 없다. 1부는 다양한 기사들을 인용하며 역사적 사실들을 짜깁기한다. 밤문화의 구조와 배경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없을 뿐 아니라, 자칫 낭만화하는 경향이 있다. 추억은 연구가 아니다. 2부는 현재 서울의 밤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에 대한 탐구와 다양한 밤문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제대로 된 밤문화는 ‘문화예술적’이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문화인프라가 필요하다는 점만 강조된다. 그래서 대학로와 청계천 분석에 빠져들며 본래의 맥락에서 점점 멀어진다. 어쨌든, 밤을 밝히며 다양한 자료를 뒤졌을 지은이들의 부지런함이 책에 배어난다. 무엇보다 시도 자체가 매우 재밌다. 서울의 밤문화를 위해 그들의 밤은 유배됐을 것이다.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한 시대를 풍미한 고전문학사의 라이벌을 발견해내고, 그들의 치열한 예술세계와 삶을 통해 잊혀진 문학사를 복원한다. 그들의 문학적 지향, 정치적 선택, 문학사의 다양한 풍경들이 풍부하게 드러난다. 월명사와 최치원, 김부식과 일연, 이인로와 이규보, 정도전과 권근, 서거정과 김시습, 김만중과 조성기, 박지원과 정약용, 이옥과 김려, 심재효와 안민영 등의 삶이 생생하게 녹아 있다. 4명의 소장학자들은 “우리의 작업이 근대가 직면한 한계를 직시하고 이를 넘어서”는 노력과 연대하려 한다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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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프라하에서 60㎞ 떨어진 테레진 마을. 1941년 나치는 이곳에 유대인 수용소를 세웠다. 유대인 관리가 잘 되고 있다고 선전하기 위해 만든 ‘모범 게토’였지만, 사실 이 수용소는 아우슈비츠로 가는 중간 기착지였다.

거기엔 아이들도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아우슈비츠에 자리가 나면 그들도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기차에 실려 갔다. 그리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1942년부터 1944년까지 10살 전후의 아이들이 테레진으로 왔다. 그 수는 15,000명에 달했지만 단지 100명만이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수용소에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아이들을 지도했던 선생님이 그 중 4000점을 가방에 정리해 남겼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아우슈비츠로 가는 기차를 타기 직전의 일이다. 그 가방은 이리저리 떠돌다 전쟁이 끝나고 10여 년이 흘러서야 세상을 향해 열렸다.

그렇게 세상에 알려진 테레진 아이들의 영문시화집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한참을 침묵해야 했다. 책을 한장씩 넘길 때마다 드러나는 절절한 사연도 마음을 울렸지만, 그 작품의 완성도에 놀랐다. 고작 10살 전후의 아이들이 물감과 종이가 없으면 주변의 식료품 봉지나 서류 봉투, 신문지 따위를 오리고 붙여서 만든 것들인데…. 테레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안네 프랑크가 살았구나….

이 책의 출간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다른 생각들도 꼬리를 물었다. ‘도대체 이 책을 누가 읽을까’, ‘우리 시장에선 남녀상열지사가 아니면 슬픈 이야기는 안 통한다는데’, ‘그 옛날에 유럽의 작은 도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관심이 있을까, 사실 그 때는 우리나라도 죽을 지경이었는데’, ‘세상에 이런 비극이 한두 번이 아니었잖아. 이런 시화집이 내 손에까지 온 것도 어찌 보면 유대인의 힘인데 내가 뭐 하러 맞장구를 쳐주어야 하나’

하지만 내 뇌리에 박힌 강렬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테레진, 희망의 노래>란 제목으로 책이 출간됐다. 결과는 최악이었다. 다빈치가 낸 책 중 가장 안 팔린 책으로 남아 있다. 더구나 언론이나 미디어의 주목도 거의 받지 못했고, 단 한 명의 독자도 반응이 없었다. 책은 고스란히 창고에 잠겼다.

1년 후 표지 디자인을 바꾸고 제목을 <더 이상 나비들은 보지 못했다>로 바꾸어 재출간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나는 더욱 슬프고 참담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또 한 권의 책을 곧 출간하려고 한다.

도대체 왜 이럴까?

