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의 책 DIGEST

요리와 문장, 공감과 번역 사이에서 태도를 배우는 시간




1월의 셋째 주 역시 분주했습니다.

읽기는 꾸준히 이어갔지만 포스팅은 제때 정리하지 못한 채 책 다이어리 속 기록만 차곡히 쌓여갑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읽은 문장들이 그저 스쳐 지나가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번 주는 특히 태도에 관한 책들이 많았습니다.

요리를 대하는 태도, 사람을 이해하는 태도, 문장을 다루는 태도, 그리고 말을 옮기는 태도까지!

결국 삶은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조용히 남긴 한 주였습니다.





■ 이번 주 <간밤에읽은책> 돌아보기


『요리를 한다는 것』 - 최강록


아직 흑백요리사를 보지는 못했지만 자주 언급되는 이름이라 궁금해 읽게 된 책입니다.

이 책은 요리 기술을 설명하기보다 요리를 대하는 마음가짐을 이야기합니다.

좋은 재료를 고르는 일, 불 앞에 서 있는 시간,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까지!

요리는 결과물이 아니라 태도의 축적이라는 문장이 오래 남았습니다.

자기 일에 대해 이렇게까지 성실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 책이었습니다.


KEYWORD ▶ 요리를한다는것 독후감 | 최강록 셰프 에세이 | 요리 철학 | 직업 에세이 추천



『공감에 관하여』 - 이금희


공감은 타고나는 감정이 아니라 훈련 가능한 능력이라는 점을 차분히 풀어냅니다.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잘 듣는 일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관계 속에서 자주 서두르던 태도를 조금은 늦추게 만든 책이었습니다.


KEYWORD ▶ 공감에관하여 독후감 | 이금희 책 리뷰 | 공감 능력 기르기 | 관계 인문학

https://blog.naver.com/hanainbook/224144392800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 - 유선경


어휘력은 결국 자주 보고 자주 쓰는 데서 자란다는 사실!

하루 한 문장을 따라 적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집중을 요구합니다.

필사는 단순한 베껴 쓰기가 아니라 문장을 천천히 음미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다시 체감한 시간이었습니다.

바쁜 1월에 오히려 더 필요한 루틴이었습니다.


KEYWORD ▶ 하루한장필사노트 독후감 | 어휘력 향상 | 필사 추천 책 | 글쓰기 습관

https://blog.naver.com/hanainbook/224145754150



『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 - 다자이 오사무


다자이의 문장은 여전히 섬세하고 여전히 날카롭습니다.

이번 독서에서는 특히 문장이 감정을 어떻게 품고 있는지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짧은 문장 하나가 한 사람의 내면을 얼마나 깊이 드러낼 수 있는지 문장을 읽는다는 것이 곧 한 사람을 만나는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KEYWORD ▶ 다자이오사무 문장의기억 독후감 | 일본문학 추천 | 문장 수집 | 감성 고전

https://blog.naver.com/hanainbook/224147437414



『오역하는 말들』 - 황석희


번역은 단순히 단어를 옮기는 일이 아니라 맥락과 온도를 함께 전달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말들 속에 얼마나 많은 왜곡이 숨어 있는지도 돌아보게 합니다.

말을 정확히 이해하고 전달하는 일은 곧 타인을 존중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이번 주의 다른 책들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KEYWORD ▶ 오역하는말들 독후감 | 황석희 번역 에세이 | 번역 이야기 | 언어 감수성

https://blog.naver.com/hanainbook/224149236736





■ 이번 주 <함께읽는시집> 돌아보기


『해바라기 얼굴』 - 윤동주


부끄러움을 아는 태도, 곧게 서 있으려는 의지.

짧은 시이지만 맑고 단단한 마음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이번 주 읽은 책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면 이 시는 '어떤 얼굴로 서 있을 것인가'를 묻는 듯했습니다.


KEYWORD ▶ 윤동주 해바라기얼굴 감상 | 윤동주 시 추천 | 한국 현대시 독후감

https://blog.naver.com/hanainbook/224146692592




1월 셋째 주의 독서는 기술보다 태도를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요리를 통해 성실을 배우고 공감을 통해 관계를 돌아보고 필사로 문장을 천천히 되새기고 번역을 통해 언어의 책임을 생각했습니다.


읽고는 있지만 쓰지 못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지요.

그러나 조급해하지 않으려 합니다.

