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여성 노예의 삶에 대한 일체의 탐구는 노동자로서의 역할에 대한 평가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 P32

국제 노예무역이 폐지되면서 이제 막 청년기에 접어든목화 재배 산업의 확대가 위태로워지자 노예 소유 계급은 국내 노예 인구를 보충하고 증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어쩔 수 없이 자연적인 재생산에 의지해야 했다. 그러므로 노예여성의 출산 능력에 가산점이 붙었다.  - P34

산업자본주의가 촉발한 가정과 공적 경제의분열은 그 어느 때보다 여성의 열등함을 확고하게 굳혔다. 지배적인 선전물에서 ‘여자‘는 ‘어머니‘와 ‘주부‘의 동의어가 되었고, ‘어머니‘와 ‘주부‘ 모두에는 치명적인 열등함의 표시가들어 있었다. 하지만 흑인 여성 노예들 사이에서 이 어휘는 어디서도 확인할 수 없었다. 노예제의 경제적 배열은 새로운 이 - P41

데올로기 안에 포함된 위계적인 성역할을 부정했다. 그러므로 노예 공동체 내에서의 남녀 관계는 지배이데올로기의 패턴에 부합하지 않았다. - P42

실제로 가정생활은 노예의 사회생활에서 지나칠 정도로큰 의미를 가졌다. 노예들에게 스스로를 인간으로 경험할 수있는 유일한 공간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ㅡ그리고 흑인 여성들은 남성과 진배없는 노동자였기 때문에ㅡ흑인 여성들은 백인 여성들처럼 가정 내에서의 역할 때문에 펌하되지 않았다. 백인 여성들과는 달리 이들은 절대 단순한 ‘주부‘로 치부될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 결과흑인 여성들이 흑인 남성들을 지배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노예생활의 실상을 근본적으로 왜곡하는 것이다. - P47

들판에서 하는 노동에는 아무런 보상이 없었다. 노예들은 거기에서 그 어떤 유용한 목적도 찾을 수 없었다. 가사노동은 노예공동체 전체에서 유일하게 유의미한 노동이었다. - P48

노예 거주 구역의 가정생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주제는성평등이다. 노예들이 주인의 권력 강화가 아니라 스스로를위해 수행했던 노동은 평등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흑인들은 자신의 가정과 공동체생활의 울타리 안에서 찬란한 위업을 힘들게 달성할 수 있었다. 이들은 노예로서 겪는 동등한억압에서 파생된 소극적인 평등을 능동적인 특징으로 바꿔냈다. 그것은 바로 이들의 사회관계를 특징짓는 평등주의이다. - P49

노예제 시기에 진행된 제도화된 강간의 패턴을 백인 남성의 성적 충동의 표현으로 봐서는 곤란하다. 마치 순결한 백인의 여성성이라는 허상이 그것을 잠재울 수 있었으리라는식으로 말이다. 이런 식의 설명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강간은지배의 무기, 억압의 무기였고, 그 내밀한 목표는 노예 여성의저항 의지를 억누르고, 그 과정에서 노예 남성들의 사기를 꺾는 것이었다.  - P57

엘리자 같은 인물들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대다수 흑인여성들 가운데 눈에 띄는 별종이었을 게 분명하다. 이들은 어떤 경우에도 주인의 채찍질을 감내하고 자기 가족을 위해 일하며 이들을 지키고 노예제에 맞서 싸웠던, 구타와 강간을 당하면서도 절대 굴복하지 않았던 모든 여성들의 축적된 경험을 대변하지 못한다. 명목상의 자유를 누리게 된 여자 후손들에게 고된 노동과 인내, 자립의 유산을, 끈기와 저항, 성평등에 대한 굳은 의지를, 요컨대 새로운 여성성의 표준을 제시하는 그런 유산을 남긴 것은 바로 이런 여성들이다.  - P65

아이러니해 보일 수도 있지만 당대에 가장 인기있던 노예제 반대 소설은, 노예제와의 전투가 치러지던 정치영역에서 여성의 배제를 정당화하는 성차별주의적 관념과 노예제를 정당화하는 인종주의적 사고를 고착화시켰다. - P69

 나는 얼버무리지 않을 것이다. 변명하지 않을 것이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저들이 내 목소리를 듣게만들 것이다.  - P75

백인 여성들은 노예제 반대 운동에 몸담으면서 인간 억압의 본성에 대해 배우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예속 상태에 대한 중요한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들은 노예제에반대할 권리에 목청을 높이는 과정에서 때로는 대놓고, 때로는 암묵적으로 자신들이 정치 영역에서 배제되는 것에 저항했다. 집단적으로 자신들의 불만을 제기하는 법을 아직 알지못했다 해도, 최소한 억압받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는 있었던 것이다. - P78

 그렇다, 백인 여성들은 흑인해방투쟁을 하려면 여성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열렬히 지켜야 한다는인식에 눈을 뜨게 된다. - P7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책 좋다. 굉장히 깔끔하고 명쾌하다. 쉽게 술술 읽히지는 않지만(이론서가 쉽게 술술 읽히면 그것도 문제다.), 읽는 것이 괴롭지 않다. 이건 이론서가 가지기 힘든 굉장히 큰 매력이다. 


여러 장르들 중에서 비평장르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영화비평이나 문학비평 등등.... 

