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스벅과 스타벅스 그리고 된장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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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에 하루 종일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다 가보지 못할 만큼 많은 유흥업소들이 즐비하다. 몇 달을 두고 보면, 늘씬한 이벤트업체 아가씨들이 신나게 춤추면서 개업을 알리는가 싶더니 이내 다른 업체의 아가씨들이 새로 단장한 가게 앞에서 춤을 춘다. 실로 대박을 꿈꾸는 자영업자들의 무덤이랄 수 있는 상업지구다. 하루 종일 글을 쓰다가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려면 반드시 나는 이 상업지구를 지나가야만 하는데, 그때마다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치킨집이 보인다. 녹색 간판에는 스타닭스라고 씌어 있다. 이 칼럼은 맛집 칼럼이 아니니까 그 맛에 대해서는 생략.

어쨌든 스타닭스의 간판을 볼 때마다 그 재치에 놀라게 되는데, 그래봐야 중국 칭다오에서 본 커피숍의 제목에는 못 미친다. 몇 해 전, 중국 옌지(연길)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적이 있다. 거기 호텔 커피숍에 가면 한국식 커피라고 해서 맥심이나 테이스터스 초이스 등의 인스턴트커피를 판다. 심지어는 하얼빈에 있는 홀리데이인 호텔 커피숍에서도 그런 커피를 팔고 있었다. 그런데 인스턴트커피라는 게 각설탕을 넣다 보면 커피가 튀기도 하고 경망스럽게 작은 수저로 휘휘 저어야만 하는 등 호텔 커피숍에서 마시기에는 폼이 나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 여름에 칭다오에 놀러 갔다가 녹색 간판을 보니 꽤 반가웠다. 중국이라 그런지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카페라테나 카페모카 등 그럴싸한 이름의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기뻤다. 걸어다니며 카페모카를 마시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마실 때는 역시 폼이 중요해. 독일풍의 건물들이 즐비한 칭다오의 여름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나는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 온통 검은색 수영복을 입은 중국인들로 가득한 제1해수욕장을 거닐었다.

앗, 그런데 웬걸. 다 마신 커피잔을 버리려고 보니 스타벅스가 아니라 스타스벅이었다. 그러니까 에스(S)자가 약간 앞으로 가 있었다. 그 에스자를 빼놓고는 모든 게 똑같았다. 글자체며 색깔이며, 마치 거기가 뉴욕이라도 된 듯 마시던 내 꼴하며. 그런데 이상하게도 스타벅스가 아니라 스타스벅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그 모든 게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나는 얼른 커피잔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어린 시절에 나이스 운동화를 신고 왔다가 친구들의 놀림에 그만 울어버린 동급생이 떠올랐다.

결국 나중에 베이징에 갔을 때, 진짜 스타벅스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이번에는 에스자의 위치를 자세히 확인하고 마셨다. 그런데도 그 맛이 영 찝찔했다. 한 잔의 가격이 30위안이 넘었는데, 옌지에서 나와 친하게 지내던 대학 기숙사 수위의 월급이 400위안이라는 걸 알고 난 뒤였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매일 커피 마시며 폼 좀 잡으려면 온 집안이 한 달 내내 쫄쫄 굶어야만 했다. 그래봐야 14일째는 반 잔밖에 마실 수 없다. 그때 좀 얄미웠다. 스타닭스와 스타스벅에는 없고 스타벅스에는 있는 그것이. 그러니까 그 비싼 스타일이라는 게.

며칠 전, 누군가 된장녀가 뭐냐고 물어온 일이 있다. 나도 모르긴 마찬가지여서 우리 시대 최고의 지식인인 지식검색 사이트에 물어봤더니, 그분께서는 “특히 남자를 볼 때 존나 능력을 보고, 돈을 보고 그런 남자만을 원하고 또 그런 남자에게 빌붙어서 편하게 살고 싶어하는, 남자를 아주 지 호구로 아는 뇬들을 지칭하는 말”이라며 “세계에서 제일 높게 책정된 스타벅스 커피가 한국에서 잘나가는 이유도” 그런 된장녀들 때문이라고 설명하시더라. 생산자에게나 소비자에게 공정하지 못한 사실을 스타일로 감춰버린다는 점에서 스타벅스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런 얘기 대신에 커피를 마시는 여자들을 다짜고짜 된장녀라고 공격하는 것도 불공정하긴 마찬가지다. 된장, “존나” 없어 보이니 맞춤법이나 맞게 쓰시기를 바란다.

