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류철원  (2006-07-12 14:41:52, Hit : 146, 추천 : 8)
제목  
   두렵도록 무식한...
찬성할 이유도 모르는...

한미 FTA를 둘러싼 진실게임이 점입가경이다. 하물며 한나라당의 박종근마저 "나는 FTA를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그 내용이 뭔지 알려준 게 없어 지지발언을 해줄 수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미치고 폴짝 뛸 노릇이다. 어쩌면 한국경제의 체질을 통째로 바꿀 수도 있는 중대한 경제 협상이 이렇게 추진되고 있다. 그냥 이유도 없이 시한을 미리 정해놓고 밀어부치고 있는 셈이다.

찬성론자들은 '한미 FTA=개방'이라는 도그마에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한미 FTA'야말로 겨우 '개방'의 일개 방식이라는 것을 놓쳐서는 안된다. 과거 리영희 선생님은 노무현 정권을 일컬어 "무식한 정권"이라고 통렬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맞다. 정말로 노무현 정권은 무식한 정권이다. 아니, 그냥 무식하기만 하지도 않고 무식함을 과시하려는 정권이다. 그래서 노무현 정권이 두려운 것이다.

사실 노무현 정권의 속성은 묻지마 지지에서 비롯되었다. 그나마 그 무식한 묻지마 지지 역시 거품이 붕괴하고 말았다. 그간 묻지마 지지에서는 노무현이라는 아이콘만 보일 뿐, 노무현 정권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는 무시되었다. 하지만 이제 정권 말기로 향하면서 콘텐츠의 양질이 분명히 바닥이 나고 있는 중이다.

위에서 예를 든 한나라당 박종근의 고백은 오늘날 노무현 정권이 처한 현실을 역설적으로 웅변해 주고 있다. 그저 국민들은 각하의 높은 뜻을 감히 알려고 하지 말고 염화미소만 보내라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숱하게 경험했다. 노무현 정권이 무슨 짓을 해도 심모원려라는 거짓 역성이 판을 쳤으며, 심지어 개혁적 지식인의 탈을 뒤집어 쓰고 그런 짓을 천연덕스럽게 방조하고 후원했던 집단들이 난무했다.

이정우의 뒷북

한국사회경제학회 경제학자 151명은 6일 오전 ‘한미 FTA협상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견해’라는 성명을 통해 FTA 협상 중단을 촉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연명에 전 청와대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의 이름도 보인다. 정말로 대책없는 분이다. 그동안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으로 재임하다가 사임하고 나서야 한미 FTA를 반대한단다. 정태인 비서관의 변명처럼 그가 보수적 경제관료들로부터 견제를 받다가 마지막으로 거세를 당했는지는 관심도 없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을 총괄했다는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재직할 때는 무슨 짓을 하다가 이제와서 한미 FTA를 반대한다고 저러는지 모를 일이다. 모름지기 책임과 권한을 가졌을 때 제대로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청와대를 나오니까 비로소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하다는 말일까? 정권의 경제브레인으로 일할 때는 보이지 않던 사실들이 퇴임후에 학자이자 교수의 눈으로 보니까 사태의 심각성이 판단된다는 말일까? 노무현 정권이 올초부터 한미 FTA에 대한 올인정책을 펼쳤을 때, 그는 과연 무엇을 하다가 이제서야 뒷북을 치는가 말이다. 막말로 이정우가 그렇게 비판해대던 관료들의 보신주의를 자신이 먼저 답습하지나 않았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차라리 이정우의 뒷북치기에 비하면 유시민이 훨씬 훌륭하다. 정태인 전 비서관에 따르면 "(유시민 장관은) 약값 재조정 같은 문제도 현재 우리 정책에서 한 발이라도 물러서는 협상결과가 나오면 사표를 낼 각오를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자신이 해당 분야의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있을 때 의견을 제출하고 사태를 수습해야 하는 것이 공복의 자세이다. 제발 이정우를 비롯한 전현직 참여정부의 자칭 개혁전도사들은 유시민처럼 당당하기 바란다. 그저 뻘쭘하게 한 줌도 안되는 지지자를 상대로 묻지마 지지나 요구하지 말란 말이다.

궤변과 조작의 말로

간만에 노무현의 이름이 언론지상에 등장했다. 아니나 다를까 뻔한 스토리를 들고 나왔다. 바로 일본의 대북 선제공격 운운하는 떠보기에 정면대응을 운운한 것이다. 매사에 이런 식이다. 이 지긋지긋한 국가주의에 은근슬쩍 밥숟가락을 올려놓고 한미 FTA에 반대하는 여론을 물타기하려는 것이다.

한미 FTA와 같은 국가적 명줄은 결코 쪽발이들의 게거품 헛소리에 비할 바가 아니다. 오늘 민주노동당 권영길이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라. 우리는 국가가 앞장서서 진실을 은폐하고 조작하는 현실 앞에서 노무현 정권의 마지막 발악을 본다. 그간 정권이 물경 40억이나 들여가며 홍보했다는 국정브리핑의 조작을 비롯한 FTA 찬성과 관련한 대부분의 근거는 모두 휴지조각이 되고 있다.(자세한 내용은  http://www.nofta.or.kr/webbs/list.php?board=nofta_8에서 보시기 바란다.)

미국은 한국의 공교육 시장에 관심없다고 한다. 왜? 공교육 시장은 돈이 안되고 사교육 시장이 짭짤하다는 것을 그들은 알기 때문이다. 미국의 쌀농가들은 한국의 쌀개방에 10년의 유예 기한을 두자고 한다. 왜? 타분야의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요긴한 카드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의 의료보험 체계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왜? 그들은 약가 조정과 카피약 금지 등으로 우리의 의료체계를 밑동부터 허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유효한 히든카드를 모두 써버렸다. 소위 4대 선결과제라는 명목으로 패를 오픈하고 시작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은 정말로 두렵도록 무식한 정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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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늘빵 > [말들의 풍경] <19>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 (고종석)

2006. 7. 12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607/h2006071117464985150.htm

 

[말들의 풍경] <19>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
가시내… 서리서리… 내 영혼 적시는 울림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은 세대와 계급에 따라, 더 나아가서 개인에 따라 다르다. 각자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를 꼽아보자.

김수영 시인

누구에게나 모국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다. 그것은 아름다움이 그 심판관의 편견에 깊숙이 연루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선 먼저 깊이 알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라서 외국어로 배운 언어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는 있겠으나, 그 아름다움에는 문화적 허영이라는 불순물이 섞여 있기 쉽다. 프랑스 바깥에서 프랑스 문화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제 몸뚱어리에도 이물감을 주는 프랑스어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꼽는 것 따위가 그 예다. 마흔일곱 해 동안 한국어를 써온 한 남자에게 가장 아름답게 들리는 낱말 열 개를 벌여놓는다.

하나, 가시내. 컴퓨터 모니터 속 활자 ‘가시내’에는 붉은 밑금이 그어져 있다. 그것은 이 낱말이 규범 한국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 말은 한국어 사전에 올라있지 않다. 그것이 표준어 ‘계집애’의 서남 방언이기 때문이다. ‘가시내’라는 말에 깊은 울림을 입힌 이로 서남 출신의 시인 서정주가 있다.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콩밭 속으로만 작구 다라나고/ 울타리는 막우 자빠트려 노코/ 오라고 오라고 오라고만 그러면”(‘입마춤’)이나, “눈물이 나서 눈물이 나서/ 머리깜어 느리여도 능금만 먹?杵底? 어쩌나… 하늬바람 울타리한 달밤에/ 한 집웅 박아지꽃 허이여케 피었네”(‘가시내’) 같은 시행에서, 가시내는 순애와 애욕을 동시에 체현하고 있다. 사랑과 관련된 정서적 소구력의 크기에서, 표준어 ‘계집애’는 도저히 ‘가시내’에 다다를 수 없다.

