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저, 독서광 아닙니다, 다들 안 읽기 때문이죠."

지난주에 장정일의 신간 <장정일의 공부>(랜덤하우스, 2006)에 대한 소개 페이퍼를 올리면서 인터뷰기사 한 꼭지를 옮겨놓았었는데, 내친 김에 북데일리에 실린 인터뷰 또한 옮겨놓는다. 대충 읽어보고 말 생각이었지만 이 인터뷰 기사의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저, 독서광 아닙니다, 다들 안 읽기 때문이죠."

 

 

 

 

장정일만큼 책을 읽는 건 아니지만 나도 책에 대해 아는 체를 많이 하다보니 간혹 엄청나게 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 오해받곤 한다. 그런 기대와는 반대로 평소에 나는 책을 너무 안 읽는다고 자책하며 사는 편이다(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투정하는 게 사실은 더 많지만). 마일리지도 쌓인 김에 이번에 <장정일의 공부>와 함께 몇 권의 책을 더 주문했는데(책은 이미 학교로 배달되었지만 아직 확인해보지 못했다) 분량상 <공부>를 제외하면 내가 빨리 완독할 수 있을 책은 <언어학과 정치>(역락, 2006) 정도이겠다.

 

 

 

 

거기에 현재 읽고 있거나 대출해놓은 책들이 10여권. 강의준비나 필요 때문에 읽어야 하는 책들이 또 두서없이 그만큼이다. 지난 주말부터 가방에 들어가 있는 책은 아이리스 장의 <역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미다스북스, 2006)와 김경주 시인의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중앙, 2006)이고, 집에 와서 잠시 펼쳐본  책이 <계몽의 변증법>(문예출판사, 1995), 그리고 엊그제부터 행방을 찾고 있는 책이 비릴리오의 <정보과학의 폭탄>(울력, 2002)이다(나는 국역본과 함께 러시아어본을 갖고 있는데, 최근에 영역본도 구했다).

 

 

 

 

전업작가라면 나름대로 책읽기에 질서를 부여해서 '로쟈의 공부'라도 내놓을 준비는 돼 있지만 장정일만큼 쌓아놓은 공덕이 없기에(내가 읽은 '장정일' 가운데 베스트 네 권이다. 나는 그의 <삼국지> 등을 읽지 않았다) 그럴 경우 생계를 책임질 수 없다. 그러니 울적하다. "다 읽으면 굶기 때문이죠." 더불어 아무리 부지런히 읽는다고 해도 이젠 책들을 다 읽을 수 없다. 그러니 막막하다. "다 읽을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말하건대, "저, 독서광 아닙니다!"

북데일리(06. 11. 20) "저, 독서광 아닙니다, 다들 안 읽기 때문이죠"

지난 2월. 중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소설가 장정일(45)이 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초빙교수로 임용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학교 측은 “교육부 학력 규정상 장 씨를 전임교수로 임용할 수 없어 초빙교수로 채용했지만, 임기를 마치면 발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음란물 비시에 휩싸여 구속되기도 했던 ‘화제의 작가’ 장정일. “나는 문학이 직업이 아니라면 구역질이 난다”라고 스물한 살 일기장에 그렇게 적었던 그는 시인도 됐고, 소설가도 됐고 교수까지 됐다. 모두 ‘책’ 덕분이다. 밤낮으로 읽은 책 이야기. 그가 쓴 6권의 <독서일기>는 독서광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전설적인’ 책이다. 책 전문 프로그램 ‘TV 책을 말하다’의 진행자로 발탁 되었을 때 그의 어눌한 말솜씨에 불만을 갖던 사람들도 “그럴 만하다”며 독서력만큼은 인정했다.

학교에 ‘덜’ 다닌 대신 ‘더 많이’ 읽은 장정일. 그가 <장정일의 공부>(이하 '공부')(랜덤하우스코리아. 2006)라는 책을 펴냈다. 이번에는 읽은 책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뾰족한 일침까지 던졌다. 관심분야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책에 미쳐있는 그를 간곡한 설득 끝에 ‘어렵게’ 만났다. 정면의 시선을 던지지 못하는 그의 수줍음 사이로 마흔 다섯 해의 기나긴 책의 역사가 사라졌다 피기를 수 없이 반복했다.

- 시인, 소설가로 살다가 직장인이 되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백수로 있는 것만 못 하죠. 작가는 24시간 365일이 자유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학생들을 위해 내 삶을 쪼개야 하니까 작가가 낫지요”

- 그 좋은 자유를 포기한 것이나 나고 자란 대구를 떠나 서울 살이를 시작한 것이나 자신에게는 큰 변화일 텐데요. 대구와 서울을 비교해 보면 어떻습니까.

“서울은 재입성이에요. 90년도에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사 왔다가 96년도에 다시 대구로 내려갔죠. 그리고 10년 만에 올라 온 거에요. 대구와 서울을 굳이 비교하자면 도시와 지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 사회에서는 ‘은거’ 에 비할 수 있는 지방생활이라는 게 별 의미가 없어요. 인터넷, 신문. 아무것도 없는 ‘은거’가 불가능한 시대죠. 저는 젊은 작가들을 만나면 꼭 서울살이를 해보라고 해요.

