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도 없고 수련회도 없는 휴일은 외려 잠이 일찍 깨요.
아무 일도 없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언제부터 저는 평화가 실감나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걸까요.
아무 일도 없는 이상한 토요일.
아니나 다를까. 텔레비전 화면에 뉴스속보가 뜨는군요.
“노무현 전 대통령 뇌출혈로 입원”
검찰조사가 시작되면 입원으로 시작해서 휠체어나 마스크가 구명보트처럼 등장하는 꼴을 늘 봐오긴 했습니다만 당신은 그런 쇼를 할 사람은 아닌지라 스트레스가 어지간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10여분 후 “노무현 전대통령 사망한 듯”이라는 자막이 뜨고 그제서야 뒹굴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나날이 일구 우일구하기 여념없는 시시껍절한 방송이 중단되고 속보가 이어지더군요.
경호원, 사저뒤편, 부엉이 바위, 세영병원, 양산부산대병원, 심폐소생술, 열상 따위의 일상과 밀접하지 않은 단어들이 바퀴벌레처럼 툭툭 튀어나와 소름을 돋게 했습니다.
정신적 공황상태까진 아니었지만 불면 탓으로 약간 멍한 채로 이틀을 보냈고 월요일 아침 부산역까지 가긴 했으나 조문은 못하고 역 광장을 몇 바퀴 빙빙 돌다 왔습니다.
선뜻 신발을 벗고 절을 하는 문상객들의 거리낌없는 몸놀림이 참 부럽다고 생각하며. 잠이 안오대요.
다음 날 다시 부산역엘 갔습니다.
역 광장을 또 빙빙 돌다가 그냥 돌아가면 다시 닥칠 불면의 밤이 성가셔 문상객들의 뒤에 얼른 붙어 섰습니다.
방명록에 몇 줄 쓰기도 했습니다. 잠을 자야하니까.
“오랜 세월 동지였고 짧은 시간 적이었습니다.
90년 변호사 접견 오셨을 때처럼 봉하마을 어딘가에 앉아 각자의 위치가 만들어 낸
그동안의 원망과 미움들을 두런두런 털어낼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곧..
고맙고 죄송합니다.“
 
90년. 제가 첫 징역을 살 때였습니다.
접견을 오셨었지요.
보통 변호사 접견은 재판 전날 와서(사실 재판 전날도 안 오는 변호사도 많습디다만)
재판절차를 일러주고 이빨도 맞추고 하는데 재판날짜와는 아무 상관없는 시기였던지라
많이 의아했던 만큼 20년 전인데도 이리 생생하네요.
접견실에 먼저 오셔서 기다리시더군요.
보통은 재소자들이 한 시간 이상씩 주리를 틀면서 기다리는데.
요샌 교도소 반찬이 뭐가 나오냔 얘기, 여사에선 뭐하고 노냐는 얘기, 변호사가 해주던 징역살이 얘기, 남사에선 뭐하고 논다는 얘기,
법무부 시계도 가니까 재밌는 놀이를 많이 개발해서 징역을 잘 깨라는 얘기.
변호사가 접견을 와선 재판이야긴 한마디도 없이 노닥거리기만 하다 그 더디기로 유명한 법무부시계가 세상에 한 시간이나 흘렀습니다.

“가야겠네” 일어서시길래 하도 황당해서 물었습니다.
“왜 오셨어요?”
“진숙씨 징역살이 힘들까봐 놀아 줄라고 왔지요”

그리고 당신은 정치권으로 갔고,
정치권으로 갔다는 건 권력을 탐하는 변절로 규정하는데 한치의 주저함도 없었으니
변호사비용을 거침없이 떼먹고도 사기꾼의 돈을 떼먹은 것 마냥 일말의 부채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복직하면 갚으마. 유전 발견하면 갚으마. 보물선 찾는대로 갚으마. 막연한 약속이 선임비였던 시절이었으니.
그게 인권변호사의 당연한 책무였으니.
이제와 생각해보니 상실감이었어요.

그 시절 당신은 우리들의 유일한 빽이었는데.
공돌이 공순이 편을 들어주는 가장 직책 높은 사람이었는데.
당신이 있어 우린 수갑을 차고도 당당할 수 있었는데.
그때 직감적으로 생각했어요.
이제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겠구나.
재판장 앞에서 수갑을 찬 채 잔뜩 주눅 든 우리를 향해, “피고인은 무죕니다.”
외쳐 줄 사람이 이젠 없겠구나.
이제 재판에서 지더라도 찾아가 울 데도 없겠구나.
노동자들이 그들의 부엉이바위인 크레인 위에 올라갈 때 따라 올라가지도 않겠구나.

