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 친일절 되다 
  [진중권 칼럼] 김경준한테 사기 당한 것보다 더 멍청한 일 
 
  2008-03-02 오후 2:47:40    
 
 
 
 
 
  왜 하루도 조용하게 넘어가는 날이 없을까? 뉴스 보고 한심해서 한 마디 해야겠다. MB가 사고를 쳤다. 대통령이 되어 처음 맞는 삼일절에 한다는 소리가 겨우 일본의 과거사를 묻지 않겠다는 얘기. '역사의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되지만'이라 단서를 달았지만, 그 단서는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말로 가볍게 부정된다. 그 메시지가 뭘 의미하는지는 용량이 2MB만 되어도 알 것이다.
 
  반성이 발목을 잡는다?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지 말고, 두 나라가 함께 미래로 나아가자.' 이것은 역대 정권의 공식적 입장이었다. 따라서 이번 삼일절 담화가 이런 것을 의미했다면, 별로 특별한 게 못 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 담화는 분명히 과거와는 다른 얘기를 하고 있고, 또 그렇게 보도가 되고 있다. 그 다른 점이란 뭘까? 그것은 결국 '역사의 진실을 묻는 것보다 미래로 나아가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어법을 이해할 수가 없다. 미래로 나아가려면 과거사를 반성해야 한다. 그런데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겠다면, 그것은 함께 미래로 나아가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게 제대로 된 어법 아닌가? 반성은 미래를 위해서 하는 것. 반성을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퇴행이 아닌가. 그런데 MB 사전은 다르다. 그의 사전(私典)에 따르면, 외려 과거사를 반성하라는 게 과거에 얽매여 미래의 발목을 잡는 짓이란다.
  
▲ 1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9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가 3.1절 노래를 제창하고 있다.ⓒ뉴시스 
  작년이던가? 미국 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캐나다 의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유럽 연합 역시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발뺌하는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비판한다. 그럼 북미와 유럽은 과거에 얽매여 미래로 나아가지 않으려고 저러는 걸까? 다른 나라 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하는 마당에, 한국에선 대통령이라는 이가, 그것도 삼일절에, 버젓이 저런 발언을 한다.
 
  '과거사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자.' 어디서 많이 듣던 것 소리 아닌가? 맞다, 과거사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늘 일본총리들이 하던 얘기다. 그들은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과거를 죄악으로 반성하는 게 아니라 영광으로 기억하려 한다. 이게 MB가 말하는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다. 기껏 대통령 시켜놓았더니, 자기가 대한민국 대통령인지, 대일본국 총리인지 헷갈리는 모양이다.
 
  이게 실용인가?
 
  일본이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으려면, 과거를 분명하게 반성해야 한다는 게 국제사회의 상식이다. 역사교과서 왜곡을 앞세운 일본의 우경화는 주변국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세계와 공조하여 일본의 우경화를 막는 게 한국외교의 전략적 목표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MB는 지금 일본에 기대하지도 않았던 선물을 안겨버렸다. 대통령이 한 말이니 뒤집기도 어려워진 상황이다.
 
  어느 멍청한 신문에서는 벌써 한국이 일본에 선물을 주었으니 일본도 무역역조를 해결하는 데에 성의를 보이라고 썰렁한 주문을 한다. 반성의 의무를 면해줬다고 일본이 우리한테 뭘 줄까? 반성의 요구를 포기했다고 일본에서 나랏돈 풀어 김을 더 사겠는가? 굴을 더 사겠는가? 도대체 무슨 실익을 얻는단 말인지. 게다가 선조의 고통이라는 게 어디 돈 몇 푼에 팔아먹을 고물인가?
 
  일본을 몰라도 이렇게 모를 수가 없다. 불행히도 일본우익은 한국우익처럼 멍청하지가 않다. 무력을 동원하지 않는 한 가져갈 수 없는데도 독도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며 두고두고 우리를 괴롭히는 게 그들의 외교다. 설사 독도를 못 가져가도, 그것을 카드로 다른 것을 따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저들은 부당한 요구도 집요하게 해대는데, 대한민국은 정당한 요구도 그냥 포기해 버린다.
 
  오사카에서 자기 탄생비 세워준다니 화답이라도 하자는 건가? 아무리 대통령이다 하더라도, 국민들이 그런 발언까지 할 권한까지 준 것은 아니다. 누가 그에게 선조에게 고통을 모욕할 권리를 줬을까. 자기 임기야 5년으로 끝나지만, 한일관계는 그 후로도 계속될 문제.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그것에 대한 요구는 한일 두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실용'이라는 말의 용법
 
  일단 과거사는 돈 몇 푼 걸고 흥정할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해 두자. 설사 실용적 관점에서 본다 해도, 우리는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어느 나라 외교가 그토록 중요한 협상카드를 스스로 버린단 말인가? 일본의 외교를 보라. 36년 간 동안 저지른 거대한 만행에 비하면 그저 에피소드에 불과한 북한의 자국민 납치 문제를, 얼마나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던가.
 
