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속 사상/테일러주의와 엔지니어의 꿈

요즘에 구인 광고란을 보면 새로운 직종이 많이 생겼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기술관리’다. ‘관리’라는 단어 앞에 붙일 수 있는 업무가 인사, 조직, 재무, 회계, 생산, 판매를 넘어 기술로 확장된 것이다. 기술이 점점 복잡해지고 급속히 변화함에 따라 그것을 관리하거나 기획하는 업무를 전문적으로 담당할 사람이 필요해졌다는 뜻이다.

역사상 기술과 관리를 결합시킨 선구자로는 과학적 관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레더릭 테일러(Frederick W. Taylor, 1856~1915)를 들 수 있다. 그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부유한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러한 배경은 테일러가 기업의 관행을 개혁할 수 있는 기술자 및 관리자로 성장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 당시 필라델피아는 철강산업과 기계산업의 중심지였고, 테일러의 집안은 기업가들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었으며, 청교도적인 품성은 실용적인 활동을 장려하고 게으름을 죄악으로 받아들이게 했던 것이다.

기술과 관리 결합시킨 선구자

테일러는 1878년에 미드베일 철강회사에 일반노동자로 입사한 후 기계공, 조장, 직장, 주임을 거쳐 수석 엔지니어로 승진했으며, 스티븐스 공과대학을 야간으로 다니면서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의 철강산업과 기계산업에서 보편화되어 있었던 ‘은밀한 태업’(soldiering)의 관행에 직면하면서 관리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은밀한 태업은 공식적 태업(sabotage)과 달리 적당히 일함으로써 산출고를 제한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생산과정에 대한 실제적인 권한이 숙련노동자들에게 부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테일러는 이러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제도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미드베일 철강회사에서 금속절삭작업을 대상으로 새로운 관리법을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1890년부터는 ‘경영 컨설턴트’라는 직함을 내걸고 다양한 기업의 기술적·경영적 문제에 대한 자문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테일러는 1898~1901년에 베들레헴 강철회사에서 근무하는 동안 자신의 관리법을 체계화하였다. 그 이후에는 현업에서 은퇴하여 자문, 강연, 저술 활동에 몰두하면서 <공장관리>, <금속절삭의 기술에 관하여>, <과학적 관리의 원리들> 등의 저작을 남겼다.

테일러리즘의 핵심적인 관념은 과업(task)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노동자에게 미리 부과되는 하루의 공정한 작업을 뜻한다. 테일러는 작업도구와 작업방법에 관한 시간연구(time study)를 통해 과업을 설정하였고, 노동자에게 과업 실행의 유인을 제공하기 위해서 차별적 성과급제(differential piece rate)를 개발했으며, 과업이 제대로 실행되고 관리될 수 있도록 기획부(planning department)와 기능별 직장제(functional foremanship)를 고안하였다.

테일러주의는 금속절삭작업의 도구와 방법을 표준화하기 위한 시간연구에서 비롯되었다. 우선, 테일러는 작업도구의 칼날의 형태와 사용방법을 개량하고 도구를 규격화하여 노동자들이 사용할 도구를 자세히 지시하였다. 또한, 그는 노동자들의 작업을 기본동작으로 분해한 후 쓸모없는 동작을 제거하고 각 동작별로 최선의 것을 찾아낸 후 스톱워치(stop watch)로 단위시간을 측정하였다. 이런 식으로 특정한 작업에 대하여 도구, 동작, 시간을 결합하여 테일러는 노동자에게 미리 부과할 수 있는 과업을 구성하였다.

시간연구의 초보적인 형태는 19세기 영국의 과학자이자 기술자인 배비지(Charles Babbage)가 이미 시도한 바 있었다. 그러나 배비지가 업무 수행의 총 시간에 만족했던 것에 반해 테일러는 작업을 기본적인 구성요소로 분해하여 분석한 후 이를 다시 결합시켰다. 또한 배비지는 실제로 행해졌던 시간을 측정했던 반면 테일러는 작업이 수행되어야만 하는 시간에 초점을 두었다. 테일러는 “한 사람이 주어진 일정량의 작업을 하는 데 걸리는 전체 시간에 대한 단순한 통계는 시간연구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20세기초 도마에 오른 테일러주의

» 기술과 관리를 결합시킨 선구자 프레더릭 테일러.
차별적 성과급제는 노동자가 과업을 달성한 경우에는 임금에 높은 비율을 적용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낮은 비율을 적용하는 임금제도였다. 그것은 과업을 달성한 노동자가 이전에 비해 30~100%의 임금을 추가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특히, 테일러는 차별적 성과급제의 성패가 기계와 작업에 관한 정밀한 시간연구를 통해 적절한 과업을 구성하는 데 있다고 강조하였다.

기획부는 이전에 숙련 노동자들이 가졌던 작업에 대한 지식을 관리자의 손으로 옮기기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그것은 ‘구상과 실행의 분리’ 혹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로 상징된다. 기능별 직장제는 참모 기능이 강화된 수평적 조직으로서 기획부와 작업장에 각각 4명씩 배치된다. 그들은 각각 작업 순서의 결정, 작업지시카드의 작성, 임금 산출의 내역 계산, 업무의 조정, 작업 방법의 교육, 작업 속도의 설정, 기계의 관리 빛 정비, 제품의 품질 검사를 담당하였다.

테일러주의는 20세기 초 미국 사회에서 두 번의 커다란 시험대에 올랐다. 1910년에 동부철도회사가 운임 인상을 요구했을 때 당시에 ‘민중의 변호사’로 불린 브랜다이스(Louis D. Brandeis)는 테일러의 방법을 적용하여 비능률적 요소를 제거하면 운임을 인상할 필요가 없다고 맞섰다. ‘과학적 관리’라는 용어는 그 때 만들어져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각광을 받았다. 테일러는 워터타운 병기창(Watertown Arsenal) 사건을 매개로 1911~1912년에 청문회에 불려가기도 했다. 워터타운의 경영진은 테일러주의를 적용하려고 했지만 노동조합이 그것을 수용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노동조합은 테일러주의를 도입하면 작업속도가 빨라지고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그 청문회는 과학적 관리를 위해 별도의 예산을 사용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림으로써 노동조합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처럼 테일러주의가 반드시 경영진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테일러주의를 경영진과 노동자의 이분법적 구도로 이해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사실상 테일러는 자신의 관리법을 개발하면서 엔지니어를 핵심적인 주체로 상정하고 있었다. 그것은 임금 산출의 기준이 되는 작업속도를 엔지니어가 정했다는 점, 시간연구를 통해 작업에 대한 지식을 엔지니어에게 집중시켰다는 점, 기능별 직장제를 통해 기획부나 작업장의 주요 업무를 엔지니어가 담당하였다는 점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엔지니어가 전문성과 공정성을 바탕으로 공장관리를 주도함으로써 노사양측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테일러는 엔지니어를 중심으로 한 공장관리에 관심을 기울였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엔지니어의 사회적 지위가 변화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테일러 이전 세대의 엔지니어들은 공장의 소유주인 경우가 많았고 그들의 사회적 지위는 독립적인 사업가에 가까웠다. 그러나 테일러 세대의 엔지니어들은 대부분 대기업의 고용인이었고 이에 따라 이전과 같은 자율성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이러한 지위하락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에는 엔지니어 자신이 독자적인 사업을 하는 방법과 공장관리의 문제를 공학의 한 분야로 취급하는 방법이 있다. 전자의 방법은 통로가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후자의 방법이 본격적으로 시도되었다. 테일러가 주목했던 것도 공장관리의 문제를 엔지니어가 담당하는 방법이었다.

엔지니어를 주체로 설정했으나

» 송성수/부산대 교수·기술학
그러나 테일러주의의 이상이 실현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엔지니어가 경영진에 종속되는 정도가 심해지면서 공정한 전문가로 기능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게다가 테일러주의의 철학적 기반은 무시하고 단순한 기법만을 도입하는 사례도 속출하였다. 특히, 제3세계의 경우에는 노동력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어 “출혈적 테일러주의”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론과 실제는 다른 법이다.

이론적인 측면에서도 테일러주의는 기술적?조직적 측면에만 중점을 둠으로써 인간적?사회적 측면을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물론 테일러주의가 인간적인 요소를 무시하지 않았지만 집단적 차원이 아닌 개인적 차원에 주목하고 있다. 인간의 노동을 기계화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데만 치중하다보면 인간의 사회적 측면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기 마련이다. 테일러주의가 인간을 기계와 조직의 노예로 만들었다는 주장은 이러한 측면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송성수/부산대 교수·기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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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와 연우 2006-09-08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본(가)은 종종 살아서 자가발전하는 유기체 같아요... 그들의 변화속도가 무서워요...

라주미힌 2006-09-0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르크스의 자본론
벤 파인.알프레도 새드-필호 지음, 박관석 옮김 / 책갈피 / 2006년 7월

요즘 이거 읽고 있는데(마르크스가 쓴 것은 부담되고 흑)...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의 유기적 관계와 근본, 한계 등을 상당히 치밀하게 설명해주더라구요..

자본... 이 끔찍한 괴물을 어떻게 조련할 것인지... 먹히고 있는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있을까라는 회의도 들고...

 

 

왜 사랑타령은 식지 않는가② 1980년대~2000년대 대중가요의 시대정신 … 섹스를 스포츠라고까지 역설한 사랑의 춘추전국시대, 시장이 세분화되다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대중가요 속 사랑은 사랑에만 국한되지 않는 삶의 문법, 더 나아가 시대정신까지도 말해주는 은유일 수 있다. 남녀관계의 표현으로 사회가 움직이는 기본 메커니즘을 말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강남 유흥가 문화’를 찬양·고무하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강남 유흥가가 거대해지고 전국 유흥가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면서, ‘강남 파워’는 가요계에까지 밀려들었다.


△ 노랫말은 시대를 반영하는 바로미터다. <신사동 그 사람> <사랑의 거리>는 1980년대의 강남 유흥가 문화를, <수필과 자동차> <오렌지 나라 앨리스>는 1990년대 탈이데올로기의 시대를 담고 있다.

사랑의 슬픔과 한에 관한 한 강남 여인들을 따라갈 사람이 없었으니, 그들의 사연을 담은 사랑 노래는 다소 추상적인 가사 표현을 통해 보편적인 설득력을 확보했다. 그건 적나라한 욕망의 긍정이기도 했다.

1983년 김수희의 <멍에>(추세호 작사·작곡)는 “사랑의 기로에 서서 슬픔을 갖지 말아요 어차피 헤어져야 할 거면 미련을 두지 말아요”라고 노래함으로써, 이별을 전제로 한 사랑을 하곤 했던 강남 여인들의 제1순위 단골 레퍼토리로 떠올랐고, 이들의 영향력에 힘입어 남성 고객들의 애창곡으로까지 발전했다.

1985년 주현미의 <비내리는 영동교>(정은이 작사, 남국인 작곡)는 “잊어야지 하면서도 못잊는 것은 미련 미련 미련 때문인가봐”라고 <멍에>의 사연에 맞장구를 쳤고, 같은 해에 발표된 주현미의 또 다른 강남 노래인 <영동 블루스>(안치행 작사·작곡)는 “사랑이 피어나는 영동의 밤거리”라고 선언함으로써 그간 ‘블루스’의 원조로 군림했던 <명동 블루스>에 정면 도전하고 나섰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수많은 강남 가요들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왔다. 신흥 강남 가요는 강북에서 강남으로의 권력 이동을 상징하는 동시에 이른바 ‘3저 호황’으로 흥청대는 ‘강남 밤문화’에 낭만의 포장을 씌우는 효과를 낳았다.

1988년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정은이 작사, 남국인 작곡)은 그간 부정적으로만 비쳤던 신사동 카바레 문화에 인간적 체취를 부여했다. 1989년 문희옥의 <사랑의 거리>(정은이 작사, 남국인 작곡)는 아예 노골적으로 “여기는 남서울 영동 사랑의 거리”라며 “외롭거나 쓸쓸할 때는 누구라도 한 번쯤은 찾아오세요”라고 권유하고 나섰다.