사실은 좋아하지 않는다기 보다 어려워서 이해를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당할거 같다. 사실상 문학이든 영화든 그것이 표현하는 세상은 굉장히 복합적이고 다채로운데 비평의 언어는 다채롭다기보다는 엄격하고 일관된 서사를 적용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면 이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간극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 많은 비평들이 이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은 자신의 이론에 작품을 뜯어맞추는 것이다. 그래서 비평을 읽다보면 도대체 이해할 수 없거나, 동의하기 어려운 지점들에 도착하는데 이런 부분들은 또한 굉장히 현란한 언어유희로 이루어져 있어 독자가 더 알아듣기 힘들어진다. 나같은 어리석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거 제대로 말하기 힘든거 감추려고 알아먹지 못할 어려운 말로 덮어씌운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이다.


  또 한가지 이론서에 대해 드는 생각 중 요즘 들어 많이 하는 생각이 이론서의 저자들은 자신의 이론을 막 펼쳐내는데 집중하긴 하는데 그걸 읽을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머릿속에서 꽃밭이 펼쳐져도 실제로 그걸 현실에 말로 펼쳐보면 말이 좀 안되네 하는 경험 누구나 있지 않나? 물론 이론서가 그렇게까지 가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저자가 생각하는 이론을 완결되고 풍부하게 다 제시하고싶은 욕망에 휘둘리다 보면 그의 머릿속 꽃밭을 독자가 짐작하기는 어렵다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가 자신이 말하는 이론이나 개념이나 소재들을 모두 다 알고있다는 전제하에서 쓰는 것인가 이런 생각 말이다.


솔직히 1월에 읽은 도서 <페미니즘 이론과 비평>이 내게는 저 두 가지 문제를 다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나의 지적 부족함이 일차적인 원인이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나서도 남는 아쉬움이 결국 중간에 저 책을 접게 해버렸다. 페미니즘의 역사와 내용을 알고자 하면 나에게는 이미 <페미니즘 철학입문>이라는 훌륭한 책이 있으므로.... ㅠ.ㅠ




이런 내게 2월의 책은 <여성, 인종, 계급>은 굉장히 좋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알아들을 수 있다. 독자에게 전적으로 친절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친절한 편이다. 

일단 여기까지는 책 자랑과 책 뽐뿌였고, 이제 1장과 2장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들을 그냥 적어본다.



 산업자본주의의 도래에 따라 대부분의 백인 여성들은 생산적인 노동 영역에서 완전히 차단된 영역의 거주민으로 인식되어버렸다라고 한다. (이것은 약간 부가 설명이 따라야 할 거 같은데 내가 이해한 바로는 중세까지 주생산영역인 농촌사회에서 노동의 성별 분업은 거의 이루어져 있지 않다. 여성과 남성은 모두 뼈빠지게 토지에서 일해야 한다. 따라서 여성의 노동 자체의 폄하는 주요 이데올로기가 아니었고, 가부장제는 다른 형식으로 실현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산업자본주의는 가정과 직장을 완전히 분리했고, 그러면서 여성노동을 가정 노동으로 한정지으면서 그것을 여성의 진정한 의무로 규정짓는 한편 여성 노동은 비생산적이므로 열등하다는 신화를 창조한다. 현실에서는 수많은 여성 노동자가 존재하지만 그것은 모두 비정상적이고 예외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런 산업자본주의사회에서 예외적인 것이 바로 미국 노예 공동체사회이다. 이 사회에서는 여성 노예 역시 가혹한 노동에 투입되었으므로 성별간의 노동분업이 사실상 의미가 없다. 남녀 노예 모두 생산현장에서의 노동은 자신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는 노동이었던데 반해, 그들에게 유일하게 의미가 있는 노동은 가사노동이었다. 이는 노예 공동체 내부에서의 성평등으로 이어지고, 노예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도 서로가 똑같은 조건에서 맞서 싸우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와 같은 노예 공동체 사회에서의 성평등을 이야기하면서 드는 생각은 또 왜 여성이든 다른 피억압자든 싸울 때는 연대해서 똑같이 싸우면서 싸움이 승리로 끝나고 난 이후 그 결과물들을 나눌 때는 다시 불평등해지는가에 대한 깊은 빡침이다. 예를 들면 대표적인 부르조아 혁명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7월혁명(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이걸 그린 그림이고, 레 미제라블이 7월 혁명 이후의 상황을 그린 소설이다.)은 부르조아와 민중들이 똑같이 싸웠지만, 혁명 이후 프랑스에서 선거권을 가지게 된 이들은 전체 인구의 0.6%에 불과했다. 0.6%는 당연히 세금을 많이 내는 남자, 즉 부자 남자였다. 노예 공동체 사회의 투쟁이 노예 해방으로 이어졌지만, 이후 흑인가정의 운영원리는 성평등이 아니라 백인의 가부장제에 철저하게 포섭되는 결과로 이어졌음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역사에서 왜 좋은 것 훌륭한 것은 늘 배제되는가? 깊은 빡침은 더더욱 깊어만 간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희망을 가지고싶다. 그런 희망의 근거, 내 희망이 헛되지 않으리라는 근거를 찾고싶다. 

  


아이러니해 보일 수도 있지만 당대에 가장 인기 있던 노예제 반대 소설은, 노예제와의 전투가 치러지던 정치 영역에서 여성의 배제를 정당화하는 성차별주의적 관념과 노예제를 정당화하는 인종주의적 사고를 고착화시켰다. - 69쪽


  노예제 반대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었고, 가장 유명한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보자. (나는 이 평가에 동의한다.) 이 소설 속 흑인들은 대부분 상냥하고 사랑스럽고 무방비한 유아적 인물들로 묘사되고, 여성은 모성애의 화신 어머니로 표현된다. 그래서 이들은 모성애를 발휘하여 사랑스러운 아이같은 흑인들을 동정하여 돕고자 하는 것이 되고, 실제로 이 소설은 수많은 여성들을 노예제 폐지운동에 동참하게 만들었다. 그러면 이 소설은 노예제 폐지나 여성운동에 있어서 도움이 되었을까? 해악이 되었을까?