  그가 좋아하는 '실용'이라는 말의 어법은 이미 장관 인선과정을 통해 드러났다. 그것은 '공직에 도덕성은 필요 없다.'는 뜻이다. 그 말은 땅 투기, 위장전입, 논문표절 등 온갖 부덕한 방법으로 살아온 인생들을 변명하는 낱말이었다. 그 앞에 붙인 '일만 잘하면'이라는 표현은 그저 조건문, 한 마디로 입증되지 않은 사실의 가정법일 뿐이다. 일 잘 한다는 사람들이 제 집 하나 못 짓는 것을 보라.
 
  '실용'이라는 말로써 그는 일본의 부도덕까지 변명해준다. 경제적 실익만 준다면, 일본의 도덕성을 문제 삼지 않겠다는 얘기. 여기서도 '경제적 실익만 준다면'이라는 표현은 그저 조건문, 한 마디로 기약 없는 약속의 가정법일 뿐이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게 이명박 정권의 외교식성인 모양이다. 상대가 누군가? 외교 스타일 더럽기로 소문난 일본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게 통할까?
 
  삼일절 담화는 김경준한테 사기 당한 것보다 더 멍청한 일이다. 그저 쓸 데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국익을 해치는 발언이다. 다른 날도 아니고 하필 삼일절을 택해 그런 발언을 한 데서 어떤 조급증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국민에게 약속한 7%의 고도성장을 달성하는 데에 어떤 식으로든 일본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대한항공 747기, 일본 관제탑에 비상급유 요청. '과거는 묻지 않겠다. 연료만 넣어 달라. 로저.'
 
  한일 우익동맹
 
  사과를 면해주면 일본이 뭘 해줄까? 일본으로서는 이미 얻을 것을 얻었다. 그러니 따로 뭘 줄 이유도 없다. 사과를 면해준 게 고마워 박정희 시절처럼 원조라도 해준단 말인가? MB는 이런 것을 '실용'이라 부른다. 설사 그것으로 실용적 이득을 본다 해도 문제다. 일본이 바보가 아니라면, 그들이 베풀어줄 이익이란 과자 값 수준을 넘지 못할 게다. 근데 대한민국이 일본에 빌어먹는 거지냐?
 
  이건 경제적 '실익'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정치적 '이념'의 문제다. 한 마디로, 일한 동맹으로 북한을 고립시킨다는 냉전적 사고의 화석이다. 남북문제는 민족문제만이 아니라 국제문제라고 한 발언은, 한 마디로 남북관계보다 일한관계를 앞세우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바로 그것이 또한 일본우익의 바람이고 염원이라는 것이다.
 
  제 발로 걸어와서 제 민족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는 나라가 있다. 일본의 입장에선 얼마나 흐뭇하겠는가? 그런 것을 바로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라 부른다. 미국과 중국이야 남북한과 특수한 관계에 있어서 그런다 치고, 도대체 남북문제를 논하는 책상에 왜 일본을 앉혀야 할까? 그 이유를 모르겠다. 이건 실용이 아니라 냉전의 '이념'이며, 과거의 '관성'이다.
 
  국민의 지지를 못 받는 독재정권은 미일의 지지를 받아야 했다. 그 대가로 한반도에서 두 나라의 이권을 보장 해주었다. 명색이 우익이라는 자들이 제 나라 국익조차 못 챙겼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지금이라고 다른가? 집권하자마자 일본의 국익부터 챙긴다. 북한을 향해선 미국 매파보다 한 술 더 뜬다. MB정권이 북핵 해결 없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은 없다고 외칠 때, 뉴욕 필은 버젓이 평양에서 연주를 한다. 코미디가 아닌가?
 
  뉴라이트 역사관
 
  이번 담화의 바탕에 어떤 이념적 맥락이 느껴진다. 매우 추상적이고 애매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그 담화에는 MB의 당선에 기여한 뉴라이트 측의 역사인식이 일정하게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 얼마 전 뉴라이트가 일으켰던 역사교과서 파동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일본군 위안부가 실재했다는 증거가 없으며, 식민지배가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이 역시 한국우익의 형님이신 일본우익의 논리다.
 
  이런 맥락에서 계속 신경에 거슬리는 게 담화 속에 든 "밝은 면"이라는 표현이다. 물론 지난 정권에서 했던 과거사 청산작업을 비판하는 구절로, 한 마디로 과거에 친일과 독재를 했던 이들에게서 밝은 면도 좀 보자는 얘기다. 그런데 이게 몇 문장 뒤에서 바로 한일관계에 관한 언급으로 이어지면서 개운치 못한 고약한 뒷맛을 남긴다. 혹시 근세 한일관계에서도 '밝은 면'이 있었단 얘길 하고 싶었던 걸까?
 
