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리즈 완간을 기다리는 맛
시리즈 소설을 시작할 때는 일단 분량 때문에 망설이게 된다. 이 시리즈 역시 21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분량이 장난 아니다. 하지만 좋은 건 이제 시작이다. 이제 막 5권이 출간 되었고 앞으로 21권까지 출간될 예정이란다. 5권이면 딱 좋다. 1권은 감질나고 2-3권도 뭔가 섭섭하다. 하지만 5권 정도면 일단 캐드펠 수사 시리즈에 폭 빠지기에 딱 좋은 권수다. 나머지는 기다리는 즐거움이다. 이 시리즈 망하지 말고 그저 때 맞춰 잘 나와 달라고 나에게 이렇게 뽐뿌 글도 쓰게 만들 만큼 이 시리즈 재밌다.
2. 주인공 캐릭터의 매력이 장난 아니다.
주인공은 영국 웨일즈 지방과 딱 붙어있는 잉글랜드 지역의 수도원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의 수사인 캐드펠이다. 1권의 사건은 1137년부터 시작된다. 중세 한 가운데다. 지금은 수도원에서 허브를 기르고 온갖 채소를 기르는데 열정을 다 바치는 캐드펠 수사는 젊은 시절 1차 십자군 원정에 참가했고, 짐작컨대 온갖 세상풍파를 다 겪다가 이 수도원에 안착하게 된 사람이다. 인생사 경험의 폭이 넓어서일까? 이 분 보통 수사와는 생각의 폭이 다르다. 1권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에서는 수도원 사람들의 유골에 대한 갈망 저변에 깔려있는 속물근성을 한 눈에 파악하며 자기 나름의 옳음의 기준을 보여준다. 사건을 추리하는 과정을 보는 것도 재밌지만 이 주인공이 주변 사람들의 행위의 속마음을 파악하는 것을 따라가는 재미도 못지않다. 또한 성녀의 유골을 둘러싼 웨일즈 지방의 주민과 수도원 사람들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에서는 요절복통 시원한 카타르시스까지...... 그 은밀한 해결에 나도 동참한듯한 느낌은 책을 읽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행복이다.
2권인 <시체 한 구가 더 있다>에서 캐드펠 수사는 반역으로 처형 당한 94명의 시체에 더해 진 단 한 구의 시체를 놓치지 않으며 억울한 죽음을 파헤친다. 혼란스런 전쟁터 한 가운데서 누구도 관심가지지 않지만 단 하나의 억울한 죽음을 지나치지 않는 것이 수사의 본분이라는 듯말이다. 그는 종교의 열정을 가장하는 것을 비웃고, 종교에서 말하는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 자신의 양심과 선량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고민하고 행동한다. 12세기 중세 한 가운데서 이런 인물이 있었을까 싶지만 사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그 때나 지금이나 뭐가 그렇게 다를까
3. 여성 등장 인물들의 매력
1권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초반부에 성녀의 유골을 가지고 있는 마을의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회의를 하는 주체는 지주와 자유민인 자작농 남자들이다. 여성과 농노들은 한켠에 자기들끼리 우두커니 모여있는 장면 묘사다. 그래 이 시대가 그렇지하면서 실망하려다가 이후 전개되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저절로 평범한 사람들과 여성들의 활약에 박수갈채를 보내게 된다. 중세의 이야기지만 중세의 의식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이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들은 절대로 중세적 인물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쟁취해내는 인물들이다. 사건의 해결은 캐드펠 수사가 주인공이고, 여자 주인공들이 보조적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여성 주인공들은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데 캐드펠 수사를 보조적 인물로 이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 삶의 선택이 온전히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또는 제대로 된 선택이었는지는 살아봐야 아는 일이겠지만 적어도 신분의 굴레나 닥쳐온 위기에 절대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여성들이 톡톡히 제 몫을 해내는 것이다. 심지어 2권에서는 자신의 상황과 관계없이 같은 여성으로서의 연대를 실천하는 조연 여성까지 아름다운 연대를 보여준다.
다음 시리즈에서는 또 어떤 여성들이 이 멋진 이야기를 같이 가꾸어줄까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4. 중세의 생활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보는 즐거움
서양의 중세에 대한 나의 지식은 정말 교과서나 역사책에서 보는 정리되고 박제된 것들이다. 그 때에도 사람들은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살아 숨쉬었을 것인가?
1권에서는 웨일즈 귀더린 지방이라는 시골 사람들의 생활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수도원 수사들의 허영과 자만, 탐욕, 기만에 대비되어 자신들의 삶을 지키고 싶고 방해받고 싶어지는 중세 작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자신들의 작은 행복을 지키고 싶어하며, 그럼에도 자신들을 이해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마음을 터놓고 함께 은밀한 비밀을 공유하는 그들이 눈동자에 왠지 동참하고 싶어진다. 아 그리고 수사의 삶보다는 사랑을 찾은 존 수사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기도 하다. 중세인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이 시리즈를 보라고 강권하고 싶다.
2권에서는 귀족들의 왕이 다툼에 휘말린 슈루즈베리 지역을 배경으로 하면서 당시 툭하면 벌어지던 영지전이나 왕위 분쟁에서 온갖 계층이 살아남기 위해 이전투구하는 모습들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또한 마지막 범인의 증거를 결투라는 지극히 중세적인 방식으로 찾고자 하는 모습도 흥미진진했다. 어쩌면 이 시리즈를 모두 읽고 나면 멀고 먼 서양 중세의 삶이 내 안에 지극히 풍부한 모습으로 와 있지 않을까?
어쨌든 결론은 이 시리즈 너무 너무 강추다.
다들 한 번 읽어 보세요.
캐드펠 수사의 매력에 푹 빠질테요.
남은 시리즈는 요기
덧붙여 표지 너무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