사실, 대구에 가도 서울 생활하고 비슷하거든요. 그럴 바에는 대도시에서 부대끼며 살아보는 게 경험상 낫다는 거죠. 젊은 작가라면 특히, 대도시 생활을 겪어 봐야 해요. 촌으로 가겠다는 젊은 작가들한테는 나이 50, 60되서 가도 괜찮으니까 지금은 대도시에서 생활해 보라고 말해요. 대도시 문명과 호흡하면서 글감과 문젯거리 같은 것들을 만나봐야 해요.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외국 생활도 좋은 경험이 될 거에요. 누구든 문명에 노출 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은거의 장점도 살리지 못할 바에야 중소도시 보다는 대도시에서 살아 보는 게 경험상 좋다는 거죠”

“지금은 민주주의 아닌, 과두제”

- <독서일기>와 <공부>의 공통점이 있다면 역시, ‘책’입니다. 책읽기라는 것은 마흔 다섯이 된 지금의 자신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독서일기>가 ‘책 속에 길이 있다’고 이야기 했다면 <공부>는 ‘책 속에는 길이 없고, 책과 사이사이에 난 길을 내가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 책입니다. 사실, 책은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못해요. 만약 길이 있다면 남이 만들어 놓은 길이겠죠. 길은 스스로 만드는 거에요. 텍스트를 가지고 콘텍스트 속에 스스로 길을 만드는 겁니다. <독서일기>는 책이 먼저 독후감이 뒤에 있는 책이지만 <공부>는 반대로 관심 있는 테마를 정한 후 관련된 책을 읽은 것 입니다. 책이 먼저가 아니라 뒤에 선택 된 거죠. 그게 가장 큰 차이점이에요. 책을 읽는 이유를 물으면 저는 늘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말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교양이 모자란 사람이 아니라, 나쁜 시민이라는 뜻이에요. 사람들은 ‘공부’하면 지긋지긋하다고 하는데 너무 입시위주의 공부를 해서 그런 거고, 공부는 평생 함께 가야 할 좋은 친구입니다. <공부>는 나이 마흔 다섯 된 제가 공부라는 게 참 재미있다고 말하는 책이에요”

- '책 읽기를 통해 스스로 길을 만든다'는 말씀에서 ‘길’이 의미하는 것은 다른 텍스트로 옮겨 가는 길이 아니라 사회 안으로 들어가는 길 같습니다. '비행기의 1등석에 탈 수 있는 사람에게는 국경이 없지만 3등석 밖에 탈 수 없는 사람들에게 국경의 벽은 높다'며 현 사회를 ‘과두제’에 빗대는 등 사회를 향한 통렬한 비판도 쏟아 내셨는데요.

“지금은 민주주의 시대가 아닙니다. 이미, 과두제에 들어갔죠. 미국도 우리도 모두 마찬가지에요. 과두제란 특권층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모든 부와 권력을 나눠 갖는 시대죠. 프랑스 혁명 이후 세금 내는 사람들에게만 투표권이 주어졌잖아요. 지금이야 형식적으로 1인1표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돈 있는 사람이 권력을 차지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선거비용을 많이 낸 사람이 당선확률이 높고, 돈 있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을 만들어 내고 결국 그들이 법을 만듭니다. 그러니 민주주의에 살고 있다는 생각은 큰 착각이죠. 그래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겁니다. 책을 읽지 않으면 속게 되죠. 정치권력, 자본주의에 휘둘리기 쉬운 사람, 만만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면 책을 읽어야 합니다. 단돈 몇 천원만 사기 당해도 속았다고 분해하면서 책을 안 읽는 다는 건 문제죠. 엠마뉘엘 토드, 촘스키 모두 ‘책 읽는 능력이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말을 했습니다. 책읽기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르고 보다 철저히 기업과 정치를 감시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증인, 소수종파의 문제 아니다”

- 아직도 여호와의 증인을 믿고 있는지요. 본문에 보면 '학력이 중학교 졸업밖에 되지 않는 것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서 당시에 치러지던 고등학교의 군사훈련(교련)을 피하고자 진학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1만 명의 신도를 감옥에 보내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해온 사람은 여호와의 증인이 유일하다'고 밝히셨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사이비로 지탄 받아온 것. 대체복무는 여호와의 증인들에 대한 특혜시비라고 지적한 개신교에 대해서도 분노를 표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입장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까?