‘강남 유흥가 문화’가 찬양·고무한 솔직성은 1990년대 들어 신세대의 노래에서 ‘사회비평’의 형식으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1990년대는 탈이데올로기의 시대로 청춘의 비판적 감각은 일상적 삶을 향했고, 이는 사랑을 정밀 분석하는 작업도 포함했다. 정석원의 활약이 돋보였다.

승용차 대중화의 물결 속에서 남녀관계에서도 승용차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졌다. 1992년 015B의 <수필과 자동차>(정석원 작사·작곡)는 “이젠 그 사람의 자동차가 무엇인지도 궁금하고 어느 곳에 사는지도 중요하게 여기네”라고 했고, 1993년 푸른 하늘의 <오렌지 나라 앨리스>(유영석 작사·작곡)는 아예 노골적으로 “그런 작은 자동차 타고 다니면서 내게 감히 말을 건넬 수가 있니”라고 쏘아붙였다.

서태지는 거대담론형, 박진영은 실사구시형

연인의 자동차를 따지게 된 마당에 사랑을 터무니없이 미화하는 것도 다시 생각해볼 일이었다. 과거엔 기성세대가 도맡아하던 이야기도 이젠 20대의 몫이 되었다. 1993년 이승환의 <사랑에 관한 충고>(정석원 작사·작곡)는 “사람들은 가끔 착각하지 서로의 조건들을 좋아하고선 이게 사랑일 거라고… 우린 어느 정도 현실적인 사람들 서로 그런 걸 이해하면 되는 거야”라고 했다.


△ 서태지와 아이들이 <교실 이데아> <발해를 꿈꾸며> 등을 내놓자 진보진영이 더 열광했다. 진보매체에서는 서태지 비판을 자체 검열할 정도였다.

그러나 사랑은 영원한 위장일망정 삶의 동력이었다. 사랑의 환상 없인 살아갈 수 없기에 ‘사랑의 현실화’에 정반대되는 흐름도 동시에 나타났다. 파격으로 일컬어졌던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서태지 작사·작곡)도 가사만큼은 전통 뽕짝의 정신에 충실했다. “제발 이별만은 말하지 말아요 나에겐 오직 그대만이 전부였잖아… 오 그대여 가지 마세요 나는 지금 울잖아요.”

1994년 서태지가 사회 문제로 눈을 돌려 통일을 염원하는 <발해를 꿈꾸며>, 획일화된 교육 현실을 비판한 <교실 이데아> 등을 내놓자 10대보다는 진보진영 일각이 더 열광했다. 일부 진보매체에서는 서태지 비판을 자체 검열할 정도였다.

서태지가 거대담론형 진보파였다면, 박진영은 실사구시형 진보파였다. 1995년 박진영의 <청혼가>(박진영 작사·작곡)는 “그대가 나와 결혼을 해준다면 나는 그대의 노예가 되어도 좋아”라고 했다. 페미니스트들은 박진영이 여자의 즐거움을 위해 노력하며 사랑의 남존여비를 깼다는 걸 높이 평가했다.

1996년 서태지와 아이들은 엄청난 은퇴 파동을 일으키며 사라졌지만, 그 공백은 H.O.T 등 하이틴 댄스그룹이 채웠다. 1996·97년은 고등학생 가수들의 전성시대였다. 이수만이 이끄는 SM기획의 H.O.T 성공에 자극받은 대성기획은 1997년 초 H.O.T와 동일한 콘셉트의 젝스키스를 기획해 성공시킴으로써 이후 대형 기획사의 전성시대를 열게 되었다. SM기획이 1997년 여성그룹 S.E.S를 성공시키자 대성기획은 1998년 핑클을 데뷔시켰다.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10대 시장’의 대공략이었다.

1997년 S.E.S의 (유영진 작사·작곡)은 “나 오직 너를 위해 살고 싶어”라고 했고, 1998년 핑클의 <내 남자 친구에게>(김영아 작사, 김석찬 작곡)는 “솔직히 너를 반하게 할 생각에 난생처음 치마도 입었어… 난 니 거야”라고 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전후로 ‘박정희 신드롬’과 더불어 복고주의 물결이 전 사회를 강타하기도 했다. 사회를 무겁게 짓누르는 불황 때문이었을까? 댄스음악이 주춤하고 발라드가 살아나면서 사랑도 복고로 돌아갔다. 진실과 신뢰에 대한 갈증을 호소하는 노래들이 쏟아져나왔다.

명실상부한 사랑의 다원주의, 아니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시장 세분화가 확실해졌다. 핑클은 계속 ‘난 니 거야’ 코드로 밀어붙였지만, 1999년 이정현의 <와>(최준영 작사·작곡)는 “설마했던 니가 나를 떠나버렸어… 늦었어 이미 난 네 여자야 독한 여자라 하지 마 사랑했으니 책임져”라고 앙칼지게 물고 늘어졌다.

섹스의 스포츠화, 싸이 vs 이효리

이른바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겪는 과도기적 처방이었을까? 모든 걸 주면서도 겁까지 주는 모드의 사랑 노래가 새 천년을 장식했다. 2000년 이정현의 <줄래>(유유진 작사, 윤일상 작곡)는 “나 오늘은 순결한 백합처럼 나 때로는 붉은 장미처럼 모든 걸 다 줄래”라고 했고, 2000년 박지윤의 <성인식>(박진영 작사·작곡)은 “난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에요 그대 더 이상 망설이지 말아요… 나 이제 허락할래요”라고 했다.


△ 2000년 들어서면서 노골적으로 ‘섹시’를 표방하는 가수가 많아졌다. 핑클의 이효리(왼쪽)는 ‘난 니 거야’에서 ‘넌 내 거야’로 컨셉을 바꿔 솔로 앨범을 발표했고 싸이는 노랫말에서 ‘섹스는 스포츠’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후 ‘주느니’ ‘갖느니’ 하는 것에 방점이 찍힌 노래들이 많이 등장했다. 소유에의 집착과 더불어 소유 변동도 주요 화두가 되었다. 2001년 이수영의 <사랑은 끝났어>(MGR 작사, 원상우 작곡)는 “당신의 사랑은 떠났어 그 남잔 지금 여기 내 품에 편안히 잠들어 있어요”라고 했고, 2001년 god의 <난 남자가 있어>(박진영 작사·작곡)는 “그대의 남자가 안 온 게 꼭 나쁜 건 아냐 오늘 밤 이 자리에 앉은 남자가 당신 남자야”라고 했다.

아예 노골적으로 ‘섹스는 스포츠’임을 역설하는 흐름도 나타났으니, 그 선두주자는 싸이였다. 2002년 싸이의 <처녀논쟁>은 처녀성을 지켜야 한다는 여자에게 남자 ‘선수’가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는 노래였다. “처녀는 몸이 아니라 정신. 못생기고 처녀라 자랑하는 건 병신. 돈을 위한 섹스, 맘이 담긴 섹스, 땀 빼려는 섹스, 모두 숭고한 스포츠.” 그러나 싸이가 늘 그렇게 사나운 건 아니었다. 같은 해에 나온 싸이의 <신고식>은 “너도 원한 걸 해야 그래야 성인이야 오빨 믿고 따라와”라고 꼬드겼다.

싸이의 반대편엔 이효리가 있었다. 이효리는 5년 만에 “난 니 거야”에서 “넌 내 거야”로 돌아섰다. 2003년 이효리의 <10 MINUTES>(Maybee 작사, 김도현 작곡)는 “Just one 10 minutes 내 것이 되는 시간”이라고 장담했다. 이효리는 2006년 2집 앨범 <다크앤젤>에선 10분도 길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대중문화평론가 이승재는 “2집에서 이효리는 ‘적극적인 여자’의 모습을 뛰어넘어 거의 ‘굶주린 암사자’에 가깝”다고 평했는데, 그건 미국의 마돈나를 능가하는 ‘섹슈얼 페미니즘’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이었다. 왜 섹스의 쾌락을 남자만 표현해야 한단 말인가?

‘섹스의 스포츠화’는 대중가요의 ‘조작’일까? 그런 것 같진 않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홍두승이 경북대, 서울대, 서울시립대, 연세대, 전북대, 한림대 등 6개 대학 교수팀과 함께 2006년 6월 이들 대학의 학생 554명을 상대로 실시한 ‘2006년 한국 대학생의 의식과 생활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성관계 경험이 있는 학생은 31.2%로 지난 1994년에 실시한 같은 조사의 14.1%, 1999년 조사의 19.6%에 비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1994년과 비교해 남학생은 18.2%에서 39.4%, 여학생도 10%에서 22.7%로 늘어나, 남녀별로 증가 추세는 비슷했다. 최초의 성관계 대상자는 남학생의 경우 지난 1994년 조사에선 애인이 44.4%였지만 최근 70.4%로 증가한 반면, 성매매 종사자는 31.6%에서 5.2%로 크게 줄었다. 여학생도 대상자가 애인이 77.8%에서 86.2%로 높아졌다.

여성의 전투성은 이른바 ‘누나 신드롬’으로도 나타났는데, 이 또한 실체적 근거를 갖고 있다. 2005년 결혼한 연상녀-연하남 커플은 전체 신혼부부의 12.2%를 차지했다. 10년 전 8.7%와 비교하면 무시할 수 없는 흐름이다. 2006년 7월 한 결혼정보 업체가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성 응답자 70.5%가 연하남에 대해서, 남성 응답자의 53.8%가 연상녀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런 변화의 가장 큰 원인은 여성의 사회 진출과 그에 따른 경제력 향상이다.

전위-중간-보수, 불멸의 3각 구도

그 이전에 1990년대의 인구학적 변화가 있었다. 1992년 전체 인구의 26.7%인 1135만3천여 명이 학생이었으며 이 중 중고생이 절반을 차지했다. 이들 ‘1가구 2자녀’ 시대의 10대들은 구매력도 막강했기 때문에 사실상 가요문화의 지존으로 군림했다. 당연히 가요는 이들의 취향을 우선시했다. 이후 등장한 인터넷은 4천억원대 음반시장을 1천억원대로 쪼그라들게 만들면서 ‘음원시장’으로 이동하게끔 몰아붙였는데, 이에 따라 대중의 주목을 쟁취하기 위한 가요의 자극성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변화가 전통적인 사랑 노래가 설 땅을 완전히 없애는 건 아니다. 가요 속 사랑은 ‘전위-중간-보수’의 3각 구도가 서로 밀고 당기면서 시장을 분점하는 형태로 표현됐으며,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불멸의 법칙이다. 물론 그런 가운데 전반적으론 전위 쪽으로 이동하는 흐름은 계속되겠지만 말이다.

가요의 소비 환경도 가사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다. 한국의 가요문화는 혼자 즐기기보다는 남들 앞에서 보여주는 문화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사랑 표현은 늘 과시적 과장을 범하게 돼 있다. 특히 1995년부터 급속히 늘어난 노래방과 단란주점은 그런 효과를 극대화했다. 한류의 1등 공신을 멀리서 찾지 말라. 바로 노래방이다. 노래방은 의외로 심오한 장소다. 1999년 6월 한국을 방문한 ‘파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는 ‘20년 만의 귀국일지’에서 ‘노래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말로만 듣던 곳에 들어갔다. 나도 노래를 몇 곡 불렀다. 한국 사회를 알려면 꼭 가봐야 하는 곳. 스트레스를 풀고 신경질을 풀고 불안심리도 풀고 억압감정도 처리해주는 아주 중요한 정신병원. 이 노래방이 없어지면 정신병자가 급증할 것이며, 폭력죄·소요죄·노상방뇨죄·고성방가죄 등의 범죄가 지금의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다.”

가요 속 사랑과 관련해 더욱 중요한 사실은 노래와 술은 늘 따라다닌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술 한잔 걸치고 마이크를 잡았다. 과장된 사랑 감정이 일지 않는다면, 당신은 사람이 아니다. 당신은 사랑을 위해 당신의 목숨을 내놓겠다는 의지로 충만하다. 어차피 현실세계가 그러지 못하므로 절규라도 해야 한다.