  예년과 현저히 달라진 이번 담화. 거기에는 일정하게 일본우익과 한국 뉴라이트가 공유하는 역사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서 이루어졌던 역사 바로 세우기를 보며 그 동안 쌓여갔던 우익세력의 이념적 불만. 한국역사에 대한 그들의 이념적 반격이 '실용'이라는 간판으로 위장한 채 조용히 시작된 것이다.
 
  (뉴라이트가 왜곡으로 점철된 역사교과서를 만들었던 것은 그저 사적 취향의 발로가 아니라, 앞으로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그것을 가르치겠다는 공적 제안이었다. 현 정권에서 이들이 이념적 사제의 역할을 하는 이상,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의 이념을 공적으로 관철시키려 들 것이다. 이는 물론 '실용'도 아니고 '선진'도 아니고, '후진'적 이념의 노출, 즉 정치포르노일 뿐이다.)
 
  아무리 우익이라도 그 동안 민족 문제는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독재자 전두환, 노태우도 못 했던 일을 MB는 취임 며칠 만에 전격적으로 해치워 버렸다. '실용'이라는 마법의 주문 덕분이다. 불도저는 역시 업적도 빨리 세운다. 삼일절을 졸지에 친일절로 바꿔놓은 것. 2MB 정권의 첫 업적 되겠다. 
   
 
 
  진중권/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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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고 아이들의 견해



인디고서원에서 내는 인디고잉 12호엔 촛불과 광우병소 문제를 갖고 생태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해 되새겨보는 특집이 실렸다. 인디고 아이들의 글과 현병호 선생(민들레 발행인)의 광우병은 축복이다라는 글 그리고 우리 안의 대운하를 재수록하여 꾸몄는데, 아이들 글이 참 좋다. 그 일부.


저 역시 현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고, 또 그런 촛불 문화제를 느껴보기 위해 거리로 나가 촛불을 들었습니다. 소중한 시간에 이렇게 나와서 촛불 문화제를 펼치는 시민들을 보며, 우리들의 민주정신을 훌륭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시위는 온전한 생명의 존재로서 소와 따뜻한 정을 나누던 인간적인 삶의 회복을 위한 외침이 아닌, 우리만 안전한 먹거리를 먹으면 된다는,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시위였기 때문입니다.자연과 생명은 인간을 위한 경제적 착취의 대상이나 정치권력 획득의 도구가 아닙니다. 소를 바라보면서 따뜻한 정을 느끼고 인간과 자연이 하나됨을 느꼈던 우리의 생명 감수성은 어느새 자본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서 사라져버리고만 듯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필요한 건 참다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묻는 생태적 상상력입니다. 어느새 삶과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는 가장 근원적이고 본래적인 가치를 상실한 채 펼쳐지고 있는 구호나 저항들은 마치 오염된 바다를 인식하지 못한 채 그 바다 위에 일시적으로 일렁이는 파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다들 너무 이기적인 것 같다. 촛불 시위 피켓엔 “이명박 너나 미친소 쳐먹어” ''내 인생 좀 펼쳐보려고 하니 광우병 걸렸네“ 등 내가 죽고, 내 이웃이 죽고 우리 국민이 죽는 문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금 더 나아간다 해도 친미 정부, 자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정부를 탓하는 지점에서 끊긴다. 대한민국 안에만 들어오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들이다. 그러나 지구 위 어딘가에서 미친 소와 병든 닭, 그리고 오리는 여전히 아프다. 이런 병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누가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집회현장에는 거의 없었다. 좁은 우리에 꽉꽉 채워 넣어 면역력을 떨어트리고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충분히 먹을 만큼 많은 곡식을 소에게 먹여 소수가 먹을 고기를 만들고, 그도 모자라 소가 소를 먹어 병들게 만든 것.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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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7-11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낮에 보고 좀 울컥 했었어요 퍼왔다가 말았었는데....
 

한겨레 환경전문기자인 조흥섭 기자의 기사 타이틀이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 마블링에 있다.

호주산 쇠고기는 훨씬 더 쌀 수도 있고, 지금보다 더 안전할 수도 있다. 그들이 쇠고기 수출을 위해서 호주 대륙을 목장으로 뒤덮을 정도의 황당한 짓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일반적으로 최고의 육우는 아르헨티나산을 얘기했고, 요즘은 호주산을 얘기하는데, 80년대 이후 카길과 같은 거대 다국적기업들이 마블링이라는 기준을 제시하면서, 어쩔 수 없이 호주산 쇠고기도 도축 직전 몇 달간 옥수수를 먹이게 되었다.

아르헨티나는 요즘 얘기하는 이력관리니, 전수관리니, 그런 것은 물론이고, 옥수수도 안 먹인다. 당연히 역대 세계 최고의 품질이라는 명예와 함께 안전성에서도 세계 최고인데, 미국산 쇠고기의 마블링 위주의 품질 기준과 WTO 체계에서의 검역기준을 통과하지 못해서 잘 수출이 안된다. 검역장치니 그런 거 아르헨티나에는 없다.