“지금은 여호와의 증인이 아닙니다. 18세에 신앙을 버렸어요. 여호와의 증인 때문에 양심적 병역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고요. 어느 종교든 간에 살생, 살인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우리나라 종교는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아요. 이는 한국 종교의 현 위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신앙인이라면 ‘나는 양심에 의해 살인은 못하겠다’고 하고 ‘그러니까 양심적 병역대체를 하게 해다오’라는 문제의식을 갖는 게 당연 한 건데. 우리나라 종교는 그렇지가 않아요. 그래서 여호와의 증인이 소수종파의 문제인 것처럼 보인 겁니다. 또 불합리 한 건 종교 안에도 계급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군대나 살인문제에 대해 평신도가 고민을 하면 감옥에 가고 성직자는 면죄가 된다는 거에요. 성직자라면 평신도를 위해 발언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그 고민에서 벗어나 있어요. 성직자라고 면죄 되어서는 안 되죠”

- 40년간 문학을 한 편도 읽지 않았다는 일본의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를 향해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동문 오에겐자부로에 대한 열등감을 표출한 것은 아닌지’라는 반문을 던지셨습니다. 문학을 읽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인문, 교양 분야의 책들로 포진되어 있는 <공부>를 보면 스스로도 문학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다치바나 다카시와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은 최근 20년간 문학작품을 안 읽었다고 합니다. 다카시는 21세기 교양의 총체는 자연과학으로 넘어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문학은 늘 사회 현실과 조우했지만 어느 날 그게 “끊어졌다”고 말합니다. 일본 문학이 언젠가부터 자아나 내면도피로 방향전환을 했다는 거죠. 그래서 문학을 안 읽는다고 해요. <문학의 종언>에서 하는 얘기가 그런 겁니다. 작가들이 점점 사회와 괴리 될 때 문학도 독자와, 사회와 끊어진다는 거죠.

문학이 살아나려면 내면에서 벗어나 사회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그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옛날 시인, 소설가들에게 사회는 “여기 앉으세요”라며 자리를 마련해 줬습니다. 그건 문학하는 사람들에게 “당신 말을 듣고 싶다”는 뜻이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아요. 그건 작가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작가도 한국사회에 대해서 발언하지 않죠. 이렇게 사회에서는 멀어지고 내면 도피나 자아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니까 ‘미래파’라는 시가 나오는 겁니다. 작가들도 내면 도피에서 벗어나서 사회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저는 종종, 작가들은 ‘야반도주’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야반도주’는 내면 도피 문학을 말합니다. 작가는 사회에 빚이 많습니다. 그러니, 빚지고 도망가서는 안 된다는 뜻이죠”

“책은 반드시 도서관에서 읽은 후 구입”

-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다는 대목을 읽었습니다. 아무리 빌려 읽는다 해도 워낙 오래 된 책탐이니 모은 분량이 엄청나겠습니다.

“도서관에서 자주 빌려 읽습니다. 책은 꼭 도서관에서 읽어보고 사요. 신간은 도서관에 늦게 도착하기 때문에 3달 정도 늦게 사게 되지만 그래도 읽어 보고 삽니다. 이런 구매법을 권해주고 싶습니다. 도서관, 출판계 모두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소장권수는 그렇게 많지 않아요. 5년 전에 중학교 때부터 모았던 책을 헌책방에 모두 내다 버렸거든요. ‘나는 왜 이렇게 살까’라는 자책에서 벗어나고 싶었거든요. 그건 아마 모든 수집광, 마니아들이 한번쯤 겪는 관문일 거예요. 다 내다 버리고 ‘재생의 길’을 걸어보고 싶었다는 생각을 한 거죠.

전에 집에 쌀이 떨어졌는데 한 선배가 라면 사라고 돈 3만원을 줬어요. 그런 선배를 참 좋아 하는데 “지금 무슨 글 써?”라고 묻는 선배보다 “너 요새 먹고는 사나? 돈은 있나?”라고 묻는 선배가 정말 좋은 선배에요. 글이야 다 알아서 쓰니까. 아무튼 그 선배가 준 돈 3만원으로 쌀을 안사고 교보문고 가서 책을 사버렸죠. 그러면서 자책했어요. “나 정말 왜 이러고 살까” 결혼기념일에 아내 선물 사줄 돈으로 책 사버리고. 그러면서도 멈출 수가 없는 거예요. 귀한 책도 많았고 도서관이 안 부러울 만큼 갖고 있었는데 그런 내가 싫어서 다 갖다 버렸어요. 결국 재생의 길을 걷지 못한 거죠. 지금 다시 사 모으고 있으니까“

- 아직은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으니 저는 아직 그 수준이 되려면 먼 것 같습니다. 책 읽기 전에 손을 씻는다고 들었는데요. 다른 특별한 버릇 같은 것이 있나요. 접는다거나 줄을 친다거나 포스트잇을 붙인다거나....

“그런 시기가 마니아들에게는 꼭 한 번씩 온다니까요.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지만...(웃음) 시기야 다 다르겠죠. 책은 사면 커버부터 버려요. 책 읽는데 방해가 되거든요. 책은 이방 저 방에 두고 오가며 읽어요. 한 가지 테마를 정해 놓고 10권 정도를 동시에 읽는 편입니다. 그래야 시너지가 생기거든요. 관심 있는 싶은 주제는 그렇게 접근해요. 접거나 줄치지는 않아요. 읽으면서 파악하려고 노력해야지 줄을 치거나 포스트잇을 붙이면 거기에 묶이죠. 두 번, 세 번 다시 읽더라도 그건 좋은 독서법이 아니에요”

- 독서광들이 정말 어려워하는 질문이지만, 빼놓고 싶지 않은 질문입니다. 자신에게 가장 큰 감동을 준책이 있다면.