한국인에게 노래는 발산의 축제다. 안으로 담는 게 아니라 밖으로 쏟아내는 것이다. 선언의 성격이 강해야 한다. 백화점 쇼핑 행위와 비슷해진 사랑이기에, 구매력 고통을 겪는 사람일수록 목숨 거는 사랑을 절규하는 것으로라도 보상을 받아야 한다. 이 심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가요 속 사랑의 정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탐욕의 화신’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자기 잇속만 챙기는 사람이 노래방에서 사랑 노래를 진지하게 부르는 걸 본 적이 있는가? 그 순간만큼은 그를 인간적으로 보고 싶어진다.

전율을 잃은 당신을 위하여

땅 좁고 인구밀도 높고 동질성이 강한 탓에 한국인은 체질적으로 타인지향적 보여주기에 강하다. 그렇게 축적된 저력이 한류를 만들어냈다. <겨울연가>의 누군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제 첫사랑이 저를 다시 부르면 어떡하죠?” 낯간지럽고, 당하는 입장에선 온몸을 부르르 떨어야 할 배신의 멘트지만, 삶의 피곤에 찌들어 전율을 잃어버린 대중에게 뜨겁고 격렬한 사랑은 반드시 창조되어야만 할 영원한 신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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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본 후에 봐야겠군... ㅡ..ㅡ; 너무 길다. 자세한 것은 사양...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정치적 읽기를 요구하는 영화다

봉준호의 세 번째 영화 <괴물>을 보았다. 그리고 미루고 미룬 다음 이 글을 쓴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만날 하는 말이라 좀 지겹긴 하지만 여기서는 좀더 근본적으로) 이 글이 스포일러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나는 이미 경고했다! 그 다음은 내 책임이 아니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스포일러없이 이 영화를 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스포일러를 피해 쓰려고 노력할 때 <괴물>에 관한 글은 이미 본 이 영화의 예고편 이상을 쓰는 것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나는 이 영화에 대해 쓴다면 영화가 ‘개봉한 다음에’ 쓰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게 두 번째 이유이다. (다시 한번 같은 어투로 첫 문장으로 돌아가서) <괴물>을 보았다. 그런데 본 다음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괴물>은 당신이 생각하는 (혹은 생각했던) 그런 ‘괴물’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최상의 의미로 나는 영화를 본 다음 중얼거렸다. 봉준호, 당신 미친 거 아냐?

봉준호의 단호한 정치적 커밍아웃

말을 빙빙 돌릴 필요가 없다. <괴물>은 모두가 한물간 주제라고 생각한 토픽을 다시 우리에게 불쑥 물어보고 있다. 더도 덜도 아닌 말 그대로 봉준호는 100억원짜리 ‘정치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괴물>이 나를 놀라게 만든 것은 정확하게 그런 의미에 한해서이다. 이때 내가 말하는 ‘정치적’이란 니코스 풀란차스가 (주어진 사회구성체를 계급투쟁의 정치적인 방식으로 사고하는)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을 (정치적인 심급, 부문, 국가기구와 이데올로기적 기구, 부분구조를 대상으로 한) ‘정치적인 것’(la politique)과 구별할 때 쓰는 용법으로서의 ‘정치적인 영화’이다. 말하자면 <괴물>은 홍기선의 <선택>이나 김동원의 <송환>과 ‘같은’ 의미에서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다. <선택>이 ‘정치적인 영화’(cinema, la politique)라면 <괴물>은 ‘정치적인 영화’(cinema, le politique)이다. 혹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은 정반대이긴 하지만 봉준호의 <괴물>은 강우석의 <한반도>와 ‘똑같은’ 의미에서의 정치적인 영화이다. 양쪽 모두 매우 뻔뻔할 정도로 노골적인 ‘정치적인 영화’이다. 한쪽은 우파 (영웅적-)민족주의, 또 다른 한쪽은 좌파 냉소주의 혹은 냉소적 좌파(그런데 그 정의가 이데올로기적으로 말이 되느냐고 따져 묻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나는 다른 방식으로 정의할 말을 아직 찾지 못했다). 그것도 <한반도>의 강우석처럼 그저 허풍을 떠는 제스처가 아니라 <괴물>은 봉준호의 단호한 정치적 커밍아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건 그저 시작하고 난 다음 첫 장면 5분을 보기만 해도 ‘뻔하다’. 아무도 <킹콩>을 보면서 왜 저렇게 커다란 원숭이가 생겨났는지 궁금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에이리언>을 본 다음 저런 기생 생물체가 가능한지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는다. 그런데 봉준호는 ‘괴물’이 어디서 생겨났는지 보는 사람이 ‘잘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첫 번째 신은 주한 미8군 용산기지에서 “먼지 낀 포름알데히드”를 방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방류하는 그 수백병에 담긴 “먼지 낀 포름알데히드”를 수평 트래킹으로 찍은 다음 그걸 한강과 디졸브로 연결시켰다. 이동하는 카메라,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한강의 물결. 그 둘을 하나로 겹쳐놓은 디졸브. 그런 다음 그걸 ‘마시면서’ 한강에서 ‘무언가’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비오는 날 한강 낚시꾼 두 사람의 입을 빌려 설명한다. 그리고 6년8개월 뒤 그 ‘무언가’가 비오는 날 ‘하필이면’ 부도 맞은 다음 뛰어내린 윤 사장을 ‘잡아먹기 위해’ 한강 다리 아래서 기다리는 것으로 연결한다. 미군 기지와 한강, 부도 맞은 사장. 이 세개의 연속된 신은 누가 보아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자명하다 못해 어리둥절할 만큼 노골적이다. ‘괴물’이 왜 생겨난 것인지 더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여기서 ‘괴물’은 그 어떤 비유적인 ‘억압의 귀환’이 아니라 말 그대로 미군 부대의 “먼지 낀 포름알데히드” 무단 방류에 대한 생물학적 결과이다. 그 ‘결과’가 자본주의 경쟁시장에서 낙오한 채 자살한 남자를 잡아먹는다. 생각할 만한 지적. ‘결과적으로’ 잡혀먹힌 것이 아니라 하나의 ‘결과’가 다른 ‘결과’를 잡아먹은 것이다. 약간의 과장. 자본주의 시장의 ‘결과’를 분단체제하의 반식민지국가에 상주하고 있는 주한미군 부대의 ‘결과’가 잡아먹는다. 그런데 그 결과가 한강에 있을 리 없는 괴물이다. 물론 봉준호는 “19살에 한강에서 괴물을 보았다”고 우기는 중이다(수많은 인터뷰에서의 같은 말의 반복). 이 말에 관심있는 나의 방점은 19살이다. 스무살이 되기 일년 전, 고등학교 3학년. 세상을 소년과 어른의 사이에 서서 바라보기. 상상과 상징의 경계. <괴물>은 그 둘 중 하나이다. 그것을 그 상태로 유지하려 들기 혹은 상징의 자리에서 상상을 넘보기. 나의 반론. 그런데 ‘괴물’을 가장 믿지 않는 사람은 봉준호 자신이다. 그렇지 않다면 ‘괴물’이 나타난 다음 병원에 단체로 잡혀간 강두 가족이 그날 밤을 병원에서 보내면서 간호사가 “박강두씬 검사할 게 많으니까요, 아침까지 아무것도 드시면 안 되구요”라고 한 다음 신에서 박강두가 골뱅이 먹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구태여 골뱅이를 클로즈업해 이거 어디선가 많이 보지 않으셨어요, 라고 반문하는 것 같은 숏이 왜 필요했을까? 한강 다리에 골뱅이처럼 매달린 괴물. 그냥 차라리 골뱅이-괴물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의 모양의 유사성. 그런데 생물학적으로 골뱅이가 “먼지 낀 포름알데히드”를 마시고 괴물이 될 확률은 어느 정도일까?

2000년 맥팔랜드 사건을 되풀이

여기서 이 과정을 미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이 결과는 윤리적인 것과도 상관없다(물론 도덕적으로는 비난받을 일이다). 남한에서 ‘괴물’이 미군 부대에 의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억압의 귀환’이라는 상징적 다시 쓰기로 옮겨 쓰기 위해서는 그걸 정치적으로 다시 읽을 때에 비로소 성립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이 첫 장면을 보는 순간 (적어도 당신이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에 ‘최소한의’ 관심을 갖고만 있다면) 구체적인 사건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괴물>은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체적인 사건과 맞닿아 있다. 그렇다. 상징적 그물망에 ‘한강의 괴물’이 걸려드는 것은 당신이 이 첫 번째 장면에서 2000년 2월9일 미8군 용산 주한미군 부대에서 한강에 (동일한 용액인) 포름알데히드를 방류한 맥팔랜드 사건이라는 직접적인 인용을 떠올릴 때이다. 물론 그 ‘최소한의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 <괴물>은 그저 ‘괴물영화’일 뿐이다. 하지만 맥팔랜드 사건은 제대로 매장되지 않았고(아직도! 아니, 차라리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지금 주한미군 기지 이전을 위해 토지오염 치료에 한국 정부가 부담해야 할 돈은 정부 추산으로 1천억원, 환경단체 추산으로 5천억원이다. 이걸 누가 내나? 당신의 호주머니), 봉준호는 그 셈을 끝내기 위해서 괴물을 불러온다(게다가 이 영화의 첫 장면에 명시된 2000년 2월9일과 맥팔랜드 사건은 같은 연도, 심지어 같은 날짜이다. 이것이 그저 우연일까?). 말하자면 현실과 상징 사이의 대차대조표. 부채의 청산을 위해서 ‘불현듯 나타난’ 괴물. 그런 다음 질문한다. 이제 어떻게 할 참인가? <괴물>은 ‘괴물’이 나타난 다음 현서를 납치당한 가족의 심리적 갈등을 그린 영화가 아니다. 그런 것 따위는 이 영화에 없다. <괴물>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시급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그런 다음 질문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그때 이 가족들은 무엇과 싸우는가? 이 영화는 행동을 촉구한다. 이 가족들을 돕지 않는 정부는 무엇과 싸우지 않는가? 말 그대로 (한)강 건너 불구경. 그때 문제가 되는 것은 비정치적인 현실과 정치적인 상징 사이에서 갈린 틈새로 모습을 드러내는 실재이다. <괴물>의 역설은 ‘괴물’이 맥거핀이 아니라 실재라는 데 있다. 상징으로 통합되지 않는 그 무엇, 그것을 상징적으로 만드는 것에 대항하면서 <괴물>의 상징적 요구에 그것을 성립시키기 위하여 그 안에서 최종적으로 버티고 있는 고정점. 정치적 상징들 모두를 떠안고 그 모든 무게를 버티면서 위협하는 현실성의 상실로서의 대상. ‘괴물’은 현실이 불러일으키는 환상을 걷고 그 안에 살고 있는 당신에게 정치적인 각성을 일깨워 실재를 보라고 맹렬하게 촉구하는 중이다. 말하자면 반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 아래의 남한.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비상계엄하의 국가. 감시와 배신의 세상. 낡은 토픽. 하지만 여전히 진행 중인 역사.