김연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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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waits > [펌.레디앙]『남쪽으로 튀어!』 를 읽으니, 황이민이 생각나

 

『남쪽으로 튀어!』 를 읽으니, 황이민이 생각나
[독후감] 한국판 '운동권' 후일담 문학에 질린 사람들을 위해

이 글에서 나오는 황이민은 전 민주노동당 사무부총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민주버스노동조합에서 일하고 있다. <편집자 주>

『남쪽으로 튀어!(오쿠다 히데오, 은행나무)』를 받아 들자마자, 황이민이 생각났다. 책 표지로 쓰인 40대 사내 얼굴 그림이 민주노동당에서 사무부총장으로 일했던 황이민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선 굵은 생김생김이 그러했고, 잔 정 따위 없이 거칠 것 같은 표정이 그러했다.

『남쪽』은 한국에서도 유행했던 운동권 후일담 문학의 일본판이다. 사실, 진짜 후일담 문학이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지만. 혁명가보다는 그 언저리에 있었던 사람들 얘기를 후일담 문학이라 하면 좀 '남사스럽지' 않은가?

진짜 후일담을 이야기해야 하는 사람들은 너무 아파 아무 말도 못하거나, 아픔을 피하기 위해 망각 최면에 빠져 있거나, 아직도 혁명 중이라 문학적일 수 없다.

   
 

각설하고. 『남쪽』은 한국 후일담 문학하고는 천양지차다. 혁명가를 사귀었던 여자가 커피 잔을 움켜쥔 채 눈물 흘리는 한국 문학에 질린 독자라면, 철부지 혁명가 아버지를 둔 초등학교 6학년생의 좌충우돌 일상이 더 ‘혁명적’임을 금방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후일담 문학을 읽고 있자면, 이게 한국인가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한국에 있으되, 그들이 그리는 풍광, 언행, 날씨는 하나같이 동유럽의 칙칙한 가을이나 겨울이다. 한국에 살면서 동유럽을 생각했던 사람들은 어차피 혁명에 성공하지 못했을테니, 그들이 후일담에 빠져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반면 『남쪽』에는, 아버지가 전직 혁명가든 현직 장관이든 열한 살 배기 모두가 그러할 수밖에 없는 유쾌함과 덥고 습한 일본의 날씨가 그대로 살아 있다.

혁명이 한 때 실패했다고 하늘이 무너지거나 땅이 꺼지지는 않는다. 웃음이나 울음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또 하면 되는 것을 웬 호들갑들인지. 『남쪽』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도쿄의 초등학교 6학년생 지로는 이상한 아버지를 두고 있다. 허구한 날 집에서 노는 것도 창피한데, 국민연금을 받으러 온 공무원이나 예쁜 담임 선생님한테 “체제에 빌붙어 사는 개”니 뭐니 뜻도 모를 막말을 해대는 아버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로의 아버지는 ‘혁공동(혁명 공산주의자 동맹)’의 행동대장으로 미군 팬텀기에 불을 지르기도 했던 유명 인사다. 인터넷에서 아버지 이름을 검색하면 자동으로 경시청 홈페이지로 연결되는 것을 본 지로는 질겁한다. 지로는 ‘아나키스트’라든가 이상한 말들을 공부하다, 곧 포기하고 만다.

같은 반 친구들과 “출석번호 순서대로” 여탕을 훔쳐보는 게 더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지로는, 열다섯에 ‘참다운 공산주의적 혁명조직’과 투쟁강령을 만들었다는 김모 씨보다는 한참 떨어지는 모양이다.