“책 많이 읽은 사람들은 그 답을 뽑아 낼 수가 없어요. 그래도 말하라면 카프카에요. 젊은 시절 무척 좋아했죠. 최근에 읽은 책 중에는 엠마뉘엘 토드의 <제국의 몰락>을 권해주고 싶고....또....아! KBS 박성래 기자가 쓴 <레오 스트라우스>(김영사. 2005)는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에요. 제가 한겨레21에 그 책 서평을 쓰면서 “이 책을 읽거나 레오 스트라우스에 대해 아는 것은 독도를 얻는 것과 똑 같다”고 했어요. 레오 스트라우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합니다. 그가 쓴 <마키아벨리>(구운몽. 2006)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에요”

 

 

 

 

- 소설 집필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부>를 바탕으로 2003년 대선 이후의 한국 풍속을 다루는 이야기를 쓸 예정입니다”

- 시인으로 데뷔해 교수의 자리에 오기까지 글쟁이로, 독서광으로 20년을 보내셨습니다. 꿈을 이룬 지난 시간 동안 행복했나요.

저는 독서광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너무 안 읽으니까 그런 말을 듣는 것뿐이죠.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한 달에 10권 읽는 건 기본 아닌가요. 저는 조금 더 읽었을 뿐이에요. 모두가 그렇게 읽었다면 제가 독서광이 될 이유가 없었겠죠. 행복요? 음....행복했죠. 지금도 행복하고. 정규교육을 못 받은 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그걸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했어요. 명문대를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땄다면 세상을 뀄다는 자신감에 아마 책을 안 읽었을 거예요. 조금 배웠기에 많이 읽어야 했고, 덕분에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언제나, 행복했습니다”(김민영 기자)

06. 11. 20.

P.S. 결론은 이렇다. "기본을 갖추자!"

P.S.2. 생각이 난 김에 장정일의 시 '삼중당문고'도 다시 읽어보록 한다. '정규교육'을 못 받은 그에게 삼중당문고는 그의 '학교'였고 '교사'였으며 또한 '친구'였으리라.

삼중당문고

열 다섯 살,
하면 금세 떠오르는 삼중당 문고
150원 했던 삼중당 문고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두터운 교과서 사이에 끼워
읽었던 삼중당 문고
특히 수학시간마다 꺼내 읽은 아슬한 삼중당 문고
위장병에 걸려 1년간 휴학할 때 암포젤 엠을 먹으며
읽은 삼중당 문고
개미가 사과껍질에 들러붙듯 천천히 핥아먹은 삼중당문고
간행목록표에 붉은 연필로 읽은 것과 잃지 않은 것을
표시했던 삼중당 문고
경제개발 몇 개년 식으로 읽어 간 삼중당 문고
급우들이 신기해 하는 것을 으쓱거리며 읽었던 삼중당문고
표지에 현대미술 작품을 많이 사용한 삼중당 문고
깨알같이 작은 활자의 삼중당 문고
검은 중학교 교복 호주머니에 꼭 들어맞던 삼중당 문고
쉬는 시간 10분마다 속독으로 읽어내려 간 삼중당 문고
방학중에 쌓아 놓고 읽었던 삼중당 문고
일주일에 세 번 여호와의 증인 집회에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고 교장실에 불리어가,
퇴학시키겠다던 엄포를 듣고 와서 펼친 삼중당 문고
교련문제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을 때 곁에 있던 삼중당 문고
건달이 되어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와 쓰다듬던 삼중당문고
용돈을 가지고 대구에 갈 때마다 무더기로 사 온 삼중당 문고
책장에 빼곡히 꽂힌 삼중당 문고
싸움질을 하고 피에 묻은 칼을 씻고 나서 뛰는 가슴으로
읽은 삼중당 문고
처음 파출소에 갔다왔을 때, 모두 불태우겠다고 어머니가
마당에 팽개친 삼중당 문고
흙 묻은 채로 등산배낭에 처넣어 친구집에 숨겨둔 삼중당 문고
소년원에 수감되어 다 읽지 못한 채 두고 온 때문에
안타까왔던 삼중당 문고
어머니께 차입해 달래서 읽은 삼중당 문고
고참들의 눈치보며 읽은 삼중당 문고
빳다맞은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읽은 삼중당 문고
소년원 문을 나서며 옆구리에 수북이 끼고 나온 삼중당문고
머리칼이 길어질 때까지 골방에 틀어박혀 읽은 삼중당 문고
삼성전자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문흥서림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레코드점 차려놓고 사장이 되어 읽은 삼중당 문고
고등학교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고시공부 때려치우고 읽은 삼중당 문고
시공부를 하면서 읽은 삼중당 문고
데뷔하고 읽은 삼중당 문고
시영물물교환센터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박기영형과 2인 시집을 내고 읽은 삼중당 문고
계대 불문과 용숙이와 연애하며 잊지 않은 삼중당 문고
쫄랑쫄랑 그녀의 강의실로 쫓아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여관 가서 읽은 삼중당 문고
아침에 여관에서 나와 짜장면집 식탁 위에 올라 앉던 삼중당 문고
앞산 공원 무궁화 휴게실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파란만장한 삼중당 문고
너무 오래되어 곰팡내를 풍기는 삼중당 문고
어느덧 이 작은 책은 이스트를 넣은 빵같이 커다랗게 부풀어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네
집채만해진 삼중당 문고
공룡같이 기괴한 삼중당 문고
우주같이 신비로운 삼중당 문고
그러나 나 죽으면
시커먼 뱃대기 속에 든 바람 모두 빠져나가고
졸아드는 풍선같이 작아져
삼중당 문고만한 관 속에 들어가
붉은 흙 뒤집어쓰고 평안한 무덤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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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2006-11-21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기사네요~ 퍼갈게요 ^^;
 

