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훈은, 참 복잡미묘한 '텍스트'이다. 그를 한 마디로 규정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데, '복합성'이라는 표현을 쓰면 약간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한다.
그런 김훈이 7월 5일, 촛불집회 현장에서 누군가의 사진에 잡혔다. 시간, 공간, 그리고 피사체, 이 세 가지가 만들어내는 '구체성', 그것이 바로 예술이다.
김은남, 이상훈 부부가 있다. 시사저널 시절에 단식 농성하던 기자, 그 기자가 바로 김은남이다. 시사IN에 내가 글을 쓴 것은, 김은남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훈은, 한동안 환경운동연합의 총지휘를 맡았던, 바로 그 이상훈이다.
내가 결혼하기 전, 김은남 앞에서 나와 이상훈이 거의 무릎 꿇고 혼나던 시절이 있었다.
니들, 이렇게 살다가, 인생 허망하게 간다...
그 뒤에도 몇 번 혼났다. 나는 지금도, 김은남 기자가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혼돈 속에서 방황하던 시절, 정신 차리라고 혼냈던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한 명으로 김은남을 기억한다.
(김은남의 어머니와 이상훈 사이의 요졸복통 에피소드는, 들으면서 몇 바퀴 떼굴떼굴할만한 대박 사연들이 책 한 권 분량은 된다. 내가 지금의 집으로 이사오게 된 것도, 그 사연들의 연장이다.)
나나, 그의 남편 이상훈이나, 김은남 앞에서는 그야말로 고양이 앞에 쥐 신세였다.
그 김은남과 이상훈의 결혼 주례사를 김훈이 섰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하여간 안다면 조금 알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다.
내가 김훈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시사저널의 글들을 통해서였고, 나중에 <자전거 기행>과 사적인 관계들, 그리고 후에 <현의 노래>와 <칼의 노래> 그리고 <남한산성>까지 이어지는, 또 다른 그의 모습들...
어쩌면 김훈은 우리 시대의 텍스트 중의 하나이다. 많은 사람이 봤고, 모두들 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은 나를 포함해서 많이들 오해하고.
하긴 김훈 스스로도 김훈을 모르는데, 누가 그를 알겠는가. 김훈은 단순해보여도, 면이 많은, 그런 다각면체와 같은 존재처럼 보인다.
어쨌든, 그 김훈이 촛불 집회의 한 가운데, 7월 5일 피사체로 카메라에 잡혔다. 여전히 해석은 어렵다.
그러나 시사점이 큰 사건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