이러니 부자지간에 말이 통할 리 없다. 집에서 뒹굴대며 프리라이터(free writer)라 자부하던 아버지는 마침내 소설을 쓴다. 국회의사당을 폭파한다는 줄거리의. “와, 멋있는데? 스파이 소설 같아.” 지로가, “아버지는 소스에 케첩 섞을 거야?”라고 물으면, “안 섞어. 케첩과 미 제국주의는 우리의 적이야.”라는 답이 돌아온다. 불량 중학생에게 돈을 빼앗기던 지로가 가출하여 집에 전화를 해보니, 아버지는 빨리 끊으라고 성화다. 여동생과 플레이 스테이션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노맹이 뜨뜻미지근하여 ‘혁노맹(혁명적 노동자계급 투쟁동맹)’ 활동을 한 황이민의 아들은 맑스를 가장 존경한다. 하지만 말이 안 통하긴 마찬가지. 황이민의 중학생 아들은 아버지가 ‘개량주의자’라고 생각한다. 키도 아버지만큼이나 훌쩍한 황이민의 아들은 오래 전부터 아버지보다 세상물정에 밝았다.

비와서 ‘노가다’ 공치는 날이면 황이민은 아들에게 500원을 쥐어주며 나가 놀라고 한다. 아내와의 오붓한 시간. 500원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아들은 창가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아 피아노 건반처럼 쏟아지는 빗방울을 지켜본다. 제법 시간이 지나면 창가에 대고 묻는다. “아빠, 아직 멀었어?”

어찌어찌하여 지로네는 오키나와보다 더 남쪽의 이름 모를 섬으로 쫓겨나듯 이사한다. 다 이야기하자면 얘기가 너무 길지만, 어쨌거나 옛 혁명가 아버지가 또 대형사고를 친 덕분이다. ‘혁공동’에 몸담았던 사람들 대부분이 학원을 하여 떼돈을 벌거나 변호사가 되어 ‘시민운동’, ‘환경운동’을 하는 시절에 지로네는, 아버지를 따라 전기도 수도도 없는 외딴 섬 오두막에서 살게 된다.

황이민의 아들도 아버지를 따라 자주 이사할 수밖에 없었는데,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머니 일자리’를 따라 다닌 것이다. 동년배 친구들 월급만큼을 연봉으로 버는 황이민이 민주노동당 일을 진작에 관뒀다면 그 아들도 남들처럼 학원에 다니고, 보고 싶은 책도 맘껏 봤을 것이다. 하지만 황이민은 공장에서 비밀활동을 하거나, ‘길’을 찾아 산사(山寺)를 헤매거나, 지병을 고치려 요양생활을 하며 지난 20년을 살았다. 아들은 아들대로 컸다. 아버지의 손길 없이.

황이민이 도저히 구제할 수 없는 반골인 것처럼 지로의 아버지도 어디 있든 사고뭉치일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지로의 아버지는, 섬에 리조트를 만들려는 도쿄의 큰 건설회사와 그에 결탁한 지방의원에 맞서 싸우게 되고, 철거깡패와 진압경찰들에게 잡혀갈 것이 뻔한 시점에 이르러 아들에게 말한다.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 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

하지만 너는 아버지 따라할 거 없어. 그냥 네 생각대로 살아가면 돼. 아버지 뱃속에는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벌레가 있어서 그게 날뛰기 시작하면 비위짱이 틀어져서 내가 나가 아니게 돼. 한마디로 바보야 바보.

……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히 싸워. 져도 좋으니까 싸워.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해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

황이민은 이런 가르침을 아들네 반 전체를 모아 놓고 했다. 교장선생님께서 친히 전화하셔서 ‘민주노동당에 대한 강의’를 청탁할 만큼 2년 전 민주노동당의 위세는 대단했다. 아이들 반응이 얼마나 대단했는가 하는 영웅담을 황이민으로부터 세뇌받기는 했지만, 당시에나 지금이나 눈꼽만큼도 믿지 않는다. 카스트로와 친구였다는 지로네 아버지보다 황이민의 허풍이 조금 더 세다.

그날 강의에 대해 아들이 무어라 했는지, 황이민은 전하지 않았다. 애비만큼이나 무뚝뚝하다는 황이민의 아들이 그날의 감상을 곧이곧대로 이실직고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도 분명한 한 가지는, 제 학교 교단에 떡하니 버티고 선 아버지가 눈부시지 않을 아들이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는 대담무쌍한 웃음을 날렸다. 하얗게 빛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지로는, 저 사람은 평생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을 거라고, 멀고 먼 누군가를 바라보듯 망연히 생각했다.

…… 인류는 돈을 지닌 시대보다 지니지 못했던 시대가 훨씬 더 길었다. 그러한 인류 끄트머리의 기억이 아버지에게만 진하게 남은 것이다. …… 하느님은 이따금 이런 인물을 정기적으로 지상에 내보내시는 게 아닐까?”