무력한 대통령. 시나브로 퍼져가는 여론이다. 어느새 장삼이사도 그렇게 믿는다. 압권은 손학규 전 경기지사다. 노무현 대통령을 일러 “거의 송장, 시체가 다 돼 있는데 비판해서 뭐 하느냐”고 꼬집었다. 청와대가 발끈했다. “대통령을 폄훼해서 자신의 주가를 높이려는 행태”라고 날을 세웠다. 아직도 정치인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분노를 터뜨렸다. 대통령이 가엾다는 연민도 제법 퍼졌다.

하지만 울뚝밸을 삭일 때다. 연민론은 기실 송장론과 차이가 없다. 가령 대통령이 힘이 없어 뜻을 펼치지 못한다는 주장이 그렇다. 심지어 청와대 참모들까지 눈을 홉뜬다. 제왕적 대통령 시대가 아니란다.

그렇다. ‘무력한 대통령’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송장론에 꼭 부르르 몸 떨 일이 아닌 까닭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작 대한민국의 고위 공무원, 법조인, 기업인, 금융인들은 달리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이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물었을 때다. 63.2%가 노무현을 꼽았다. 2위인 이건희는 24.2%다.

왜 그럴까. 괜스레 예우 차원에서 그랬을까. 아니다. 노무현이 실제로 가장 큰 권력을 쥐고 있음을 알아서다. 찬찬히 톺아볼 일이다. 올해만 한정해도 그의 권력은 뉘도 넘볼 수 없을 만큼 막강하다. 연초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선뜻 합의했다. 스크린쿼터, 과감하게 줄였다. 광우병 의심이 남은 미국산 쇠고기, 전격 수입했다. 북한 핵실험 바로 다음날에는 기자들을 불러놓고 언죽번죽 말했다. “이 마당에 와서 포용정책만을 주장하기에는 어려운 문제 아니겠나. 그리고 효용성이 더 있다고 주장하기도 어렵지 않겠나.”

다행히 거센 비판 여론으로 남북 화해정책은 아직 파탄을 맞지 않았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지금도 권력을 살천스레 휘두르고 있다. 보라.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강행하겠다는 저 독선을. 반대 여론이 들끓어도, 네 차례 협상과정에서 이미 불균형이 곰비임비 드러났음에도, 전혀 흔들림 없다. 자신의 ‘감’을 확신해서란다. 전혀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줄곧 부산 출마를 고수해 대통령이 됨으로써 그의 정치 감각은 실체 이상의 평가를 받았다. 그 점에서 정치인 노무현은 그를 정계로 이끈 김영삼과 어금지금하다. 감을 중시한다. 옳은 비판을 해도 막무가내인 까닭이다.

하지만 딱히 김영삼의 말로가 아니더라도 성찰해 볼 일이다. 노 대통령의 감이 얼마나 숱한 실정을 불렀던가. 한나라당에 대연정 제의는 결코 좋은 감이 아니었다. 부동산 정책의 감은 또 어떤가. 북 핵실험 뒤 미국의 책임을 비판한 김대중과 견주어도 그의 감각은 실망스럽다. 수구언론이 뭐라 해도 ‘뚜벅뚜벅’ 걸어야 할 때, 뒷걸음질 쳤다.

그래서다. 새삼 명토박아 둔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무력하다며 연민을 느끼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고집스런 권력의 어설픈 감에 치료법은 오직 하나다. 국민의 힘이다. 부익부 빈익빈에 분단 고착화를 불러올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평택 미군기지의 독단적 추진을 막으려면, 민주 시민들이 침묵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엇보다 가난하고 착한 사람들이 대통령에 연민을 갖는 것은 사치다.

민의나 비판을 모르쇠하는 대통령의 감을 바꿀 것은 청원도 설득도 아니다. 민중의 결집된 힘이다. 11월22일 집회가 소중한 까닭이다. 노 정권은 기득권 세력에겐 무력한 ‘송장’일지 모른다. 하지만 빈민에겐, 비정규직 노동자와 농민에겐, 결코 무력한 대통령이 아니다. 무자비한 독재정권이다. 그렇다. 바로 그것이 ‘신자유주의 독재’의 본질이다.