물론 요즘도 유럽의 괜찮은 레스토랑에 가면 스테이크 종류 중에 아르젠틴 스테이크라는 별도의 요리 항목이 끼어있을 정도로, 전통적으로 '먹어주던' 브랜드였는데, 마블링 기준이라는 것이 나오면서 완전 피박 쓴 경우다.

이렇게 개피 본 나라 중에... 한국도 들어간다. 불행한 이야기이지만, DJ 시절, 이걸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딱 한 번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그 시절 나는 에너지관리공단에서 팀장으로 국제 협상 다니느라고 바빴고, 또 그 다음에는 총리실에 묶여있던 처지라 쇠고기 축산 문제에까지 개입하기에는 여력도, 형편도 안 되었다.

하여간 함정은 "고급 한우 브랜드"라는, 한우의 고부가가치화라는 게 걸렸는데, 이게 실제 한국 축산업계에는 독약이 되었다.

()

이게 한우가 마블링에서 불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전통적인 재래종은 병든 소가 잘 안된다. 이게 푸아그라와 거의 비슷한 원리인데, 재래종은 병이 잘 안 걸리니까, 신선도와 '고소함'이 높아도, 마블링 수치가 높아지지가 않는다. 국제 품질기준은, 사실상 마블링 하나로 결정된다.

쉽게 말하면, 마블링이 높은 소는, 피지혈증에 걸린 소다.

이걸 위해서 도축전 6개월 전부터 옥수수를 먹이고, 이게 grain fed라는 거다. 물론 나중에 동물성 사료를 먹이면 소가 더 잘 병에 걸리니까 이걸 전세계가 먹였고, 꼭 싸서 먹인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소가 더 등급이 높게 판정이 나온다. 물론 그렇게 해서 광우병이라는 병이 염소에서 소로 넘어오게 된 것이라고 사람들은 추정한다. 아직도 100% 정확한 것은 아니다. 자연발생적으로 이 광우병이 있는 거 아니냐고 할 정도로 자연상태에서의 발생 가능성이 과학적으로 완전 배제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정도가 가장 최근의 논문에서 확인한 내용들이다.

하여간 이런 경로를 통해서, 미국산 쇠고기가 맛있는 거다라고 하는 신화가 태어나게 되었다. 원래 스코틀랜드에서 미국 대륙으로 최초로 냉동수출했던 그 고기는 지금 우리가 먹는 쇠고기와 아주 다르다.

소가 옥수수만 먹는다는 것은, 사람으로 치면 설탕만 먹고 사는 정도에 해당한다. 당연히 병이 생기는데, 원래 등심의 일부에만 가끔 관찰되던 이 마블링의 수치도 높이고, 부위도 넓혀서, 특급 판정의 비율을 높이는 일이 벌어졌다.

한우 육우도 이 때 위기를 겪게 되고, 송아지 상태로 수입해서 키우기만 한국에서 키우는, 별 희한한 '한우'라는 게 다 생겨났다.

이렇게 해서 DJ 시절에 처음 등장한 '브랜드 한우'라는 것이 노무현 시절, 이제 완전히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이 때부터 농협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난리 부르스를 치기 시작한다.

"이제 한우의 품질도 뛰어납니다."

아니, 그럼 그 전에 먹었던 것은 열라 맛없었다는 거 아냐?

그런 건 아니다. 쇠고기의 맛이 기준이 달랐고, 한우에서 맛있다고 하는 방식과 가장 최고로 치던 궁중에서 왕이 먹던 너비아니 구이의 맛의 기준과, 마블링 방식의 스테이크의 맛이 기준이 다른 건 당연한 건데, 여기에 당한 게...

아르헨티나, 호주, 이런 전통적으로 강한 축산 강국들과, 덩달아 한국까지...

쇠고기의맛에 대한 얘기는 또 훨씬 긴 얘기들이지만, 하여간 우리는 쇠고기를 그냥 불에 구워먹는 방식으로 먹지 않았고, 고기에 칼집을 넣고, 양념을 하고, 숯불로 구워서, "고소하다"는 것과 함께 다양한 기준을 발전시킨 나라인데, 한 마디로 음식 선진국이고 문명국이었던 한국의 고기 기준이, 별 문화의 깊이 없이 그냥 구워먹는 '마블링' 기준에 당한 것이다.

일본은... 안 당했다. 훨씬 더 다양한 일본 기준 - 그 중의 상당수는 또 조선에서 유래했을 것이 분명한 - 을 문화적으로 세웠고, 그래서 1억원짜리 소라는, 또 다른 일본식 괴물이 탄생한 것이다. 하여간 일본은... 어쨌든 문화적 다양성으로 이 마블링의 공습을 피했다.

한국은... DJ, 노무현을 지내면서 지대로 당했다.

딱 한 번, 이걸 돌려세울 기회가 있었는데... 아, 하늘은 그에게 용기와 지혜를 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대가 만개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영웅이 한 번 등장했었는데, 이 영웅의 시대는 너무 짧았다. 게다가 그는 전라도 출신이라서, 한국의 주류세력들이 너무 그를 철저하게 냉대하고 무시하고 핍박했다.