2006년 08월 03일 (목) 18:27:21 이재영 기획위원 criticme@redi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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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이 너무 더워서 거의 몸서리를 치는 중에 발견. 기사가 재밌다. 일요일에는 '남쪽으로 튀어'나 읽어볼까? 가끔 사재기의 좋은 점. 황이민이란 사람이 궁금해 찾아봤더니(이럴때 인터넷 좀 징그럽기도;;) 엄청나게 멋진 아저씨 같다. 그 아저씨 걸로 추정되는 블로그도 발견되었는데, 블로그명이 '붉은 깃발 아래의 맹세'다. ^^ 아, 정말 덥다. 이런 날씨에 포스코 아저씨들은 2박 3일 상경투쟁을 하셨구나...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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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21.hani.co.kr/section-021093000/2006/07/021093000200607260620051.html

스크린쿼터 집회 단골손님으로 나서며 비아냥에 시달렸던 그의 진심과 논리…“몸으로 민주화 이해하는 영광, 소중한 자산을 하나하나 내 영혼에 축적중”

▣ 오지혜 / 영화배우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이미 최민식 선배에겐 고백을 했으니 편하게 말하자면 난 사실 그동안 스크린쿼터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관련된 각종 시위에 나타나는 그의 모습에 일반 네티즌들과 다를 바 없이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한마디로 하자면 “어우… 저거 오버야. 저 양반 왜 저래?”였다. ‘쌀과 영화’라는 문화제 때 농민들에게 큰절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새삼스럽다,


언제부터 영화인들이 그렇게 농민들에게 관심 있었냐 등등의 반응을 보일 때 스크린쿼터는 반드시 필요하며 FTA 역시 반드시 다시 얘기돼야 한다고 믿는 나도 사석에서 최민식 선배 얘기가 나오면 “어유, 그 양반 한 손엔 필름 들고 한 손엔 쌀포대 들고 당장 미국으로 달려갈 기세던걸?” 하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최민식 선배뿐만이 아니라 그런 감정적인 모습만 자꾸 언론에 노출시키는 스크린쿼터 투쟁본부의 전략 전술에도 좀 짜증이 나 있던 참이었다.

‘양아치 치부’에 참을 수 없는 모욕감

한데 얼마 전 난 내가 패널로 참여하는 한 TV 인터뷰 프로에서 게스트로 나온 그를 만날 수 있었고 언론이라는 필터를 걷어낸 그의 ‘쌩얼’과 ‘쌩마음’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프로그램엔 그전에도 스크린쿼터의 필요성을 부르짖는 배우들이 몇 번 나왔지만 내가 시청자라고 생각하고 보고 들어보니 그닥 설득이 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한데 최민식 선배의 순도 100% 진심을 바탕으로 한 기대를 한참 뛰어넘는 ‘논리’에 나를 비롯한 많은 시청자들이 영화인들의 진심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훈장을 반납하고 농민에게 절을 하는 행동들이 그것을 하나의 ‘이벤트’로 소개한 언론들이 반성해야 할 정도로 실은 순수한 진심이었다는 거, 그리고 그만큼 절실했다는 게 확 와 닿으면서 그동안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같은 편’이어야 하는 내가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 너무도 죄송해서 녹화가 끝난 뒤 사과와 존경을 드리는 쪽지를 그에게 건넸드랬다. 그리고 얼마 전. <씨네21>에 안성기 선생과 현안에 대해 대담한 기사를 보고 내 사과와 존경의 마음을 달랑 쪽지 하나로만 전한 것이 아무래도 너무 알량한 거 같아 다시 그를 만났다. 사죄하는 마음과 반성하는 마음으로.

오지혜 : 오버한다고 비아냥거리는 반응들에 섭섭했지?

최민식 : 첨엔 조금 그랬지만 금방 잊었다. 왜냐면 남을 위해 시작한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위해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출발이 개인적이었다는 얘기다. 정부가 스크린쿼터 운동을 하는 우릴 조직적인 집단이기주의라고 폄하한 것이 너무 자존심 상하고 불쾌했다. 시민의식도 없는 양아치들로 치부해버리는 데에 모욕을 느꼈다. 가만히 있으니까 바보로 아는 거 같아 참을 수 없었다.