나는 <괴물>이 진행 중인 역사의 반복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괴물에게 납치당한 딸 현서가 결국 죽고 마는 이 비참한 이야기가 코미디라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때 우리는 유명한 충고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역사는 두번 되풀이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그 다음은 희극으로. 봉준호 자신의 말. “누구든 한강에서 괴물이 나오는 영화를 구상한 사람이라면 맥팔랜드 사건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나, 환경단체에서 들으면 펄쩍 뛸 일이지만, 나는 신문을 보면서 바로 시나리오에 대입할 수 있겠다며 좋아했다.”(<씨네21> 제561호, ‘가족얘기가 아니다, 보호모티브가 중요하다’) 봉준호는 2000년 2월9일 맥팔랜드 사건을 되풀이하는 중이다. 그때 이 희극은 현실을 향한 어처구니없는 절망감에서 오는 냉소주의에 가득 찬 것이다. 어떻게 주권을 가진 한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봉준호의 웃음은 차가운 웃음이다. 벌어져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한 대답으로서의 벌어질 수 없는 일. 그래서 괴물이 나타난다. 그걸 보고 웃는 관객은 둘 중 하나이다. 그건 냉소적인 동의이거나, 못 본 척하(거나 실재를 보지 못한 채 역사를 영화 안에 가두려)는 외면이다. 이 직접적인 참조의 토대. 맥팔랜드 사건이 일어난 지 6년이 지났지만 그걸 ‘한국’영화 안으로 끌고 들어온 사람은 봉준호뿐이다. 그는 “누구든… (중략)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지만 그걸 다룬 영화를 만든 건 당신뿐이다. (봉준호의 상식으로는) 누구든? 하지만 아무도! 오직 당신만이 그렇게 떠올리고 그런 다음 그렇게 설명한다. 구체성 안에서의 투쟁. 타락한 현실의 구조 안으로 들어와 그 안에서 벌이는 비극적 조건에 대한 희극적 행동. 그때 이것은 현실에서 벌어진 사건을 상징적 네트워크 안으로 끌어들여 실재를 보라고 호소하는 정치적 투쟁의 놀랄 만한 소생이다. 같은 말의 반복. <괴물>은 우리에게 정치적인 읽기를 요구하는 영화이다. 그걸 외면하면 안 된다. 현실이 덮어쓴 환상을 치우려는 투쟁. ‘괴물’이 나타나 당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간다. 그때 비로소 투쟁이 시작된다. 카피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투가 시작된다’.

그런데 문제가 다소 복잡해졌다. <괴물>의 사투는 이중적인 것이 되었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전에 인터넷에서 이 영화에 관한 평을 읽었다. 물론 그걸 다 읽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수천편의 글이 올랐고(당연하지! 영화사 보도자료에 따르면 6일 만에 371만명이 보았다고 한다), 공식적인 지면과 웹진에 올라온 글만도 수십편에 이른다. <괴물>은 본 다음 그 사람으로 하여금 무언가 말하고 싶게 만든다. 그건 전적으로 봉준호의 재능이다. 그런데 그걸 무심코 읽다가 이상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 글들은 서로 다른 입장으로 쓰인 것임에도 거의 일제히 일정 부분을 이 영화가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는 데 할애하고 있었다. 나는 그 주장(들)이 좀 이상하게 읽혔다.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아니라고 주장할 아무런 필요가 없으며, 그래야 할 그 어떤 이유가 있을 리 없다. 그 글들은 어떤 반론을 위해서 쓰인 글이 아니다. 대부분 첫 시사를(보거나 첫 주말에) 본 다음 아직 어떤 글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첫 인상을 쓴 글들이다. 봉준호는 무대 인사에서 제발 <괴물>을 정치적으로 보세요, 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그 글들은 누군가의 견해에 반박하기 위해서 <괴물>이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이다(그 글들을 읽은 내 독후감은). <괴물>을 본 다음 이 영화는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영화를 본 다음 즉각적으로 떠오른 자기의 인상으로부터 무언가를 방어하기 위해서, 말 그대로 자기의 인상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주장하고 있는 중이다. 그 부정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한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러한 방어가 필요해진 것일까? 혹은 왜 자기 자신이 본 것에 대해서 자발적으로 저항해야 할 필요가 생겨난 것일까? 수동적인 자기 자신(의 정치적인 목격)에 대한 자기 자신에의(비정치적인) 능동적인 무력화. 말 그대로 정치적인 견해를(지닌 영화를) ‘지금 눈앞에서’ 보는 것에 대한 창백한 두려움. 정치적 외설성? 그러니까 <괴물>은 그것이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그것이 보는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일까? 그런데 그게 왜 부끄러운가? 혹은 그것이 왜 두려운가? 탈정치적인 담론들이 넘쳐나는 유행의 시간. 그것을 ‘쿨하다’고 말하는 시대. 그런데 <괴물>은 영화 안에서 ‘괴물’과 사투를 벌이면서 사실상 영화 바깥에서 정치적인 것에 대한 집단적인(대중적인?) 혐오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그 담론들로 하여금 말하지 않으려는 정치적인 것을 마주보게 만들고 있다. 정치적으로 말하지 않으려는 것.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정치적 스펙터클. 물론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은 ‘정치적인 것’(la politique)과 달리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하면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우파들이 좌파영화를 보면서 프로파간다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반대로 좌파들이 우파영화를 보면서 파시스트영화라고 말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결론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것을, 그것 자체를 <괴물>에서 보지 않는다면 달리 볼 만한 무엇이 거기 있는가?

괴수영화 계보로 따지면 <괴물>은 B급 컬트

만일 <괴물>을 그냥 오락스펙터클영화로 보면서 ‘Digital怪獸’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주목한 다음 그걸 우리가 마침내(!) 만들었다는 흥분을 잠시만 제쳐놓는다면 우리는 이 정도의 (기술적 완성도를 지닌) ‘괴물’영화를 이미 너무 많이 보았다. 그래서 <괴물>을 ‘괴수’영화의 계보에 놓는다면 B급 컬트영화 정도일 것이다. ‘괴물’의 스펙터클이 보고 싶다면 그저 예고편으로 충분하다. 미안하지만 더이상 놀라운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만일 영화 앞장면 15분을 놓쳤다면 다시 보는 편이 낫다. 그런 다음 괴물은 가끔씩 단지 ‘깜짝 쇼’만을 할 뿐이다. 게다가 누구나 본 다음에 하는 말이지만 괴물이 불타 죽는 마지막 클라이맥스의 CG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구리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훌륭하지도 않다. 차라리 정반대이다. 도무지 앞뒤가 말이 안 된다. 정말? 따져 물어보자.

할 수 없이 줄거리의 짧은 환기. 2000년 2월9일 주한 미8군 용산기지. 더글라스 부소장은 한국인 김씨에게 ‘먼지 낀 포름알데히드’ 수백병을 한강에 ‘방류하라’고 명령한다. 2000년 7월, 한강에서 두 낚시꾼이 무언가를 본다. (아직 오지 않은) 2006년 10월, 부도 맞은 사장이 한강에서 자살하기 직전 강 속에 무언가 있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가을. 한강 여의도 둔치에서 할아버지 박희봉(변희봉)과 아버지 박강두(송강호)는 매점을 하며 먹고산다. 엄마는 13년 전에 도망갔고, 딸 현서는 중학교 2학년이다. 삼촌 박남일(박해일)은 대학 다닐 때 정치운동을 한 다음 졸업하고 백수로 불평불만만 늘어놓으며 술로 나날을 보낸다. 고모 박남주(배두나)는 수원시청 대표 양궁선수로 별명이 ‘거북이’라고 부를 만큼 모든 일에 굼뜨다. 그 가을 오후 괴물이 나타나 현서를 잡아간다. 가족은 이제 현서를 되찾기 위해 악전고투를 하고, 군부대는 한강 접근을 차단하고, 미군은 바이러스 오염으로 판단한다. 와중에 할아버지 희봉은 죽고, 이제 남은 세명이서 괴물을 잡기 위해 현서가 있다는 원효대교 북단으로 달려간다. 그때 미군 부대는 ‘에이전트 옐로우’라는 생화학전으로 괴물을 죽이려 하고, 환경단체는 반대시위를 하기 위해 한강에 집결한다. 그때 괴물이 나타나고, 모두 도망간 원효대교 아래에서 강두 가족은 괴물을 불태우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미 잡혀간 현서는 죽은 다음이다. 그리고 짧은 에필로그.

보고 난 다음 누구라도 상식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질문. 한강의 백주대낮에 괴물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마구 잡아먹는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이 괴물을 잡을 생각도 안 하고 그냥 한강에 접근하는 것을 통제하는 것 이외에 하는 일이 없다. 시민들은 괴물이 나타나서 사람을 잡아먹고 있는데 다들 바이러스에 감염될 걱정만 하고 있다. 그런데 바이러스가 더 무서울까, 잡혀먹히는 게 더 두려울까? 미군 부대에서는 괴물에는 신경도 안 쓰고 바이러스 감염자만 찾아내려고 애를 쓴다. 그 괴물이 나타나서 사람을 잡아먹고 있는데 한강에 ‘에이전트 옐로우’를 사용하여 괴물을 사살하려고 하자 환경단체에서는 괴물이 나타나서 사람을 잡아먹건 말건 ‘에이전트 옐로우’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시위에만 몰두한다. 정말 그럴 수가 있을까? 그런데도 영화는 시침 뚝 떼고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심지어 이 영화에서 괴물이 있다고 믿고 있는 건 박강두의 가족과 영화를 보는 우리뿐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더 이상한 건 이 상식적인 질문을 내 동료들은 거의 던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여기에는 지금 일종의 벌거벗은 임금님과 비슷한 사태가 있다. 두 가지 질문. 왜 눈앞에 있는 걸 보지 않는가? 혹은 못 본 척하는가? 이를테면 <한반도>에 대해서는 그렇게 이야기의 불합리성에 대해서 꼬치꼬치 묻던 이들이 <괴물>에서는 그게 안 보이는 척한다. 봉준호가 그걸 모를 리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봉준호가 모를 리가 없다. 그러므로 당연한 그 다음 질문. 그렇다면 봉준호는 <괴물>에서 우리가 무엇을 보기 원하는 것인가? 아니, 차라리 ‘한강에 사는 괴물’은 정말 무엇인가?

본 것을 못 본 척하게 하는 강박증

나는 먼저 이 영화 제목 <괴물>을 물어보고 싶다. 이 영화의 (처음 알려진) 제목은 <한강>이었다. 그러다가 <리버>로 바뀌었다. 그런 다음 다시 <괴물>이 되었다. 이것은 단지 제목을 바꾼 것이 아니라 아마도 봉준호 자신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관심이 옮겨간 과정의 기록이기도 할 것이다. 사실 이 영화가 한강에서 찍기는 했지만 <괴물>은 한강의 풍경에 거의 관심이 없다. <괴물>을 본 다음 한강의 새로운 풍경을 보았다는 말을 나는 믿을 수 없다. 강의 풍경을 보여줄 수 있는 2.35의 (시네마스코프) 비율을 포기하고 <괴물>은 1.85의 비율로 찍었다. 촬영을 한 김형구는 말한다. “봉 감독과 함께 시네마스코프 사이즈와 1.85 대 1 사이즈 모두 테스트 촬영을 해봤다. 넓고 와이드한 화면이 블록버스터에 적합한 건 당연하다. 규모도 큰 작품이고 한강처럼 펼쳐진 공간을 담으니까. 하지만 이건 한강 홍보영화가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폐쇄된 하수도, 그 안에 있는 괴물이었다.”(<필름2.0> 홈페이지, “한강에 괴물이 산다”, 2006년 7월20일) 게다가 한강의 아날로그 풍경은 거의 없다. 괴물이 나오지 않는 대부분의 한강의 화면조차 후반 DI(digital intermediate) 색보정 작업으로 덧칠해놓았으며, 그래서 한 프레임 안의 밝기와 그림자 부분이 살아나기는 했지만 사실상 이 한강의 모습은 (‘먼지 낀 포름알데히드’로 한강의 환경공해를 다루는 이 영화의 토픽과는 반대로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스러운’ 숏을 볼 수 없는 디지털 풍경화이다. 이를테면 두 번째 신에서 광각렌즈로 잡은 다음 덧칠해서 할 수 있는 한 (아마도 <괴물>에서 가장) ‘와이드하게’ 보여주는 비오는 날 낚시하는 장면. 강의 풍경은 동시에 물에 비치는 빛의 풍경이다. 그러나 이 빛은 모두 디지털 빛이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장면이 디지털로 만든 장면이니 본 적이 없는 게 당연하지! 그런데 그게 정말 한강의 풍경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잘 알다시피 한강에는 모두 27개(혹은 공사 중인 다리까지 31개)나 된다. 하지만 공간적으로 <괴물>에서 한강의 풍경은 여의도 주변을 벗어나지 않는다. 장소의 고정. 게다가 시종일관 원효대교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 영화에서 나는 원효대교의 전경을 잡은 단 하나의 숏조차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한강의 새로운 풍경을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이상하게도 <괴물>에는 거기 없는데 그것이 거기 있는 것처럼 말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다. 그래서 영화를 본 다음 자신이 자기 자신에게 자꾸만 관심을 다른 데 돌리게 만든다. 무엇을 무엇으로부터? 왜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그토록 애를 쓰는가? 본 것으로부터 보여지지 않은 것에로의 후퇴, 아니 차라리 퇴행. 거기 있는 그 무엇으로부터 미학적인 설명에로 물러나기. 좀더 정확하게 ‘괴물’을 ‘괴물영화’로 가둬두기. 그 힘. 말하자면 자기 암시. 그런데 그것이 내게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없는 것을 본 척하는 것이 아니라 본 것을 못 본 척하려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사유 안에 머물려는 안간힘. (못 본 척하려는 사람들과 같은 말투로 말하자면) 더도 덜도 아닌 강박증.