둘, 서리서리. 부사 ‘서리서리’는 동사 ‘서리다’에서 나왔다. 서린다는 것은 (국수나 새끼 따위를) 헝클어지지 않게 빙빙 둘러서 포개 감는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서리서리’는 포개어 감기는 모양과 관련 있는 부사다. 국수 뭉치를 세는 단위 ‘사리’가 ‘서리서리’와 동원어(同源語)임은 물론이다. ‘서리서리’는 사랑의 부사다. 이 낱말을 사랑의 부사로 만든 사람은 황진이라는 여자다. 이 여자의 유명한 시조 한 수는 이렇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애인과 떨어져 있는 황진이에게 겨울 밤은 한없이 길다. 그런데 그 밤은 애인과 함께라면 너무나 빨리 새버릴 밤이다. 시간의 빠르기는 각자의 심리 상태에 달렸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 시인은 이 밤을 여투어두기로 한다. 그녀는 밤을 한 토막 잘라내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어놓기로 한다. 애인이 온 날 밤에 굽이굽이 펴기 위해서. 황진이의 놀라운 상상력은 시간을 공간으로, 물질로 바꿔놓고 있다.

셋, 그리움. 그리움은 결핍의 정서적 효과다. 프랑스어 화자들은 “나는 네가 그리워”를 “너는 내게 결핍돼 있어”(Tu me manques)라고 표현한다. 모든 사랑의 시는 그리움의 시다. 사랑은 결핍과 부재의 상태에서 가장 격렬하기 때문이다.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김영랑의 ‘내 마음을 아실 이’)나 “‘그립다’ 생각하면/ ‘그립다’ 생각하는 아지랑이”(서정주의 ‘아지랑이’) 같은 시행에서 그리움은 사사로운 감정이지만,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 묻은 그리움”(이성부의 ‘벼’)이나 “그러나 불현듯, 어느 날 갑자기/ 미친 듯이 내 가슴에 불을 지르는/ 그리움은 있다”(김정환의 ‘지울 수 없는 노래’) 같은 시행에서 그리움은 정치적 사랑과 이어져 있다. 그 둘은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둘 다 빈 데를 채우려는 마음의 움직임이다. 그 마음의 움직임을 좀더 객관적으로는 ‘기다림’이라 부른다.

넷, 저절로. ‘저절로’는 인텔리전트빌딩이나 하이테크파크의 작동 원리다. 그것은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키는, 또는 노동에서 배제하는 새로운 사회의 부사다. 다시 말해 ‘저절로’의 공간은 ‘인간이 거세된 인공’의 공간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 자연의 공간이기도 하다.

16세기 문신 김인후(金麟厚)는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山) 절로 수(水) 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라 노래한 바 있다. ‘저절로’는 애씀이나 집착을 넘어선, 마음과 몸의 가장 높은 단계이기도 하다. 인위와 자연을 동시에 품고 있는 것이 ‘저절로’의 매력 또는 마력이다.

다섯, 설레다. 설렘은 마음의 나풀거림이다. 그것은 정서적 정신적 미숙의 증상일 수도 있다. 부동심(不動心)은 동서고금의 많은 현인들이 다다르려 애쓴 이상적 마음상태였다. 그러나 설렘이 없다면 생은 얼마나 권태로울 것인가. 소풍 전날의, 정인(情人)을 기다리는 찻집에서의, 설날 해돋이 직전의 설렘을 기억하고 되새기는 것은 생의 정당한 사치다. 그것은 생의 밋밋함을 눅이는 와사비다.

여섯, 짠하다. 내가 늘 펼치는 한국어 사전에는 ‘짠하다’가 “지난 일이 뉘우쳐져 못내 마음이 언짢고 아프다”로 풀이돼 있다. 내가 굳이 사전을 펼쳐본 것은 컴퓨터 모니터 속 활자 ‘짠하다’에 붉은 밑금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당연히 밑금이 그어지리라 지레짐작했다. 이 말을 서남 방언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전의 설명이 표준어 ‘짠하다’의 올바른 정의일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아는 ‘짠하다’는 사전의 정의와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그 뉘앙스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한국어 화자 가운데서도 서남 지방 사람들일 것이다. 서남 사람들이 잘 쓰는 ‘짠하다’는 표준어 ‘안쓰럽다’와 뜻이 비슷하지만, 그렇다고 고스란히 겹치지는 않는 것 같다. ‘짠하다’에는 안쓰러움과 애틋함이 버무려져 있다. ‘짠하다’는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연민의 형용사다.

일곱, 아내. ‘아내’라는 말이 내게 아름답게 들리는 것은 내가 남자이기 때문일 테다. 요즘엔 젊은 세대고 나이든 세대고 할 것 없이 ‘아내’ 대신 ‘와이프’라는 말을 즐겨 쓰는 듯하다. 힘센 언어에서 차용된 외래어는 그 비릿한 사용 맥락에도 불구하고 우아하게 들리게 마련이지만, 이 ‘와이프’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한국어 속에 끼여든 ‘와이프’는 그 본적지에서와 달리 천박하게 들린다. 나만 그런가?

여덟, 가을. 지방에 따라 ‘가을’이라는 말이 ‘가을걷이’ 곧 ‘추수’의 뜻으로도 쓰이고 있는 걸 보면 한국인들의 상상 속에서 가을은 무엇보다도 결실의 계절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가을은 또 조락(凋落)의 계절이기도 하다. 미국 사람들의 ‘가을’(fall)에는 그 조락의 상상력이 또렷하다. 성함의 끝과 쇠함의 시작이 맞닿아 있는 때가 가을이다.

아홉, 넋. 넋에 대한 믿음을 지닌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것은 공식 통계와 상관없이 인류의 종교적 심성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는 뜻일 테다. 넋이 과학의 까탈스러운 눈 앞에 제 모습을 번듯하게 드러내지 못했으니, 이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넋이 사라진 세상은 얼마나 허전할 것인가. 얼마나 납작할 것인가.

열, 술. 이 말이 아름답게 들리는 것인지 이 말이 가리키는 물질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인지 섞갈릴 때가 있다. 아무튼 ‘술’이라는 말만큼 술처럼 들리는 말이 내가 아는 외국어에는 없다. ‘술’의 마지막 소리인 설측음 /ㄹ/은 술의 물리적 성질을, 다시 말해 액체로서의 유동성을, 그 흐름의 본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들린다. 한편 그 첫 소리인 치마찰음 /ㅅ/은 술이 예컨대 증류수 같은 무미 무취 무색의 액체가 아니라 빛깔과 향기와 맛을 지닌 매력적인 액체라는 것을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그 두 자음을 이어주는 원순 후설모음 /ㅜ/는, 내게, 술은 내뱉는 것이 아니라 마시는 것이라는 점을, 또 마시되 예컨대 모음 /ㅏ/가 연상시켰을 수도 있듯 폭음하는 것이 아니라 절제 있게 느릿느릿 마시는 것이라는 점을 함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술은 뇌세포에 상처를 낼 정도로, 또는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청각이 흐릿해져 서로 악다구니를 써대거나, 과장된, 또는 가장된 애상의 몸짓이 펄럭일 정도로 마실 일이 아니다. 이 말을 해 놓고 보니 쑥스럽긴 하다. 나 자신 ‘음주인’의 직업윤리를 잘 지키지 못하고 있으니.


시인 김수영이 꼽은 말은?
마수걸이·에누리·은근짜·총채… 상인집안 내력에 장사 용어 많아

시인 김수영(金洙暎ㆍ1921~1968)은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라는 수필에서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말들로 마수걸이, 에누리, 색주가, 은근짜, 군것질, 총채, 글방, 서산대, 벼룻돌, 부싯돌을 꼽은 바 있다. 시인 자신이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말들은 아무래도 내가 어렸을 때에 들은 말들이다. 우리 아버지는 상인이라 나는 어려서 서울 아래대의 장사꾼 말들을 자연히 많이 배웠다”고도 고백하고 있거니와, 이 말들 가운데는 ‘시장 언어’가 꽤 있다. 장사꾼의 공간이라는 ‘아래대’란 동대문에서 광희문에 이르는 지역을 가리킨다. 그 맞은편의 서울 서북 지역은 ‘우대’라 불렀다.

젊은 독자들 귀에 설지도 모를 말들을 설명하자면 ‘마수걸이’는 하루나 한 해 중 처음으로 물건을 파는 일을 뜻하고, ‘은근짜’는 몸을 파는 여자를 뜻하며, ‘서산대’는 옛날 글방에서 학동들이 책의 글자를 짚는 데 사용하던 막대기다. 먼지떨이라는 뜻의 ‘총채’도 요즘은 많이 쓰지 않는 듯하다.