오지혜 : 정부가 최 선배를 투사로 만들었네? 하긴 버스에 탄 승객들이 첨엔 그냥 가만히 앉아서 갔는데 기사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핸들을 확 틀면 승객들은 자동으로 왼쪽으로 몸이 휙 돌아가게 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최민식 : 하하하… 그 말이 맞다. 나도 딱 그랬다.

오 : 근데 사람들이 우리 딴따라들을 무시하는 거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우리 선배들이 예전에 공동체 사회에 관심 있어하거나 힘을 보태주는 일이 많지 않았잖아?

최 : 연예인들이 자기 생각을 얘기하는 게 현실적으로 참 어렵다. 그리고 꼭 거리로 나가 시위를 해야지만 현실에 대해 관심 있는 거라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스크린쿼터 투쟁을 정부는 집단이기주의라고 폄하했는데 그건 내가 보기에 연예인들이 갖고 있는 프로파간다의 힘을 미리 간파했기에 선제공격을 해서 치사하게 조진 거다.

(프로파간다라는 말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난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걸 묻는다.)

언제 이렇게 빡세게 ‘학습’이 됐지?

오 : 스크린쿼터본부에서 언론 플레이를 잘하려면 사진 찍히는 데 배치할 ‘얼굴조’와 관료들과의 만남이나 기자회견 때 배치할 ‘논리조’를 잘 짜야 한다고 농담처럼 얘기들 하는데 내가 알기론 최 선배는 ‘얼굴조’로 알고 있었는데 대체 언제 이렇게 빡세게 ‘학습’이 됐지? 20대 때도 선배 얘긴 전설적인 연기나 인간성 좋은 선배… 모 이런 얘기만 들렸지 ‘논리’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이번 인터뷰 프로 때랑 <씨네21>에 실린 대담 기사 보고 깜짝 놀랐다. ‘배후’가 누구냐?


△ 투쟁하는 최민식. 민주노총 주최의 전국노동자대회에 영화인 대표로 참석한 모습(맨 왼쪽). 지난 2월7일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에 항의해 정부에서 받은 옥관문화훈장을 반납하고 있다(왼쪽).

최 : (씩 웃으며) 이번에 정부 태도에 열받아 스스로 운동에 참여했다가 많이 공부했다. 내가 뭐 하나에 열중하면 머리가 나빠서 다른 걸 동시에 하지 못하고 올인하는 습관이 있는데 2년 가까이 이 문제에만 올인했으니…. 아, 그리고 지혜씨도 알다시피 연기 공부가 곧 세상살이 공부 아니겠는가. 세상을 알아야 인간을 이해하고 그래야 연기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옛날부터 어느 정도는 관심이 있었다.

오 : 배우로서 이미지가 고정되는 거 걱정 안 되나? 명계남은 이제 누가 자기를 배우로 보겠느냐며 속상해한다. 캐스팅되지 않을까 두렵진 않나?

최 : 어차피 그동안도 이미지 관리에는 당최 관심이 없었다. 근간에 언론에 비친 내 모습에 팬들이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하지만 후회 안 한다. 내 자신에게 솔직했고 꼭 해야 하는 일이라는 확신이 있으니까. 모양새가 세련됐건 아니건 하는 건 의미가 없다. 그리고 난 정치판에 들어간 게 아니었으니까 두렵지 않다. 민주노동당 공천 해프닝도 그렇다. 민주노동당은 우리 영화인 싸움에 유일하게 함께해준 정당이라 그저 고마울 뿐인데 오히려 내가 미안하더라.

오 : 반납한 훈장은 지금 어디에 있지?

최 : 글쎄 모… 문화부 책상서랍 속에 있겠지. 나중에 다시 준다고 해서 “됐다” 그랬다.

오 : 대중을 향해 너무 많은 얘길 해서 속이 허하지 않나?

최 : 왜 안 그러겠나. 요즘의 나를 가끔 객관적으로 볼 때가 있는데 어쩌다 내가 이 지경까지 왔나 하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피할 수 없으니 즐기기로 했다. 그리고 언젠가 이 일이 내 연기에도 도움이 되겠지.

오 : 예를 들면 어떤 점이?