마지막, 정말 마지막/그렇게 선명하고, 밝은, 눈부신 노랑/태양이 흘린 눈물이 흰 바위로 떨어지며 노래한다면 그럴까//그렇게, 그렇게 노란 것이/가볍게 위로 휙 올라갔다/떠나 버린 것이 분명하다/세상에 작별인사 키스를 하고 싶어했으니까//일곱 주 동안 나는 여기에 살았다/이 게토 안에 갇혀서/하지만 이곳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있었다/민들레는 나를 부르고/뜰의 밤나무는 가지를 뻗는다/하지만 더 이상 나비들은 보지 못했다//그 나비가 마지막이었다/나비들은 여기 살지 않는다, 여기 게토에는(‘나비’전문, 파벨 프리에드만)

파벨 프리에드만은 1931년 프라하 출생으로, 1942년 4월 26일 테레진으로 이송돼, 1944년 9월 29일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했다. 13살이었다.

박성식/다빈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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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에 기반한 현대 산업문명에 대한 냉철한 비판서다. 미국의 작가이자 문명비평가인 저자는 세계적 사회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의 ‘통합’(국내에는 지난해 ‘통섭’이란 제목으로 출간)에 대한 비판적 서평 형식을 통해 현대 과학기술의 맹점을 파헤치고, 문명비판에까지 이른다.

저자가 ‘통섭’을 선택한 것은 윌슨이 우상파괴적 일을 하는 척하지만 실은 대중적인 과학정통주의를 대변한다고 보기 때문. 또 그가 ‘아는 것’은 물론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보여주는 태도가 산업주의 가치·심리의 전형이라는 것. 저자는 윌슨이 유전생물학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모든 인간·사회 현상을 해명코자 한다고 본다. 이는 과학자가 과학의 영역을 뛰어넘어 인간과 세계를 해석하려는 과학주의 이데올로기의 위험성을 드러낸다는 지적. 윌슨이 자연과학·사회과학·인문학 등 지식의 대통합을 외치지만 이는 통합이 아니라 자연과학 하나가 장악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저자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는 시구절을 인용, 인간의 삶을 축소·환원이 아니라 확장시키자고 말한다. 즉 현대과학은 모래알에서 세계를 보지 못하고 그저 쪼개고 쪼개 최소단위로 환원하듯 삶도 기계적·예측가능한 것으로 다뤄 축소·환원시킨다는 것. 이제 과학기술과 한탕주의 기업정신의 결합으로 인한 폐해, 합법적 야만주의인 ‘경제 제일주의’에 의한 인간성과 생태계의 파괴 등을 극복하자는 주장이다. 이는 우리가 과학기술이 아니라 일하고 살아가는 생태계와 인간 공동체의 건강성을 우리 경제의 척도로 삼는 데서 시작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한겨레] 아깝다 이책

학창시절 행운의 편지 한 통 안 받아본 사람이 있을까?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숫자의 사람들에게 그와 동일한 편지를 보내지 않으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을 애써 무시하면서도 한동안 가슴 졸였던 기억이 난다. 편지 속에 등장하는 협박의 대상이 나라면 좀 대범하게 넘길 수도 있었을 터인데,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일 경우에는 고민이 더 커지곤 했다.

 그런데 이 책 <대중의 미망과 광기>를 진행하면서 행운의 편지가 비단 나에게만 고민을 안겨준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20세기 초반 서양에서도 주기적으로 등장했다고 하니, 유서가 꽤 깊은 인류의 문화유산인 듯하다.

평소에는 합리적이고 현명한 개인이 집단행동에 가담하면서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되는 사례는 역사 속에서 수없이 되풀이되어 왔다. 한 나라의 국민 대부분이, 심지어 한 대륙 전체가 광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충동적인 행동을 했던 일도 적지 않다. 1841년 초판이 발간된 찰스 맥케이의 <대중의 미망과 광기>는 이런 군중의 광기에 관한 책 가운데 대표적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언론인으로서 계몽주의자이며 이성의 신봉자였던 저자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고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집단 광기’ 현상을 다루고 그 원인을 분석했다.

많은 지식인을 망친 연금술, 거품회사에 대한 영국인들의 미친 듯한 투기,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찮은 일을 명예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살인을 합법화하던 결투 관습, 십자군 전쟁, 마녀사냥, 유령의 집에 이르기까지 그 폭과 범위가 매우 넓다.

흔히 고전은 ‘인구에 회자되지만 실제로 읽어본 사람은 별로 없는 책’이라고 한다. 금융 투기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나 영국의 남해 버블 회사, 프랑스의 미시시피 버블에 대해 언급하곤 한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들의 원형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 책에는 한 가지 약점이 있다. 출간된 시점이 19세기 중반이다 보니 대중이 미망에 사로잡히고 광기에 빠진 근현대 사례와 분석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나는 앞으로 이러한 약점을 보충해 좋은 짝을 이룰 수 있는 또 한 권의 책을 출간하겠다는 출판쟁이로서의 욕심을 갖고 있다.