그리고 당신을 잊었습니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없어서 혼자 진행했던 1심 재판에서 당연히 지고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왜 항소를 안했어요?” 라는
질문에 “항소가 뭔데요?” 라고 되묻던 저에게 “노동자가 항소를 알면 그건 노동자가 아니지.” 하던 말도 잊었고,
노동자도 이론이 있어야 세상을 바꾼다며 함께 했던 소모임도 잊었고,
군사정권 시절 해고된 노동자의 그 막막한 눈빛을 들여다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유일하게 내 얘기를 그대로 들어주던 무료법률 상담소도 잊었고,
어느 날은 밤에 오라 길래 밤에 찾아갔더니 그날이 전태일이라는 노동자의 기일이라고
변호사 사무실 구석에 조촐한 제상을 차려놓고 아무 말도 없이 유령들처럼 절을 하던
그 뭉클하던 밤도 잊었고,
함께 같은 거리를 달리던 6월 항쟁도 잊었고,
최루탄 가루가 싸락눈처럼 내린 범냇골 국민운동본부 옥상에서 막걸리를 나누던 걸판지던 뒤풀이도 잊었습니다.

그리고 침례병원이 초량에 있을 때였습니다.

노동조합 조합원 교육에 초청을 받았는데 앞 시간 강사가 당신이었더군요.
당신은 내려오고 나는 올라가던 계단에서 마주쳤습니다.
난 참 어색하기가 짝이 없습디다.
그냥 모른 척 할라고 했습니다만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지요?”
굳이 손까지 내미시더군요.
그때 대답을 했거나 웃기라도 좀 했으면 지금 잠을 이루기가 좀 쉬었을까요.
 
그리고 당신이 출마한 대선에서 전 4번을 찍었습니다.
단 한 번도 단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외포리를 한번도 벗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평생 1번을 벗어난 적이 없는
큰언니가 전화를 했더군요.
“이 노무헤니가 그 노무헤니지? 니 벤호사. 그 사람 찍었다. 너 인쟈 깜빵 안가지? 복직두 되갓지?” 얼른 대답할 말이 떠오르질 않더군요.

제가 왜 “내 변호사”를 놔두고 4번을 찍었는지 우리 큰언닌 죽을 때까지 이해 못할 거예요.
2번과 4번의 극심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도 이리 막막한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그 미세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은 저의 재주로는 난망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뻐서 우는 사람도 있습디다만 이회차이가 당선된 거보다 노무혀이가 당선된 게 노동자들에게는 더 힘들 거라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고립은 깊어졌고 고착화되었습니다.
김영삼이가 당선되었을 때 운동권이 1/3이 떨어져 나갔고, DJ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른바 재야가 사라졌고,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서는 그야말로 오롯이 노동자들만 남았습니다.
한 사업장에서 수천 명이 한꺼번에 해고될 때 그 무지막지한 자본을 향해 호통쳐주는 어른 하나 없습디다.
노동자들이 핏발 선 눈으로 거리로 나설 때 역성들어주기는커녕 죄 우리만 나무랍디다.
그거 아세요. 당신은 조중동이랑 열심히 싸우셨습니다만 우리에겐 조중동이랑 한편처럼 보인 거.

 “야~ 기분좋다!” 시며 봉하로 가셨을 때 오리농법보다 더 중요한 일은 농민들의 삶의 실상을 들여다보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왜 목숨 걸고 한미 FTA를 반대했는지.
그리고 전용철, 홍덕표 그들의 죽음에 당신이 늦게나마 사과를 하면 참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랬다면 제가 봉하마을을 갔을까요. 아마 갔겠지요.
그리고.. 김 주익 얘기도 했을까요. 아마 그 얘긴 못했을 거예요.
말로 꺼내긴 크나큰 상처였으니까.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 말씀.
유난히 노동자들에겐 가혹하셨습니다.
2003년도 한진중공업에서 저는 한꺼번에 두 명의 지기이자 동지를 잃었습니다.
김 주익은 600여명 조합원의 명퇴에 맞서 2년을 싸웠고 노사가 합의를 했고
그 합의를 회사가 번복을 했고 그래서 크레인에 올라갔고 그 크레인 위에 129일을 매달려 있다가
아시다시피 목을 맸습니다.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런 시대는 정말 지났을까요.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에게 종종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조각인 것을..

