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슬슬 일기장을 한 번 정리해야 할 날이 다가왔다.

빼곡히 써내려간 일기장도 싹 처분하고 창고까지 쌓아올린 책들도 손길이 필요하다.

알라딘 영수증 기록을 보니 그간 책으로 바친 돈이 천 단위가 거뜬히 넘던데 YES24에서도 그만큼 썼으니 중고서점도 한껏 활용해봐야겠다.

아차차 다음에 이사를 하게 되면 근방에 도서관 여부는 필수다.


마치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이 생기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빠르게 흐르는 시간에 처음으로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

이제, 나이를 먹어가나 보다.


일하고 열심히 읽고 쓰는 게 전부였던 반 년이었기에

6월 마지막 날인 어제 심히 반성하며 남은 반 년은 열심히 달려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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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꽃 (앙리 마티스 에디션)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문예출판사

2018-11-05

원제 : Les Fleurs Du Mal (1857년)

시 > 외국시





인간과 바다



자유로운 인간이여, 항상 바다를 사랑하라!

바다는 너의 거울, 너는 네 영혼을

한없이 출렁이는 물결에 비추어 보는구나,

바다처럼 한없는 네 정신 쓰라린 심연은 아닌 것을.


너는 네 모습에 심취하길 즐기고

때때로 그 모습을 네 눈과 팔과 가슴으로 품으면

격하고 사나운 바다의 탄식으로

어느덧 네 가슴속 동요도 멎는구나.


너흰 둘 다 음흉할 만큼 치밀하구나.

인간이여, 그대의 심연 바닥을 헤아린 자 아직 없고

오 바다여, 네 보물 역시 아무도 모르게 감췄으니

그토록 너희 둘 집요하게 비밀을 감싸는가!


그런데도 너희 둘은 아득한 옛날부터

연민도 후회도 모르는 듯 서로 싸웠으니

어찌 그리 살육과 죽음에 도취하는가.

오 영원한 투사들, 오 냉혹한 형제들이여!




우주 만물을 당신 규방 안에 넣고 싶나요



우주 만물을 당신 규방 안에 넣고 싶나요

부도덕의 화신이여! 무료함이 그대 마음 악하게 했나요.

이빨로 그 이상한 놀이를 하자면

날마다 사람 심장 하나씩 걸어 놓아야겠지요.

당신 눈은 상점가 불빛처럼

아니면 축제 촛대처럼 타오르며,

남의 권력을 오만방자 휘두를 땐,

아름다움의 법 따윈 몰라도 되나요.


눈 감고 귀 닫은 기계처럼, 냉혹함의 향연!

세상 만인 피를 빠는 참 유익한 장치,

행여 부끄럽진 않은가요, 혹시 본 적은 있나요?

거울 속에 비치는 당신의 추한 모습.

악행의 대가로써 그 죄 하늘 찌르는데

죄의식에 떨린 일 정말 한 번도 없는가요?


언젠가 대자연의 원대한 섭리가 드러나면,

당신조차도 쓸모가 있을까요? 오 여인아, 오 죄악의 여왕이여,

ㅡ당신 같은 천박한 짐승이ㅡ무슨 천재라도 잉태할까?


오 거대한 진흙탕이여! 궁극의 비열함이여!




살아 있는 횃불



빛으로 가득한 그 눈들이 내 앞을 행진하네.

고귀한 천사의 자력에 끌리듯

내 형제들, 거룩한 형제들이 행진을 하네,

내 눈 속에 다이아몬드의 불빛을 흔들면서.


온갖 함정과 중죄에서 날 구원하고

그들은 아름다움의 길로 나를 인도하네.

그들이 내 하인이듯 나는 그들의 노예이니

내 존재는 온전히 이 살아 있는 횃불을 따른다네.


매혹의 눈들이여, 신비한 빛으로 반짝이도다,

한낮에 타오르는 촛불처럼.

붉은 태양도 이 환상의 불꽃을 당할 수 없도다.


횃불은 죽음의 찬미, 그대는 부활을 찬양하니

내 영혼의 부활을 노래하며 그대는 행진하고

태양조차 별들의 그 불꽃을 수그리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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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

저자 신경림

창비

2024-03-29

시 > 한국시





책 _김수영



책을 한권 가지고 있었지요. 까만 표지에 손바닥만 한 작은 책이지요. 첫장을 넘기면 눈이 내리곤 하지요.


바람도 잠든 숲속, 잠든 현사시나무들 투명한 물관만 깨어 있었지요. 가장 크고 우람한 현사시나무 밑에 당신은 멈추었지요. 당신이 나무둥치에 등을 기대자 비로소 눈이 내리기 시작했지요. 어디에든 닿기만 하면 녹아버리는 눈. 그때쯤 해서 꽃눈이 깨어났겠지요.