 나의 결론은 이 소설은 발간되어야 한다이다. 이 소설의 나쁜 성차별주의적 관념과 인종주의적 사고는 당대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고, 이 소설이 없다고 해서 이런 당대의 지배적인 생각들이 약화되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런 소설의 출간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어쨌든 당대의 많은 여성들을 노예제 폐지운동에 참여하도록 만들었다. 그들이 어떤 생각으로 참여했던 간에 어쨌든 노예제 찬성론자로 남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이런 운동에의 참여가 사람들의 생각을 가장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참여와 운동과 교류속에서 사람들은 변화한다. 허위의 모성애에 기반한 운동이라 할지라도 그것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성체제의 생각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자신의 사고를 발전시킨다. 그 속에서 새로운 생각 - 톰아저씨의 오두막이 숨기고 있는 근원적인 가부장제와 인종차별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대자도 나오는 것이다. 비평을 하는 사람은 엄격하게 이 소설이 가지는 문제와 한계를 비판할 수 있다. 동의한다. 그리고 그렇게 엄격하게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현실의 운동을 하는 이들은 소설이 가지는 한계보다는 그것이 가지는 가능성에 더 주목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노예제가 제도로 존재하는 것보다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은 자명하니까 말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은 논리로 설득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감정으로 설득된다. 책이 사람을 설득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 책이 그 사람안에 있는 동정심이든 어떤 감정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이론은 그 감정이 건드려진 다음을 담당할 뿐이다. 



 실제로 노예 또는 노예제라는 단어는 쉽게 여성운동과 결합한다. 백인 중산층 여성에게는 자신들의 결혼 생활이 노예로서의 생활이었다고 표현하고, 공장의 여성 노동자는 형식적 자유만 있을 뿐 실제 노동과 삶은 노예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공감이 연대를 만들어 내었다. 




프루던스 크랜들은 자신의 학교에 흑인 소녀를 받음으로써 백인 사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녀와 그녀의 학교는 백인의 실제적이고도 비열한 온갖 공격을 받았고, 결국 본인은 체포 당하고 학교는 문을 닫았지만 실제로는 승리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여성교육과 흑인의 교육이 서로 공감하며 손을 맞잡았던 이 사건은 당대 여성운동에도 흑인 노예제 폐지운동에도 모두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백인 여성들은 흑인 해방투쟁을 하려면 여성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열렬히 지켜야 한다는 인식에 눈을 뜨게 된다.(79쪽)   해제에서 말한 "전 세계의 불안하고 취약한 이들이여 공감하라"라는 말의 예를 여기서 발견한다. 


 노예폐지론자인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은 잡지 <리버레이터>창간호에 "저들이 내 목소리를 듣게 만들 것이다."라고 썼다. 지금 여기 이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우리들 역시 내 목소리를 듣게 만들게 하기 위한 그 한 발자국들을 열심히 내딛고 있음이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햇살과함께 2023-02-03 2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쭉쭉 나가십니다!!
저도 1장 조금 읽었는데 가독성 나쁘지 않다 생각했습니다. 노예제 실상 너무 충격적입니다!!

바람돌이 2023-02-04 00:01   좋아요 1 | URL
가독성 괜찮죠? 제가 지금 마음이 바쁩니다. 빨리 읽고 여행도 가야하고 집안 행사도 많고..... 제2의 성을 읽어야죠. ㅎㅎ

공쟝쟝 2023-02-04 0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제 점점 좋은 책과 아닌 책을 갈라보게 되는 것 같아요.
종종 뛰어난 저자들이 생각 자체를 다르게 하기 때문에 읽는 과정에서 생각 자체를 다르게 해서 어려운 (새로운 인식방법으로 안내하는 좋은) 책들도 있긴 합니다. 그런 책은 어려워도 용서가 되는 데, 대중에게 읽힐 요량으로 만든 책이 그러면 저도 좀…

바람돌이 2023-02-04 13:38   좋아요 0 | URL
정말로 좋은 책은 보통 어렵더라구요. 그래도 계속 읽다보면 그 속에 담긴 뜻이 내게로 오는, 그 때의 희열 아시죠? ㅎㅎ 저는 이제 늙어가기 때문인지 좀 책을 골라요. 책을 읽다가도 좀 마음에 안들면 세상에 좋은 그 많은 책들을 내가 다 읽지도 못할텐데 지금 내게 안맞는 이 책을 내가 왜 노력씩이나 해가면서 읽어야 하는가 뭐 이런.... 그래서 요즘은 읽다가 팽개치는 책들이 제법 됩니다. 그 기준이야 나홀로 기준이니 뭐 남에게 뭐라고 할 얘기는 아니고요.