김수영이 꼽은 이 말들은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이 세대(와 출신지역과 계급)에 따라, 더 나아가 개인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요즘 젊은 세대라면, 설령 이 말들의 의미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단계로 건너가기 위해 포착해야 할 뉘앙스를 도무지 잡아낼 도리가 없을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말(의 뉘앙스)이 변하는 것은, 그래서 아름다운 말의 기준이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김수영은 이 수필에서 자신이 ‘매우 엉거주춤한 입장’에 있다며 “‘얄밉다’ ‘야속하다’ ‘섭섭하다’ ‘방정맞다’ 정도의 낱말이 퇴색한 말로 생각되고 선뜻 쓰여지지 않는 반면에, ‘쉼표’ ‘숨표’ ‘마침표’ ‘다슬기’ ‘망초’ ‘메꽃’ 같은 말들을 실감 있게 쓸 수 없는 어중간한 비극적 세대가 우리의 세대”라고 푸념하고 있다. 그렇지만 김수영 세대만이 아니라 모든 세대는 언어의 생태학 속에서 ‘매우 엉거주춤한 입장’에 있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어중간한 비극적 세대’일 수밖에 없다. KBS 텔레비전의 오락 프로그램 ‘상상플러스’의 ‘세대 공감 OLD & NEW’라는 코너는 한 세대의 말이 다음 세대로 고스란히 옮겨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각자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를 꼽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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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에게 한국학 수업을 들었던 한 일본 학생과 동아시아의 양성 평등화 현황을 두고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페미니스트였던 그 학생에게 최근 한국의 양성 평등 진척이 대단히 매력적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사상 첫 여성 총리, 호주제 폐지 …. 가족 가치를 들먹이며 군국주의 시대의 현모양처론을 슬그머니 다시 꺼내는 수구주의자들이 정계에서 극성을 부리는 일본으로서 한국의 상황이 부럽다는 이야기였다.

한국이 부럽다니 마음 한구석에서 자긍심을 느꼈다. 그런데 속사정을 따져보면 우리 상황이 그렇게 부러운가? 정치권이 나라 안팎의 시선을 의식해 여성 기용에 마음을 쓴다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지배체제 상부에서 여성의 얼굴이 뜬다고 해서, 과연 그 하부에서 가부장적 가치관이 뒷받침하는 억압과 착취가 사라지는가? 성차별적 고용구조에 저항하는 고속철도(KTX) 여승무원들이 여성 총리와 여당의 여성 서울시장 후보자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냉대와 경찰 탄압만을 맞은 것은 상징적이다. 다수 여성을 비정규직으로, 소수 남성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구조도 문제지만, 과연 한국의 고속열차나 비행기에서 대다수 승무원이 꼭 젊은 여성이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유럽 항공사를 이용해본 사람이면 알지만, 거기에서는 남녀 승무원의 비율이 각각 절반에 가까운데다 결혼, 출산으로 여승무원이 퇴사하는 경우도 적다. 여성 총리의 얼굴이 ‘선진화한 대한민국’을 과시하는 동시에, 여성 노동자들의 외모와 ‘여성적으로’ 친절한 언행이 남성 손님들을 만족시켜주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국의 여성운동이 일본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압축성장’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기존의 여성성 상품화·예속화 패턴이 본질적으로 바뀌기라도 했던가? 몇 해 전에 일군의 페미니스트들이 나선 ‘안티 미스 코리아’ 운동은 필자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여성의 ‘아름다운’ 신체를 남성의 눈요깃감, 남성들에 의해 평가되는 상품으로 만드는 ‘미스 코리아’ 부류의 ‘여체 박람회’야말로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상징이다. 그런데, 참가자들이 완벽한 에스(S)라인으로 관객의 눈길을 잡아야 하는 ‘미스 태극전사 선발대회’가 열리고, ‘섹시한 응원’을 길거리에서 벌이는 여성 연예인들이 여러 매체에 대서특필되고, 반라의 여성 응원팀들의 사진이 신문들을 장식하는 최근의 상황을, 페미니스트의 견지에서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남성답게 힘세고 민첩한 남자가 전사로서 가족과 나라를 지키고 여자답게 아름답고 배려가 많은 여성이 그 전사를 도와주고 챙겨준다는 것이 바로 고금 가부장제의 주된 성역할 모델이라는 것을 알 사람은 다 알 것이다. 혈기왕성한 ‘태극전사’들이 운동장에서 대한민국의 명예를 높이고 방년의 미녀들이 그 언저리에서 전사들을 응원해주는 것이 바로 그 패러다임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여성학을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당장 눈치챌 수 있다.

그럼에도, 안티 미스 코리아로 성가를 올린 한국의 페미니즘이 마땅히 펼쳐야 할 ‘안티 월드컵’을 펼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남근 파시즘’을 공격해도 되지만, 남근의 소유자를 ‘나라를 지키는 태극전사, 뭇 미녀의 우상’으로 만드는 국가주의적인 쇼를 공격하기가 곤란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남근 숭배’를 벗어나려면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남근 권력’ 뒤에 숨어있는 국가와 자본을 직접 공격해야 하지 않는가? 국가, 자본을 떼어놓고 ‘페니스 파시즘’과 가부장제를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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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6-29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시원하게 꼬집어서 얘기하는군요.
 

연예인 낸시 랭의 함정

패리스 힐튼의 라이벌이 되기 쉽지 않은 예술가 엔터테이너…대중이 볼 일없는 작품으로 끝없이 권위를 창출해야하는 아이러니

▣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

혹시 연예인이 되고 싶은가? 그런데 아무리 홍익대와 청담동을 돌아다녀도 어떤 프로듀서나 연예기획사 관계자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가? 그러면 지금부터 이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준비해라. S라인 몸매와 얼짱 외모. 그것만 있어도 당신은 텔레비전에 출연할 수 있다. 외모와 춤이 되면 SBS <진실게임>에 출연할 수 있고, 인터넷에서 섹시한 춤이나 얼굴로 화제가 되면 SBS <있다 없다>와 문화방송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검색 대왕’에 출연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 인상적인 모습만 보여준다면 당신은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할 수도 있고, 인터넷 언론은 바로 그 소식을 다룰 것이다. 그 다음? 아마도 당신은 모바일 화보업체로부터 촬영 제의를 받을 것이고, 모바일 화보업체는 정식으로 보도자료를 돌릴 것이다. 농담이 아니다. 거리에서 춤추는 모습이 찍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떨녀’는 이 코스를 그대로 밟아 한국방송 <개그콘서트>에도 출연했고, <진실게임>에서 연 4억원을 번다고 해 화제가 된 ‘4억 소녀’와 <있다 없다>에서 단백질 인형 같은 사진으로 출연한 ‘단백질 소녀’도 모바일 화보를 찍었다. 물론 이들이 아직 스타가 되진 못했다. 하지만 거기에 어떤 요소만 더 갖춰지면 진짜 스타가 될 수도 있다.