문장은 결국, 준비된 순간에 스스로 빛을 내니까요.


여러모로 바쁜 2월이 지났으니 3월에는 블로그에 다시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은 한 주의 기록들도 쭉쭉 올려보겠습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은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 「만약 내가」를 함께 읽어보려 합니다.

짧지만 단단한 이 시는 우리가 왜 살아가는지에 대한 가장 조용하고도 분명한 답을 건네는 작품입니다.




만약 내가… - 에밀리 디킨슨


만약 내가 한 사람의 심장이

미어지는 것을 멈출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라.

만약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달래줄 수 있다면,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면,

지친 새 한 마리 둥지로

돌아가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라.




■ 해설 및 주제 분석


이 시는 에밀리 디킨슨 특유의 간결하고 명료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반복되는 문장인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라]는 이 시의 중심이자 결론입니다.

[한 사람의 심장이 미어지는 것을 멈출 수 있다면]은 거대한 업적이 아닌 단 한 사람의 아픔을 말합니다.

지친 새 한 마리는 연약하고 작아 보이는 존재에 대한 연민을 상징하죠.


시 전체는 조건문 구조로 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삶의 가치에 대한 확신이 담겨 있습니다.

그녀는 성공이나 명예를 말하지 않습니다.

단 한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 그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의미 있다고 말합니다.



■ 시가 주는 메시지


어쩌면 삶의 가치는 크기가 아니라 방향에 있습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덜어주는 순간, 존재는 이미 빛이 나죠.

이 시는 묻습니다. 오늘 당신은 누구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했는지.



■ 하나의 감상


이 시를 읽으면 마음이 조용히 내려앉습니다.

요즘처럼 바쁘고 정신없는 시간 속에서는 내가 잘 살고 있는지조차 돌아볼 여유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디킨슨은 말합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괜찮다고.

누군가의 눈물을 잠시 멈추게 했다면, 지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었다면 그 하루는 헛되지 않다고.


아침에 이 시를 읽으며 생각해봅니다.

오늘 하루, 대단한 일을 해내지 못해도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2월의 끝자락, 조금 지치고 흐트러졌더라도 다시 마음을 다잡게 하는 시입니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로 주말을 시작해보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은 나태주 시인의 짧은 시 「봄밤」을 함께 읽어보려 합니다.

몇 줄 되지 않는 시여도 사랑의 여운이 조용히 번지는 작품입니다.

봄밤의 공기처럼 가볍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 설렘을 담고 있습니다.




봄밤 - 나태주



달 없이도

밝은 밤입니다


꽃 없이도

향기로운 밤입니다


그대 없이도

설레는 밤이구요




■ 해설 및 주제 분석


「봄밤」은 나태주 시 특유의 간결한 언어와 여백의 미학이 잘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달이 없어도 밝고 꽃이 없어도 향기롭고 그대가 없어도 설렌다고 말하는 이 시는 없음을 말하면서도 오히려 충만함을 드러냅니다.


일반적으로 사랑은 대상의 존재를 통해 완성된다고 생각하지만 이 시에서는 이미 마음속에 자리한 감정이 밤을 밝히고 향기롭게 만듭니다.

즉,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내면의 상태가 밤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 반복 구조는 없음이 곧 결핍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랑은 물리적 거리보다 마음의 깊이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 시가 주는 메시지


사랑은 꼭 곁에 있어야만 존재하는 감정이 아닙니다.

이미 마음에 담긴 사람은 부재 속에서도 빛을 만들죠.

또한 설렘은 상황이 아니라 기억과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나태주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사랑은 채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채워져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 하나의 감상


이 시를 읽으면 봄밤 특유의 공기가 떠오릅니다.

아직 완전히 따뜻하지는 않지만 어딘가 들뜨고 가볍게 흔들리는 밤의 기운 말입니다.


[그대 없이도 설레는 밤]이라는 구절을 읽고나니 사랑이란 결국 마음의 작용임을 깨우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곁에 없더라도, 멀리 있더라도, 그 존재가 이미 마음을 환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아침에 이 시를 읽는다는 건 오늘 하루를 조금 더 가볍게 시작하는 일 같기도 합니다.

