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천재 고려

저자 : 이익주

출판사 : 김영사

출간 : 2026.01.25

장르 : 역사 > 고려시대 / 외교·상호교류사

키워드 : 간밤에읽은책, 외교천재고려, 이익주, 고려외교사, 고려역사책추천, 한국사교양서, 역사책추천, 고려시대, 외교전략





작은 나라의 생존은 힘이 아니라 판단에 달려 있었다.





요즘 국제 정세를 다룬 뉴스를 보다 보면 외교라는 단어가 유독 무겁게 다가옵니다.

선택 하나가 관계를 바꾸고 말 한마디가 국면을 흔드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겠죠?

간밤에 『외교 천재 고려』를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고려의 외교를 너무 단순하게 기억해온 건 아닐까 하고요.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던 약소국이라는 이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강대국 사이에서 길을 찾았던 나라


책에서는 고려를 영웅적으로 포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고려가 처했던 국제 질서와 현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고려는 송과 거란, 금과 몽골이라는 당대 최강대국들 사이에서 늘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고려는 상황에 따라 단호한 태도를 취하거나 실리를 따지며 한 발 뒤로 물러서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이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게 갈릴 순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외교전략이었다는 점입니다.





역사 속에서 중국의 개념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종족을 기준으로 볼지, 영토를 기준으로 볼지부터가 모호합니다. 종족을 기준으로 한다면 한족이 세운 나라를 중국이라 해야 할 텐데, 곰곰이 따져보면 중국 역사에서 한족 왕조는 오히려 많지 않습니다. 한나라, 송나라, 명나라 정도입니다. 영토를 기준으로 정의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 경우에도 어디까지가 중국 땅인지를 두고 의견이 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대체로 황허 중하류 지역, 즉 중원을 중국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데 황허문명의 발상지이자 이후 중국 역사의 중심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중원을 차지하는 자가 중국을 지배한다"는 말까지 생겨난 거죠.

이 기준에 따르면 송나라와 거란 가운데 중원을 차지한 쪽은 오히려 거란이었고, 따라서 거란을 중국이 아니라고 할 수 없게 됩니다.


10세기로 잠시 이동해볼까요?

당시 한반도는 후삼국으로 분열되어 신라, 후백제, 고려는 군사적으로 대립했을 뿐만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경쟁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중국은 송과 거란으로 분열되고 있었고 동아시아에서는 베트남과 대하가 등장해 다원적 국제 질서가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중국 오대 왕조 중 하나인 후당이 왕건을 고려 국왕으로 책봉하였습니다.

고려 건국 이후 처음으로 중국 왕조로부터 책봉을 받은 것인데 특이점이 있다면 이보다 앞선 시기에는 견훤을 백제 국왕이 아닌 판백제군사로 책봉하였고 이후 신라가 사신을 파견했을 때는 신라 국왕을 권지국사라 불렀습니다.

이렇게 등급을 나눈 것은 분열된 한반도의 각 정권에 대한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후당의 외교 전략이었겠지만 고려 입장에서는 삼국에서 우위를 점했다고 평가했을 것입니다.





외교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살아남는 문제


책 속의 외교 장면들은 공통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지금 싸워야 하는가? 아니면 물러서야 하는가?

이길 수 있는 전쟁인가? 아니면 이겨도 감당할 수 있는 전쟁인가?

서희의 외교 담판이나 귀주대첩 이후의 선택, 동북 9성을 내려놓은 결정까지 고려의 외교는 언제나 가능한 선택 중 가장 덜 위험한 길을 찾는 과정처럼 보입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승리 이후의 태도였습니다.

이겼다고 밀어붙이지 않고 얻었다고 욕심내지 않는 절제 말입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전쟁을 끝내는 판단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고려는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서희의 외교담판]

거란의 소손녕과 전쟁 없이 강동 6주를 확보하고 거란군을 철수시킨 사건으로 교과서에서 꼭 다루는 개념 중 하나이지요.

이에 대해 더 세세하게 아는 분은 많이 없을 것 같아 살짝 다뤄보려고 합니다.