영어 제목 <The Host>는 ‘주인’이란 의미

그런 다음 세개의 서로 다른 제목에 대해서. 이 영화가 ‘공식적으로’ 처음 보여졌을 때의 제목은 <The Host>였다(<괴물>은 올해 칸영화제 감독주간에서 첫 시사회를 가졌다). 그런 다음 한글 제목 <괴물>로 개봉했다. 나는 그때 왜 <The Host>가 <괴물>로 번역되었는지 궁금했다. (영어사전에 따르면) ‘Host’의 말뜻에는 ‘괴물’이란 풀이가 없다. 그런데 영화 <괴물>에서 ‘Host’는 ‘괴물’이다. 두 말은 이 영화에서 동의어란 뜻이다. 그때 두말 사이의 번역을 성립시키는 근거를 물어보는 것은 중요하다. 한 가지 더. 그런데 일본어 제목은 한글을 일본어로 그냥 읽은 <구에무르>(グエムル)다(부제는 ‘漢江の怪物’(한강의 괴물)이다. 그런데 일본어에서 괴물은 우리가 말하는 괴물과 뉘앙스가 다르다). 그 말뜻은 이 영화는 ‘怪物’이지 (일본영화에서 시리즈로 등장하는 ‘고지라’와 같은) ‘怪獸’가 아니라는 의미의 완강한 저항일 것이다. 결국 영미권과 유럽, 일본, 한국이 다 다른 뜻으로 소개되었다. 말하자면 어느 쪽이 진짜 ‘괴물’의 속뜻일까? 영화를 본 다음 영어 제목을 생각했다.

내가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은 ‘Host’를 (거의 대부분의) 기사들이 ‘숙주’라고 번역할 때이다(봉준호의 어떤 인터뷰에서도 나는 그가 ‘Host’를 ‘숙주’라고 번역해야 한다는 대답을 읽지 못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무엇이 혹은 누가 ‘宿主’인가? ‘숙주’는 기생을 ‘당하는’ 대상이지 기생을 ‘하는’ 동식물이 아니다. <괴물>에서 괴물은 기생을 당하는가? 아니면 유괴당한 현서는 괴물에 기생‘하는가’? 혹은 그 역인가? 그런데 그 둘 사이에는 (괴물영화에서 흔히 보는) 그 어떤 소통도 없다. 현서를 뒤쫓는 네명의 가족들이 현서의 유괴에 빌붙어 국가로부터 위자료를 받으며 현서의 죽음에 기생‘하는가’? 그러므로 현서는 가족에게 기생‘당하는가’? 아니, 그렇지 않다. 나는 <괴물>을 숙주와 기생의 관계로 읽는 것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영화 <괴물>의 영어 제목 <The Host>는 ‘주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인? 그렇다. 그것도 배 터지도록 먹고 마신 다음 다시 토해내는 식탁에 초대한 주인의 자리이다. 봉준호는 (인터뷰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처음에는 독극물을 쏟아붓고, 괴물도 사람 뼈를 뱉어내고, 나중에 에이전트 옐로우가 가스 배출하는 것까지 먹고 뱉는 모티브를 반복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누군가가 먹인다는 거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송강호가 밥상을 차리는 것도 그렇고, 강두의 딸 현서는 지옥 같은 지하에서 자기보다 더 작은 아이를 보호하려 사투한다. 이게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이다.”(<한겨레> 7월12일자, “오른발은 코미디, 왼발은 비극, 그냥 걷는 걸음으로 찍었다”) 마지막 말의 봉준호의 말을 다시 읽으실 것. “이게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이다” 먹고 뱉어내기. 누군가 먹인다는 것.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이 ‘가장 중요한 모티브’를 따라 읽으려하지 않는다. 숙주는 강탈을 당하는 것이지, ‘기생하는’ 그에게 기꺼이 베푸는 것이 아니다. 숙주는 자기에게 기생하는 상대에게 환대를 베풀지 않는다. 환대를 베푸는 것은 언제나 그를 손님으로 초대한 주인이다. 그렇다면 누가 주인인가? 혹은 누가 손님인가? 주인과 손님의 자리를 놓고 벌이는 술래잡기. 주한 미8군 더글라스 부소장이 한강에 ‘방류’하라고 명령한 “먼지 낀 포름알데히드”를 먹은 다음, 그로부터 6년8개월 뒤 부도 맞은 다음 한강에 뛰어들어 자살한 윤 사장을 먹고 인육에 맛을 들인 괴물이라는 손님을 한강에 초대한 주인은 누구인가? 나는 그 주인을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서가 괴물에게 납치된 건 그녀의 계급적 운명

한강 강변이라는 만찬석상. 온갖 종류의 (한강 강변에는 외국인들도 보인다) 인육 파티가 열리고 있는 장소. ‘에피타이저’로(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면 괴물은 왜 현서만 ‘잡아먹지’ 않은 것일까?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다. 배가 불러서!) 중학교 1학년 소녀가 항상 그 시간에 그 장소에 나타나는 만찬식장. 당신은 현서가 운이 없어서 괴물에게 납치되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만일 괴물에 쫓기면서 강두가 붙잡고 도망치던 그 손이 현서의 손인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그 손의 주인이었던 바로 안경 낀 현서 또래의 그 소녀가 괴물에게 잡혀갔다면 그건 정말 운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서는 운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그녀의 계급적 운명이다. 운명이라고? 그렇다. 나는 그래서 그녀의 죽음이 더 슬프다. 그녀는 매일, 그 시간에, 그 장소에 학교가 끝나면 와야 한다. 가난의 대물림. 박희봉은 강두와 남일, 남주를 앉혀놓고 그 자신의 한강 강변 매점을 ‘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가족사에 대해서 길게 설명한다.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남일과 남주, 모두 잠들 만큼 지겹도록 한 이야기. 그런데 그걸 지금 다시 말할 때 그건 우리보고 들으라는 것이다.

“느그들은 잘 모르겠지만 강두 저 놈, 갓 태어나서 무지 똑똑했어. 아닌 게 아니라 상계동 신동 났단 소리 들으면서 컸단 말이지, (중략) 그러다가 남주 태어난 다음 해에, 니들 어미마저 저 세상 가고, 니들 둘은 대전 큰고모 댁에 임시방편으로 가 있을 동안, 그래두 강두 이놈은 나랑 있겠다구 상계동에 남아가지고 말여, 내가 새벽부터 야밤까지 일 나갔다 들어와 보면, 이놈이 빈속으루 하루 종일 어딜 그러케 삘삘거리면서 돌아다녔는지, (중략)그러구선 상계동서 와르르 쫓겨나가지구, 강변에서 장사 시작하고, 몇해쯤 지나선가 강두 나이 스물셋 됐을 땐가, (중략) 이 자슥이 태어난 지 며칠두 안 된 핏덩이 하날 뜩 델꾸 들어와, 그게 현서, 애엄만 벌써 어디루 날라버렸고…(중략).”

그런 다음에도 이 처량한 이야기는 새벽에 매점 앞에 괴물이 나타날 때까지 이어진다. 이 대사는 박희봉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자 서울 도시 빈민의 연대기이다. 그의 대사를 따라 다시 구성해보자. 달리 배운 것 없고 몸이 재산인 박희봉은 아마도 대전에서 살다가 도시 근대화가 이루어지던 1970년대 그 어느 날 무허가 판자촌이 즐비하던 서울 외곽 상계동에 둥지를 틀었을 것이다. 그는 낮밤으로 일을 했고, 하지만 그에게 집은 생기지 않았다(말하자면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올림픽을 앞두고 상계동은 재개발에 들어갔고, 거기 살던 박희봉 일가는 쫓겨났을 것이다(김동원의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 그리고 그와 그의 아들과 그의 손녀는 이제 한강 강변에서 먹고, 살며, 잔다(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그 추운 눈 내리는 겨울날 밤 강두와 어린 세주는 한강 강변 외로운 매점에서 저녁밥을 먹은 다음 여기서 잔다). 여기는 그와 그의 가족의 의(衣), 식(食), 주(住)의 무대이다. 물론 세상은 그들 가족에게 관심이 없다. 그건 올림픽이 끝나고 이제 월드컵마저 끝난 지금 그때 상계동에 살던 이들이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과 같다. 현서는 그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왜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알 리가 없다. 하지만 그들의 가난은 현서가 매일, 학교가 끝나면, 한강에 와야만 하는 운명을 안겨준다. 부모의 가난은 자식에게 운명이다. 이게 이 영화의 납치를 끔찍하게 만든다. 여의도 매점에서 살고 있는 현서는 한강 원효대교 북단에 살고 있는 괴물이 나타났을 때 (원효대교는 여의도 둔치로 오는 두개의 한강 다리 중 하나이다) 마주칠 수밖에 없는 바로 그 자리에서 매일 살고 있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다. 만일 현서가 잡혀가지 않았다면 그녀는 운이 좋은 것이다.

 

사회적 인과응보의 집행자로서의 괴물

물론 박희봉의 연대기를 내가 모두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매점 안에 걸려 있는 멧돼지의 박제머리와 ‘엽우회’(獵友會)라는 모임에 박희봉이 총을 들고 서 있는 기념사진은 그의 삶의 이력 가운데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박희봉이 그들 가족 중에서 괴물과 마주쳤을 때 유일하게 총을 잘 쏜다는 사실 이외에는 더이상 이 박제와 기념사진은 아무것도 증언하지 않는다. 혹은 멧돼지를 잡은 그가 그 반대로 괴물에게 붙잡혀 죽는 것은 인과응보라는 뜻일까? 물론 괴물은 박희봉의 과거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괴물은 그 무언가를 집행한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괴물의 등장은 어떤 패턴을 따르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떠올려보자. 괴물이 처음 한강 둔치에 나타나 닥치는 대로 잡아먹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달아난다. 그때 사람들은 철제 이동식 화장실 안으로 도망친 다음 미처 마지막 여자가 들어오기 전에 무정하게도 문을 잠가버린다. 그때 괴물은 이 여자에게 아무 관심도 없이 그 잠긴 문을 부수고 들어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잡아먹는다. 그러므로 그 창고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창고에 들어가지 못한 그 여자뿐이다. 여기서 왜 창고 바깥에 남겨진 희생의 잉여가 필요해진 것일까? 이 살아남은 잉여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촉구하고 있는가? 혹은 괴물이 두 번째 나타났을 때. 비내리는 한강에 방역 가스를 뿜으며 달리던 차가 잠시 멈춰 서서 방역 요원 중 한명이 내려 떨어진 돈을 주우면서 좋아한다. 그때 괴물은 갑자기 나타나 그 돈을 주웠다고 좋아하는 사내를 바로 잡아먹는다. 여기서 왜 괴물이 나타나 그냥 잡아먹는 대신 돈이라는 미끼가 필요해진 것일까? 돈이라는 근본적인 유혹. 남의 것을 주인을 찾아주는 대신 자기가 갖는 행위. 그런데 돈에 주인이 존재하는가? 돈에 주인이 있다는 생각에는 무슨 믿음이 있는가? 화폐라는 물신.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사이의 모순의 치환. 세 번째 장면. 세진과 세주는 한강에서 사람들이 철수한 틈을 타서 매점을 턴다. 하지만 세진에게는 원칙이 있다. 매점 물건을 털긴 하지만 돈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그러면서 세주에게 말한다. “이건 도둑질이 아냐, 우린 지금 매점 서리를 하는 거야, 매점 서리, 알어? 수박서리, 참외서리, 할 때 서리 (중략) 서리는 배고픈 자들의 특권이 되겠다, 이 말이야, 알겠어?”라는 말이 끝나자 세진과 세주 앞에 기다리는 건 마치 그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문득 나타난 괴물이다. 그리고 그 말은 세진이 한 마지막 말이다. 두 번째 희생의 논리에 대한 반대의 논리의 집행. 이번에는 상품의 유통이라는 과정에서 시장의 존재를 부정하고(같은 말이지만 사회적 생산과 사적소유 사이의 모순에 대한 부정), 배고픈 자들에게는 가진 자들의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을 했을 때 괴물은 그것을 부정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불현듯 나타난다. 사실상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괴물이 출현하여 벌이는 행위는 신기하게도 생물적인 본능을 따른다기보다는 사회적인 인과응보의 그 어떤 집행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괴물은 영화적으로 ‘느닷없이 나타나’ 우리를 깜짝 놀라게 만들지만, 동시에 괴물의 행위는 ‘제때에 나타나’ 현실 속의 불편한 행위를 중단시킨다. 여기에는 두개의 그림이 있다. 하나는 괴물이 그의 본능에 따라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중이라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괴물 자신도 스스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회적(이거나 도덕적)인 죄에 대해서 그가 법을 대신하여 벌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벌은 법이 내리는 벌보다 훨씬 잔인하고 피비린내 난다. 봉준호는 법이 내리는 벌이 너무 가볍다고 보여준다. 혹은 어쩌면 두개의 벌이 사실상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인과응보. 그런데 인과응보는 이 영화에서 거의 영화 전체에 집행되고 있는 잉여지식이다. 무자비하고 어떤 타협도 알지 못하는 지식. 말하자면 세상의 질서? 아니,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너무나 단도직입적이어서 외설적으로 느껴질 만큼 노골적인 자본주의 국가의 법질서 혹은 도덕.