무언가 부족해 보여도 이미 내 안에는 충분한 빛과 향기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 사실을 믿으며 하루를 시작해도 좋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주의 책 DIGEST

기다림과 자각, 아름다움을 다시 배우는 재독의 시간




1월의 둘째 주 역시 정신없이 흘러갔습니다.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열심히 읽었으나 정작 포스팅은 제때 올리지 못해서 책 다이어리에 기록만 차곡차곡 쌓았던 한 주였습니다.


올해는 재독하는 해이기 때문에 절반은 신간 위주이고 절반은 그간 읽었던 책들 위주입니다.

하루에 2-3권씩 읽는 날도 있는데다 주말에는 더 많이 읽고 있지만 한주의 책은 주말 제외하고 평일에 대표하는 책들로 구성해 소개하고 있어 요새 고민중입니다.

사실 포스팅 길이가 길어질 것 같아서 이렇게 구성하고 있는 건데 한 주에 읽었던 책들을 몽땅 소개할지 말지 고민중입니다 >﹏<

아! 그리고 여러분도 올해에 재독하는 시간을 꼭 가져보세요.

읽었던 책들을 다시 펼치며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조용히 확인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답니다.


1월 둘째주는 고전 희곡과 예술 인문서를 중심으로 기다림, 자각, 안목, 아름다움이라는 키워드가 이어졌습니다.

바쁠수록 오히려 오래된 문장들이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었던 한 주였습니다.





■ 이번 주 <간밤에읽은책> 돌아보기


『고도를 기다리며』 - 사뮈엘 베케트


학창시절에 도서관을 왔다갔다하며 책 빌리고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았었는데 중학교 때 처음 마주했던 작품입니다.

그때는 너무 어려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재독할수록 더 선명해지는 작품입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무대 위에서 인간 존재의 공허와 기다림이 반복됩니다.

이번에는 기다림보다 그럼에도 계속 말을 건네는 인간의 모습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삶이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아도 우리는 여전히 하루를 살아내죠.

고전 희곡은 읽을 때마다 그때의 제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주는 듯합니다.

이 책은 읽어봐야 압니다. (책 다이어리에 있는 내용을 얼른 옮겨와보겠습니다.)


KEYWORD ▶ 고도를기다리며 독후감 | 사뮈엘베케트 | 부조리극 추천 | 고전희곡 재독



『인형의 집』 - 헨리크 입센


『인형의 집』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권리와 독립을 주제로 진행되는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입니다.

주인공 노라의 선택은 언제 읽어도 묵직합니다.

이번 재독에서는 여성의 자각이라는 주제보다 한 인간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순간에 더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보니 닫히는 문 소리는 단절이 아닌 시작의 신호처럼 느껴졌습니다.


KEYWORD ▶ 인형의집 독후감 | 헨리크입센 | 고전문학 추천 | 여성문학 고전



『안목』 - 유홍준


좋은 것을 알아보는 힘은 결국 오래 바라보는 시간에서 나옵니다.

좋은 안목이란 무엇인지를 시작으로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역사 속 높은 안목을 가진 이들은 어떻게 대상에서 아름다움을 파악하였는지를 설명합니다.

좋은 안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며 천천히 보고 깊이 이해하려는 마음을 자연스레 장착하게 됩니다.


KEYWORD ▶ 안목 독후감 | 유홍준 책 추천 | 문화유산 인문학 | 예술 안목 기르기



『모두를 위한 한국미술사』 - 유홍준


미술사는 어렵다는 선입견을 사라지게 만들어주는 책입니다.

한국 미술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작품이 단순히 유물이 아닌 시대의 언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교과서에도 담지 못했던 내용이 풍부하게 담겨 있어 보고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이 책도 곧 리뷰 올릴 예정입니다.)


KEYWORD ▶ 모두를위한한국미술사 독후감 | 한국미술사 입문 | 인문교양 추천



『칼 라르손, 오늘도 행복을 그리는 이유 (양장 특별판)』 - 이소영


행복을 그리는 화가 칼 라르손의 그림은 소박한 일상을 가장 따뜻한 장면으로 바꿔놓습니다.

당시 북유럽 화가들의 생활이나 인테리어 등을 엿볼 수 있으며 특별하지 않은 하루가 얼마나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전 구판도 소장하고 있는데 이번 특별판에서는 [스웨덴국립미술관컬렉션] 전시를 맞이해 작품이 더 추가되어 230점 이상의 작품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그의 그림을 좋아한다면 꼭 소장하세요.