단발머리 2023-02-04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 대한 평가와 바람돌이님의 의견에 저도 동감합니다. 읽지도 않은 책이라 많이 조심스럽습니다만... 한계를 보여준 건 맞지만 결국에 이 소설이 노예제 반대 운동의 도화선이 된 건 확실한 듯 하고요. 그러면서 드는 한 가지 생각은.... 참 역사란 것은 신기하구나. 의도와 설정과는 다르게 움직이는구나, 뭐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책이 태어난 후에는 자기 운명을 찾아 떠나는 것 말이지요. 자식과 똑같네요 ㅋㅋㅋㅋㅋ

바람돌이님 응원합니다. 쭉쭉 맨 앞에서 달리고 계십니다. 저도 얼른 시작할게요 ㅎㅎㅎ

바람돌이 2023-02-04 13:44   좋아요 1 | URL
역사에서 주최측이나 참여자들이 의도한 바대로 움직여진 경우는 정말 단 한번도 없지 않나가 제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거대한 흐름은 또 뭔가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도 신기하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 의외성때문에 역사읽기를 좋아하지 않나싶어요. ㅎㅎ 책도 자식도 다 자기 운명을 찾아가는데 문제는 책은 어쨌든 돈을 많으나 적으나 벌어다 주고, 자식은 내 돈을 알뜰하게 벗겨먹는다는 것이 차이? ㅎㅎ

아 지금은 제가 맨 앞에서 쭉쭉 달리는데요. 이거 오늘까지에요. 내일부터 다음 주 중반까지 이 책 못읽음요. 저는 어려운 책은 다락방님처럼 지하철에서 읽고 이런거 못해요. 그저 책상앞에 각잡고 앉아서 나 공부한다 티 팡팡내면서 읽어야 된다는..... 집안행사와 가족여행이 오늘저녁부터 줄줄이라 일주일뒤에나 돌아올 듯합니다. 그때쯤이면 여러분들이 저를 앞서나가고 있을듯요. ^^

파이버 2023-02-04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은 비평가들이 자신의 이론에 작품을 뜯어맞추는 것 같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래서인지 먼~옛날(=지적허영심이 충만하던 시절) 비평집을 읽을 때는 full 집중하고 읽어도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더 공부하고 싶어지는 의욕을 불러 일으키는 것도 어려운 글을 읽는 묘미라고 생각하고 꾸역꾸역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ㅎ

[여성, 인종, 계급]은 낯이 익어서 예전에 구입했던 걸까 찾아봤는데, 보관함에만 들어가 있네요 ^^;; 바람돌이님께서 깔끔하다고 칭찬하시니 장바구니로 옮겨봐야겠습니다^^

바람돌이 2023-02-04 23:46   좋아요 1 | URL
공부하고 싶어지는 의욕은 힘들지만 꾸역꾸역 읽었을 때 뭔가 깨달음이 올 때 의욕이 미친듯이 생기지 않나요? ㅎㅎ 처음부터 끝까지 무슨 말인지 모르겟을 때 책을 벽에다 집어던졌던 기억도 있습니다. ㅎㅎ

<여성, 인종, 계급>은 미국에서의 흑인노예해방운동과 여성운동의 역사를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데 좋네요. 여러가지 생각할 지점들이 많이 있어서 지금 의욕적으로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일부터 며칠간 이 책 읽기를 쉬어야 해서 지금 막 아쉬워하고 있는 중입니다. ㅎㅎ

희선 2023-02-05 0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소설이다 해도 그게 다 괜찮은 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점도 있고 비판해야 하는 부분도 있겠네요 그런 걸 알아보기도 해야 할 텐데... 하나만 생각할 때가 많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이제는 여러 가지 보면 좋을 텐데, 쉽지 않겠습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3-02-05 00:48   좋아요 1 | URL
맞아요. 이젠 진짜 좋은 책만 읽고 싶은데 그런 안목을 키우는것도 여전히 쉽지 않네요. 그래도 또 행운처럼 이렇게 좋은 책을 만나면 반가운것도 살아가는 데 소소한 기쁨인듯합니다. ^^

coolcat329 2023-02-05 1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의 한계보다는 ‘그것이 가지는 가능성에 더 주목‘ 해야 한다.
일단 인간의 감정을 움직여야하고 그것을 문학이 해냈으니 톰 아저씨 소설은 나오는게 맞다에 저도 동감입니다.
바람돌이님 열독 너무 멋지십니다!

바람돌이 2023-02-05 23:10   좋아요 1 | URL
소설의 한계라는 것도 어쨌든 실현이 되어야 그 한계를 더 또렷이 알 수 있고 또 그 너머를 가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또 혼자서 주절주절 합니다. ㅎㅎ
이번에는 좀 앞서서 열심히 읽어보려고 하는데 또 나돌아다닐 일이 자꾸 생겨서 다음 주 중반 이후 다시 이어서 읽으려구요. 멋지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책읽는나무 2023-02-12 1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 정희진샘 해제를 읽고, 바람돌이님 그때 쓰셨던 리뷰 다시 읽어 보려고 찾아 들어왔어요. 그런데 이 리뷰를 또 읽었고, 와~ 미친 듯 흥분하며 읽었습니다. 저 금방 커피를 마셔 마구 흥분 중이거든요ㅋㅋ 마지막 문구, 그래서 나는 바람돌이님이 쓰신 글을 읽고 있는 이유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얼른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도 읽고, 이 책도 찬찬히 읽어내려갈랍니다. 지금은 여행 중이시려나요? 다녀오시기 전까지 얼른 진도를 맞춰 놓아야, 또 바람돌이님의 시원시원한 지적인 글을 읽을 수 있을텐데요^^ 3 월이 오는 게 아쉽네요. 바람돌이님 바빠지실테니까요ㅜㅜ 암튼 복직 전 좋은 힐링의 시간이 되셨음 좋겠어요. 집안 행사도 편안하게 잘 마무리 하시고, 얼른 서재에서 또 만나요♡

바람돌이 2023-02-13 22:37   좋아요 1 | URL
와 2월은 정말 나갈 일이 너무 많아서 책 읽을 시간은 없고요. 저 원래 어디 여행가면 책은 거의 안본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책보다는 여행을 더 좋아하는거 같아요. ㅎㅎ 심지어 요즘은 체력도 안되어서 어디 며칠 다녀오면 놀러다닐 때는 괜찮은데 갔다와서 며칠은 퍼져 있게 되네요. ㅎㅎ 나무님 응원을 받아 내일부터 또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아 그런데 도서관에서 빌린 하얼빈부터 읽어야 돼요. 반납해야 돼서....ㅠ.ㅠ
 



저자 서문이 따로 없는 이 책에서 정희진 샘의 해제가 서문을 대신하고 있다. 