90년대 중반부터 이 마블링의 기준에 대해서 새로운 반격의 흐름이 생겨나기 시작하는데, 여기에서부터 미국산 쇠고기가 아무리 마블링이 높다고 방방거려도 잘 먹히지 않는 새로운 흐름이 생겨난다.

이는 공교롭게도 영국에서 시작하였고, 이를 주도한 세력들은 우여곡절 끝에 EU 집행위원회를 장악하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이 가장 절정에 달했던 것은 GMO 파동과 연계된 농업과 관련된  국민투표였고, 결국 스위스에서는 헌법을 바꾸어버렸다.

다른 나라들도 헌법을 바꾸지는 않더라도 이에 해당할 정도의 조치들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에 한국은 노무현 시대를 겪고 있었고, 유럽과 호주 혹은 일본에서의 이런 조치들이 드디어 한국에도 어느 정도 상륙하려고 하는 시점, 이런 기준의 권한을 한국에서 가지고 있던 보건복지부 장관이 유시민으로 오셨으니...

학교 종이 땡땡땡...

식품안전기본법이 하늘로 날라갔는데, 그 때 이 법률 초안을 들고 죽어가던 법률을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했던 사람이 요즘 광우병 전문가로 전면에 나선 박상표 수의사 되신다.

그리하여, 조흥섭 기자의 '소고기 등급기준 ‘마블링’은 자본의 음모'라는 기사가 나온 이 시점에서도, 결국은...

어느 먼 나라에서 전설처럼 들려오던 얘기가 되어버렸던 것이니...

에너지와 자원 각 분야마다 이런 전설적인 왜곡이 양상을 달리하면서 다 존재하는데 - 쌀은 글루틴이라고 부르는 점성의 기준이 있다, 이것도 내용을 파보면 황당하고, 석유는 옥탄가라는 기준에 황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게 되는 긴 역사가 있다 - , 바야흐로 2008년 한국에서는 아직도 마블링이 여전히 신화되신다.

쇠고기와 마블링의 관계는, 음식과 MSG의 관계와 아주 유사하다.

차이는, MSG는 건강위해 관계가 아직도 논쟁 중에 있으나, 마블링은 성인병과의 관계에서 거의 이견이 없을 정도로 예방의학과 가정의학 분야에서는 앞으로 국민보건 정책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에서...

마블링을 그만 먹으라고 하면 우리가 잘 못 알아들으니, 40세 넘으면 성인남자들, 쇠고기 좀 그만 드세요, 라고 완곡화법으로 말하는...

혈압, 당뇨, 뇌질환, 심장질환, 하여간 이런 혈관과 관련된 질병에 걸려서 병원가면 제일 먼저 금하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마블링 높은 쇠고기이다.

그러니까, 쇠고기 마블링 등급도를 높은 것을 한우 축산대책이라고 하면서, 또 한 편에서는 의료보험 재정이 어려워지니까 의료보험 민영화를 추진하겠다고 하는 것을 모으면...

삽질되겠다.

그것도, 아주 공포의 삽질되겠다.

삼성, 현대, 이런 거대 보험사만 없었으면, 한국도 벌써 예방의학 체계에 의해서 질병 사전관리체계와 경제의 생태적 전환이 결합되는 형태로 상당 갔었을텐데, 이 넘들이 그 체계를 막아놓고, 나중에 외국계 보험사들이 들어와서,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단장의 미아리 고개가...

2008년 한국 되겠고, 그 고개의 최절정에 MB 서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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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은, 참 복잡미묘한 '텍스트'이다. 그를 한 마디로 규정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데, '복합성'이라는 표현을 쓰면 약간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한다.

그런 김훈이 7월 5일, 촛불집회 현장에서 누군가의 사진에 잡혔다. 시간, 공간, 그리고 피사체, 이 세 가지가 만들어내는 '구체성', 그것이 바로 예술이다.

김은남, 이상훈 부부가 있다. 시사저널 시절에 단식 농성하던 기자, 그 기자가 바로 김은남이다. 시사IN에 내가 글을 쓴 것은, 김은남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훈은, 한동안 환경운동연합의 총지휘를 맡았던, 바로 그 이상훈이다.

내가 결혼하기 전, 김은남 앞에서 나와 이상훈이 거의 무릎 꿇고 혼나던 시절이 있었다.

니들, 이렇게 살다가, 인생 허망하게 간다...

그 뒤에도 몇 번 혼났다. 나는 지금도, 김은남 기자가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혼돈 속에서 방황하던 시절, 정신 차리라고 혼냈던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한 명으로 김은남을 기억한다.

(김은남의 어머니와 이상훈 사이의 요졸복통 에피소드는, 들으면서 몇 바퀴 떼굴떼굴할만한 대박 사연들이 책 한 권 분량은 된다. 내가 지금의 집으로 이사오게 된 것도, 그 사연들의 연장이다.)