저는 당신을 부정한 게 아니라 당신을 넘어서고 싶었습니다.
착한 사람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지배가 없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시대에 그 꿈은 가장 허황되고 지리멸렬해졌습니다.
때론 우리가 품은 꿈이 너무 초라했고 궁색했습니다.
당신의 시대에 가장 많은 노동자가 짤렸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구속됐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됐고 그리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귀족으로 격상됐고 그들은 언론과 자본은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조차 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이기주의를 꾸짖으십디다만 동료가 수백 명씩 짤리는 걸 목격한 노동자가 비정규직에게 내밀 손이 남아 있겠습니까.
저 살아남는데 써야지.

징역을 살 때 만난 사형수가 있었어요. 이 여잔 영치금이 한 푼도 없는 개털이었는데 새로 신입이 들어오면 아주 불쌍한 표정으로 샴푸나 속옷을 사달라는 거예요.
출소한 사람들이 쓰다만 물건들도 다 그 여자 차지였죠.
언제 죽을지 모를 사람이 사소한 물건에 집착하는 게 도덕의 눈으로 보자면 참 추접스럽습디다.
그 여자 집행되고 보니 샴푸나 속옷 나부랭이가 구석구석에서 쏟아져 나옵디다.
백분의 일도 못쓰고 죽었죠. 생에 대한 나름의 집착이었던 거죠.
샴푸 생길 때마다 빌었겠죠. 이거 다 쓰고 죽자.
정규직 노동자들은 삶의 벼랑에서 그런 심정으로 잔업하고 철야를 합니다.
얼마가 남았을지 모를 정규직의 삶을 그딴 식으로 저축하면서.
그 무렵쯤이었을 거예요.
변호사비용을 이제 그만 갚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당신의 시혜나 은전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적이 될 거라면 호적수이고 싶었습니다.
실력도 한참 모자라고 열정도 전만 못하고 진정성마저 잃어 그리 되진 못했습니다.
그게 참 부끄러워요.
똑똑한 사람들은 다 떠나 우리를 속속들이 아는 가장 무서운 적이 되었고 남은 자들은 동네북이 되어 초딩들마저 두들겨대고 천덕꾸러기가 되어 크레인엘 올라가고 굴뚝엘 기어 올라가도 언놈 하나 눈길주는 놈이 없어졌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고등학교 밖에 못나온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입 달린 사람은 죄다 침이 마릅디다만 고등학교도 못나온 저 같은 노동자들은 당신의 시대에 대부분 절감해야 할 원가가 되어 구조조정 당했고 효율화를 위해 비정규직이 됐습니다.
차라리 군사독재 시절엔 대드는 노동자만 짤렸으나 당신의 시대엔 남녀노소가 짤렸습니다.
서민의 벗이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나 부자와 빈자의 간극은 훨씬 더 까마득해졌습니다.
당신이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24년의 세월 동안 전 아직 복직도 못한 해고노동자로 찌질한 50대가 됐습니다.
생각해보니 짧은 시간 동지였고 오랜 세월 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뜨겁고 바른.
만고 씰데없는 소립디다만 그래서 대통령 같은 거 하지 말았으면 참 좋았겠단 생각 지금도 해요.

불안하고 불길한 기운으로 떠돌던 예감이 당신의 죽음으로 확연해집니다.
한 시대가 갔다는..

이제 상고출신이 변호사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양양한 가도가 보이고 그 길을 편하게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의 있습니다!”
외칠 때, 그 외침에 뒤돌아보는 사람도 이제 더는 없을지도 몰라요.

만 명이 울어주면 천국에 간다했던가요.
천국에 가셨을 거라 믿어요. 진심으로.
김주익 곽재규 배달호 김동윤 최복남 이용석 이해남 이현중 정해진 하중근 박수일 허세욱..
당신의 시대에, 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서러움으로 억울함으로 목 놓아 울었던
죽음들입니다.

당신처럼 벼랑 끝에 내몰렸던..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죽음을 당신이 이해해주길 바란 적이 있었어요.
하도 야속해서. 노동자의 삶을 안다는 사람이 어찌 저럴 수가 있나 너무 미워서.
아무리 야속하고 미워도 그런 바람은 품지 말걸 그랬다 싶어요.
애증도 부질없어 졌습니다.

언젠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말들이 기형도의 시처럼
떠돌다 때때로 부딪히겠지요.
이제 변호사비용은 영원히 안 갚아도 되게 생겼습니다.
 