손석춘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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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11-16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크크.
 

경애하는 윤평중 교수님,

지난 9일치 <중앙일보>는 리영희 선생의 “비체계적인 ‘인본적 사회주의’”가 “우리 사회를 시장맹·북한맹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면서 교수님의 글 내용을 이례적으로 크게 보도했습니다. 이 보도문은 우선 두 가지 이유로 나의 실소를 자아냈습니다.

먼저, 이 보도는 교수님이 리영희 선생을 “시장맹, 북한맹”이라고 공격했다는 겁니다. 교수님이 인신공격을 했다는 거지요. 그리고 이 보도는 교수님이 리영희 선생의 사상을 놓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시장맹, 북한맹을 “초래”했다고 전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리영희 선생의 “인본적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우리 사회는 시장과 북한을 바로 알지도 못할 정도로 맹(盲)한 “인본적 사회주의 국가”라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교수님의 글을 직접 보니 이 보도가 오보는 아니었고, 또 정황은 더 심각했습니다.

“리영희의 사회주의적 정향은 직관적이며 그만큼 파편적이다. 사회주의에 대한 체계적이고 이론정합성을 갖춘 논의 자체가 부재한 것이다.” “자본주의의 우상을 부순 자리에 리영희가 세운 것은 바로 사회주의의 우상이었다.” “리영희의 인본적 사회주의와 유가적 도덕주의는 근대적 시장의 입체성과 역동성을 제대로 이해 못하는 시장맹(市場盲)으로 귀결됨으로써 자유인의 존재 근거를 부인하는 자기모순에 빠진다.” “조야(粗野)하고 도식적인 그의 인본적 사회주의는 시장맹과 북한맹(北韓盲)을 배태(胚胎)하면서 우리 시대를 계몽함과 동시에 미몽에 빠뜨렸다. 리영희는 결국 냉전 반공주의가 압살한 불행한 시대의 자식이었던 것이다.”

위의 인용은 모두, 리영희 선생의 책 <우상과 이성>을 비틀어 ‘이성과 우상’이라고 제목 붙인 글에서 교수님이 손수 굵게 부각시킨 리영희 비판의 핵심들입니다.

만약 교수님이 리영희 선생을 “이성적”으로 “비판”했다고 믿는다면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리영희 선생이 어느 글에서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로서 ‘사상적’ 입장이나마 세웠던가요? 그리고 선생이 어느 자리에서 어느 정도나 시장체제의 ‘이론적’ 비판이나 대안을 제시하는 데 열중하였는가요? 선생은 사회주의의 도덕적이고도 인간주의적인 기본 가치를 선택적으로 수용하자고 주장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과연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사회주의를 우상화시키겠다는 이데올로기적 의도나 목표와 연결된 일이었습니까? 시장체제가 생활에 안겨주는 각종 고통을 리영희 선생은 집요하게 ‘비판’하고 ‘고발’하기는 했지만 과연 시장체제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대안’의 탐구를 자신의 ‘학문적 주제’로 삼았던 적이 있던가요?

교수님은 ‘반시장주의자, 북한 숭배자인 사회주의 사상가 리영희’, 그러면서 우리 사회를 그런 것에 눈멀게 만든 ‘괴력의 리영희’를 비판합니다. 아, 교수님! 교수님이 비판하는 리영희씨는 우리가 아는 리영희 선생과 동명이인인 것 같습니다. 그런 헛다리 비판을 우리 철학 교수들은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지요, 아마.

그리고 교수님이 “근대적 시장의 입체성과 역동성”을 “자유인의 존재 근거”와 연결한 발상은 너무 멋졌습니다. 그런데 “이윤을 매개로 작동하는 시장은 생산력의 확대와 함께 바람직한 사회의 기초를 구성한다”고 언명한 것은 아무래도 너무 나가신 것 같습니다. 그토록 균형을 강조하는 분이 시장의 이윤기제가 “바람직한” 사회의 기초를 구성한다고 속편하게 말하시는데, ‘시장의 실패’라는 또 다른 측면은 어떠한가요? 나도 시장에 대해 맹(盲)한가요? 우리끼리 얘기지만, 아무래도 철학을 업으로 하는 교수들의 얼치기 사회과학부터 깨져야 할 듯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리영희 지성의 진면모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할 듯합니다. 내가 아는 리영희 선생은 우리의 현대가 전적으로 결여한 채 출발하였던, 비판적 계몽의 선도자입니다. 그 분의 역할은 볼테르를 연상시킵니다. 그런데 볼테르더러 마르크스가 못됐다고 비판하면 공정한 비판이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우리 윤 교수님은 기준 혼동의 오류까지 범한 듯합니다.

경애하는 윤평중 교수님,

이렇게 한없이 오류로 가득찬 A4 11쪽짜리의 조야한 잡문을 학교 연구비까지 지원받아가며 쓸 일이 아니라 차라리 리영희 선생을 속편하게 인신공격 하시지요. 그것이 철학교수의 비판이라는 것이 얼치기라는 직업상의 기밀을 은폐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동류의식이 발동하는군요. 교수님과 교수님에 훨씬 못미치는 나 자신에 대한 학문적 연민의 심정으로 간청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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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11-16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평중, 그래도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리영희 선생을 때려서 스타라도 되려나 보죠..