서문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이 책이 어떤 이야기를 어떤 방향으로 하고자 하는지를 독자에게 알려주는 것이라고 할 때 정희진샘의 해제 또는 서문은 역시 정희진이라는 감탄사를 터뜨리게 한다. 이러다 책 본문보다 해제가 더 좋으면 어떡하지? ^^;;


젠더 권력관계는 유동적이고 페미니즘은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복합적 권력의 성격을 매 순간 고민해야 하는 상황적 지식이다. 페미니즘은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지 않는다. 아니, 그것은 불가능하다. 세상은 계급으로도 젠더로도 환원되지 않는 모순과 우연의 연속적 텍스트이고, 여성주의는 그 콘텍스트를 밝혀낸다.  - 16쪽


여성은 어디에나 있다. 그리고 그 여성은 모두 다르다. 인종, 계급, 경제력, 사회적 위치, 연령 모두 다르다.

여성과 남성 사이에는 또 어느 쪽으로도 규정될 수 없는 트렌스젠더, 젠더 플루이드(성별이 유동적으로 전환되는 젠더), 논 바이너리(남녀의 이분법을 거부하는 존재) 등등이 존재한다. 이런 모든 '다름'들을 '다름'으로 그대로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그 다름들의 연대를 세상의 모든 방면에서 찾아낼 수 있는 가능성을 이 문장이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때는 이론은 세계를 통일적이고 일목요연하게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맑시즘이 그런 이론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맑시즘 뿐만 아니라 어떤 이론도 그런 역할을 해 낼 수 있는 이론은 없었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는 그 인간들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모순과 문제들을 만들어내는 정말 복잡다단한 곳이므로.... 이제 이론은 모순과 우연으로 가득찬 세상을 그 모순과 우연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그 모든 세상의 연쇄와 연결고리들을 찾아내고 그 지점에서 손을 잡는 것이다. 모든 개혁과 혁명과 개량은 그 어느 지점에 한 자리씩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누구보다 뛰어난 이론가였고, 공산주의 혁명가였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개량주의자로 끊임없이 공격받았다. 그런데 개량주의가 비난받고 욕을 먹어야 하는건가?  개량이든 혁명이든  반동보다는 낮잖아. (실제 역사를 보면 혁명의 순수성이나 오로지 원칙을 강조하는 인간들을 더 경계해야 한다. 그들이 더 많이 더 쉽게 변절한다. 이 원리가 왜 그런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의 걸음이 더딘 것이 문제가 아니라, 혹여 나의 걸음이 누군가에게 폭력이 되는 것이 문제이다. 페미니즘으로 돌아오면  급진적 페미니즘이든 무엇이든 나를 어떤 페미니스트로 규정짓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페미니즘이든 그것은 어떤 사회적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 그것이 불안하고 취약한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그들의 삶을 한발짝이라도 나아가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누구라도 그 지점에서 웃으며 만날 수 있어야 하고 손잡을 수 있어야 한다.  너무 낭만적인 생각이라는 것! 안다. 실상은 서로 비난하고 쥐어뜯고 칼질해대는 악전고투의 현장들이 더 널려있다. 사람들은 적과 싸울 때보다 비슷한 편끼리 더 처절하게 싸운다. 그러나 그럼에도 세상이 바뀌어 온 것은 그렇게 서로 싸워 대던 인간들이 어느 순간 손잡은 그 어딘가에서 일어난 결과다. 지금 존재하는 어떤 것도 싸우지 않고 이루어진 것은 없다. 


그래서 해제의 마지막 문장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나는 누군가와 평등해지기보다는 난민과 가난한 이들과 내 경험을 공유하기 원한다. 40년이 지난 지금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여 연대하라"가 아니라 "전 세계의 불안하고 취약한 이들이여 공감하라"라고 외친다. - 27쪽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할 때 프롤레타리아는 산업혁명기 유럽의 프롤레타리아였다. 그들은  연대할 수 있는 공감을 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로 뻗어나가면서 곧 유럽의 프롤레타리아와 식민지의 프롤레타리아는 같지 않다. 지금도 제3세계의 노동자와 제1세계의 노동자는 전혀 다르다. 한 국가 내에서도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는 다르다. 당연히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도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연대가 아니라 공감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흑인의 입장에서 본 미국의 역사를 썼다는 이 책을 통해 다른 계급, 다른 인종, 다른 젠더가 어떻게 다르게 구별되어 나갔는지를 보고 그런 구분과 배제의 작동원리를 찾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것을 깨부술 것이다. 


책을 읽게 만드는 해제는 이런 것이구나라고 생각한다. 



댓글(21)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23-02-03 0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감에서 시작하기 좋은 말이네요 뭐든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싸우는 것도 좋은 거군요 싸우다 어느 순간 함께 하는 때도 있겠지요 싸우고 아주 멀어지지 않아야 할 텐데...


희선

바람돌이 2023-02-03 23:28   좋아요 1 | URL
사실 공감할 수 있으면 무엇이든 같이 할 수 있는 기본이 완성된거겠지요. 사실은 저 공감이 안되어서 같은 편끼리도 싸우는 거니까요. 어쩌면 저 말도 너무 어려운 희망사항일거같기도 해요.