캐릭터가 컨텐츠보다 먼저인 대중문화

현영을 보라. 현영이 처음에 연예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S라인 몸매를 자랑하는 각종 화보 사진과 오락 프로그램에서의 독특한 캐릭터 때문이었다. 그는 연예인이었지만 연기자도, 가수도 아니었다. 다만 텔레비전에 나올 뿐이었다. 하지만 현영의 캐릭터가 점차 인기를 얻자 그는 그 캐릭터 그대로 드라마에 출연하고, <누나의 꿈> 같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콘텐츠에서 캐릭터가 생긴 것이 아니라 캐릭터가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그 캐릭터가 되기 위한 어떤 ‘자산’을 가지고 있느냐가 연예인이 되기 위한 조건이다. 연기와 노래, 뛰어난 말솜씨 같은 전문 분야의 능력은 그중 가장 가지기 어려운 축에 속하는 것일 뿐, 필수 요소는 아니다. 자신이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어떤 자산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면 유명해질 수 있다. 요즘 슈퍼주니어 같은 아이돌 그룹이 가수로 데뷔했으면서도 각자 다른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쌓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일단 눈길을 끌어 캐릭터를 만들어야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낸시 랭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독특한 자산을 가진 ‘연예인’이다. 그가 사람들에게 유명해진 것은 그가 독특한 작품세계를 가진 예술가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낸시 랭의 이력이 시작된 베니스 비엔날레의 퍼포먼스는 초청받은 것이 아니라 그가 자의적으로 벌인 것이었고, 그의 작품이 현재 어떤 평가를 받고, 어느 정도의 수익을 내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최근 인터넷에는 그의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논란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연예인으로서의 낸시 랭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낸시 랭은 예술가이기 때문에 대중에게 알려질 수 있었지만, 정작 대중이 그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작품보다는 ‘메가패스’ CF나 m.net의 <트렌드 레포트 必> 같은 프로그램을 훨씬 많이 봤을 것이다. 오히려 그가 대중에게 어필하는 건 그가 기존 예술가의 이미지를 벗어났다는 사실 그 자체다. 앤디 워홀이 무색하게도, 한국에서 현대미술가는 대중에게 머나먼 존재다. 특히 행위예술은 여전히 ‘전위’라는 말과 통한다. 낸시 랭은 그것들을 대중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하는 접점을 만들어 예술가라는 자산을 가치 있게 이용한다. 그가 종종 벌이는 퍼포먼스는 실제로 그것을 본 사람이 얼마 없거나, 그 완성도가 떨어진다 해도 대중의 관심에 좌우되는 매체의 선택을 받을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몸을 거리에서, 각종 행사장에서 노출하고, 비욘세의 를 틀고 자신을 추종하는 ‘리틀 낸시’와 함께 홍대 거리에서 춤을 춘다. 게다가 그는 명품을 찬양하고, 예쁜 옷과 가구를 사랑한다. 즉, 그의 예술행위들에는 포장은 예술이지만 내용물은 사실 대중의 관심을 끄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들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대중이 좋아하는 소비행위와 대중이 보길 원하는 엔터테인먼트가 낸시 랭을 통해 더욱 고급스러운 의미로 거듭난다.

비엔날레와 의류업체가 주는 신빙성?

그가 진행하는 <트렌드 레포트 必>에서는 연상녀-연하남 커플의 애정행각에 대해 인터뷰하는 것이 전부일 때도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낸시 랭은 인터뷰 등에 담긴 의미를 짚어내거나, 그것을 재료로 어떤 예술적 행위도 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이런 커플을 이루는 남자를 ‘Boy Toy’라고 명명할 뿐이다.


그러면 그게 낸시 랭이란 예술가가 말하는 ‘트렌드’가 된다. 또 연예인이 입는 옷에 관한 이야기도 낸시 랭이 쓰면 꽤나 ‘있어 보이는’ 문화 칼럼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낸시 랭이 예술가의 타이틀을 통해 뻔하고 속물적인 어떤 대중문화들에 ‘있어 보이는’ 이미지를 덧칠하면서 스스로 대중문화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엔터테이너가 되려 한다는 사실이다. 낸시 랭이 예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예술가로 인정받는 게 아니라, 예술가 낸시 랭이 하는 것이 ‘예술’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래서 낸시 랭의 비교대상은 앤디 워홀이 아니라 그가 라이벌이라고 밝힌 패리스 힐튼이다.

패리스 힐튼은 전문적인 연예계 활동을 거의 하지 않지만, 현재 미국에서 그 누구보다 유명한 인물이다. 호텔 재벌 힐튼가의 자식인 그는 대중이 바라는 억만장자의 모든 이미지를 충족시켜준다. 그는 대중 앞에서 아낌없이 벗고, 망가지고, 놀면서 대중의 부자에 대한 열등감과 호기심을 모두 해소해준다. 대중은 그가 망가지는 모습을 통해 부자도 별거 없다는 만족감을 느끼고, 그와 함께 드러나는 부유층의 사생활을 통해 그들에 대한 호기심을 만족시킨다. 그는 자신의 자산을 정확하게 엔터테인먼트적 가치로 환산하는 능력을 가졌다. 만약 낸시 랭이 패리스 힐튼처럼 될 수 있다면, 그가 하는 모든 것이 예술이자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패리스 힐튼과 낸시 랭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어지간해선 변하지 않을 부를 가진 패리스 힐튼은 그것을 자산가치 삼아 그의 삶 자체를 엔터테인먼트화했다. 실제로 그를 확실히 스타덤에 올린 리얼리티쇼 <심플 라이프>는 그의 사생활에서 오는 이미지를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 확대재생산한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라는 자산을 가진 낸시 랭은 계속 예술 관련 콘텐츠를 발표해야 하고, 그것이 예술계에서 인정받아야 한다. 그것은 그가 보여주는 엔터테인먼트가 예술가의 삶 그 자체가 아니라 예술가의 ‘권위’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베니스 비엔날레에 나갔다는 사실, 그리고 한 의류업체의 디자이너로 발탁됐다는 사실이 그가 말하는 ‘트렌드’라는 것의 신빙성을 더한다. 실제로 대중이 그가 발표한 작품을 전혀 보지 못하더라도, 그는 계속 예술작품을 만들어내야 텔레비전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아이러니에 빠지는 것이다. 이는 현재 한국 대중문화계의 독특한 상황을 보여준다.

예술가 이미지마저 뒤엎을 순 없나

만약 낸시 랭이 정말 예술가의 자산을 가진 채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생산하고 싶었다면, 그는 자신의 삶 자체로 예술가의 이미지를 뒤엎는 엔터테인먼트를 보여줬어야 한다. 명품을 사는 걸 좋아하고, 자신이 속물적인 사람임을 숨기지 않는 그는 예술의 의미에 대한 논쟁을 일으킬 수도 있었고, 그가 벌이는 모든 해프닝이 고상한 예술가에 대한 대중의 은근한 반감을 자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명품 핸드백을 사고서 “명품 핸드백을 사는 것은 최고의 예술행위”라며 아무 생각 없는 듯이 웃고 있는 낸시 랭을 생각해보라.


그게 바로 풍자고 엔터테인먼트 아니겠는가. 하지만 낸시 랭이나 그의 예술행위를 두고 진짜니 사기니 하는 평가를 내리는 대중이나 누군가 콘텐츠를 만들지 않고도, 혹은 그 창작행위를 부정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엔터테인먼트가 된다는 사실은 부정한다. 심지어 S라인 몸매와 얼짱, 심지어는 4억원을 번다는 사실마저도 연예인 데뷔의 수단이 되는 이 시점에도 말이다. 그래서 낸시 랭의 앞으로의 행보는 한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그가 지금의 방향을 고수하는 한, 낸시 랭은 서울대 중퇴에 사업으로 천문학적인 금액의 투자를 받아 화제가 됐다가 그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돼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유밀레처럼 될 수도 있다. 물론 그는 객관적인 팩트나 평가가 존재하기 어려운 예술적 능력이 자산이기에 유밀레보다는 나은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유명세에 어울리는 평가를 받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예술가 낸시 랭뿐만 아니라 연예인 낸시 랭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반면 그가 자신이 가진 예술가의 이미지를 엔터테인먼트를 위해 제대로 쓸 수 있다면 그는 작품활동과 별개로 대중이 가지고 있는 예술가에 대한 욕망들을 충실히 채워주고, 패리스 힐튼이 자신의 부유함으로 엔터테인먼트를 보여줬듯 예술가라는 직업만으로도 엔터테인먼트를 완성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낸시 랭이 좋은 예술가인지는 알 수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중은 이런 것들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다만 그 모든 것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그 자체다. 요즘처럼 무엇이든 재밌으면 연예계로 끌어들이는 때는 더욱 그렇다. 누구도 그걸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예술이건 엔터테인먼트건 ‘있는 척’하는 사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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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민심' 어디로 흐를 것인가?

 

 

[좌담]"'무능한 신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심판"

5.31 지방선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예상된 결과라고는 해도 집권여당에 가해진 혹독한 심판에 누구보다 정치권 스스로가 놀랐다. <프레시안> 은 1일 오전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와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의 긴급대담 자리를 마련해 이번 선거에 나타난 민심의 의미와 여야 정치권에 주는 메시지, 그리고 내년 대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격변기에 민심의 향배는 어디로 향할지 등을 짚어봤다.
  
