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에서는 20만이 모였단다.
그 엄청남에 온 국민이 압도당하고 감격하는 것 같은데 딱 한놈만 귀를 막은 것 같으니 원....
지난주 내내 감기기운으로 골골하던 아이들을 드디어 친정에 맡기고,
서면에 도착하니 막 집회가 끝나고 거리행진이 시작되었다.
대열 중간에 끼어서 구호를 같이 외치며 서면에서 시청까지 도로를 걷는다.
이런 도로점거 시위가 얼마만인지... 참 까마득하기도 하다.
그리고 그 까마득한 시간만큼 사람들도 사람들이 보이는 모습도 참 다르다.
늘 경찰에 쫒기며 언제 최루탄과 백골단이 들이닥칠지 몰라 불안하던 거리.
그런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또한 체포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늘 뛰어다니며 목청껏 구호와 노래를 부르며 두려움을 감춰야 했던 거리.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말며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주변을 살피고, 다음 집결지가 어디인지 신경을 곤두세우던 곳.
때로는 차라리 잡혀가자며 스크럼을 짜고 드러누웠던 그 거리다.
2008년의 그 거리는 장소는 같건만 주변 풍경은 달라도 너무 많이 다르다.
이제 한 2-3살쯤 되어보이는 아기에서부터 연세드신 어르신들까지... 연령도 천차만별
연령만큼 옷차림도 다양하다. 감히 시위에 나오면서 하이힐을 신고오다니... ㅎㅎ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보기에 안스러웠다. 얼마나 다리 아플까?)
그러면서 시위의 풍경은 놀라울만큼 단조롭다.
3개정도의 구호가 다다.
그 촌스러운 훌라송이 다시 등장했다가 그것마저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그냥 묻혀버리다니...
그저 산책하듯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얘기하며 걷다가 한번씩 구호도 외쳐주고 그렇게 평화스러운 모습이다.
드디어 도착한 경찰청 앞에서 잠시 경찰청 진입시도가 있었으나 그것도 시위대의 자발적인 만류로 경찰청 마당앞에 연좌하여 자유발언 집회를 가지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뭐 내가 생각해도 지금 부산의 경우 과잉진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굳이 경찰청을 점거해 들어가야 할 이유가 없다.
조금은 심심한 가두행진과 집회.
서울은 나날이 심각해지는데 부산은 딱히 주 타겟이 될만한 상징적인 인물이나 건물이나 이런게 없으니 좀 썰렁하고 심심한 행진이고 집회다.
거기다 생각보다 집회참가인원이 그렇게 늘어주지 않는다.
87년 유월에 처음에는 얼마 안되었지만 나날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주던 인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이곳의 인구를 생각한다면 시위참가 인원이 작다는 느낌이다.
내가 보는 이런 새로운 풍경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깃발도 없고, 조직도 없고, 중심도 없어보이는 이 싸움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의문이 아니다.
저 깃발도 없고 조직도 없는 싸움이란걸 상상도 해보지 못한 나같은 세대에게 요즘의 경험은 경이로움의 연속이다.
비단 거리에서만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싸움도 입만 갖고 노는 것이 아니라 적의 약점이 어디일지를 끊임없이 탐색하며 곳곳의 약한 고리를 찾아나가는 사람들.
유머와 재기가 번뜩이는 풍자들.
이런 대한민국이 즐거워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