나나, 그의 남편 이상훈이나, 김은남 앞에서는 그야말로 고양이 앞에 쥐 신세였다.

그 김은남과 이상훈의 결혼 주례사를 김훈이 섰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하여간 안다면 조금 알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다.

내가 김훈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시사저널의 글들을 통해서였고, 나중에 <자전거 기행>과 사적인 관계들, 그리고 후에 <현의 노래>와 <칼의 노래> 그리고 <남한산성>까지 이어지는, 또 다른 그의 모습들...

어쩌면 김훈은 우리 시대의 텍스트 중의 하나이다. 많은 사람이 봤고, 모두들 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은 나를 포함해서 많이들 오해하고.

하긴 김훈 스스로도 김훈을 모르는데, 누가 그를 알겠는가. 김훈은 단순해보여도, 면이 많은, 그런 다각면체와 같은 존재처럼 보인다.

어쨌든, 그 김훈이 촛불 집회의 한 가운데, 7월 5일 피사체로 카메라에 잡혔다. 여전히 해석은 어렵다.

그러나 시사점이 큰 사건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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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7-08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시사점이 크네요

마늘빵 2008-07-08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김훈이 촛불집회라...

니나 2008-07-08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웽스북스 2008-07-09 00:54   좋아요 0 | URL
봤구나, 네이트온 들어오면 보여주려고 했는데 킁

라주미힌 2008-07-09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스가 있어요...

승주나무 2008-07-09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문열과 다른 포스는 있지요.
시사IN 창간 선포식 하고 고사를 지내는데 김훈이 독설을 쏘았어요.
"이것은 내가 바란 상황이 아니었는데, 기자들이 여기까지 왔으니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때 유명한 '사실과 의견 사이'라는 말이 나왔었죠.. 김훈은 지금도 시사인 기자들이 편집권에 대한 사실보다 의견에 치중해 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저의 판단은 중지한 상황이구요. 김훈을 좀 읽어봤어야지 ㅎㅎ

거리에 천막치고 나앉은 기자들에게 격려방문을 하고, 창간 앞둔 기자들에게는 독설을 퍼붓고, 촛불 앞에서는 지긋이 바라보고.. 간만에 김훈에 대한 글을 봐서 '텍스트'를 좀 더 구체화시키고자 몇 가지 인상을 적어 봤습니다^^

라주미힌 2008-07-09 01:50   좋아요 0 | URL
그렇군.
 

이제까지는 현장 리포터로 상황을 따라가는 데에 주력했기에, 몰려드는 모든 방송, 신문, 잡지 인터뷰들을 다 끊고 견해 표명을 삼가왔습니다. 사실 저는 리포터에 불과하고, 촛불집회는 대중의 반란이자 축제이기 때문에 제가 이리로 가자, 저리로 가자 훈수를 두는 게 주제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개인이 촛불정국에서 필요이상으로 부각되는 데에 대한 우려도 있었구요. 이제는 리포터이자 동시에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참가자의 입장에서 조심스레 제 생각을 말씀드려도 될 때인 것 같습니다. 

1.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관해서 말하자면, 수입이 일단 재개됐기 때문에 재협상을 요구하는 집회와 별도로  일상적 투쟁을 조직할 필요가 있습니다. 곧이 제 돈 내고 미국산 쇠고기를 먹겠다는 사람들을 말릴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선택 또한 존중받아야 하니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원하지 않는데도 미국산 쇠고기를 먹게 되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일 겁니다. 말하자면 쇠고기를 사먹을 때, 미국산 쇠고기인줄 모르고 사먹거나, 미국산 쇠고기로 속아서 사먹는 일을 막는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정부가 내다버린 소비자의 선택권을 시민들이 스스로 확보하는 과제지요. 

송기호 변호사가 주장한 것처럼 국내산 한우의 전수검사의 도입과 같은 의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소비자 운동의 관점에서는, 비록 쇠고기를 적게 먹더라도 질 좋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먹는 쪽으로 발상의 전환을 일으키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어차피 값싼 미국산 쇠고기 먹을 사람들은 대부분 돈 없는 서민일 것입니다. 하지만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에서 안전하지 않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은 인격과 인권의 문제입니다. '배부른 소리 한다'는 천박한 생각을 넘어, 식생활의 생태적 전환은 서민의 당당한 권리에 속한다는 인식을 확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생산자 운동의 관점에서는 몰려드는 미국산 쇠고기에 맞서 한국 축산업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정책적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정당과 시민단체에 속한 전문가들이 맡아줘야겠지요. 식량이 자원화, 무기화되는 상황에서 선진국들은 식량자급률을 계속 높여나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값싸지만 그다지 안전하지 못한 외국산 농축산물의 공세에 한국의 농업은 몰락해 가고 있습니다. "농촌에도 CEO가 필요하다" 어쩌구 하는 명박스러움을 넘어, 생태적 전환을 한국 농업의 회생을 위한 계기로 만드는 정책의 생산이 필요합니다. 이는 물론 위의 소비자 운동과 연동되어야겠지요. (이 부분은 저보다 잘 아는 분이 상세히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2.