좀더 인상적인 장면. 현서의 합동분향 영결식장에는 많은 화환이 놓여 있다. 그런데 웃지 못할 화환 중의 하나. ‘대구 지하철 유가족 일동.’ 그게 왜 거기에 놓여 있을까? 한강에 나타난 괴물과 대구 지하철에서 불이 난 것은 무슨 동병상련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봉준호의 인터뷰(위의 <한겨레>). “(중략) 이 사람들은 시스템으로부터 소외되고, 도움은커녕 방해만 받지만 아무도 시스템 탓 안 하고 자기들끼리 보듬으며 재앙을 개인화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지 않나? 예를 들자면 대구 지하철 참사도 구조적 모순을 탓하기보다 내가 돈 잘 벌었으면, 대학입학했을 때 차 사줬으면, 안 당했을 변을 당했다, 는 식의 반응이 많았다. 이런 게 한국적이고 사실적이다. 재앙은 훨씬 더 구조적인 것에서 온 건데, <괴물>의 식구들도 마찬가지다.” 훨씬 더 구조적인 결과로서의 재앙. 하지만 재앙의 개인화. 봉준호의 이 말의 방점. “이런 게 한국적이고 사실적이다.” 괴물은 거기 훨씬 구조적인 결과로 나타나 현서를 납치하지만, 박강두 가족은 그 재앙을 개인화한다. 그런데 그게 박강두 가족만일까? 혹시 영화를 보는 당신도 그 재앙을 개인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박해일이 연기한 박남일은 ‘추억’의 타임머신

그런 다음 현서의 삼촌이자, 박강두의 남동생인 박남일. 그때 박남일을 박해일이 연기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같은 말이지만 우리는 <괴물> ‘이후’에 <살인의 추억>에 관해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는 결국 범인을 잡지 못할 엔딩이 뻔한 <살인의 추억>을 봉준호가 왜 만들어야 했는지 항상 궁금했다. 그 모든 노력에 대한 허망한 결론. 그런데 사실 <살인의 추억>은 그 이야기만으로 본다면 결국 <괴물>과 같은 이야기이다. 혹은 <플란다스의 개>까지도 봉준호는 이미 한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중이다. 그는 세번 모두 같은 이야기를 찍었다. 봉준호의 주인공들은 열심히 찾아다니고(seek and…) 그런 다음 찾는다(…find). 그런데 그들이 찾은 건 이미 죽었거나, 끝내 확인되지 않는다. 그때 봉준호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니, 그가 찾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범인이 아닌 용의자. 이미 죽어버린 현서. 그러므로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봉준호 영화의 두개의 그림. 거기서 봉준호는 무엇을 ‘보는’ 것일까? 그저 이야기, 그런데 이야기가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 이야기의 과정에서 반복되어 ‘보여지는’ 고문. 우리가 <살인의 추억>에서 보는 것은 고문장면이었다는 것을 환기해보자. 만일 이 영화가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추적하는 대신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빌려 1980년대 고문에 관한 ‘정치적인 영화’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허문영은 “(<살인의 추억>의 박해일이) 흥미로운 건 이 인물에게서 대학생의 이미지가 나온다는 점이다. 대학생인데 뭔가 쫓겨서 운동하러 공장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80년대 억압을 영화가 말하는데도 억압을 빚어낸 장본인인 살인범이 그 시대에 억압과 맹렬히 싸운 대학생 이미지를 가졌다는 것은 흥미로운 아이러니이다(중략)”(<한겨레> 2003년 12월19일자, ‘소통 넓어진 호러-사극, 금기와의 대면 기념적, 그런데 ‘현재’는 어딨지; 2003년 한국영화 결산좌담’)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들었을 때 문득 봉준호의 다음 영화를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괴물>에서 봉준호는 그 대답이라도 하는 것 같다. <괴물>에서 박해일은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하다가 졸업한 다음 백수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박남일로 옮겨온다. 그런데 그는 말하자면 1980년대의 후일담, 아니 차라리 그림자처럼 보인다. 혹은 80년대에서 그냥 걸어나온 듯한 인물. 박남일은 그 선배의 말을 빌리면 “도바리의 천재”이고(그런데 이런 말을 2006년에 누가 쓸까? 혹은 10대 관객은 이 말뜻을 알 수 있을까?), 그가 ‘꽃병’ 만드는 걸 보면서 노숙자는 말한다. “아주 도사구만, 손이 안 보이는구만, 손이, 딸딸이 저리가라다”(그런데 21세기 대학교 시위에서 당신은 ‘꽃병’을 본 적이 있는가? 그는 그걸 어디서 배웠을까?)

박남일은 <살인의 추억>의 시간을 고스란히 들고 <괴물> 안으로 옮겨온 일종의 ‘추억’의 타임머신이다. 혹은 이 말이 과장되었다면 박남일은 2006년에도 1980년대 안에서 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더이상 연대는 없다.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그의 선배는 졸업한 다음 대기업 이동통신 회사에 취직했고, 그런 다음 현상금을 타(서 빚을 갚)기 위해 그의 후배를 신고한다. 그때 선배는 단 한 숏에서도 후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의 관심은 현상금에서 얼마나 세금을 떼는가뿐이며, 다만 그 자리에 남일이 그의 누이마저 데리고 나타나지 않아 두배로 현상금을 받지 못한 것에 아쉬워할 뿐이다. 그때 이 장면이 <괴물>에서 유일하게 한강 강변 바깥의 도시를 다룬 신이라는 것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강변 저편의 휘황찬란한 도시. 이제 어떤 정치적 연대도 기대할 수 없는 배신과 신고로 이루어진 저편. 납치당한 손녀, 딸, 조카를 찾기 위해 가장 보잘것없는 가족이 그렇게 애를 쓰는데 누구도 관심없는 시대. 카드와 빚으로 이루어진 신자유주의 디지털 시대의 스산한 사리사욕의 이해관계만 남아 있는 저 거대한 빌딩. 거기에 남일의 자리가 있을 리 없다. 그는 ‘꽃병’을 들고 한강에 가야 한다. 거기만이 그가 서 있을 장소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싸우는 대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 괴물이 무엇의 결과이며, 결국 그 결과를 없을 때 그가 없애는 것이 그 결과가 제공하는 원인의 이유를 말소시킴으로써 그것을 제공한 미국에 무죄를 안겨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오직 남일에게는 눈앞의 투쟁만이 그의 목표이다. 봉준호의 냉소적인 웃음이 여기서 울려퍼진다. 그래서 그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짓인지 봉준호는 남일이 던진 꽃병을 보면서 한껏 웃는다. 그는 단 한번도 괴물을 ‘꽃병’으로 맞추지 못한다. 심지어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 그는 그만 어처구니없게도 ‘꽃병’을 떨어트려 깨트리고 만다. 남일은 현서의 영결식장에서 묻는다. 무엇을 할 것인가? 그런 남일에게 봉준호는 묻는다.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런 다음 힘든 질문이 남아 있다. 13살 중학교 1학년 현서는 그녀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괴물에게 잡혀가야 하며, 그녀는 무엇을 대가로 결국 죽어야 하는가? 첫 번째 질문은 이미 대답했다. 그러나 두 번째 대답은 간단하지 않다. 우선 그냥 영화에서 보여준 대로의 대답. 괴물은 현서를 잡아다놓았고, 현서는 하수구 틈새에 숨어 있었으며, 괴물은 그 다음 세주를 잡아왔고, 현서와 세주를 잡아먹은 다음, 강두가 괴물의 입에서 꺼냈을 때 현서는 이미 죽었고, 세주만 살아남았다. 괴물은 아무 생각이 없었고, 현서는 그냥 운이 없었다.

하수구에 있는 현서가 강두의 꿈이라면?