다음 생에 오실 땐, 너무 똑똑하게 오지 마시구려.
사법시험 같은 것도 합격하지 마시구요. 그냥 태생대로 기름밥 먹는 노동자로 만났으면 해요.
저는 당신에게 변절이라 손가락질 할 일 없이, 당신은 절더러 경직되었다거니 세상을
모른다거니 한심해 할 일 없이. 떠날 일도 보낼 일도 없이 그냥 내내 동지로.
그래서 언젠가 하셨던 말씀대로 자본가가 지는 해라면 노동자는 뜨는 해다.
그 멋진 말씀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순수한 열정, 남다른 정의감 그대로 만날 수 있길.
다시는 미워할 일도 상처 받을 일도 이렇게 미어질 일도 없이..

 

http://bsnodong.tistory.com/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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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06-03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 앞이 어질하네요.

무해한모리군 2009-06-03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지고 갈게요
글 잘쓰는 사람 참 많지만 김진숙 동지의 글은 늘 마음을 움직입니다.

비연 2009-06-03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뭉클한 글입니다..저도 가져갈께요...

라주미힌 2009-06-03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림이 있죠.... 아주 오래 가는..
한자 한자 또박또박 여러 번 읽게되네용

나무처럼 2009-06-04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글... 모임하는 카페로 퍼가겠습니다. 감사

토토랑 2009-06-04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뭐라할수가없네요..
저두 결국은 누가 죽어도 크레인에 올라가고 목이말라도
그냥 그 기사 보고 X 표 클릭해서 창을 닫고 마는 한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림올빼미 2009-06-04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 님 처음 뵙겠습니다. 글이 가슴을 울려서 두고두고 읽고 싶어서 퍼갑니다. 감사드립니다.

라주미힌 2009-06-04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뵙겠습니다... ^^

머큐리 2009-06-05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글 모임하는 카페로 퍼가야겠어요...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504084524&section=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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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춘 2009-05-06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사진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드뎌 진보신당이... 흙

라주미힌 2009-05-06 01:51   좋아요 0 | URL
저도... 흙... ㅎㅎ
 

어제 강의 끝나고 밤늦게 뒷풀이를 하느라 뉴스를 챙겨듣지 못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자 한겨레 신문을 보니, 1면 탑으로 권양숙씨가 박연차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기사가 실렸네요. 비록 노무현 정권의 지지자는 아니지만, 솔직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참여정부가 아무리 문제가 있어도, 이 정도로 한심한 수준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깨끗하다는 것은 미디어로 만들어낸 이미지일 뿐, 노무현 전대통령은 당시 대선 과정에서도 선거자금으로 검은 돈을 받았지요. 그때 "이회창 후보가 받은 돈의 10분의 1"이라는 논리로 대충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참여정부의 실세들이 여기저기서 검은 돈을 받아왔다는 것은 이미 드러난 사실. 거기에 형 노건평에 이어, 부인 권양숙(어쩌면 전대통령 본인)까지 부적절한 돈거래를 했음이 드러났네요. 이 정도면 총체적 파국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노무현은 민주당이 보여줄 수 있는 개혁성의 극한이었습니다. 그는 아직까지도 전세계에서 인터넷 덕에 당선된 유일한 대통령으로 남아 있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앞으로 오랫동안  2002년 당시의 노무현만큼이나 참신하고 개혁적인 후보는 다시 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이었고, 거의 종교적 열정에 가까울 정도로 그를 신봉하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어리석을 정도로 무구했던 그 순수한 신뢰를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 배신해도 되는 것인지.... 안타깝습니다.

민주당은 지금 정동영 문제를 놓고 시끄럽습니다. 이른바 '친노계열'과 '구민주당' 계열의 권력투쟁이겠지요. '친노'든, '구민주'든,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는 못합니다. 친노는 이미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고, 구민주는 낡은 지역주의 정치에 의지해 의원직이나 유지하는 신세이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구태를 벗고 거듭나겠다는 의지조차 안 보입니다. 이러니 아무리 '반MB'를 걸어도 국민들이 거기에 선뜻 호응하기가 어려운 것이지요. 민주당에게는 뭔가 근본적인 결심이 필요합니다.
 
이게 진보진영이 그냥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볼 사안은 아닙니다. 개혁과 진보는 서로 투닥거리고 싸워도 결국 지지율은 서로 연동되어 움직여왔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저 구태가 민주당만의 것은 아니었지요. 과거의 민주노동당 역시 낡은 패러다임에 묶여,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신당이 얼어죽을 각오를 하고 민주노동당을 뛰쳐나온 것은 잘 한 일이었습니다. 목숨을 걸지 않는 개혁은 가짜 개혁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개혁은 남을 바꾸기 전에 자신부터 바꾸는 데서 시작하는 겁니다. 