  "盧정부 신자유주의가 무서운 민심 불러"…"보수적 중도파가 한나라로 이탈"
  
  손호철 교수는 '무서운 민심'이 80%, '비이성적인 민심'이 20%라고 했다. 80%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증오가 결합된 '심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공천비리와 성추행으로 얼룩진 한나라당에 압승을 선사한 것이 이성적인 선택이냐는 아쉬움이 나머지 20%다.
  
  김호기 교수의 진단도 비슷했다. 김 교수는 이번 선거 결과를 노무현 정부가 지난 3년간 수행해 온 신자유주의 정책기조에 대한 '국민적 심판'의 성격으로 규정하면서도, 한나라당의 공천비리나 성추행 등 추태 사건이 벌어진 미시적 국면에서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이 주도권을 잡지 못한 점에 답답함을 표했다.
  

▲ 손호철 교수.


  양측의 견해는 한나라당에 몰린 민심의 본질적 의미가 신자유주의로의 경도냐는 지점에서부터 엇갈렸다.
  
  손 교수는 이번 지방선거의 함의를 김대중-노무현 정부 8년 집권기에 추진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심판으로 봤다. '좌파 정권'이라는 말까지 들은 두 정부가 정작 내용적으로는 신자유주의 노선을 채택함으로써 지지기반인 중산층과 서민들의 생활고를 가중시킨 '무능'에 대한 평가라는 것이다. 물론 그 반작용이 보다 親신자유주의적인 한나라당 대한 표 쏠림으로 나타난 것은 비이성적 역설이다.
  
  김 교수는 국민들의 관심이 실질적 민주주의에서 세계화의 충격으로 이동한 점을 인정하면서도, 先성장-後분배로 압축되는 신자유주의 담론에 일정부분 손을 들어준 것으로 진단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의 지지기반 중 보수적 중도세력이 한나라당으로 이탈했다고 분석했다. 세계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양극화 문제 해결에 노무현 정부가 이렇다 할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데 대한 항의투표라는 것이다.
  
  공통점을 찾자면 두 교수 모두 노무현 정부의 '무능한 신자유주의'가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일치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민심의 흐름은 내년 대선에서 어떤 정치적 선택으로 이어질까?
  
  손 교수는 내년 대선을 자유주의 정권 10년에 대한 심판 쪽에 무게를 실었다. 서민들 다수가 자유주의 세력에 매력을 느끼는 게 사실이어도 신자유주의 정책추진의 책임을 더 비중있게 묻지 않겠냐는 것이다.
  
  표현은 다르지만 김 교수 역시 자유주의 세력이 남은 임기동안 개방과 복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비전을 만들어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지지층이 줄어들 것으로 봤다. 현 여권에게는 우울한 전망이다.
  
  이는 보수세력의 정치적 대표체인 한나라당과도 긴밀한 관련을 갖는 문제다. 김 교수는 한나라당 내에 공존하는 구보수와 신보수의 차이에 주목했다. 정확히는 소장파로 대표되는 한나라당 내의 새로운 인적자원에 주목한 것. 이번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으로 이탈한 보수적 중도그룹이 내년 대선에서도 한나라당 내부의 신보수를 향해 표를 던질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러나 손 교수는 대선을 앞두고 정치공학적인 분열의 가능성 외에 한나라당의 구보수와 신보수는 신자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고 단언했다. 손 교수는 그 보다는 여권이 민주당, 고건 전 총리 등을 아울러 민주대연합론 구성하거나, 친노 세력이 이와 다른 방식으로 세력을 형성해 나가는 흐름이 복합적으로 어울려 한국 정치를 구성해 나갈 것으로 봤다.
  
  다음은 1일 오전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진행한 손호철, 김호기 교수 대담 전문.
  
  '5.31 민심'의 의미
  
  프레시안 : 예상된 결과라는 평가 속에 정치적 탄핵이라는 말도 나온다. 지방선거 결과를 접한 전반적인 생각과 이번 선거의 의미와 전망을 먼저 짚어달라.
  
  손호철 : 한나라당의 금품비리, 성추행 등 다양한 악재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압승이 예상되는 여론조사 결과 보면서 개인적으로 한달 전에 무서운 민심이냐 미친 민심이냐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때 썼던 대로 민심이 정말 무서운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낀 게 80%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 어떤 의미에선 증오라고까지 표현될 수 있는 감정이 심하다는 게 충격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갖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생각해 보면 민심의 심판이 단순히 이성적인 판단만은 아닌 것 같다. 80%가 무서운 민심이라면 20%는 여전히 비정상적인 민심이 아닌가 싶다. 열린우리당이 잘못했다고 해도, 그 대안이 이번 같은 한나라당의 압승이어야 했을까, 다른 대안적 선택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김호기 교수.


   김호기 : 이번 선거 결과를 우리가 들여다보기 위해선 세가지 구분이 필요하다. 97년 경제위기와 98년 DJ정부 출범부터 시작된 8년에 걸친 중도개혁세력에 대한 평가라는 긴 시간의 평가가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지난 3년간 노무현 정부의 집권에 대한 평가, 즉 정권심판론이라는 의미가 가능하다. 세 번째는 지난 두 달간 펼쳐진 정치적 국면에서의 흐름도 있는 것 같다. 세 가지 요소가 어우러져서 이런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8년의 평가에서 보자면 우리사회 두개의 정치구도인 민주-반민주, 친신자유주의-반신자유주의 중에서 적어도 유권자들이 보기에 전자의 구도는 의미를 많이 상실하지 않았나 싶다. 따라서 후자가 중요해진 것인데, 국민 다수는 반신자유주의 보다는 친신자유주의에 가까운 선택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대안의 문제에서 중도세력 내지는 진보세력이 국민들의 공감을 아직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측면에서는 정권심판론이 유권자 마음을 움직였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 정부가 지난 3년간 가져 온 정책적 기조에 대한 심판이다. 노 대통령 본인이 말했듯이 '좌파 신자유주의'에 국민들이 혼란을 느꼈고 정책의 일관성에 대한 신뢰도 떨어졌다. 통치 스타일도 국민들에게 신뢰를 크게 안겨주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런 것들이 일정하게 유효했다.
  
  개인적으로 답답했던 부분은 세 번째 미시적 흐름이다. 한나라당의 공천과정 비리, 성추행 등 추태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이 미시적 국면에서 헤게모니를 잡지 못한 것 같다. 앞선 두 가지 요소가 너무 커서 이런 미시적인 사건이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못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손호철 : 전반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김 교수가 '민심이 친신자유주의를 선택한 것'이라고 한 점에는 이견이 있다. 이번 지방선거 임하는 정치세력 중에서 반신자유주의를 채택한 정당은 민노당뿐이다. 민노당이 12% 얻고 다른 정당이 88% 얻은 것을 국민 다수가 친신자유주의를 선택한 것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와 집권여당이 참패하고 한나라당이 승리한 원인이 노무현 정부가 반신자유주의 노선을 걸었기 때문에 친신자유주의 노선인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따라서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친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강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IMF 상황과 박정희 모델을 극복해야겠다는 철학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 결과는 두 정부가 김영삼, 노태우, 전두환, 박정희 정부보다도 더 반서민적인 결과를 가져다 줬다. 역대 정권 중에서 가장 자유주의적이고, 일각에선 좌파 정권이라는 말까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70년대 후반 이후 측정한 지니계수가 최악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지지기반인 중산층과 서민층에게 무능으로 표현됐다. 무능의 내용은 생활고와 민생의 어려움이다. 그 사람들이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과거사법 국보법 사립학교법이냐는 정서로 간 것이다. 박정희 신드롬이 나타나고 박근혜를 선택한 것은 그 때문이다. 반신자유주의를 내건 민노당이 12%밖에 못 얻어서 국민 다수가 친신자유주의를 선택한 듯이 보이지만 내용적으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친신자유주의에 대한 심판이다. 다만 국민들이 오히려 더 친신자유주의적인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준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정권심판론과 관련된 것인데, 엄밀하게 말하자면 자유주의 정권 10년에 대한 심판이다. 그 내용은 자유주의 정권이 추진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심판이었다. 자유주의 정권이 잘못된 시기에 집권함으로써 한국의 루즈벨트가 아니라 한국의 대처가 된 불행한 비극을 맞게 됐다. 아울러 지적할 것은 노무현 정부 특유의 전투적 리더십이다. 스타일의 급진주의다. 한미 FTA를 추진하는 등 내용은 보수적이면서 불필요하게 스타일만 래디컬해서 모든 사람들을 적대화시키고 불안하게 만드는 독선으로 나타났다.
  