때늦은 봄눈이었구요, 눈은 밤마다 빛나는 구슬이었지요.


나는 한때 사랑의 시들이 씌어진 책을 가지고 있었지요. 모서리가 나들나들 닳은 옛날 책이지요. 읽는 순간 봄눈처럼 녹아버리는, 아름다운 구절들로 가득 차 있는 아주 작은 책이었지요.





단 한번, 영원히 _전동균



이제는 말해다오, 하늘로 몸을 감는 덩굴잎들아

파로호의 찌불들아

울어도 울어도 캄캄한 이 밤을

이 밤의 장막 넘어

잘린 말 대가리들이 쏟아지는 허공의 또다른 밤을


한때 여기에도 사람이 살았어, 단검처럼

옆구리를 찌르는 물결들, 숨 내뱉는 순간

얼어붙는 바람을 삼키는

바람의 입들, 끝내


울지 않는 새들아, 말해다오, 이 밤의 장막 넘어

잘린 말 대가리들을 싣고

트럭이 질주하는

사막, 안개바다, 처녀의 피,

그곳의 오직 하나인 밤을


물고기들이 강의 고통을 기억하듯, 우리가

우리의 죄를 껴안아야 하는

재의 수요일이 오기 전에, 내 얼굴을 찢고

기린의 혓바닥이 튀어나오기 전에





목계장터 _신경림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려

민물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어라연 _김선우



강원도 정선

어라연 계곡 깊은 곳에

어머니 몸 씻는 소리 들리네


ㅡ자꾸 몸에 물이 들어야

숭스럽게스리 스무살모냥……

젖무덤에서 단풍잎을 훑어내시네


어라연 푸른 물에 점점홍점점홍

ㅡ그냥 두세요 어머니, 아름다워요


어라연 깊은 물

구름꽃 상여 흘러가는

어라연에 나, 가지 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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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하는 고슴도치 - 2024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우수선정도서
재발견생활 지음 / 훨훨나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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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하는 고슴도치

저자 재발견생활

훨훨나비

2024-05-22

어린이 > 동화/명작/고전 > 창작동화






아침 일찍이 일어난 고슴도치는 짧은 팔, 다리를 뻗어보며 한숨을 내쉬었어요.

밤새 뒤척이며 잠도 못 잔 고슴도치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바로 달리기 경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집을 나서 힘없이 터벅터벅 경기장으로 걸어가던 중 큰고니가 나타나 고슴도치에게 물었어요.


"어딜 그렇게 힘없이 가니?"

"달리기 경기하러 가. 잘해야 할 텐데 말이야."

"암, 잘할 수 있고말고. 네가 매일 달리기 연습하는 걸 하늘에서 지켜봤단다. 나도 참가하는 경기가 있어. 우리 함께 잘해 보자!"


출발선에 선 고슴도치.

고슴도치는 있는 힘을 다해 달려봅니다.

그러나, 올해도 꼴찌입니다.

친구들의 놀림에 눈물이 터진 고슴도치는 엉엉 울다 옹달샘에 빠진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곤 맑아진 정신과 함께 말끔하게 씻긴 가시가 반짝거리기 시작했어요.

'나의 가슴 속에 이 있구나!'


깨달음을 얻고 집으로 가던 중, 먹이 찾기 경기에서 탈락해 풀이 죽은 큰고니를 만난 고슴도치.

고슴도치는 큰고니에게도 자신의 깨달음을 전해줍니다.

그리곤 가시를 하나 뽑아 큰고니의 찢긴 별을 열심히 꿰매줍니다.


마침내 고슴도치는 깨닫게 됩니다.

'아, 나는 달리기가 아니라 바느질을 잘할 수 있구나!'





열심히 노력한 것에 비해 결과물은 좋지 않았던 고슴도치.

마침내 깨달았던 바느질 솜씨는 다른 누구도 아닌 고슴도치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고슴도치의 하루를 읽다 보면 나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자연스레 생각하게 됩니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사회로 고조되다 보니, 고슴도치처럼 노력한 것에 비해 실망스러운 결과를 받아들여야 할 때도 많습니다.

어른들도 힘들게 버티는데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죠.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이 과연 잘하는 것인지 즉,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책을 통해 아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전 2살 된 조카를 무릎에 앉혀 놓고 함께 읽었었는데 아직은 동물 맞추기에 불과하지만 조금 더 크면 한 번 더 읽어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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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산책시키기 - 당신의 인생을 뒤바꿔 놓을 10가지 방법
벤 알드리지 지음, 김지연 옮김 / 혜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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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산책시키기

저자 벤 알드리지

혜다

2024-05-30

자기계발 > 인간관계 > 교양심리학






느닷없이 찾아온 공황장애로 일상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듣기만 해도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도전들을 통해 한 남자는 자신의 인생을 뒤바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도전의 중심에는 바로 스토아 철학이 있었습니다.