미국산 쇠고기 반대운동을 일상적인 농산물 생산과 소비의 생태주의적 전환운동을 승화시키는 것과 더불어, 촛불집회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촛불집회를 계속 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비율은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실제로 한겨레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제의식에는 여전히 공감하나, 촛불집회의 계속에는 반대한다고 대답한 수치가 촛불집회를 계속해야 한다는 수치와 엇비슷하게 나옵니다.) 이는 촛불집회를 단순히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언젠가 집회 참가자들이 여론으로부터 고립되어 버릴 것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종교계의 가세로 촛불집회가 연장이 되긴 했지만, 그 효과는 영속적인 게 아니죠. 

게다가 두 달 넘게 촛불집회를 하느라, 시민들이 많이 지치기도 했지요. 이제 촛불집회의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양적 관점에서 질적 관점으로 시각을 전환해야 합니다. 평시에는 참가자의 에너지 소모를 막고, 촛불시위로 불편을 입는 운전자나 주변상인들의 민원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소규모로 준법시위를 벌여야 한다고 봅니다. 집회가 끝나면, 그 동안 집회로 타격을 입었던 음식점에서 뒤풀이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청계광장이든, 시청앞이든, 아주 조그만 문화제 형식으로 촛불시위를 이어나감으로써 '촛불은 결코 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매번 집회를 할 때마다 뭔가 다른 형식을 선보이는 창의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다가 가령  집중집회가 잡혀있는 7월 12일 같은 주말이나, 그 밖에 이 이슈와 관련하여 특별한 계기가 생길 때에는 언제라도 다시 결집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입니다. 청와대로 가기 위해 물리력을 동원하는 것도 좋지만, 청와대 가는 800번 버스를 타고 가다가 경찰의 제지를 받았던 촛불소녀들의 창의력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상상력으로 명박산성을 넘지 않았던가요? 

3.

어차피 반성하지 않는 정권, 앞으로 4년 내내 길 밖으로 쏟아져 나올 일이 계속 터질 것 같다는 예감이야 누구나 갖고 있을 것입니다. 의제의 확산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의제의 확산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제가 촛불집회 처음부터 강조했고, 또 얼마 전에 '아시아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지적했듯이, 촛불집회의 바탕에는 '쇠고기 문제보다 더 깊은 분노'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분노는,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대기업에서 자동차 몇 대 더 파느냐', 아니면 '국민의 생명권을 더 중시하느냐'의 선택지에서 아무 생각 없이 전자를 선택한 정권의 천박한 시장주의 이념에 대한 반감입니다. 

이는 쇠고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을 인격이 아닌 생산의 투입요소로 보아 소모적인 경쟁(그것도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70년대 방식)으로 몰아넣는 미친 교육, 시민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위한 의료의 공공성을 간단히 '산업'의 논리로 무력화시키는 위험한 발상, 시민의 생존권의 영역에 속하는 물과 에너지를 공공재가 아닌 상품으로 팔아먹겠다는 천박한 사고.... 촛불집회는 이 모든 명박스러움에 대한 반발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촛불집회를 통해 확인된 시민의 힘을, 이명박 정권이라는 시장주의 탈레반들과의 싸움에서 사회적 공공성을 수호하기 위한 저항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이명박 정권의 태도로 볼 때, 이 싸움 어차피 다양한 이슈를 놓고 4년 내내 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온라인의 네티즌들, 오프라인의 시민단체들, 그리고 야당의 위치에 있는 여러 정당들의 헙력으로, 장기적인 저항의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를 위해 무슨 국민본부 같은 단체를 결성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오프라인의 구심점 없이 이제까지 촛불집회가 그렇게 진행되어 온 처럼 아래로부터 자발적으로 움직이되, 이제까지와는 다른 뭔가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가미하는 형태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아니면 그것을 뛰어넘는 또 다른 대안이 있을 수도 있겠구요.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가 될지는 네티즌들의 대중지성에 맡겨 보려 합니다. 

4.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정권의 방송장악 음모를 저지하는 것이겠지요. 이미 아고라의 일부 네티즌들은 시청에서 KBS, MBC, YTN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의제와 확장은, 누가 지시하거나 명령할 것도 없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울러 조중동을 타격하기 위한 '숙제'를 열심히 하는 것, 경향, 한겨레, 시사IN,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다음과 같은 포털 사이트를 돕는  활동도 이 사회의 언론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일상적 활동이겠지요. 이번에 조중동이 엄청나게 타격을 입기는 한 모양입니다. 다음의 기사를 끊을 정도로 히스테리컬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십시요. ㅋㅋㅋ.... 