라주미힌 2006-11-17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평중, 누군지 모르겠어용.. 흐.
 

지난날보다 더 지혜로워져야 한다. 이제 이분법이 잘 통하지 않는다. 상황이 달라지면 지식인은 자기 수정을 해야 한다. 단시일에 바꾸려는 것, 비타협적인 것, 독선, 과격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군부독재 때처럼 무리수를 쓰면서 전면 투쟁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고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시대가 아니다.

2005년 봄에 나온 리영희의 발언이다. 지식사회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리영희는 ‘사상의 은사’라기보다는 ‘성찰의 대부’다. 1991년 1월26일 그는 ‘사회주의의 실패를 보는 한 지식인의 고민과 갈등’이라는 강연을 한 이래로 그의 ‘사상의 제자’들에게 위와 같이 끊임없는 ‘평생교육’을 실시해 왔다. 언젠가 <월간조선>은 “노무현은 리영희의 가장 충실한 제자”라고 주장했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노무현 정권이 지금처럼 큰 어려움에 처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중앙일보>는 리영희가 남긴 ‘비체계적인 인본적 사회주의’가 우리 사회를 ‘시장 맹(盲)’‘북한 맹(盲)’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런 주장을 편 글을 소개했을 뿐이며 공과를 공정하게 소개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편집 효과상 두드러지는 건 그 메시지다. 여기에 리영희의 정신적 제자였음을 자처한 내부 논객의 비슷한 비판까지 가세했다.

나름대론 진지한 비판이었겠지만 다소 우스꽝스러운 ‘리영희 숭배’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리영희는 그렇게까지 위대하진 않다. ‘인물 결정론’도 정도 문제지, 너무 심했다.

신문은 ‘분위기 상품’이다. 편집은 사회 분위기에 민감한 편집국 분위기의 산물이다. 보수신문들은 노 정권에 대한 민심의 분노를 이념·색깔 전쟁으로 몰아가는 데에 여념이 없다. 삼성과의 관계라는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안고 있는 <중앙일보>는 그래도 그간 나름의 ‘자본의 합리성’이라는 미덕을 보여왔다. 그랬던 <중앙일보>가 분위기에 휩쓸려 리영희마저 그 전쟁의 한복판에 세우는 건가?

2005년 3월15일 리영희가 회고록 <대화> 출간 기념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중앙일보> 기사는 리영희를 ‘원로 중의 원로’라고 부르며 이를 소제목으로 뽑았다. 76살이라는 나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리영희에 대한 존경이 묻어난 기사였다. 기자마다 색깔이 다르다곤 하지만, 어떤 게 <중앙일보>의 진심인지 궁금하다.

그래도 <중앙일보>는 말이 통할 것 같아 제안을 하나 하고 싶다.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리영희 탐구를 제대로 하기 바란다. 전 사원이 <대화>를 읽고 독서 토론회를 해보길 권한다. 바로 이 책에 국난 극복의 비전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리영희는 <대화>에서 80년대 후반 운동권을 풍미했던 이른바 사회구성체 논쟁을 분열주의적 공쟁(空爭)으로 비판했다. 그는 한국사회의 분열에 대한 환멸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달갑지 않은 요소가 ‘민족적 유전자’를 형성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를 품을 때가 있다고 했다. 그는 모든 비극의 원인을 외세 탓으로 돌리는 ‘민족적 면책론’도 거부했다. 그는 뼈아픈 자기비판과 민족적 각성을 요구했다. 나라를 망친 것은 지도층이나 지배계층이고 나라를 염려하고 지킨 것은 대중이나 민중이라는 관점에도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교조주의적 도그마에 강한 혐오감을 드러냈다.

이런 문제들을 공부하면서 고민하는 <중앙일보>의 모습을 보고 싶다. 노 정권을 때려서 나라가 잘 될 것 같으면 그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게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노 정권을 넘어선 애국적 우파의 모습을 보여달라. 한국 저널리즘의 그 지독한 ‘이념 과잉, 정치 과잉’ 풍토와 결별하고, 보수의 성찰과 건강성을 실현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매진해 달라. 그럴 때에 비로소 노 정권의 낮은 지지도는 보수신문들 탓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우매함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지금과 같은 반감과 증오의 악순환 체제 아래에선 그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성공할 수 없다. 이게 바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성찰의 씨가 말라 극단적 분열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리영희가 던진 메시지이기도 하다. 리영희는 좌우(左右)를 뛰어넘는 우리의 소중한 지적 자산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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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박원순 - 고문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고문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 ‘시한폭탄(ticking-bomb)' 이론에 대해