최 : 이런 기회가 아니었으면 내가 언제 농민의 거친 손을 직접 잡아보고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었으며 민주화를 몸으로 이해하는 영광을 어찌 누렸겠는가. 학생 때 구경한 싸움이랑 중늙은이가 돼서 직접 거리에서 싸우는 거랑 너무 다르다. 하나하나 내 영혼에 축적하고 있는 중이다. 소중한 자산이 돼가고 있다.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 하나도 힘들지 않다.

“몸싸움만은 제발 참아주세요”

오 : 아내의 반응이 궁금하다.

최 : 속상해하지. 왜 하필 당신이어야 하냐고 묻더라. 책(시나리오)이 들어오면 그냥 건네주기만 하던 사람이 요샌 답답한지 자기가 먼저 읽어보고 이거 해라 저거 재밌더라 그런다. 그런데 아내에겐 미안하지만 아직 당분간은 일을 하고 싶지 않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못하니까.)

오 : 싸움이 너무 길어지거나 절망적인 결과가 나오면 어떡하지? 넘 허탈하지 않을까?

최 : 아니, 전혀. 최선을 다했으니까 후회 없다.

오 : 광고하는 데엔 지장 없나? 회사 반응은?

최 : 광고할 땐 오히려 내가 먼저 물어본다. 나 최민식인데 괜찮냐고. 그러면 그들이 그런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정치적인 것도 아니니까 괜찮다고. 회사에서도 대표가 연극했던 사람이라 마인드가 잘 통해서 문제없다. 대표 왈, “형이 옳습니다. 다만 거리에서 몸싸움만은 제발 참아주십시오. 얼굴 다칠까봐 조마조마합니다”.

오 : 하하하…. 대표 심정 이해하겠다. 정말 조심하셔라.

(이쯤에서 인터뷰를 마칠까 하다가 혹 이번 일과 관련한 인터뷰 중에서 사실이 왜곡됐거나 상처받은 적은 없는가를 물었다가 인터뷰 2라운드가 펼쳐져버렸다. “쿼터와는 직접적으론 상관없지만…” 하면서 운을 뗀 그는 지금껏 그 어떤 심각한 이야기에도 차분하게 얘길 나누던 모습과는 다르게 얼굴이 붉어지고 목에 핏대가 설 정도로 흥분하기 시작했다. 바로 한동안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강우석 감독의 배우 출연료 과잉설을 보도한 언론의 태도에 대한 얘기였다.)


△ 오지혜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최민식씨. 그는 “당분간 투쟁에 올인하겠다”고 밝혔다.

최 : 그때 내가 왜 요즘처럼 논리적이지 못하고 흥분만 했나 후회된다. 너무 화가 났다. 일차적으론 정작 물의를 일으키는 연예인들 놔두고 나와 (송)강호를 지목한 강 감독에게 섭섭했지만 그걸 보도하는 모든 언론들의 태도에 억울해 피를 토하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일일이 열거하자면 밤을 새워야 하지만 몇 개만 얘기해본다면 델몬트 광고 할 때였다. 모 인터넷 신문에 제주감귤 농사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객원기자의 볼멘소리가 기사로 떴다. 그 사람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편집 의도가 괘씸했다. 한 TV 방송 프로그램에선 강호와 내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화면에 떠 있고 진행자가 막대기로 우리 얼굴을 가리키며 이 사람 이 작품에서 얼마를 받는다, 자 그럼 이 작품에 참여한 스태프들의 출연료를 보겠다, 이러는 거다. 하루아침에 우리 둘은 가난한 스태프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흡혈귀가 돼 있더라. 우리가 받은 인권침해는 누가 책임지나? 우리가 사기를 쳤나? 스태프들 착취당하는 게 어떻게 내 책임인가? 구조적인 문제이고 다 함께 책임져야 할 일이 아닌가.

심각한 건 이 사건이 스크린쿼터 싸움을 하는 데 교묘히 이용되고 있다는 거다. 바로 ‘외제차 타고 다니는 니들이 문화주권을 얘기하냐?’라는 건데 미국의 독점을 막자는 거지 우리 것만 봐달라는 게 아닌데도 정부가 이 주장을 마치 비장의 카드처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거 같다. 너무 억울해서 없던 주사가 다 생길 지경이었다. 그렇게 경직된 사고로 어떻게 진보를 이야기할 수 있는가. 좌우 양쪽에서 동시에 공격받는 기분은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외로웠다. 가난한 스태프들의 존재를 인정 안 하는 거 아니다. 단지 주범처럼 매도된 상황을 견딜 수 없었다. 한쪽에선 시장논리를 얘기하더니 다른 한쪽에선 반시장 논리를 얘기하냐고 욕들 하는데 난 결코 국제시장에서의 반시장 논리를 펼친 적 없다. 다만 ‘공정한’ 시장을 주장했을 뿐이다.