그러나 여기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숏이 있다. 그걸 생각해보아야 한다. <괴물>은 시작하면 바로 현서를 가족으로부터 떼어놓는다. 그들은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이미 부서진 가족이고(합동분향소에서 박희봉의 대사, “행여, 애만 싸질러 놓고 도망간 게 벌써 13년짼데…”), 그런 다음 괴물이 나타나서 현서를 그들과 떼어놓는다. 그들은 영화에서 단 한번도 한 자리에 모인 적이 없다. 아마 영화 시작 이전에도 모인 적이 없을 것이다(같은 자리에서 박희봉의 대사, “우리가 현서 덕에 다 모였다”). 박강두의 눈앞에서 괴물은 현서를 잡아먹는다. 그런데 그게 아주 멀리 떨어진 밤섬 저편에서 삼키는 게 희미하게 롱 숏으로 보인다. 그걸 보는 사람은 박강두이다. 그런 다음 현서는 가족과 떨어진 채 괴물이 살고 있는 원효대교 북단 하수도에서 네번 보여진다. 그런데 42번째 신, 현서의 두 번째 하수도 장면 보여주기 직전의 신. 그러니까 매점 내부의 장면. 병원에서 강두 가족 일행은 도망쳐 나와서 다시 매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모여 앉아 맛있게 라면을 먹는다. 그런데 그때 옆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붙잡혀간) 현서가 부스스 일어나서 라면을 함께 먹는다. 더 이상한 것은 가족들 중 아무도 놀라지 않고 현서의 라면에 이런저런 반찬을 올려놓아준 다음 다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라면을 먹는다. <괴물>이 초현실주의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가 초현실주의적인 형식으로 편집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이 신은 둘 중 하나이다. 이 신을 앞장면, 그러니까 세진과 세주 앞에 괴물이 나타난 다음 도망치기 위해 매점 문을 열었는데 그걸 할아버지 박희봉의 손으로 연결한 트릭 숏으로 연결하지 않고, 그 신의 다음 신, 그러니까 하수구 아래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기진맥진한 현서의 얼굴로 연결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수구에서 거의 정신을 잃어가는 현서가 잠시 생각한 숏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순서를 뒤바꿔 붙인 이 숏은 ‘서프라이징’ 이외의 어떤 기능도 없다(상식적인 편집은 정신을 잃어가는 현서를 보여주고 그런 다음 이 매점 숏을 붙이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놓으면 두개의 신은 설명이 되지만 갑자기 편집이 뒤죽박죽이 된다. 한번은 앞으로 가고 다음번은 뒤로 가보자. 먼저 매점의 숏을 놓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보자. 그 앞은 할아버지 박희봉이 매점 문을 여는 인서트 숏이다. 그런데 이 인서트는 마치 그 앞의 신에서 세진과 세주가 괴물의 공격으로부터 도망쳐서 매점 문을 여는 것처럼 매치-트릭-숏으로 연결하였다. 그 앞의 신은 매점을 ‘서리하는’ 세진과 세주이다. 그런데 세진과 세주는 한강 다리 지하도 하수구에서 총을 쏘는 강두 가족과 우연히 마주쳤을 때 등장한 인물이다. 영화는 여기서 세진과 세주가 나타난 다음 옆으로 빠져서 세진과 세주를 따라서 진행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 숏에서 강두 가족으로 넘어왔다. 그 다음 매점 숏에서 뒤로 가보자. 라면을 먹는 숏이 나온 다음 하수구의 현서의 얼굴로 이어붙였다. 그때 괴물이 나타나서 세진과 세주를 버리고 간다. 현서는 세진의 코에 손가락을 대본 다음 그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다음 이 숏은 박강두가 매점에서 그들의 가족 곁에 누워 잠을 자는 쇼트로 연결하였다. 그리고 강두는 계속 자고 있는 데 박희봉은 남주와 남일을 앉혀놓고 그 자신과 강두에 관한 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기 미묘한 문제가 생겨난다. 매점을 현서의 꿈으로 보지 않고, 하수구에 있는 현서가 강두의 꿈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렇게 되면 매점의 숏은 꿈속의 꿈이 된다. 반대로 현서가 꿈을 꾼 것이라면 강두가 자는 장면은 시간적 동시성의 숏이 되지만, 그렇게 되면 매점 안에 들어와 라면을 먹은 장면은 꿈인지 실재인지 모호하게 된다. 나는 이 숏을 무시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걸 설명하기 위해서 좀더 앞으로 가야 한다. 그것도 맨 처음으로. <괴물>은 제목이 보이고 나면 박강두가 매점에서 잠자는 숏으로 시작한다. 그는 항상 잠을 잔다. 매점에서 잠든 강두를 보면서 하는 박남일의 대사, “진짜 신비롭지 않냐? 이 상황에서…”. 할아버지 박희봉의 대답, “그냥 냅둬라, 얜 짬짬이 눈을 붙여줘야 돼”. 제목이 나온 다음 잠든 박강두 앞에 가장 먼저 나타난 등장인물은 ‘매점 서리하러’ 온 세진과 세주이다(그런데 그때 자막이 계속 흐르고 있어서 놓치기 쉽다). 박강두는 그들을 보지 못했지만 세진과 세주는 그를 보았다. 그런데 세진이 본 것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세진은 두번 다시 강두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살아서 다시 강두를 보는 건 세주뿐이다. 현서는 세진과 세주가 매점 앞을 떠난 다음에 등장한다. 그 둘은 서로의 자리를 바꾸어 차지한다. 하나가 등장하면 하나가 퇴장한다. 처음에는 이게 분명하지 않았다. 그런데 현서가 납치되고 난 다음 이 자리는 일종의 포르-다 게임처럼 진행된다.

현서는 괴물에게 유괴된 다음 강두의 가족에게 휴대폰으로 그녀의 생존을 알린다. 우리가 현서의 생존을 알게 되는 것은 그녀를 본 다음 그녀가 휴대폰을 거는 모습을 통해서가 아니라 병원에서 골뱅이를 먹다가 강두에게 걸려온 현서의 잡음 심하게 섞인 목소리를 통해서이다. 그런데 봉준호는 그 전화를 무참하게 그냥 끊어버린다. 단지 전화만 끊은 것이 아니라 실제의 숏도 그렇게 한다. 현서는 이 신에 뒤이어 붙어 있지 않고 그 사이에 방독 가스를 뿌리고 다니는 자동차의 남자들이 돈을 줍기 위해 나온 다음 괴물에게 붙잡히는 신이 있다. 그들을 잡아먹은 괴물을 따라 카메라는 느리고 우아하게 그 서식지에 까지 쫓아간 다음에야 비로소 거기서 현서를 보여준다. 그런 다음 다시 영화는 병원으로 돌아온다. 사실 방독가스 차에 탄 남자들이 붙잡혀 가는 것을 (한번이라도 더 괴물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보여줄 필요는 없다. 그런데 봉준호는 이 신의 진행을 일단 중단시키고 그 사이에 괴물을 개입시킨 다음 현서를 보여주고, 그리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온다. 병원에서 다시 병원으로. 좀더 정확하게 병원 신 안의 하수구 신. 이 말의 핵심. 그리고(and)가 아니라 그 안(into)에.

현서가 하수구에 붙잡혀 있는 두 번째 장면과 매점장면 사이의 편집에 대해서는 이미 말했다. 세 번째 현서의 신. 다시 붙잡힌 박강두는 한강에 “먼지 낀 포름알데히드”를 방류한 더글라스 부소장과 김씨를 만난다. 물론 박강두는 눈앞의 더글라스가 현서를 납치해간 골뱅이-괴물의 원인 제공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박강두는 지금 마취제를 맞아서 정신이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그 박강두를 침대에 묶어놓고 카메라가 하이 앵글로 내려다볼 때 한참을 난동부리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문득 하수구의 현서로 옮겨간다. 현서는 세주에게 “뭐가 제일 먹고 싶어?”라고 물은 다음 자신은 “시원한 맥주”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그 대답에 응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괴물이 나타나서 트림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뼈가 쏟아져 나오고,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캔 맥주를 토해낸다. 캔 맥주에 대한 두개의 대답. 그 하나. 그 캔 맥주는 잡혀가기 전 현서가 발로 찬 것을 먹은 다음 소화가 되지 않자 이제야 토해낸 것이다. 두 번째 질문. 그런데 이 신이 박강두가 마취제를 맞으면서 진행되는 신 ‘사이’에 있다는 것을 환기해야 한다. 그런 다음 현서가 희생자들의 옷을 묶어서 탈출하기 위한 동아줄을 만들지만 실패한 다음 이어지는 신은 (다시 앞으로 돌아와?) 병원에서의 박강두의 장면의 연속이다. 나는 이 신이 처음에는 신기하게 보였다. 그 까닭은 병원에서 진행되는 사건을 일단 중단하고 왜 그 안으로 편집을 나눈 다음 그 ‘사이’에 현서의 에피소드를 끼워넣었느냐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이야기의 진행을 구태여 번잡하게 만들고 있다. 나의 두 번째 대답. 만일 현서의 이 신이 마취제를 맞으면서 의식이 흐려져가는 박강두의 비전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왜 괴물은 그 순간에 나타나 트림을 한 다음 많은 토사물 중에 캔 맥주를 토해냈을까? 그때 그 맥주는 매점에서 아버지와 딸이 사이좋게 앉아서 남주의 양궁 중계를 보면서 박강두가 건네주던 그 캔 맥주라는 기억의 흔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까? 캔 맥주라는 기억의 매듭. 그러니까 이 현서의 신 전체는 병원장면의 일부이며, 이 신은 박강두가 마취제에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문득 떠올린 현서의 비전이라는 편이 이 편집을 이해할 수 있는 순서가 아닐까?

네 번째 현서의 신. 박강두는 병원에서 탈출하고 난 다음 원효대교를 향하여 달린다. 그리고 현서의 이름을 외친다. 그때 현서가 있는 하수구의 신이 텔레파시처럼 등장한다. 여기서 나는 현서가 아니라 현서가 ‘있는 하수구의 신’이라고 썼다. 현서는 세주를 깨운다. 그런 다음 잠들어 있는 괴물을 보면서 세주에게 말한다. “누나가 금방 나갔다 올게, 빨리 나가서 의사랑 119랑, 군인 아저씨, 경찰 아저씨, 죄다 데리고 올게.” 하지만 우리는 설혹 현서가 나갔다 할지라도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강두 가족의 ‘사투’를 보면서 잘 알고 있다. 현서는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가서 괴물을 밟고 동아줄을 잡지만 그러나 괴물은 깨어나고 만다. 도망치는 현서를 향해 괴물이 달려들면 화면은 페이드 아웃된다. 그런 다음 이 장면은 박강두의 얼굴 클로즈업으로 이어진다. 박강두는 괴물의 은신처에 도착했고, 괴물은 입 속에 현서와 세주를 물고 원효대교 북단을 향해 가는 중이다. 현서가 나오는 네 번째 하수구 장면도 세 번째 장면과 같은 편집을 하고 있다. 박강두의 행동을 일직선으로 따라가지 않고 그 사이에 현서의 에피소드 신을 넣어서 그 행동을 나누고 있다. 여기에는 편집에서 신 안의 인서트의 주관성이라는 문제가 개입하고 있다. 나는 이 세 번째와 네 번째의 편집에 의지해서 두 번째 매점에서 현서가 나타나는 장면은 박강두가 꿈속에서 현서를 만나는 장면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설명된다면 세 번째와 네 번째도 모두 박강두의 신 안에서 생각하는 현서의 신이다.

현서의 죽음에 우리 모두는 정치적으로 유죄다

말하자면 여기에는 어떤 텔레파시가 있다. 구태여 <괴물>을 본 다음 어떤 영화를 떠올려야 한다면 봉준호의 <괴물>이 왜 피터 잭슨의 <킹콩>이 아니냐고 묻는 대신 이 영화가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의 ‘사우스 코리아’ 버전으로서의 대답이라는 편이 어떨까? 네티즌들 사이에서 봉준호를 부르는 표현, ‘봉필버그’. *^^* 어느 날 도시 한복판에 느닷없이 나타난 낯선 그 무엇. 그런 다음 무지비한 공격. 납치당한 자식, 그 아이를 구하려는 아버지의 악전고투. 여기에는 있는 아버지와 자식 사이의 텔레파시와 구원을 향한 드라마. 하지만 둘 사이의 유사성은 여기까지이다.

나는 신42의 매점장면에서 현서가 나타나는 장면이 현서의 죽음에 대한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봉준호가 갑자기 현서를 죽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마지막 장면에는 현서를 죽여야 할 그 어떤 이유도 없다. 더 비장하게 만들기 위해서? 보는 사람을 울리기 위해서? 아니, 그 반대이다. 만일 현서를 죽이게 되면 봉준호는 괴물 영화의 컨벤션과 정면으로 싸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봉준호는 괴물영화라는 장르와 싸우는 데 관심이 없다. <괴물>은 비장한 척할수록 웃겨지는 영화이다. 박강두는 심각해질수록 보는 사람을 웃긴다. 혹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조차 웃는다. 이를테면 박남일이 ‘꽃병’ 투척에 실패하는 대목. 한강에 괴물 따위가 있을 리 없다. 봉준호는 지금 2000년 2월9일에 벌어진 실제 사건을 끌어안고 끔찍한 질문을 하는 중이다. 내 생각에 <괴물>의 핵심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할리우드 괴수영화가 한강 강변에서 매점을 하는 가족 앞에 나타났을 때 벌어지는 이 우스꽝스러운 소동 속에서 보여지는 스펙터클에 대한 휴머니즘의 무관심과 영화 속과 같은 날 벌어진 동일한 사건에 대한 정치적 무관심 사이의 유사성에 대해서 그 둘을 할 수 있는 한 거의 맞닿을 만큼 서로 가깝게 다가갔을 때 그 사이에서 선택이란 있는가? 그 대답. 외양이 실재와 가까이 다가갈 때 그 사이에서 선택이란 없다. 왜냐하면 그 둘은 여기서 하나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 둘 사이의 유사성의 고리를 끊으려 할 때 정치적 무관심을 포기하고 휴머니즘의 무관심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이미 그 역은 구하기에 틀렸다. 맥팔랜드 사건은 이미 벌어졌고, 미군 기지가 이전하고 있는 지금 같은 사태가 심지어 반복되고 있다). 그것을 끊을 때 사실상 둘 다를 잃는 것이다. 그때 현서는 그 매듭이다. 그러므로 봉준호는 현서의 죽음을 놓고 내기를 한다. 무슨 내기? 피할 수 없는 질문(의 내기). 현서의 죽음 앞에서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걸 괴물에게 떠넘길 것인가? 만일 괴물이 마지막 순간에 현서를 잡아먹어서 죽은 것이라고 믿는다면 당신은 무죄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현서는 그 순간 왜 그 매점에 나타나서 함께 라면을 먹은 것일까? 차라리 현서는 그보다 훨씬 앞, 그러니까 괴물이 현서를 꼬리로 붙잡은 다음 그의 서식지로 데려갔을 때 이미 죽은 것이 아닐까? 그런 다음 그 모든 현서의 신은 박강두가 현서를 되찾기 위해 그 자신에 동기를 부여하는 비전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나에게 현서의 죽음은 사실상 현서가 매일,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와야만 하는, 봉준호의 말을 빌리면 “훨씬 더 구조적인 데서 온 재앙”, 즉 그녀의 계급적 운명의 결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야 옳다. 현서의 죽음에 대해서 우리 모두가 정치적으로 죄를 지었다. 이것이 정치적 정의의 죄의식이다.