인터넷매체가 눈부시게 발달한 요즘도 심심찮게 대중의 파워를 목도하곤 한다. 수천 마리의 모기떼가 갑자기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느리지만 엄청난 결과를 낳는 거대한 대중의 움직임. 사람은 혼자 있을 때는 분별력 있고 이성적이지만, 군중 속에 있으면 멍청이가 된다는 실러의 말이 자주 떠오르는 요즘이다.

에피소드 하나. 나는 작년 가을께부터 신문을 거의 보지 않는다. 사무실에서는 물론이고, 집에서 받아보던 신문마저 구독을 중단했다. 참여정부가 들어서는 것에 환호하고 대통령 탄핵에 눈물 흘린 적도 있지만, 어느 순간 반복적으로 흘러가는 세상 일에 참을 수 없을 만큼의 절망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눈 막고 귀 막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으리라. 하지만 그 소용돌이 속에서 한발 물러나고 싶었다. 어쩌면 집단의 광기에서 벗어나려 또 다른 미망에 사로잡힌 것인지도 모른다. 이옥선/ 창해출판사 편집부장

 

 

 

 

 

 

권력 앞에선 똥이라도 먹었다

“속임수를 꺼리지 말라 반드시 전임자를 부정하라
포상은 퍼주지 말고 질질 끌어라 대신 통크게 포용할지어다”
조직생활 생존기술 한가득 권력 관심 없더라도 중국 고사 읽는 맛

“권력술이란 곧 처세술이다. 군주가 신하와 백성을 지배하고 경영하는 임기응변의 기술이며, 소위 말하는 최고권력을 획득하는 방법이기도 하다.”(곽말약)

정치권뿐 아니라 모든 사회조직은 정치적이다. 윗사람, 아랫사람, 동료 등이 하나의 권력장으로 연결돼 상호작용에 의해 움직인다. 사회조직에서 권력술은 최소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이며 최대한 권력을 획득하여 유지하는데 필요한 기술이다.

<권력의 규칙>(한길사 펴냄)은 중국 고대 정계에서 추출해낸 권력의 쟁취, 관리, 안정 그리고 상실에 관한 규칙이다. 중국은 수천년에 걸쳐 수많은 왕조가 명멸하고 그 와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권력장에서 부침했다. 표본집단이 많은 까닭에 추출해 낸 규칙들은 상세할 수밖에 없어 목차가 길고 1, 2권 합해 950쪽이다.

기원전 494년 월나라 왕 구천은 오나라 왕 부차에게 잡혔다. 구천은 노예의 옷을 입고 유람가는 부차의 말 고삐를 잡았다.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아첨과 애교 등 온갖 방법으로 부차의 비위를 맞췄다. 한번은 부차가 병으로 눕자 병문안을 갔다. 마침 부차가 설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똥을 보면 병의 경중을 가릴 줄 안다면서 똥통 덮개를 열어 똥 한 움큼을 입에 넣고 야금야금 맛을 보았다. 그렇게 신임을 얻은 구천은 석방되어 월나라로 돌아갔다. 10년을 절치부심한 그는 힘을 얻어 오나라를 공격해 해원을 했다.

여기에서 뽑아낸 규칙은 권력을 얻기 위해서 ‘속임수를 꺼리지 말라’다. 이에 더해 △바보와 약자를 이용하라 △핵심 부위를 공격하라 △대가를 아끼지 말라 △미인계를 이용하라는 규칙을 전한다. 핵심 부위를 공격한 예로 당송 팔대가로 꼽히는 한유(한퇴지)를 들어, 정식관직에 오를 수 있는 이부의 시험에 세번 낙방한 끝에 경조윤 이실한테 낯간지런 청탁편지를 넣어 벼슬길을 뚫은 일화를 소개한다.

중국 고대 정치사에서 추출


역사상 가장 여색을 좋아했던 당 현종이 집권 초에는 궁녀를 풀어주고 승려들을 해산했으며 사치품을 불태운 사실을 아는가? 태평공주, 조모 무측천으로 인한 원성을 자신의 선정으로 치환하기 위해서였다. 역사상 중대한 영향을 끼쳤던 누명사건이나 오심판결들은 최고 권력자의 비위를 건드린 경우가 많아서 이것들은 후임자의 손에 넘어가면 중요한 권력 밑천이 된다. 뒤집기만 하면 후임자의 위상과 명예가 갑자기 욱일승천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권력을 굳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임자를 부정하라’를 규칙을 도출한다. 이밖에 △위계질서를 엄하게 하라 △공덕을 선전하라 △속마음을 드러내지 말라는 규칙이 있다. 그러나 신비감과 외경심을 주기 위한 속마음 감추기는 뛰어난 군주한테는 신하를 지배하는 수단이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권력을 잃는 길이 된다.