쓰려다가 주변의 만류로 포기한 글

한번은 한 영화과 교수가 어느 게시판에 ‘러닝개런티를 받는 최민식씨께’라는 글을 썼는데 만약 영화가 망하면 출연료를 뱉어낼 수 있느냐고 묻더라. 내 눈을 의심했다. 그게 영화를 가르치는 선생이 할 소리인가 싶었다. 나는 곧 ‘그럼 당신은 학생들이 취직을 못하면 교수 월급 뱉어낼 거냐’고 쓰려다 동료와 선배들이 하도 말려서 참았던 적도 있다.

오 : 쓰시지. 재밌었을 텐데…. (웃음) 후배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은?

최 : 내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지만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사람들)에 관심을 갖자. 공동체에 관심을 갖자.

그는 이 인터뷰 자리도 언론노조에서 여는 반FTA 집회에서 오는 길이라고 했다. 당분간 싸움에만 올인할 거라는 그를 보내면서 한 얘길 또 하게 해서 미안하다 했더니 오히려 자기 얘길 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한겨레21>에서 아예 책 한 권을 한미 FTA 특집으로 낼 거라는 말에도 ‘고맙다’고 했다.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술이랑 사람이랑 연기밖에 모르던 사람을 이렇게 투사로 만든 이 나라가 원망스러웠다. 그는 또 ‘민주화를 몸으로 이해하는 영광’을 누리기 위해 길거리로 나설 것이다. 중늙은이 배우 최민식, 중늙은이 투사 최민식. 그가 내 나라 배우인 것이 참 자랑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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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7-30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과 사가 교묘하게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데... 그게 오히려 인간적으로 보이게 하는군.

로드무비 2006-07-30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좀 오해했는데.....
멋지군요.^^

라주미힌 2006-07-30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참 영화 찍을 때에 길거리로 나서야 한다는게 씁쓸해요. 놈현 똥물에 코나 박아라~!!

가을산 2006-07-30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스 승객 비유 참 그럴 듯 하네요.

balmas 2006-08-01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얘기도 좀 물어보지. 사채 광고는 어떻게 찍게 됐는지 ...
저는 그 문제가 해명되기 전까지는 최민식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라주미힌 2006-08-01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도 그게 궁금해요.
 

http://www.jinbonuri.com/bbs/view.php?id=fight_board2&no=85262

이름  
   신진용  (2006-07-28 05:22:24, Hit : 31, 추천 : 4)
제목  
   히로히토의 메모

다른 문화를 들여다 보는 체험은 곧 즐거움이다. 그것은 호기심이며, 여행의 본질이기도 하다. 직접 그 땅에 발을 딛고 오감을 이용해서 여행하는 즐거움 못지 않게, 문헌을 이용해서 다른 사회를 들여다 보는 것 또한 호기심의 충족과 그에 따른 즐거움을 준다.

최근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에서 보도한 바와 같이, 히로히토 천황이 사망 전년인 1988년, 야스쿠니 신사에 A급 전범이 합사 된 것에 대해서 <나는 그 날 이후 참배하지 않고 있다. 그것이 나의 마음이다>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적힌 메모가 발견되었고 이것은 현재 일본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메모의 진위 여부를 떠나, 여기서 몇 가지 흥미로운  사회현상과 문화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발견된 메모를 대하는 일본사회의 반응은 ① '천황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그럴 리 없다' ② '천황은 충분히 그러실 분이다 평화를 사랑하셨고 그 결정을 이해한다' ③ '메모는 조작이다' 등이다.