  세 번째 주목할 부분은 2004년 탄핵의 거품으로 의석을 너무 많이 차지한 거품의 붕괴다. 탄핵이 아니었으면 유권자들의 자괴감은 일찍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지방선거는 지난 총선에서 노무현 정부를 구해준 유권자들 스스로의 자괴감이다. 자괴감에 대한 보상이 한나라당에 대한 일방적 지지로 나타났다.
  
  국민 관심은 '신자유주의의 충격'으로 이동
  
   김호기 : 지난 10년간 거시적 측면에서 국민들의 관심이 이동했다. 2002년 대선에선 민주-반민주 구도에서 제기된 과제, 즉 실질적 민주주의 달성이 과제였다. 2002년까지는 그 과제가 더욱 중요해서 국민들은 노무현 정부를 출범시켰다. 2002년 이후 정부와 집권여당은 민주화 과제에 주력한 면도 있다. 참여정부 초기의 탈권위주의, 권력기관 독립 등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신자유주의 충격이 국민들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다보니 관심이 이동했다. 민주화를 지나 세계화의 충격이 다가온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 국제적 금융자본의 문제, 사회 양극화, 조세, 복지 등의 문제로 관심이 이동한 것이다. 그러면 중도개혁세력인 정부가 이 문제에 응답을 해야 하는데, 이부분에서 일관되고 효과적인 정책 구사와 추진이 미약했고 결과 또한 취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따라서 중도개혁세력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회의와 실망의 의미가 이번 선거에 담겨 있다.
  
  국민의 시선에서 보자면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성장을 먼저 추진해서 분배효과를 모색하자는 신자유주의 담론에 손을 많이 흔들어 준 게 아닌가 싶다.
  
  프레시안 : 신자유주의에에 대한 찬반이 일반 유권자들에게 현실적인 선택의 기준이었느냐는 문제는 조금 모호한 면이 있다. 손 교수 말처럼 신자유주의 반대가 민심이라면 왜 한나라당인가가 설명이 돼야 할 것 같다.
  
   손호철 : 신자유주의냐 아니냐를 국민들에게 물으면 다수는 모를 것이다. 그러나 다수 사람이 느끼는 삶의 질이 내용이다. 국민들 관심이 이동했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고 거기까지는 동의한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자유주의 세력이나 중도개혁세력의 함정이고 존재 붕괴의 이유다. 신자유주의 정책, 즉 경제 정책에선 한나라당과 차별이 없다는 말이다. 자유주의 두 정권이 이제 책임을 질 때가 됐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양면적이다. 시장에 맡기고 경쟁력을 키워야 하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의 문제로 닥치면 반발한다. 피부에 와 닿는 것은 후자다. 국민들이 노무현 정권을 반신자유주의 정권이라고 판단해서 심판했겠나. 그건 아니다. 노무현 정부는 혁신도시, 자유도시화는 물론이고 비정규직 법안, 한미FTA 등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답습했고, 특히 급진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해 왔다. 국민들이 보기에는 노무현 정부가 반시장적이어서, 한나라당이 시장주의 경제정책을 더 잘할 것 같아서 판단했겠느냐에는 회의적이다.
  
  김호기 : 우리 유권자들이 요구하는 바는 무엇일까, 어떤 부분에서 실망했을까는 5가지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성장 동력의 약화, 사회적 양극화, 일자리 창출, 교육, 부동산 이슈다. 이런 이슈에 국민들이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것은 정치적 대안을 선택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나름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반신자유주의적 대안세력은 규범적으로는 옳지만 뚜렷한 상이 안 잡힌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보기에는 이런 이슈들을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설득력 면에서 반신자유주의적 세력이 떨어진다.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것이 규범적으로는 옳지만 국민들의 현실적 문제로 본다면 간단치 않다는 얘기다.
  
  결국 노무현 정부 정책에 대한 항의투표 성격이 짙다. 한나라당이 대안으로서 좋아서가 아니다. 집권에 대한 무한 책임을 갖는 정부와 여당에게 국민들이 항의한 것이다. 이 세력에 계속 맡겨야 하느냐의 문제에서 적어도 중도개혁세력을 지지하는 국민은 그렇지 않다고 봤을 것이다. 이 부분을 눈여겨봐야 한다. 신자유주의와 구체적 정치적 선택이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중간 매개되는 영역이다.
  
  전통적인 중도개혁 지지세력 중에 어느 그룹들이 이탈한 것인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열린우리당으로 대표되는 중도개혁세력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보수적 중도와 정말 가운데 있는 중도, 진보적 중도가 있다. 이 중에서 핵심지지층인 가운데 그룹만 빼고 나머지 양쪽이 다 이탈한 것 같다. 보수적 중도그룹은 한나라당으로 이탈한 반면, 진보적 중도그룹은 민노당을 선택한 게 아니라 정치적 선택을 아예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래서 열린우리당 지지가 줄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본다면 열린우리당이 진보적 개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지기반을 상실했다고만 보기는 힘들다. 중도세력을 지지하는 시민사회 기반은 복합적이다.
  
  손호철 : 성장동력 등이 핵심적 이슈이자 국민들의 관심사라는 데에 동의한다. 성장동력 확충 문제만 보자면 국민들이 한나라당이 이를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을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양극화, 부동산, 교육 문제에서 한나라당이 더 나았을까? 단순한 심판이라면 몰라도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항의투표라면 성격이 다르다. 더 많은 개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건 의미가 없다. 어떤 개혁이냐가 중요하다. 민주개혁과 신자유주의 개혁은 다른 문제다. 개혁과 진보를 나누지 않고 뭉뚱그려 봐선 안된다. 우리당과 민노당을 묶어 진보개혁으로, 그 반대에 한나라당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무서운 민심의 진로는?
  
  프레시안 : 두 분 말씀의 차이점이라면 김 교수는 한나라당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적응도가 더 높을 것 같아서 기존 세력에 대한 항의 투표적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 같고, 손 교수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민심이 한나라당을 선택한 것은 비이성적이라고 보는 듯하다.
  
  손호철 : 다음 대선에선 양극화 문제가 중요하다. 양극화를 어떤 세력이 해결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서 국민들이 혼란스러울 것 같다. 열린우리당은 복지와 증세를 말한다. 한나라당은 감세를 말한다. 그러면 국민들은 양극화에 초점을 두는 정당을 우리당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양극화 주범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다. 정책적 심판의 의미로 보면 한나라당을 찍어야겠지만 거꾸로 누가 양극화를 해결할 것이냐를 놓고보면 '부자당' 한나라당보다는 우리당이 좀 더 낫지 않겠냐고 생각할 것이다. 양면적이다.
  
  김호기 : 정치적 선택을 촉발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번 선거는 집권여당에 대한 회의와 심판의 성격이 담긴 항의투표다. 그 연장선상에서 중도개혁세력의 대안이라는 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성장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한나라당이 있다. 둘째는 성장-분배의 선순환을 말하는 현 집권 세력이다. 세 번째 대안은 분배중심으로 가자는 민노당이다. 항의투표라는 흐름으로 정치적 대안을 연결시켜보자면 국민들 상당수가 첫 번째 대안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를 보는 학자들의 시선과 국민들의 시선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레시안 : 좀 더 논의를 구체적으로 해보자. 노무현 정권 이후 추진된 민주개혁의 문제나 양극화 문제로 논의를 좁혀보자.
  
   손호철 : 우리 국민들이 박정희 전두환식 개발독재 세력이 추진하는 신자유주의는 경험해보지는 못했다. 당시는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국가주도형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중도개혁세력이 아니라 한나라당 같은 냉전적 보수세력의 신자유주의를 국민들이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노무현 정부 자체의 잘못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 있어서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할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아니라 신한국당과 한나라당이 만약 집권했다면 경제정책은 어땠을 것이고, 그 결과는 어땠을까. 먹고살기 힘든 책임은 지금 아마도 그들에게 갔을 것이다.
  