논객의 입장에서 풍경을 그리자면, 지금 진보개혁 세력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논객들이 넘쳐 났었지요. 그 많던 논객들은 다 어디에 갔을까요? 민주당에 목을 맸던 논객들은 열린우리당이 창당되면서 세인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참여정부 시절의 친노 논객들은 권력의 붕괴와 더불어 모래처럼 흩어졌습니다. 민주노동당 에는 논객이 없고, 남은 것은 진보신당 계열의 논객들 뿐. 우리가 무슨 일당백의 관우나 장비도 아니고, 정권에 장악되어가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솔직히 힘에 부칩니다.
 
바로 그것이 또한 진보신당이 처한 처지이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민주당이나 열린우리당의 개혁바람에 힘입어 진보가 강화되는 효과를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것 없이 홀로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과거에는 이른바 개혁세력과 가끔 콤비 플레이도 할 수 있었지만, 이제 그런 것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MB 정권 아래서 고통받는 국민은 희망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보신당이 나름대로 분투를 하고는 있으나, 아직 국민들에게 희망으로 다가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충 언론 플레이나 하고, 이슈나 만들어내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일시적 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인 대안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왕도는 없습니다. 바닥에서 기는 수 밖에요. 그렇기 때문에 당원 동지들의 '열정'이 필요합니다. 과거에 개혁세력이 했던 몫까지 이제는 진보신당의 당원들이 해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두 세 배의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화력과 병력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사수해야 할 영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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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9-04-08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기억나는군.. 이회창의 1/10 .. 흐흐흐
1/10이 더 된다는 얘기도 있더랬지..

바이런 2009-04-08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 노무현을 희망으로 삼던 사람 중 1人입니다. FTA이후로 마음을 접었지만, 어제는 너무 화가나서 눈물이 다 나더군요ㅜㅜ 배신감이 너무 크고, 한때는 밤잠설쳐가며 지지했던 사람에 대한 야속함때문에 억울해서 울었습니다.=_=;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게 정치라던데, 어째서 우리나라 정치인은 눈물만나게 하는건지 ㅜㅜ

라주미힌 2009-04-08 15:24   좋아요 0 | URL
저도 노무현 찍었어요...ㅡ..ㅡ;
취임하고나서 얼마 안되가지고 접었죠..
 

나는 그런 사람이 좋다. 오만할 법한 위치인데 겸손과 성찰을 잃지 않는 사람, 누가 봐도 초라한 처지인데 아랑곳없이 기개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정직한 사람들이다. 내가 유시민 씨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정반대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힘을 가질 때는 표독스러운 얼굴로 착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일삼다가, 처지가 달라지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반성과 성찰을 말한다. 게다가 그런 상반된 모습은 늘 반복된다. 그가 또 책을 냈다. 그의 전작 대한민국개조론이 그나마 세리(SERI) 보고서 다이제스트는 되었다면, 이번 책은 좀더 한국 정치인의 보편적 수준에 근접했다. 매우 쓸모있는 것처럼 포장된 하나마나한 이야기들. 그러나 책보다 더 한심스러운 건 그를 그렇게 겪고도 여전히 그의 책을 들고다니는 적지 않은 ‘배운 사람들’이다. 그들을 보면 도리 없이 愚民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우민은 '못 배운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도 어리석은 사람'이다.

(관련된 내용을 담은 후배의 편지.)
“저는 그 성찰적이고 부드러운 모습이 '반복되는' 정치적 제스처이리라고는 생각 못 했었는데요. 그런데 그 아주 얇은 포장 아래로 과도한 피해의식이나 억울함 같은 것이 공격적으로 포진하고 있더라고요. 그분만이 아니라, 그분 주변에 있는 분들이 모두 비슷해요. 그 정체가 뭘까, 좀 궁금했습니다. 중산층이 정치세력화해야 한다는 게 공허한 명제라는 건 상식선에서 소통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주장을 너무나 과도한 열정을 가지고 마치 순교자처럼 외치는 모습이 좀 이상하잖아요. 이것도 정치적인 제스처일까요? 아니면 뭔가 찔린다는 반증인가요?” 