난티나무 2023-02-03 03: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본문보다 해제가 더 좋으면… ㅎㅎㅎ 그럴 거 같아요.^^;;;;

바람돌이 2023-02-03 23:29   좋아요 1 | URL
오늘 1장과 2장을 읽었는데 본문도 좋습니다. 물론 우리 정희진샘의 글빨을 따라가는건 누구든 쉽지 않은건 미리 인정하고요. ㅎㅎ

단발머리 2023-02-03 09: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아.... 바람돌이님!!!! 정말 제가 하트 100개를 이 글에다 가득히 담아둡니다!!!!!!
❤️🧡💛💚💙💜💗

로자 룩셈부르크는 누구보다 뛰어난 이론가였고, 공산주의 혁명가였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개량주의자로 끊임없이 공격받았다. 그런데 개량주의가 비난받고 욕을 먹어야 하는건가? 개량이든 혁명이든 반동보다는 낮잖아. (실제 역사를 보면 혁명의 순수성이나 오로지 원칙을 강조하는 인간들을 더 경계해야 한다. 그들이 더 많이 더 쉽게 변절한다. 이 원리가 왜 그런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의 걸음이 더딘 것이 문제가 아니라, 혹여 나의 걸음이 누군가에게 폭력이 되는 것이 문제이다.

이 문장들을 포함하는 이 문단 전체가 저의 생각과 너무 딱!! 일치해요. 저는 이렇게 정교하게 표현하지 못하는데, 바람돌이님 글 읽으면서 제 생각을 들여다 보시고 정리해 주신듯 너무 감동적이고 너무 통쾌합니다. 저는 교차성이라는 측면에서 이 책이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읽은 여성주의와는 다른 결, 다른 호흡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기대되고 또 기대됩니다.

특별히 바람돌이님께서는 다른 책 멀리하시고요 ㅋㅋㅋㅋㅋ 이 달에는 이 책 관련해서 글 많이 써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려 마지않습니다. 아침부터 너무 격양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님, 감사해요!!!

독서괭 2023-02-03 12:41   좋아요 2 | URL
안됩니다! 바람돌이님은 <제2의 성>도 읽으셔야 한다고요! ㅋㅋㅋㅋ 저도 말씀드리오니, <여성, 인종, 계급>과 <제2의 성> 외의 다른 책은 멀리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ㅋㅋㅋㅋ

바람돌이 2023-02-03 23:36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 하트 100개 받아서 이 책을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열의가 100만개 뿜뿜입니다. ^^
지금 2장까지 읽었는데 실제로 노예해방운동과 여성운동이 어떤 지점에서 만나는지를 상당히 정교하게 이해시켜 줍니다. 책 좋아요. 많이 많이요. ^^

아닛 그런데 제가 읽을 책 가지고 왜 두분이서....ㅠ.ㅠ 갑자기 부담 만땅입니다. ㅠ.ㅠ 저는 이번 달에 이런 저런 여행과 나들이가 많아서 다른 책 읽기도 힘듭니다. 그래서 지금 일단 빨리 2월의 책 시작했고요. 그리고 바로 <제2의 성>으로 넘어가려고 합니다. 독서괭님 제2의 성 먼저 시작하면서 길을 밝혀주시어요. ^^

햇살과함께 2023-02-03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지하철에서 해제 읽는데 태그가 ㅋㅋ
바람돌이님도 제2의 성에 동참한다는 소문이…

바람돌이 2023-02-03 23:37   좋아요 1 | URL
넵 제2의 성을 이렇게 같이 읽자고 강제성을 부여하지 않으면 못읽을거 같아서요. 그리고 3월에 직장 복직하면 또 읽기 어려울거 같아 어쨌든 이번 2월에 읽으려고 지금 이 책부터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

건수하 2023-02-03 09: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떤 페미니즘이든 그것은 어떤 사회적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 그것이 불안하고 취약한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그들의 삶을 한발짝이라도 나아가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누구라도 그 지점에서 웃으며 만날 수 있어야 하고 손잡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이 참 좋습니다. 아 2월의 책 매력적이네요....

바람돌이 2023-02-03 23:39   좋아요 1 | URL
맞아요. 2월의 책은 해제도 본문도 모두 매력적입니다. 어서 어서 오세요.
그런데 말씀하신 문장 사실 실현하는거 진짜 어렵잖아요. 어쩌면 이런 저의 글은 냉철한 누군가가 본다면 아직도 낭만에 빠져서 헛소리만 한다고 얘기할지도 몰라요. 그래도 저는 그런 낭만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저의 바램이랄까 그렇네요. ㅎㅎ

청아 2023-02-03 0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뉴스에서 그러더군요. 전쟁에서 내전이 항상 가장 잔인하고 폭력적이라고...

정희진 선생님은 늘 감동의 해제로 책에 대한 기대를 한껏 올려놓으시네요.
저자들이 때에 따라 좀 걱정스럽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됩니다.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3-02-03 23:43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래서 내전은 전선에서의 싸움보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적과 나를 갈라내는 것에 더 치중하므로 민간인의 피해가 더 크고 잔인해지는거 같아요. 한국전쟁의 국민보도연맹사건에서 보는 것처럼 일단 적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미리 죽여놓고 시작하면 그 뒤는 그저 복수에 복수가 이어질뿐이니까요.