   김호기 : 최근 1년간 노무현 정부의 지지율이 30~40% 정도에 머물렀다. 이번 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아니라 정권심판 성격의 선거라서 이 부분이 중요하다. 양극화 책임이 노무현 정부에게 있다고 국민들 다수가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국가발전전략도 정부가 원하는 대로 결과를 낳았는지 회의적이고, 전국적인 집값 상승 등 상대적 박탈감을 안겼다. 국정수행에 관한 정책적 심판이다. 통치스타일에 대한 심판도 있다. 정서는 대단히 중요하다. 통치 스타일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있다.
  
   손호철 : 정서라는 것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노 대통령이 최근 해외 순방 중에 선생님들이 개혁에 가장 반대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래서 나는 노 대통령이 교육개혁을 하려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개혁을 의도한 말도 아니었을 뿐더러 교사들 염장만 지른 결과를 낳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면서 쓸데없는 말로 분란을 일으킨다. 절제되고 고민스러워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런 말 한마디 한마디가 표를 잃어버린 것이다.
  
  프레시안 : 한나라당으로의 표 쏠림의 원인이 양극화라는 점에는 일치하는 것 같다. 이런 흐름의 민심이 앞으로 어디로 흐를 것 같나.
  
   손호철 : 정치 구도는 크게 보면 단절설과 연속설이 있다. 연속설은 지금까지의 정치패턴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97년 이후 보궐선거,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이긴 적이 한번도 없다. 한나라당이 항상 이겼다. 그러나 대선은 졌다. 그런 면에서 내년 대선은 자유주의 중도세력이 승리할 것이라고 보는 게 연속설이다. 그 논거 중에 인구학적 변화가 있다. 인구 다수가 탈냉전 세력이 됐다는 뜻이다. 지난 대선 때 20~30대와 50~60대를 구분한 것은 대미관계와 대북관계였다. 경제문제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었다. 따라서 탈냉전 흐름에서 보자면 냉전적 흐름인 한나라당은 인구 다수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단절설이다. 이는 자유주의 정권 10년에 대한 심판을 뜻한다. 나는 내년 대선은 후자에 의미가 더 실려 있다고 본다. 여기서 관건은 자유주의 세력을 대변하는 차기 대권주자가 누가 됐건, 얼마나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차별화되면서 사회적 양극화의 해결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느냐다. 자유주의 세력은 증세논쟁, 복지프로그램 담론으로 승부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거꾸로 성장이 최고라는 신자유주의적 담론으로 대응할 것이다. 이 구도에서 서민들 다수는 자유주의 세력에게 매력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신자유주의의 책임을 가진 이들이 과연 할 수 있겠느냐는 교차된 감정을 느낄 것이다. 책임론과 대안론이 교차할 텐데 흐름은 아무래도 심판론이 더 강하지 않을까 보여진다.
  
  중요한 것은 정치세력의 전략적 선택에 있다. 정파적 이해의 밑에 깔려 있는 것은 지역구도다. 와해된 지역기반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다. DJP 연합이나 반영남 연합을 복원시킬것이냐 아니면 영남세력이 열린우리당 창당정신을 주장하며 당을 깨고 나갈 것이냐다. 물론 한나라당이 깨질 가능성과도 관련돼 있다. 결국 큰 흐름은 연속성보다는 단절설이 강한 것 같고 그 흐름에서 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책임론과 대안론이 교차하는 가운데 국민들의 정파적 선택이 이뤄질 것이다.
  
  자유주의 세력의 몰락은 퇴행적 양당구도 초래
  
  김호기 : 87년 이후 우리나라 정당정치가 제도화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당정치의 제도화 측면에서 보면 이번 선거는 비극이다. 이번 선거가 비극인 이유는 보수세력에 대한 표 쏠림이 너무 두드러져 정치의 본질인 체크와 발란스가 무너진 점에서 그렇다.
  
  우리 앞에 놓인 정당정치의 제도화는 두 가지의 길이 있다. 하나는 보수-진보로 가는 길이고, 보수-중도-진보의 삼각구도로 가는 길이 있다. 두가지 중 실제로 가게 될 길이 무엇인지는 예단이 어렵다. 정당정치의 제도화의 길이 우리가 뜻한 대로 가는 게 아니라 구조적 조건과 정치세력의 전략적 선택의 경로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치적 지형은 30%가 보수, 40~45%가 중도, 나머지 30% 내외가 진보다. 최근 흐름에서 주목할 것은 중도 그룹 지지층이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정치적 실망이 크다는 것이다. 이 세력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쪽으로 이동했다.
  
  자유주의 세력이 계속 자신의 지지기반을 유지해 간다면 보수-중도-진보의 3각 구도가 제도화 될 것이고, 이게 안 된다면 빠른 시간 안에 보수-진보 양대 구도로 갈 수도 있다. 내년 대선까지 최대 과제가 이것이다. 자유주의 세력이 남은 임기동안 개방과 복지를 결합시키는 비전을 만들어서 어떻게 국민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지, 그리고 그동안 성과를 낼 수 있을지다. 그렇지 못한다면 자유주의 중도세력 지지는 줄어든다.
  
  중도세력, 자유주의 세력은 개방과 사회복지를 내걸지만, 이 문제는 내적으로 엄청나게 긴장을 부여하는 과제라는 점에서 딜레마가 있다. 이런 곤혹스러움, 어려움이 무의식적으로 나타난 게 노 대통령의 '좌파 신자유주의다.
  
  지역주의 문제도 여전히 중요하다. 향후 우리 정국구도에서 중도세력의 경우 지역주의에 대한 현실론과 이상론이 첨예하게 맞설 것이다. 집권을 위해선 지역구도에 기반해야 한다는 현실론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어서야 한다는 이상론이 팽팽하게 맞설 것으로 예상된다. 중도 세력이 지역주의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따라서 이것이 보수 세력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손호철 :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까지 우리정치의 사각지대는 사당(私黨)정치였다. 노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것은 정당을 새로 만드는 게 아니었다는 뜻이다. 물론 사당정치를 깨기 위해 열린우리당을 만든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번 선거가 정당정치 제도화의 비극이라는 점에 동의하는 이유는 또다른 정당이 생길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이 풍비박산 나고 또 다른 정당이 생길 것이라는 게 비극이다. 정권만 바뀌면 당이 없어지는 잘못된 관행이 또 반복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졌다.
  
  김 교수가 말한 이념적 구도에서 보자면 퇴행적 양당구도가 우려된다. 냉전세력이 줄어들고 자유주의 세력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가는 게 바람직하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냉전적 보수세력의 이미지를 벗지 못했음에도 선거에서 승리했고, 자유주의 세력은 참패함으로써 가능해진 시나리오다. 이는 개혁적 자유주의 보수 대 진보의 대결로 나아가는 전형적인 양당구도가 아니라 자유주의 세력이 냉전세력으로 변해서 형성되는 퇴행적 양당구도로의 전환이다. 이미 노무현 대통령이 작년에 한나라당과 우리당은 차이가 없다면서 추진한 대연정에서부터 단초가 엿보였다. 만약 노 대통령이 역사의 순교자가 되겠다고 생각한다면 더욱 위험해진다. 파시즘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중산층이 무너지면 파시즘 지지 현상이 나타난다. 지금의 박정희 신드롬은 파시즘의 전야와 비슷하다. 그래서 걱정이다.
  
  "한나라당 내의 신보수에 주목해야" vs "구보수-신보수 차이 없어"
  
  프레시안 : 중도개혁세력에 초점을 두고 얘기가 길어졌다. 보수진영의 흐름이나 개혁 진영에 대한 전망도 필요할 듯하다.
  