KEYWORD ▶ 칼라르손 오늘도행복을그리는이유 독후감 | 북유럽 예술 | 미술 에세이 추천




1월 둘째 주의 독서 또한 다시 읽는 힘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고전 희곡은 존재를 묻고 예술 인문서는 보는 태도를 가르치고 한 화가의 삶은 일상의 온기를 일깨워주었습니다.

읽고는 있지만 쓰지 못한 날들이 이어지는 1월이지만 책 다이어리에는 차곡차곡 기록되어 있으니 찬찬히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주, 당신은 어떤 문장을 다시 만나고 있나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외교 천재 고려

저자 : 이익주

출판사 : 김영사

출간 : 2026.01.25

장르 : 역사 > 고려시대 / 외교·상호교류사

키워드 : 간밤에읽은책, 외교천재고려, 이익주, 고려외교사, 고려역사책추천, 한국사교양서, 역사책추천, 고려시대, 외교전략





작은 나라의 생존은 힘이 아니라 판단에 달려 있었다.





요즘 국제 정세를 다룬 뉴스를 보다 보면 외교라는 단어가 유독 무겁게 다가옵니다.

선택 하나가 관계를 바꾸고 말 한마디가 국면을 흔드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겠죠?

간밤에 『외교 천재 고려』를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고려의 외교를 너무 단순하게 기억해온 건 아닐까 하고요.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던 약소국이라는 이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강대국 사이에서 길을 찾았던 나라


책에서는 고려를 영웅적으로 포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고려가 처했던 국제 질서와 현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고려는 송과 거란, 금과 몽골이라는 당대 최강대국들 사이에서 늘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고려는 상황에 따라 단호한 태도를 취하거나 실리를 따지며 한 발 뒤로 물러서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이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게 갈릴 순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외교전략이었다는 점입니다.





역사 속에서 중국의 개념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종족을 기준으로 볼지, 영토를 기준으로 볼지부터가 모호합니다. 종족을 기준으로 한다면 한족이 세운 나라를 중국이라 해야 할 텐데, 곰곰이 따져보면 중국 역사에서 한족 왕조는 오히려 많지 않습니다. 한나라, 송나라, 명나라 정도입니다. 영토를 기준으로 정의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 경우에도 어디까지가 중국 땅인지를 두고 의견이 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대체로 황허 중하류 지역, 즉 중원을 중국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데 황허문명의 발상지이자 이후 중국 역사의 중심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중원을 차지하는 자가 중국을 지배한다"는 말까지 생겨난 거죠.

이 기준에 따르면 송나라와 거란 가운데 중원을 차지한 쪽은 오히려 거란이었고, 따라서 거란을 중국이 아니라고 할 수 없게 됩니다.


10세기로 잠시 이동해볼까요?

당시 한반도는 후삼국으로 분열되어 신라, 후백제, 고려는 군사적으로 대립했을 뿐만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경쟁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중국은 송과 거란으로 분열되고 있었고 동아시아에서는 베트남과 대하가 등장해 다원적 국제 질서가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중국 오대 왕조 중 하나인 후당이 왕건을 고려 국왕으로 책봉하였습니다.

고려 건국 이후 처음으로 중국 왕조로부터 책봉을 받은 것인데 특이점이 있다면 이보다 앞선 시기에는 견훤을 백제 국왕이 아닌 판백제군사로 책봉하였고 이후 신라가 사신을 파견했을 때는 신라 국왕을 권지국사라 불렀습니다.

이렇게 등급을 나눈 것은 분열된 한반도의 각 정권에 대한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후당의 외교 전략이었겠지만 고려 입장에서는 삼국에서 우위를 점했다고 평가했을 것입니다.





외교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살아남는 문제


책 속의 외교 장면들은 공통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지금 싸워야 하는가? 아니면 물러서야 하는가?

이길 수 있는 전쟁인가? 아니면 이겨도 감당할 수 있는 전쟁인가?

서희의 외교 담판이나 귀주대첩 이후의 선택, 동북 9성을 내려놓은 결정까지 고려의 외교는 언제나 가능한 선택 중 가장 덜 위험한 길을 찾는 과정처럼 보입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승리 이후의 태도였습니다.

이겼다고 밀어붙이지 않고 얻었다고 욕심내지 않는 절제 말입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전쟁을 끝내는 판단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고려는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서희의 외교담판]

거란의 소손녕과 전쟁 없이 강동 6주를 확보하고 거란군을 철수시킨 사건으로 교과서에서 꼭 다루는 개념 중 하나이지요.