이 책의 저자는 미국인이라서 괜찮을듯합니다. 그런데 책 본문도 굉장히 좋아요. 저 지금 씬나서(이거 송혜교 톤) 읽고 있어요. ㅎㅎ

yamoo 2023-02-03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모르겠습니다만...페미니즘이 ‘상황적 지식‘인가요? 정희진 저자의 생각이 놀랍네요!! 페미니즘을 상황적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삶‘이 아닌게 되어 버립니다. 지식화되고 지성화되며 물질화됩니다. 결국 대상화가 되겠지요. 페미니즘의 본질이 남과여를 넘어 인간해방이라면...개념자체가 대상화되어 버리면 안될듯합니다..

바람돌이 2023-02-03 23:47   좋아요 0 | URL
저는 저 상황적 지식이란 말을 오히려 지식화 되고 지성화 되고 물질화 되는 것에 대한 반대로 읽었습니다. 페미니즘 - 여성주의란 사실은 단일한 철학으로 정립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곳에 여성이 존재하고 그 모든 곳의 여성은 서로 다르며 심지어는 광의적으로 포함될 수 있는 여성의 범위도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각각의 사회에서 그 사회의 개념을 만들어내고 적용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기본 요체가 아닌가 싶어서요. 그럴때 페미니즘은 다른 사회운동과의 연대 역시 함께 만들어낼 수 있는 길을 찾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독서괭 2023-02-03 1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는 게 아니라니, 약간 띠용~하는 느낌이네요. <제2의 성>에서 보부아르가 정신분석학을 비판하는 부분을 읽었는데, 프로이트가 자기 이론 유지하려고 결국 요상한 이론까지 창조해내는.. 걸 보면 어떤 이론을 고집한다는 건 위험한 일이 아닐까 싶어집니다. 이론은 현실에 맞추어 유동적이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는데, 맞는지 모르겠네요. 해제만큼이나 좋은 본문이기를 빕니다^^

바람돌이 2023-02-03 23:54   좋아요 1 | URL
해제만큼 본문도 좋습니다. ㅎㅎ
사실상 수많은 이론들이 존재해왔지만 그것이 사회에 그대로 적용된 예는 없지요. 단 한번도 말입니다. 오히려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려다 실패한 예는, 아니면 이론이 오히려 사람을 억압하는 도구로 활용된 예는 더 많이 발견할 수 있고요. 가장 노력했던 것이 사회주의사상인데 그 결과는 뭐 다 아실거고요. 저는 정희진 샘의 저 말을 페미니즘은 어디에서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진보성을 당대의 사회와 연계할 수 있는 것에 그 힘이 있다고 받아들였습니다. 이론은 인간의 행동에서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 - 이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절대 아닙니다. - 이고 페미니즘은 그래서 이론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행동양식-규범이 되지 않을까? 에고 말하다보니 더 어렵네요. 그건 여전히 제가 아직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ㅠ.ㅠ

책읽는나무 2023-02-03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대가 아니라, 공감하고, 공유하는 것!
아직 책을 읽기 전이라, 알 듯 말 듯 합니다^^;;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지 않는다면?.....

이론을 주장하는 계급이 다르다면?
어쩌면 서로가 연대한다는 것이 힘들 수도 있겠군요? 연대하는 것이 최상이라고 여겼지만, 어쩌면 뜬구름 잡는 발언이었겠어요. 공감을 먼저 하고, 후 연대가 이뤄지는 게 맞을 수도 있겠습니다.
오호~ 이 책 얼른 읽어봐야겠어요.
아직 주문도 못하고 있었어요.

슬램 덩크 먼저냐? 책 읽기가 먼저냐?
싸우느라~^^;;;
지난 주말 가족끼리 슬램 덩크 영화보고 왔었어요. 딸들이 완전 남주 애들 정대만 앓이, 또 누군지 이름을 기억 못하겠는데 암튼 서로 한 사람씩 픽 해선...만화 책 사달라고 조르네요ㅜㅜ 아~ 고민 중입니다.
괜히 영화 보여줬어요ㅋㅋㅋ

바람돌이 2023-02-04 00:00   좋아요 1 | URL
2장까지 읽다보니 공감과 공유의 실제적인 예와 내용이 좀 더 와 닿아요. 사실 저 공감이라는거 진짜 어려운거잖아요. 저 공감을 하기 위해서도 사실은 이론이 필요한거구요. 어쩌면 이론은 세계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유용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책 어서 어서 읽으시와요. 재밌습니다. 그래도 나무님은 제2의 성을 읽으셨으므로 이번 달에 저처럼 마음이 급하지는 않으시겠지요. 저는 이 책 빨리 읽고 제2의 성 읽어야 합니다. ㅎㅎ

아닛!!! 정대만이라니... 단발머리 정대만이라니욧!! (나머지 하나는 서태웅이겠지요....) 슬램덩크는 강백호라고요..... (근데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인기투표하면 항상 정대만 1위...ㅠ.ㅠ) 빨리 만화를 사주셔요. 그래야 강백호의 매력을 알 수 있어..... 영화에서는 강백호의 매력이 1%도 안 나왔어요. 진짜로요.... ^^

책읽는나무 2023-02-04 00:31   좋아요 1 | URL
정확하십니다.서태웅 맞아요ㅋㅋ
막내는 정대만, 큰 딸은 서태웅이래요.
남편과 저는 강백호구요^^
저는 처음에 송태섭이 강백호인 줄 알았어요. 제가 만화를 안봤잖아요~ 저는 강백호가 주인공인 줄 알았어서 송태섭이 떡하니 나왔길래, 나중에 이름 개명하는 줄 알았어요ㅋㅋㅋ
혼자 막 안드로메다로 가고 있었는데 강백호가 자기가 강백호래서 띵~~ㅋㅋㅋ
남편도 나중에 네 개는 더 나오겠다더군요. 강백호가 주인공이라고~ ㅋㅋ
근데 왜 정대만이 인기가 그렇게 인기가 많을까요? 울집 딸들은 정대만이 잘 생겼다고 난리랍니다.
저는 안경 선배도 잘 생겨보이던데 말이죠ㅋㅋㅋ 만화 책으로 스토리 읽어보고 싶은데 진짜 만화책 넘 비싸서...ㅜㅜ