1956년 11월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서 폴 타이트겐은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다차우 강제수용소에서 독일군의 반복된 고문을 견뎌낸 프랑스 저항운동의 영웅이었다. 당시 그는 알제의 지방장관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알제의 독립운동가 페르디난트 이브톤이 자신이 일하고 있던 가스창고에 설치된 폭탄이 발견되면서 붙잡혔다. 문제는 두 번째 폭탄이 어딘가에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브톤은 입을 열지 않았고, 곧 수천 명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었다. 경찰 책임자는 그 독립운동가를 고문해서라도 폭탄의 소재에 관해 자백을 받아내야 한다고 결사적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폴 타이트겐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를 고문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거절하였다. 나는 그날 오후 내내 전율했다. 마침내 그 폭탄은 터지지 않았다. 내가 옳았다고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한 번 고문의 ‘사업’에 빠지면 당신도 실종된다. 이해하라. 공포는 모든 것의 기초이다. 우리가 모두 말하는 문명이란 허구로 뒤덮여 있다, 그 껍질을 벗겨내면 거기에는 공포가 있다.

이렇듯 고문은 언제라도 허용하지 않아야 하는 것일까? 폭탄 설치한 사람에게 고문을 가해서라도 그 설치 장소를 알아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고문이 고문을 낳고 마침내 고문의 세상이 될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이 폭탄을 설치했다고 인정한다. 고문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폭탄을 설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고문이 그것을 드러낼 것이다. 또 어떤 사람에게 폭탄을 설치했다는 친구가 있다. 고문이 우리를 그 용의자에게 인도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위험한 의견을 가지고 있고, 폭탄을 설치할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고문은 그의 계획을 드러나게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런 위험한 생각과 폭탄설치를 할지도 모를 사람을 안다. 고문은 우리를 그 모든 사람들에게 인도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 용의자가 어디에 있는지 자백하기를 거부하였다. 고문은 그 모든 사람들을 위협할 것이다.

이런 사례는 세계 역사 속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다. 최근 독일에서 어린 아이가 납치되었고, 그 범인이 잡혔지만, 아이를 숨겨둔 장소를 말하지 않아 아이의 생명이 경각에 달렸던 적이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28세의 법학생 마그누스 개프갠은 2002년 9월 프랑크푸르트에서 당시 11세이던 한 은행가의 아들 야콥폰 메츨러를 납치했다. 개프갠은 아이를 질식사시킨 후 아이의 사망 사실을 숨긴 채 이틀 후 아이의 부모에게서 몸값 1백만 유로를 받았다. 몸값을 지불하는 순간부터 그를 추적하기 시작한 프랑크푸르트 경찰은 다음날 그를 체포하였다. 경찰은 그 아이가 사망한 상태라는 것을 모른 채 개프갠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숨겨둔 장소에 대해 개프갠이 허위진술로 일관하자, 경찰은 “정확한 위치를 말하지 않으면 폭력과 고문을 가할 것”이라고 그를 위협했다. 위협을 느낀 개프갠은 그제야 정확한 위치를 자백했고, 경찰이 현장에 급파되었으나 아이는 사망한 상태였다.
이듬해인 2003년 7월, 납치범 개프갠은 살인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경찰은 개프갠에게 고문 위협을 지시한 프랑크푸르트 경찰서 부서장 볼프강 다쉬너와 직접 심문을 당당했던 경찰관 오트빈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두 경찰관은 프랑크푸르트 지방 법정에 서게 됐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위급한 상황에서의 정당한 행위’였는지 아니면 ‘어떤 경우에도 고문은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인지를 놓고 독일 사회에 큰 논쟁이 벌어졌다. 독일 기센대학교 범죄학 연구소장이자 법의하작인 아서 크로이처 교수는 독일 일간지 <타게스 슈피겔>을 통해 “어떤 예외적인 경우에 따라 ‘한 번쯤’ 고문을 허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경우, 고문을 허용하는 틈이 형성되고 그 틈새가 점점 커져 자칫하면 ‘댐’이 붕괴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 수십만 명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폭탄을 설치한 범인이 그 설치 장소를 말하지 않을 때는 고문을 해서라도 입을 열게 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이른바 시한폭탄 이론은 사실 권력을 가진 자가 언제나 받게 되는 유혹이다.

… <중략> …

프랑스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알베르 카뮈는 “고문은 30개의 폭탄을 발견함으로써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문은 동시에 또 다른 방식으로, 또 다른 장소에서 활동하는 50명의 테러리스트들을 만들어 더 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을 야기할 것이다”라고 언명했다. 고문의 공식적인 정당화는 언제나 범죄자의 범죄 규모, 공범의 이름, 적군의 의도, 테러리스트에게서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정보를 입수해야 할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그런 식으로 고문이 용납되고 허용되고 정당화되면서 고문은 일반화된다. 그러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고문을 용납하거나 정당화될 수 없다.

 

 

 

박원순(2006), 야만시대의 기록 1, 역사비평사, 42~47쪽

- 박원순 변호사가 이 두툼하기 그지없는, 그리하여 더욱더 섬뜩한 이 세 권의 책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가장 잘 요약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대로 옮겨 본다. 함께 보면 더욱 좋을 듯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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