 

 
http://www.gyuhang.net/?page=1 

유모씨... 책 잘 팔리는거 보면 완전 신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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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문광부에서 국립오페라합창단을 해체시킬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며칠 전의 보도를 보니, 유인촌 장관의 의지는 확고한 듯하다. 지난 7년 동안 국립오페라합창단은 한국 오페라 문화의 발전에 적잖이 기여해 왔다. 그것이 또한 음악계나 문화계의 일반적 인식이라고 알고 있다. 왜 그런 단체를 해산시켜야 할까? 의문은 여기서 비롯된다. 비용 문제는 아닌 듯하다. 단원들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 70만원의 봉급에 약간의 연주수당만 받으며 전국을 순회하며 연주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


문광부에서 내세우는 논리는 오늘자 동아일보에 난 장관의 인터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립오페라단에는 합창단 규정이 없다. 지난 단장이 인건비 책정 없이 단원을 뽑아 사업비에서 인건비를 써왔다. 이건 정상적이 아니다.” 이것은 국립오페라합창단원들도 부정하지 않을 게다. 문제는 이 비정상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것. 상식적인 해결책은 이제라도 규정을 마련하여 그들의 법적 지위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실제로 합창단 측에서는 몇 년 동안 문광부를 향해 그런 요구를 줄기차게 해왔던 것으로 안다.


그저 “합창단 규정이 없다.”는 얘기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사항은 ‘과연 오페라 합창단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만약에 오페라합창단이 필요하다면, 없는 규정을 이제라도 마련해서 그들의 법적 지위를 보장해줘야 할 일이다. (반대로 오페라합창단이 정말 필요가 없다면, 그들의 말대로 당장 해산을 시켜야 할 일이다.) 규정은 어디까지나 오페라단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오페라단이 규정을 위해 존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가 정말로 물어야 물음은 이것이다. ‘과연 오페라합창단은 필요한가?’


국립오페라합창단은 필요한가?


문광부의 입장은 당연히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 중의 하나는 오페라에 대한 장관의 오해다. 보도에 따르면, 유인촌 장관이 “외국에는 오페라단에 정규직 합창단이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자 국내에 공연차 머물고 있던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베르디 극장의 성악가와 스탭들은 “이탈리아에만 13개의 오페라 합창단이 존재한다.”며, 유인촌 장관의 말을 현장에서 반박했다. 또 유인촌 장관의 말을 전해들은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의 합창단원들은 “그럼 우리는 누구냐?”며 어이없어 하기도 했다.


‘오페라 합창단’이 필요 없다는 생각은 실은 MB 정권의 신념인 구조조정의 발상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미 국립오페라합창단 외에 국립합창단이 있으므로, 그 인력을 활용하면 된다는 것. 하지만 이 논리에는 커다란 문제가 있다. 국립합창단은 콘서트를 위한 합창단으로 자기의 연주일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자기 일정을 소화하면서 1년에 50회가 넘는 오페라단의 일정까지 모두 소화해낼 수 없다. 이미 음악계에서 지적했듯이, 그런 기대는 “비현실적”이다. 전임 정은숙 단장이 따로 ‘국립오페라합창단’을 만들어야 했던 것도 실은 그 때문이었다.


신임 이소영 단장은 이렇게 말한다. "현재 합창단은 2002년 정은숙 당시 단장이 공연 때마다 합창단을 뽑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만든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그는 오페라합창단의 존재를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본다. 하지만 이소영 단장처럼 공연할 때마다 그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을 경우, 공연의 질적 저하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일례로, 이 단장은 지난 <피가로의 결혼> 때 외부 합창단 섭외가 어렵자 동네의 대학 합창단을 데려다 썼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역예술문화의 창달’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는데, 이 정도면 거의 개그 콘서트 수준의 변명이라 할 수 있다.


단지 일정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페라합창단이 존재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오페라 합창단은 국립합창단과 성격을 달리하는 부분이 있다. 순수합창과 오페라 합창은 서로 발성이 다르다고 한다. 또 오페라의 경우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액팅’이라는 요소가 들어간다. 그래서 외국의 경우 극장에 오페라 전문 합창단이 소속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이것만으로도 전문적인 오페라합창단의 존재 이유는 충분한 셈. 알만 한 사람이 왜 그러는지, 도대체 이소영 단장이라는 분을 이해를 못하겠다. 명색이 단장이라면, 문광부에서 합창단을 해체시키려 해도 자신이 앞장서 반대하는 게 정상이 아닌가?