암튼 바람돌이님도 <제2의 성>
이번 달 엄청 바쁘시겠군요?ㅜㅜ
그래도 암튼 파이팅입니다^^

바람돌이 2023-02-04 01:06   좋아요 1 | URL
안경선배는 좋아하기엔 존재감이 너무 약해서..... ㅎㅎ 슬램덩크 영화는 앞으로 쭈욱 나온답니다.
정대만이 머리 자르고 나면 잘생겼죠. 이놈의 외모 지상주의 ㅠ.ㅠ

화이팅 감사합니다. 나무님 화이팅 받아 반드시 성공을.... 3월로 넘어가면 가능성이 없어요. 3월은 정신없는달...ㅠ.ㅠ
 

페미니즘 이론과 운동의 목표는, 개별적인 인간인 여성(female)을 남성 공동체를 위한 성역할 노동자 집단으로 환원시킨 성차별 체제에 대한 도전이자 여성의 개인화와 인간화다.  - P12

차이는 권력이 규정하는임의적인 경계다. - P13

여성이라는 개념은 매우 유동적이기에 페미니즘은 언제나 ‘복합적 젠더 (multiple gender)‘를 의미한다. 페미니즘이 다루는 젠더는 여성과 남성 간의 차이가 아니다.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의 개념을 규정하는 권력을 질문하고 추적한다. - P15

그래서 젠더 권력관계는 유동적이고 페미니즘은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복합적권력의 성격을 매 순간 고민해야 하는 상황적 지식 (situatedknowledge)이다. 페미니즘은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지 않는다. 아니, 그것은 불가능하다. 세상은 계급으로도, 젠더로도환원되지 않는 모순과 우연(messy, random, contingency)의연속적 텍스트이고, 여성주의는 그 콘텍스트를 밝혀낸다. - P16

페미니즘은 기존의 방식을 비판하고 차이를 드러낸다. 남성중심적 보편성이든, 백인 여성 중심의 보편성이든 모든 보편성은 차이를 드러내야만 해체된다. - P20

이민족이나 다른 인종에 의한 성폭력은 피해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가 아니라 피해 여성을 소유한 남성 공동체 간의정치로 환원되기 쉽다.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가 여성인권침해가 아니라 한일 관계와 민족주의 의제로 ‘만‘ 제기될때 동원력을 갖는 현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 P25

나는 누군가와 평등해지기보다는 난민과 가난한 이들과내 경험을 공유하기 원한다. 40년이 지난 지금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여 연대하라"가 아니라 "전 세계의 불안하고 취약한(precarious) 이들이여 공감하라"라고 외친다. - P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정통 마르크스주의를넘어서게 되는데, 이는 정통 마르크스주의가 인간의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데올로기, 섹슈얼리티, 인종, 무의식을 함께 고려해야함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가 특정 사회의 경제시스템으로부터 과연 얼마나 독립적인지, 이 골치 아픈 질문은 젠더 이데올로기의 경우에서 아마도 가장 분명해진다. 이제 곧 알게되겠지만,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가부장제를 분석하는데, 이데올로기가 경제 요소들 만큼이나 물질적이고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이 개인의 삶에서 젠더가 계급만큼 중요함을 증명하면서, 인종, 민족, 섹슈얼리티도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P126

여성이 임금 노동과 가사 노동이라는 이중의 부담을 안고 있음을 이해해야만해방이 성취될 수 있다고 본다. - P128

 여성의 억압을 설명하려면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을 결합하여 분석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것이다. - P131

바렛은 여성이 문화적으로도 억압되어 있음을 분석하기 위해서 문학 작품에 초점을 맞춘다. 즉, 문학 자체의 생산과소비의 조건들이 작품 속에서 내용 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문학 텍스트를 분석할 때에는 책 속의 내용 만큼이나, 텍스트가 쓰이고, 출판되고, 읽혀지는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 P133

즉, "문학은 살아있고, 힘이 있고, 보람 있으며, 사유와 토론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 문학의 계획, 구조, 의도가 잘 이해 - P149

되지 않을 때만 그렇다. 왜냐하면 계획, 구조, 의도가 보이는 순간더 이상 끄집어낼 것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21). 레싱은 의미를 파악하고 해석을 위해 애쓰는 것은 좋은 일이고, 의미와 해석의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이데올로기적이고 경제적인 자신의 현 위치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저항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 P150

그러므로『황금 노트북』은 여성의 신체적 경험이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는가에 대한 일관성 있는 답을 제시하는 대신에, 독자들이 여성의 몸에 대한 경험과 관련된 문제들을 숙고해 볼 수 있도록 이끈다. - P15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3-01-29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책 같군요. 저도 예전, 소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였던 책 같은데 페미니즘 시각에서
본 비평이었는데 유익하고 재밌었어요.

바람돌이 2023-02-03 00:03   좋아요 0 | URL
에고 저는 이 책 3분의 2쯤 읽었는데 결국 그냥 놔버렸어요. 정리가 좀 안된달까? 차리리 다른 책을 찾아보고 싶었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