그런 다음 나는 남주의 마지막 화살을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괴물과 싸우는 마지막 장면은 여러 가지 판본으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이 장면은 단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결국 남주의 화살에 괴물을 쓰러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때 나는 남주가 아니라 그 화살에 주목한다. 사실 남주에 대해서 우리는 거의 아는 것이 없다. 그녀가 대전에서 어떻게 자라나서 양궁선수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영화는 아무 설명이 없다. 왜 강두가 병든 닭처럼 졸기만 하는지,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건만” 4년 제 대학을 나온 다음에도 왜 남일이 한강 강변에서 술 마시며 세월을 보내고 있는 지, 그리고 왜 현서에게 엄마가 없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남주가 왜 매번 제시간을 놓쳐서 시위를 당기지 못하는 “거북이”인지(남일은 그렇게 부른다) 우리는 끝내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나도 남주의 심리적인 망설임을 더이상 읽을 수 없다. 그 불투명성. 이 네명의 설명의 영화적 판본의 공통점. (다시 한번 말하지만) 봉준호는 이 가족의 내면적 심리(의 과정)에 대해서 아무 관심이 없다. 그러나 그 화살은 이 영화의 마지막 행위이다. 그러므로 그걸 설명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남주의 화살은 우리 시대의 정치적 제스처

그 설명의 판본에서 내가 택한 것은 이 신 전체가 사실상 이 영화에 처음 괴물이 나타난 신의 반복이라는 것이다. 그때 이 반복 안의 차이 혹은 차이처럼 보이는 반복을 볼 필요가 있다. 우선 괴물이 나타나는 첫 번째 신(이하 첫 번째 신). 여의도 둔치에서 백주대낮에 사람들이 한가롭게 즐기는 가운데 갑자기 괴물이 나타난다. 그 다음 괴물과 싸우는 마지막 신(이하 마지막 신). 원효대교 남단, 그러니까 여의도 둔치에서 백주대낮에 사람들이 ‘에이전트 엘로우’ 살포를 반대하면서 시위를 하는 가운데 갑자기 괴물이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 갑자기 나타나는 괴물. 첫 번째 신. 이 괴물이 나타나자 박강두는 철제 주차표지판을 들고 달려든다. 마지막 신. 박강두는 ‘1급 오염구역’ 철제 표지판을 들고 괴물에게 달려든다. 철제 표지판. 첫 번째 신. 모두가 도망가는데 미군 도날드 하사관이 보도블록을 깬 다음 이걸 들고 괴물에게 달려가 싸운다. 이걸 맞자 괴물이 잠시 멈칫거린다. 마지막 신. 모두가 도망가는데 거기 설치된 ‘에이전트 옐로우’ 풍선을 터뜨려 괴물에게 황색분말을 쏟아붓는다. 이걸 뒤집어쓴 다음 괴물은 비틀거린다. 미군. 첫 번째 신. 괴물이 나타났을 때 박남일은 한강변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마지막 신, 괴물이 나타났을 때 박남일은 한강변에서 소주에 휘발유를 넣은 ‘꽃병’을 들고 괴물에게 던지지만 단 한개도 맞지 않는다. 박남일의 소주병. 첫 번째 신. 박남주는 괴물이 한강변에 나타났을 때 전국체전에서 활을 쏘고 있었다. 그때 박남주는 시간을 놓쳐 활시위를 당기지 못한다. 그걸 본 현서는 실망하고 매점에서 나왔다가 괴물에게 납치당한다. 마지막 신. 박남주는 마지막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남일이 마지막 ‘꽃병’을 떨어트려 깨트리자 화살 솜방망이에 불을 붙인 다음 괴물을 향해 활시위를 당긴다.

질문. 그래서 오직 남주만이 그의 행위를 성공시켰는가? 내 대답은 반대이다. 남주의 행위도 사실상 남일의 행위의 반복이다. <괴물>은 대부분의 장면이 이야기를 앞으로 진행시키면서 동시에 대부분의 숏이 평행편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하나의 신 안에서 두개의 신이 진행된다. 영화의 앞부분. 괴물이 나타났을 때 (텔레비전 중계를 통해 보여지는) 남주는 화살을 쏘고 있다. 그런데 그 화살은 결국 시간을 놓쳐서 쏘지 못한다. 같은 말의 다른 표현. 그 화살은 결국 과녁을 제시간에 맞추지 못한다. 남주는 과녁을 맞추지 못하고 실망한 현서는 매점 바깥으로 나왔다가 괴물에게 납치당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괴물이 나타난다. 그 괴물을 향해 남주는 활시위를 당긴다. 그런데 이게 남주가 괴물을 향해서 활 시위를 당긴 네 번째라는 사실을 환기해야 한다. 처음은 비오는 새벽, 할아버지 박희봉이 괴물에게 죽을 때 그녀는 활시위를 당기려다가 제지당한다. 두 번째는 달려오는 괴물에게 활시위를 당기려다가 그만 괴물에게 하수구에 처박힌다. 세 번째는 괴물에게 활시위를 당기려다가 현서를 입에 물고 있기 때문에 강두에게 제지를 당한다. 그리고 지금 괴물에게 활시위를 당긴다. 그러나 이미 현서는 죽은 다음이다. 그것이 복수의 의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현서를 구하기 위해서 그녀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그것은 남일이 ‘꽃병’을 던지는 것과 동일한 행위이다. 그 화살은 대상을 향해서 날아가 맞기는 했지만, 그 화살은 끝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 대상과 목표의 분리. 그때 목표없는 대상이 되어버린 괴물이란 무엇일까? 당신은 정말 한강에 괴물이 살고 있다고 믿는가? 그 활시위는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일종의 공허한 몸짓의 반복이다. 남주의 화살보다 더 우리 시대의 정치적 제스처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알레고리가 있을까? 내가 여기서 보는 것은 봉준호의 차가운 냉소주의이다. 그는 정치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그걸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는 그 안에서 역설적으로 정치적인 행동을 향해 깔깔대고 웃으면서 공허한 제스처처럼 다룬다. 그는 여전히 항의한다. 그러나 한참 항의한 다음 그 항의라는 행위가 지닌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대해서 환멸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나는 봉준호가 이 외설적일 만큼 노골적인 ‘정치적인 영화’에서 무엇을 은폐하려는지가 궁금하다. 나는 현서의 시체 앞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괴물>에서 끝내 지켜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질문하였다. 그 하나는 가족이다. 그러나 영화 <괴물>은 가족에게 관심이 없다. 그들은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부서졌고, 그런 다음 더 부서져가는 과정을 밟을 뿐이다. 그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괴물이라는 것이다. 괴물이 죽었을 때 사실상 이야기는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로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악순환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이 영화가 끝난 다음 (다시 시작하는 현실 속의 속편의) 첫 장면은 당연히 다시 주한 미8군 부대에서 “먼지 낀 포름알데히드”를 방류하는 순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선택이 남는다. 괴물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먼지 낀 포름알데히드”를 선택할 것인가? 같은 질문의 다른 판본. 정치적 어젠다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현실 속의 모호함 속에서 반식민지 상태로 ‘그냥’ 살 것인가? (더글라스 부소장의 말을 빌리면) “한강 큽니다, 마음을 크고 넓게 가집시다”. 양자택일. 나쁜 것과 더 나쁜 것 사이의 선택.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선택. ‘정치적인 것’의 상태와 탈정치적인 일상 사이의 선택.

정치적인 각성을 일깨워 실재를 보라고 외치다

영화는 여기서 갑자기 끝난다. 그런 다음 음산한 에필로그가 기다리고 있다. 갑자기 무대는 눈 내리는 한 겨울 밤 한강 강변으로 옮겨간다. 거기 강두의 매점이 있다. 남일과 남주는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다시 헤어져서 아마도 이전처럼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이제 현서가 없어졌기 때문에 그들이 다시 모일 일은 없을 것이다(박희봉의 대사 “현서 덕에 우리가 다 모였다”). 그 매점에 박강두와 세주가 살고 있다. 현서의 자리를 대신한 세주. 일종의 유사 가족. 여전히 어머니의 자리의 부재. 나는 이 장면에서 현서의 죽음에 대한 그 어떤 애도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렇다면 이 에필로그는 왜 필요했던 것일까? 괴물은 아직도 죽지 않은 것일까? 또 새로운 골뱅이가 “먼지 낀 포름알데히드”를 먹고 있는 것일까? 강두는 여전히 세상일에 관심이 없다. 아마도 현서와 (간접적으로) 관련된 방송일 텐데 그는 발가락으로 채널을 꺼버린다. 눈이 내리고, 강변에는 강두의 매점만이 홀로 쓸쓸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이때 이 장면은 단지 낮과 밤의 차이가 아니다. 혹은 현서에서 세주에로의 대체가 아니다. 여기에는 좀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박강두는 괴물이 나타나기 전에 그런 게 나타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대낮에도 밤처럼 잠을 잔다. 그런데 괴물과 싸우고 난 다음에는 한강에 언제든지 괴물이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작은 소리에도 총을 잡는다. 그래서 한밤중에도 잠을 자지 못하고 바깥을 살피면서 두리번거린다. 사실상 박강두의 입장에서 한강에 괴물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물론이다. 그러나 그걸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 사이에서 그 차이가 지금 정치적인 것의 위기감과 탈정치적인 것의 나른함 사이의 차이와 불길할 만큼 닮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당신은 이 마지막 장면이 만족스럽거나 불만족스러울 것이다. 그 만족과 불만은 정확하게 위기감과 나른함 사이의 차이의 반복이다. 만족스러운 위기와 나른한 불만족. 이 비대칭의 공존. 그때 우리 앞에 나타난 어두운 하수구. 화성에서는 연쇄살인이 벌어져 시체들이 발견되었던 그 하수구, 한강에서는 괴물이 살고 있다는 그 하수구. 현실 속의 실재가 있는 그 블랙홀. 말하자면 정치적인 것의 어두운 구멍. 나는 정확하게 <괴물>의 거기까지만 지지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 글을 여기서 멈춘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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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정성일의 괴물론

천안 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프린트물로 읽었다.

별로였다. 가끔 못본 디테일에 대해서 얘기하는 건 '흠' 하며 읽기도 했다만

팩트에서 크게 잘못된 부분도 있고, 전체적인 논지는 우스웠다.

제목에서 말하는 '정치적인 읽기'를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그렇게 읽으면 무척 영화가 허접해지기 때문이다. 상업 영화로 보면 일정 수준이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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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멸

노무현 정권에 헛된 기대가 없었으니 실망할 건 없지만 은근히 부아가 나는 건 그 정권이 극우파들(이른바 '수구기득권세력들')에게서 경멸당한다는 것이다. 고작 극우파들에게서. 극우파들은 처음에 그 정권을 ‘적대’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경멸’하게 되었다. 경멸의 이유는 그 정권이 자신들보다 급진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들보다 윤리적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운동을 했던 놈들이 군사 독재의 찌꺼기들보다 윤리적이지도 않다니, 찌꺼기들 스스로도 얼마나 우스웠겠는가. 입이라도 다물면 더 덥지나 않으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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