역사적 사실에서 알 수 있듯, 히로히토 천황은 태평양 전쟁을 시작하고, 작전을 지휘하고, 전쟁의 항복을 선언한 인물이다. 이러한 사실에 기초해 천황이 그의 전우인 A급 전범들을 경멸하는 발언을 했다는 해석은 필요에 의해 기획된 정신분열이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싫어하는 파이트 클럽적 다중인격이 일본은 왜 필요한가? 일본의 정신중 나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A급 전범으로 인격화 하고 그것을 공격하려 함인데, 이로 인해 그 자신은 정신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며 죄책감에서 해방되게 된다. 이러한 사회학적 정신분열은 기이하지만 전혀 이해 못할 일이 아니다. 그 행위는 비논리적이지만, 그 동기는 이해가 되는 것이다.

이번 메모의 발견과 언론 이슈화 동기의 한 측면은 일본국민들을 ②의 상태, 즉 '천황은 충분히 그러실 분이다 평화를 사랑하셨고 그 결정을 이해한다' 라는 정서를 갖게 하기 위함도 있다. 이것은 물론 피지배계급의 레벨에서 수용되는 정신구조이고, 지배계급이 자신들도 믿지 않을 이 거대한 '거짓말'(장정일)을 시도하는 정치적 이유는 분명하게 따로 있다.

지나친 우경화를 지배계급 그 자체가 경계하는 것이다. 일본의 지배계급은 정치적으로 크게 두 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전쟁에서 직접 진 지배계급과 전쟁과는 직접적으로 무관한 지배계급. 다소 거칠게 보자면, 전자는 나카소네계이고 후자는 고이즈미계라고 볼 수 있겠다.

고이즈미계의 자신감과 우경화가 일본 자체에 위험이 된다고 생각하는 원조우익들은 천황의 메모를 통해 한 발 발을 빼고 주변국의 눈치를 보라는 명분을 만들어 주고 있다. 아시아 주변국의 말은 굴욕 같아서 듣기 싫지만, 천황이 말리면 못이기는 척하고 발을 빼 줄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영화 '올드보이'에 이런 대사가 있다. "'왜 (나를 15년 동안) 가뒀는지가 아니라 왜 (지금) 풀어줬는가'라고 물어야지요."

그렇다. 메모가 어떻게 그리고 왜 작성되었는가 보다는, 왜 지금 메모가 이슈가 되고 있는가, 그게 더 중요하다. 사실이든 조작이든, 메모는 명분을 준다. 즉, 이런 명분이 통할 것이라는 측면에서 일본사회를 들여다 보면 그 정신구조가 비교적 분명하게 들어온다.

만세일계 천황을 통해 와(화목)를 유지할 수 있고 그런 원리가 통할 것임이 예상되어 천황의 메모 지령이 시도 되고 또 수용되는 사회구조. 현대 민주주의 원리에서 보자면 대단히 낯설게 보이는 구조이지만, 이게 바로 일본 정신문화를 여행하는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낯설지 않으면 흥미가 없고 흥미가 없으면 여행의 의미가 상실된다. 직접 발로 가든, 문헌을 통해서든 일본이 여전히 훌륭한 여행지 인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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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7-28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군.

마노아 2006-07-28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상적이네요. 퍼가요~
 

http://gyuhang.net/archives/2006/07/28@07:00AM.html#more

 

....

지혜가 뭐야?
지혜는 음.. 모르는 걸 아는 거.
모르는 걸 아는 게 지혠가? 그럼 아는 것과 깨닫는 건 어떻데 다르지?
아는 건 조금 아는 거고 깨닫는 건 많이 아는 거.
그건 그냥 조금 알고 많이 아는 거지.
그럼 진짜 아는 거.
진짜 아는 거라.. 아빠 생각엔 아는 것은 남의 생각을 받아들인 거고 깨닫는 건 그걸 내 생각으로 만드는 거야.
아.
책을 읽는 건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깨닫기 위해서야.
어른들은 책 읽으면 다 깨달아?
아니.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었는데 자기 생각은 없는 어른들도 많아. 그런데 그런 사람들일수록 자기가 많이 안다고 떠들어대지.
그럼 책은 무조건 천천히 읽는 거야?
꼭 그렇진 않아. 대충 읽어도 되는 책도 있지. 하지만 좋은 책은 천천히 읽어야 해. 너무 빨리 읽으면 책을 머리로만 읽게 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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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7-28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요즘 읽은 게 별로 없는 이유구만 ㅎㅎㅎ
아고 제대로 읽은 책도 별로 없고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