   김호기 : 한나라당 내부의 두 세력, 즉 박정희식의 구보수와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신보수 세력 간의 긴장과 갈등이 커질 것이다. 국민들 시선에서 보면 한나라당은 옛날 한나라당 세력도 있지만 새로운 인적자원도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과거 수구정당, 냉전보수세력으로만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중도개혁세력이나 진보세력이 갖는 한나라당에 대한 인식이 너무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이번의 오세훈 후보를 밀었던 소장파 그룹을 박정희 그룹의 후예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구보수와 신보수 사이의 내적 긴장과 갈등이 내년 대선후보 선택과 맞물릴 것이고, 그 과정에서 한나라당도 내적 분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손호철 : 신보수와 구보수의 갈등은 박정희 노선과 신자유주의 노선의 갈등이 아니다. 박근혜 대표도 신자유주의를 수용했다. 경제정책에선 신보수와 구보수의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냉전의식에서는 일정한 긴장이 있다. 또한 신보수와 구보수의 차이는 부패 여부다. 냉전수구와 부패를 오세훈 후보나 원희룡 의원 등이 내부적으로 깨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지만 주류는 큰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이 너무 잘 나가서 분열의 가능성을 말하기도 한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경선에 승리한다면 박근혜 대표가 당에서 할 역할이 있으니까 별 문제 없다. 반면 박 대표가 승리한다면 이 시장은 설자리가 없다. 당이 깨질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는 자유주의 세력의 정치적 선택도 중요하다. 몇가지 선택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민주대연합론, 즉 DJP연합의 복원이다. 반영남 연합인데 이는 민주당과 국민중심당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당에 거부반응이 없는, 그러면서도 호남과 충청에서 인기가 있는 사람이 부상한다. 고건 전 총리다. 만약 우리당이 고 전 총리를 선택한다면 우리당을 만든 당초의 문제의식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된다. 죽지 않기 위해 자살해야 하는 역설이다.
  
  두 번째는 창당정신을 살리자는 영남 프로젝트인데, 이것은 낡은정치 대 새정치, 지역주의 대 탈지역주의 대결구도를 부른다. 그 신호탄은 노 대통령의 탈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당내 논쟁이 벌어지고 노사모와 친노세력이 탈당하면서 당장의 대선은 포기하더라도 장기적인 정치적 기반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어쨌든 지역구도의 연합의 흐름, 그리고 이와 다른 정파적 흐름이 복합적으로 한국정치를 구성해나갈 것이다.
  
  김호기 : 신보수와 관련해 얘기를 덧붙이고 싶다. 뉴라이트로 대표되는 신보수주의는 아직 자기정체성은 가지고 있지 않다. 고작해야 북한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 정도다. 지난 총선과 이번 지방선거를 묶어보면 가장 중요한 그룹은 '보수적 중도 그룹'이 누구를 선택하느냐다. 대부분 표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우리 사회를 냉전적 보수세력이 아닌 민주화세력이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변화보다는 안정을 선호하는 것이다. 2002년 탄핵은 이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당시 이들이 열린우리당을 지지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선 우리당이 이 그룹을 잡지 못해 한나라로 넘어갔다고 본다. 우리당이 잘못한 부분도 있지만 한나라당이 적어도 이미지로서는 신보수, 뉴라이트의 모습을 보여줘서 이 그룹에게 일정한 호감을 산 것이다. 향후 이 그룹을 어떻게 잡느냐가 보수세력과 중도세력의 핵심적인 포인트가 될 것이다.
  
  중도세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대연합론과 같은 인위적 정계개편으로는 사실상 전선이 짜여질 수 없고 국민지지도 얻기 어렵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져온 양극화, 그로부터 도출되는 성장동력, 부동산, 교육 등의 이슈에 대한 비전과 정책으로 짜여져야만 국민 지지가 안정화되고 지속성을 갖는다. 중도세력은 이 부분 깨달아야 한다.
  
  손호철 : 대안을 내놓고 투쟁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런데 그 측면에서 보면 우리당과 민주당이 뭐가 다른가. 다르다면 나뉘어서 싸워도 되는데, 정책적 수준에서는 두 당 모두 자유주의 세력이다.
  
  김호기 : 정계개편을 통한 전선이 아니라 비전과 정책으로 전선이 생긴다면 양대 흐름은 신자유주의 대 지속가능성의 대립일 것이라고 본다. 민노당에게 아쉬운 것은 반신자유주의는 명확하지만 지속가능의 모델은 여전히 모호하다는 것이다.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민노당의 핵심관건이다. 지속가능한 진보로서의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이제는 민노당도 성장을 얘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지기반 확대가 어렵지 않을까 싶다. 10~15% 사이가 현재의 정치적 전략으로 얻을 수 있는 최대치일 가능성이 크다.
  
  "민노당 탈노동자화 우려" vs "민노, 이제 성장을 말해야"
  
  손호철 : 민노당은 이번 선거에서 양면적 평가를 받는다. 이기면서도 지는 선거를 했다는 말이다. 지지율은 8~12%로 4년 전에 비해 전진했다. 그러나 울산 기초단체장 2개를 잃어버렸다. 노동자들의 핵심지역에서 후퇴한 선거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내용이 중요하다. 지지율이 올라 전진했지만 질이 나쁜 전진이 아닌가 싶다. 외양적으로 전국정당의 모습을 갖추고 중산층의 표를 얻었지만 핵심기반이 될 노동자 표는 잃어버려 빠르게 탈노동자 정당화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김 교수는 민노당이 성장을 말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민노당에 열린우리당과 어떤 차별성이 남을까 싶다. 2008년 제1야당, 2012년 집권은 황당개그다. 그러려면 우경화가 빨라질 수밖에 없다. 지지율 12%로 탈계급적 정당을 말할 때가 아니다.
  
  김호기 : 민노당은 전지구적으로 스웨덴 사민당이나 브라질 노동당 같은 유사정당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국민들 눈에 민노당은 분배를 말하는 당이지 이를 위한 성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안 보인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바람, 요구, 희망을 어느 정도 채워줘야 한다.
  
  손호철 : 지금 민노당은 국민 다수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 30%의 표를 어떻게 얻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불특정다수를 겨냥하면 실패한다. 스웨덴은 몰라도 브라질 노동당을 벤치마킹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프레시안 : 시간이 많이 됐다. 노무현 정부가 내년까지는 어쨌든 집권세력이다. 현정부에 대한 제언을 마무리로 부탁한다.
  
   손호철 : 걱정스러운 것 중 하나는 노 대통령이 지방선거 패배로 인해 더욱 전의에 불탈까봐 걱정이다. 전의와 소명의식, 여론은 중요치 않고 오로지 역사에 남겠다는 식의 잘못된 선각자 정신으로 갈까봐 무섭다. 소수자이지만 나는 이겼다는 생각을 할까봐 가장 걱정스럽다.
  
  지금까지 노무현 정부는 참여 없는 참여정부였다. 한미 FTA에 대한 국민적 토론을 조직화했어야 했다. 개방, 지속가능성, 경제발전이 무엇인지 여론과 토론을 조직해야 했다. 21세기형 한국적 발전모델 논의를 조직화했어야 했다. 그런데 현실은 박정희 개발독재가 노무현 개방독재로 바뀐 것밖에 없다. 이제부터라도 사회적 양극화와 한미FTA, 전략적 유연성, 21세기의 중국과 미국의 패권 전쟁의 첨단기지로 평택을 만들 것인지 토론을 조직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김호기 : 처음 얘기한 대로 이번 선거가 가진 의미는 짧게 3년, 길게는 8년간 집권한 중도개혁세력에 대한 평가였다. 이 세력의 과제는 개방과 복지를 효율적으로 결합시킬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조건에 비춰볼 때 반세계화는 어렵다. 개방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 개방이 무조건 옳아서가 아니라 어떤 개방이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개방이라고 해도 속도조절이 중요하고 창의적 개방이 중요하다.
  
  당장 양극화로 인해 약자들의 삶이 주변으로 내몰리고 있다. 복지의 강화와 결합시킬 구체적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양극화 해소로서의 복지문제는 노 대통령이 작년과 올해 연두회견에서 했다. 그러나 국민들에게는 와닿지 않는다. 사회통합적 세계화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중도개혁세력은 사회통합적 세계화에 대한 비전을 만들고, 이를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중도개혁세력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이를 원한다. 이것이 없으면 중도개혁세력이 내년 대선에서 받을 수 있는 성적표는 이번 지방선거보다 더 초라할 것이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말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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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 2006-06-01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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