바로 저자의 이야기입니다.

공황장애로 심신이 무너진 저자는 우연히 스토아주의를 접하게 되는데 심리적 안전지대를 벗어나고자 스토아 철학을 바탕으로 다양한 도전 목록을 세우게 됩니다.

물리적인 도전과 정신적인 도전 심지어 기술적인 도전도 있었지요.

공통점이라면, 하나같이 벗어나기를 두려워했던 심리적 안전지대 밖으로 그를 밀어냈다는 것입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정신력에 관해선 그 누구보다 전문가라 할 수 있습니다.

스토아주의 자체만으로도 책 한 권 뚝딱 쓸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실용적인 학문이라 평가되고 있지요.

참고로 책에서는 스토아 철학을 바탕으로 한 도전들을 나열하고 있으니 고대 철학 사상에 대한 학문서가 아닌 실천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인생을 뒤바꿀 수 있는 10가지 방법은 이렇습니다.


1 자발적 불편함을 추구하라

2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

3 운명을 사랑하라

4 스스로를 돌아보라

5 역할 모델을 찾아라

6 부정적인 상황도 염두에 두어라

7 내 마음만은 내가 통제할 수 있다

8 상대하기 힘든 사람을 만났을 때

9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10 우주적 관점을 지녀라



무소니우스 루푸스가 말하길, 추위와 더위, 목마름과 배고픔, 부족한 음식과 불편한 침대, 쾌락을 참고 고통을 견디는 것에 자발적으로 익숙해질 때 우리의 몸과 영혼은 단련된다고 했습니다.

자발적 불편함을 추구하라, 이는 다가올 역경을 미리 대비하기 위해 힘든 상황을 미리 연습해보자는 것입니다.

자발적 불편함은 스토아 철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으로 본질적으로는 인생 훈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스토아 철학자들이 이 개념을 각자의 삶에 적용시켰을 때 발휘한 창의성이 마음에 든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스토아 철학자들은 어떠한 행동을 취해봤을까요?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자거나 일부러 추위나 더위를 견뎌봤다고 합니다.

물과 음식을 섭취하지 않거나 쾌락을 멀리한 채 고통을 견디거나, 맨발로 걷는 등 온갖 기상천외한 행동들을 말이죠.


"당신의 패기를 시험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일주일 동안 가장 보잘것없는 음식으로 연명하며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생활해 보라.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 당신이 두려워하는 최악의 상황인지 자문해 보라. 상황이 좋을 때 앞으로 닥쳐올 나쁜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 행운의 여신이 상냥하게 구는 동안 우리 영혼은 그녀가 돌변할 때를 대비해 방어벽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런 훈련들이 너무 극단적이고 터무니없어 보일 수 있긴 합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자발적 불편함이라는 개념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예방접종을 하는 이유는 질병에 걸리지 않기 위함입니다.

예방접종은 우리 몸에 소량의 바이러스를 주입시켜 면역 체계가 이에 대처하는 방법을 미리 배우게끔 하는 것이죠.

여기서 바이러스만 실패 및 거절로 바꾸면 됩니다.

즉, 실패하거나 거절당할 상황을 일부러 겪게 되면 미래에 비슷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되겠죠.

직접적인 경험만큼 가장 좋은 교훈은 없습니다.





저도 꽤 오래 전부터 공황장애를 앓아왔습니다.

버티고 버티다 두번이나 기절하고 나서야 오랫동안 절 봐주신 의사선생님의 소개로 상담을 받았고 지금까지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3년 정도 지하철을 아예 타지 못했었어요. 그러다보니 외출할 때는 약통을 꼭 들고 다닌답니다.


근래 어떤 계기를 통해 스토아 철학과 관련된 에세이와 인문학을 모아모아 접해보고 있습니다.

철학을 삶의 매뉴얼로 삼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읽고 있는데 생각보다 우리의 삶에 많이 관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통제하는 방법을 알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니깐요.

고대 철학을 다룬 인문학이 아닌 고대 철학을 이용한 인생 사용 설명서와도 같은 책이기에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맞설 수 있는 단단한 나를 키우기 위해 미리 준비해보는 건 어떨까요?



추천합니다!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 https://blog.naver.com/hanainbook/223481533617

「우리 마음엔 무적의 여름이 숨어 있다」 ▶ https://blog.naver.com/hanainbook/223482637917



이 책을 모두 읽고 나면 푹신푹신한 침대 대신 맨바닥에서 자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얼음물 속에 뛰어드는 자신을, 매일 아침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자신을, 저녁이면 고요하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짧은 일기를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바나나와 산책 줄을 챙기고 있는 당신을 향해, 부디 행운을 빈다!

_벤 알드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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