국립오페라합창단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편법으로 운영되어 왔다면, 그 책임은 합창단원들이 아니라, 합창단을 그렇게 운용해 온 국립오페라단과, 그것을 알고도 해마다 도장을 찍어준 문화관광부에 물어야 할 것이다. 그 동안 국립오페라단은 7년 동안 합창단원들에게 상임화를 시켜주겠다고 약속해 왔던 것으로 안다. 그리고 아주 재미있게도 국립오페라단의 홈페이지에는 “규정이 없다.”는 그 오페라합창단이 버젓이 소개되어 있다. 그들은 누구란 말인가? 합창단은 오페라단을 홍보할 때만 잠깐 존재하는 오페라의 유령인 모양이다.


국립오페라합창단은 무슨 일을 해 왔는가?


오페라합창단은 그 동안 국립오페라단을 위해 굵직굵직한 공연들을 해 온 것으로 안다. 그 중에 몇 가지만 들어 보자. 2004년 한·불·일 합동 공연 "Carmen" - 정명훈 지휘, 2006년 창작오페라 임준희 작곡 "천생연분" 독일 초연, 2007년 창작오페라 임준희 작곡 "천생연분" 일본 초청공연, 2007년 대구오페라축제 "라 트라비아타" 대상 수상, 2008년 창작오페라 임준희 작곡 "천생연분" 북경올림픽 초청공연, 2008년 오페라 페스티벌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작품상 수상 등등.


이러한 성과를 내는 데에 국립오페라합창단이 일정하게 공헌을 했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런 굵직한 공연들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 밖에도 국립오페라합창단은 70만원의 박봉과 바쁜 일정에 쫒기며 수많은 지방 공연을 통해 지역의 문화적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해 왔다. 이런 활약을 무시할 수 없기에, 합창단의 해산을 주장하는 측에서도 국립오페라합창단이 그 동안 해온 일에 대해서 차마 시비를 걸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이런 호평이나 수상의 경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립오페라합창단이 지난 7년간의 활동을 통해서 ‘전문 오페라합창단’으로서 나름대로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미 한국 오페라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그것은 국립오페라단원들이 박봉에 시달려가며 그저 ‘국립’이라는 명예 하나를 위해 어렵게 이룩한 것이다. 그 성과를 원점으로 되돌려, 공연할 때마다 부랴부랴 합창단을 섭외해서 대충 때워나가는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결코 합리적인 선택이 못 된다.


전국 합창단 지휘자들, 전국의 음대 교수들, 그리고 전국의 여러 음악 단체에서 오페라 전문합창단의 해체에 반대하는 탄원을 올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게다. 성원은 외국에서도 오고 있다 "예술가들을 그런 식으로 취급하는 것은 정말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국립오페라 노조는 한국 합창단의 투쟁에 전적으로 연대하며, 가능한 한 모든 방법으로 최대한 도울 것입니다. 한국 국립오페라합창단의 행운을 기원하며, 당신들의 행동을 지지합니다.”(프랑수아 소바조 파리 국립오페라단 노조위원장)


문화예술과 시장의 논리


장관이 말한 “새 정부의 문화예술정책의 방향”이란 결국 MB 정권의 시장주의 이념을 문화예술에 확장하는 것이다. 이른바 중복되는 기능을 통합한다는 구조조정의 논리인데, 사실 국립합창단, 국립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은 그 구조상 협력할 수밖에 없고, 그러자면 당연히 일부 기능의 중복이 있어야 한다. 예산이 없다는 논리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국립오페라단의 예산은 외려 전년보다 늘었다.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는 논리도 있지만, 국립오페라합창단의 경우 비용을 더 이상 절감할 수 없다. 월급 70만원 줘가며 연 50 회 이상의 공연을 시킨다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한계상황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국립오페라합창단의 존재는 비용-수익의 면에서 결코 적자라고 볼 수는 없다. 듣자 하니 국립오페라단찹창단에서 인건비로 나가는 돈이 1년에 단 3억 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과연 1년에 3억, 공연 수당 다 합해서 1년에 5억이 없단 말인가? 그렇게 살림이 궁한 문광부에서 지난 여름에 무슨 일을 했던가? 베이징올림픽에 연예인 응원단을 보낸답시고, 단 며칠 만에 2억 원의 예산을 썼다. 어느 연예인의 즉흥적 제안에 계획에 없던 돈을 2억이나 써도 되는 부처에서 1년 3억의 예산을 쓸 여력이 없다니, 이거야말로 초현실적 상황이다.