이에 대해 더 세세하게 아는 분은 많이 없을 것 같아 살짝 다뤄보려고 합니다.

고려는 전쟁 중의 협상에 능했지만 언제나 최선을 다해 싸웠습니다.

압록강을 건너 북쪽에서 거란이 침공해오자 고려 국왕인 성종은 피신하지 않고 말 머리를 북쪽으로 돌렸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선봉군이 패배하자 서경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데 이후 소손녕과 협상을 벌이게 됩니다.

소손녕은 고구려의 옛 땅이 모두 거란 소유가 되어야 하니 모두 내놓으라고 요구합니다.

이때, 고려는 거란의 요구를 받아들이자는 의견이 대다수였는데 서희가 이를 반대하였습니다.


"삼각산 이북도 고구려 땅이었는데, 그 역시 달라면 주겠습니까?"


결국 서희 자신이 소손녕과 담판을 벌이게 됩니다.

소손녕을 만난 서희는 의전 문제부터 기싸움을 벌이게 됩니다.

소손녕이 자신에게 먼저 절할 것을 요구하자 서희는 관사에 드러누워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양측은 마당에서 맞절하고 동서 방향으로 마주앉게 됩니다.

동서 방향으로 마주앉았다는 점도 매우 중요합니다.

마주 앉더라도 남북 방향이면 북쪽이 상석이기 때문이지요.

서희는 소손녕의 두가지 요구에 단호히 반박하게 됩니다.

고려가 바로 고구려의 후계자이기에 이에 따른다면 거란이 차지하고 있는 고구려의 옛 영토를 오히려 고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지요.

또한 고려가 거란에 사대하지 못하는 것은 여진이 길을 막고 있기 때문이라며 여진을 몰아내고 압록강까지 고려의 영토임을 인정한다면 거란에 사대하겠다는 뜻을 내비추게 됩니다.

결국 거란 황제는 고려가 화친을 청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철수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훗날 병자호란 사태와 비교했을 때 고려의 외교정책이 얼마나 유연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당시 고려는 거란과의 전쟁을 피한데다 북쪽으로 영토를 넓히는 성과까지 거두었으니 외교 핵심은 전쟁을 피하는데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합니다.





버티고 간보고 협상하는 외교


몽골과의 30년 항쟁을 다룬 부분에서는 외교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하게 됩니다.

정면 승부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 앞에서 고려가 택한 방식은 버티기와 협상이었습니다.

받아들이는 척하며 시간을 벌고 다시 조건을 바꾸고 끝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는 전략은 깔끔한 것도 아니고 영웅적으로 보이지도 않지만 그래서 더 현실적인 선택처럼 다가왔습니다.

외교는 체면의 싸움이 아니라 지혜의 싸움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대목이었습니다.

어쩌면 원나라가 망하지 않았다면 고려도 더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하지 않았을까요?



간밤에 읽은 책, 외교 천재 고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니 외교를 잘한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강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살아남는 판단을 하는 것, 당장의 승리보다 다음 선택의 여지를 남기는 태도에 대해서 말이죠.

『외교 천재 고려』는 고려의 역사를 통해 그 태도를 전부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과거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지금을 향한 질문처럼 읽혔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지, 힘의 논리에만 기대고 있지는 않은지 괜스레 묻게 됩니다.

고려가 늘 정답을 향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선택의 과정만큼은 충분히 돌아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덧붙여 한반도의 정세에 맞춰 중국의 역사까지 돌아볼 수 있기에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았던 세세한 내용들을 읽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았습니다.

나름 한국사의 전체적인 흐름은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알지 못했기에 읽는 시간이 제겐 너무나도 소중했습니다.

새학기를 맞이하기 전, 학생들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역사책입니다.



이 책을 추천합니다!


외교와 국제관계에 관심 있는 분

고려사를 새로운 시선으로 읽고 싶은 분

역사를 통해 오늘의 선택을 고민해보고 싶은 분



『외교 천재 고려』는 작은 나라의 외교가 얼마나 치열한 사고의 결과였는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강대국 사이에서도 판단을 멈추지 않았던 고려의 선택들이 지금 우리의 현실과 겹쳐 보입니다.

오늘 하루, 뉴스를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싶은 분께 이 책을 조용히 건네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