다른 하나는 7월 30일 서울시 교육감 선거입니다. 총선, 대선이 4, 5년 남은 이상, 시민들이 정권을 합법적으로 심판할 유일한 기회입니다. 이 선거에서 승리하여 이명박 정권의 미친 교육을 심판한다면, 두 달 동안의 촛불집회가 절반의 승리에 그치고 만 데서 비롯된 시민들의 좌절감을 상당 부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4, 5년 동안의 장기전을 위한 자신감을 심어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싸움이지요. 아직 공식적으로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진보신당과 칼라TV의 분위기도 법이 허용하는 한계 내에서 이 싸움을 최대한 도우려 하는 쪽입니다. 

다른 한편, 민주노총, 특히 화물연대나 금속노조의 파업을 통해 촛불과 노동운동 사이의 연대가 확인되었습니다. 물론 노조의 파업에 대한 지지가 얼마나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번 촛불집회가 시민들과 노동자들이 서로 처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아쉬운 게 있다면, 이랜드, 기륭전자, KTX 여승무원 노조와 같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이 촛불 속에 묻혀 버린 것입니다. 이번 촛불집회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같이 참여했다는 점, 잊지 맙시다. 그리고 이들의 처지가 곧 나의 처지요, 우리가 낳은 아이들의 처지입니다. 촛불집회를 통해 얻어진 연대의 정신이 앞으로 계속 이어졌으면 좋겟습니다. 

5.

이 모두가 실은 대의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현상입니다. 대의제는 간접 민주주의라, 국민의 의사가 왜곡되는 제도적 한계를 안고 있지요.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국민의 80%가 반대하는 정책을 강행하는 극단성을 보이는 것은 대의제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을 운용하는 가운데 거기에 내재된 위험성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현상이라 봅니다. 국민의 80%라면, 심지어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찍었던 사람들마저 배신당했다는 얘기죠. 그것은 대한민국 정당들 중에 제대로 된 놈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민주노동당이든, 창조한국당이든, 아니면 진보신당이든, 자기의 정치적 정체성에 맞는 정당에 가입하셔서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셨으면 합니다. 정치에 대한 혐오증이 이명박이라는 혐오스러운 대통령을 낳았다는 점을 잊지 맙시다. 이 문제, 하루 이틀에 해결될 문제 아닙니다. (이른바 명빠들 중에는 지역감정의 노예가 되어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전라디언'이라 부르는 저질들이 많더군요. 이 모두가 한국의 정당정치가 얼마나 왜곡됐는지 보여줍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살았다고 우리의 아이들에게까지 이런 후진적 정치를 물려줄 수는 없습니다. 왜? 이 후진적 정치가 우리 삶을 얼마나 괴롭히는지 이미 체험해 보지 않았습니까. 

어차피 대안은 거리에서 찾아질 수 없습니다. 해결책은 어차피 정책이라는 형태로 수립되고, 법률이라는 형태로 고정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정당 자체를 바로잡고, 나아가 보수 일색의 정당구조를 바로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없다면, 아마 몇 십 년 후에 우리의 아이들마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밤을 지새워야 할 겁니다. 

6. 

형식적이긴 하지만 대통령이 두 번 사과를 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랴부랴 추가협상을 하여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들여온다고 합니다. 촛불에 놀라 정부에서는 수도와 전기, 의료의 민영화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대운하도 추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물론 벌써부터 딴 소리가 흘러나오지만, 정부에서 공언을 해놓고 나중에 다시 추진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그때는 아마 '이명박 퇴진'이라는 구호가 상징적 구호를 넘어 현실적 요구가 될 것입니다. 그때는 정말 이명박씨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운동이 벌어질 것이고, 또 그를 정말로 끌어내릴 겁니다. 절반의 승리라고 할까요? 

하지만 촛불이 거둔 성과는 정작 다른 데에 있습니다. 이제까지 정치에 관심 없던 시민들이 드디어 정치가 자신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정당이나 단체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창의성으로  정치의 또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직접 경찰에 맞서다가 위협당하고, 연행 당하고, 폭행당하고, 구속당하면서 시민이 주권을 잃으면 국가권력으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는지 생생히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태가 자신들의 정치적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절실히 깨닫고, 자신을 정치적 주체로 세워냈습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촛불이 거둔 승리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들은 '냄비'를 얘기합니다. 그런데 어떤 냄비가 두 달을 끓습니까? 나중에는 자기들도 지겨워할 정도로 그만 좀 끓으라고 애원을 하지 않습디까? 촛불집회를 통해 시민들은 쉽게 달아올랐다가 금방 식는 냄비가 아니라, 한번 끓으면 두 달 동안 지글거리는 뚝배기임을 입증해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이 진짜 뚝배기가 되려면,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제가 앞에서 말한 일상의 실천 속에서도 열기와 온기를 보존할 때, 그때 시민들은 진정한 뚝배기가 될 것입니다. 

스크롤 압박을 주는 긴 글, 읽어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진보신당과 칼라티비는 촛불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 싸움에 끝까지 동참하고, 수 십 만개의 촛불이 빛나는 영광스러운 순간만이 아니라, 수백 개의 촛불이 권력과 보수언론의 파상공세를 받는 어려울 때에도 촛불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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