고려는 전쟁 중의 협상에 능했지만 언제나 최선을 다해 싸웠습니다.

압록강을 건너 북쪽에서 거란이 침공해오자 고려 국왕인 성종은 피신하지 않고 말 머리를 북쪽으로 돌렸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선봉군이 패배하자 서경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데 이후 소손녕과 협상을 벌이게 됩니다.

소손녕은 고구려의 옛 땅이 모두 거란 소유가 되어야 하니 모두 내놓으라고 요구합니다.

이때, 고려는 거란의 요구를 받아들이자는 의견이 대다수였는데 서희가 이를 반대하였습니다.


"삼각산 이북도 고구려 땅이었는데, 그 역시 달라면 주겠습니까?"


결국 서희 자신이 소손녕과 담판을 벌이게 됩니다.

소손녕을 만난 서희는 의전 문제부터 기싸움을 벌이게 됩니다.

소손녕이 자신에게 먼저 절할 것을 요구하자 서희는 관사에 드러누워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양측은 마당에서 맞절하고 동서 방향으로 마주앉게 됩니다.

동서 방향으로 마주앉았다는 점도 매우 중요합니다.

마주 앉더라도 남북 방향이면 북쪽이 상석이기 때문이지요.

서희는 소손녕의 두가지 요구에 단호히 반박하게 됩니다.

고려가 바로 고구려의 후계자이기에 이에 따른다면 거란이 차지하고 있는 고구려의 옛 영토를 오히려 고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지요.

또한 고려가 거란에 사대하지 못하는 것은 여진이 길을 막고 있기 때문이라며 여진을 몰아내고 압록강까지 고려의 영토임을 인정한다면 거란에 사대하겠다는 뜻을 내비추게 됩니다.

결국 거란 황제는 고려가 화친을 청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철수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훗날 병자호란 사태와 비교했을 때 고려의 외교정책이 얼마나 유연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당시 고려는 거란과의 전쟁을 피한데다 북쪽으로 영토를 넓히는 성과까지 거두었으니 외교 핵심은 전쟁을 피하는데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합니다.





버티고 간보고 협상하는 외교


몽골과의 30년 항쟁을 다룬 부분에서는 외교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하게 됩니다.

정면 승부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 앞에서 고려가 택한 방식은 버티기와 협상이었습니다.

받아들이는 척하며 시간을 벌고 다시 조건을 바꾸고 끝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는 전략은 깔끔한 것도 아니고 영웅적으로 보이지도 않지만 그래서 더 현실적인 선택처럼 다가왔습니다.

외교는 체면의 싸움이 아니라 지혜의 싸움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대목이었습니다.

어쩌면 원나라가 망하지 않았다면 고려도 더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하지 않았을까요?



간밤에 읽은 책, 외교 천재 고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니 외교를 잘한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강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살아남는 판단을 하는 것, 당장의 승리보다 다음 선택의 여지를 남기는 태도에 대해서 말이죠.

『외교 천재 고려』는 고려의 역사를 통해 그 태도를 전부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과거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지금을 향한 질문처럼 읽혔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지, 힘의 논리에만 기대고 있지는 않은지 괜스레 묻게 됩니다.

고려가 늘 정답을 향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선택의 과정만큼은 충분히 돌아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덧붙여 한반도의 정세에 맞춰 중국의 역사까지 돌아볼 수 있기에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았던 세세한 내용들을 읽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았습니다.

나름 한국사의 전체적인 흐름은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알지 못했기에 읽는 시간이 제겐 너무나도 소중했습니다.

새학기를 맞이하기 전, 학생들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역사책입니다.



이 책을 추천합니다!


외교와 국제관계에 관심 있는 분

고려사를 새로운 시선으로 읽고 싶은 분

역사를 통해 오늘의 선택을 고민해보고 싶은 분



『외교 천재 고려』는 작은 나라의 외교가 얼마나 치열한 사고의 결과였는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강대국 사이에서도 판단을 멈추지 않았던 고려의 선택들이 지금 우리의 현실과 겹쳐 보입니다.

오늘 하루, 뉴스를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싶은 분께 이 책을 조용히 건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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