강력한 권력자는 권력의 유지를 위해 상벌의 두 수단을 구사한다. 상은 독려하고 유도하고, 벌은 두려움에 떨게 한다. 상은 주도권을 신하한테 주고 벌은 주도권을 군주의 수중에 붙들어 둔다.

▲ 권력을 위해서라면 핏줄도 아랑곳않은 무측천. 그는 당 고종의 후궁서열 3위인 소의였을 때 자신이 낳은 딸을 죽여 황후에 올랐다. 고종 만년에는 퇴출을 두려워해 태자였던 두 아들을 살해했고, 제위에 오른 두 아들을 끌어내린 뒤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대권독점 15년. 사진 한길사 제공
포상은 관직과 봉록으로 지배자의 여의봉이다. “항우는 남이 큰 공을 세워 마땅히 벼슬과 작위를 상으로 내려야 할 때 포상의 인장을 손바닥에서 굴리기만 하면서 상 주기를 아까워합니다.” 유방한테 투항해온 한신이 항우를 평한 말이다. 이에 비해 유방은 한신을 대장군에 발탁하고 극진한 예를 갖췄다. 하지만 포상은 한번에 퍼주지 말고 질질 끌어야 한다. 관직에 대한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공을 세우려는 동력을 갖는 까닭이다. 또 관직을 줄 때는 기대치에 못 미치게 줘야 한다. 높은 자리를 얻으면 진취적으로 더 나은 성과를 내려는 의지에 녹이 슨다.

말 몇마디 눈물 몇방울의 힘

친절하고 자상한 말 몇 마디, 감동어린 눈물 몇 방울 등은 돈 안드는 무형의 포상. 그 효과는 고위 관직이나 고액 봉급을 능가한다. 연회에서 술에 취해 애첩을 희롱한 부하를 감싸주었고 그 부하는 진나라와의 전쟁 때 다섯 번이나 적진으로 돌진해 적장을 사로잡아오는 노고를 아끼지 않았던 초장왕, 부하의 몸에 난 종기의 피고름을 입에 대고 빨아냄으로써 부하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 있었던 전국시대의 유명한 군사가 오기의 예가 여기에 해당한다.

상벌은 비상한 경우일 따름. 일상적으로는 신하(부하)들을 자신을 중심으로 응집시키고 이탈을 방지하는 일이 필요하다. 조조가 북방의 군벌 원소와 맞붙었을 때 병력, 군량에서 완전히 열세였다. 조조의 부장들과, 후방의 대신들은 원소한테 편지를 띄워 조조가 패하기만 하면 귀순할 준비를 했다. 반년 뒤 전세가 역전돼 원소를 물리쳤는데, 원소의 군영에서 노획해온 문서에서 부하들의 편지가 발견됐다. 조조는 그것을 보지 않고 불태웠다.

과오는 묵히지 말고 바로잡아야

신하를 다룸에 통 크게 포용하라는 규칙이다. △사람을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 △신하의 힘이 과도하지 않도록 앞에서 띄워주고 뒤에서 깎아내려라 △파벌간 균형을 잡으라는 것도 권고사항.

일정한 직위에서 살아남으려면 공격 빌미를 없애면 되지 않겠는가. 드러나지 않으면 공격도 상처도 받지 않는다. 하여 △때를 알아 용기있게 물러날 줄 알아야 하고 △바람을 보며 노를 젓는 지혜가 필요하며 △작은 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권불십년이라던가. 권력자가 더 이상 통치할 수 없을 때가 온다. 백성을 핍박하여 민심을 잃을 때, 사리에 어둡고 유약하여 통제력을 잃었을 때, 날마다 조금씩 권력을 침식당해 기반을 잃었을 때가 그러한 때다. 즉, 위는 아래로써 존재한다는 것. 권력자는 백성한테든 부하한테든 공명정대해야 하며, 과오는 묵히지 말고 즉시 바로잡아야 하고, 은혜와 위엄을 함께 동원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직사회에 속한 사람이면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 권력 자체에 관심없는 사람은 몹시 지루할 테지만 읽고나면 인용된 풍부한 고사가 지루함의 반을 덜었음을 비로소 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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