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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 전 영국, 조선을 만나다
홍지혜 지음 / 혜화1117 / 2022년 8월
평점 :
조선에서 만들어진 달항아리와 함께 그린듯 앉아있는 노년의 여성은 영국인 도예가 루시 리이다.
1935년 예술가이자 미술공예운동가이자였던 영국인 버나드 리치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장아찌를 담던 항아리 하나를 사서 영국으로 가져간다. (그래서 이 항아리의 영어 이름은 처음에 pickle jar ^^)
한동안 이 조선 백자 달항아리는 그의 친구집에 있다가 버나드 리치의 동료이자 제자이자 마음의 연인쯤이었던 것 같은 여성, 사진속의 루시 리에게 넘겨진다.
"우리의 추억을 담아 한국 항아리를 간직해 달라."라는 편지글도 발견되었다.
그리고 루시 리가 작고한 이후 두명의 상속자를 잠깐 거치고 지금은 영국박물관에 기증되어 한국관의 대표얼굴로 전시되고 있다.
최근 영국에서는 달항아리를 향해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분위기라는데 저자는 이런 바람이 어디에서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리고 이 달항아리가 영국으로 건너오던 시절, 영국인들은 조선과 어떤 관계였고, 조선문화에 대해 어떤 관심을 가지고 활동했을까 이런 것들을 추적해보기로 결심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작가의 추적은 조선의 개항이후 일본인과 서구인들, 특히 영국인들이 조선으로 들어오는 과정, 그들이 조선의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과정, 그리고 제국주의와의 연관, 그 속에서 한국미술에 대한 태도의 변화 등을 추적하며 한국 문화가 일본과 서구인들에게 어떻게 수용되어 지는지를 추적한다.
일찍이 유럽인들의 관심을 먼저 끈 것은 중국문화와 일본 문화였다.
18세기 '시누아즈리(중국 열풍)'는 유럽인들로 하여금 중국산 비단옷을 차려입고, 중국산 도자기 찻잔에 중국산 차를 마시는 문화 애프터눈 티 문화를 만들고, 그것을 부의 상징으로 여기게 했다. 청화백자를 모방한 네덜란드의 델프트 도기가 만들어지고, 영국산 도자기 회사가 아예 이름을 '본차이나'로 짓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또한 익히 알다시피 일본열풍, 자포니즘 역시 도자기와 우키요에를 중심으로 확산되어 나간다.
여기서 조선의 문화는 20세기에 들어와서 일종의 틈새문화의 느낌으로 등장한다.
때마침 이 시기에는 철도와 증기선의 발달로 여행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대륙횡단이 손쉬워졌고, 많은 영국인들이 중국과 일본을 거치는 길에 조선을 들리고, 조선의 유물들을 수집해 간다.
초기에 이들이 많이 수집해간 품목은 의외로 호랑이 가죽이다. 일본인과 함께 열성적으로 호랑이 가죽을 수집해가던 이들은 나중에는 아예 호랑이 사냥여행을 실행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 때부터 조선의 호랑이들의 멸종이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후 수집품목이 조선의 도자기로 확대되는데 사실상 초기에 영국인들은 일본 도자기와 조선의 도자기를 구별할 능력이 없었고, 따라서 일본에서 대량생산한 싸구려 도자기가 한국 도자기인양 팔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후 보다 전문적인 브로커들이 등장하면서 일본인들과 영국인들의 취향은 고려청자쪽으로 고정되어 나간다.
주로 개경 근처의 무덤을 도굴해서 찾아낸 고려청자들이었는데 이 역시 당시의 영국인들의 구매품들을 보면 고려청자와 중국의 대량생산품들이 섞여있는 경우가 많아 골동품을 둘러싼 사기행각은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유럽내에서도 송나라 원나라 시기의 청자의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고려청자의 가격도 뛰어오르기 시작한다.
이 때 등장하는 것이 일본의 야나기 무네요시이다.
일본의 역사학자이자 연민의 감정으로 조선을 바라보며 조선의 문화를 자기 나름대로 사랑했던 야나기 무네요시는 청자가 아닌 백자에 주목하며 조선의 처연한 비애미를 얘기한다. 이후에는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미감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뀌긴 하지만 어쨌든 이 시기 컬렉터들이 조선의 백자를 주목하게 한 공은 야나기 무네요시의 영향이 크다고 하겠다.
버나드 리치 역시 한국 방문 중 야나기 무네요시와 동행한 것으로 보아 그의 저 달항아리 구입 역시 야나기 무네요시의 영향을 받았으리라 짐작된다.
그리고 당시 영국에서 버나드 리치가 주도했던 스튜디오 포트리의 활동 - 대규모의 공장화된 공예품이 아니라 예술로서의 공예를 추구한 -과 맞물리면서 조선의 달항아리와 백자가 영국 내에서 재평가받게 되는 것이다.
이제 조선의 백자는 더 이상 작은 틈새시장에 머물지 않고 그 수요가 늘어나면서 시장 역시 성장하게 된다.
이 책은 이러한 조선 백자의 세계시장 진입경로를 다루면서 당대 조선 내에서는 골동품 시장의 형성과정, 거래방법, 관련 업종과 사람들 등을 두로 찾아내고 서술하면서 20세기 전반의 한국사회 생활사의 여러 장면들을 풍부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문화면에서 일본이 조선의 문화를 일본의 하위문화로 만들어가는 과정 역시 잘 보여주고 있어 식민주의의 미시사를 잘 보여주고 있어 이 시기 역사를 더 풍성하게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