문제의 올바른 해결은 무엇일까? 국립오페라합창단이 지금까지 쌓아온 성과를 인정하고 그것을 보존하면서, 합창단의 법적 지위를 인정해주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고, 더 철저한 오디션을 통해 검증된 인재들을 상근직으로 전환해가면서 장기적으로 ‘국립’이라는 명색에 걸맞는 세계적인 전문 오페라합창단으로 발전시키는 게 제대로 된 방식이 아닐까? 그러려면 당연히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 국민들이 세금을 내는 이유 중의 하나는 시장논리로 환원할 수 없는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는 것. 유인촌 장관 자신도 취임 초 문화예술에서는 수익성을 전면에 내세워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꼭 오페라합창단만이 아니라, 예술인들에 대한 형편없는 대우는 우리 문화예술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문화예술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보여주지 않는 한, 이 나라의 문화예술의 발전은 있을 수 없다. 듣자 하니 현 정권은 공약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했다. 그것은 아마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창출되어야 할 제대로 된 일자리 중의 하나가 바로 문화예술의 일자리다. 현 정권은 하다 못해 인턴이라도 늘리고 있지 않은가? 국립오페라합창단은 대우 면에서 차라리 인턴보다 못한 자리다. 그런데 굳이 그것을 없애려고 하겠는가?


경제논리와 정치논리


문광부에서는 왜 국립오페라합창단을 해체시키려 하는가? 내가 보기에 거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경제논리로, MB 정권의 경제정책의 중요한 축인 시장주의 이념을 문화계에 무차별적으로 외삽하겠다는 얘기다. 장관이 말하는 “새로운 정부의 정책방향”이란, 한 마디로 MB 정권의 일반적 정책인 구조조정을 문화라는 특수한 영역에도 관철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식으로 경제와 문화의 차이를 무시하고 정권을 향해 자신들이 정부의 시책에 열심히 발맞추고 있음을 보여주려다 보니, 갑자기 문화의 영역에서도 이렇게 명박스러운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둘째는 정치논리다. 현 집권층에서 볼 때 정은숙 전임단장은 노무현 정권의 인사다. 유인촌 호(號) 문광부의 철학에 따르면, 임기와 관계없이 퇴임해야 하는 사람이다. 실제로 그는 유인촌 장관의 좌파척결 발언 이후에 단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사퇴의 명분은 오페라극장 화재사건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었지만, 그가 통일운동의 대부인 문익환 목사의 며느리, 노사모를 이끌던 문성근씨의 형수라는 게 진짜 이유라는 게 문화계 안팎의 일반적 인식이다. 한 마디로, 국립오페라합창단을 해체하여 정은숙 전임단장의 그림자마저 지워버리겠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불필요한 연좌제다.


신임단장의 경우 국립오페라단에 근무하던 당시, 전임 정은숙 단장과 캐스팅을 놓고 갈등을 빚고 뛰어나온 적이 있다고 한다. 그건 사소한 에피소드겠지만, 아무튼 오페라단의 단장이라면 자기만의 합창단을 갖는 데에 이해관계를 가져야 한다. 즉 그에게 정말 단장의 자격이 있다면, 멀쩡히 존재하는 합창단을 없애겠다는 문광부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관료들을 설득 해야 한다. 그런 일을 해야 할 단장이 외려 합창단을 없애는 일에 앞장서서 나서는 것은 분명 정상적 상황이 아니다. 이렇게 오페라의 눈이 문화가 아니라 정치를 향하는 것은 매우 슬픈 현실이다.


정권 바뀔 때마다 문화의 철학과 이념도 그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은 정말 후진적인 발상이다. 명분은 뭐라고 걸든, 이 현상의 본질은 결국 하나, 즉 정권에 끈을 댄 인사들의 기득권 싸움에 불과하다. 이 후진성을 한국적 관행으로 너그럽게 인정해 준다 할지라도, 그저 자리에 자기들 말 잘 듣는 사람으로 교체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정권 바뀌었다고 플랫폼까지 바뀌는 것은 문제다. 필요해서 만든 것이라면, 언젠가 필요에 따라 다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권 바뀔 때마다 모든 성과를 무로 돌리고 원점에서 출발해야 한다면, 비합리적인 시간과 비용의 낭비만 남을 뿐이다.


국립오페라합창단원들은 권력의 상층부에서 이루어지는 밥그릇 싸움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들은 그저 70만원의 봉급을 받으며 전국 순회 연주를 하면서 한국 오페라 문화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에 기여했을 뿐이다. 그 공로로 협연자들로부터 극찬을 받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상도 받았다. 안타까운 것은 정치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지내온 이들이 권력싸움의 희생양이 되는 것. 수많은 사람이 7년에 걸쳐 어렵게 쌓아온 성과를, 신임단장이 말 한 마디로 간단히 날려버릴 수 있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문화와 예술은 권력의 자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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